'이주의 번역자'로 단연 꼽을 만한 이는 사마천의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다. <본기>, <세가>, <열전>에 이어서 이번에 <표>와 <서>를 마저 번역 출간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할 만한 일을 혼자 힘으로 오랜 노고 끝에 완결지었으니 경의를 표할 만하다. 안 그래도 여름에 <사기>의 앞에 나온 세 권은 구입을 했는데, 이제 마저 짝을 맞춰놓아야겠다.

  

한겨레(11. 10. 08) “14년 걸려 중국서도 드문 ‘표’ 번역까지 했죠”

중국 역사서 최고 고전인 <사기>처럼 유명한 책도 없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52만6500여자에 달하는 <사기> 전체를 우리말로 완전하게 옮긴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추리고 다듬은 편집본들만 접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중문학자인 김원중 건양대 교수(사진)가 최근 <사기 표(表)>와 <사기 서(書)>를 번역 출간해, 14년 동안 이어오던 <사기> 완역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전체 130편으로 이뤄져 있다. 김 교수는 1997년 <사기 열전>(2권)을, 지난해에는 <사기 본기>와 <사기 세가>를 번역했고, 이번에 <표>와 <서>를 출간해 비로소 <사기>의 모든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난 5일 만난 김 교수는 “20여년 동안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번역에 매달렸다”며 “끝내고 나니 10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정도로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으로 김 교수는 ‘혼자 <사기>를 완역한 학자’, ‘<삼국지>와 <사기>를 함께 완역한 학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홀로 사기를 번역한 사례는 없으며, 중국에서 이 고전을 현대 중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국가 주도로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해 이뤄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한 ‘표’는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된 역사적 사실 관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한 기록물로서, 중국에서도 번역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혼자 번역에 매달려 이 대장정 같은 작업을 마쳤다. 중국 중화서국에서 냈던 <사기> 표점본(고문에 구두점을 찍은 판본)을 바탕삼았는데, 철저히 원전 중심주의를 지키면서도 가독성 높은 번역을 추구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번역된 말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잘된 번역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또 우리나라만의 번역 정체성을 살리고픈 마음에 중국어·일본어 번역본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에 대한 집념은 국내 번역 현실을 우려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나왔다. 중국의 ‘24사(史)’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완역된 작품은 자신이 번역한 <사기>와 <삼국지>뿐이다. 일본에서는 <한서>, <삼국지>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완역돼 있었으며, <표>를 포함한 <사기>의 완역도 지난해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국내엔 저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다”며 “문제는 학자들이 번역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학문적 토양”이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번역을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 등 학문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꼭 필요한 번역본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사기>를 번역하면서 백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미 <사기>에 깊이 매혹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왜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형가의 이야기, 곧 실패담을 굳이 써넣었을까요? 아내의 충고를 듣고 태도를 바꾼 안자의 마부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은 왜 써넣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곧 2500년 역사를 통해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만사의 근본과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던 사마천의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한 권으로 읽는’, ‘하루 만에 끝내는’ 등의 제목이 붙은 편집본을 봐서는 고전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쓴이의 의도를 생각하며 글 전체를 천천히 읽어내려갈 때 비로소 그 심오한 뜻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최원형 기자) 

11. 10. 08.  

P.S. 국내에선 <사기> 완역에 도전한 학자가 한 명 더 있다. <사기> 전문가 김영수 교수도 <본기1>(알마, 2010)을 펴내면서 장정에 들어간 상태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또한 완결되기를 기대하면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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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10-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이나마 다 찍은 줄 알았는데 '표'와 '서'가 또 나왔군요. 저는 책을 읽고 나니 책속의 이야기보다 사마천에 대해 두고 두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로쟈 2011-10-09 11:54   좋아요 0 | URL
네, 대단하긴 하죠.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써냈으니 말이에요...

미국사람 2011-10-11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중 교수가 사기완역이라는 대단한 일을 해냈군요. 번역을 업적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는 빨리 바뀌어야합니다.

미국에서는 인디아나대학에서 8권짜리 완역이 나와있어요. Ssu ma Ch’ien (1994), The Grand Scribe’s Records (1994 부터 2008년까지 간행) 학술서적이라 가격은 권당 100불 정도이니 일반인이 사서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만 도서관에는 상당히 깔려 있더라구요. 읽어보려했더니 지명과 인명이 중국발음인데다 한자가 전혀 병기가 안되어있어서 두어페이지 읽고 그만두었읍니다. (항우나 유방같은 이름의 중국발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읍니다.) 다만 주석까지 빼곡히 달려있어서 우리의 일반 번역서와는 비교가 안되는 높은 수준입니다.

일본쪽 사기 번역은 찌꾸마 문고 쪽이 (史記 全8巻)』小竹文夫・小竹武夫 共訳、筑摩書房〈ちくま学芸文庫〉、初版1995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사기 연구서적 쪽으로 가면 한국과 일본은 거의 상대가 안되는 수준입니다. 중국 고전을 교과서로 과거를 500년 이상 실시했던 조선의 후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개탄할만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한서도 예전에 번역되어나왔는데 우리는 언제 한서 번역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동양사하려면 한문 중국어 뿐아니라 일본말까지 필수로 해야 됩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로쟈 2011-10-11 11:02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정보네요. <자치통감>의 경우엔 그래도 얼마전인가 완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24사가 조금씩은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직 요원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