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의 새 시집이 출간되었다.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 2006). 그의 네번째 시집이라고 하는데, 시인으로서는 지난 81년에 등단했으니까 네 권의 시집은 (상당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과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남진우는 첫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민음사, 1990)과 첫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문학과지성사, 1989)를 펴낸 '젊은 남진우'이다(그의 평론집을 나는 지방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시집은 사서 읽었다. 내 기억에 그는 정현종론으로 등단했으며 초기에 '시운동' 동인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적어놓고 보니까 시인으로서 먼저 등단하고서도 평론집을 먼저 낸 셈인데, 아무튼 군복무 때문에 휴학중이던 한 문학도에게 20대 초반에 시와 평론으로 등단하고 후반에 각각 첫시집과 평론집을 상자한 이 젊은 시인/비평가는 얼마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갓 스물에 쓴 것으로 보이는 그의 데뷔시 제목이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이었다. 요즘 같아선 '치기'로 폄하될 수 있겠지만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류의 '포즈'는 시인다움의 징표였다. 가령 이런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外套를 걸치고 몇닢 銀錢과 함께 외출하였다. 木造의 찻집에서 코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快感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詩를 태워 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픔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下降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十二使徒의 눈꺼풀에 主祈禱文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代名詞.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 오른다. 흐느적거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音階를 밟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잎 두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昏睡로부터 꿈을 길어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地中海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子正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雪海林.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船舶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바람 부는 海岸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子正의 海岸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幼年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地上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문학청년으로서의 감수성과 재능 이외에도 이국적 취향과 교양체험 등이 쉽게 감지되는 시인데, 사실 이러한 경향성은 남진우의 시세계를 관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몇몇 리뷰들을 읽다 보니까 문단에서는 기형도와 같은 연배의 시인으로서 '그로테스크'한 시적 경향을 보여준다고 이해되는 듯한데, 기형도의 등단작 '안개'(1985)와 남진우의 '로트레아몽' 사이의 거리는 현실과 환상 사이만큼이나 멀며 뚜렷하다. 그리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남진우의 시들을 읽어본 지 꽤 됐지만 그의 시에 가난과 실연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던가 의문이다(평론가 김현이 기형도의 유고시집을 해설하면서 지적한 기형도의 심리적 외상이다). 

 

 

 

 

'죽음'에 대한 관심 정도는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경우에도 남진우의 관심은 보다 간접적이고 추상적이다. 비평가로서의 계열을 따지자면 남진우적 비평의 정점에 모리스 블랑쇼가 놓여 있을 것이다. 죽음과 언어, 이 두 가지가 나는 블랑쇼적 비평의 화두라고 생각하며 남진우의 비평의 특장은 죽음과 언어의 치명적인 매혹을 짚어내는 것이지 않나 싶다. 이때 '죽음'을 '신성'으로 '언어'를 '책'으로 바꾸어놓아도 무방하다. 실상 그의 시들 또한 그 두 열쇠어들의 자장 안에 놓인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1996)에서 <타오르는 책>(2000)을 거쳐서 이제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2006)까지. 그러한 시세계를 요약해줄 수 있는 문구로 '신성을 향한 귀족주의'를 고를 수 있을까? 그 귀족주의의 태생과 운명은 사실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노트에 이미 기입돼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때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 

동아일보(06. 08. 12)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 짧은 잠에서 깨어나 문득 눈을 뜬 깊은 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텅 빈 방.’(‘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에서)

이제 남진우(46·사진) 시인은 보이는 것을 노래한다. 앞선 시집들에서 그는 추상적인 것,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를 썼다. 그러나 네 번째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에는 동물과 도시의 모습 같은,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시적 대상으로 가득하다(*'내 방문 앞'까지 찾아온 사자 한 마리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표제시 ‘새벽 세 시…’를 포함해 ‘긴 혀를 늘어뜨리고/두 눈에 푸른 별을 켠 개들’(‘저수지의 개들’)이나 ‘갯벌을 건너가는 꽃게 한 마리’(‘종일토록’), ‘해 저물도록 그림엽서를 팔던 소녀’(‘오래된 사원’) 등이 그렇다.

-그는 죽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적 믿음을 시로 옮기는 데 애써 왔다. 새 시집에서는 그동안 죽음과 어둠의 이미지로만 갇혀 있던 시어들을 풀어 준다. 구원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시 곳곳에서 세속적인 세상을 순례하면서 성스러운 ‘무엇’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런 목적의식을 더욱 명료하게 한다.

-‘어스름이 내리는 강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물소 한 마리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간다…뿔이 긴 소를 타고/ 저 물속으로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면/거기 나를 기다리는 누가 있을까.’ 그러나 시의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는다.

-평론가 신형철 씨는 “스스로 성스럽지 못한 세상에서 스스로 성스럽지 못한 자의 회한과 동경이 그의 시를 낳았다”고 평한다. 이번 시집의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상상의 공간에만 머물러 있던 시인이 세상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다녀 보지만, 어디든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타락한 도시다. 생존경쟁의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시 ‘문 밖에서’의 한 부분.

-‘나는 아주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에 살았다…즐비한 술집 앞엔 매일 얼어 죽은 시체가 발견되곤 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일 년 내내 기침을 해댔고/ 검은 안개 속을 허우적거리듯 걸어다녔다/ 거리의 검투사들은 찌르고 찔리며 환호 속에 죽어갔다.’(김지영 기자)

(*)기형도의 '안개'에는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란 구절이 나온다. 거기에 비하면 "즐비한 술짚 앞엔 매일 얼어 죽은 시체가 발견된곤 했다"는 구절은 관념 혹은 상징이다. 그 상징의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나는 그것이 남진우 시의 매혹이면서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일보(06. 08. 13) 남진우 시의 본적은 묘지다. 때때로 책들의 무덤인 도서관이나 우물, 항아리 속으로 주거를 옮기기도 하지만, 파묻히는 곳이 아니면 가지 않는 그의 시는 한 번도 제 주소를 죽음이라는 본적지에서 전출한 적이 없다(*좋은 지적이다. 문학담당 기자라면 이런 정도의 지적은 해줘야 한다). 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인 남진우 씨가 네 번째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타오르는 책> 이후 6년 만이다.

-사자, 여우, 개, 호랑이, 악어떼, 벌, 전갈, 낙타 등이 끊임없이 출몰하며 ‘동물의 왕국’을 이루는 이번 시집에서 화자는 번제에 바쳐진 제물처럼 물어 뜯기고 찢긴다(*'사자'는 이 '왕국'의 왕이자 왕족/귀족이다). “한껏 아가리를 벌린 호랑이는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고” (‘먼 산 먼 길’), “책을 펼치면 전갈에 발뒤꿈치를 물린 채 낙타 등 위에 혼곤히 엎드린 내가 보인다” (‘전갈에 물리다).

-그러나 시인은 목 잘린 얼굴, 피눈물을 흘리는 깊게 파인 눈구멍, 절단된 사지가 나뒹구는 이 그로테스크한 세속 도시에서 순교를 앞둔 사도처럼 묵묵하기만 하다. 그가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라고 쓸 때, “밤이면 밤마다 죽은 여인이 다가와/ 네 튼튼한 심장을 먹고 싶다, 조금만 다오 말했네// 두 팔에 안긴 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내 심장을 먹어가며/ 죽은 여인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쓸 때, 시인은 아픈 몸을 내주며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똑딱거리는 심장이 그마저 멈출 날을 기다릴 뿐”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추적자가 문을 두드리는 이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에 “방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문 밖에서’)고, “내 인생에 더 이상 반전은 없다” (‘나는 흑색 소설만 읽는다’)는 것을 익히 아는 탓이다.

-이 시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성(聖)을 향한 귀족주의는 ‘새벽 세 시…’에서도 여전하다. 세속 도시를 떠나 앙코르와트로, 반얀트리 밑으로, 카타콤으로 순례의 행보를 내디뎌 보지만, “순례자 대신 장사치와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 영혼의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자들이 비좁은 계단 사이 어깨를 부딪치며/ 값싼 지폐와 시성을 교환하기 위해 오”가는 이곳에서 그의 시는 홀로 성스럽고자 하는 자의 고독으로 울울할 뿐이다.(‘몽생미셸’)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선지자조차 지쳐 떨어진 밤/ 길가 하수구는 붕글어 터지는 말의 거품들로 가득”하고 (‘겨울일기’), 그는 다만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라던 기형도의 '켤레시인'답게 읊조릴 뿐이다. “흑색 소설을 읽으며 오늘도 나는 확인한다, 모든 길 끝엔 파헤쳐진 무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흑색 소설만을 읽는다’)(박선영 기자)

문화일보(06. 08. 11) 남진우(46)씨의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마리>는 한밤에 깨어있는 새벽에 깨어있는 예술가의 고독이 구원을 지향하는 순례자의 언어로 푸른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세속 도시의 타락에 대한 절망을 겉에 묻히고 있 다. 이 때문에 속에 배인 푸른 기운의 유열을 맛보기 위해선 시 인이 구축한 언어의 수도원, 혹은 사원에서 참을성 있게 순례자 의 기도를 들어야 한다. 이런 인내가 오늘날의 시독자들에게 얼마나 있을까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세상의 허무와 맞대응하며 먼 곳의 신성(神性)을 열망하는 시세계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드문, 독자적인 영역의 신비로움으로 읽는 이를 매혹한다 .

-1부의 시편들은 여우, 개, 사자, 반달곰, 호랑이 등의 동물들이 나타나 시의 화자가 세속도시에서 느끼는 절망과 갈증을 확장한 다.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 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쳐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 ’(표제작 중)

-2부의 작품들은 ‘아주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문밖에서’ 중)에서 삶 자체가 곧 죽음인 모습을 어두운 배경에서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앙코르와트와 인도의 사원 등을 순례한 후에 씌어진 3부의 시편들은 성소(聖所)를 잃어버린 자의 비애를 노 래하고 있다.

-‘저녁이 머뭇대며 내 주위를 에워싸기까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내게 다가오는 숲 그림자/ 나는 어 느덧 온몸을 휘감아 오르는 나뭇가지 푸르름에 휩싸여/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사원이 된다’(‘오래된 사원’ 중).

-숲으로 된 푸른 성벽의 이미지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남씨가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세계를 평하는 글에서 등장한 바 있다. “기형도의 시는 우리 세계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아름답고 신비 로운 성(城)을 찾아가는 언어의 순례이자 그 성을 은폐하고 그 성을 향해 가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는 현실에 대한 강 력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씨는 문우인 요절시인 기형도가 생전에 가다가 멈춰버린, ‘숲으로 된 푸른 성벽’ 너머의 신성을 찾아 순례자의 길을 고독하 게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장재선 기자)

06. 08. 12.

 

 

 

 

P.S. 표제시의 '사자'는 '사자(死者)'이기도 하다는 리뷰도 읽었는데, 일리있는 견해이다. 한편으로 지적하자면, 한국시에서 '사자'는 비교적 드물게 등장하는 동물이다. 우리시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동물 중의 하나는 '낙타'인데, 개인적으로 '낙타'가 등장하는 시들의 대부분은 그냥 '포즈'라고 생각한다. '열사(熱沙)의 사막' 운운하는 시들이 대개 자기연민적 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이러한 시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이

김천의료원 6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로 시작하는, 문태준의 '가재미' 같은 시이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 이게 리얼리티의 척도이다. '초원의 사자'나 '사막의 낙타' 같은 시적 언술들이 얼마큼 멀리갔는가를 가늠해주는. 최근 우리시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대표종을 꼽자면 가재미(=현실적 서정주의)와 낙타(=전통적 정신주의)와 사자(=초월적 귀족주의)와 고슴도치(=전위적 미래주의) 정도이다(그러고 보니 '동물의 왕국'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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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신간이 출간됐다.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이 그것인데, 아직 실물은 보지 못하고 '새로나온 책'에서 책소개만을 읽었다. 다행히도 한국일보에 자세한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박이문 선생과 함께) 정명환 선생에게서 나는 (대학시절의 영웅이었던) 사르트르의 문학론과 철학에 대해 배웠다. 그러니 내가 알고 이해하는 사르트르는 그 두 사람의 사르트르이기도 하다. 이 원로 학자의 노작은 그 듬직한 무게와 은은한 성찰의 향기로 이번에도 우리를 격려하고 매혹시켜줄 듯하다.

-전화 통화에서 저자는, 불을 뿜는 베수비오 화산으로 교대근무를 떠나며 ‘이것이 나의 명예’라고 말했다는 한 로마 병사의 ‘의연한 체념’을 이야기했다. “그 정신이야말로 물화ㆍ속화해야만 살 수 있는 이 현실 속의 사회적 자아와, 인간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찾아가는 내면의 자아를 함께 지탱하는 힘의 바탕일 것”이라 말했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의 위기와 인간… '체념과 희망' 자아의 모순을 견뎌라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77ㆍ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선생의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은, 그 자체로 한국 인문학이 도달한 아득한 성취라 해도 좋을 것이다. 책 속에 녹여낸 지식(철학과 문학)의 폭과 깊이 때문이 아니라 그 지식을 저민 문장의 격조가 그렇다는 것이고, 단아하고 지적인 문장을 통해 은근히 드러내는 높고 원숙한 정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물질문명의 악력과 거기 묶여 신음하는 인간 정신에 대한 ‘의연한 체념’(현실주의자의 소극적 체념이 아닌)과, '가냘픈 희망'(관념주의자의 이상론이나 당위론이 아닌)의 방법론을 전한다. 그 논의의 출발점이자 토대라 할 현대 위기의 실체를 그는 노동의 현실에서 찾으며 생텍쥐페리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파일럿이었던 생텍쥐페리는 1920년대 항공기 조종은 “엄청난 장애물과 대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성을 발견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대지>를 출간하던 39년의 그는 이미 실험실에 갇혀버렸다고 자탄한다. “이제 바늘의 움직임에 복종하는 것이지 천지의 변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21세기의 기계화ㆍ획일화의 노동 현실에서 “창조, 인간의 존엄성, 연대의식, 죽음의 의미, 자연과 투쟁과 교감 따위의 가치”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저자는, 이 로봇 테크놀러지의 시대가 여가마저 노동의 논리 속에 포섭해, “여가가 노동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지 않도록” 강제한다고 썼다. 현대인의 여가의 공통성은 “수동성에 의해서건(TV연속극을 보는 경우), 열광에 의해서건(가령 광란적 음악 속에 빠져드는 경우) 간에,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을 소거하는 데 있다.”(22쪽)

-이 현실에서 예술이 존중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술은 지배 계급의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인간소외에 항거하는 초월과 새로운 시각과 이의제기를 그 본질적 기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28쪽) 그는 이 아이러니의 참혹한 현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핀다.

-경제적ㆍ기술적ㆍ문화적 세계화와 동질화(미국화), 기능적 언어의 위세 앞에 왜소해져 가는 예술적 언어의 고뇌, 진실을 둘러싼 철학과 문학의 알력 등…. 그러면서 그는 개인ㆍ국가의 생존전략, 곧 기계화한 노동 메커니즘의 수용이나 세계화 추세에의 편승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수긍한다. 요컨대 ‘의연한 체념’이다.

-하지만 그는 체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그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응시하면서, 반성하는 주체적 자아ㆍ내면의 자아를 지켜나가자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이중적 자아를 지니자고 고언한다. 그 모순의 상황을 견디고, 그 위에서 희망을 찾자고, 그 힘든 삶에 문학이 힘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저자의 전언 자체보다, 당대의 사상가와 작가들을 비평적으로 살피면서 그 전언을 끌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우람한 노 학자는 절망의 현실 앞에서도 의연하고, 실낱 같은 희망 앞에서도 여유롭다. 문장의 힘이고 인문학과 인문학 정신의 힘이며, 문학의 힘이다.(최윤필 기자)

 

 

 

 

06. 08. 12.

P.S.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태놓는다.

경향신문(06. 08. 19) “이미 주체성 상실 의연한 체념 필요”

-“현대인은 공적 자아(public self)와 사적 자아(private self)라는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순을 지니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 전 가톨릭대 교수(77)는 최근 펴낸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에서 현대 사회와 인간의 위기를 진단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보기에 “1980년 전후로부터 전개된 현실은 르네상스 이후로 처음 경험하게 된 대격변”이다. 그는 “이성의 힘과 인간의 주체성, 그리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직화·기계화되면서 주체성을 상실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다스리려면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것. “길을 가다가 가만히 서서 왜 가는지 생각하다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게 짓밟힙니다. 자신에게 소외되지 않으려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소외되는 모순이 생겨요.”

-그러나 그는 현대 사회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생의 여건인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 여기서 그는 ‘의연한 체념’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하지만 시지프스처럼 돌을 산꼭대기에 밀어올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건지 모르지만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이는 책에 제시되고 있는 인문학자의 네 가지 태도, 즉 ‘자진적 고립’ ‘환상 없는 도덕적 관심’ ‘역사적 내기’ ‘제한된 참여’에 가닿는다. 노(老)학자는 노동과 여가의 관계에서도 현대의 위기를 읽어낸다. 옛 사람들에게 ‘주경(晝耕)’과 ‘야독(夜讀)’은 연속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과 여가를 통한 자아 회복은 모순된다. 여가는 “인간의 기계적 조작과 소외에 이바지하도록 소비”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은 없다. “요즈음은 모두 즉각적이고 짜릿한 걸 원하고 생각하길 귀찮아 합니다.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은 농담이 됐어요.”

-오늘날 대학 사회에 ‘변종’이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사회의 관례에 발맞추고 시류를 타려고”하고 “모두 규격화(Standardize)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비이성적입니다. 이성으로 갈 때까지 가보지 않고 처음부터 비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세계를 향해 닫으려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E.H. 카는 훌륭한 사회는 자전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려면 반대쪽으로 움직여 균형을 잡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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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미술분야의 신간으로 <추상표현주의>(열화당, 2006)이 출간되었길래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 <아르테 포베라>까지 출간됨으로써 열화당이 간행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완간되었다. '도구상자'란 표현을 이전 페이퍼에서 썼지만 이 총서야말로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조감하기 위한 '도구상자'로서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내가 몇 권이나 갖고 있나?).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8. 10) 20C 미술사조 쉽게 풀이…현대미술운동총서 완간

-인상파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럽 미술은 시대마다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났다. 르네상스가 끝난 뒤에는 바로크가, 바로크에 대한 반동으로 로코코 양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인상파가 등장한 이후 몇 세기 동안 지속되던 양식의 시대는 가고 ‘~주의’로 불리는 미술운동이 등장했다. 각종 미술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현대미술의 층위는 다양해지고 이론적으로도 견고해졌다.

 

 

 



-2003년 말 열화당과 영국 현대미술의 본산인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공동으로 기획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최근 <추상표현주의>와 <아르테 포베라>가 출간되면서 모두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의 현대미술 운동 중 주요 사조를 선별해 각 미술운동의 배경과 출현, 주요 개념과 사상, 전개 과정, 이후에 끼친 영향까지 서술한 대중적인 미술 이론서다.

 

 

 



-다양한 미술운동 가운데 리얼리즘,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요 운동으로 뽑았고 20세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모더니즘과 추상미술 편을 따로 뒀다.

-이번에 출간된 <추상표현주의>는 당시 미국 미술가들의 유럽 작가들에 대한 경쟁 심리, 미국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등을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분석해 나간다. <아르테 포베라>는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성을 탐구하면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르테 포베라를 소개하는 개론서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미술운동총서 '어려운 현대미술 쉽게 술술'

-현대미술은 어렵다. 고전미술이나 르네상스 등 ‘양식’으로 구분되는 미술보다 100배쯤 어렵고, 낭만파나 인상파 등 ‘경향’으로 나뉘는 미술보다는 10배쯤 어렵다. 인상파 이후의 현대미술은 미학적으로 ‘운동’의 형식ㆍ내용으로 나뉜다. 그 작품들은 대체로 정치 사회 문화의 특정 맥락과 어깨를 겯거나 배척하면서 자기 진영의 가치관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즘’은 문화 엘리트들의 배타적 미학의 성을 구축하고, 또 어떤 것들은 ‘저급한’ 대중문화와 키치를 캔버스 전면에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 넓은 현대미술 운동의 스펙트럼과 그 각각의 색깔을 구성하는 개개 작품의 언어들을 대중이 알기 쉽게 정리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추상표현주의’ ‘아르테 포베라’의 2권을 보태면서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20세기 미술운동총서’(전30권)를 출간했던 열화당이 유럽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와 공동 기획한, 각권 70쪽 내외의 압축적인 현대미술 안내서다. 전문가들이 현대미술을 14개의 주제(개념)로 분류, 각 진영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현대미술사의 어떤 맥락에서 태동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설명한다.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마지막 권 <아르테 포베라>는 이 미술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는 첫 이론서다. 책은 1967년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광고 포스터 같은 2개의 작품 ‘마니페스토’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이 계열의 작품들이 어떻게 이름을 얻고 미술 오브제의 해방 운동, 나아가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으며, 궁극적으로 미술 상업주의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여러 작품 도판과 함께 설명한다. 책은 이들 유파의 작가들을 인터뷰해 그들 자신이 미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들려주고 이들 작품에 대한 다양한 비평적 시각도 소개한다.

06.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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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6-08-1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시리즈 역시 문제는 '번역'입니다. 책을 다 보진 못했지만, '개념미술'은 그야말로 오역의 범벅입니다. 역자는 아마도 이름만 빌려준 듯 합니다.

로쟈 2006-08-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쪽도 개념 없는 번역들이 대세인 모양이군요...

주니다 2006-08-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하나 책의 번역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서는 책들을 안 읽는다고 봐야되는 것인지... 그 많은 미대생들은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6-08-1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의 전집이 타계 5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 2006). 오늘자 한겨례의 관련기사들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한국일보의 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08. 12) 센티멘털한 '댄대 보이'는 어데로 갔나 "박인환의 재발견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56)의 문학 전집이 발간됐다. 근현대사 자료 수집가인 문승욱 씨가 타계 50주년을 맞는 시인의 생일(8월 15일)에 맞춰 묶어낸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기존에 출판된 선집 등에는 한 번도 수록된 적 없는 ‘재발굴시’ 7편과 산문 41편이 더해진, 명실상부한 첫 전집이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인환(1926~1956)은 김수영과 함께 1950년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수려한 외모와 낭만적 시풍으로 ‘명동백작’, ‘댄디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과도한 감상과 허영의 포즈로 인해 김수영의 그늘에 가려진 채 문학사의 괄시를 받아 왔다. 대중의 사랑과 문단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제대로 된 전집 하나 갖지 못 한 시인의 불운은 문우 김수영마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고 경멸했던, 그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에 기인한다.

-이번에 발간된 전집에는 시 80편, 산문 70편 등 총 150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특히 새로 발간된 전집에는 ‘언덕’, ‘1950년의 만가’, ‘봄은 왔노라’, ‘봄 이야기’, ‘주말’, ‘3ㆍ1절의 노래’, ‘인제’ 등 시 7편과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산문 44편 을 포함, 기존 선집 등에 수록된 적 없는 작품이 새로 발굴ㆍ수록됐다. 1986년 문학세계사에서 <박인환 전집>이 나온 적 있지만 그것은 시를 위주로 해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사실상 선집의 형태였다(*내가 읽었던 전집이 이 문학세계사판이었던 것으로 기덕된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의 평전이 아주 유익했던).

-전집은 무엇보다도 ‘감상적 댄디’의 이미지로 점철된 박인환에 대해 균형 잡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비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그의 시 몇 편과 영화 비평 등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철 없는 댄디에서 ‘다면적 문화 비평가이자 문명 비평가’로 그의 위상을 새로이 교정하게 한다(*철없는 댄디의 이면에 다면적 문명비평가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댄디즘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이해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새로 발견, 정리된 시와 산문들의 총목록에 비춰 보면 박인환에 대한 기존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며 “비평적 성격이 강한 일련의 글들과 칼럼 및 잡문 등에 이르는 그의 글쓰기의 다채로움은 김수영이라는 이름에 의해 쉽게 가리어질 수 없는 산문가 박인환의 넓이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새로 발견/수록된 박인환의 산문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포즈와 겉멋으로서의 '문명비판' 혹은 '자본주의 비판'도 당시에는 유행이지 않았나?).

-흥미롭게도, 이번 전집을 묶는 과정에서 시 ‘센티멘탈 저니’(1954년 월간 ‘신태양’)에 붙어 있던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사가 1년 뒤 출간된 박인환의 ‘선시집’에선 종적을 감춘 사실도 확인됐다. 자신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김수영과 끝내 문우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박인환의 속내가 읽히는 50년대 문단의 한 풍경이다(*박인환이냐, 김수영이냐?). 

<1950년대의 만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아 행복에서 차단된
지폐처럼 더럽힌 여름의 호반
석양처럼 타올랐던 나의 욕망과
예절 있는 숙녀들은 어데로 갔나
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간다
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
나는 죽어간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年代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1950년 5월 16일, 경향신문)

한겨레(06. 08. 11) ‘시인은 가도 작품은 남는 것’ 박인환 전집 처음 나왔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의 시와 산문을 한데 모은 전집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책 수집가 문승묵(50)씨가 엮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이 그것이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에 태어나 서른 살인 56년 3월 20일에 타계한 시인. 올해는 그의 탄생 80돌이자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의 대중적 인기와 그가 차지하는 문단사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박인환 전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86년에 <박인환 전집>(문학세계사)이라는 이름의 책이 나왔지만 시를 위주로 하고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선집’ 성격의 책이었다.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76)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 - 박인환>(문학사상사, 2005) 등 박인환의 작품집으로 간행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 80편과 산문 67편이 수습된 이번 전집에서는 기존의 책들에는 묶이지 않은 ‘발굴성’ 시 7편이 더해졌으며, 산문도 40여 편이 새 얼굴이다. 미확인 작품을 최소화한 명실상부한 ‘전집’이 출현하면서 박인환의 문학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평가가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박인환은 포즈와 엄살로 무장한 ‘감상적 댄디’ 정도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시 두 편이 그런 선입견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그의 현실 비판 및 반제국주의적 시편들을 근거로 그를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논의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미군정기에 씌어진 <인천항>과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등에서 들리는 반제국주의적 목소리, 그리고 <자본가에게>와 같은 시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박인환의 ‘낯선’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이전 시집들에도 실려 있던 시편들 아닌가?).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인천항> 부분)

“나는 너희들의 마니페스토의 결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모든 자본이 붕괴한 다음/ 태풍처럼 너희들을 휩쓸어갈/ 위험성이/ 태풍처럼 가까워진다는 것도”(시 <자본가에게> 부분)

-새롭게 발굴되어 이번 전집에 처음으로 실린 시들 중에서는 <1950년의 만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쟁이 터지기 불과 한 달여 전인 1950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고 하여 마치 미구에 닥쳐올 동란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하다(*하지만 그러한 '예견'이전에 수준이 좀 떨어지는 시 아닌가?).

-한편 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는 전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10여 편의 문학평론과 20편이 넘는 영화평론, 기타 연극 및 사진평론 분야 글의 분량과 수준에 주목하면서 평론가로서의 박인환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08. 11.

P.S. 우리 시문학의 유산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도 전집 출간은 의미있는 것이지만, '박인환의 재발견' 운운은 다소 호들갑스러워 보인다. '감상적 댄디'란 이미지를 각인시켜준 시편들이 사실 박인환의 가장 좋은 작품들이다. 시상의 전개가 빈약하지만 부분적으론 절창이며 또 가장 박인환다운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프로파간다의 언어로 씌어진 '문명비판'(이 또한 댄디적 요소이다) 가지고 '재발견'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같은 시구는 그냥 아마추어리즘에 속한다. 그러니 "그는 비록 감상적이고 댄디적인 시들도 썼지만-"이 아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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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08-11 20:1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마지막 덧붙임에 공감...공감...

시에는 무뇌한^^이지만 "목마와 숙녀" "마로니에" 등은 사춘기 소녀시절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 등등에서 접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댄디즘이니 센티멘털리즘이니...뭐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목마와 숙녀는...뭔가 이국적이고 신비스럽고...거의 초현실적인 어떤 세계로 인도해줄것같은 설레임을 주는 시인듯...

문학비평은 제게는 시보다도 더 낯선 세계인데...로쟈님 글을 보니...상당히 경직되어있는 세계인듯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압권입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로쟈 2006-08-11 23:40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가장 옷 잘 입고 미남이었던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 아닐까요? 거기에 무슨 '의식있는' 시인이었다고 포장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들이 작가의 초상에 간혹 개칠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여 불평해 보았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31>(아트북스, 2006)를 어제 받았다. 며칠 전에 내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원서는 1992년에 나온 1판으로 2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2개의 비평용어에 대한 에세이들이 묶여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대로 국역본은 거기에 9개 장이 증보된 2판을 번역한 것이다.

 

 

 

 

국역본 출간소식을 접하고 바로 원서 2판을 아마존에 주문할까 했었지만 번역상태가 의외로 양호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핑계로 미루었었다(도서관에는 2판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본문만 700쪽이 넘는 국역본은 겉보기에 꽤 듬직해보였지만, 몇 쪽 읽어본 바로는 역시나 원서와 대조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준이란 느낌이다(내가 읽어본 몇 권의 미술이론서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번역이 우리 실정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번역'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의 경우 미술(사)학 전공자들이 여럿 참여한 공동번역인 만큼 이러한 판단이 무리한 일반화일 수도 있다(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책의 2장 '기호'의 몇 쪽을 들춰보는 정도로 책에 대한 '감식'을 대신하겠다.

이 책에서 '기호'란 말이 뜻하는 것은 물론 '기호로서의 미술작품' 내지는 '기호로서의 오브제'이다. 미술작품은 그냥 '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로서 작동/기능한다는 게 기본전제이다: "우리가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는 문화적인 전통에 의해 성립될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그것에 의해 기능하게 된다. 달리 말해 미술작품은 기호와 같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54쪽) 여기서 '문화적 전통'은 'cultural convention'을 옮긴 것인데, '문화적 관습'이라고 옮기는 게 상식적이다. 여하튼, 작품의 의미는 '물리적 대상' 자체로부터 우리에게 자발적/직접적으로 현시되는 게 아니라 어떤 관습 혹은 코드에 의해 간접적으로 매개된다. 마치 언어처럼.

이 장의 필자인 알렉스 포츠(Alex Potts)는 그러한 기호성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소쉬르와 퍼스라는 두 가지 기호학 이론/모델 가운데 퍼스의 것을 택하겠노라고 말한다. 왜? "기호에 관한 근대이론의 두 가지 기초 모델 중 퍼스의 이론은 특히, 시각미술작품이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되는 방식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모순을 조명하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그것이 기호에 관한 수많은 근대적인 이해에 만연하고 있는 평이한 인습주의와 반사실주의의 특성에 반하기 때문이다."(55쪽)

대충대충 읽고자 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인데 핀트가 조금씩 안 맞는 것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원문은 이렇다: "Of the two founding models of the modern theory of signs, Peirce's is particularly illuminating about the discrepancies in our present-day understandings of how works of visual art come to mean something, largely because it goes against the grain of the often easy conventionalism and antirealism that pervade much modern understanding of the sign."(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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