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스펠마이어의 <인문학의 즐거움>(휴먼앤북스, 2008)이 출간됐다(부제는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이고 실상은 "현재의 인문학이 반드시 변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책).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명예교수인 피에르 아도(아래 사진)의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이레, 2008)와 함께 이번주에 출간된 예기치 않은, 하지만 보석 같은 책이다(잘 씌어졌고, 잘 옮겨졌다). 짧은 리뷰들을 읽었지만 역시나 리뷰만 보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손에 들어봐야 한다. 아주 오랜만에 '월척'을 낚은 듯하다(실제 낚시는 별로 해본 적도 없건만). 원서들도 곧 손에 넣을 예정이다. 조만간 읽을 책들의 목록을 뽑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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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즐거움-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
커트 스펠마이어 지음, 정연희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8년 04월 05일에 저장
절판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08년 04월 05일에 저장
구판절판
What Is Ancient Philosophy? (Paperback)
Pierre Hadot / Belknap Pr / 2004년 3월
55,870원 → 41,900원(25%할인) / 마일리지 42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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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 고전과 역사 속의 여성 주체들, 역사도서관 007
한정숙 지음 / 길(도서출판) / 2008년 3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04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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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서 '대담비평'이란 특이한 형식의 리뷰를 옮겨온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6). 대상이 된 책은 김윤식 교수의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이고 대담자는 방민호, 임영봉 두 국문학 교수이다(책에 대한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904342 참조). '문학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백철’이라는 문학제도의 이중성'이란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교수신문(08. 03. 31) '백철’이라는 문학제도의 이중성과 ‘10년의 글쓰기’

임영봉 교수(이하 임): 머리말에서 김윤식 선생님은 이 책을 내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언급을 하고 있어요. 백철의 경우, 그동안 연구대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과 부분적인 논의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백철의 전생애를 대상으로 삼아 ‘전체상’을 복원한 이 책의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방민호 교수(이하 방): 전체가 684쪽에 이르는 상당히 두꺼운 책입니다. 1936년생이시니까 고희를 훌쩍 넘긴 연세에 이런 대작을 출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이입니다. 거기에는 그분 특유의 매일 글쓰기, 매일 원고지를 매워나가는 근면함과 성실성, 자료를 찾아나가는 집요한 의지 같은 게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 제 생각으로는 백철이란 존재는 김 선생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전에 제가 <교수신문>에 김윤식 선생님의 연구방법론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선배들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할 후학의 입장에서 김윤식 선생님의 문학사 연구에서 문제시되는 부분을 거론하면서 백철에 대한 논의방식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은 김 선생님의 백철에 대한 시각, ‘뿌리없는 지식인’이라는 판단이었죠. 물론 그런 판단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주장이 근거 있는 설명과 이해의 결과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그런 판단은 선생님의 의도와 무관하게 백철에 관한 선입견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김윤식 선생님도 아마도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고 부채라고 해야 하나, 미진함 같은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부채의식이 이 책을 내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방: 김윤식 선생님은 크게 두 가지로 백철을 조명하신 것 같아요. 하나는 문학평론가로서 백철, 또 하나는 문학이론가로서 백철, 이렇게 두 가지로 딱 갈라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방전에는 문학평론가로서의 백철, 해방 이후에는 문학연구가, 이론가로서의 백철, 이렇게 언급하신 것 같아요. 비평가와 교수, 이렇게 나눠서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 일관돼 있죠. 백철의 비평정신이 뭐냐 이렇게 물었을때, 그의 정신이란, 끊임없는 개방성, ‘웰컴주의’다. 뭐가 들어와도 다 받아들이는 대수용으로서의 비평정신이라고 규정하신 것 같아요.

평론가였을때 마르크시즘도 받아들이지만, 대일협력기에는 대동아공영 수용하고, 해방후에는 뉴크리티시즘 수용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내가 백철을 연구해야 할까, 자문하셨게죠. 연구를 해야만 한다면, 연구의 당위성 같은 것이 있어야겠죠. 두 가지 아니었을까요. 제 생각입니다만, 그 하나가 아비찾기. 아버지 찾기란 뭐냐? 김윤식 선생님에겐 어떤, 나름대로의 계보학이 있는 것 같아요. 김윤식 교수에게 이르는 계보학 말입니다.

제가 볼 때, 김윤식 앞에 이어령이 있습니다. 이어령 앞에 백철, 백철 앞엔? 앞이라고할건 없지만, 임화가 있죠. 그런데 그 나름대로의 계보학적 구성을 위해서 백철을 연구한 거죠. 백철이 없으면 안되겠다, 임화 연구는 일찍 했잖습니까.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구요. 그럼에도 왜 백철이 필요했을까요. 이어령을 거쳐 자신에게 이르는, 서구 보편주의, 개방주의, 서구의 모든 것을 수용해내는 성향을 설명하기가 불충분했기에 말이죠. 백철이라는 매개항을 설정하지 않으면, 서구 개방주의, 서구 것을 수요하는, 끊임없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어떤 성향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 아닐까요? 서구를 향해 모든 것을 열어제치는, 당신의 체질, 이어령과 김윤식으로 이어져온 비평의 어떤 성향을 설명해내기 위해서는, 그 앞에 백철을 둬야만,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지 않을까. 자기 비평정신의 아비찾기라는 의도가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비 찾기에 나선 자신이 한국근대문학연구라는 하나의 문학장을 개척하고 만들어 온 분인데, 도대체 지금 한국현대문학 연구, 한국사회에서 한국문학연구라는게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냐라고 했을때, 백철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철이야말로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으로 구성돼 있는 삼분법적인 ‘국어국문학’의 마지막 한 축을 세운 사람 아니겠는가, 그 백철을 이어서 당신 자신이 현대문학연구라는 분과를 스스로 성숙시키는 사람이란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는 아비찾기라면, 또 하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스스로를 중심에 위치시키는, 한국현대문학연구의 중심적 전통으로 만드는 어떤 작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임: 제 생각도 방 교수와 같습니다. 김윤식 교수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백철에 대한 시각과 논의 방식은 이전과는 크게 다른 것인데 일단, 백철이라는 존재의 전모를 염두에 두고 긍정적 측면의 ‘의의’를 읽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백철이라는 대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김 선생님의 고심어린 태도로 느껴졌습니다. 그게 지금 방 교수가 설명한 이 책의 내용 그 자체인거죠. 이 책에서 비로소 백철이라는 존재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 그러니까 우리 비평사의 중요한 전통 중 하나로 검토되면서 고유한 의미를 얻고 있습니다. 실은, 분단이후 남한 비평사를 문제 삼는다면 백철을 제외할 때 온전한 설명은 불가능해집니다. 김윤식 선생은 오랫동안 미뤄뒀던 작업을 한 셈이죠. 그의 이번 작업에 어떤 내적 동기가 작용했고 관점의 달라짐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백철의 전모를 복원한 이 책을 통해, 해방 이후 우리 비평사의 연속성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방: 저는 일제말기에서 해방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적인 비평가가 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철도 최재서도 문제적이었지만, 모두 1908년생이지만, 저는 임화와 김기림을 중요하게 이해해요.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달랐겠죠. 일제말기에 임화,김기림 둘다 자기 자신을 지켰죠. 임화는 자신을 지키면서 했던 일이, ‘조선개설신문학사’를 연재 집필했어요. 김기림은 뭐했냐 하면, 문학사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대동아주의라든지, 동양의 경사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즉 그게 태평양전쟁의 정신적 거점이었는데, 그걸 비판하면서, 서구 정신의 수혈 없이는 우리 문화가 나아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일제 말기를 견뎌냈단 말이죠. 이 두 입장은 각자 한 방향씩을 맡으면서 일제말기를 견뎌내는 중요한 비평적 지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왔을 때, 임화는 주체성의 길을 따라 북으로 갔고, 김기림은 개방성의 길을 따라 서구정신의 수용이라는 개방성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인 남쪽에 남았습니다.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든말든. 그렇지만 둘 다 전쟁의 와중에 죽었죠. 그러니까 해방이후 중요한 비평적 거점이 상실돼 버린 거죠. 특히 남쪽에서는 무너졌다고 할 수 있어요. 최재서는 대일협력으로 기울었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밖에 없었어요.그러면 누가 있냐, 역할을 한 사람이 백철이었던 거예요. 1940년대후반에는 『조선신문학사조사』를 썼고, 1950~60년대로 나아가서는 뉴크리티시즘을 했단 말이죠.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조선신문학사조사』는 임화의 작업(조선개설신문학사)의 연장판이거든요. 임화가 쓴 조선신문학사의 후속판이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라는 거죠. 백철의 뉴크리티시즘 수용은 뭐냐? 남한 대학의 제도 안으로 비평이론을 수용해 온 것, 그건 김기림 식의 서구지향과 같은 것이죠.



임: 이번 저작에서 김 선생님이 보여주고 있는 백철에 대한 시각과 평가는 이전의 그것과는 달라졌는데 그 핵심은 비평사의 전통, 더 나아가자면 한국 문학사 전반의 흐름 가운데서 비평가 백철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하는 데 놓여 있습니다. 이 점을 강조할 때 이 책의 무게 중심은 해방기에서 전후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백철에 치중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문학개론』으로부터  『조선신문학사조사』를 거쳐 르네 웰렉·오스틴 워렌의 『문학의 이론』의 번역에 이르는 과정에서 백철이 담당했던 역할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죠.

방: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백철이라는 존재는, 제가 앞서 지적했던 부분을 연장하면, 임화, 김기림에서 불행하게 단절된 한국문학비평사의 두 줄기(주체성을 추구하는 줄기, 개방성을 추구하는 줄기)의 계승에서 존재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한국문학사의 전면에 나타난 백철이, 저 단절된 두 줄기 흐름을 신문학사조사와 뉴크리티시즘 소개·수용의 방식으로 계승한 것입니다. 무슨말이냐하면, 임 교수께서 지적했듯, 그 이후의 비평이라는 건, 백철이 건설해 놓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대학에서 비평을 이론으로 배우고, 신비평을 배우는 것, 폐허가 된 나라에서 새로운 문학을 건설할 때, 신문학사조사(비평사), 뉴크리티시즘(이론)이 두 줄기 흐름의 연장선인 거죠. 그러니까, 김윤식 교수가 봤을때, 백철이란 존재는 기묘한 거죠. 앞에서 보면 별 게 없는데, 뒤에서 보면 다르단 말예요. 지금 융성하게 된 한국 현대문학연구라는 것, 대학 학문 분과로서 한국현대문학 연구라는, 학문이란 틀의 씨를 거대하게 뿌려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은 존재니까, 이런 백철을 어떤 식으로든 봐야 한다는 게 김윤식 교수의 생각 아니었을까요.

임: 백철에 대한 김 선생님의 평가에 있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방 교수가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부여를 통해 백철이 비로소 제자리에 서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백철의 삶과 문학 전체를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책 자체는 일종의 작가연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큰 줄기에서 백철의 비평사적, 문학사적 위치는 확고히 자리매김해주셨지만, 이게 어떤 식이든지 ‘연구’라는 형태이고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꼭 이 책만 그런 게 아니라 그동안 해오셨던 이광수, 임화, 염상섭 연구 등이 거의 동일한 방식의, 대상에 대한 접근과 해석 방식을 보여주고 있죠. 그런데 김 선생님이 해오신 작가연구의 경우,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방법이랄까 원리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의 작가연구는 내용의 구성과 서술 방식에 있어 그야말로 자기만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많은 대목에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객관적 시각에 선 연구라기보다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방: 임 교수님 말씀은, 엄밀한 작가연구, 학문적 연구로서 필요충분조건을 충분히 갖추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늘 강조해오셨던 모종의 서사를 제시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자료를 동원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지, 설명과 논증으로 잘 뒷받침되는 그런 학문적 연구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거죠? 이 문제는 뒤에 연구 스타일 문제에서 재론하죠. 저는, 백철에 관한 묘사 등에서 몇가지 쟁점이 추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백철을 가치평가하는 방식입니다. 백철이 왜 훌륭하냐. 왜냐하면, 웰컴주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수용하는 이런 태도가 한국 현대문화사나 문학사의 어떤 운명을 보여준다는 거죠.

임: 그런 판단은 비평사, 더 나아가면 우리 문학사 전반의 조건 자체를 염두에 둔 결과로 볼 수 있겠죠. 이 책에서 백철이라는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 속에서 조명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방: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고 백철의 운명이었다, 결국 그것은 한국근대의 운명이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근대라는 놀라운, 밖에서 들어온 세계,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근대문화나, 근대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까. 그걸 백철이 가장 철저하게,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백철의 긍정성을…

임: 김 선생님은 그것을 ‘순진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긍정하고 있는 거죠.

방: 그렇죠. 그렇게 봤을 때, 그 관점이 쟁점이 될 수 있죠. 정직성, 순진성으로 정리하신 대목이, 과연, 비평가의 또는 작가의 덕목이 될 수 있는가 따져볼 수 있겠죠. 그러한 가치평가가 삭제된 수용방식이 문제가 돼서, 한국현대문학연구의 난맥상이 지금까지 하나의 체질처럼 전개돼 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랬을때, 그런 약점이 될만한 것을 강점으로, 역동적으로 서술한 것에서 하나의 발상 전환을 엿볼 수 있지만, 그 발상 전환은, 저 같은 근대주의자, 근대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문학의 깊이, 내면성에 있다고 보는 연구자들에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경우 내면성은 자기 행위와 선택의 준거점으로서 사유의 깊이를 추구하고, 신중하게 선택하고, 동시에 그것을 글로 쓰고 드러내는 데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가나 비평가가 어떤 인생을 살든, 글을 쓰든,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나아갈 때, 그에 걸맞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학이 심오해질 수 있다는, 근대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보면, 김윤식교수의 이런 발상법 전환은 다소 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지요.



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점을 찾고 극복하기 위한 것인데 방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죠. 김윤식 선생님의 이번 저작은, 전반적인 평가에 있어, 한국 현대문학사 가운데서 비평가 백철의 존재를 인정하고 독자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실상 뚜렷한 비판적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백철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대상입니다. 그런 점을 강조하자면 백철을 바라보는 저자의 근본적 관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 책에서 저자는 백철이 가진 뿌리 없음과 깊이 없음, 시류에 편승하는 저널리즘 감각과 세속주의에 대해 일관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철은 ‘줄 타는 광대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백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일관성을 강조하자면, 이 책에서 김 선생님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논리의 모순이거나 비약적인 측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방: 그러니까, 그게 재밌는 부분이예요. 서문 마지막 단락은 굉장히 재밌습니다. 왜 백철 쓰는 데 오래 걸렸냐? 이 질문에 답해야하는 상황인데, 그것은 저자의 글쓰기의 출발점에 놓인 모종의 자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기 글쓰기의 출발점에 자의식이 놓여 있다, 그 자의식이란 뭐냐? 문학이란 삶에 앞선다는 명제, 문학이 앞선다는 것은 글쓴다는 것, 작품이 삶보다 앞선다는 것이거든요. 그러기에 자신만의 개성적 주체적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원점이자 자의식이었습니다. 이거 버리는데 10년이 걸린 거라는 거죠.

임: 그게 지금까지 백철을 바라보는 김윤식 선생님의 관점이었습니다. 여타의 글쓰기에서도 그러했지만 한국문학 연구라는 분야에 있어서도 김 선생님은 주체의 자리, 연구자의 문제의식을 항상 강조하셨어요. 김윤식 교수의 경우, 그런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연구행위는 거의 없어요. 그의 문제의식에 견줄 때 그동안 백철이라는 대상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미달했다고 볼 수 있겠죠. 방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머리말의 마지막 구절은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백철에 대한 이해 또한 결국은 대상에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백철이라는 흐린 거울이 모종의 계기에 의해 임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 자신을 비추어주는 새로운 거울로 떠오른 셈이죠.

방: 지금 쟁점이랄까, 쟁점될만한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하나 더 지적하기 전에, 이 책의 내용면에서 기존에 해명되지 않았던 새로운 부분이 있는지를 개괄해야 겠지요.

임: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다른 연구자들도 단편적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백철의 이념적 지주가 천도교라는 것입니다. 백철이라는 한 개인의 통일된 의식을 문제 삼을 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죠. 김 선생님은 백철의 정신적 기반을 천도교에 두고, 그것이 비평가 백철의 전생애에 걸쳐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나 또 다른 근대 지향성과는 구별되는 백철만의 삶과 문학에 대한 선택이 그것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판단이죠.

방: 저도 그점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천도교는 근대 한국 종교사상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1920년대 전후, 30년대 와서도 말예요. 그런 흔적들이 이광수에게서도, 카프 계열과의 논쟁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실제로 비평가 개인의 차원에서 천도교라는 문제가 그렇게 잘 드러나거나, 천도교와의 조우, 사상적 거점으로서 천도교 문제를 발견하긴 어려운데, 백철의 정신적 거점을 천도교라는 뿌리와 관련해 설명해나가고, 특히 동경고사 시절까지 천도교 활동이 이어져왔다고 밝혀놓은 부분은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김 선생님은 이 천도교라는 요소로부터 백철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모호성’을 해명해 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몇몇 사례가 있긴 하지만 문인에게 천도교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천도교로부터 백철이 가진 모호한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긴 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김동리의 경우와 비교해 볼 수 있겠죠. 김동리 문학을 뒷받침하고 있는 유불선이라는 사상정서적 요소는 작품과 삶 전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백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천도교 관련 논의는 백철의 의식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맴돌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철과 천도교의 관련성을 비평가로서 그의 글쓰기와 삶 속에서 증명해 보이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방: 그건 비평가로서의 백철의 체질 때문 아닐까요. 이광수는 천도교와 관련된 자기사상의 궤적을 작품 등 어떤 형태의 기록에서든 다종다양하게 남겨 놓고 있거든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상, 기독교든, 천도교든, 다이조 생명주의든, 모두 다양하게 곱씹어서 남겨놓았다는 거죠. 그런데 백철은 그야말로 저널리스트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고, 객관성과 외연성에 치중한다더라도, 자기 내면의 가치로 환원해서 풍부하게 사유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비평가가 아니었습니다. 학생시절까지 천도교가 강한 영향을 미쳤음에도불구하고, 천도교의 제세구민같은 구호는 맑수즈의의 용어로 곧바로 번역돼서 나타나기 때문에, 김 교수께서도 혐의만 두고 주변만 맴돌뿐 딱히 ‘이것이다’ 촌철살인 방식으로 근거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데 까지는 이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임: 백철의 모호한 성격을 염두에 둘 때, 그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기반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후속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하겠죠.

방: 그와 관련해서 백철이 귀국해 처음 주장한 게 농민문학론이었다는 점을 좀더 사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론적으로 딱 근거를 댈 수 없지만, 천도교쪽에서는 노동자든 농민이든, 반상, 남녀, 노소를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아요. 천도교쪽에서는 이렇게 이미 선입견 없이 농민에 접근해 있었던 거죠.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연대 대상으로 농민이 있단 말이죠. 프롤레타리아 해방, 인민해방론에 입각해서 농민이 그 다음으로 나온단 말예요. 노동자문학, 조직의 문제로 나아가지 않고, 백철이 왜 농민문학으로 나아갔느냐는, 알게 모르게 천도교 영향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단 거죠. 노동자를 중시하지 않고도 농민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논의의 주변으로 새어나간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바탕에는 천도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당시 농민문학이 시류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말예요.

임: 그동안의 백철 연구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시점으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있었고, 그래서 백철의 출발점과 도달점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못했던 셈입니다. 김 선생님의 이번 저작은 그 빈틈을 매우는 작업을 함으로써 백철 비평에 대한 전체상을 수립하고 새로운 평가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측면들이 이 책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되겠지요.

방: 덧붙이면, 하나의 작가연구라고 봤을때, 기존의 백철 연구가 충분히 축적해 놓지 못했던 성장, 수학과정, 사상의 형성과정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거죠.

임: 유년기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죠. 그 밖에도 흥미로운 구절은 많은데 백철의 삶의 행로, 특히 일본 유학시절과 북경에서의 환각체험, 네 번의 결혼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죠. 당시 북경의 분위기를 비롯해, 동경고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지식층과 문화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은 당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은 일본어 체험세대인 김윤식 선생님만이 가질 수 있는 당대적 감각 아닐까요? 그것은 저희 세대 연구자들이 갖지 못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죠.



방: 전쟁이후, 백철의 『문학의 이론』 번역 이후 활동을 정리한 부분도 비교적 새롭지 않던가요? 기존 논의에서 언급한 것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집대성하셨더군요.

임: 이 책에서 김윤식 교수가 파악하고 있는 백철의 후반기 삶의 무게는 뉴크리티시즘의 도입에 놓여 있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 대목을 많은 자료와 설명을 곁들여 강조하시고 계신데요, 제가 보기에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역시, 해방 이후 백철 삶의 무게는 바로 그 부분에 걸쳐 있는데, 논의의 폭이 너무 제한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백철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글을 계속 썼어요. 물론 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올수록, 『진리와 현실』 같은 자전적 이야기를 펼쳤죠. 문단 회고담의 중간 중간에 평론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김 선생님이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겠죠. 백철의 후반기 삶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신비평’의 도입까지다, 이렇게 판단을 하신 거죠. 김 선생님의 이번 『백철 연구』는 뉴크리티시즘의 도입 과정과  『문학의 이론』에 대한 번역의 시점을 백철의 도달점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방: 사실 그런 것과 관련해서, 이 저술이 갖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은데요. 전반적으로 백철이라는 대상을, 생애와 문학을 완성해보겠다는 의지와, 그 안에 이광수, 임화 연구 등등에서 보여줬던, 당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나, 풍경 이런 것을 한 개인의 삶과 관련해서 응집해 보여주겠다는 똑같은 의도를 갖고 시작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연로하시게 돼 그런지, 조금 반복적인 요소들이…

임: 그렇죠. 많은 대목에서 같은 이야기가 겹치거나 반복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방: 이전 저작에서 겹치는 부분이 상당수가 눈에 띄고, 논의가 이 단계에서는 좀 더 심화됐으면 하는 대목에서 충분히 심화되지 못하는 요소도 없잖아 있습니다. 예를들면, 『조선신문학사조사』나, 뉴크리티시즘 수용의 의미는, 사실 조금 더 심도있는 차원에서 논의될만한 것이고, 임화의 신문학사나, 백철의 사조사와 관련해서 깊이있게 조명할 수 있었을텐데, 호흡이 좀 짧아지신 거 같아요.

임: 앞부분은 유기적으로 상당히 촘촘한데 뒤로 갈수록 서술의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구성이 허술해집니다. 빈틈이 많죠.

방: 그렇죠 빈틈. 잠깐 이 대목에서, 백철 선생의 1960~70년대 글쓰기에 관해 언급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임: 앞서 말했듯이 이 시기의 백철은 자전적 이야기와 문단 회고담 류의 글쓰기를 전개했는데, 김 선생님의 이번 저작 또한 후기에 씌어진 그 글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백철이 썼던 글들은 1970년대의 시점에 서 있는 원로 백철에 의해 파악된 한국 문학사의 풍경이죠. 당시에도 많은 문인들이 있었고, 그 분들 나름대로 당대적 감각으로 한국 문학사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있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백철의 눈으로 봤다는 게 중요한 것이죠. 백철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대 문학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일층 두텁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백철이 남긴 자전적 기록과 회고담들은 전체적으로 다시 정리,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이 책에서 언급되고 비평가로서의 백철의 삶은  『한국문학의 이론』(1964)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비평가로서 백철의 삶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하신 셈인데, 그 부분도 그렇게 마무리될 게 아니라, 이후의 평문까지 검토한 뒤 평가를 내려주는 게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철 연구’라는 제목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 선생님께서 그렇게 많은 작가연구를 해오셨지만, 원자료와 2차 자료 등 관련 서지들에 대한 정리는 거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광수 연구는 예외적입니다만, 이번의 백철 연구에서도 그런 작업들까지 해주셨다면 후학들에게 더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방: 그렇죠. 맞습니다. 저도 해방이후 백철의 작업이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기림이 남쪽에 남아서 한 일이, 문학개론 쓰고, 과학개론 번역하고, 『시와 시론』 같은 책을 냈단 말이죠. 그게 백철이 한 일과 똑같은 거예요, 성격상. 그런가하면, 그 이후에 김동리도, 서정주도, 조연현도, 박목월도 그런 일 많이 했거든요. 일종의 교과서적 편찬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식과 교양을 건설하는 과정이란 말이죠. 이런 디자인을 통해서 한국현대문학의 체질이 형성됐던 겁니다. 적어도, 제도권 대학 안에서 1960~7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거죠. 그렇다면 그게 뭐냐는 거죠. 나라 만들기 시절, 나라의 문학 만들기에 그쳐서는 안되고, 김윤식 선생님이 아직 다 해명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간주하고, 우리가 좀더 해명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런 여러 가지 저술작업들, 한국현대문학사의 새로운 디자인 작업들이 어떤 의미, 갈래를 치면서 한국문학사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전개됐냐는 문제는 검토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진리와 현실』에서 저도 그런 생각 했어요. 김윤식 선생께서도 많이 인용하셨는데, 한국문학연구에서 많이 결락된 부분 중 하나가, 자전·회고와 관련된 평전 연구가 전무하다는 겁니다. 1960~70년대가 되면, 김팔봉, 유진오, 백철, 서정주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씁니다. 이 오토바이오그래피가 한 나라 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연구가 충분히 안 돼 있고, 안 돼 있다보니 비평적 성찰의 시선도 부재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서전 서술, 평전 쓰는 게 견강부회식이 되거나, 사실에 어긋나는 부분을 과장하거나 왜곡해놓고도 부끄럼없이 늘어놓는 경우도 많은 거죠. 그래서 백철의 『진리와 현실』 같은 작업은, 자서전으로서의 성격, 스타일, 그것이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어떤 문학사적 기억을 창출해냈는지 등 1960~70년대와 관련해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죠. 앞으로 우리가 해명해야할 부분입니다.

임: 그런 연구는 다른 작업과 비교한다면 연구자들이 훨씬 즐겁고 흥미롭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겠죠.

방: 제가 더 말씀드렸으면 하는 쟁점은 이른바 등가성론이 이번 백철 연구에도 강하게 나타난난다는 것입니다. 김동리와 견주면서 ‘등가적이다’, 김동리가 말하는 ‘생의 구경적 형식’과 백철의 ‘웰컴주의’가 본질상 같다! 라고 보는 것,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임: 김 선생님은 ‘이퀄’로 보고 있어요. 그러나 본질상 다르다고 하는 게 맞겠죠. 그게 어떻게 보면 김윤식 선생님이 가진 특유의 논법이라고 해야 하나, 관점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어떤 경우에 김 선생님은 대단히 거시적인 시각 위에 서서, 차별성을 삭제해 버립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그런 관점과 접근 방식은 학술적 연구에서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그 기원과 내부적 구조를 추적해보면 그 두 개는 확실히 차이를 가진 무엇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김 선생님은 다분히 주관적이죠. 다른 분들도 느끼시겠지만 김 선생님의 논의는 어떤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반대로 ‘축소’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의 판단은 분명, 객관성의 결여로 볼 수 있습니다.

방: 도대체 근대성의 형식으로서 같다라고 하는 것이, 문학연구에서 중요할까, 백철은 이렇게 다르고, 김동리는 이렇게 다르다고 하는 게 중요할까요. 차이의 철학이야말로 현대철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입니다. 다른 걸 같다고 환원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 아닌가요? ‘같다’라고 놓는 그 순간, 모든 개별성, 차이가 무화되면서 거대 카테고리의 위압 안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 김윤식 선생님의 연구 스타일의 중요 문제점 아닐까요?

임: 김윤식 선생님은 현장비평에서도 탁월하시지만, 가장 높은 고지는 문학사 연구에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문제점은, 거시적 시각과 연속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문학사 연구 자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김 선생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김 선생님이 가진 학자로서의 신념 같은 것 말입니다. 학자로서 김 선생님은 자기 관점 속에서 대상을 바라보면서, 대상을 자기화하거나 아니면 밖으로 밀어내버리는 동일화의 사유와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은 언제나 자각적 의식을 강조하고 계시지만 말입니다.

방: 김윤식 선생님의 강점은, 연구의 구체성에 있습니다. 사실들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확대하는 것 말예요. 그런데 지향점은 동질성, 등가성에 가닿아 있더군요. 저는 백철 연구의 앞부분에서는, 다양한 자료를 풀어나가면서 흥미롭게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강점이고 능력인 반면, 후반부, 모든 것을 근대라는 사상 속에서 등가화하는 것은, 저자의 일종의 욕망, 의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가 취해야 할 부분은, 앞부분에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뒷부분에서도 우리에게, 1970~80년대, 90년대까지만해도, 등가성의 원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등가성에 기반하되, 이질성을 포섭하는 쪽으로 우리가 매진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임: 방 교수가 말씀하신 우리의 과제에는 김윤식 선생을 포함한 앞세대의 글쓰기와 학문적 성취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문제도 포함될 것입니다. 전후세대와 60년대 세대가 남긴 유산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생각하기에 따라, 그 높이는 우리가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생산적으로 가져올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에는 김윤식, 김현 같은 글쓰기와 연구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국문학 연구의 후속세대, 오늘날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일단, 그런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앞세대들은 말 그대로 ‘화전민’을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갈아엎기를 기다리는 미개지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세대들입니다. 앞세대가 가질 수 있었던 행운 중의 하나는 제도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지금의 연구자들은 학진으로 대변되는 제도에 점점 종속되고 있습니다. 『백철 연구』처럼 10년 동안, 연구의 대상을 마음에 담아두고 작업을 해나가는 일은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게 맞겠죠.

방: 한국문학은 연구도 그렇지만, 청년성을 면치 못하는 면이 있어요. 맨바닥에서 시작하면 항상 청년이예요. 자기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사고하는 한, 김윤식 교수와 같은 체계화 작업을 하기 어려워요.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에 눈을 뜨고, 자기에게 축적돼온 과거를 검토하지 않는 한, 청년문학, 청년문학연구로, 청년적인 상태에서 멈추겠죠. 그것은 한국현대문학연구가, 창작이나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에 턱없이 민감하고, 동시에 자기의 과거와 익숙한 것들을 충분히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시선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죠. 반성적 성찰이란 것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청년은 윗세대를 비판적으로 보려는 걸 좋아해요. 그렇지만 비판적으로만 보았을때 충분한 사유는 생성되지 않죠. 비판하는 시선은 앞면에서만 보기 때문에 전체를 꿰뚫어볼 수 없어요. 성찰은 뒷면을 보는, 전체적 사고가 필요해요. 이런 전체적 사고가 부족할 때, 체계화, 전통의 현대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죠. 우리 현대문학연구는 아직 이 과제에 매달려 있는 거죠. 전쟁도, 이념대립 환경도 벗어났는데, 현대문학연구 체질이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반성해야할 대목이 아닐까요?

임: 김윤식 선생의 다음 작업은 어떤 것이 될까요?

방: 글쎄, 생명과의 싸움 아닐까요?

임: 선생님이 그동안 해오신 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진도를 떠올릴 때, 특히 이번 『백철 연구』를 염두에 둔다면, 다음 작가연구의 주인공은 ‘비평가 조연현’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김교수님이 지녔던 장점들을 계승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됐지만, 후학들의 노력이 더 요구되는 시점입니다.(녹취·정리= 최익현 편집국장)

08. 04. 04.

P.S. 사실 요즘엔 읽을 책은 물론이고 읽어야 할 리뷰들까지도 이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어서 '로쟈' 노릇도 임계점에 다다른 게 아닌가란 생각마저 든다. 하루에 댓 건은 카바를 해야 하지만 중과부적이다. 밥벌이도 아닌 일에 댓 시간씩 쏟아부을 수는 없지 않은가(그래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테지만). 게다가 나도 뭘 좀 써야겠고. 어디 뻗을 자리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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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한알 2008-04-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로쟈 노릇(?)을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많은 도움이 되서요...몇 분이 팀을 구성하여 협업체제를 만드시거나, 일을 지원해줄 사람을 찾는 것 같은 방법으로 노력과 시간을 분담하는건 어떨까요?

로쟈 2008-04-05 12:25   좋아요 0 | URL
네, 여러 개인적인 사정들이 겹치니까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기가 좀 버겁습니다. 쏟아지는 책들을 그냥 일람하는 것조차도 이젠 어렵구요. 관심있는 전공자들이 '품앗이'를 하거나 '당직제' 같은 걸 하면 어떨까란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아마도 2000년대 들어와서 인문학계 주요 화두의 하나로 떠오른 게 '파시즘'이 아닐까 싶다. 계간 당대비평에서 주도했던 '일상적 파시즘'(혹은 '부드러운 파시즘') 담론이 그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임지현 교수 등이 엮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이 물꼬를 튼 책이다. '파시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이 두번째 기폭제쯤 되고 이후에는 파시즘 관련서들이 해마다 댓권씩은 출간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명한 역사학자 조지 모스의 <대중의 국민화>(소나무, 2008)가 최근에 스타트를 끊었다(임지현 교수가 공역자의 한 사람이다). 모스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남자의 이미지>(문예출판사, 2004) 등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저자. <대중의 국민화>는 이미 제목으로도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부제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이다. 더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책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4. 05) 어떻게 독일 대중이 ‘히틀러 국민’이 돼갔나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에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의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 히틀러여, 이를 언약하나이다.”

‘주기도문’을 본뜬 이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을 나치 지배하의 독일 국민들이 지극정성으로 외웠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광기어린 파시즘의 표상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를 히틀러나 파시즘 체제가 강제한 걸까. 오랫동안 수많은 역사가와 정치·사회학자들은 파시즘이 강제동원과 세뇌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적 강요로 유지돼 왔다고 믿었다. 독일 대중이 ‘일탈적인 히틀러의 국민’이 된 것도 야만적 소수 권력의 조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통념을 처음 깨뜨린 것은 나치 통치 아래서 인종 청소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이었다.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닌 당사자, 그것도 최대의 피해자가 코페르니쿠스적 시각 교정에 앞장선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뒤 나치 통치를 피해 모국을 떠나야 했던 역사학자 조지 L 모스가 바로 그다. 모스는 ‘대중의 국민화’에서 파시즘이 히틀러 같은 소수의 독재자가 민중의 역사를 강제로 탈취한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떠오른 인민 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이라고 해석하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모스는 이 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와 인민주권 사상이 파시즘을 낳는 세속적 정치 종교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을 탐사한다. 히틀러가 독일 민족주의를 강압적으로 만들어나간 게 아니라 독일 대중이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어 가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일반 의지’는 루소의 국가론에 나타나는 중심 개념이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로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국민 의지가 그것이다. 개별 의지의 총합이 전체 의지라면, 일반 의지는 공동선을 위한 개별 의지의 총합인 셈이다.

루소는 과거 대사건들의 명칭을 새긴 기념비 주변에서 10년 주기로 애국 축제를 개최하라고 폴란드 정부에 권유한 적이 있다. 폴란드 국민이 조국과 자신들의 역량에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선 대중적인 경기와 체전, 기념식을 기획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루소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막상 폴란드가 아닌 통일 의지가 충만하던 독일이었다.

사실 ‘새로운 정치’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일반 의지’의 구체적 표현인 의례(儀禮)와 축제, 신화와 상징을 통해 민족이라는 신비에 민중이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라이프치히 민족전투기념비가 제막된 1913년, 축제의 주제가 된 ‘독일의 통일과 권력을 위해 싸우고 피 흘려 죽자’는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념하던 이전의 전통에서 비롯됐다.

히틀러는 1935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역사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민족 가운데 자신만의 기념비를 세우지 않은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연설했다. 나치즘은 등장 이전 1세기에 걸쳐 민족 제의(祭儀)의 발전 위에 건설됐다. 그런 발전은 나치의 정치 양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걸 빼고는 대중운동으로서의 나치즘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민족주의 제의는 히틀러라는 헌신적인 지지자를 찾아냈을 뿐이다. 히틀러는 이런 의례의 실용적인 면과 이데올로기적인 면을 모두 꿰뚫어 현실적인 정치적 고려와 자신의 본능적 믿음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게르만 민족주의 상징체계는 기념비와 공공 축제의 신성한 불꽃이었고, 민족 축제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 합창단, 사격동호회, 체조동호회 같은 조직은 ‘새로운 정치’의 비중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 책은 합창단과 동호회의 변화, 건축 양식, 음악, 대중 예술, 미장센, 조명 등 미시사의 분석을 통해 공통점이 없던 대중이 강력한 정체성을 지닌 독일 국민으로 변해간 과정을 살갑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파시즘은 끝났다고 여기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여전히 ‘현재의 역사’라고 결론지은 대목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많다. 번역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덧붙인 해설에서도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불과 1년여 전에 새로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리 국민 대다수의 희망에 따른 ‘자발적 복종’이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북한의 개인숭배와 가족 국가적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논객인 임 교수는 정치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용모순적인 개념의 ‘대중 독재’라는 편저에서 파시즘을 모스와 흡사한 시각에서 살핀 적이 있다.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 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엔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라고.(김학순 선임기자)

George L. Mosse: Toward the Final SolutionGeorge L. Mosse: The Fascist RevolutionGeorge L. Mosse: The Crisis of German Ideology

P.S. 아직 번역되지 않은 조지 모스의 책들에 <최종 해결책을 향하여>, <파시스트 혁명>, <독일 이데올로기의 위기> 등이 있다. 거기에 보태서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은 <대중과 인간>, <타락한 병사들>, <나치 문화> 등이 더 있고, 회고록 <역사와의 대면>도 눈에 띈다. 모두 관심이 가는 타이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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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개념글 9 ; 최장집, 미코노미, 파시즘
    from 일체유심조 2008-04-06 01:30 
    어제 아버지 산소를 돌보고 와서 계속 떠나지 않는 생각이 시간의 감옥 속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사람은 나이에 따라 '쾌락의 의지'-'권력의 ...
 
 
라주미힌 2008-04-04 23:16   좋아요 0 | URL
'로자의 낚시' ㅋㅋㅋ 제가 물고기가 된 듯, 막 끌리는 책이네요.

로쟈 2008-04-05 00:18   좋아요 0 | URL
일단은 제가 먼저 '낚인' 책들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13   좋아요 0 | URL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나 골드하겐(나치의 협력자들)의 주장은 보통사람들에게 굉장히 불편할 것 같아요.지배자는 나쁜 놈이고 민중은 억압당했다는 식으로 자위하지를 못하게 해버리니까요.이 책의 이론을 일제시대에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나게 불편하겠군요.임지현 씨가 번역할 만한 책이군요.평소 이런 주장을 많이 하니까요.

로쟈 2008-04-06 23:24   좋아요 0 | URL
악용하지 않는다면 음미해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는 요즘 매주 두어 장씩 가장 주의해서 읽고 있는 책이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의의 품위와 격조가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어서다. 교수신문에서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26). 필자는 <신곡> 번역서와 해설서를 낸 바 있는 김운찬 교수다.

교수신문(08. 03. 31) 50년 고전 읽기의 모범

아마 『신곡』만큼 다양한 해석으로 열린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소위 고전 작품들의 특징이라면, 『신곡』은 그런 정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때로는 깊이 읽을수록 오히려 헷갈리게 보이거나 더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주기도 한다. 언제나 새롭고 신비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일부 열성적인 독자들에게 『신곡』은 지속적인 탐색과 산책의 무대가 된다. 읽을 때마다 여러 가지 사색의 실마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진정한 ‘텍스트의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도쿄대 문학부 교수를 역임한 이마미치 도모노부(今道友信)의 『단테 ‘신곡’ 강의』는 50년에 걸친 『신곡』 사랑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 사랑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매주 토요일 밤 3시간씩의 만남을 통해 지속됐다고 한다. 아마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강렬한 사랑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1997년 3월부터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이뤄진 15차례의 ‘강의’를 통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게 됐으니, 그 정도와 깊이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미치는 단순히 『신곡』을 읽고 이해하는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공 분야인 철학이나 미학의 관점으로만 읽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곡』을 매개로 해 자신의 삶과 학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테뿐만 아니라 다른 위대한 인물들과 어울려 마음속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일종의 창조적인 읽기가 된다. 텍스트의 전통적인 해석에만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연상 작용과 함께 새로운 연결 고리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 책은 고전 읽기의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신곡』을 읽기는 쉽지 않다. 『신곡』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테의 개인적인 삶과 사상을 비롯해 당시 유럽의 시대적인 상황, 정치적 싸움과 종교적 갈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주요 관념 등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으면 단테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거기에다 텍스트의 의미 구조가 복잡하다. 하나의 표현 속에 여러 가지 의미들이 중첩되고 겹쳐진 구조로 돼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외에 알레고리, 즉 友誼(우의)적 의미와 신비적 의미, 도덕적 의미 등이 동시에 함축돼 있다. 따라서 어떤 구절에서는 서너 가지의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중세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특히 성경 텍스트의 해석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며, 또한 단테 자신이 그렇게 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신곡』에는 무슨 뜻인지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구절들이 종종 발견된다. 일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감추어진 비밀이나 은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도 바로 그런 해석을 토대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마미치가 『신곡』의 첫 3행을 해석한 것처럼, 악센트 하나가 있는가 또는 없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우리말 번역본에서는 그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독자들에게 탐색의 재미를 찾게 해준다. ‘철학자 시인’ 또는 ‘시인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단테는 자기 텍스트의 여러 곳에다 마치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이 흥미로운 해석의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다. 게다가 『신곡』은 중세를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작품,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만큼 풍부한 상징적 의미들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신곡』 읽기는 일종의 지적 도전이 된다. 제대로 음미하면서 읽으려면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마미치의 책은 전체 15번의 강의로 구성돼 있는데, 처음 세 번의 강의는 그런 준비 작업에 할애돼 있다. 단테와 『신곡』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양’을 탐색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작업이다. 먼저 호메로스에서 베르길리우스를 거쳐 단테에 이르는 고전 서사시의 전통과 특징을 더듬어본다. 또한 단테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유럽 문화의 양대 뿌리에 해당하는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고전’, ‘문학’, ‘성경’, ‘역사’ 등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교양 용어들의 어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클래식, 즉 ‘고전’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와 역할을 다시금 되새겨 봄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알찬 읽기를 준비하도록 배려한다.
 
본격적인 『신곡』 읽기에 들어가서 이마미치는 오랜 세월 동안 관심과 사랑을 기울인 노련한 학자답게 수많은 해설서와 번역본, 관련 자료들을 상호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거기에다 나름대로 독창적인 해석과 번역까지 곁들여 제공한다. 인상적인 것은 놀라운 외국어 능력이다. 단테의 이탈리아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어와 라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넘나들면서 『신곡』의 세계를 파헤치고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낸다. 인문학 연구는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실증적으로 보여주듯이, 작품의 연구로서 해석이란 원래 작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미까지 발견해내는 작업이다. 때로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독특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읽기에는 다른 분야의 관점들이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이마미치는 『신곡』을 일본 문학의 고전 작품이나 구비 문학, 또는 다른 전통적 요소들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읽기를 시도한다. 일부 구절에 대해서는 다른 예술 분야나 종교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들은 특히 강의가 끝난 후 청중들과의 자유로운 질의응답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중들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단테의 목소리는 색다른 어조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스콜라 철학의 본질을 노래하는 『신곡』이 불교나 동양 사상과 비교되거나 접목될 수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분명 『신곡』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나 입문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먼저 최소한 한 번 이상 『신곡』을 주의 깊게 통독해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단테의 목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이탈리아어 지식도 필요하다. 이마미치의 강의를 듣고 질문이나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마미치가 관심을 기울이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번역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곡』을 읽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단테의 언어로 읽는 것이리라(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테가 직접 쓴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필사본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단테 학회에서 정한 판본이 일종의 표준 판본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번역본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번역은 출발 언어와 도착 언어 사이의 차이 때문에 불완전한 ‘옮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운문의 경우 특히 그렇다.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기 직전에 쓴 미완성 작품 『향연』에서 시의 번역 불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호메로스의 작품과 「시편」을 예로 들면서 단테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형식적 조화를 특징으로 하는 운문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할 경우 필연적으로 고유의 감미로움과 조화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로 번역하든 음절의 숫자와 각운, 리듬 등 단테의 시가 간직하고 있는 고유의 형식적 아름다움은 훼손되거나 변화될 수밖에 없다. 이마미치는 권위 있는 『신곡』 주석본들과 여러 개의 일본어 번역본을 서로 비교하면서 설명하는데, 그것은 주로 단테의 이탈리아어가 갖는 시적 풍부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본어로 옮길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 일본어 번역문의 표현 방식, 또는 시적 느낌이나 뉘앙스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석이나 오역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우리말로 옮기다 보니(이것은 일종의 重譯이다) 그 구체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본어의 시적 표현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어떤 번역이 뛰어나거나 훌륭한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곡』의 경우 번역과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20여 종류가 넘는 『신곡』 번역본이 출판됐다. 그 중에는 정체불명의 번역이나 번안 작품도 포함돼 있으며, 최소한 절반 이상이 중역이다. 물론 중역본이 더 훌륭한 경우들도 있지만 원본, 즉 출발 텍스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 대부분이 내용 위주의 번역에 치우쳐 형식적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시적 전통을 고려하는 참신한 번역을 시도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 지향적 번역은 『신곡』의 난해함이나 지루함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의 문제와 관련된 책을 번역할 때에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를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으나, 일부 일본어식 한자 용어들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또한 베르길리우스의 이탈리아어 이름을 ‘베르질리오’로 표기했는데 국적 불명의 이름이 돼버렸다. 굳이 우리말로 표기하자면 ‘비르질리오’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원문에서 라틴어 이름과 이탈리아어 이름을 뒤섞어서 쓰고 있지만, 하나로 통일하고 역주로 처리해도 좋을 듯하다. 단테의 저술 『제정론』을 『제왕론』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신곡』의 경우처럼 모든 번역은 언제나 수많은 가능성 앞에 노출됨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김운찬/ 대구가톨릭대·이탈리아어과) 

08.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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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04-04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토요일 3시간을 할애해서 열심히 읽으리라 다짐을 하지만...토요일만큼은 놀고싶다요~~
요 챕터 가져갑니다.

로쟈 2008-04-04 09:36   좋아요 0 | URL
공부의 즐거움도 노는 즐거움 이상인데요.^^
 

최근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나무, 2008)을 출간한 원로 영문학자이자 연극평론가 여석기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그의 <강의>는 지난 월요일에 손에 들었고 마침 모니터 바로 앞에 놓여 있기도 하다.

경향신문(08. 04. 02) 여석기 교수 “연극은 바보 짓, 그래서 의미있다”

21년 전 대학 강의실을 떠난 원로 학자가 못다 한 강의를 책으로 옮겼다. 영문학자로 셰익스피어 전문가이자 한국연극평론 1세대인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86)가 최근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 나무)를 펴냈다. ‘해방 학문 1세대’로 평생을 영문학에 매진해오며 날카로운 비평으로 연극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노학자는 학생들에게 건네듯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매주 월·수·금 서울 종로2가 사무실에 나가 오후 5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를 계속한다.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여 교수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일찌감치 겉옷을 갖춰 입고 기자를 맞아주었다. 그의 서재는 가난했다. 평생 학문연구를 위해 모아온 방대한 자료들은 진작에 기증했다.

해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여석기 연극평론가상’ 얘기가 나오자 쑥스러워했다. 60여년 넘게 품어온 햄릿에 대한 생각, 연극평론가로서 바라본 연극계의 현실 등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침침한 눈과 뻣뻣해진 몸 탓에 연극을 못본 지 10년이 넘었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다. 흥미를 끌만한 가벼운 질문에는 학자다운 진지함과 냉철함으로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책은 어떻게 내셨나요.

“내가 책 낼 나이가 아닌데 작년에 엉뚱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면 뭐가 달라질까? 딱딱하고 힘든 책은 못쓰겠고, 햄릿이 텍스트 연구보다는 공연 쪽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으니 무대 위의 ‘햄릿’은 어떻게 그려지는지도 함께 담아 편히 읽도록 했죠. ‘맷집’ 좋은 햄릿이니 시종 편안한 건 아니고…. 읽다가 딱딱한 얘기는 그냥 건너뛰면 돼요. 1년 넘게 작업했죠.”

-연극과는 언제 인연을 맺으셨나요.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작이 ‘햄릿’이었어요. 당시 유치진 선생이 번역을 부탁했죠. 그 전에도 햄릿이 자주 공연됐으니 번역대본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개관 3~4개월 앞두고 급하게 공연대본으로 번역했어요. 51년 이해랑 선생이 이끈 극단 신협이 대구에서 ‘햄릿’을 공연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지요. 전쟁의 와중에도 구경꾼들이 많아 난리가 났어요. 예전 배우들이 여관에 발 묶여있을 때 쉽게 올렸던 작품이 ‘춘향전’ 아니면 ‘햄릿’이었어요. 그만큼 인기가 좋았던 작품입니다.”

-‘햄릿’이 왜 인기일까요, 햄릿과 60여년 살아오셨는데요.

매력적이에요. 그러나 한마디로 말할 순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드문 인물이죠. 햄릿 1막부터 5막까지의 시간 경과를 따지면 채 1년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1막의 햄릿과 5막의 햄릿은 달라요. ‘내면적 성숙’, 인간적으로 바라본 햄릿의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42년 도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햄릿을 만났으니 오랜 세월 함께했죠. 청년 때 만난 햄릿과 점점 늙어가며 느끼는 내 마음속의 햄릿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야단스러운 얘기일 테고 난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게 햄릿에 대한 나의 결론입니다.”

-요즘 자기 확신에 차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햄릿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흔히 ‘햄릿형’이라고 해서 ‘귀공자인데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하고 행동이 부족하다’ 그런 말을 하죠. 19세기부터 내려온 이미지입니다. 시대마다 햄릿에 대한 풀이가 달랐던 것 같아요. 햄릿이 너무 일찍 죽었어요. 햄릿에게 ‘본심이 뭐냐’고 물으면 씩 웃고 치우겠죠. 대답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질문에는 뭐라고 답변할 수가 없군요. 햄릿의 본심을 모르니까요.”

-요즘 연극,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이 참 묘합니다. ‘연극 위기론’은 사람들이 연극을 즐겨보던 60~70년대에도 끊임없이 나왔어요. TV·영화에 이어 요즘은 뮤지컬이 자리를 빼앗는다고 하죠. 연극도, 연극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굶주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관객 수가 아니라 좋은 극작가, 좋은 배우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많은 관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연극의 역할은 뭘까요.

연극은 산 사람(무대)과 산 사람(객석)이 교류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연극처럼 비효율적인, 바보같은 짓이 어딨습니까. 한 번 공연하고 사라지는 일회성, 참 골치아픈 겁니다. 얼마나 낭비입니까. 하지만 그 비경제성이 의미있어요. 산사람끼리의 소통을 이끄는 그 매체(연극)의 깊이를 어떤 것도 못따라갑니다. 능률만 갖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연극은 그것을 일깨워주죠.”(김희연기자)

08. 04. 03.

P.S. 한겨레의 인터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80076.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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