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담비에서 영화이론서 번역문제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10482). 동국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국내 영화이론서 번역의 문제점에 대해서 꼬집고 있다. 번역 문제에 관한 참고자료로 챙겨놓는다.

동국대 대학원신문(148호) '무지’보다 ‘무시’에서 비롯된 오역

국내에서 영화가 학문적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영화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1990년대에 들어 겨우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영화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현재는 체계적인 발전단계를 거치지 못한 무수한 이론들이 난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이론보다 정신분석학, 기호학, 서사학 등 타 학문의 방법론을 그대로 이식하며 형성된 이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국내 영화이론 연구는 여전히 어수선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영화용어’에 대한 오역'
외국 영화이론서의 허술한 번역도 국내 영화이론 연구의 부실화에 한몫을 했다. 영어권 이론서를 제외한 여타 외국어 영화이론서들의 경우, 번역의 무책임함과 불성실함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해당 외국어에 대한 독해 능력과 영화이론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춘 역자가 매우 드문 현실에서 비전문가들의 마구잡이 번역이 버젓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이론서의 번역은 타 분야의 이론서 번역에 비해 후진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이론서 번역의 문제점은 다양한 차원에서 발견되지만,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영화용어’들에 대한 오역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원서의 번역과정에서 행해지는 주요 영화용어들의 오역은 저자의 이론들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종종 원서 전체의 독서를 불가능하게 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프랑스 영화이론서들의 경우, 상당수의 영화용어들이 본래의 뜻과 다른 엉뚱한 단어로 번역돼 정상적인 독서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가령, 파스칼 보니체의 저서를 번역한 『영화와 회화. 탈배치』에서는 ‘쇼트’를 뜻하는 불어 단어 ‘plan’이 ‘영상’으로 번역돼 번역서 곳곳에서 숱한 오류로 이어진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자 핵심 용어인 ‘decadrage’는 이미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인 ‘탈프레이밍’이나 ‘탈프레임화’ 대신 ‘탈영상배치’라는 모호한 용어로 번역돼 저자의 논지를 완전히 흐트러뜨린다. 또 다른 예로, 자크 오몽의 『이마주』에서도 ‘illusion’이라는 단어가 ‘착시’가 아닌 ‘환영’으로 번역돼 ‘헤링의 착시’와 ‘뮐러-라이어의 착시’ 같은 초보적인 시각이론 용어들이 ‘헤링의 환영’과 ‘뮐러리어의 환영’이라는 엉뚱한 용어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오역의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일단 위의 예들만으로도 국내 영화이론서 번역의 현황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이중, ‘탈프레이밍’과 ‘착시’에 관한 오역은 그나마 역자의 불성실함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쇼트’라는 용어에 대한 오역은 그 정도가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다. 쇼트는 영화라는 매체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영화용어로서, 소설과 비교할 경우 ‘주어’나 ‘문장’ 등에 해당하고 음악의 경우 ‘음표’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역자는 역서 내내 쇼트의 의미를 모른 채 어려운 영화이론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도대체 주어나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문학이론서를 번역하는 이가 있겠는가? 또 음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음악이론서를 번역하는 이가 있겠는가?

번역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번역은 한 사람의 학식(Scholarship)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학문의 한 분야와 관련될 경우, 이론서 번역은 그 분야의 학문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국내 영화학의 경우, 영화이론에 대한 학습이 전무하고 영화사에 대한 지식과 영화감상의 경험도 턱없이 부족한 비전문가들이 외국어 독해능력 하나만을 믿고 쉽게 영화이론서 번역에 뛰어들고 있어, 학문적 성숙도를 끌어올리는 일이 여전히 먼 미래의 일처럼 요원해 보인다.

영화이론 번역의 이 같은 문제들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선, 번역의 질적 수준과 충실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내 출판현실이 그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의 작업에 대한 대우가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현실에서, 가뜩이나 어렵고 인기도 없는 이론서 번역은 기피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다음, 국내 영화학계의 안일한 태도와 정확한 영화용어집의 부재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아직도 국내에는 모두가 공신할만한 영화용어사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영화학자들이 각자 편할 대로 영화용어를 사용하면서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영화에 대한 국내 인문학자들과 출판계 종사자들의 인식 자체에 있다. 사실, 국내 영화이론서 번역의 문제들은 영화에 대한 ‘무지’보다는 ‘무시’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국내 학계나 출판계에는 일정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외국어에 능한 연구자라면 외국의 전문적인 영화이론서도 손쉽게 번역해낼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국내 영화 연구자들이 제대로 번역서를 고를 기회조차 갖기 힘들 정도로, 외국의 유명 영화이론서들은 국내에 알려지기 무섭게 인문학 전공 번역자들에 의해 접수된다. 요컨대, 국내 인문학자들의 독특한(?) 선민의식과 영화학에 대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내 영화이론 번역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김호영/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08. 06. 04.

Pascal Bonitzer

P.S.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파스칼 보니체의 책은 오역으로 악명이 높지만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130쪽도 안되는 책이 18,000원이다. 견적이 안 나오는, 숭고하기 짝이 없는 책이다). <비가시영역: 리얼리즘에 관하여>(정주, 2001)는 또 어찌된 영문인지 너무 일찍 절판되었고(대학 도서관들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런데, 필자가 영화이론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면 그나마 잘된 번역서, 잘 읽히는 번역서의 경우에도 혹 문제는 없는 것인지 살펴보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최악의 번역서를 사례로 삼아서 '일반화'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대다수 번역서들이 '쇼트'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영화이론서들을 읽다가 골탕을 먹은 적이 여러 번 되기에 '번역의 질적 수준과 충실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불비한 여건에 대한 필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국내 영화학계의 안일한 태도와 정확한 영화용어집의 부재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아직도 국내에는 모두가 공신할만한 영화용어사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영화학자들이 각자 편할 대로 영화용어를 사용하면서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지적이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데, "국내 인문학자들의 독특한(?) 선민의식과 영화학에 대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내 영화이론 번역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영화학이 인문학의 바깥인지, 더 좁혀서 '영화이론'이 '이론'의 바깥인지 의문이 들 뿐더러 현대 영화이론이 흡수하고 있는 다양한 이론적 담론들의 경우 과연 '쇼트'가 무엇인지, '탈프레이밍'이 무엇인지 아는 영화학도만이 번역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이론과 접속하고 있는 기호학(언어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의 다양한 담론들을 소화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영화학도에게만 주어지는 것일까? "국내 영화 연구자들이 제대로 번역서를 고를 기회조차 갖기 힘들 정도로, 외국의 유명 영화이론서들은 국내에 알려지기 무섭게 인문학 전공 번역자들에 의해 접수된다"는 판단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최근의 이론가들은 제쳐놓더라도 영화이론의 고전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도 번역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영화이론의 기본서라 할 만한 크리스티앙 메츠의 책들도 국내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학 전공자들이 '번역서를 고를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는 것은 아무래도 엄살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 보인다. '영화이론서 번역, 이렇게 한다'라고 본때를 보여줄 만한 책들을 냄으로써 '국내 인문학자들의 독특한 선민의식'에 한방 먹이는 것이 '무지'를 극복하고 '무시'를 불식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일 듯싶다... 

P.S. 메츠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상상적 기표>(문학과지성사, 2009)가 드디어 출간됐다. 모처럼 도전해볼만한 영화이론서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09.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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