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고 있는 촛불시위에서 20년전(87년 6월)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드물진 않다. 하지만 세상은 좀 달라졌고 시위문화 또한 그러하다. 웹2.0 기반의 인터넷이 새로운 '참여형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진단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 민주주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것인지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오늘자 지면에 실리는 듯한 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6. 03) '참여형 인터넷’이 민주주의 토양

새로운 정보화 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촛불시위대’가 집회·시위 문화에 일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웹2.0’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웹 2.0이란 공급자 중심이던 초창기 인터넷 이용과 달리, 서비스 업체가 플랫폼을 이용자에게 개방하며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 이용자 스스로 참여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콘텐츠까지 만들어내는 ‘참여지향형 인터넷 이용 형태’를 말한다.

무선인터넷 활용한 현장 생중계= 과거에 특정 게시판과 사이트를 중심으로 정보교환과 연락이 이뤄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무선인터넷 기술과 동영상 중계가 전면에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대규모 장외집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중계해온 <오마이뉴스>의 중계방식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텍스트와 사진을 중심으로 편집한 기사를 ‘현장 O신’ 형태로 시차를 두고 올려왔지만, 이번에는 동영상 현장중계가 중심이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방송팀장은 “현장에서 와이브로를 이용해서 중계센터로 송출해서 화면을 변환하고 자막을 입혀서 내보냈다”며 “전에는 생중계를 하려면 차 한 대 분량의 장비가 출동해야 했으나, 무선인터넷 덕분에 노트북과 캠코더면 충분해 기동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1일 하루 인터넷 중계를 본 사람만 122만2천명으로, 사상 최고치였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개인이 채널을 열고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프리카(www.afreeca.com)는 플랫폼 개방을 통해 이용자들의 적극 참여를 끌어낸 곳이다. 아프리카를 서비스하는 나우콤의 집계로, 촛불집회가 본격화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생중계된 인터넷 개인방송의 누적 시청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섰다. 갈수록 생중계 채널과 시청자가 늘어 1일에는 2501개 채널을 통해 시청자가 127만명을 넘어섰다. 2500개가 넘는 중계 채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채널당 200명인 접속자가 꽉 차면 자동으로 영상을 전달받아 방송하는 또다른 채널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우콤 박은희 팀장은 “노트북·캠코더·무선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생중계가 가능하다”며 “현장에서 노트북에 물린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편집 없이 실시간 중계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박 팀장은 “중계방송을 보다 집회현장으로 달려나갔다는 사람들도 많다”며 “서비스를 한 지 3년간 이번처럼 많은 이용자가 몰리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앞선 정보화 마인드= 이번 집회에서 중심으로 나선 10대들의 앞선 정보화 마인드도 변화를 설명하는 요소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청소년 세대는 휴대전화·캠코더 등 정보화 기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20·30대에 비해 탁월하다. 이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읽는 용도로 사용되던 인터넷 기술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박수호 사무국장은 “인터넷이 정보를 확산시키는 역할은 잘 하지만 구체적 행동을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게시판은 익명성이지만 휴대전화를 통해 친구에게 집회 참가를 제안할 경우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인터넷을 통한 인지 확산과 휴대전화를 통한 네트워킹으로 실제 참여를 이끌어낸 데에는 정보화 마인드가 뛰어난 청소년들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가담을 선동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성급하다. 윤영민 한양대 교수(정보사회학)는 “선동이란 잠시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로 대중을 속이려는 것인데 웹2.0 시대의 인터넷에서는 선동이 통하지 않는다”며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채널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잠시 동안 일부를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구본권 기자)

한겨레(08. 06. 03) “공유와 연대는 우리의 힘”…실시간 ‘일파만파’

동호회 카페, 주부 모임 등 각종 온라인 소모임들이 빚어내는 인터넷 여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싹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기민한 대응력. 편을 가르고 탁상공론할 시간도 없이 실시간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 온라인 풀뿌리 조직은 새로운 ‘피플파워’로 등장할 조짐이다.

■ 뒤흔든다=라인에서 형성된 ‘촛불 여론’의 힘은 시장까지 뒤흔들 정도다. 주방용 생활용품 전문업체인 락앤락은 1일부터 문화방송 라디오의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에 협찬을 중단했다. 진행자인 정선희씨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비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뒤, 이 회사에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친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과 고객상담실에 정선희씨가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에 협찬을 하는 데 항의하는 글과 전화가 쏟아져 6월부터 협찬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자 다시 격려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또 2일치 <조선일보>에 광고한 업체들의 목록을 게시판에 올려놓고 전화 돌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 ‘조중동’ 웹사이트에 배너광고를 게시한 업체에도 항의중이다. 이들 사이트에 1일까지 배너광고 내보냈던 지마켓은 2일 배너광고를 아예 내려야 했다.

■ 끝이 없다=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와 주부들이 활동하는 82쿡, 마이클럽 등의 사이트에는 ‘조·중·동’ 3개 언론사에 광고를 실은 기업들 리스트가 올라온다. 기업 이름은 물론 고객 의견을 접수하는 전화번호, 사이트 주소까지 시시각각 ‘업데이트’된다. 한 누리꾼은 매일 주요 일간지 1면을 디지컬카메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전날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서다.

누리꾼들이 올리는 정보들은 제각각이지만 여러 정보들이 스크랩되고 퍼날라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한 누리꾼이 ‘집회때 전경이 여학생을 밟았다’고 올리면 다른 목격담들이 합해져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다. 곧 이어 언론매체에 관련 동영상이 뜨고, 학생의 신상이 나오고, 현장에서 치료했다는 의사의 얘기도 더해진다. 조각조각의 정보들이 합해져 누리꾼들은 ‘폭력경찰 규탄하자’는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 빠르다=누리꾼들의 움직임은 실시간이다.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연구원이 지난달 23일 ‘양심선언’ 글을 올리자 곧 이어 “김이태 연구원을 보호하자”는 글들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고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에 다음날 건기연 쪽은 “김 연구원을 처벌할 근거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청에서 지난달 “온라인 시위 주동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히자마자 시민들은 “나도 잡아가라”는 글을 실시간으로 올렸다. ‘새로고침’을 누르기가 무섭게 한 페이지씩 글이 올라오더니 경찰청 홈페이지는 결국 마비되기도 했다.

지난 1일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자 한 누리꾼은 구글어스에 대치 위치를 표시해 올려놨고, 곧 이어 초 단위로 현재 상황에 대한 댓글들이 달렸다. 신광영 중앙대(사회학과)교수는 “누리꾼들은 이른바 관료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때문에 사안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성과 내기도=누리꾼들의 이런 양태는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목우촌 등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던 기업들은 ‘국민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광고 중단 선언과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촛불집회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던 정선희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일부 광고가 중단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송경화 박현정 기자)

08.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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