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사가 리처드 스타이츠의 <러시아의 민중문화: 20세기 러시아의 연예와 사회>(한울, 2008)가 번역돼 나왔다. 덕분에 올해 나온 몇 권의 책을 모아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20세기 러시아의 정치와 문화를 다룬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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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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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혁명의 시간- 러시아 혁명 120일 결단의 순간들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 교양인 / 2008년 3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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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러시아의 민중문화- 20세기 러시아의 연예와 사회
리처드 스타이츠 지음, 김남섭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5월
30,000원 → 30,000원(0%할인) / 마일리지 30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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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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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로스의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1,2>(나남, 2008)에 대한 소개기사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2122007), 막상 서점에서 손에 들어보니 쉽게 읽게 될 성싶지 않았다. 당면한 일들과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냥 덮어놓긴 뭐해서 조금 더 자세한 서평기사를 하나 더 챙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380). 미국 학문의 '역사성'에 대한 주목은 우리에게도 통용되고 있는 학문의 '미국식 표준'에 대해서 진지하게 재고해볼 것을 요구한다.

교수신문(08. 06. 16) 자연과학·개인주의에 충실한 ‘미국 예외주의’ 비판

우리는 언제 족보(族譜)를 따지는가. 대체로 먹고살만해졌을 때, 아니면 가족사에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학문 활동에 몰두하는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자기 전문분야의 기원을 돌아보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학계의 경우 십중팔구는 해당 분과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기원을 돌아보게 된다.

도로시 로스(Dorothy Ross)의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The Origins of American Social Science, 1991)도 그러하다. 그는 20세기 미국문화가 점점 더 방향성을 상실하고, 사회윤리가 지속적으로 침식됨에 따라 미국 사회과학을 지배해온 자연과정에 입각한 사회모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저자는 ‘미국 예외주의적 사고 자체를 역사화’하려는 노력의 일부분으로 ‘미국 사회과학을 역사화’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지적한다.  

미국 예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자는 그것을 미국의 독특성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판 국가주의(nationalism)로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미국의 국가주의는 미국을 유럽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형성됐으며, 미국과 유럽을 상극으로 보려는 성향에 의해 고취됐다. 또한 미국 예외주의 담론의 두 번째 특징은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융합시키는 경향인 ‘이상주의의 형이상학’이다. 처음부터 미국 국가주의자들은 미국 역사에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 사회적 조화,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적 평등까지 결부시켰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는 때때로 제국주의적 충동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본다.

저자는 미국 사회과학의 삼대 핵심 분야인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역사학, 심리학, 인류학과 그 밖의 사회과학 분과학문들은 체계적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다만 선택적으로 가끔 언급할 뿐이다. 이 책은 미국 사회과학 분과학문들의 형성기인 대략 1870년에서 1929년 사이의 기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사실 계량모델이나 체계분석, 기능주의 그리고 행태과학 등이 크게 유행했던 1950년대에 미국 사회과학의 과학적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사회역사과정을 자연과정의 한 영역으로 보는 기본 관점과 자연과학적 방법을 추구하려는 결정은 이미 1920년대에 이뤄졌다고 본다.

이처럼 미국의 사회과학이 역사학보다 자연과학에 더 기울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라는 고전적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연유를 추적하면서, 저자는 이것이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는 미국식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사상 특수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예외주의 이데올로기가 청교도이념, 자유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에 깊이 스며들어 미국 사회과학에 경로의존성을 부과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미국 예외주의를 지목해 역사적 비판을 가하는 의도는 앞으로 그것의 영향력을 줄여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사회과학이 선택한 특수한 과학주의적 입장은 그들의 특수한 역사의식에 의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 사회과학이 실용적인 양키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 아니라, 도적철학에 뿌리를 두고 미국 사회의 엘리트층 가치를 신봉하는 학자층에 의해 이뤄졌다고 본다. 그런데 미국의 학자층은 실제로는 현실권력에 관계했으면서도 스스로는 권력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는 1965년 콜롬비아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린스턴대, 버지니아대를 거쳐 현재 존스 홉킨스대 역사학 교수로서 미국 지성사, 현대 사회사상과 정치사상, 인문과학사를 강의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사회과학의 핵심 흐름을 이루는 담론을 재구성하는 지성사의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역사와 사회과학을 연결시키는 한편, 사회과학자들이 전제하는 가치들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탐구한다. 저자는 역사적 전환점마다 담론을 주도한 인물을 중심으로 사회과학담론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논의는 근대 사회와 정체 그리고 경제를 둘러싸고 진행된 학계의 논의와 미국 예외주의를 둘러싼 국가 엘리트들의 논의에 국한된다.

책의 메시지는 무척 명료하다. 미국 사회과학의 역사는 한마디로 각 시기별로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들과 지적, 정치적으로 대결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해 미국 사회과학계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합의가 형성됐다. 따라서 사회과학자들은 자유주의 사회를 어떻게 통치해나갈 것인가에 집중했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미국 사회과학을 역사화하는 것”이며, “역사세계를 자연화하려는 미국 사회과학의 노력 자체가 바로 역사적 기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사회과학자들이 과학주의적 선택을 한 데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 이유들은 역사적 의도들에 의해 항상 제약된 이유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객관적 과학’이라는 미국 사회과학의 실증주의적 자기묘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회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 사회과학의 가치중립성, 객관성, 전문성을 옹호한다. 문제의식은 ‘가치부하적’, ‘주관적’이고 따라서 ‘과학적’이거나 ‘전문적’이기 어렵다고 기각한다.

그런데 미국 사회과학의 과학주의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미국 사회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미국 사회과학자들에게 학문의 과학성은 국가에 대한 헌신이나 국익 또는 기업이익에 대한 봉사와 전적으로 양립가능한 것이다. 아니, 과학적이어야 더욱 더 권력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역사사회학 전공자로서 한미관계를 주로 연구한다. 최근에 기밀해제된 미국 정부문서를 읽으면서 가끔씩 미국 사회과학자들이 정부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보고서들을 접하곤 한다. 로스토우 교수와 헌팅턴 교수의 보고서가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월남전 관련 보고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로스토우 교수는, 우리에게는 ‘개발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월남전 개입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헌팅턴 교수는,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이나 ‘문명충돌’로 유명하지만, 월남전 당시 ‘베트콩’의 게릴라전술에 맞서 물고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물을 말려버려야 한다는 전술 즉, 강제 도시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을 한 장본인이었다. 미국 사회과학계가 미국정부나 기업계와 맺는 관계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전면적이고 제도적이다. 우리가 미국 사회과학계는 가치중립적이며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연구와 강의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믿는 동안 그들은 국익과 사익을 위해 열심히 복무했다.

공역자인 백창재 교수와 정병기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 번역총서의 일환으로 이 책을 옮겼다. 옮긴이는 1권 끝에 보론으로 「한국 사회과학 정체성 논의」를 싣고 있다. 또 2권 끝에는 이 책의 해제를 싣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번역해냄으로써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과학주의를 넘어서려는 작업에 동참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을 파헤치는 작업소개는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기실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머리로 고민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 100여 년 간 한국의 근대화는 ‘타율적 근대화’라 부를 만큼 바깥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때늦은 응전, 그것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대응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날개(wings)와 뿌리(roots)를 함께 보듬고 나가는 한국 사회과학을 실천해야한다. 미국의 사회과학이 우리에게 덧입힌 ‘과학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체적 문제의식과 독특한 문제틀을 제시할 때다. 그러기 위해 한국 사회과학에 뿌리내린 미국 사회과학에 대한 성찰은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이란 우리와 마주한 상대방과의 관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정일준/ 고려대·사회학과)

08.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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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39   좋아요 0 | URL
로스토우나 헌팅턴이 베트남전 당시에 했던 구린 짓은 촘스키와 허만이 근거 자료까지 인용해서 시원하게 두들겨 줬죠(워싱턴 커넥션과 제3세계 파시즘).거기에 베트남사 전공교수인 더글라스 파이크도 별책부록으로 가볍게 한 방...파이크는 로스토우나 헌팅턴 정도의 파렴치한은 아니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로쟈 2008-06-19 00:07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 '구린 짓'이 저로선 사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사이드도 지적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주의할 문제는 오히려 '전문분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비판받지 않으면서 통용되는...

노이에자이트 2008-06-19 00:53   좋아요 0 | URL
그래요.촘스키와 허만도 그 책에서 그 문제를 지적합니다.미국 국방성과 CIA가 종속국들의 군인들을 데려다 친미사상을 주입하고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서 제3세계 군부를 친미일색으로 만드는 과정을 파헤쳤죠.이번에 광우병이 안전하다고 군대에서 정신교육 시간에 사병들에게 홍보하는 우리나라 군대를 보면...군인들만 그렇겠어요.제3세계 유학생들을 뭣 때문에 유치하겠습니까?이윤기의 <하늘의 문>을 보면 미국과 자국의 이익이 부딪히는데 충성스럽게도 미국 편이 되는 후진국 지식인 이야기가 나옵니다.자기를 미국인과 동일시하는 거죠.당연히 미국 유학생 출신.
 

고려대 대학원신문의 한 기사를 학술저널 담비에서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10777).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신 뒤라 잠시 '여흥' 삼아 읽은 '춤' 관련기사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왕가위의 영화 <해피 투게더>로 각인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춤, 탱고의 문화사를 잠시 짚어주고 있는데, 가난한 이민자들의 애환이 탱고에는 서려 있다는 걸 알게 한다(비슷한 근대화를 경험한 우리에겐 왜 이런 춤이 없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냥 캬바레 춤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자유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춤도 부족하다... 

고려대 대학원신문(147호) 아르헨티나 근대문화로서의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항구도시다. 항구도시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문화의 집결지라는 특성이 있다. 또한 외지인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가운데 이들이 경험하는 서러움과 고독, 향수 등이 풍요로운 문화를 낳기도 한다. 뉴올리언스 항에서 재즈가 탄생한 것이 그렇고, 리버풀이 비틀스를 탄생시킨 것이 그러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외지인의 유입이 국가 정책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더할 나위가 있을까. 탱고는 바로 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 하구였던 보카에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탄생했다.

19세기 후반의 아르헨티나는 근대국가로 자리잡기 위해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국가헌정을 수립하고 유럽인이민정책 및 무상 공교육제도를 통해 공화국을 ‘문명화’하는 것이 실증주의자였던 이 시기 통치자들의 최대목표였다. 이민정책의 첫 번째 목적은 인디오를 축출한 지역에 사람을 거주시킴으로써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고자 함이었지만, 유럽인의 유입이 선진적인 문명을 도입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통치자들은 ‘유럽화’를 곧 ‘문명화’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들어온 이민자들은 부유한 유럽국의 중산층이 아니라 가난한 남유럽 출신의 하층민들이었다. 특히 내 소유의 땅을 갖겠다는 꿈을 안고 온 남부 이탈리아의 농민들이 상당수였다. 돈을 벌겠다고 떠난 엄마를 찾아나선 이탈리아 소년의 이야기인 <엄마 찾아 삼만리>도 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뿌리깊은 대토지 소유제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부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용 잡부로 전락했다.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한 곳은 보카 지구였다.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하구였던 보카는 일용직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고달프고 서러운 항구의 노동은 태양이 서쪽 지평선으로 사라질 즈음에야 끝이 나고, 어둑한 선술집에서 서민적인 음악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이민자들의 고단한 하루가 또 저문다. 때로 여흥으로 술파는 여인들과 춤을 추기도 한다. 대부분 돌아갈 것을 기약하고 가족을 두고 온 남자들이거나 미혼이었던 이민자들은 이 여인들과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이렇게 탱고는 향수에 시달리던 이민자들과 몸 파는 여자들 사이의 춤에서 비롯되었다.

하층민의 춤으로 탄생한 탱고는 처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안에서도 보카 지역에만 머물러 있었다. 유곽에서 탄생했다는 원죄 때문이었다. 더구나 춤을 춘 사람들이 대개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고, 당시에 이민자들에 대한 토착인들의 편견과 증오심이 팽배해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토착 아르헨티나인들이 탱고에 대해 느꼈을 거부감이 충분히 짐작된다. 서로 몸이 스치고 다리를 교차시키기도 하는 춤 동작이 외설스럽다고 여기기도 했거니와 빈민촌에서 탄생한 춤이다보니 더더욱 아르헨티나 상류층은 탱고를 경멸했다.

그러던 탱고가 유럽에 전파된 것은 유명한 탱고 작곡가들이나 빈민촌을 드나들며 탱고를 배운 일부 부유층 남자들이 유럽 여행을 통해 선보이기 시작하면서였다. 유럽 대륙은 탱고의 에로틱한 춤 동작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유럽 사교춤에는 탱고처럼 남녀가 몸을 가까이 맞대는 예가 없는 데다 탱고가 남미의 끝자락에서 건너온 춤이라는 이국성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탱고가 유럽 상류층의 호응을 받자 탱고를 저속하고 수치스러운 춤이라고 배척하던 아르헨티나 상류층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럽으로 수출되었던 탱고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탱고의 확산은 아르헨티나 정치 지형의 변화와도 맞물려 전개되었다. 1912년 보통선거법이 제정되고 하층민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 중하류층을 대변하는 급진시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하류층의 참정권이 보장과 급진당 세력의 확산의 결과 하류층 문화도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탱고의 확산도 이러한 사회적 수용의 분위기에 힘입었음은 물론이다.

탱고는 근대국가 아르헨티나가 그 정체성의 기초를 마련하던 시기의 문화 산물이다. 탱고가 탄생한 곳은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접경지대, 이민자와 크리오요 사이의 갈등이 상존하던 빈곤의 공간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대도시 문명과 크리오요 농촌 전통 사이에 존재한 근대적 삶의 긴장이 탱고를 낳은 것이다. 탱고의 탄생지인 빈민촌, 그 변두리 공간은 바로 근대화 시대의 산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겪은 근대화, 도시화, 유럽화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탱고라는 춤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연방수도로 변모하지 못하고 일개 주(州) 수도에 머물렀더라면, 탱고 또한 한 지방의 민속음악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말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계화되어가던 연방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었기에 탱고의 탄생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근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든 욕망과 애환은 바로 탱고 속에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조영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강사)

08. 06. 16.

P.S. 탱고하면 <해피 투게더> 말고도 떠오르는 영화는 많다. 먼저, 샐리 포터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탱고 레슨>. 일단은 스텝이라도 배워야 출 것 아닌가? 그녀가 파블로 베론과 추는 탱고는 http://kr.youtube.com/watch?v=yi1dprxgEz8 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알파치노의 탱고도 너무 유명하니 빼놓을 수 없겠다(http://kr.youtube.com/watch?v=dBHhSVJ_S6A).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도 있군(http://kr.youtube.com/watch?v=qX_4A6d_Q-U). 내친 김에 <해피 투게더>의 한 장면까지(http://kr.youtube.com/watch?v=ea1pM0qhudI).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거리를 피아졸라의 음악과 함께 잠시 둘러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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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16 22:26   좋아요 0 | URL
덕분에 '여인의 향기' 동영상 감사하게 다시 볼 수 있었네요...

로쟈 2008-06-17 00:29   좋아요 0 | URL
^^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32   좋아요 0 | URL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옹...좋죠.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에 대한 재협상도, 내각의 쇄신도 모두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화물연대의 파업까지 가세한 탓에 정국은 더욱 어수선하다. '불도저'란 기대치에 걸맞지 않게 정말로 '대책 없는' 정부와 마주하고 있는 탓에 '촛불' 국면 또한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듯하다(물론 국민의 '정치의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놓은 건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공로다. '경제 대통령'은 아무래도 헛말이었다). 국정을 책임질 의사나 능력이 없다면 일찌감치 '사후'를 대비해야 하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혹 브레히트의 시집이 그럴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어떤 시들을 읽어야 할지도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다.  

한겨레21(08. 06. 12) 브레히트가 대통령에게

참여정부가 물러나고 ‘오해정부’가 들어섰다는 농담을 들었다. 영어몰입 교육도 오해, 숭례문 국민모금도 오해, 언론사 성향조사도 오해, 급기야 검역주권 포기도 오해.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김소연, <마음사전>)라는 한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불과 100일 만에 이 정부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이해한 셈이다. 국민이 정부와의 결별을 심각하게 고민하자 이 정부는 그제야 소통 운운하면서 반성하는 척한다. 다들 알다시피 부인에게 폭력을 일삼는 남편도 술 깨고 나면 처절하게 반성은 잘하는 법이다. 이 정부는 도대체 소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심란한 마음으로 신간 시집을 뒤적였으나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다 오랜만에 브레히트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전문)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산다. 행여나 빗방울에 맞아 죽을까봐 두렵다는 이 엄살은 또 얼마나 애틋한가.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란 이런 것이다.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위해 산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것이고, 당신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소통’은 정반대에 가깝다. 일방적으로 말하려 하고 오히려 국민을 바꾸려 한다.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가(街)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해결방법’ 전문)

이미 다른 칼럼에서 한 번 인용했지만 다시 옮겼다. 1953년 6월에 스탈린이 사망한 직후 동독의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동독 정부의 대답이 걸작이다. ‘정부는 인민들에게 실망했다.’ 브레히트의 냉소는 더 걸작이다. ‘차라리 인민을 다시 뽑아라.’ 이명박 정부도 2 대 8로 싸우려거든 차라리 국민을 다시 뽑는 편이 낫겠다.

이 두 편의 시는 소통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앞의 시는 “아침저녁으로” 곱씹어야 할 진정한 소통의 방법을, 뒤의 시는 실로 간단하기 짝이 없는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이 시들을 대통령과 함께 읽고 싶다. 이 정부는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래도 감을 못 잡으실까봐 한 편 더 읽는다.

“이제 한 사람의 지도자가 된 당신은 잊지 말아라,/ 당신이 옛날에 지도자들에게 의심을 품었었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의심하는 것을 허용하라!”(‘의심을 찬양함’에서)

그래도 안 된다면, 그래서 만약 쇠고기 문제 어물쩍 넘어가고 마침내 대운하까지 강행한다면, 그때는 이런 시.

“칠장이 히틀러는/ 말했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갓 만든 회반죽을 한 통 가져와/ 독일 집을 새로 칠했다네./ (…) 이 신축가옥은 곧 완공됩니다!/ 그리고 구멍 난 곳과 갈라진 곳과 빠개진 곳들/ 모든 곳을 모조리 발라버렸다네./ 모든 똥덩이를 온통 발라버렸다네.// (…)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칠장이 히틀러의 노래’에서)

청년기에 화가를 지망했던 히틀러를 ‘칠장이 히틀러’라 조롱하고 있는 시다. 대운하 강행을 발표하는 순간 우리는 ‘칠장이 히틀러’를 ‘불도저 이명박’으로 바꿔 읽으려 한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20세기 최악의 정치인과 비교하는 사태가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06. 15.

P.S. 스탈린주의자로서의 브레히트의 면모에 대해서는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의 2부 3장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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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6-16 00:0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지젝이 읽은 브레히트를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8-06-17 00:27   좋아요 0 | URL
^^

마립간 2008-06-16 15:21   좋아요 0 | URL
나경원 대변인이 방송에서 '그럼 대통령을 바꾸시겠습니까?'라는 이야기한 것을 동영상으로 보았은데, 상대편에서 '그럼 국민을 바꾸시겠습니까?'라고 맞받아 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로쟈 2008-06-17 00:2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연두부 2008-06-16 13:0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책장 어딘가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을건데 함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로쟈 2008-06-17 00:28   좋아요 0 | URL
한때 많이 읽히던 시집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31   좋아요 0 | URL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의 신조-불평은 얼마든지 말하라 그러나 나는 복종시키겠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프리드리히를 부러워하지 않을까요.오...모름지기 지배자란 저래야 하는데...하면서...

로쟈 2008-06-19 00:01   좋아요 0 | URL
프리드리히의 신조는 칸트의 그것이기도 하잖아요. 비판하라, 하지만 복종하라...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을 읽다가 이탈리아의 사상가 잠바티스타 비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사이드와 비코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2019521 참조). 그래서 그의 <새로운 학문>(1744)을 비롯한 몇몇 관련서를 독서목록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관련자료를 잠시 검색해보다가 기사 하나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역사학자 조한욱 교수가 쓴 비코 학회 참관기이다.  

한겨레(05. 11. 25) 여기는 나폴리 역사학 주춧돌 앞에 서다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는 서양 역사학의 기틀을 세운 이탈리아 학자다. 서구는 물론 중국·일본의 학계에서는 그를 인문학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삼는다. 그의 사상이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의식에 두루 영감을 줬다고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서 그 이름은 너무도 낯설다. 비코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 인문학의 바탕이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가 글을 보내왔다. 지난 10일부터 사흘간(현지시각) 나폴리에서 ‘잠바티스타 비코: 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다. 그의 글이 비코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마르코 폴로 탄생 75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곳곳에서 방대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마르코 폴로는 동서 교류의 문을 연 사람이니, 동서 문화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전체 학술대회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탈리아의 동양학자와 이탈리아를 연구하는 동양의 학자들이 모일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나폴리에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철학자 비코에 초점을 맞췄고, 나는 여기에 초청받았다.

비코가 누구이기에 이탈리아의 거국적인 행사에 그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가 포함되었을까? 비코는 보통 시대를 앞서 태어난 천재로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수학적 지식만이 진리의 근거라고 여기던 시대에 그는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사회와 인간의 역사가 연구의 합당한 대상이라고 설파했다.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의 존립 근거를 확인해준 것이다. 그는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그 시대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았다. 원시시대에는 신화와 민담과 같은 것이 사람들의 언어였기 때문에, 한때는 무시당했던 그런 자료가 그 시대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입구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코에게서는 ‘언어적 전환’, ‘담론 분석’, ‘상징적 해석’ 등등 현금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류를 이루는 방법론의 선례를 찾을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 헤이든 화이트, 게오르그 가다머, 에드워드 사이드와 같은 인물들이 비코를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데카르트 과학적 방법론과 대적
열성가들의 간헐적이고 고립적인 노력으로 간간히 빛을 보던 비코는 1968년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뉴욕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어떤 한 사상가를 기념하는 학술 대회로서는 최대 규모였던 이 심포지엄의 논문집은 1970년과 1973년 사이에 거의 90개에 달하는 학술 잡지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미국과 나폴리의 비코 학회 주관으로 비코에 대한 학술대회가 거의 매년 열려 국제적인 학문 교류의 가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이번 학술대회는 올해가 갖는 의미를 고려하여 특히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 아래 거국적으로 열린 것이었다.

11월10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시작됐다. 첫번째 주제는 ‘비코의 동양’이었다. 그 중 두드러진 것은 장롱시 홍콩 성시대학 교수의 발표였다. 비교문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장롱시는 비코가 동서의 교차 이해에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비코의 원리야말로 다른 문화에 대한 미적인 감수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서 문화의 융합에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11월11일 오전에 두번째 주제인 ‘동양의 비코 연구’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우에무라 타다오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는 비코의 <이탈리아인 태고의 지혜>를 번역한 노학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하여 소렐과 크로체를 통해 비코를 알게 되고 마침내 후설의 안내로 비코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는지 감명 깊은 여정을 술회했다. 마리오 사바티니 베네치아대학 교수의 ‘주광키안과 비코’가 이어졌다. 주광키안은 <새로운 학문>을 중국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사바티니 교수는 본디 미학 교수였던 주광키안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며, 니체와 크로체와 마르크스를 거쳐 마침내 비코의 <새로운 학문>에서 학문과 예술에 합당한 전망을 찾게 된 과정을 상술했다.

다음으로 나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에서 비코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뤄져왔다고 밝히며 이종흡 경남대 교수의 책 <마술, 과학, 인문학>과 나의 학위 논문 <미슐레의 비코를 위하여>의 내용을 소개했고, 앞으로 비코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 관심 있는 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고, 원전으로부터 옮긴 비코 저서의 충실한 번역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후에 세번째 주제인 ‘비코의 테마에 따른 동양과 서양’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주로 언어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중국어가 상징적으로 갖는 의미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뛰어난 것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모라비아 대학교 정화열 교수의 ‘비코와 중국어원학 재검토’였다. 사정상 불참하여 다른 사람이 대독한 논문에서 그는 중국어를 분석하며 그것이 인간의 몸과 관련된 기호임을 증명했다. 몸과 관련된 언어란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 언어다. 이러한 ‘문자 이전의 언어’를 통해 인류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비코야말로 자신의 시대를 훨씬 뛰어넘은 사상가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정 교수의 역량을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영감의 원천
마지막 날, 장소는 나폴리 동양대학교로 옮겨 속개됐다. 전날 오후의 주제가 오늘은 역사, 인류학, 종교의 분야로 이어졌다. 이 학술대회 전체를 조직했던 다비드 아르만도 이탈리아 학술원 연구원이 동양과 서양의 봉건제도의 차이에 대해 발표한 뒤, ‘비코 시대 유럽 문화에 비쳐진 동양인의 성격’, ‘비코와 보쉬에에게서 보이는 유교’, ‘잠바티스타 비코와 노리나가 모토오리’와 같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발표가 이탈리아 학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발표 뒤 곧바로 비코를 동양어로 번역하는 문제에 대한 원탁토론이 벌어졌다. 비코를 직접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한 학자들이 체험담을 이야기했고, 나는 앞으로 비코를 원전으로부터 번역할 때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말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학자들은 번역에 개재된 일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관중석과 질의응답이 있은 뒤 학술대회는 막을 내렸다.

학술대회는 낮에만 열린 것이 아니었다. 밤마다 만찬이 벌어졌다. 여기에서 많은 외국의 학자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탈리아 철학을 전공하는 프랑스 학자인 피에르 지라르는 나의 발표에서 미슐레가 나오는 바람에 놀랐다고 말하며, 내가 인용했던 프랑스의 비코 학자 알렝 퐁스가 자신의 친구라고 한다. 가오이 베이징 대학교수와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모더니즘을 산업화와 동일시했다. 그 정의가 너무 협소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미적 모더니즘과 같은 것은 사소하다”고 말함으로써 산업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중국의 절박함 또는 부박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보였다. 어쨌든 한국과 중국의 프랑스사 전문가들이 함께 만날 기회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는 공감했다. 키마에 도시야키 오사카대 교수와도 친해져, 내년 3월 오사카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초청하겠다고 꼭 참석하여 달란다.

가장 친밀감을 느낀 인물은 가장 말이 통하지 않았던 우에무라였다. 작년에 뇌에 문제가 있어 거의 사경에 이르렀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그는 건강 때문에 부인이 동반했다. 부인은 젠더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우에무라는 내가 번역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한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학문적 문제에 있어 나는 그와 공감하는 점이 많았고, 그의 삶의 태도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중·일 학자 번역문제 공감
학술대회 틈틈이 크로체와 비코의 생가를 찾았다. 지금은 인문학 연구소로 쓰이는 크로체의 방대한 저택과 달리 비코의 집은 시장 속 좁은 길에 있었다. 50여 년 전 로버트 카포니리는 비코의 역사 이론을 다룬 저서에서 비코가 자라난 나폴리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폴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분주한 삶이 좁고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들끓듯 소란스럽게 펼쳐진다. 낡은 성문 앞에서 행상인들은 팔 물건을 소리치고, 등뼈가 부러질 정도로 짐을 실은 당나귀들은 그에 못지않게 많은 짐을 진 사람들과 갈 길을 다툰다. 탑의 그늘에는 불쌍한 중생이 앉아 신과 행인에게 탄원과 구걸의 목청을 높인다.” 지금도 그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당나귀 대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 나폴리에서 비코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코는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운명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 신이 인류를 위하여 <새로운 학문>을 쓰도록 만들어준 기회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비코는 좁고 붐비는 시장 길에서도 방문객들에게 조금의 불편도 끼치지 않도록 관대하게 배려하는 나폴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로 세계의 학자들을 불러 모은 나폴리 학자들의 애정 속에 살아 있었다.(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

08. 06. 15.

 

 

 

 

P.S. 비코 관련서는 몇 권 되지 않는다. 중역본 <새로운 학문>(동문선, 1997) 외에, 비코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한 박홍규 교수의 <처음으로 돌아가라>(필맥, 2005), 그리고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종흡 교수의 <마술 과학 인문학>(지영사, 1999), 그리고 이사야 벌린의 <비코와 헤르더>(민음사, 1997) 등이 내가 떠올려볼 수 있는 책들이다. 참고로, ‘비코의 동양’이라는 발표를 했다는 장롱시 홍콩 성시대학 교수는 내가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 책 <도와 로고스>(강, 1997)의 저자인 듯싶다.

기사에 따라 비코 사상의 의의를 압축하면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수학적 지식만이 진리의 근거라고 여기던 시대에 그는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사회와 인간의 역사가 연구의 합당한 대상이라고 설파했다.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의 존립 근거를 확인해준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사이드가 <저항의 인문학>에서 짚어주고 있는 요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코가 <새로운 학문>을 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데카르트 학파의 명제, 즉 명백하고 분명한 관념들이 있을 수 있고, 이 관념들을 역사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실제 정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명제를 논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코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생각은 개개인의 인문학자와 역사가 서로 관련되어 있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31쪽)

때문에 "인문주의적 지식과 실천으로부터 중립적이고 수학적인 학문을 도출하는 일은 무익"하다. 여기서 '데카르트 vs 비코'라는 구도는 '수학 vs 역사학', '철학 vs 문헌학'으로 변주될 수도 있겠다(지젝이라면 '관념론 vs 유물론'이라고 불렀겠다). 아무튼 현재의 '인문학의 위기'와도 관련하여 '데카르트적 학문'과는 다른 '비코적 학문'에 대해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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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6-15 19:54   좋아요 0 | URL
오명가명 얼핏 이름만 듣던 학자였는데, 데카르트와 대립구도를 이루는 사상가였군요.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
매일 들르며 흔적을 남길때마다 포스트와 상관없는 질문을 남기게 되어서 송구스럽지만. 사실은 오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해 들렀습니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70479X
헤겔 역사철학강의가 '새로이'(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번역된 모양인데 출판사에 대해 (특히 인문서적의 경우) 개인적으로 그리 신뢰가 가지 않아서요, 학계나 인문 출판계에서 이 번역에 어떤 평이 있는지, 혹 자문을 구할까 해서 글을 남겨요.
후후. 매력적인 책인데.. 혹시라도 번역(오역)으로 인해 허우적 거리고 싶지는 않아서요.

로쟈 2008-06-15 20:06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한 별다른 서평은 나와 있지 않구요, 사실 전공자들은 번역서를 인용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오역서들에 대한 지적도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삼성출판사에 나온 <역사철학강의>와 같이 읽으시면 좀 낫지 않을까 싶고, 영역본 등의 다른 번역본을 더 참조하시는 게 안전할 거 같습니다...

열매 2008-06-18 02:12   좋아요 0 | URL
책값이 싼 맛에--세로줄 2권짜리 삼성판이 읽기 불편하기도 해서--사서 비교해 읽어보았는데 가독성이 훨씬 좋습니다. 권기철씨의 <헤겔과 독일관념론>도 수월하게 참고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시리즈는 회복출판물들이라는데,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적이 있었던 마치 서양백과사전처럼 두 단락으로 나누어 빽빽했던 전집인 것 같습니다. 재번역은 아닌듯하고 원로교수님들을 번역물을 다듬은 듯 합니다. 중역본도 있는데 <수상록>완역본 등 몇몇은 구입할 만 한듯 합니다.

로쟈 2008-06-18 21: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몇 권 구입했습니다. 새 번역은 아니지만 저렴해서요.^^

redology 2008-06-18 20:19   좋아요 0 | URL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중간에 나온 "주광키안"은 주광잠(朱光潛)을 말합니다. 현대중국어 표기인 주광첸(Zhu Guangqian)을 주광키안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그의 국내 번역은 <시론>(동문선)이 있습니다.

로쟈 2008-06-18 21:36   좋아요 0 | URL
별로 중요하진 않더라도 아주 요긴한 정보인데요. 감사.^^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26   좋아요 0 | URL
데카르트와 비코의 대비는 서양사학사에선 널리 퍼진 등식 같습니다.콜링우드의 역사학의 이념에도 나오고요.트뢸치는 말년에 데카르트의 자연주의는 극단으로 가면 인간의 황폐화를,비코의 역사주의는 상대주의 특유의 허무주의를 가져오니 중용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구요.독일에선 비코를 낭만주의쪽에서 받아들였고 그래서 독일 낭만주의와 역사주의는 겹치는 게 많죠.그 대표가 헤르더죠.비코가 민족의 전승문화 쪽에 대한 방법론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영불에 비해 뒤떨어진 독일 지식인들이 자국의 옛 전승을 연구할 때 영감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헤르더가 리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사야 벌린이 헤르더에 관심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쪽이 러시아 령이라서 슬라브에 대한 관심이 헤르더에겐 많았죠.

로쟈 2008-06-19 00:03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에서 헤르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맞습니다, 벌린도 리가 출신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6-19 00:59   좋아요 0 | URL
헤르더는 민족고유의 문화를 강조하긴 했지만 국수주의는 배격한 열린 사나이였죠.그래서 러시아 쪽에서도 호감을 가진 모양이군요.
비코는 헤르더가 독일에 소개했으니 미슐레가 프랑스에 소개한 것보다 더 앞서죠.미슐레는 헤르더의 VOLK개념을 수용했다고 합니다.우리나라의 민중개념과 비슷한 것 같아요.윌슨의 <핀란드역으로>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인물이 미슐레죠.

로쟈 2008-06-19 23:17   좋아요 0 | URL
'VOLK'는 영어로는 그냥 'people'로 번역되는 듯한데, 우리말로는 좀 애매한 거 같습니다. 철학쪽으로 오면 여러 번역어가 혼용되고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