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초반부터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바람에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겸사겸사 올릭픽을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시각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한겨레21의 '중국 지식인 연쇄인터뷰'가 첫꼭지로 경제학자 쭤다페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서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37.html). 좌파이면서 중화민족주의자라고 하다(그의 책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어는 박현숙 전문위원이다.
한겨레21(08. 08..07)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당신들이 중국을 알아? 도대체 우리의 무엇을 이해한다는 거야?”
“인권? 보편 가치?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인권을 부르짖는 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유혈전쟁을 부추긴단 말이야! 서방은 우리에게 인권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의 인성부터 들여다봐야 해.”
지난 7월22일 오후 베이징의 시즈먼교 부근 한 찻집.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새, 그는 시종일관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의 개혁·개방은 “외국 기업들에 중국의 노른자를 고스란히 ‘갖다바친’ 매국 정책이며 중국을 파멸로 이끌었다”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 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런 그를 ‘타고난 좌파’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성씨 역시 ‘좌’(左·쭤)다. 그는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이 중국 좌파 중에서도 가장 ‘좌’에 속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쭤다페이, 1952년생인 그는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연구원이자 교수다. 문화대혁명 당시 가장 어린 ‘홍위병’ 중 한명으로 ‘활약’했으며, 2년간 중국 동북지방의 한 농촌에서 ‘하방 생활’을 했다. 그 뒤 군복무를 거쳐 몇 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인 1978년부터 랴오닝대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2002년 출간된 대표작 <혼란의 경제학>에서 그는 ‘중국 특색의 경제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중국 지식인 사회에 일대 논쟁을 불러왔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은 소수를 위해 다수 사람들과 국가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며, 소수가 마음대로 공동의 재부를 강탈하도록 방임하고 있다. 또한 국제자본이 중국에서 이윤을 약탈하는 데 일조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유화를 낳았을 뿐 아니라, 가장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유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한 대가로 소수는 폭발적인 부를 이뤘고, 중국은 국제자본의 통치와 수탈을 당하고 있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이 중국 사회에 가져온 득과 실은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빠른 경제발전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방향의 견지라는 측면에서는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소유제 문제에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실제로 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도적 역량이 됐다. 중국 정부는 비록 공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한다고 발표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이미 사유제를 실행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과거보다 개인의 자유가 많이 확대됐고, 공산당의 통제력도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개혁·개방 뒤 전면적인 사유화는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고, 외국 기업에 대한 지나친 우대 정책은 중국의 많은 이익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중국에 많은 대기업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핵심적인 기술이 없다. 핵심 기술은 죄다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회 모순의 확대 역시 큰 문제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 내부에 많은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빈부 모순, 정부와 인민대중 간의 모순 등이 곳곳에서 민중봉기와 시위를 유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뜨거운데.
=시장경제 환경이 발전할수록 민족성과 지역성은 더욱 강렬해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봐라.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미국을 배척한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시장화가 더욱 발전할수록 민족주의 경향도 강화된다.
최근 중국의 ‘80후세대’(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민족·애국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맹목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중국 정부는 비록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애국주의 운동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조직화’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화되지 않고 리더가 없는 운동은 자칫 비이성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서방이 먼저 자극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중화민족주의를 지지한다. 서방세계는 중국의 ‘굴기’(성장·불쑥 솟아오른다는 뜻)를 걱정한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중국위협론을 떠들어왔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중국의 굴기는 필연이며, 단지 옛날로 돌아가는 ‘회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청조 말기 중국은 서방의 발전을 무시했다. 그들은 최근 200년 동안 무기를 이용해 중국을 개방시켰고, 경제발전 역시 중국을 훨씬 더 앞섰다.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자존심을 회복해가고 있다. 중국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니까 서방세계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을 다시 분할시키고 흠집내고 싶어한다.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창당 29주년 기념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방을 선생으로 여기고 싶지만 왜 선생은 학생을 항상 때리기만 하는가.”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래 중국은 서방의 비위를 맞추면서 올림픽을 치르고 싶어했으나, 그들이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만일 결혼식 집 앞에서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면 혼주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중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잔칫집이다. 그런데 잔칫집 앞에서 그들은 온갖 난동을 부린 셈이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좌파 지식인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올림픽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 인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서방세계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올림픽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한다. 세계인으로부터 존중을 받고자 한다. 그럼에도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더 ‘세계화’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경제 자유주의와 사유화,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세계화는 이미 중국을 다국적 기업의 이윤 쟁탈·약탈장으로 만들었다. 또 올림픽을 통해 서방은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라고 믿는 것들을 중국에 주입시키고 싶어한다. 그런 의도를 경계하기 때문에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이다.
중국 내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시장화를 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의 폐해와 언론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부재를 지적하는데.
=공산당 체제는 크게 보면 인권을 보장한다. 부족한 것은 단지 다당제일 뿐이다. 다당제는 사실 중국에 맞지 않는다. 서방은 인권과 보편 가치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중국 쓰촨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당연하다’ ‘싸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 여배우 샤론 스톤은 “당해도 싸다”라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탄압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식이었다. 이게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인가? 그렇게 인권을 중시하고 인도주의 등의 보편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이나 서방세계가 이라크와 옛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봐라. 그리고 그들이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세계적인 전쟁과 유혈 사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중국을 향해 감히 보편 가치를 떠들어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국이 나아가야 할 가장 합리적인 방향은 뭔가.
=현재 중국에는 사유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좌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 교육, 부동산, 노동계약법 등의 시장화 문제 역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시장화에 반대한다. 특히 의료 방면의 시장화는 절대 안 된다. 이것들은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다. 자유주의·개방파 지식인들은 국유경제를 없애고 전면적인 사유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국유경제는 보존돼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국유경제가 경제의 선두 작용을 해야 한다. 경제에도 일정 정도 계획성이 보존돼야 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상대적인 독립 자주를 해야 하고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중국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제에서 주도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반드시 중국 기업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유기업이 주도적 지위를 점해야 한다.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확대에 찬성하지만 서방식 민주주의는 절대 반대한다.
08. 08. 12.
P.S. 지면기사로 읽어보니 '연쇄인터뷰'의 두번째 편도 마저 실려 있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52.html). '체제비판자 허웨이팡 교수'와의 인터뷰인데, 같이 옮겨놓는다.
한겨레21(08. 08. 07) "정부의 통제는 달라진 게 없다”
“언론 자유도 없는데 무슨 자유로운 토론이 있고 논쟁이 있을 수 있나?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들이 모여서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합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모이지 말라, 토론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진정한 논의가 이뤄지겠는가?”
허웨이팡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게’ 발언을 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간접화법을 통해 현 체제를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일관되게 직접화법으로 얘기했다. 심지어 최근 들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 비해 변화된 건 거의 없고 개혁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언론·사상에 대한 통제는 예전보다 훨씬 강경해졌다. 그들이 뭔 일을 하고 있는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지난 2006년 3월4일, 중국 국무원 산하 경제체제 개혁연구회가 주최한 중국 시장화 개혁 방향 토론회(‘시산회의’로 더 유명하다)에서 일대 파장을 몰고 온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회의에서 “공산당은 헌법에 위배되는 조직”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데 이어, 공개적으로 다당제와 군대의 국가화, 전면적인 언론·집회의 자유 등 대대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그의 발언이 외부에 알려진 뒤 인터넷을 중심으로 중국 정치 개혁에 관한 좌·우파 진영의 거센 논쟁이 일기도 했다. 지난 7월24일 오후 베이징대 앞 서점 ‘만성서원’에서 1시간30분가량 허 교수와 마주 앉았다.
올림픽은 중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에 민주정치를 촉진하는 등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2001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이후 중국 내 많은 지식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 사회가 변화하길 희망했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확대되길 바랐다. 하지만 (티베트 시위 사건 등)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올림픽 분위기 변화는 이런 희망이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올림픽 기간 중 일시적으로 언론·취재의 자유 등이 보장될 수 있겠지만 올림픽 뒤에는 다시 예전과 같은 통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 발전 방향의 대세가 민주·개방으로 가는 것임은 확실하다.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압제하는 사회주의 관리 방식이 이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시장경제와 합리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사회가 관리돼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3~5년 이내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사회가 민주·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중국인들은 이미 개방사회에 익숙해 있다. 사람들의 민주의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일당 집권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인민대표대회가 공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여부, 정당과 군대의 관계, 언론 자유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언론이 돼가고 있다. 이미 인터넷은 많은 지식인들이 정보를 얻는 주요한 경로가 됐기 때문에 강경한 언론 통제 체제는 조만간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은 지금 과도기에 처해 있다. 민주·개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고,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통된 인식 기반도 없다. ‘무엇이 당연히 변화해야 하는 것들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은 국가와 사회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나.
=개혁·개방의 가장 큰 성과는 빈곤을 줄였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개혁·개방은 확실히 성공했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개인들의 자유가 확대된 것이다. 예전에는 국가가 모든 개인을 통제했고 모든 개인은 자신의 ‘단웨이’(單位·회사나 기관)에 소속돼 모든 개인 행위를 통제받았다. 개혁·개방은 이런 통제에 변화를 가져왔고, 개인을 통제하던 단웨이 체제는 해체됐다. 그 결과 개인들은 일정한 자유를 갖게 됐다. 당과 정부, 공민의 관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왔다. 당과 정부는 더 이상 인민들의 주인이 아니며, 정부의 말이나 마오쩌둥의 어록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국가 지도자의 일부 발언이 종종 사람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은 옛 소련의 개혁 방식과는 다르다. 소련의 개혁은 모든 것을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엎었지만, 중국은 지난 30년간에 걸쳐 아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다른 경제·사회 구조 변화에 비해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당과 정부의 통제 스타일에도 변화가 없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일 변화 중이지만 전체적인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3월14일 티베트 시위 사건 뒤 중국인들, 특히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반서방·애국주의 운동이 강하게 불고 있다.
=‘정보’의 문제다. 중국 정부는 사실 서방매체에서 보도한 내용 중 극히 편향적인 것들만 부풀려서 제공했다. 서방매체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2007년 중국은 이미 외신들에게 취재 개방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티베트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방매체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서방매체로 하여금 중국 정부를 비판하게 만들었다. 흔히 ‘80후 세대’라고 일컫는 중국 신세대들의 민족주의 열풍도 정부가 조장한 것이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이 구세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많이 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 등과 같은 중국 정치사의 민감한 사건을 연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문화대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이 때문에 마오쩌둥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족 통치정책은 서방인들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자치구라고 하지만 사실상 자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농노 사회였던 티베트를 해방시켰고 경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의 종교 신앙을 존중하고 있는지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민족이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서방에서는 이런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는데.
=중국 정부는 사실 예전만큼 강하게 ‘중국의 굴기’를 선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 국가와 서방세계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중국은 ‘평화로운 굴기’를 주장하지만, 외부에선 중국이 인권을 존중할 것인지와 외교에서 정의의 관점을 유지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단의 다르푸르 문제나 버마 군정 문제에서 중국이 취했던 자세를 들 수 있다. 서방 국가에서 중국의 굴기를 위협으로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들어 중국 내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과 중국의 정치제도가 예전과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외부 세계의 ‘중국 위협론’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정부는 최근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쓰촨에서 지진이 났을때 <북경완보>와 <남방주말>이라는 두 유력지 간에 재밌는 논쟁이 있었다. <남방주말>은 기사에서 지진을 통해 중국은 생명이나 인권·인도주의에 대한 ‘재발견’을 했고, 이것은 중국 사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향해 진보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경완보>는 반박 기사를 통해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공산당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지진 극복 과정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얼마나 웃긴 말인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마저도 부정하는데, 무슨 ‘소프트 파워’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먼저 우리 사회 내부에서 논쟁의 자유와 언론집회의 자유 등이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