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간 가운데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그린비, 2008)이 있다. '리좀총서'의 한권으로 나온 것인데, 제목 때문에 몇 군데 검색을 해봤었다. 콜브룩의 책 제목으로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국역본의 제목은 '미끼'였다.
좀 뒤적거리다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이 콜브룩의 또 다른 들뢰즈 입문서 <들뢰즈(Deleuze: A Guide for the Perplexed)>(2006)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라는 점. '당혹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the Perplexed)'란 부제는 이 책이 포함된 컨틴뉴엄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다. 철학자 입문서 시리즈인데,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칸트, 헤겔, 니체, 그리고 리쾨르, 데리다 등까지 망라돼 있다. 비록 콜브룩의 책이 이번엔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시네마> 두 권에 초점을 맞춘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들뢰즈 입문서'인 것이다. 그러니까 '들뢰즈의 영화론을 중심으로 정리한 들뢰즈 철학의 핵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들뢰즈를 조금 읽으려다가 '이게 뭥미?'하며 투덜거릴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
이미 <질 들뢰즈>(태학사, 2004), <들뢰즈 이해하기>(그린비, 2007) 등을 통해서 탁월한 입문서 쓰기 능력을 과시한 바 있기에 콜브룩의 신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를 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것. 왜 출판사는 책의 원제를 노출시키지 않았을까?(알라딘의 책소개에도, 그리고 출판사측의 소개에도 원제는 누락돼 있다. 그건 <들뢰즈 이해하기>만 하더라도 '원제 Understading Delueze'가 병기돼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건 실수일까 의도일까? 짐작은 후자쪽일 듯하다. <들뢰즈 이해하기>의 속표지를 보니 저자 약력에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기재돼 있고, '리좀총서'의 근간 리스트에도 역시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제목이 바뀐 것이고, 그 의도는 들뢰즈 '입문서'보다는 들뢰즈의 '예술철학'에 방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 아니었을까('가이드'는 좀 식상하니까). 그런데, 그런 '의도'가 애꿎게도 잠시 나 같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다.
들뢰즈의 영화론에만 한정하더라도 사실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다. 데이비드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그린비, 2005)에서부터 파트리샤 피스터르스의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철학과현실사, 2007)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짐작엔 콜브룩의 책이 가장 쉬운 책일 것이다(가장 얇기도 하다. 물론 <들뢰즈: 철학과 영화>(열화당, 2004) 같은 책이 더 얇긴 하지만, 나로선 건질 게 없는 책이었다). 이후에 좀더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로도윅의 책이나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시네마>(동문선, 2006)를 집어들 수 있지 않을까?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의 1장 읽기는 '영화의 짧은 역사'(http://blog.aladin.co.kr/mramor/714446) 참조. 지젝의 들뢰즈론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은 거기에 선택사양으로 부가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리좀총서' 가운데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은 장-자크 르세르클의 <들뢰즈와 언어>(2002)이다. <언어의 폭력> 등의 저작을 갖고 있는 르세르클은 루이스 캐럴과 무의미 문학의 전문가이다(그의 '앨리스론'과 '롤리타론'도 챙겨둘 만하다). 최근작으로는 그레고리 엘리어트와 공저한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2006)도 눈에 띈다. 들뢰즈의 예술철학 이상으로 중요해 보이는 것이 내겐 그의 언어철학이어서이다...
08. 08. 12.
P.S. 한가지 덧붙이자면, 또 다른 입문서로 토드 메이의 <질 들뢰즈>(경성대출판부, 2008)도 이번에 출간됐다. '들뢰즈 입문서의 지존'이 어느 책으로 판가름날지 살짝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