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술저널에 실릴 글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의 한 대목을 읽어보면서 번역과 '반동적 행위'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따져본 것이다. 내가 읽기에 이 대목의 국역본 번역은 다소 부정확하며 그에 대한 지적도 겸하고 있다.   

번역이 능동적 행위라면 번역비평은 반동적 행위일까? 혹은 번역이 작용이라면 번역은 반작용일까? 그래서 번역이 주인의 도덕이라면 번역비평은 노예의 도덕에 불과한 것일까? ‘번역비평’이란 말을 염두에 두고서 들뢰즈가 읽는 니체를 따라가노라면 문득 그런 의문을 갖게 된다. <니체와 철학>의 네 번째 장은 ‘원한에서 양심의 가책까지’를 모토로 하고 있는데, 들뢰즈가 제일 처음 인용하는 니체의 문장은 “La vraie réaction est celle de l'action”이다. 우리말 번역에서 이것은 “참된 반작용은 작용의 반작용이다”(<니체와 철학>, 201쪽)라고 옮겨졌다. 반면 영역본의 “The true reaction is that of action”을 옮긴 번역은 “진정한 반작용은 행위의 그것이다.”(<니체, 철학의 주사위>, 193쪽)라고 옮겼다. 이 대목은 <도덕의 계보>의 제1논문의 10절 첫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어판 니체 전집본에서는 가까스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이 원한은 실제적인 반응,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 해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원한이다."(<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367쪽) 

독어본을 옮긴 이 인용문에서 “실제적인 반응, 행위에 의한 반응”이라고 옮겨진 부분이 들뢰즈의 인용문에 상응한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번역에 대한 ‘실제적인 반응,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곧 참된 반응을 포기하고 단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보상하는 것, 번역을 통한 반응 대신에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하는 제스처로 자신을 보전하는 것, 혹 그것이 번역비평은 아닌가? 니체는 그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라고 불렀다. 번역비평의 ‘창조성’이란 바로 그런 노예 도덕의 산물은 아닐는지? 그것은 반작용이자 반동적 행위이며 결국은 ‘원한’에 불과한 것은 아닐는지? 

일견 이것이 번역비평이 내몰린 궁지이다. 번역비평을 닦달하는 의혹과 비난의 시선은 어차피 능동적인 힘이 아닌 한에서 불가피하게 뒤집어써야 하는 숙명일까?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원한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하게 물어야겠다. 과연 원한이란 무엇인가? 들뢰즈에 따르면, 니체 자신이 일부러 갖다 쓴 불어 단어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정확한 정의를 제공한다. 즉, 그것은 “la réaction cesse d'être agie pour devenir quelque chose de senti”이다.

우리말 번역본은 “원한은 느껴진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 영향받길 중단한다”(<니체와 철학>, 202쪽)고 옮겼고, 영역본의 “reaction ceases to be acted in order to become something felt (senti)”를 옮긴 번역본은 “반동적 행위는 느껴지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 행위하게 되기를 중지한다”라고 옮겼다. 편하게 이해하자면, ‘르상티망’은 느끼기 위해서 반응하지 않는 걸 뜻한다. 즉, 느낌만을 계속 축적할 뿐 그에 대한 반응은 중지한 상태를 가리킨다. 국어사전에서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라고 ‘르상티망’을 풀이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적절하다.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계속 마음에 쌓아두는 것을 ‘르상티망’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한은 느껴진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 영향받길 중단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영향 받기를 중단한다는 것은 보통 어떤 반응이나 행동을 예비하는 것이니까. 여기서의 이분법은 외부의 자극을 수동적으로 수용만 하느냐, 아니면 그것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느냐이다. 물론 이때의 반응은 ‘참된 반작용’을 가리킨다.

들뢰즈는 이것을 프로이트의 ‘hypothèse topique’를 소개하면서 풀이한다. 한 번역본은 ‘위상학적 가설’이라고 옮기고, 다른 번역본은 영역본의 ‘topical hypothesis’를 따라서 ‘총론적 가설’이라고 옮겼지만 내용상으론 ‘장소’에 관한 가설이다. 어떤 가설인가? 자극/흥분을 수용하는 체계(시스템)와 그 흔적을 보존하는 체계는 동일한 체계일 수 없다는 가설이다. 어떤 하나의 체계가 자극을 성실하게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또 다른 자극을 계속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때문에 애초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한 체계는 자극들을 수용하지만 아무것도 잡아놓지 않으며 따라서 어떠한 기억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한 체계는 그 자극들을 항구적인 흔적들로 변화시켜서 보존한다. 이것이 이른바 반응적 장치의 두 체계이며 이들은 각각 의식과 무의식에 상응한다. 니체의 구분에 따르면, 반응적 무의식은 기억의 흔적에 의해, 항구적인 자국에 의해서 정의된다. 반면에 또 다른 반응적 힘은 의식과 구별되지 않으며 이것은 항상 새로운 수용에 열려 있는, 새로운 것들을 위한 장소이다. 이 두 번째 종류의 반응적 힘에 대해서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편의상 두 종의 국역본과 영역본을 인용한다(강조는 필자의 것이다). 

"두 번째 종류의 반응적 힘들은 우리에게 반작용이 어떤 형태로 또 어떤 조건 아래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반응적 힘들이 의식 속의 흥분을 대상으로 삼을 때, 상응하는 반작용 자체는 영향을 받는 어떤 것이 된다."(<니체와 철학>, 204쪽)

"두 번째 종류의 반동적 힘들은 우리에게 반작용이 어떠한 형식으로 어떠한 조건에서 활동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동적 힘들은 의식적인 자극을 그것들의 대상으로서 취급한다. 그러면 그때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은 그 스스로 작용된다."(<니체, 철학의 주사위>, 196쪽)


The second kind reaction can be acted: when reactive forces take conscious excitation as their object, then the corresponding  reaction is itself acted.(Nietzsche and Philosophy, 113쪽)   
 
영역본에서의 ‘be acted’는 문맥상 ‘능동적이 된다’ 정도의 뜻이다(‘영향을 받는다’는 식의 번역은 난센스이다). 여기서 의식의 반응은 ‘행위에 의한 반응’으로서의 ‘참된 반작용’에 부합한다. 그래서 니체는 의식이 겸손해야 하다고 요구하면서도(어쨌든 의식 또한 반응적 힘이므로)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반응적 체계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체계의 차이는 망각과 기억의 차이로 변주된다. 니체에게서 망각은 제동력이자 완화장치이고 재생력을 갖는 치료적 힘이다. 이러한 ‘능동적’ 힘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소화불량 환자의 처지와 같게 된다. 아무것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는 변비 환자 또한 연상시킨다). 우리가 현재 순간에 어떤 행복, 평온, 희망, 자부심, 기쁨 따위를 맛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망각의 능력 덕분이다. 망각은 반응적 힘이 스스로를 능동적이게 만드는 능력이다. 이것이 반작용으로서, 반동적 행위로서 번역비평이 봉착한 궁지를 타개시켜줄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0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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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11-2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좀 어렵네요. 번역비평이 반동적행위고, 반동적행위는 원한이고, 원한은 쌓아두는 거고, 쌓아두는 건 무의식이고, 무의식은 망각이고~전 이렇게 이해되는데요. 그러면 망각은 번역비평인가요? ㅎ 저 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번역비평도 너~무나 능동적인 것 같아서 사실 이런 논의 자체가 느낌이 안 오네요.^^

로쟈 2008-11-29 13:36   좋아요 0 | URL
무의식은 망각이고, 에서 다시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무의식은 기억/축적이고 의식이 망각이거든요...^^ 저도 이런 대목에선 국역본 <니체와 철학>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다시 옮긴 거구요(보통은 원저보다 번역본들이 더 어렵습니다)...

릴케 현상 2008-11-2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사실 무의식은 기억이고로 정리했다가...축적은 무의식이니까 다른 걸로 바꿔야 할 것 같아서 수정했거든요^^ 아 다시 고민해 봐야겠네요.

yoonta 2008-12-10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마이클하트의 책(들뢰즈사상의 진화)를 다시 읽다가 이와 관련된 구절을 찾아봤습니다..

"역량에 관한 들뢰즈의 연구는 두가지 층의 구별을 밝혀준다. 첫째 층위에서 그는 능동적 변용들과 수동적 변용들 간의 구별을 제시한다. 둘째 층위에서 그는 기쁘고 수동적인 변용들과 슬프고 수동적인 변용들 간의 구별을 제시한다." <들뢰즈 사상의 진화 309쪽>

여기에서 들뢰즈(마이클 하트)는 역량에는 순수한 형태의 긍정적인 힘인 '능동적' 변용들과 수동적(passive) 변용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런데 전자인 순수한 능동적 힘들은 "불투명한 채로 남아있"어서 분석하기 힘들고 후자인 두번째 층위의 수동적 변용들이 우리들의 (들뢰즈가 논한 것처럼)의식과 무의식간의 구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량이라는 것라는 것인데, 이는 다시 망각함으로써 새로운 실천practice의 기반이 되는 "기쁜" 수동적 변용들, 즉 의식과 느낌들을 축적만 하고 새로운 실천(행위)를 위해 망각하지 못하는 "슬픈" 수동적 변용들, 즉 무의식으로 구분될수 있다는 이야기네요.

스피노자의 기쁨joy의 실천으로서의 정치학이 가능하게 되는 지점도 결국 여기서였죠. 기쁨이라는 말이 흔히 오해되기 쉬운데 사실은 순수한 의미의 기쁨(능동성)이라기 보다는 슬픔과 수동성을 망각함으로써만 얻어지는 (수동적/반응적/반작용적/반동적) 기쁨이라는 것 이것이 이 말의 좀더 정확한 해석이죠.

로쟈님 덕분에 가물가물해질뻔 했던 내용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 나네요..^^

그런데 한 학술저널에 실릴 글의 일부라고 하셨는데..혹시 글의 전문은 볼수있을까요?

로쟈 2008-12-10 18:10   좋아요 0 | URL
<번역비평> 2호에 게재될 예정이고 곧 출간된다네요. 나머지는 예전에 쓴 걸 좀 간추린 거라 생략했습니다...
 

미국 한국학계의 거두였던 제임스 팔레 교수의 주저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산처럼, 2008)이 번역돼 나왔다. 반계 유형원과 조선 후기에 관한 연구서이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역사비평사, 2007)의 저자 김범 씨가 역자다. 책은 작년 이맘때 예고됐는데, 1년만에 약속이 이루어진 셈(http://blog.aladin.co.kr/mramor/1800757). 도이힐러 교수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 에드워드 와그너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 2007)과 함께 해외 한국학의 수준을 일별해볼 수 있는 저작이 아닌가 싶다(알라딘에는 아직 이미지가 올라와 있지 않다).

경향신문(08. 11. 26) “유형원 등 조선의 실학자들 진보적 평가는 절반의 진실” 

미국에서 한국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역사학자 제임스 B 팔레 전 워싱턴대 명예교수(1938~2006년)의 주저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유형원과 조선 후기>(산처럼)가 번역·출간됐다. 1996년 나온 이 책은 “전체 인구에서 노비의 비중이 30퍼센트를 훨씬 넘은 18세기 중반까지 조선은 노예제 사회였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한국학계를 풍미한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을 부정하는 주장이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 ‘정체성론자’라고 비판받았다. 팔레 교수는 이에 대해 “나를 비판하려거든 내 논저를 다 읽고 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1·2권 합해 1500쪽이 넘는 책은 반계 유형원(1623~1673년)의 <반계수록>에 나타난 경세사상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유교적 경세론의 실체를 추적했다. 특히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진보에 대한 현재적 관점이 투영된 연구에서 벗어나 방대한 사료와 연구성과를 치밀하게 섭렵하고 유형원의 사상과 조선시대 제도를 촘촘히 묘사했다.



팔레 교수는 “유형원을 비롯, 실학자들을 근대성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이는 유교적 경세론의 핵심을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실증과학으로 잘못 해석한 시대착오적 판단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유형원의 경제사상은 16세기의 상대적으로 퇴보적이었던 조선의 상황과 비교하면 진보적이었지만 서양은 물론 명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의 발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경세사상의 중심은 중국 고대의 제도에 머물러 있었다”면서 “현실적 경세론의 실천에서 중요한 지혜의 원천은 중국의 역사와 제도를 서술한 방대한 문헌이었으며 조선의 안전을 유지한 주요한 버팀목은 1894년 청일전쟁까지 청이 제공한 보호”라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교적 경세론을 해석하는 태도를 극복”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학문적인 경세론과 역사적 현실의 관계, 그리고 그 둘의 상호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건국부터 강화도조약까지 조선 사회에서 일어났던 주요 변화의 본질을 탐구했다. 나아가 조선 후기에 대한 최근 연구가 비농업적 상업 분야의 성장, 노비제도의 축소, 조세제도의 전환 등 ‘조선이 스스로 변화와 발전을 주도할 수 있었다는 증거’를 찾음으로써 그 사회의 근본적인 양상의 일부를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한다. ‘진보를 입증하려는 열망’이 농업의 지배와 양반 권력의 유지, 지식계층의 사고에 준 유교적 경세론의 영향에서는 관심을 거둬들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역자인 김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저자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때로는 너무 경직되거나 엄격하게 적용해서 유연하거나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줄였고 그 결과 풍요롭게 재구성할 수도 있는 사실을 때로는 너무 앙상하게 형해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김진우기자)

08. 11. 26.

P.S. 말이 나온 김에 에드워드 와그너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관련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7. 04. 12) "서구학자 객관적 논증 한국학 비교 틀 만들어”

“숫자 하나 확인하는 데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글 자체를 옮기기 위한 번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훈상(53)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에드워드 와그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조선 왕조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을 최근 번역·출간했다. 1993년 제임스 팔레의 ‘전통 한국의 정치와 정책’, 2004년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을 번역한 데 이어 와그너까지 번역함으로써 서구 한국학 대가의 주요 저서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우리말로 옮겨지게 됐다.

한때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영어로 번역한 와그너 교수는 옌칭도서관 내에 한국학 자료실을 만드는 등 35년간 하버드대에서 한국학 개척과 발전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완전을 기하기 위해 10년씩 걸려 번역서가 출간되는 동안 팔레 교수와 와그너 교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유일하게 도이힐러 교수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만 해도 서구에서 한국학은 명함조차 꺼낼 수 없던 변두리 학문이었다. “이들의 성과가 없었다면 현재의 한국학이 이 정도 위치에 오를 수 없었겠죠. 요즘 한국학을 문화산업과 연결하는데 사실 외국에서 한국학의 발언권은 지극히 낮습니다.”

서구 한국학자들과의 인연은 이 교수가 대학원 재학 시절 팔레 교수의 책을 처음 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 사학계에서 보이지 않았던 치밀한 고증 작업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데이터베이스화되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는 서구 한국학 대가의 책들을 탐독하게 됐다.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이론이 아니라 사실 있는 그대로의 논증, 이것이 우리가 이 서구 한국학 학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그들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한국학 기초자료들은 국내 사학자들도 인용할 정도로 견고합니다.”

이 교수는 와그너 교수가 조선왕조 전 시기 동안 진행된 748회의 문화시험 급제자의 인맥지도를 만들고도 조선시대 양반을 모르겠다며 중인 연구까지 폭을 넓힌 것을 그 예로 든다. 통계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이론’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타자의 시선이라는 의미 외에도 비교사적 의미도 함께 부여한다. 사회과학은 비교에서 출발하는 데 반해 한국사에서는 아직도 비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외국 것을 알아야 한국학이 어떻게 호소력을 가지고 어떻게 치환해서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있죠. 이들이 그런 한국학의 비교사적 틀을 만든 셈입니다.”
이 교수는 와그너 교수가 쓴 화원(畵員·궁중 도화서 소속 직업화가) 일람표를 원본 대조하면서 미술사학 관련 연구서까지 영역을 넓혔다. 3년 동안 고문서를 찾아다니면서 얻은 결과다. “서구의 한국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계 유형원의 대가로 불리는 팔레 교수의 저서도 한국 사학자들의 고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맹목적인 추종도, 배타적인 경계도 좋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구 한국학을 제대로 알고 이를 통해 한국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입니다.”(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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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5 23:49   좋아요 0 | URL
내재적 발전론이 수탈론과 연결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제국주의 옹호론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신물이 납니다.제임스 팔레나 카터 에커트의 주장 중 내재적 발전론 비판은 곰곰이 되씹어 볼 만합니다.내재적 발전론-수탈론 주장자들중 그 논리를 군사정권 정당화에 이용하면서 박정희 전두환 앞잡이 노릇한 인간말종들이 수두룩했습니다.요즘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면서 마치 내재적 발전론-수탈론이 정의인양 난리치는 자칭 타칭 진보파들을 보면 진짜 얼치기 진보들이 여러가지 하는구나....하는 생각 뿐.제임스 팔레는 군사정권에서 연구비라면서 주는 돈은 받기 거부한 지조라도 있었습니다.

로쟈 2008-11-26 21:49   좋아요 0 | URL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6 00:01   좋아요 0 | URL
와그너,도이힐러,팔레 외에 도날드 베이커도 추천합니다.조선에서 유교와 천주교의 갈등을 연구한 학자입니다.그리고 이런 책을 번역한 이훈상 씨같은 학자가 있어야지요.언어장벽때문에 원저를 못 읽었다면 한국사학자들은 번역본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맨날 애국심 팔아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갈 생각하지 말구요.

로쟈 2008-11-26 21:49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연구서도 있었군요. 아무튼 이들 일급 한국학자들의 성과는 좀 놀랍습니다...

노노바바 2008-11-27 04:26   좋아요 0 | URL
서구 한국학의 거장으로서 최근에 번역된 안드레 슈미드도 빼놓을 수 없겟죠?

노이에자이트 2008-11-27 14:14   좋아요 0 | URL
슈미드는 한국독립운동을 도와준다고 생각한 헐버트나 매켄지가 사실은 백인우월주의자로서 일본이 식민지 쟁탈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을 규탄했을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죠.그리고 신채호에 대한 해석은 박노자와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아직 게을러서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이번주 중대신문에 실은 기획서평을 옮겨놓는다.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탈식민주의 관련서 몇 권에 대한 언급이다. 분량상 자세한 검토는 다루고 있지 않다. 독서 목록 정도로 쓰일 수 있겠다(지면기사에서 '강철구' 교수가 '강철규' 교수로 오기됐다. 여기서는 정정해둔다).

중대신문(08. 11. 25) 백색신화의 숨길 수 없는 비밀

“세계의 일부는 부유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가난하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그리고 탈식민주의 이론의 가장 정교한 이론적 분석을 제시하는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경성대출판부)도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세계의 일부’가 주로 유럽과 북미대륙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세 대륙이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그렇게 둘로 분할돼 있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으로 분할돼 있는 것처럼 세계자본주의체제 또한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구도는 ‘구대륙이냐 신대륙이냐’ 곧 ‘유럽이냐 미국이냐’가 아니라 ‘유럽이냐 3대륙이냐’다. 그리고 이를 가르는 이념이 ‘식민주의 대 탈식민주의’다. 

식민주의와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이 점차 쌓이고 있다. 유럽의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식민주의는 노골적이지만 과학과 학문이라는 외양을 갖춘 유럽 중심주의는 은밀하다. ‘지리적 확산론과 유럽중심적 역사’를 부제로 내세운 역사학자 제임스 블라우트의 『식민주의자의 세계모델』(성균관대출판부)은 그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다(이러한 비판으로 국내에 먼저 소개된 책은 사미르 아민의 『유럽중심주의』(세종출판사)이며, 강철구 교수의 『역사와 이데올로기』(용의숲)도 서양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유럽중심주의가 은밀하게 작동하는 영역으로 지리학과 역사학을 지목한다. 예컨대, 이제까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세계의 특정한 한 부분, 곧 유럽과 ‘확장된 유럽’에서 발생했다는 세계사 인식이 대표적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유럽이 역사의 창조자이며 나머지 세계는 굼뜨거나 정체돼 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지리적으로 영원한 중심부(유럽)와 주변부(제3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거의 신념처럼 굳어진 ‘유럽중심적 확산론’이며 블라우트는 이 신념을 비판하고자 한다.

얼핏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복잡하며 어려운 시도다. ‘유럽적 보편주의’(이매뉴얼 월러스틴)라는 우리 인식의 근간을 건드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결론에 이르러서 블라우트가 제시하는 비판 과제는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적 이원론, 모든 것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확산되었다는 소위 빅뱅이론,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발생하여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역확산론, 산업혁명 이후 경제발전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산업화 확산론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유럽중심주의 해체도 요원하다는 것이 블라우트의 진단이다. 막스 베버를 비롯한 8명의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를 비판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푸른숲)를 『식민주의자의 세계 모델』에 연이어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리라. 



블라우트가 ‘유럽의 기적이라는 신화’라고 부른 것을 로버트 영은 간단하게 ‘백색신화’라고 이름 붙인다. 그 또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 대상으로 삼는데, 이 경우에도 사안은 좀 미묘하며 복잡하다. 그의 공격대상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전체를 도마에 올려놓는 것은 아니다. 그의 비판은 유럽적인 시각의 한계에 갇혀 있는 ‘유럽 마르크스주의’를 향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전복성에도 불구하고 유럽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유럽중심주의의 한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유럽의 한계 내에서만 움직이는 좌파의 역사적 시각을 유럽 외부의 세계에서 시작된 시각과 대결시킨다.”

유럽 마르크스주의가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대문자 역사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영은 이러한 역사주의가 제국주의와 공모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이 공모관계는 타자를 주체에 환원하는 ‘동일자 철학’에서도 확인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에 따르면, 이 역사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가장 근본적 차원에서의 인식론적 비판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러한 비판 자체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백색신화’뿐만 아니라 ‘서양’이란 개념 자체의 해체를 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는 우리에게 세계와 세계사를 다시 사고하도록 요구한다.

08.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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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들 논리대로 하면 근대화를 둘러싼 모든 논쟁은 허깨비를 놓고 싸우는 것이 되지요.근대화의 기준이 되는 서유럽 모델이란 자체가 해체되어 버리니까요.통쾌함과 허망함이 동시에 느껴지네요.

로쟈 2008-11-26 21:48   좋아요 0 | URL
서구식 근대화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논쟁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근대화=서구화 도식을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렇다고 제3세계 독재자들이 내세우는 해괴한 전통옹호는 딱 질색입니다.

로쟈 2008-11-27 18:13   좋아요 0 | URL
서구화는 근대화의 한 가지이죠. 역사적인 우연적 필연으로 우세종이 된...
 

아침에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환재 박규수 연구>(창비, 2008)을 출간한 김명호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다. '박규수'란 이름은 오래전 국사(그리고 한국사) 시간에나 들어보았다. 관심분야가 아니어서 따로 찾아 읽을 일은 없었는데, 예전에 나온 책으론 손형부의 <박규수의 개화사상 연구>(일조각, 1997)과 이완재의 <박규수 연구>(집문당, 1999) 정도가 검색된다. 모두 200쪽 남짓이다. 하지만 <환재 박규수 연구>는 800쪽에 육박하니 일단 분량으로 압도한다. 그런 만큼 당장에 손에 들 일은 없을 듯싶지만 출간 소식만큼은 반갑다... 

경향신문(08. 11. 24) "박규수는 19세기 ‘자주적 근대화’의 선각자”

환재 박규수(1807~1877)는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 조선 말기 개화파의 사상적 아버지이자 1866년 대동강에 침투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킨 주인공으로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라는 후광에 고종 시절 우의정을 역임하며 긴박했던 조선 말기 국정의 최일선에 섰던 배경도 있다.

지난해 <연암집>을 완역·출간해냈던 성균관대 한문학과 김명호 교수(55·사진)가 이번에 박지원 실학사상의 계승자 환재 박규수의 정치·사상·문학적 업적을 집대성한 <환재 박규수 연구>(창비)를 펴냈다. 그는 삶의 화려한 시기를 박규수 연구에 바쳤다. “처음엔 환재를 연구주제로 잡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역사의 밑바닥에서 기다리던 환재가 저를 잡고 놔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규수 연구에 40대를 다 보내고 이제는 정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가 박규수를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서울 인사동 고서화점에 나오는 박규수의 글이나 서간문의 양이 늘었고 값도 올랐다고 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19세기 인물인 박규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김 교수는 “18세기 실학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만 19세기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저조합니다. 식민지 시대의 전단계였기 때문인지 어둡고 부정적으로만 묘사됐을 뿐 문학사·사상사적으로 19세기는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잘 몰랐기 때문이죠”라고 운을 뗐다. 망국으로 결론나긴 했지만 시대적 격변기에 조선 안에서도 자주적 근대화의 고뇌와 고투가 있었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박규수가 있다고 했다. “박규수의 생애와 사상, 문학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19세기의 총체적 진실로 접근하는 지름길이자 식민지 근대화론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틀”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규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완성기’라 불리는 19세기의 시대사적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대책을 궁리했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 청나라 위원(魏源)이 세계 각국의 지리와 산업·인구·정치·종교 등에 대해 서술한 <해국도지(海國圖志)>를 조선에서 가장 먼저 구해 읽었다. 두차례에 걸친 연행(燕行·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는 일)에도 적극 참여해 국제감각을 익히려고 애썼다.

김 교수는 특히 박규수가 동양의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서양과의 교섭에 진취적으로 대처하려 했던 점을 들어 그에게서 조선판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규수의 시대는 조부인 박지원의 실학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해 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동도서기론의 맹아 단계까지 조심스럽게 나아갔습니다. 조부의 사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겁니다.”

박규수는 뛰어난 문학가·문장가였고, 동시대 최대 천문과학자로 일컬어지는 남병철·남병길 형제에 버금가는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의 지구본격인 ‘지세의(地勢儀)’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천문도 ‘평혼의(平渾儀)’와 태양관측기구 ‘간평의(簡平儀)’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서양식으로 표현하자면 ‘르네상스맨’이었던 셈이죠.”

그러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박규수는 주연보다 조연에 머물러 왔다. 학계에서도 박규수 전공자는 드물다. 지난해가 박규수 탄생 200주년이었지만 이를 기념하기 위한 변변한 학술행사조차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일반인들이 ‘단원’ 하면 김홍도를 떠올리듯 환재가 박규수의 호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요즘은 흔히 탄생 몇주년이니 해서 학술대회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새로 발행될 예정인 고액권 화폐에 들어갈 인물로 박규수만한 인물이 없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이번 책에서 박규수의 탄생에서부터 철종시대까지만 다뤘다. 당연히 고종시대 박규수의 활동에 대한 연구서가 다음 목표다. “박규수의 암중모색이 당시 상황에서 유효한 대응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근대화를 거쳐 좀 자신감을 가진 만큼 박규수가 추구했던 동도서기적인 근대화의 심화를 이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김재중기자)

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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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11-25 22:06   좋아요 0 | URL
아내가 이분 제자라는 걸 워낙 자랑스러워해서^^ 고전 공부라도 해야 할 판이네요

로쟈 2008-11-25 23:34   좋아요 0 | URL
존경받을 만한 학자이신데요.^^
 

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천정환의 <대중지성의 시대>(푸른역사, 2008)에 대한 것인데, '평'까지 할 만한 분량은 아니고 대략 책의 인상 정도를 전하고 있다. 지난주 아침에 기사를 송고한 날 오후에 아주 우연히 저자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우연도 있는 것이다.

시사IN(08. 11. 29) 아래로부터의 '앎의 문화사'

“경계 허문 총체적 지식이 새로운 부와 권력 낳는다.” 지난 10월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의 화두였다. 세계적인 석학과 정부 및 비정부기구 대표, 기업대표를 비롯하여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비 275만원씩 내고 ‘세계 최고의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인 이 ‘지식 축제’에 참여했다고.

저자는 지식과 지식경제, 그리고 지식의 문화사와 근대적 지식 주체의 문제를 종횡하기 위한 서두에서 먼저 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 따져본다. ‘지식은 돈이다’라는 우리시대의 지배적 발상과 사고, 그리고 그 실행이 ‘앎의 문제’에 대한 사회사적 관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발상을 뒤집으면, 돈이 안 되면 지식도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지식이 언제나 돈이 되고 권력이 되었던 건 아니다. 학자의 대명사인 괴테의 파우스트만 하더라도 무대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이런 한탄을 늘어놓지 않았나.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똑똑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요컨대 파우스트가 보기에 지식은 쓸모가 없으며 헛되고 헛되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파우스트는 시대를 잘못 만났을 따름이겠다. 이 대단한 ‘석학’은 철학가(철학자가 아니다!)에다 변호사에다 의사, 게다가 목사까지 겸업할 수 있을 테니 대번에 부와 권력을 쥐고 세계지식포럼의 초빙 강연자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지식의 가치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왔으며 또 지식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값이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문화사로서의 지식사’는 이러한 지식 가치의 변동과정을 다루면서 동시에 지식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선 지식 주체의 문제, 곧 ‘누구의 지식인가’를 문제 삼는다. 천재적인 개인과 권력의 시혜를 통해 이루어진 ‘지성사’가 아니라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소유한 지식과 그 앎-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지성사’다.

이 새로운 지성사가 드러내주는 바에 따르면 ‘대중지성’은 인터넷시대의 전유물도 그 부산물도 아니다. 1900년대의 민간학교와 1920년대의 독서회와 야학, 그리고 1970년대 노동야학과 1980년대 대학가의 ‘학회’와 ‘세미나’의 전통을 저자는 ‘자율적인 앎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했던 대중지성의 역사라고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이 땅의 대중은 “책을 불태우고, ‘표현’을 금지하며, 문체를 억압하고, 시키는 대로만 글을 쓰게 했던” 봉건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군부독재에 맞서 끊임없이 대중지성의 공간을 확보해왔다. 부와 권력을 낳는 지식만이 아닌 소통과 연대를 위한 지식도 있다는 걸 책은 웅변한다.

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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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단 지성이냐 개인적 성찰이냐
    from 서울비 2008-11-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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