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만큼 문화생활을 향유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지만 형편이 모자란 탓에 모니터로만 잠시 감상해보도록 한다. 멀리 산티아고에서 날아온 공연 소식인데, 2006년 방한한 바 있는 얀 파브르의 새로운 작품 이야기다. 기사에 이미지가 붙어 있지 않아서 호기심에 찾아보았고, 이왕에 찾은 거라 또 자료로 보존해놓는다. '성에 대한 기괴한 상상력'을 선보인다는 언급에서 지난주에 나온 <무감각은 범죄다>(이루, 2009)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감각'을 종종 갱신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공연 연습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http://www.facebook.com/video/video.php?v=1057528563213 참조). 아래 기사에서 파브르의 초연작을 '인내의 근원'이라고 적었는데, '인내의 난교'(Orgy of Tolerence)가 맞다.   

 

한겨레(09. 01. 16) 성에 대한 기괴한 상상력 퍼포먼스 거장 얀 파브르

종이 울리자 4명의 남녀가 팬티 속을 흔들며 자위 행위를 시작한다. 정한 시간 안에 누가 제일 많이 사정을 하는지 가리는 시합. 넷은 울부짖으며 흔들다 지쳐 쓰러진다. 뒤이어 소파와 사람의 섹스, 가방과 소파의 섹스가 갖가지 체위로 벌어진다.

2006년 한국에서 <눈물의 역사>라는 전위극을 선보였던 벨기에의 퍼포먼스 거장 얀 파브르가 산티아고 아밀 페스티벌에서 성과 자본에 대한 무한 상상으로 ‘미친 풍경’을 만들어냈다. 14일 밤 10시(현지시각) 칠레대학 부설 현대미술관에서 4일간의 무대 일정을 시작한 얀 파브르의 세계 초연작 ‘인내의 근원’은 남근적 자본과 물신주의가 성과 세계의 질서를 기형화시킨 지옥도 풍경이다.

남근 모양의 코를 달고, 총을 멘 괴한들이 어슬렁거리는 묵시록적인 무대가 배경이다. 카트 위에 걸터앉아 괴성을 지르며 통조림, 코카콜라를 출산하는 임산부, 패션 명품 가방의 지퍼를 열며 자위행위를 하는 여자, 카트를 이리저리 굴리며 왈츠를 추는 남녀들이 출몰한다. 괴기스런 중세의 고딕적 상상력으로 현대의 자본 만능 시대를 파고드는 풍경 속의 배우들은 ‘퍼킹’을 연발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테러리스트”라고 외친다.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전시에서도 정액 분출 장면을 담은 ‘세계의 분수’ 등으로 민망한 화제를 낳았던 파브르는 산티아고에서 더욱 기괴해진 성적 상상력을 과시한 셈이 됐다.(산티아고/노형석 기자)   

09. 01. 17. 

P.S. 2006년에는 비슷한 시기에 공연된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에 온통 정신이 빠져서 얀 프브르의 <눈물의 역사>에는 미처 주목하지 못했었다. 뒤늦게 관련자료를 찾아 옮겨놓는다. OTR(Our Theater Review)의 공연소개이다(http://www.otr.co.kr/play/view.htm?sid=1469&mdevide=03). <눈물의 역사> 공연 클립은 http://www.videoplayer.hu/videos/play/30358 참조.

유럽 공연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현대의 다 빈치
얀 파브르는 현재 유럽에서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 희곡작가, 오페라와 연극의 무대연출가, 안무가,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보이는 다재다능함으로 인해 르네상스 시대의 다 빈치에 비견되고 있는 인물이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곤충학자인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로 출생하여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곤충에 대한 지적인 관심은 신체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과 더불어 예술활동에 있어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유년시절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거리의 표지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서 걸어놓는 것으로 예술활동을 시작한 그는 <돈 공연 Money-Performance> 공연 중 돈을 불태워 그 재로 돈(money)이라고 쓰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공연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른 공연에서는 자신의 피로 드로잉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훗날의 신체 3부작과 체액 3부작을 예견케 하였다.  

연극과 오페라 그리고 무용을 넘나드는 천재성
얀 파브르는 그의 공연을 항상 3부작으로 구성하여 연극에서 오페라로, 오페라에서 무용으로 그의 지평을 넓히는 장치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얀 파브르의 작품은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이번에 공연될 <눈물의 역사 History of Tears>도 규정할 수 없는 연극과 무용, 문학와 시각적 효과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작품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80년대 연극에 대한 첫 삼부작 중 8시간이 넘는 연극 <이것이 바라고 예견해 왔던 연극이다 This is the theatre one should have awaited and expected>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얀 파브르는 이 작품과 베이스 비엔날레 오프닝 공연 이었던 <연극의 광기의 힘 The power of theatrical frenzy>을 통하여 현대연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의 하나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유명한 신체 3부작 <달콤한 유혹 Sweet Tamptations> <세계적인 저작권 Universial Copyrights> <불타오르는 상 Glowing Icons>을 통하여 본격화되기 시작한 얀 파브르의 신체에 대한 탐구는 2000년대에 체액으로 형상화 되어 체액 3부작의 첫 작품 <나는 피다 Je suis sang>와 2004년의 <울고있는 육체 The Crying Body>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동안의 공연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은 얀 파브르는 2005년 아비뇽 페스티벌의 주빈으로 초청되어 그의 체액 3부작의 마지막인 〈눈물의 역사 History of Tears〉를 초연하면서 다시금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세계에 충격과 논란을 몰고 온 얀 파브르의 최신작, <눈물의 역사>
세계의 공연계를 선도한다는 점에서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올해 벨기에의 얀 파브르를 주빈으로 초대하면서 그의 체액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눈물의 역사 History of Tears>를 개막작으로 선정하였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세계초연이 된 이 작품은 개막 전부터 논란이 예상되었는데 그 독특한 실험성으로 인하여 개막 후 곧 유럽 예술계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거대한 화두를 던졌다. 

눈물을 통해 표현하는 육체의 시
수 백 여개의 유리그릇과 수 십 여개의 사다리 같은 오브제, 10여명의 무용수가 15분 가까이 울음을 터뜨리는 첫 장면부터 20여명의 무용수 들이 옷을 벗고 뛰어다니는 등, 시작부터 끝까지 이 작품은 도발적이고 독특한 표현들로 가득하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얀 파브르가 배우들에게 8시간 내내 비평가들의 비평을 중얼거리게 하거나 여배우로 하여금 공연 내내 흰 천을 쥐어짜게 하는 등 얀 파브르 작품의 파격성을 알고 있던 관객들조차도 새로운 표현양식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얀 파브르가 이 작품을 통하여 결코 미리 계산해서 관객을 도발한 것이 아니라  눈물이라는 기제를 통하여 육체의 시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눈물을 이미지로 구현한 충격의 무대
이 작품은 신체의 3/4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찰에서 시작하였다. 얀 파브르는 기쁨 혹은 슬픔의 눈물, 두려움에 흘리는 눈물, 노동 이후 신체에서 흐르는 눈물(땀)을 신체의 눈물이라고 규정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를 신의 눈물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 환희와 절망 모두를 눈물이라고 하는 액체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얀 파브르는 이런 눈물의 근원에 대해 말하고 눈물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면서 서양의 오랜 역사에서 이성의 그늘에 묻혀있던 눈물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신체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시작되어 2000년대의 체액 3부작으로 구체화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 작품은 환상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신체와 눈물을 재조명 할 것이다.   

P.S.2. 몇 개 둘러본 동영상 중에서 '죽음의 천사'도 인상에 남는다(http://www.youtube.com/watch?v=DRHlijDlBZc&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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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1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처럼 겉으로만 고고하고 근엄하신 나라에선 당분간 보기 힘든 공연이겠군요..
(첫번째 사진 들고 있는 AK47 소총을 보며 테러리스트.연상했는데 바로 뒤에 글자로 테러리스트 나오는 걸 보고 혼자서 실실 웃었다는..)

로쟈 2009-01-17 21:14   좋아요 0 | URL
이름값으로 밀어붙이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명품'에는 또 환장들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