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기자의 죽음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다. 2006년 피살된 여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러시아 인권과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건이어서 음울하고도 씁쓸한 소식이다. 어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17) 체첸 비판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체첸의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다시 피살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15일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에서 활동해온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됐다고 보도했다. 에스테미로바는 이날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으며, 몇시간 뒤 인접한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나즈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에스테미로바는 그로즈니 대학을 졸업하고 역사 교사로 일하다 2000년 인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2006년 살해된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체첸 실태를 외부에 알려 2007년 여성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한 ‘폴리트코프스카야 인권상’을 받은 그는 유럽의회의 로버트 슈만 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외국 취재진이 그로즈니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에스테미로바는 지난달 체첸 당국이 분리주의 반군의 집을 모두 불태우며 탄압하고 있다는 조사 보고서를 냈다. 또 지난 7일 그로즈니 도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보안군의 무력 남용을 맹비난했다. 



메모리얼은 이번 살해의 배후에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32)이 있다고 밝혔다. 카디로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이었을 때부터 그의 지원을 받아왔다. 체첸 독립운동 세력의 공격에 숨진 아흐마드 카디로프 전 대통령의 아들로 체첸의 분리운동을 강경 탄압해왔다. 그는 푸틴이 1999년 ‘2차 체첸전쟁’을 일으키자 사병 조직 ‘카디로비츠’를 이끌고 러시아군에 합세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체첸 정보국장을 맡아 푸틴의 신임을 굳혔다. 2004년 아버지가 숨진 뒤 부총리를 거쳐 총리로 초고속 승진했고, 2007년 3월에는 푸틴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임명됐다. 그가 체첸 석유를 빼돌려 재산을 불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에 개입한 의혹도 있다.

그의 집권 뒤 체첸에서는 독립운동가 납치·고문·살해가 계속되고 있다. 메모리얼 측에 따르면 카디로프는 이를 비판하는 에스테미로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카디로프는 “살인범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인권단체들은 “우리를 겁주기 위해 카디로프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과 러시아 간에는 인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즉시 살인 배후세력을 맹비난하고 “러시아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연방기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제대로 될지는 회의적이다. 올초 체첸 문제를 비판한 인권변호사 등이 피살됐을 때에도 메드베데프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했다.(구정은기자) 

09. 07. 18.  

Наталья Эстимирова в Грозном, 1 сентября 2004 года

P.S. 에스테미로바의 인터뷰 동영상이다(http://www.youtube.com/watch?v=3oZsJzXKqI0).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비록 러시아/체젠의 수치스런 인권상황이 개선될 때까지는 그녀 또한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겠지만... 

 

P.S.2. 체첸이나 체첸분쟁에 관한 단행본 저작이 국내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몇 권만 찾아보았다. 체첸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다룬 <야만의 시대>(황소자리, 2005)는 생소한데, 역시나 2004년에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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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무개 2009-07-19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초인가에 리벨리온이라는 리트비넨코에 관한 다큐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안나 폴리코브스카야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정부의 비리를 폭로해도 그에 대한 반응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도 끈임없이 진실을 알리기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그런데 또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네요... 끔찍합니다...

로쟈 2009-07-19 18:40   좋아요 0 | URL
끔찍한 일이야 지구촌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데, 저는 더 끔찍한 게 이런 일에 차츰 '면역'이 돼간다는 거예요...

목동 2009-07-20 09:36   좋아요 0 | URL
죽고, 죽이고, 대중의 이름으로, 민족으로 이름으로,,,
그리보면 살리려는 마음은 얼마나 값진 마음인가요!

람혼 2009-07-19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를 읽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곧 로쟈님의 멘트가 있겠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기사의 문장이 남의 나라 일 같지만은 않은 게 또 다른 문제겠지요...

로쟈 2009-07-19 18:39   좋아요 0 | URL
메드베네프는 이미 지난번에 무능력을 과시한 바 있지요. 푸틴을 넘어설 수 있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한데, 별로 기대해볼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목동 2009-07-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반도 역시 분쟁지역에 포함된다. 우리의 경우는 타민족간의
분쟁이 아니라, 자민족간에 분쟁으로 세계대전과 이념적 산물로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다.

체첸과 러시아는 민족도 다르며, 종교도 다른(리시아:정교,체첸:이슬람)
타민족으로부터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되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용감하고 의로운 세계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딸 역시 깊은 상처속에 자국의 현실에 재인식하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남과 북의 통일문제가 해결되다면, 새로운 국면의
중국과 러시아연방과의 문제가 새롭게 부상 될 것이다.

우리의 임시정부 시절, 일본에 의해 희생되었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한다. 시대마다 고군분투했던 조상들 있다.

코샤크족(고용한 돈강)에 비해 체첸는 러시아 문학작품에 거이
등장하지 않지만, 1940년대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체첸이 비극을 그린 "황금색 구름은 비쳤다(1987)"가
있다고 한다.

로쟈 2009-07-19 18:38   좋아요 0 | URL
야만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Sati 2009-07-20 22:20   좋아요 0 | URL
펠렉스/ 톨스토이의 '하지무라트'가 체첸사람일걸요^^.
 

이번주의 '서프라이즈'는 어니스트 존스의 <햄릿과 오이디푸스>(황금사자, 2009)이다. 원저는 1949년에 나온 걸로 돼 있으니까 60년만에 번역돼 나온 셈. 저자는 프로이트의 영국인 제자로 정신분석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정신분석학자다. 그의 책은 프로이트가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란 에세이 등에서 제시한 정신분석적 독법을 더 자세하게 발전시킨 것.   

개인적으로는 재작년인가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강의를 하면서 <햄릿>과 <오이디푸스왕>,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두루 읽은 적이 있다. 여건이 되면 나대로 프로이트의 독해를 업그레이드한 책을 써보고도 싶다. 존스의 책은 <햄릿>을 읽을 때마다 참조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 번역서도 나왔으니 이젠 단박에 읽을 수 있겠다. 따로 리뷰들이 뜨지 않아서, 그리고 자세한 출판사 책소개가 이미 나와 있기에, 나는 같이 읽을 리스트만 만들어둔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햄릿과 오이디푸스
어니스트 존스 지음, 최정훈 옮김 / 황금사자 / 2009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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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lete Correspondence of Sigmund Freud and Ernest Jones 1908-1939 (Hardcover)
Freud, Sigmund / Belknap Pr / 1993년 1월
150,860원 → 135,770원(10%할인) / 마일리지 4,08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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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ud's Wizard (Hardcover)- Ernest Jones and the Transformation of Psychoanalysis
Maddox, Brenda / Da Capo Pr / 2007년 3월
48,420원 → 39,700원(18%할인) / 마일리지 1,9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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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술, 문학, 정신분석
프로이트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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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7-18 17:01   좋아요 0 | URL
어니스트 존스... 프로이트와 관련된 책들에서 이름만 읽어본 사람이군요^^ 리스트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 오이디푸스도 넣으면 더 완결적이지 않을까요?^^

로쟈 2009-07-18 17:48   좋아요 0 | URL
네, 햄릿 읽기와 관련되는 것만 꼽았습니다. 안티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 읽기에 넣어야 할 듯해요.^^;

수유 2009-07-20 20:09   좋아요 0 | URL
읽고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더 즐거운것은 역자가 1990년생이라는 것, 스무살의 역자입니다.. 옮긴이의 소개를 먼저 읽게되네요..

2009-07-20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1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에는 무거운 책이 드물다. <열렬한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8)의 저자 한샤오궁의 <산남수북>(이레, 2009)도 두꺼운 책이긴 하나 에세이집인 만큼 무거운 책은 아니다. 도시에 살다가 오지의 산골마을로 낙향한 저자의 경험담을 묶었다고 한다. 그런 경험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독자로선 책으로나마 '산남수북'의 경지를 따라가볼 따름이다.  

한국일보(09. 07. 18) 중국 전통정신 잃어가는 '문화 고아들'이여…  

"우리집 창문을 열면 맑고 환한 산수가 순식간에 나를 덮쳐오고, 그 찰나 나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경치에 도취되어 오장육부가 녹아드는 느낌을 갖게 된다. 청묵은 가장 멀리 있는 산이다. 옅은 먹색은 그 다음으로 멀리 떨어진 산을 그리고, 가벼운 먹색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다. 먹물의 농담과 초점으로 멀고 가까운 산이 표현된다. 산은 층층이 겹쳐 있기도 하고 굽이굽이 구부러져 있기도 한다."(99쪽)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중요 국가로 편입된 중국에서는 요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전통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의 황순원'으로 불리는 선총원(1902~1988)의 문학정신을 계승, 향토색 짙은 고향 이야기, 전래의 옛이야기 등을 재현하는 소설양식을 가리키는 '심근(尋根)문학'은 중국문학의 당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하방 경험이 있는 지식청년 출신으로 농촌에서 중국문화의 원천을 흡수, 창작의 영감으로 삼고 있는 한샤오궁(56)은 심근문학의 대표주자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작가다. 

<산남수북(山南水北)>은 중국 벽지의 전통적 삶을 통해 자본주의화돼 가고 있는 중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샤오궁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모음이다. 30년 간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1999년 중국 남부 후난성의 작은 산골마을 바시로 낙향한 그의 농촌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99편의 에세이를 묶었다.

농촌의 삶 속으로 섞여 들어간 그는 전통과 문명의 관계를 정관(靜觀)하고, 노동을 예찬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찰한다. '문화고아'는 경제광풍에 밀려 전통정신을 상실해가는 중국인들의 삶을 아쉬워하며, 전통마저도 모두 상품화ㆍ소비화시켜 버리는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에세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동경과 지향은 한이 없지만 추억이 너무 적기 때문에 모두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문화고아들이 되어버렸다"며 "시장경제에서 실패한 낙오자들은 오직 가격의 차폐선 밖에 서 있어야만 할 뿐, 가격이 폭등한 어머니에게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유머러스하게 소묘한 글들도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한다. 닭장 속의 유일한 수컷이 고양이를 만나면 가장 앞장서서 맞서고 벌레를 보면 얼른 잡아 암탉들에게 양보하는 '이타적' 행동을 지켜보면서, 금수에게도 언어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아니라 '수면인심(獸面人心)'이라고 떠들어댈 것 같다는 풍자를 날리기도 한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에세이들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수록작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말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다'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처럼 제목 말고는 공백으로 남겨뒀다. 2007년 루쉰문학상(에세이 부문)을 수상했다.(이왕구기자)   

세계일보(09. 07. 18) [편집장과 한권의 책]도시에서, 행복하신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1902년 여름, 북부 독일의 한적한 마을 보릅스베데를 떠나 파리로 향했던 릴케는 심약한 영혼을 압도하는 ‘대도시’의 위용 앞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스물여덟 살의 덴마크 시인을 페르소나 삼아 써내려간 ‘말테의 수기’에 그려진 파리는 ‘죽음’과 ‘불안’,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대치된다.

‘10년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기대와 궁금증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대학 동기들은 어느새 펀드 손실과 영어유치원비와 부장의 인사고과에 안테나를 세우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견디는’ 가련한 생활인들이 되었다. 아직은 차마 버리지 못한 ‘바닷가 민박집의 꿈’이 그나마 가끔씩 미소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그 역시 ‘꿈’이라는 것이 의당 그래야 할 의무방어의 위로에 그칠 뿐, 과연 도시의 규격을 떠나기만 하면 행복을 만나게 될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이 도시든 전원이든, 삶의 공간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입체적(ambivalent)’인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시골 사람들은 익명을 사용하여 숨거나 도피하거나 탈출할 방법이 없다. 각자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짊어져야 한다. 홀로 밭을 갈거나 아무도 없는 들판에 앉아 있을지라도 공공장소에 놓여 있는 조각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받고 있어 좀 피곤하다.”

“도시 생활이 매혹적으로 비쳐지는 까닭은 은자(隱者)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한샤오궁(韓少功)의 말이다. 30년 가까이 도시생활자로 살았던 한샤오궁은 어느 날 홀연히 산골 마을로 떠난다. 고즈넉한 산수화 속에나 있을 법한, 자연에 녹아드는 삶을 살겠다며, 후난성 북부 동정호 부근의 마을 ‘팔계’로 용감하게 가족들을 이끌고 들어간 것이다. ‘산남수북’은 그렇게 시작된 산골에서의 7년여 생활을 특유의 기개와 해학이 묻어나는 문체로 그려낸 이야기 모음으로, 2007년 루쉰문학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한 빼어난 산문이다.

무봉산 자락에 앉아 도시와 시골을 함께 아우르는 한샤오궁의 시선은 한순간에 ‘도시’와 ‘시골’의 경계 자체를 무력화시키며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그는 시골에서 ‘대중의 시선’을 느끼고 도시를 오히려 ‘은자의 성’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경계를 허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은 왜 도시로 가는 걸까?”라는 물음은 다시 “사람들은 왜 시골로 가는 걸까?”로 뒤집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것은, 또는 사람들이 시골로 가는 것은, “도대체 이웃을 갈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이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일까?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무리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일까?” 납작코 한의사, 미소 걸인, 낭만 고양이 미미, 청풍언월도 이발사 허씨 등 산골 마을의 다이내믹한 인간 군상과 오감을 자극하는 이야기보따리를 따라가노라면, 21세기의 도연명을 자처한 한샤오궁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결국 데일 듯한 소란스러움에 물든 도시인들의 ‘시선 교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이현정 도서출판 이레 편집장) 

09. 07. 18.   

 

P.S. '낙향한 작가의 에세이집'이라고 하니까 연상되는 책은 소설가이면서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최성각의 산문집 두 권이다. <날아라 새들아>(산책자, 2009)와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 2007). '운동가'의 시각이 많이 녹아들어간 만큼 한샤오궁의 에세이와는 초점이 좀 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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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 연재된 '미술 밖 미술비평' 꼭지의 마지막회를 옮겨놓는다. 그간에 <1>김현 <2>김화영 <3>서경식 <4>김우창 <5>이가림 <6>박완서 <7>박정자와 박홍규 등이 다루어졌고, 마지막은 문학비평가 김윤식 편이다. 그의 '예술기행'을 살펴보고 있는데, 나열된 8권의 책들 대부분을 읽은 듯하다(기행문집은 이후에도 몇 권 더 있다). 특히 <문학과 미술 사이>는 기억에 학부 1학년때 읽은 책이어서 이런저런 추억도 떠올리게 해준다(더불어 내가 좋아했던 책은 <낯선 신을 찾아서>이다). 그런 용도의 스크랩이다.  

교수신문(09. 07. 14) 幻覺 또는 허무에 맞선 ‘포플라’의 운명

문학비평가 김윤식과 미술의 인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책은 그가 1979년에 내놓은 『문학과 미술사이』이다. 이 책은 그의 많은 글쓰기 가운데 한줄기를 이루는 이른바 예술기행 양식의 출발점이다. 이후 그는 『황홀경의 사상』(1984), 『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 『낯선 신을 찾아서』(1988), 『환각을 찾아서』(1992), 『설렘과 황홀의 순간』(1994), 『풍경의 계시』(1995),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2001) 등으로 이어지는 ‘예술기행’ 모음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여기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작품이 존재하는 현장, 또는 그 작품이 탄생된 공간을 찾아가 거기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에세이로 정리한 것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학, 미술, 건축 같은 작품들이 두루 포함된다.   



그런데 그는 왜 기행을 떠나야 했는가. 1996년 발표된 『김윤식 선집』 6권 해제에 따르면 김윤식의 예술기행은 ‘낯선 풍경과 환각을 향한 그리움’에서 발원한다. 환각(유토피아)을 향한 영원한 동경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이 세계의 무수한 곳을 편력하도록 이끌고 그 흔적을 남기게 만든 결정적인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윤식은 환각, 또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 나그네다. 그에 따르면 이 환각, 유토피아는 “지상에 존재한 공상 중 가장 황당무계한 것”이지만 그것은 “모든 민족은 이것 없으면 산다는 일을 원치 않을뿐더러 죽는 이조차 불가할 정도”의 열도를 가진 황홀경의 환각이다(동양정신과의 감각적 만남). 인간은 이 ‘황홀경의 환각’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은 김윤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환각에 집착하고, 유토피아에 집착하는 것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환각을 그리워해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칩거하지 않는다. 그는 환각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환각에 맞선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려움 또는 유토피아에 집착하기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떠날 때는 언제나 설레였고 돌아올 땐 한결같이 피로하였다. 이 가슴 설렘이란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리움이랄까, 에로스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을까? …누가 이 장대한 황당무계한 환각 앞에 감히 알몸으로 맞설 수 있으랴. 내 피로함은 이 환각의 너무나 큰 압력에서 왔다. 나는 그 환각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어야 했다.” (설렘과 황홀의 순간) 

그렇다면 그는 피로를 무릅쓰고 기행에 나서 어떤 환각들과 만났을까. 가령 그는 중국 서안에서 만난 대안탑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탑이란 무엇인가. 인간 염원의 하나이리라. 그것은 빈공간을 향한 발돋음의 표상이다. 이를 기도하는 자세라 부른다. 그것은 하늘 위로 솟아야 한다. 빈 하늘만 있으면 인간은 참지 못한다. 백지의 공포인 까닭이다. 이 빈 하늘의 아득함에서 그 두려움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끝이 마침내 탑을 지어내었던 것. 빈 하늘을 조금이라도 가리고 채우기의 한 가지 방식, 그것이 탑이다.” (풍경의 계시)  



그러니까 탑을 만들어내고, 그 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이다. 그런데 이 하늘은 빈 하늘, 곧 허공이다. ‘비어있음’의 공포가 그것을 초극하려는 어떤 집단적 의지를 작동시키고 환각을 만든다. 그 초극 의지가 절박할수록 탑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렇듯 허공의 공포를 초극하기 위해 환각을 만드는 일은 자기 정체성 찾기와 짝을 이룬다. 김윤식에 따르면 자기 정체성 찾기는 자기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가령 일본 예술의 특질로 ‘사비’라든가 ‘유현’을 소리 높여 외치고 그럼으로써 일본예술을 서양의 그것과 구별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서양의 그것과 끊임없이 ‘닮고자 하는 지향성’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는 환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실 그 환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幻覺’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적인 것’도 ‘조선적인 것’도 ‘서양적인 것’도 모두가 환각이다. 그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朝鮮美論를 이렇게 평한다. “조선의 미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일본)이 멋대로 창출해 낸 헛것에 지나지 않는 것. 실제와는 상관없이 일본(서양)인 야나기가 멋대로 자기 취향에 맞게 조선의 미를 線으로 창출해 낸 것일 따름.”(머나먼…) ‘허공’에의 공포는 결코 초극될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러나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외면할 것이다.  



에세이 정신과 ‘여로형’ 글쓰기
“성현의 학문을 머리에 이고 하늘의 별을 바라본 집단”으로서 젊은 집현전 학사들이 그렸던 유토피아, 곧 「몽유도원도」는 텅 비어있지만 아름답다. 그러나 분열을 경험한 자는 다시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분열을 경험한 자가 ‘허무와의 대결’을 통해 순도 높은 고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김윤식이 생각하는 예술이다(동양정신과의…).

허무와 대결한다는 것은 ‘환각’을, 달리 말해 유토피아가 환각임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김윤식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표지화로 건 『문학과 미술 사이』의 머리글에서 그는 일찍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철들면서 먼 도회지로 끊임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컨대 근대적인 것에의 지향성이었으리라. 그 근대적인 것이 노예나 시녀의 길이었음을 깨닫고 황망히 돌아서려 하자 나의 들길은 근대적인 것이 통째로 삼켜 버리고 아무데도 없었다. 허무가 앞뒤를 가로막아 나아갈 길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허무의 안개 저편에 솟아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포플라의 모습이 바로 그것… 포플라는 줄지어 섰든 혼자 서있든 모습은 외로움이었다. 그러기에 포플라의 이미지는 내겐 릴케의 용담화이고 고호의 삼나무이다. … 포플라는 고독의 표상이기보다 고독 자체였다. 예술이나 문학이란 내게는 이와 같은 표상의 추구일 따름이리라.”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김윤식은 이 그림을 이렇게 묘사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곳, 그러기에 태양도 달도 11개의 별도 함께 출석한 곳. 하늘엔 이것뿐이다. 이 무게 중심에 ‘나’가 놓여 있다. 그것은 실상 나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은하수이다. 별도 달도 태양도 이 성운에 휘말려 있다. 아니다. 성운이 별을, 달을 태양을 낳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의 자궁 속, 胎 내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포플라의 이미지를 곁에 두고 그는 집을 떠난다. 이렇게 집을 떠난 상태란 ‘여로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여로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다.  

그의 예술기행의 근간을 이루는 에세이 정신은 그러한 접점에 깃드는 정신이다. 그 접점에 정신이 깃들 때 “세상과 사물은 본래의 자리에 놓인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렇게 그는, 발레리의 표현을 빌면, 이질적인 것을 동시에 수용하는 모더니스트다. 따라서 그에게 문학에 대한 논의가 미술에 대한 논의와 겹치고 공존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필연적이다. 이 모습은 어쩐지 모더니스트 이상의 그것과 닮아 있다. 

김윤식은 화가로서의 이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병들이 카페를 둘러싸고 자라고 있었는데 이러한 병들을 가장 통렬하게 앓아본 사람은 오직 이상뿐이었다. 그 많은 정신질환을 이상은 사랑하고 한 몸에 그들을 감쌌다. 그러기에 그는 아달린과 아스피린을 수없이 장만하고 그 알약들을 보석처럼 『날개』의 삽화에 그려넣었던 것이다. 그가 그의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방식은 오직 이러한 길뿐이었던 것이다.” (김윤식 선집 5)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젊은 시절 김윤식을 매료시켰던) 루카치는 말했다. 그러나 이 복된 시대가 아니라(내적)분열의 시대에 김윤식은 산다. 그는 복된 시대를 꿈꾸나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여 그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자유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에 나서는 일이다. 이 여로에 나서는 일은 그 자신에게나 그것을 지켜보는 자에게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 권태롭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고통, 그 권태, 그 피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구축한 개개의 유토피아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설령 그것이 곧 무너질 운명에 놓여있다 해도 말이다.(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09.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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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7-1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글에 대한 평론을 읽다보면 공감된 부분이 있다.
명확한 근거와 식견 부족에 의한 불투명을 맑게 해준다.

"문학과 미술",황홀경의 사상,셀렘과 황홀의 순간,~기행,
고흐의 그림 등,, 제목만으로도 궁금해진다.

그는 환각을 그리워해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칩거하지 않는다. 즉, 환각에 맞선다.

김윤식님의 탑은 빈 하늘을 향한다.
곧 허공으로 어떤 집단적 의지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마을영화
신감독의 돌탑은 하늘을 의식하지 않는다. 탑의 몸체에 주목한다.

신감독은 돌마다 조화롭게 쌓아짐에 몰입되어 있다.
옛부터 탑은 기원의 경유지였다.

김윤식님 탑은 환각을 쫒는 벡터에 해당된다. 제동을 걸수있다.
신감독의 탑은 하늘로 향한 그리움보다는 탑을 이룬 돌간의
조화에 더 집중한다.

감독은 허공을 향한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영화를 만든다. 그 작업을 즐기며, 밀폐된
공간과의 단절을 극복하려 하려한다.



로쟈 2009-07-19 18:41   좋아요 0 | URL
한두 권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런저런 할일과 시름에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던 차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는 글을 읽었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며칠전 타계한 중국의 '국보급' 학자 지셴린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한국에 다른 제자가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배로 보아 정수일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수제자가 아닌가 싶다. 고인의 학덕과 사제간의 학연이 학문의 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프레시안(09. 07. 16) 스승 지셴린 선생을 기리며 

지난 11일 향년 98세로 타계한 지셴린 베이징대 명예교수는 12개 언어에 능통한 중국의 대학자로 중국언론에서는 그를 '인간 국보'로 불러왔다. 특히 베이징대 동방어문학부를 창설한 그는 우리나라 문명교류학의 대가인 정수일 선생의 스승이기도 하다. 1952년 베이징대 동방어문학부에 입학한 그는 지셴린 선생의 권유로 아랍어를 공부하게 됐으며 그 이후 문명교류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수일 선생이 자신을 학문의 길로 이끈 옛 스승을 기리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백수(白壽)를 눈앞에 둔 노스승 지셴린(季羨林) 선생님이 타계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순간 슬픔과 애달픔을 금할 수 없다. '국학의 대사', '학계의 태두', '국보'로 높이 추앙 받아온 선생님의 타계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학계의 크나큰 손실이다. 옷을 여미고 머리 숙여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노스승과의 첫 인연은 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여름, 중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통일시험에 합격되었다는 소식만 듣고 한달음으로 베이징대학에 찾아갔을 때, 대학은 시내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느라 개교를 미루고 한창 기숙사를 짓고 있었다. 신입생이 기거할 곳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득히 먼 변방 옌벤에서 마차와 버스, 기차를 번갈아 타며 나흘이나 걸려 찾아온 곳에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동방어문학부 신입생으로서 의지할 곳은 학부 주임(학장)이신 지 선생님뿐이었다. 학자풍의 인자하신 선생님께서는 사연을 들으시고 나서 무턱대고 자택에 와 지내라는 것이다. 초면에 차마 그럴 수는 없어 사양하니, 친히 대학 관리부서로 이끌고 가 대책을 신신 당부한다. 결국 실내 체육관 2층에 매트리스를 깔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거기서 달포나 지내는 동안 선생님은 몇 번이고 찾아오셨다. 

학기가 시작되자 동방어학 중(당시는 9개 어학) 전공어학을 선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물론 전공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최종 배정하지만, 학생들의 지망은 참고하기 때문에 사색이 필요하다. 역시 상의를 드릴 분은 선생님이시었다. 12개 언어에 달통하신 선생님께서는 한국어와의 상관성을 들어 몽골어나, 아니면 전망성으로 미루어 아랍어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주셨다. 사실 한국어와 몽골어와의 관련성은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아랍어의 '전망성'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결국 아랍어과로 배정되었다. 선생님의 뜻 깊은 배려였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랍어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50여년간 내내 아랍-이슬람 세계와 씨름하면서 선생님의 그 탁월한 원경지명과 사려에 거듭거듭 감복하곤 한다.

선생님은 인문학의 모든 분야를 두루 통섭하신 학계의 태두이시며 동양학의 거장이시다. 선생님의 학문적 연구분야만 해도 인도 고대언어, 토카리스탄어, 인도 고대문학, 인도불교사, 중국불교사, 중앙아시아불교사, 당사(唐史), 중국-인도 문화교류사, 중국-외국 문화교류사, 중국-서구 문화의 비교, 미학과 중국 고대 문학예술론, 독일 및 서양 문학, 비교문학, 민간 문학, 산문창작 등 실로 다종다양하며 분야마다에서 발군의 업적을 남기셨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0년대에 이미 『지셴린문집』24권이 출간되었다. 그래서 선생님께는 고문자학자. 사학자. 동방학자. 사상가. 번역가. 불교학자. 산스크리트어학자. 작가 등 근 열 가지 학문적 전문가 칭호가 따라 다닌다.

특히 산스크리트어 고전 학문분야에서는 세계적 석학으로서 명성이 높다. 해박한 고전 지식으로 동양학의 원류를 밝히시는 선생님의 강의와 논저는 구지욕에 불타는 우리 젊은 학도들의 가슴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40여년이 지나서 이순(耳順)을 훨씬 넘긴 나이에 이 제자가 감방에서 만학으로나마 산스크리트어를 익히려고 한 것은 바로 선생님이 일찍이 심어주신 학문인자(因子)의 싹 돋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제자가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일진대, 학문은 그래야 이어지고 살찌는 법이다. 

1955년 말, 카이로대학 유학을 앞두고 선생님 댁에 들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제자의 두 손을 꼭 잡고 축하를 보내주셨다. 한 말씀 부탁드리니, 잠시 사색에 잠기셨다가 '아랍은 고전의 보고'이니 고전부터 독파하라고 당부하시면서 아랍 고전에 관한 연구는 독일이 가장 앞섰다고 덧붙이신다. 학문에 달관한 스승의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고는 그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유학기간 어렵지만 고전에로의 접근만은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접근을 위해 스승이 예시한대로 독일어에도 손을 댔다. 고전은 학문의 샘이다. 샘물만이 참 물이다. 강물이나 냇물은 이미 참 물이 아니다. 뿌리 없이 휘젓기만 하는 얄팍한 학문적 세태를 탈피하는 첩경은 '고전벽(癖)'이다. '고전벽'에 미쳐야 학문의 경지에 미치게 된다. 이것은 스승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제자의 학문적 신조다. 스승을 떠나보내는 이 순간, 이 신조가 새삼 되새겨진다.

세월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환국을 앞둔 어느 날 인사차로 노스승을 찾아갔다. 그날도 선생님은 고적 속에 파묻혀 계셨다. 이제 머리에는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찾아온 사연을 말씀드리니, 처음엔 섬뜩 놀래시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으시면서 특유의 인자함과 소탈함으로 동정을 표시하신다. 앞에서도 보다시피, 선생님은 늘 제자를 중국 경내에 사는 한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조선(한국)의 한 젊은이로 보셨기에 제자의 환국을 오히려 의젓하게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노스승과의 만남은 아쉬움을 감싸는 환담으로 이어졌다. 인생과 학문에 관해 또 한 차례 많은 귀중한 가르침과 당부를 주셨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위국효용'(爲國效用), 즉 '나라(조국)를 위해 배운 것을 효과 있게 쓰라'는 독려였다. 그러시면서 산스크리트어 번역시 한 권을 송별 선물로 주셨다. 노스승은 참으로 학문도 바닥 없이 깊거니와 도량도 한량없이 넓으신 분이다.

선생님은 높은 학덕만큼이나 인품 또한 고매하다. 늘 빛바랜 중산복 차림에 천으로 지은 책가방을 자전거 핸들에 걸쳐놓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던 그 수수하고 소탈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불의 앞에선 굽히지 않는 유약한 지식인이 아닌, 강인한 지성인의 표상이시다. 선생님의 삶의 좌우명은 도연명의 시 한 수에서 따온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에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다. 얼마나 호방하고 떳떳한 인생관인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무지막지한 '문화대혁명'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앞장서 맞받아 나가셨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한 책 『우붕잡억(牛棚雜憶)』(『외양간의 갖가지 기억』, 여기서 '외양간'은 '문화대혁명' 때 비판 대상자들이 갇혀있던 장소를 빗댄 말)에 의하면, 스승은 연금상태에서 낮에는 홍위병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밤에는 서양시를 중국어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지성인의 참 모습이다. 그래서 국무총리 원자바오(溫家寶)는 병석에 누워계시는 선생님을 다섯 차례나 방문해 치국(治國)의 가르침을 구하면서 '정신적 스승'으로 높이 모셨다고 한다. 지금 학계의 거목이 쓰러졌으니 세상이 다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중국인들이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이 중히 여겨지고, 학자가 대접 받는 사회만이 진정한 문명사회이고 바람직한 미래사회다.

스승이란 자신의 삶을 일깨워주고 이끌어주는 사표이다. 스승의 가르침과 이끄심이 있기에 사람은 성숙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참 사표, 참 제자가 고갈된 사회는 병들고 썩은 사회, 무망(無望)의 사회다. '하루 스승 백년 어버이'(一日之師 百歲之父)라는 말은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가를 일러준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야말로 전세와 현세, 그리고 내세까지 이어지는 '사제삼세'(師弟三世)라고 하니, 인연치고는 가장 끈질긴 인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럴진대 스승이 남기고 간 유업은 제자가 맡아 수행해야 한다. 학문에 국경이 없듯이 사제 간에도 국경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노스승과 같이 덕재(德才)를 겸비한 세기의 '사건 창조적 인물'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스승이시여, 저승에서 이승의 학문개화(學問開花)를 지켜보시면서 고이 잠드시소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명목을 비는 바이다.

2009년 7월 15일
불초제자 정 수 일 삼가  

09. 07. 16. 

P.S. 지셴린 선생의 산문집 <다 지나간다>(추수밭, 2009)에도 '나를 이끈 참 스승'이란 인상적인 글이 실려 있다. 그의 스승으로 베이징대 총장을 역임한 저명한 학자이자 지식인 후스(胡適, 1891-1962)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지셴린은 후스 선생의 초빙과 보증으로 베이징대에 자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후스(호적)의 저작으론 <중국 현대 단막극선>(한국학술정보, 2007)과 <중국의 지성 5인이 뽑은 고전 200>(예문서원, 2000)이 있다(찾아보니 후스의 <중국고대철학사>가 60년대에 소개된 적이 있다). 둘다 공저이고 공편이다. 중국 현대 지성사에 관한 마땅한 책이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건 육건동의 <진인각, 최후의 20년>(사계절출판, 2008) 정도다(지셴린을 후스에게 소개한 이가 진인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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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셴린 선생의 인생 이야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21 00:57 
    작년에 세상을 떠난 중국의 석학 지셴린(계선림) 선생의 에세이집이 두 권 더 출간됐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인생>(멜론, 2010), <병상잡기>(뮤진트리, 2010)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우붕잡억>(미다스북스, 2004)이 품절상태라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다 지나간다>(추수밭, 2009)까지 세  권이다. 노(老)석학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Sati 2009-07-17 03:35   좋아요 0 | URL
정수일역의 <왕오천축국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프로필이 특이해서, 비장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로쟈 2009-07-18 10:38   좋아요 0 | URL
학문후속세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요즘은 한 학자의 죽음이 한 시대의 종언처럼도 여겨집니다...

카스피 2009-07-17 10:33   좋아요 0 | URL
정수일 교수라면 '무하마드 깐수'란 이름으로 간첩 활동을 하다 검거된 분인가요?
체포당시에 출중한 아랍어 실력과 동남아인 같은 외모로 우릴 깜짝 놀라게 했죠.근데 오늘 사진보니 완전히 한국사람이군요^^

로쟈 2009-07-18 10:38   좋아요 0 | URL
네, 오래 수감되셨었죠...

얼음동자 2009-07-17 15:56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보면 고전이 어려워서 멀리하다가도 고전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어요~

로쟈 2009-07-18 10:41   좋아요 0 | URL
우리가(인간의 뇌가) 고전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은 건 확실하지만, 그런 만큼 고전읽기는 자기극복의 한 양태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