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수첩>(가을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조영일의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b, 2009)에 대한 서평을 청탁 받고 쓴 것이다. 10매 분량의 짧은 서평이다.  

  

문학수첩(09년 가을호) 한국 문단문학의 종언

<한국문학과 그 적들>은 가라타니 고진 전문 번역자로 이름을 알린 평론가 조영일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첫 평론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과는 불과 몇 개월의 시차밖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알 수 있지만 원래는 거의 같은 시기에 쓰였고 함께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곧 작품론 위주로 구성된 세 번째 평론집을 냄으로써 ‘한국문학비판 3부작’을 완결지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제안이기도 한 ‘장편비평의 활성화’를 시범적으로 보여주려는 듯싶다.   

‘한국문학비판’이라는 전체 기획과 제목에서 이미 시사되고 있지만, 그의 평론집을 주로 채우고 있는 것은 현재의 한국문학 시스템에 대한 주저 없는 단언과 비판, 그리고 쓴소리다. 그 비평적 입각점에 해당하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론이다. 이른바 그의 ‘종언 테제’에 대해서는 일본보다도 오히려 한국에서 더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주로 가라타니의 주장이 성급하고 일면적이며, 적어도 한국문학의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대세였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의 번역자이기도 한 조영일은 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종언 테제’ 수용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겨운 오해를 위해 확실히 말하지만, 나는 한국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끝났다고 보는 것은 ‘한국의 문단문학’이다.”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한국문단문학’은 창비, 문사, 문동이 장악하고 또 관리하고 있는 하나의 ‘생산관리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토대는 문예지를 출간하는 출판사와 편집동인들의 ‘아름다운 협력’ 체제이다. “작품이 상품이라면 비평은 화폐”인바, 편집동인 비평가들은 “4․19세대의 위대한 문학적 발명품”인 ‘작품해설’을 통해서 개별 작품에 ‘보편적 교환가능성’을 부여한다. 즉, 문학시장에서 작품이 팔리게 하는(인정받게 하는) 것이 비평의 몫이다. 문제는 문학시장도 시장인 만큼 속성상 ‘과장된 호명(비평적 베팅)’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이것이 “신용의 붕괴 즉 공황(근대문학의 종언)”을 가져온다는 것이 조영일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문학의 위기는 문학시스템이 불가피하게 봉착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현상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로 인해서 빚어지는 것이 문학에 대한 불신과 비평 그 자체(이론)에 대한 몰두이며, 한국문학시장에서 일본문학의 부흥은 그러한 문학적 공황의 산물이다. 이러한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당연히 현재의 문학시스템을 해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문학편집과 문학비평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조영일의 주장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비평권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잡지편집권을 회수하여 출판사의 전문편집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독자의 외면으로 한국문학시스템에서 시장이 위축되자 국가가 문학판에 끼어들었고 이것이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이 조영일의 판단이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작가들에게 주는 창작지원금이 문화예술을 보호/육성하기보다는 창작자 개개인의 우울증치료에나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경우에도 문예창작 지원시스템이 잘 갖춰진 이후에는 쓸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덧붙인다. 가난 속에서 단련될 작가의 패기에 더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후에 그의 관심이 이 문학시스템과 국가지원의 ‘바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로일 것이다.   

‘한국문학과 그 적들’에 대한 조영일의 분석과 비판은 분명 논쟁적이며 유익하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론과는 초점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가라타니의 ‘종언 테제’에서 요점은 이 시대의 문학이 더 이상 ‘영구혁명’이라는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과제를 떠맡지 않게 됐다는 데 있다. 그러한 역할이 근대문학을 한갓 오락이나 상품과는 구별되도록 만들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나간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종언’과 ‘한국문단문학의 종언’은 바로 등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영일은 자신만의 ‘종언 테제’를 새롭게 제시한 것이라고 해야겠다.   

09.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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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 문단의 최대 화제작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2009)다. 우리에게도 올 최고 선인세를 지불한 작품으로 알려져 '흥행' 유무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어제 잠시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갓 출간된 1권을 사들고 왔는데, 한때 떠돌던 '한물 간 노장'이라는 소문을 입방정으로 일축하려는 듯한 작가의 기세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관련기사를 챙겨놓는다(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경향신문(09. 08. 27) 하루키 ‘1Q84’ 열풍, 국내서도 불까

출간도 되기 전에 이토록 뜨거운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됐던 책이 또 있을까. 10억원대의 선인세와 일본에서의 뜨거운 인기로 출간 전부터 한국 출판계를 술렁이게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가 일본에서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국내에서 출간됐다. 1권이 먼저 나왔고, 2권은 다음달 8일 출간 예정이다.  

  

<1Q84>는 일본에서 숱한 기록을 낳았다. 출간 첫날인 5월29일 하루에만 68만부가 팔려나갔고, 7월 말까지 모두 223만부 이상이 팔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반과 체호프의 여행기도 함께 인기를 끌어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1Q84>가 ‘빅카드’로 톡톡한 노릇을 해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학동네는 초판만 10만부를 찍었는데 10억원대의 선인세에 대한 손익분기점은 1·2권 합쳐 50만부이다. 출간 초기 반응은 좋은 편이다. 7월31일부터 8월25일까지 예약판매를 진행한 결과 7000여부가 판매됐으며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는 출간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6위에 올랐다.

<1Q84>는 하루키가 <어둠의 저편>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루키의 대표작들이 지닌 요소들을 집대성한 장편’이라는 평가답게 현실과 판타지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야기, 신흥종교집단의 내부폭력과 잔인성이라는 사회적 문제,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순애보를 복합적으로 담아내면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소설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와 같이 불안정하면서도 기묘한 음향으로 시작돼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같이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교대로 진행시키며 전체 이야기의 얼개를 치밀하고 균형감 있게 맞춰나간다.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스물아홉의 스포츠클럽 강사로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직업을 하나 갖고 있다. 여자들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비밀리에 처리하는 킬러다. 1984년 4월 어느 오후, 청부살인 현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그는 고속도로가 꽉 막혀 약속시간에 늦게 되자 도로에서 지하로 연결된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녀를 둘러싼 세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어느날 그녀는 밤하늘에서 두 개의 달을 보게 되고, 그날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Question에서 Q를 따와 ‘1Q84’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 덴고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어느날 미완성 소설의 문장을 다듬는 임무를 맡게 된다. 소설의 원작자인 여고생 후카에리는 난독증에 걸린 독특한 소녀다. 그는 후카에리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고 후카에리가 일본의 급진적 신흥종교 집단에서 길러졌으며 그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는 그녀가 직접 겪은 일이라는 것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관계가 서서히, 그러나 속도감 있게 드러난다. 아오마메는 신흥종교에 빠진 부모 아래서 자라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딱 한 번 자신을 도와준 덴고와의 사랑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30세가 돼 ‘1Q84’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실의 시대>에서 시작된 하루키의 인기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하루키는 일상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일상성을 실존적인 문제들과 결부시켜 현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잘 녹여내고 신화적 모티프를 잘 활용한다”며 “일상성·철학성·신화성 세 가지 요소가 하루키 소설의 특성인데 한국 문단에서는 하루키가 표피적으로 읽혀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09. 08. 27. 

P.S. 어제 한 일간지 기자에게서 하루키 문학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고 일축하고 말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작가라고 해야 맞다. 20년 전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상륙한 작가로 나는 밀란 쿤데라를 선호했지만 하루키에 대해선 무덤덤했다(나는 <상실의 시대>도 읽지 않았다). 몇 개의 평론을 읽고 안 읽어도 되는 작가로 제쳐놓았던 것. 그러다가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을 읽으면서 카버의 일본어 번역자이자 매니아인 하루키의 단편들도 몇 편 읽어보게 되었고, 몇 권의 관련서도 훑어보았다(<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가 유익했다).   

그러면서 흥미를 갖게 된 주제가 옴진리교 사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이다(신흥종교집단은 <1Q84>에서도 중심적인 모티브로 활용되는 듯하다). 하루키는 1995년 옴진리교도들이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에 충격을 받아 <언더그라운드>(열림원, 1998)라는 넌픽션을 썼는데, 나는 이를 계기로 그의 문학이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쪽은 물론 그런 '외상' 이후의 문학이다(<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의 저작으론 국내에서 가장 안 읽히는 책이다. 절판된 지 오래다).  

 

 

절판된 이 책은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재출간되면 좋겠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언더그라운드> 이후의 세 주요 장편소설, 곧 <태엽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1Q84>를 한데 묶어서 다뤄보고 싶다. 그게 내가 쓰고 싶어하는 하루키론이다.   

주인공이 택시에서 듣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http://www.youtube.com/watch?v=jVN5STjc4ng) 얘기로 시작하는 <1Q84>는 야나체크와 같은 조국의 작가 밀란 쿤데라를 은근히 연상시킨다. 야나체크란 이름을 쿤데라의 소설에서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하루키가 2006년에 카프카상을 수상한 것이 체코의 작곡가를 등장시킨 계기가 됐을까?). 마치 작곡을 하듯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도 전형적인 쿤데라식이다(원래 하루키식도 그런 것인가). 그런 '쿤데라필'도 하루키에 대한 오랜 무관심을 덜게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1Q84>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체호프의 여행기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는 소문을 접하고부터다(이 페이퍼의 제목이 '하루키-루쉰-오웰'이 아니라 '하루키-쿤데라-체호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기사에서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반과 체호프의 여행기도 함께 인기를 끌어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언급되는데, 그 여행기가 바로 <사할린섬>이다. 1890년 서른 살의 체호프가 갑자기 사할린으로의 여행을 감행하여 정치범 수용소가 있던 그곳의 실상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로 발표한 작품. 말하자면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 상응하는 체호프의 넌픽셕이다(하루키가 그런 맥락에서 <사할린섬>에 주목하지 않았을까라는 게 내 추측이다). 일본에서도 1950년대에 나왔던 이 책은 이번에 하루키 열풍을 타고 부랴부랴 재출간됐다고 한다. 영어본도 2007년에 나왔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아직 읽어볼 수 없다. <1Q84>가 나온다고 하기에 역자를 섭외해놓고 몇 군데 출판사에 <사할린섬>의 출간의사를 타진해봤지만 아쉽게도 '수용소'를 다룬 넌픽션이라고 꺼려했다. 우리는 아직 하루키나 체호프를 읽을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09. 08. 27.  

P.S. 아래는 <언더그라운드>의 러시아어본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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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대체 왜 하루키를 안 읽었을까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과 그때의 과도한 유행이 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아 근데 로쟈님 글 보니까 한 번쯤은 이 사람글을 읽어야 할 듯한 기분이 드네요.

로쟈 2009-08-27 17:36   좋아요 0 | URL
안 읽긴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후기작들은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듯해요...

목동 2009-08-2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기억의 사람을 찾으려는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어쩜 이 사람이 그 오랜 갈망의 그 사람인지 모를인데,,,

로쟈 2009-08-27 17:35   좋아요 0 | URL
흠 소설 한편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8-2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사할린 여행기는 저도 읽고 싶습니다.그 여행을 통해서 그의 문학관 철학관이 확고해지면서 톨스토이 류의 도덕주의에서 벗어난 계기가 되었다니까요.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책을 읽었군요.역시 번역은 많이 될수록 좋지요.

로쟈 2009-08-27 17:35   좋아요 0 | URL
네, 하루키가 영문학도 많이 읽었지만 러시아문학도 상당히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기본 소양인지 모르겠지만요...

2009-08-2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7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8-2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아주 오래전에 다행히도 [언더그라운드]를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그의 소설과 에세이에 푹 빠져있어서인지 [언더그라운드]는 가장 안 읽히더군요.

로쟈 2009-08-27 18:00   좋아요 0 | URL
<언더그라운드>를 최고로 치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09-08-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지만, 왜 '외상 이후의 하루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중에 글을 쓰시면 알게되겠지만, 그 '나중'이 언제일지 좀 요원해 보여서요.^^(무척 바쁘신 듯...)

로쟈 2009-08-27 23:47   좋아요 0 | URL
네, 제 생각에도 좀 요원합니다.^^; 저는 <언더그라운드> 이후에 비로소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가 된 거라고 보구요, 자신이 받은 충격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소화내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사회철학'을 이후의 작품들에서 재구성해보고 싶은 것이죠...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영화 <해운대>의 관객이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예고편에서 받은 인상을 넘어서는 뭔가가 영화에는 있는 모양이다. 더불어 '쓰나미'라는 대재앙과 경제불황에서의 심리가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도 싶고(영화 기획단계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효과일 수도 있겠다). 사실 그런 효과라면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살림Biz, 2008)도 누릴 만하지 않은가 싶다. '자본주의 대재앙'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책읽는 경향'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도 지적한 것이다.  

경향신문(09. 08. 21) [책읽는 경향]쇼크 독트린 

영화 <해운대>를 보고 천만관객을 동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편안한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그럴 듯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대재앙이 시작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여하튼 그간 묵은 상처를 봉합하고 거듭난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정작 현실 속의 우리는 재난을 겪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늘 사회가 힘들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고 경제가 어렵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렇게 해서 수립된 새 정부는 다 바꾸자고 한다. 4대강 사업을 벌이고 땅값은 계속 올려 다 같이 부자가 되자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난이 올 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재난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 책 <쇼크 독트린>(살림 Biz)에서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는 말을 쓴다. 기업하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그에 준하는 자연재해나 여타 사회적 재난을 핑계 삼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를 가동시킨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레벨을 민영화하고 정부의 기능을 아웃소싱했다. 그 와중에 사회의 공공성 축대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이 체제는 저절로 세계의 주류가 된 게 아니었다. 그 이념적 지주인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지휘 아래 제자들, 후원기업과 미국 CIA가 세상을 꾸준히 바꾸었다. 정부권력과 기업이 합작해 만들어낸 이 시스템의 파국이 우리에게도 닥쳐왔으나 우리는 여전히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김영진 영화평론가) 

09. 08. 25.  

P.S. 진보적 지식인의 새로운 기대주로서 "30년전의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듣는 나오미 클라인은 이제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그중 두권이 번역됐다), 벌써 '세계를 뒤흔든 지식인' 반열에 들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패턴을 찾아내어 감춰진 진실을 폭로한다. 이 책은 이제껏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책이다."라는 것이 <쇼크 독트린>에 대한 하워드 진의 평가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워서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다고 하니 우리의 사회과학서 현실과 비교된다(물론 클라인의 책도 한국시장에서는 한국의 현실을 따르지만). 아시아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용에 대해서도 클라인은 소략하게 다루고 있는데, 쇼크 독트린의 '한국 버전'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니까. 영화 <해운대> 관객의 1%만 관심을 가져줘도 '대박'이 날 텐데..

지난 연말에 나온 책이지만 만만찮은 두께를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미뤄두다가 나는 어제서야 뒤늦게 책을 구입했다. 시작부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공격이 신랄하다(나오미는 이 책을 30대에 썼다). 문제는 레오 스트라우스가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이다?! 생각난 김에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 <불경한 삼위일체>(삼인, 2007)와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려나 책이 좀더 많히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나대로 한번 더 '광고'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저자인 클라인은 1970년생으로 나이로만 치자면 나보다 젊다. 앞으로도 '창창한' 동행길이 독자로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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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noxr 2009-08-25 11:08   좋아요 0 | URL
아 쇼크 독트린은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이번 재난은 신종 플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D 그다음은 지구온난화겠죠?

로쟈 2009-08-26 01:05   좋아요 0 | URL
지구온난화는 많이들 다뤄서 신선할 것 같지 않은데요. <쇼크 독트린>의 주기라면 3년뒤쯤 책이 나올 듯합니다...

목동 2009-08-25 21:18   좋아요 0 | URL
남한 인구의 1/5분이 특정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세월이 겉을 싹~ 훌터버린 지금, 첫번째 우주발사 성공(?),
연애인의 파격적인 결혼 발표 등도 내겐 '쓰나미(-재앙)'다.
'쇼독(SD)'은 '즉사(卽死)'다. 내 또한 순진한 관객이다.
죽고 죽인 것들이 자연이 아닌 어떤 시스템에 의함에 놀랍다.
도착할 미래의 땅에서는 '인공쓰나미'가 나올법도 하다.

로쟈 2009-08-26 01:06   좋아요 0 | URL
네 칼럼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란 지적이 아프죠. 재난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사회인 것이니까요...
 

눈에 띄는 칼럼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안 그래도 이번주 시사주간지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특집호를 마련하고 있어서 오전에 한참 읽어봤는데, 저녁에 읽은 한림대 이일영 교수의 칼럼도 분류하자면 추모칼럼에 해당한다. 필자는 김대중과 그의 시대에 대한 재평가와 맞물려 '한국형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한국형'이란 말에 미리부터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서생이면서 상인'이고자 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결합시키고자 했던 '김대중 마인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생'과 '상인'이라는 일면적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어도 좋겠다.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를 넘어설 정치인이 아직 우리 곁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는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김대중 마인드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평전도 참조(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286008). 

 

제6대 국회에서 대정부질의를 하는 김대중  

한국일보(09. 08. 24) 김대중과 한국형 사회과학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논란 속에서 살았다. 한편에서는 그를 '전라도 빨갱이'로 음해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주의자로 비판하기도 했다. 점잖은 척 하는 이들은 "한국은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라고 하면서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한국 정치를 통째로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는 아직 김대중을 전면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수입된 '이론'은 현실파악 한계
굳이 따져서 말하자면, 개념 또는 언어의 낙후성, 사회과학과 언론의 후진성을 먼저 거론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근대와 탈(脫)근대에 복합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21세기의 시대적 과제가 눈앞에 있다. 과거의 수입된 사회과학 개념만으로 김대중과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하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 벌어지는 전근대적인 언어전쟁이야말로 삼류나 사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다.

복잡하게 변화된 세계는 좌파 대 우파, 또는 진보 대 보수라는 틀로 확연히 갈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거의 시각과 언어들은 아직 기세가 강하고, 심지어는 '척결'이나 '적출'의 신념과 행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논점을 프레임에 가두려는 현대적 기술을 흉내 내려는 것으로도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 본질은 전근대적인 척사론(斥邪論)이다.

근대로의 길목에서 조선의 척사파들은 "중국과 조선은 인류(人類)이나 서양은 금수(禽獸)"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척사론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짐승의 자리에 또 다시 '빨갱이'를 올려놓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모두 망쳤다는 것도 척사론의 전통을 잇는 또 다른 형태의 주장이다. 



강동국 교수에 의하면, 국민이나 그에 기반을 둔 국가는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절에 서양으로부터 일본과 중국을 거쳐 유입된 개념이다. 그러나 서양에서와 달리 국가나 그 주권자로서의 국민 개념은 순조롭게 정착되지 못했다. 독립협회는 대한제국에 의해 유린되었고,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주의에 침탈되었다. 한반도에서 국민과 국가는 철저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해방 이후 국가는 회복되었지만 그것은 매우 불완전한 존재였다. 남북한 모두에서 국가장치는 심각한 폭력과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결국 북한은 '실패한 국가'로 귀결되었고, 남한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성공한 국가'와 그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등장하고 있다.

국가는 현실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절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남북한 양쪽에서 국가의 정통성을 절대시하려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부국강병 일변도로 질주하다가 자멸하고 말았던 일본제국주의의 무모함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려는 경우도, 국민이 허약하고 국가가 불완전할 경우 국가사회주의가 실패했던 길을 따라갈 위험을 안고 있다.

민족 개념이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20세기 벽두이지만, 국가나 국민 개념에 비하면 성공적으로 수용되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그 국민이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규정되자, 국가와 국민 개념은 한반도 주민에게 저항의 대상이 되었다. 대신 민족 개념은 일본제국에 저항하는 언어가 되어 결국은 승리자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민족 개념이 통일을 지향하는 언어로 정착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남북한 양측에서 민족 개념은 분단을 유지하고 국가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민족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족 개념이 남북간 연합에 기능 한다면, 남북한 각각의 개혁과 개방에는 새로운 개념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에 대한 한국형 '개념' 필요
필자는 남북한의 혁신과 통합은 지역을 재구성하고 경제조직을 다양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국민국가, 민족, 계급과 같은 기존의 개념을 반성하고 보완하는 한국형 사회과학 개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서생이면서 상인이고자 했던 김대중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안도 마련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해 일생 분투한 대정치가의 명복을 빈다.(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09.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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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24 21:18   좋아요 0 | URL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를 넘어설 정치인이 아직 우리 곁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는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하다"를 조금 비틀면,
-->> "우리가 선생님이다고 부를만한 정치인이 앞으로 나오것소 택도 없제, 인자 쭉정이들만 남아갓고 무엇을 엇쩢가잉!".

국가 -> 민족 -> ?


Sati 2009-08-24 23:10   좋아요 0 | URL
조금 비트신 것이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신 것처럼 보여요.

로쟈 2009-08-26 01:03   좋아요 0 | URL
언제나 돌아가신 분들은 조금 더 커보이긴 합니다. 상징이 되니까요...

목동 2009-08-26 19:41   좋아요 0 | URL
미래형 상징이 되려면 우리의 민주주의 미래를
긍정적 아니면 회의적으로 보느냐가 강건인데.

 

낮에 잠시 집에서 가까운 분향소에 들러 분향을 하고, 오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 실황을 TV로 봤다. 무거운 마음에 해야 할 일들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한번 더 정권교체가 된 이후에 세상을 떠나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모두가 좀더 흔쾌히 보내드렸을 터인데...     

  

오전에 <인권의 발명>(돌베개, 2009)을 읽기 위한 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며 떠올린 기사는 지난 주초에 시사IN에서 읽은 것이다. 지난 6월 북미 지역 대학 교수 240명도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한 바 있는데, 그중 36명은 외국인 교수였다. 이들과의 인터뷰가 특집기사였는데, 그중에서 김 전 대통령과도 교분이 두터웠던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최소한 고문은 없어졌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전두환 같은 독재 정부는 아니라는 멘트 때문이다(<인권의 발명>에 따르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도 참혹한 고문이 법정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졌다). 브라보 마이 컨츄리! 하긴 80년대만 하더라도 고문이 횡행하고 '고문기술자'들도 있었던 것이니(김대통령의 장남 깅홍일 전 의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잖은가)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 것인지! 그럼에도 기사를 읽으며 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하도 '역주행'이 현 정부의 주특기인만큼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면 한심하면서도 끔찍한 일이다(아래는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과연 '고문 없는 사회'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최대치인 것인지?.. 



시사IN(09. 08. 17) "민주주의의 밀물이 빠지고 있다"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67)는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 부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도우며 인권·평화 운동을 펼쳤고 이후 아시아인권감시센터를 창립하기도 했다.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8월13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신호철 기자)  

 

2003년 8월2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강연에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오른쪽)가 함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한데 한국 민주화 운동을 도왔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각별할 것 같다.
어제 세브란스 병원에 문안을 가서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보지 못했는데, 그건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 말로는 김 전 대통령이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말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거의 주무시는데, 잠자는 건지 의식이 없는 건지 걱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을 언제 처음 만났나?
1975년 동교동 자택에서였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 아웅산 수치 여사처럼 가택 연금 중이었고, 나는 미국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한국에 있었다. 당시 서울 서소문 풀브라이트 하우스에는 나를 비롯한 미국인 친구들이 모여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했다. 이희호 여사는 영어를 잘해서 미국인들과 친분이 있었고, 김대중 선생은 47세에 늦깎이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김 선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더글러스 리드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우리보고 동교동에 가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김대중 선생은 한국 민주화 영웅이었으므로 꼭 뵙고 싶었다. 동교동 자택에서 통역은 필요없었다. 우리도 한국어를 꽤 했고, 김대중 선생은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정확하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가 영어를 참 빨리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후 미국에서 또 그를 돕게 되었다.

첫 만남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1983년 그가 석방돼 미국으로 왔을 때, 이틀 만에 워싱턴 D.C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갑자기 미국으로 와서 어떻게 생활할지 준비가 덜 돼 있었다. 나는 하버드 대학과 이야기를 해서 국제문제센터 연구원으로 계시게 했다.

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미국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김대중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미국 지식인의 평가는 김영삼보다 김대중 쪽이 더 실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선생이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졌을 때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선생은 하버드 대학에 있으면서도 계속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매우 걱정했다. 1983년 8월21일 베니그노 아키노 의원이  필리핀으로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관심은 한국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 1987년 6월 항쟁 때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개스턴 시거가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이 김대중 선생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전두환에게 1980년 광주처럼 군대로 시민을 치지 말라는 신호였다.  

외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높은 데 비해 한국에서는 반대자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추도사를 하려다 좌절되는 수모도 당했다. 입원하기 전에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 생각에는 김대중 선생은 한국에서 아주 역사적인 역할을 하신 분인데, 안타깝다. 요즘 한국이 왜….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많은 잘못을 했다.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때와 비교해 지금은 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

예를 들어 노동계에 대한 공세적 대응이나 용산 참사에 대한 대처라든지, 남북 관계는 방치한 것 따위. 북한도 책임이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맺은 선언과 국가 조약을 이 정부가 무시한 것을 고려하면, 북한이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쇠고기 수입 문제는 아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한국 국민과 같이 토론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미국 방한 때 이 대통령이 자신을 CEO 대통령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CEO라고 생각하는 건 민주주의 나라 대통령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CEO라는 말은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다.
CEO라는 자리의 특징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과 아주 다른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는 점이다. 이게 핵심이다.

미디어 정책도 공세적이다.

얼마 전 미디어법 통과 논란을 지켜봤는데, 권력 기업이 신문·방송 겸영하는 것은 미디어의 집중화와 독점화를 가져오고, 비판 기능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1970년대 동아투위 생각이 났겠다.
동아투위 사태 때 이부영 기자가 소공동 풀브라이트 사무실의 우리 미국인 모임을 찾아왔다. 그래서 동아투위를 알게 됐고, 우리가 돈을 모아 동아일보에 독자 광고도 냈다. 문구가 “언론자유 만세, 미국의 친구 16명”이었다. 동아일보 앞에서 한국인들이 시위하고 있는데 키가 큰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서 있는 모습이 도드라졌던 기억이 난다.  

 

베이커 교수(위)는 박정희 정권 이래 한국 현대사를 눈앞에서 지켜보며 민주화 운동을 도왔다.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전두환 같은 독재 정부는 아니다. 최소한 요즘 고문은 없어졌다.

그럼 노태우 정부와 비슷한가? 김영삼과 노태우 사이일까?

글쎄, 그것도…. 노태우도 겨울 공화국이란 간판 밑에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당시 내가 아시안인권감시센터를 세웠는데 그때 한국 민주운동가들 아주 힘들었다. 어떤 선을 그어서 어디까지 후퇴했다고 측정해 말하기는 힘들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밀물이 빠지고 있다(high tide of democracy is now going backward)는 점이다

09.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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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24 11:39   좋아요 0 | URL
'이웃집 아저씨'론을 언젠가 써야겠어요. 이웃집 아저씨는 돌아서면 나를 죽으려 작동합니다. 조직속에서 나의 이웃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적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등을 맞대고 서로의 이웃를 욕합니다. 아저씨는 어느 공간에, 어느 집단속에 있을 때면 다른 괴물로 변합니다. 조직이라는 미명하에. 해가 지면 낮에 했던 말과 행동을 잊고 은밀한 밤공기를 쏘이며 이웃을 위해 무슨 작전을 합니다.
"너희의 비애가 아무리 크더라도 세상의 동정을 받지마라, 동정속에 경멸의 생각이 들어있다"(플라톤)

로쟈 2009-08-26 01:0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웃집 살인마'보다는 나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