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프 하임 예루살미의 <프로이트와 모세>(즐거운상상, 2009)를 구하러 교보에 들렀다가 같이 집어든 책은 김병익 선생의 비평집 <기억의 타작>(문학과지성사, 2009)이다. 출간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김병익 읽기' 리스트라도 꼽아놓으려던 참이었는데, 책의 3부에 '도스토예프스키 읽기'와 '토마스 만' 읽기에 포함돼 있어서 주저없이 계산대로 갔다(한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다보니 '비평'이 아니라 '메모'였다! 사연은 책머리에서 읽을 수 있다). 이청준과 박경리 세대의 비평가로서 유명을 달리한 '도저한 작가정신'들을 추모하는 글들이 비평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비망록으로 다가온다(책의 부제가 '도저한 작가정신을 위하여'이다).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마지막에서 두번째의 책’이라는 기분으로 이번 평론집을 묶었다는 김병익씨. 그는 근래 수술을 받은 아내 정지영씨를 “이 글들을 쓰는 즐거움을 모아 내가 인사를 드려야 할 마지막의, 그러나 가장 앞세워야 할 사람”이라고 서문에 썼다.
세계일보(09. 10. 24) "문학은 기억의 회로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문학평론가 김병익(71)씨가 5년 만에 새 평론집을 묶어냈다. 김씨는 4·19 이후 한글세대의 선두에 서서 김현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문학과지성’을 창간했고, 이후 ‘문지 그룹’의 좌장으로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이번 평론집 ‘기억의 타작’(문학과지성사)은 ‘도저한 작가정신을 위하여’가 부제인데, 이는 지난해 연달아 작고한 박경리 이청준 홍성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들의 작가정신을 기리는 의미가 크다. 이번 책에는 이들 세 작가에 대한 회고와 추도 외에도 박완서 송영 김연수 황동규의 작품 해설과 강연원고와 에세이, 도스토옙스키와 토마스만 독서일기까지 망라돼 있어 노년에도 성실한 읽기와 쓰기를 중단하지 않는 노정이 생생하다.
그는 문학과지성사 대표에서 2000년 퇴임한 뒤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와 문화예술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거쳐 지금은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라는 형식상의 직함만 남겨두고 모든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매주 목요일마다 문지에 나와 벗들과 소일한 뒤 귀가하는 게 유일한 공식 일정이다.
―서문에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책’이라고 언급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건강은 괜찮습니다. 이 책을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안쓰러워서, 그냥 아쉬움을 남겨 두겠다는 기분으로 그리 썼습니다.”
―책에서도 깊이 언급했지만 지난해 소중한 문인들을 연달아 떠나보내면서 상심이 컸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문학의 아름다운 고전적 전통의 맥이 끊기는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는데, 한국에서 품위와 자존의 문학은 이제 보기 힘들어지는 겁니까.
“작가가 한 시대의 표징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독일의 토마스만’이 아니라 ‘토마스만의 독일’을 먼저 떠올리게 되거나 우리나라에서는 이광수나 만해, 미당이나 황순원 같은 작가들을 통해서 한 시대를 보는 듯한 작가의 아우라를 느끼곤 했었지요. 21세기로 넘어오면서는 작가로서의 후광이나 위상이 굉장히 약화된 것 같습니다. 박경리 이청준 홍성원 같은 그 시대의 표징이 될 수 있는 작가로서의 존재를 앞으로는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일본이나 프랑스 문학인들이 이런 상황을 ‘문학의 종언’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문학의 독보적인 권위와 품위는 밀려나고 작가도 창조적인 멘토로서의 존재보다는 기능적이고 재기 있는 존재로 변한 건 아닌지 아쉽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나 행태가 마뜩지 않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박경리 이청준 세대의 표상이나 무게, 진정성 같은 것들을 지금 젊은 작가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지요.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시대를 증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면에서 요즘 작가들이 운이 안 좋은 편이지요.”
그는 젊은 작가, 혹은 현금의 한국문학을 그 전 세대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낮추어 보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젊은 작가’의 작품 중 신경숙(46)의 ‘엄마를 부탁해’를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그에게 신경숙은 젊은 작가일지 모르되 일반적인 눈높이로는 그네가 결코 젊은 축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적했더니, 그는 다시 배수아(44)의 최근작 ‘북쪽 거실’을 “요설스럽게 맘껏 떠들었는데도 힘이 있고 세계의 핵심을 찌르는 것 같다”고 상찬했다. 그는 이어 “30대 혹은 20대 후반 작가들의 작품이 싱싱하고 재미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작품의 무게랄지 전달되는 역동적인 힘이 선배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부연했다.
―문학을 ‘기억의 예술’이라고 서문에 언급했는데, 나이 드는 게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에 유리한 조건일 수 있습니까.
“문학이 기억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의 회로를 통해서 문학을 볼 수는 있습니다. 상당히 큰 부분이지요. 창조나 상상력의 부분을 시간의 축적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봐왔는데, 앞을 보기보다는 뒤돌아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니까 시간과 함께 축적돼온 기억들이 이제 와서 소중하게 여겨지고, 역사나 고고학 심지어 개인의 일기까지 기억을 위한 인간들의 작업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을 다 정리할 순 없겠지만, 필요한 것들만 거두어 타작(打作)질한다는 의미로 이번 평론집 제목을 정했습니다.”
긴 세월 한눈 팔지 않고 낮은 목청과 분명한 취향으로 한국문학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한글세대’ 1세대, 이제 한국문단의 ‘원로’ 반열에 올라선 김병익씨. 그가 ‘박경리 선생을 위한 단상’을 부제로 달고 써내려간 ‘도저한 삶, 자존의 문학’의 첫 문단은 젊은 에너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늙어갈수록 더 깊어지는 문학의 힘을 충분히 웅변하는 명문이다.
-임종의 숨을 거두신 후의 시간이 아직 여물지 않아서인지 선생의 안색은 평소와 다름없이 맑고 깨끗했다. 꼭 감은 눈가 자위의 누르스름한 잔기에는 힘든 이승의 고달픔이 흐릿한 흔적처럼 남아 있지만 복스러워 보이는 입매는 미련을 버리려는 듯 앙다물려 있고 표정은 착잡했지만 평화로웠으며 얼굴은 한창 젊은 시절의 날선 품위와 노후의 넉넉한 고매함이 한 모습으로 어울려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한없이 넓으면서도 가운데로 정기가 맺혀져 있는 옹골찬 인상을 보이고 있었다. 저것은 아픔일까 흐뭇함일까, 슬픔일까 해한(解恨)일까, 버티기일까 받아들이기일까.(84쪽) (조용호 선임기자)
09. 10. 23.



P.S. 김병익 선생의 책으로 내가 제일 처음 읽은 건 비평집이 아니라 번역서로, 조지 오엘의 <1984년>(문예출판사)이었을 것이다. 전세계가 백남준의 비디오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함께 시작했던 그해, 1984년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1984년>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야 <들린시대의 문학>(문학과지성사, 1985)와 <전망을 위한 성찰>(문학과지성사, 1987) 같은 비평집을 손에 들었다. 특히 <전망을 위한 성찰>은 불문학 전공의 후배 비평가 진형준 교수가 TV에 나와 추천한 기억 때문에, 문학평론가 김병익, 하면 으레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평론집이다. 그리고 접한 책은 아마도 공역으로 펴낸 E. H. 카의 <도스토예프스키>(홍성사)와 유진 런의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문학과지성사, 1988) 같은 번역서들이었겠다.

강렬한 주장이나 현란한 문체를 뽐내지 않아서 도드라지지 않지만 '맏형'을 연상시키는 온화함과 후덕함이 내가 떠올리는 그의 이미지이고 비평이다. 굳이 비평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한국 문단사 1908-1970>(문학과지성사, 2001)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내 생각엔 저널리즘에 몸을 담기도 했던 비평가로서 그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나는 그 속편을 은근히 기다리는 독자인데, 나올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