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1930년대에 중국 동북 지역에 세운 만주국에 대한 책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작년에 나온 <주권과 순수성>(나남, 2008)의 부제가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여서 새삼 만주국이란 존재에 대해 상기하게끔 됐는데, 그렇다고 관심분야는 아니어서 읽어볼 형편은 되지 않았다. 최근에 나온 오카베 마키오의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어문학사, 2009)은 만약 이 주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가장 먼저 읽어볼 만한 입문서 역할을 해줄 듯싶다. 마침 이번주 시사IN에 서평기사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타이틀만 보고도 필자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사IN(09. 10. 23) 미스터리 만주국?

만주(滿洲)를 아십니까? 아마도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로 시작하는 <광야에서>라는 노래를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이 노래를 뜨겁게 불렀던 나조차 그때 우리가 왜 한국의 민주주의를 희구하면서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가사에 전율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내게 최초의 만주 이미지는 이육사와 윤동주에게서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동아시아의 ‘역사 전쟁’이 불붙으면서 이른바 중국의 ‘동북 공정’ 문제가 동아시아 역내의 주요한 분쟁 의제가 되면서 다시금 만주 이미지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주 문제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1Q84>에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문학청년 덴고의 아버지는 일제 말기 만주에 농업 이민을 갔다가 패전 후 완전히 삶이 뿌리 뽑혀 귀향한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만주라는 표현을 쓰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중국은 청나라 시대부터 그것을 ‘동북(東北)지역’이라 불렀고, 이는 국경 개념이 희미했던 변경(邊境)을 명백한 중국의 관할로 확정하고자 하는 의욕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만주에 대해 떠드는 것은 최근에 읽은 오카베 마키오의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어문학사) 때문입니다.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만주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조선인에게 만주는 국외 무장 항일투쟁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 역시 반제국주의 투쟁의 중심 장소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대아시아 정책의 최전선이자, 소비에트 남하를 막는 ‘반혁명의 전초기지’였고, 태평양전쟁 이후로는 후방 기지 성격을 띠는 중층적 공간이었습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 황제를 지낸 푸이(왼쪽 세 번째)와 그의 가족. 

만주는 일제 말기 총력전 체제의 희생양
일제 말기 문학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만주라는 공간에 대해 실감할 수 없었고, 그래서 수 년 동안 이 시기 전문가인 김재용 교수(원광대)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막연하나마 만주의 이미지를 그려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체험>(역락)을 김재용 교수의 지도 아래 편집하기도 했지만, 역시 내게 만주는 실감이 없는 한 개념일 뿐이었죠.

그러다가 최근 번역된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을 읽고 보니, 지난 수년간 피상적이던 만주인식의 한계를 넘어 분명한 실체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저자인 오카베 마키오의 만주 연구는 일본 지식인들이 견지하는 매우 끈질기면서도 무서운 학문적 태도를 느끼게 합니다. 어떤 직업적 안정 없이도 수십 년에 걸쳐 만주국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념을 발휘하는 것은 존경스러울 정도지요. 마치 일본에는 임종국 선생이 여러 명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은 1932년 만주에 성립되었던 ‘만주국’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일본의 파시즘이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반혁명으로 성립되었으며, 만주 역시 조선과 함께 일제 말기 총력전 체제의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만주국이 중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말은 조선의 근대화가 그렇듯 날조된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이명원_문학평론가) 

09. 10. 24.  

P.S. 그러고 보니 '북만주 벌판'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무대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역사적 공간이면서 판타지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실체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겠다. 관련 연구서뿐만 아니라 교양서들도 더 나옴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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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0-25 15:16   좋아요 0 | URL
2000년 들어서 만주국이나 만주철도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 고무적입니다.그런데 이명원 씨가 '만주는 중국인에게 반제투쟁의 중심장소'라고 한 것은 오류 같습니다.아무래도 사실상 식민지였기 때문에 중국의 다른 지역보다 억압이 심했지요.왜 만주에서 투쟁이 약했는지를 파고든 책이 이정식<만주혁명운동과 통일전선>입니다.어쨌든 이런 책이 계속 번역되는 건 좋은 현상입니다.

로쟈 2009-10-25 22:21   좋아요 0 | URL
아직 국내의 연구역량은 부족한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10-26 16:09   좋아요 0 | URL
일본쪽에 비하면 아직 부족합니다.하지만 만주를 배경으로 한 문학연구는 상당히 축적이 되었지요.역사학에서도 한석정 등이 있습니다.관동군의 반게릴라 전술을 연구한 윤휘탁도 있구요.만주군벌 장학량을 연구한 이도 있지요.아편정책을 연구한 김에 만주마적에 대해서도 학술적인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관동군과 합작한 친일마적도 있었고 심지어 일본인 마적두목도 있었으니까요.

게슴츠레 2009-10-26 22:01   좋아요 0 | URL
만주와 관련해서 궁금한 게 흔히 관동군이 군사력으로 압도해 건설한 나라라고 하지만, 마냥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꺼림찍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이 말씀하신 '친일마적'이 그 요소 중 하나이지요. 물론 일본의 군사행위를 침략으로 간주하고 대항했던 마적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마적들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관동군은 만주국 건국을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지않은 군사적 부담과 비용을 안았어야 했겠지요. 협력의 이유도 단순히 매수나 협박 뿐만이 아니라 청조 복벽주의자같은 이들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마적들이 각자 어떤 이유에서 만주국에 참여했는지 규명하는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이를 통해 만주국 기획 이데올로기의 '허상'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이상'적 차원이 잘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쟈 2009-10-26 22:35   좋아요 0 | URL
연구자들에겐 아직 광활한 지역이 미지의 영토로 남아 있군요.^^

게슴츠레 2009-10-26 15:06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한석정 씨의 책이 이 쪽에 발을 들이기 좋은 것 같더군요. 로쟈님이 지적하신대로 만주국에 대한 양가적인 시선(괴뢰국 또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발걸음)을 언급하시고 만주국을 폄하하지도 낭만화하지도 않은 채로 접근해 가시더군요. 그렇다고 만주국을 하나의 케이스 스터디로 국한시키지도 않고 '근대 국민 국가'라는 묵직한 화두에 접근하는 발판으로 삼습니다.

로쟈 2009-10-26 22:35   좋아요 0 | URL
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