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원래는 지난주에 나갔어야 할 칼럼이지만 기한을 못 맞춘 탓에 한 주 늦춰졌다(그러니 이번주 원고로는 가장 빨리 내지 않았을까 싶다).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을 읽은 소감을 몇 마디 적었다.   

교수신문(10. 03. 15)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상의 오빠’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한 책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을 읽고 지난 시대 ‘사상의 은사’를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어떤 은사였던가. 강준만 교수는 예전에 이렇게 적었다. “멀쩡하던 대학생들이 리영희의 책만 읽으면 충격을 받고 이상하게 변해갔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에만 몰두하겠다던 ‘청운의 꿈’을 내던지고 진실과 인권과 상식의 가치에 입각해 이 사회와 나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의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역할은 주로 70년대 후반, 혹은 80년대 초반의 학생·청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였다. 『전환시대의 논리』(1974)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의 하나로 꼽히지만, 80년대 후반 학번인 나에겐 이미 ‘지나간’ 책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리영희와 책읽기’를 다룬 천정환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달라진 대학가의 독서문화와 관련된다. 『강철서신』이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같은 젊은 세대의 책이 대학가를 주름잡던 시기여서 “리영희 같은 경험 많고 나이 든 스승을 경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여느 80년대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세미나 세대’였던 나도 학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읽은 책은 『철학에세이』였고 『페레스트로이카』였다. 게다가 ‘교조주의자’들이 많았던 80년대에 리영희는 ‘수정주의자’로 내비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안수찬 기자가 들려주는 1990년대 후반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1997년 겨울 한겨레신문의 수습기자들이 사내 교육으로 리영희 선생의 강의를 들었지만 “모두 잤다. 누구는 허리를 세우고 잤고, 누구는 엎드려 잤다”는 고백이다. 시대가 다르다고, 최소한 달라졌다고 믿은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대학생 자유기고가 한윤형이 정확하게 짚어준 대로, 대학 진학률이 달라졌다. 1970~80년대 대학생 비율은 청년층의 30%였고, 바로 그 대학생들이 청년문화와 정치의식을 주도했다. 그것이 말하자면, “어떠한 사상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처음의 소수가 필요”하다는 리영희의 ‘소수의 전위부대’론, 곧 ‘인텔리겐치아’론과 대학문화가 접목될 수 있는 토대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학 진학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86% 수준이라고 하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대학생이 더 이상 운동의 동력도, 사회의 전위도 아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리영희와 청년문화의 대립항 자체가 상실됐고, 오늘날의 청년은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고립된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한윤형의 진단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도 돈만 굴리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악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시대에, 예비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자본이 자신을 착취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편입’”이라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직한 토로다. 이러한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금 ‘사상의 은사’를 반추하게 된다. 

20대 에세이스트 김현진과의 대담에서 리영희 선생은 ‘변혁’은 반드시 온다는 신념을 거듭 피력했다. 현실사회주의가 패배한 것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 또한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국가 사회의 지배세력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없는 사람들을 박탈하고 모두에게 공정히 돌아가야 할 기회를 빼앗는다면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변증법이 그의 오랜 확신이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레닌을 반복하라’고 말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과도 겹친다.     

지젝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 혁명적 과정의 두 가지 계기를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와 ‘새로운 삶의 창안’으로 정리한다. 리영희 선생의 설명대로, 의사와 같은 특권계급을 필수적으로 1년씩 시골로 보내 똥지게를 지게 한다든가 궂은일을 하게 하는 것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게 한 다음 다시 자신의 일터로 복귀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듯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을 겨냥했지만,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일상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젝은 그 실패가 문화대혁명이 과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과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마오쩌둥 자신이 인민에게는 반란의 권리가 있다고 독려하고 부추겼지만, 정작 백만 명의 노동자가 국가와 당 자체의 소멸을 요구하면서 직접 코뮌적 사회를 조직하고자 시도하자 군대를 동원해 소요를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실패가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전적인 투항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지젝은 베케트의 말을 인용해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고 말한다. 리영희 선생이라면 노신을 인용해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의식화의 원흉’이 아닌 ‘사상의 오빠’(김현진)로서 그의 말과 글은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10. 03. 15.  

P.S. 올해는 대학진학률이 작년보다 약간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80%를 상회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계간지 봄호 특집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황해문화>의 '대졸자 주류 사회와 위기의 대학'인데, 바로 대학 진학률 80% 사회의 초상과 문제를 짚고 있다. 보다 본격적인 진단과 분석이 필요한 주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03-1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강철서신><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공통점은 읽은 척하는 사람은 많으나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죠.강철서신은 책이라고 하기엔 좀...

로쟈 2010-03-16 23:24   좋아요 0 | URL
팸플릿인데, 겹낫표를 해서 책처럼 돼 버렸네요.^^;

comorin 2010-03-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지나가는 공돌이입니다.^^; 전 90년대 후반 학번인데, 강준만 교수의 리영희 입문서를 읽은 뒤에 뒤늦게나마 "전환시대의 논리"(이하 전논)를 읽었습니다. 사실 "전논"은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획기적인 서적이었겠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대단하게 진실을 '폭로'하는 수준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고, 행간의 뜻을 살펴보면 정말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사실 "리영희"가 예전보다 않읽히고, 찾지 않아졌으면 하는게 "리영희" 선생의 소망이라고 하는데, 과연 앞으로도 그게 진지하게 이루어질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더 찾게 되지나 않을지 하고..

로쟈 2010-03-19 10:51   좋아요 0 | URL
명불허전이 맞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는 '과거의 지식인'이 아니구요...
 
16세기 장인들의 문화혁명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2010)을 다루고 있다. 이미 일간지 리뷰들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책이지만, 초점을 조금 달리하여 한번 더 언급하게 됐다. 대단한 역작이어서 제쳐놓기가 어려웠다. 

 

한겨레21(10. 03. 22) 16세기 직인, 지식사회에 도전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16세기에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이 형성된 때로부터 자본의 근대사가 시작된다”고 적었다. 세계체계론자인 월러스틴도 근대세계체계는 16세기(1450-1640년대)에 형성돼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기원을 16세기로 잡는 것이다. 그런 것이 경제사에서 ‘16세기’가 갖는 의의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사적으로 16세기는 보카치오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14-15세기의 르네상스와, 갈릴레오나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의 계곡처럼 간주돼온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테면 들러리다.   

대학과 성직자 VS 미술가와 장인
‘자력과 중력의 발견’을 다룬 <과학의 탄생>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또 다른 역작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펴냄)을 통해서 이러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세계의 ‘지각변동’으로 16세기를 재평가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이 대륙판들의 충돌로 인한 대규모 지각변동의 결과인 것처럼, 17세기 과학 천재들의 혁혁한 업적도 16세기 문화혁명이 밀어올린 지반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6세기가 과소평가돼왔다면, 그것은 16세기 문화혁명을 주도한 직인이나 기술자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절하와 무관하지 않다.   

중세 서유럽의 대학에서 육체노동은 멸시 대상이었으며, ‘기계적’이란 말은 ‘손으로 하는’ 혹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의 의미였다. ‘기계적 기예’는 자유인이 익혀야 할 학예를 뜻하는 ‘자유학예’와 대비됐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의 대비였으며, 라틴어를 사용하는 엘리트 지식인과 직인 사이의 대비였다. 저자는 중세의 지식이 특정한 구성원들에게만 전수되었던 데 반해서 16세기는 이러한 비밀들이 벗겨지기 시작한 시대로 지목한다. 대학과 성직자가 독점하던 문자문화에 대해 선진적인 미술가나 장인이 도전장이 내민 형국이었고, 이로써 지식의 분단 상황은 와해돼간다.  

저자가 16세기 문화혁명의 지표로 내세우는 것은 대학과 인연이 없던 직인, 예술가, 외과의들이 속어(각국의 언어)로 과학서와 기술서를 쓰기 시작한 점이다. 알다시피 로마제국의 유산인 라틴어는 통치를 위한 공용어였고 문명어였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의 권력자들에겐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수단이었다. 민중의 생활과는 단절된 소수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로서 라틴어는 비록 지역 간 언어의 장벽을 없애긴 했지만, 소수 엘리트와 민중의 사이에는 높은 장벽을 쌓았다. 그럼으로써 민중을 학문세계로부터 배제했다.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할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 육체노동과 잡일에 종사했을 정도다. 라틴어 구사 능력의 유무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던 셈이다(그것은 오늘날 ‘영어 시대’에도 얼추 들어맞지 않을까).   

'과학혁명'이 누락한 것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도 중세 스콜라학에 이의를 제기한 건 맞지만 학문 세계의 배타성까지 타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속어는 물론이고 속어가 섞인 라틴어조차도 저급한 것으로 경멸했다. 자연에 대한 비밀도 민중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레 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지식계급이 생각한 ‘도덕적 책무’였다. 이러한 사정은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에도 적용되었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지동설을 그냥 주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천문대화>를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로 저술함으로써 누구라도 알 수 있게끔 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95개 논제’를 라틴어로 썼을 때에도 파문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을 독일어로 번역․요약해 인쇄하자 그의 주장은 순식간에 독일 전역의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이런 것이 16세기 문화혁명에 수반된 언어혁명의 양상이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성장한 ‘국어’는 국민국가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  

16세기 문화혁명의 성과는 17세기에 들어서 엘리트 지식인들이 계승하게 된다지만, 그사이의 ‘단절’도 간과하긴 어렵다. 지식과 과학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란 질문을 과학혁명의 ‘승리의 진군’은 누락한 듯싶어서다.   

10. 03. 15.

 

P.S. 분량상 발췌독을 했지만 <16세기 문화혁명>은 서평거리로 읽은 책들 가운데 발군이다. 힐베르크의 역작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래서 그의 전작 <과학의 탄생>(동아시아, 2005)도 긴급하게 구했다. 제2부의 한 장 제목이 '과학혁명의 여명 - 16세기 문화혁명과 자력의 이해'다. <16세기 문화혁명>은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후속작인 셈. 두 권은 과학사와 문화사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morin 2010-03-1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마모토씨의 저작이 또 나왔군요. 전공투의 힘이 느껴집니다...

로쟈 2010-03-19 10:46   좋아요 0 | URL
대단한 역량의 저자인 건 맞습니다...

괄호밖 2010-12-1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저공비행]을 읽고 접속하게 되었고, 지금껏 이 서재의 글과 댓글을 탐독하며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매일 늘어만 갑니다. 읽을 책이 늘지만 오히려 기분은 짜릿하네요. 고맙습니다.

P.S. 잘못된 부분이 있기에 씁니다.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할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를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도서출판b, 2010) 개정판에 이어서 가라타니 고진의 <정치를 말하다>(도서출판b, 2010)가 출간됐다(생각보다는 얇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여섯 번째 책으로 이제 <전전의 사고>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다. <역사와 반복>(도서출판b, 2008)이 출간됐을 때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엔 이 컬렉션의 책들만으로 리스트를 한번 더 만들어둔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0년 03월 15일에 저장
품절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6년 4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0년 03월 15일에 저장
구판절판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0년 03월 15일에 저장
품절
네이션과 미학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9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0년 03월 15일에 저장
품절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빵가게재습격 2010-03-16 00:44   좋아요 0 | URL
'사상의 오빠'가 가능하다면, '고진 오빠'도 가능할 듯 싶은데요. 고진 오빠 넘 좋아요~꺄악!

로쟈 2010-03-16 08:19   좋아요 0 | URL
그럴 땐, '옵하'라고 쓰던가요?^^

반딧불이 2010-03-16 12:47   좋아요 0 | URL
<근대 문학의 기원>을 보고 면도날 같은 그의 사유에 맛이 갔었는데 '종언'에서는 좀 두루뭉실 되다가 '공화국'과 '윤리21'은 포기하고 말았어요. 제가 미천한 탓이겠지만 고진의 글은 문학에 관한 글에서 더 빛나는 듯 하더라구요.

로쟈 2010-03-17 01:36   좋아요 0 | URL
문학비평을 떠났으니 고진으로선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는데요.^^ <정치를 말하다>는 간명한 대담집이어서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요길할 듯합니다...
 

최근 한국인 유학생 피습으로 다시금 관심사로 떠오른 러시아의 스킨헤드와 인종테러를 진단하는 기고기사를 옮겨놓는다. 2004년 러시아 체류시에도 잔뜩 긴장하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실제로 공원 등지에서 가죽옷을 입은 스킨헤드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자본주의 러시아의 음울한 이면인데, 혹 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미리 주의하는 게 좋겠다.    

외국인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러시아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인 유학생이 또 피습을 당해 대책이 시급하다. 주러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7일 오후 5시쯤 모스크바시 유고자파드나야의 상가 건물 앞에서 모스크바 국립 영화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심모(29)씨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려 한때 중태에 빠졌다. 심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다. 외교 당국자는 심씨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 6년 전 모스크바에 유학 간 심씨는 노래방에서 나오다 변을 당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심씨는 동료들과 헤어져 걸어가던 중 흰 가면을 쓴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으며, 이 괴한은 곧바로 달아났다. 이 지역은 지난주에도 외국인 한 명이 현지 청년들에게 살해되는 등 외국인 대상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현지 경찰은 범행수법으로 미뤄 극우민족주의자인 스킨헤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한국인 대학생 강모(22)씨가 지난달 15일 극동 알타이주 바르나울시에서 현지 청년 3명에게 흉기 등으로 집단 폭행을 당해 숨졌다.(세계일보 3월 8일자 기사)

 

한겨레(10. 03. 15) [기고] 나치와 러시아 순혈주의의 만남

짧은 머리에 가죽옷, 그리고 그 가죽옷에 달려 있는 반짝이는 금속물체들…. 이들이 스킨헤드들이다.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유색인종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고 다닐까.

히틀러의 탄생일인 4월20일은 스킨헤드들에게 가장 큰 축제의 날이다.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은 이날을 기념하면서 순수한 ‘루스키’(러시아) 혈통을 강조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테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얼마 전 있었던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잇따른 인종테러도 이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스킨헤드는 1960년대 후반 패션·음악·생활에 영향을 받은 영국 노동자들의 하부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스킨헤드의 하부문화에 정치성향과 인종적 태도가 혼합되면서 현재의 극우 인종차별주의로 발전하였다.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1980년 중반 이후부터 러시아 청년 하부문화에서 발생하여 나치즘과 연결된 나치스킨(Nazi Skinheads)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념적 성향이 무질서하게 혼합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이념에 의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무질서한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극단주의 그룹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러시아 스킨헤드의 특징을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소비에트 체제 붕괴 이후 경제난과 빈부격차의 심화로 소외계층 청년들의 불만이 누적되었으나 이런 불만을 분출할 만한 사회적 통로가 없었다. 그 결과는 ‘희생양’ 힘없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태도였다.

둘째, 러시아의 극우성향을 지닌 정치단체들이 이런 불만 소외 청년들을 조직화하여 이들에게 치기 어린 민족감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셋째, 2000년대 이후 러시아의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소외계층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러시아 내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에서 자행되는 인종테러는 해마다 2만건이 넘으며, 최근 5년 사이에는 매년 5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살해당했다. 지난해에는 희생자가 갑절인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희생자들의 대다수는 소연방 구성 공화국이었던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과 캅카스인들이다. 이들은 러시아공화국에서 잡일과 3D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약 1000만명이 일하고 있다. 러시아 스킨헤드는 이들 때문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곤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러시아인들이 마다하는 일자리를 이들 외국 노동자들이 차지하였고 현재 러시아 경제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이은 인종테러에 대하여 러시아 정부도 2006년 7월 극단주의 단체 척결에 대한 연방법을 채택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사회와 정부에 불만이 가득한 소외 청년세력의 극단적 인종주의가 반정부 성향의 행동으로 돌변할까 매우 조심스런 입장이다.

오는 5월9일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기념일이다. 러시아의 선열들이 나치 독일과 싸워 2000만 러시아인들의 고귀한 피의 값으로 조국을 지켜낸 날이다. 그러한 순국선열의 무덤 위에서 나치의 깃발 아래 러시아의 순혈주의를 주창하는 현재의 러시아 젊은이들을 과연 현재를 사는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10. 03. 14.  

P.S. 핵심은 "사회와 정부에 불만이 가득한 소외 청년세력"이 반정부 성향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극단적 인종주의'로 유도되게끔 방치한다는 것. 인종주의 포퓰리즘이 갖는 잠재성과 한계라고 해야 할까...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크아이즈 2010-03-1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공부할 때도 그곳이 요주의 위험구역(!)이었나요?

로쟈 2010-03-15 09:05   좋아요 0 | URL
공연을 보러갈 때 공원 같은 데서 마주칠 때가 있었어요. 적당히 피해가야했죠.^^;

Kitty 2010-03-15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이은 유학생 피습 뉴스를 보고 깜짝놀랐어요.
여름쯤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면 수정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ㅠㅠ

로쟈 2010-03-15 09:07   좋아요 0 | URL
관광객은 대체로 건드리지 않는 게 나름 불문율인데(단체로 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조심은 해야합니다. 혼자 여행하는 건 물론 위험하고요...

카스피 2010-03-1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팽창주의는 예로부터 인접 국가에는 커다란 공포였지요.러시아 청년들의 인종 차별은 혹 예전부터 이런 전통에 기인한것이 아닐까요?

로쟈 2010-03-15 09:09   좋아요 0 | URL
팽창주의 전통이야 러시아만의 것은 아닌데, 스킨헤드는 90년대 이후 현상입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속에서 생겨난 일종의 청년층 '하위문화'인데, 러시아 정치권이 악용하면서 지금은 통제가 어렵게 된 걸로 압니다...

자꾸때리다 2010-03-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라브족을 천시한 히틀러를 추종하는 민족주의 슬라브족이라... 이건 뭐 뇌가 없는건지...아님 뇌의 고랑과 이랑이 머리통처럼 만질만질한 건지..

로쟈 2010-03-15 23:03   좋아요 0 | URL
원래 논리적으론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죠...

2010-03-15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란드나 러시아는 사회주의 정권 시절에도 권력자들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은근히 이용해 먹었지요.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요즘 극우주의자들이 날뛰고 있으니 게르만 스킨헤드와 슬라브 스킨헤드가 육박전이라도 벌이면 살벌하겠네요.

편의상 나치라고 부르고 있지만 슬라브족이 나치사상에 공명한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로쟈 2010-03-16 23:33   좋아요 0 | URL
슬라브족이 아니라 러시아 스킨헤드들이죠. 실제로 히틀러를 숭배한답니다. 숭배의 포즈인지는 몰라도...
 

이번주 주간한국의 커버스토리로 '작가들의 음식예찬'을 읽다 보니 체호프가 권장한 코스 메뉴가 나온다(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003/wk20100309142137105450.htm). 출처는 마크 쿨란스키의 <맛의 유혹>(산해, 2009)이란 책이고, 쿨란스키가 참조한 건 체호프가 스무 살쯤에 쓴 한 단편이다. 보드카에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내는 메뉴 자체가 주량이 약한 나에게 끌리는 건 아니지만, 러시아식 수프와 어린 돼지고기는 흠, 약간 군침을 돌게 한다. 봄밤에 정신도 멍하던 참이어서 잠시 야참 생각을 해본다. 

체호프가 제안하는 코스 메뉴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는 <갈매기>, <세 자매>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가 젊은 시절 써놓은 글에 언론인을 위한 8코스 메뉴가 제안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코스 메뉴가 봄날 잃은 입맛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한번 시도하면 주당이 될 것 같은 '주류입문 정석'임은 확실해 보인다. 1880년경 쓴 <자명종의 달력 Alarm-clock's Calender>이란 글이다. 



(1) 보드카 한 잔
(2) 양배추 수프와 카샤(메밀 가루로 쑨 죽의 일종)
(3) 보드카 두 잔
(4) 양고추냉이를 곁들인 어린 돼지고기 요리
(5) 보드카 세 잔
(6) 양고추냉이, 고춧가루, 간장
(7) 보드카 네 잔
(8) 맥주 일곱 병 

 

10. 03. 13. 

P.S. 러시아식 수프(보르시치)와 흑빵을 곁들인 야참은 아래와 같이 구성될 수 있다(실상은 한 끼 식사다). 조촐한 러시아식이다... 


댓글(8) 먼댓글(1)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체호프의 언론인을 위한 코스 메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1-21 11:38 
    한겨레21의 '예술가가 사랑한 술' 코너에서 '체호프의 보드카'가 다뤄졌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지난 봄에 주가한국의 기사에서 다뤄진 것과 같은 아이템이다.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다.      한겨레21(10. 11. 19) 체호프의 언론인을 위한 코스 메뉴  춥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올가을은 남다르게 춥다. 옷장 구석에 묻혀 있던 코트는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손이 닿기 쉬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
 
 
비로그인 2010-03-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드카는 주량이 바닥인 관계로 저도 썩 내키지 않지만, 햐 저 맥주랑 식탁에 차려진 수프며 빵은 정말 군침 돌게 만드네요 ㅋㅋ 그런데 체호프가 권하는 코스대로 마시는 게 러시아에선 보통 반주 수준인가 보죠? ㅋㅋ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이런 호사를 다 누리게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로쟈 2010-03-14 00:36   좋아요 0 | URL
차게 마시는 보드카는 소주보다도 넘기기가 쉽습니다.^^ 원래 바쁠 때 딴짓도 많이 하지요.^^;

카스피 2010-03-1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러시아 흑빵은 겉이 단단해서 러시아 사람도 빵 안쪽만 먹고 먹다가 남은 것은 벼계로 이용한 정도라고 하더군요^^

로쟈 2010-03-14 16:18   좋아요 0 | URL
아마 한국전때 전해져내려온 얘기일 거예요. 실제로 소련군들이 그랬다는군요...

L.SHIN 2010-03-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드카는, 레몬맛과 복숭아맛이 제일 좋은데..ㅎㅎ
아니면 오리지널 보드카에 오렌지 쥬스나 크랜베리 쥬스 혼합해서 먹는 것도..ㅎㅎ
아~ 술 고프다...

로쟈 2010-03-14 16:19   좋아요 0 | URL
폭탄주로도 많이 쓰이죠.^^

comorin 2010-03-1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이런 소설가분 덕분에 인류가 술을 끊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코스를 언젠가 따라하곤 싶지만, 그대로 따라했다간 바로 집에서 쫒겨날 것 같네요..마지막에 맥주 일곱병이 인상깊습니다. 독한 증류주를 마시고 나면, 그 갈증을 풀고 입가심을 하기엔 맥주가 최고라는 제 생각이 체호프와 같다니..^^

로쟈 2010-03-19 10:46   좋아요 0 | URL
그 비율이 4:7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