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알라딘 공부방 2기 강의가 있었다. '인문학으로 마음의 가난을 벗어나는 법'이 주제였고, 나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 들어 있는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이란 글과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열린책들, 2008) 끝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자료로 이용했다(이제 보니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져온 걸로 오기했다). 그 대목은 옮겨놓는다. 밑줄긋기에 더 적합해 보이지만 '로쟈의 한줄'로 분류해놓으면서. 물론 그 한 줄은 '노르웨이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전쟁(2차대전)이 터지자 나는 평화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려운 시절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부심을 찾아야 하겠기에, 다시 크레타의 산으로 갔다. 언젠가 나는 일요일 예배가 끝난 다음 성당 입구의 계단에 앉아서 남자다운 용감성을 찾는 방법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얘기하는 늙은 노병을 보았다. 「가능하다면 두려움을 부릅뜬 눈으로 빤히 보아라.」 그가 말했다. 「그러면 두려움은 겁이 나서 도망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팡이를 들고, 어깨에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다. 독일군이 노르웨이로 쳐들어가 정복하려고 싸우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대낮에 프실로리티 기슭을 건너가려니까 사나운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들려왔다.
「어이, 여봐요, 잠깐 기다려요! 하나 물어봅시다!」
머리를 들어 보니 어떤 남자가 커다란 바위에서 뒤로 물러나 고꾸라지듯 내려왔다. 그는 바위에서 바위로 성큼성큼 내려왔고, 그의 발밑에는 돌멩이들이 굴러 요란한 소리가 나서 산 전체가 그와 함께 무너지는 듯싶었다. 그가 늙고 덩치가 큰 양치기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렸다. 무얼 알고 싶어서 저렇게 극성일가? 나는 궁금했다.

그가 가까이 와서 바위 위에 섰다. 겉으로 드러난 가슴은 털이 나고 김이 피어올랐다.
「이봐요, 노르웨이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그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는 어느 나라가 곧 정복되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이고, 어디에 위치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가 분명히 알았던 사실이라고는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좋아졌어요, 영감님, 좋아졌어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다행이구먼.」 성호를 그으면서 늙은 양치기가 큰소리로 말했다.
「담배 태우시겠어요?」 내가 물었다.
「제기랄! 내가 뭣하러 담배를 피워요?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노르웨이만 별일 없다면 그만이지!」
그 말을 하고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양 떼를 찾아 기어올라갔다.

그리스의 공기는 정말로 신성하고, 자유는 틀림없이 여기서 탄생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세계의 어느 농부나 양치기도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미지의 머나먼 나라의 시련에 대해서 그토록 고민하고 실감나게 의식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자유란 자기가 낳은 딸이나 마찬가지여서, 노르웨이의 투쟁은 그 그리스 양치기의 투쟁이기도 하다.

10. 05. 20. 

P.S. 크레타의 양치기 노인이 아직 살아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요, 한국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비록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어디에 위치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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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02 2010-05-20 13:21   좋아요 0 | URL
엊저녁 인문학 공부방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용했다는데, 왜 전혀 기억나지 않을까....늙어가는 뇌를 탓했더랬습니다...ㅎㅎ <영혼의 자서전>도 읽어봐야겠네요. 수줍은 소년같은 첫인상은 의외(!)였습니다.....글에서 느껴지던 악동같은 분위기가 강의 중반 이후 살아나더군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치유불가능한 호모사피엔자들의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글쓰기를 기대합니다.

로쟈 2010-05-21 09:4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조르바와 카찬차키스를 혼동했어요.^^ 제가 '소년'과 '악동' 사이에서 진동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