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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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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동물로 변신하거나 동물들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

죽은 자의 세계와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때론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진 장소가 펼쳐지기도 한다. 동물 혹은 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은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쓰며 교류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기기묘묘한 세계.  합리성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 신화. 신화야 말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고 표현한 이는,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였다. 유치하고 미개한 인류 사고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라 간주되었던 신화는 그에 의해 ‘인류의 철학적 사고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셈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책의 곳곳에서 레비 스트로스에 대한 경의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진 신화들이 어떻게 동일한 형태와 패턴으로 반복되고 변형되면서 인류의 깊은 심연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신화가 숨겨서 드러내고자 하는 삶의 문제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다. 신화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이고, 그지없이 황당해보이는 이야기 속에 숨은 비밀을 풀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일 것이라며.

  

 

이 책의 대부분은 <신화로서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 서술되고 있다.

디즈니 영화의 달달한 로맨스로만 기억될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저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다. 남성적이며 동시에 여성적인 것, 죽음의 세계에 있으면서 삶과 연결되는 것,

인간이 살고 있는 문화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 가장 높은 것과 가장 낮은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중개의 역할을 수행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인류의 비밀스러움을 저장해둔 철학적 사고의 보물창고처럼 보인다.

 

 

우리가 가장 흔히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 실린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페로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왕자와 재투성이 아가씨의 결합이라는 구조를 통해,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로 표현된 현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불균형한 것들의 중개’를 수행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단순한 변형을 통한 한계를 드러낸 반면,  그림형제의 민화집에 수록된 잔혹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중개자의 역할이 한 단계 더 나아간다고 한다. 개암나무, 콩, 아궁이의 재, 새는 오래 전부터 저승과 연결된 것들로 이해되었다. 그림형제의 신데렐라에는 이런 매개체들이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을 중개하는 기능까지를 수행함으로써 보다 신화의 원형에 가깝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서로를 변형시켜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거기엔 인간과 우주에 대한 고민과 사고가 스며들게된다.  미크마크족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을 비판하는 새로운 신데렐라 이야기로 등장한다.

 

 

저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오이디푸스왕 이야기와도 연결시킨다.

오이디푸스란 이름 자체에는 한쪽 다리가 부자유스럽다는, 절름발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버림으로써 죽음의 영역에 들어갔지만 삶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 모순을 지닌 인간에 대한 묘사인 셈이라는 것. 신데렐라에게는 여성화된 오이디푸스가 숨어있다고 보았는데, 그녀 역시 삶과 죽음에 반쯤 걸쳐진 절름발이의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나타내기 위해 벗겨진 신발 한 짝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신데렐라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의 의미는 저승와 연결된 중개자, 샤먼이었던 시대의 기억을 나타내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과 포르투칼 그리고 러시아 등 전 세계에 분포한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등장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의 끊임없는 등장, 저자의 시각과 해석은 때론 놀랍고 낯설지만 분명 중독성이 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매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야기들 사이의 놀라운 연관성은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신화야말로 우주 속에서 구속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신화와 현실>이라는 종장에 이르러, 현실에서 확대 재생산된 신화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산업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신화적 사고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신화의 논리구조만을 끄집어내어 만들어낸 각종 상품들에는 철학으로서의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에, 세계와의 관계라는 구체성을 상실하고 껍데기만 빌려온 신화적 사고는 가상의 '환각'에 빠지게 할 것이라 경고한다. 역시 '광대버섯 아가씨'라는 신화를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의 가상 영역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갈 때 인간의 우주 속에서도 균형을 잃습니다.

그러면 산은 폐쇄되고 빙하로 뒤덮여 지상에는 황폐함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현대문명은 도처에 광대버섯 아가씨의 유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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