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프랑수아 퀴세의 <루이비통이 된 푸코?>(난장, 2012)다. 아직 리뷰기사는 없고, 지난 11월 방한하여 황석영 작가와 나눈 대담기사만이 올라와 있다(작년에 중앙대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도 발표한 바 있다). 원제는 <프랑스 이론>이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의 프랑스산 이론이 미국 지식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거꾸로 미국 지식계가 이들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일종의 지식사회학? 이 책과 함께 이번주 관심도서 몇권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이미 갖고 있거나 곧 구입할 책들인데, 리뷰기사를 따로 스크랩해놓을 수 없으니 앞으론 '이주의책'이란 태그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 것으로 대신할 참이다(일이 좀 줄긴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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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프랑수아 퀴세 지음,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 난장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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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대통령
미셀 팽송 & 모니크 팽송-샤를로 지음, 장행훈 옮김 / 프리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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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월 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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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12년 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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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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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플라톤의 <향연> 가운데 한 대목을 읽고 있다. <향연>에 대해서는 강의를 진행중이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7-8종이다. 활달한 대화체의 느낌은 주지 않지만 표준적인 건 정암학당 전집판의 <향연>(이제이북스, 2010)이다.

 

 

 

한겨레(12. 01. 21) 고대 그리스 ‘최고의 사랑’은…동성애라네

 

‘사랑에 관한 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책, 바로 플라톤의 <향연>이다. 플라톤의 작품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분량을 고려하면 믿기진 않는다. 번역종수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다음으로 많은 것이 <향연>이다. 이래저래 플라톤의 독자라면 두번째로 많이 손에 들 법한 책이다.

<향연>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 자리에서 일곱명의 연사가 사랑의 신 에로스를 각각 찬양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야기의 정점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이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파이드로스만 봐도 그렇다. 다른 신들과 달리 에로스에 대해선 변변한 찬가조차 없다는 게 평소 그의 불만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사랑으로 하자는 제안은 그의 발상에서 비롯됐기에 그는 향연에서 ‘이야기의 아버지’라고 호명된다.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에로스는 카오스(틈)와 가이아(땅)에 이어서 생겨난 가장 오래된 신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 ‘최대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물론 ‘사랑’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건 특별한 유형의 사랑이었다. “사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고결한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연인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었다네”(박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라고 옮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이라고 하면 좀 명확해진다.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사랑받는 사람’ 역시 남자다. 다만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이가 좀 어리기에 ‘소년 애인’이라고 옮겼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중년 남자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미소년이다. 인생에서 최대로 좋은 것이란, 두 남자가 각각 그런 상대를 갖는 것이다. 국가나 군대가 이렇듯 사랑하는 자와 소년 애인으로 구성된다면 아무리 적은 수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게 파이드로스의 장담이다. 실제로 테베에서는 남성 커플 150쌍으로 이루어져 혁혁한 공을 세운 ‘신성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이상적인 사례가 뜻밖에도 아킬레우스다.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곧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만 엉뚱한 소리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아직 턱에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에라스테스)가 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브래드 핏)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보다 연장자로 나오지만 실상은 거꾸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에로스적 관계에서는 두 가지 ‘소중히 여김’이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스의 신들이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나선 것은 그래서 높이 칭송된다고 파이드로스는 말한다. 제법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향연>의 나머지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여볼 수 있겠다. 그리스의 속담을 약간 비틀면, 훌륭한 사람은 초대장이 없이도 향연에 참석할 수 있다.

 

12. 01. 21.

 

P.S. 고대 그리스에선 동성애가 사랑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기에 사실 칼럼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정확하게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 이제이북스판에서는 "한데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아이스퀼로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네"라고 옮겼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해도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에라스테스(사랑하는 자)라는 말이다"라고 각주에 설명돼 있지 않다면 모호하게 읽혔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위 말해 에로스적 관계이지만 대등하진 않다. 고대 그리스에선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안 난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에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 아이스퀼로스는 잘못 말한 것이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더 살펴보면, 안티쿠스판에서도 그냥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네"라고만 옮기고 있는데, '사랑했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독자로선 둘의 관계가 헷갈릴 수 있다. 지만지판에서는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으로 묘사한 것은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옮겼는데,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 아니다'라고 정리하게 되면 우리말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예출판사판에서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애인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잘못입니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잘못은 아니더라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도 유의해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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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실은 '문화와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어제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마땅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해 최악으로 보낸 지각원고다. 자기 글을 블로그에 게시하는 건에 대해서는 오늘 오전에 알라딘측에서 회신이 왔다.

저작권법을 조사해보니,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기고한 신문 기사의 경우, 별도의 신문사 허락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블로그에 전문을 올려도 괜찮다고 합니다.(원고료를 받는다고 해서, 그 저작권이 신문사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잘 모르고, 로쟈님이 직접 기고하신 글을 브라인드 처리하고 메일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이 경우는 내가 갖고 있던 상식이 법과 상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하튼 그래서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에 대해서는 이 서재에 계속 공개해놓는다.

 

 

 

경향신문(12. 01. 20)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나라

 

새해를 맞아 조선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는 계승범 교수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를 읽은 것이 계기다. 알다시피 1392년에 개국한 조선은 200년 뒤인 1592년 최대의 국난을 맞이한다. 임진왜란이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아무런 대응태세도 갖추지 못한 조선의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국사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혹시나 배웠더라도 지금은 다 잊은 조선의 군역제에 대해서 다시 배운다.

조선 초인 15세기만 하더라도 군역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였다고 한다. 군역에 종사하는 장정들에게 국가에서 일정한 반대급부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일부 토지도 지급하고 보인(保人)도 붙여서 군역에 따른 경비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군역의 의무를 지는 군호(軍戶)는 대개 양반이거나 경제력이 있는 상민들이었고, 경제력이 따르지 않는 상민은 보인으로만 편성됐다. 즉 아무나 군역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군역은 권리는 줄고 의무만 느는 쪽으로 변질됐다. 의무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군역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16세기 중반에는 15만 군호가 대부분 하층민으로만 채워졌다. 양반이나 상층 상민은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듯 군역이 문란해지니 국력이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임진왜란 전 16세기 말에 이르면 군역 대상자의 총수가 4만7820명이고, 그중 정예병은 7920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의 관군밖에 없었으니 약 20만명에 이르는 일본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부산에 상륙한 지 18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까지 치고 올라왔던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놀라운 것은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뒤에도 양반의 군역은 부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금 양반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무엇이 문제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사족(士族)도 군역을 지고 노비는 농민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지배층 선비들은 자기들의 특권(군역면제)과 재산(노비)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비록 7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조선의 국방은 개선된 게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거친 이후에 200년이 넘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청제국의 질서 속에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후일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 조선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가기까지는 불과 십수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계승범 교수는 “선비가 건설한 조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고 꼬집는다. 더불어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의 소위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면제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다섯 배나 높다는 통계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는다. 실상 출범 초부터 유난히 병역면제자가 많았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각종 비리 게이트에 연루되고 있다.

그중 외교통상부와 총리실 직원들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등에 업은 씨앤케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다이아 게이트’는 현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참담한 도덕 수준을 다시금 직시하도록 해준다. ‘우리가 아는 정부는 없다’고 해야 할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권만을 고집하고 사익에만 열을 올리는 세태는 과연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0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진년 한 해 동안 고민해볼 일이다.

 

12. 01. 20.

 

 

 

P.S.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조선사 전체를 다시 보는 신랄한 문제의식과 함께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어쨌든'이란 말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게 옥에 티다). 그래서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 2009)와 <정지된 시간>(서강대출판부, 2011)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와 같이 읽은 책은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이다. 사림의 등장 이후 조선 후기사에 대한 서술로 명쾌하다. 학계의 '주류적인' 시각이 궁금해서 읽고 있는 책은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의 <조선시대 당쟁사1,2>(아름다운날, 2007)이다. 이이화, 강만길, 이덕일의 책들도 좋은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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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랴부랴 원고를 써서 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책주문을 넣는데, 이런, 책주문조차도 에러가 뜬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라딘은 이제 책주문조차도 거부하는 것인가.

요청 페이지 : http://www.aladin.co.kr/shop/wbasket.aspx?Submit.ChoiceOrder=1
에러코드 : 500
에러 : 'System.Web.HttpUnhandledException' 형식의 예외가 Throw되었습니다.

하긴 어제 당일배송으로 주문한 책들이 하나도 오지 않은 상태라 오늘 새로 주문한다고 해도 연휴가 끝나고 배송되기 쉬울 듯하다. 마음을 접는 게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주문하려던 책은 남경태의 <역사>(들녘, 2008)와 로마사 관련서들이다. <역사>는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1>(들녘, 2009) 반값 할인 광고를 보고 떠올리게 된 책이다. <생각의 역사1>의 역자가 남경태 선생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예전에 한두 꼭지만 읽고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다시 책상 가까이에 놓은 게 <생각의 역사>다.

 

 

로마사 관련으론 에이드리언(아드리안) 골즈워디의 <로마 멸망사>(루비박스, 2012)가 새로 나온 책이다. 로마전쟁사가 전문분야인 학자로 보이는데, <로마전쟁>(플래닛미디어, 2010), <로마전쟁 영웅사>(말글빛냄, 2005) 등의 책도 쓰거나 같이 썼다.

 

 

골즈워디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루비박스, 2007)의 저자이기도 하다. 상당한 분량에다가 꽤 비싼 가격의 책인데, 알라딘에는 절판된 걸로 뜬다. 지난주 부산역내 서점에서 보고 구입할까 하다가 그래도 너무 '비싸서' 내려놓은 기억이 있다. 카이사르 관련서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외에도 필립 프리먼의 <제국을 만든 남자 카이사르>(21세기북스, 2009)와 스티븐 단토 콜린스의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다른세상, 2010)을 얼마전에 구입해놓은 터여서 자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 책들을 다 정돈해서 꽂아야 하는 게 주말까지의 일이다. 

 

 

 

카이사르, 하니까 <갈리아전쟁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전에 <갈리아전쟁기>(사이, 2005)를 <내전기>와 같이 구입했고, 합본인 <갈리아전기/내전기>(동서문화동판, 2008)도 같이 챙겼다.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 <갈리아 원정기>(숲, 2012)도 이번에 나오기에 마저 구색을 맞춰놓을 참이다. 그렇게 하면, 카이사르에 대해선 할 만큼 하는 게 되지 않을까.

 

조선사 분야에도 요즘 나름대로 공을 들이고 있는데,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주로 선비와 당쟁에 관한 책과 신분사에 관한 책으로 관심을 좁히고 있다. 이쪽으로는 나중에 다시 다뤄야겠다...

 

12.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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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정리 중이라 가뜩이나 방안이 어수선한데(주말까지 정리를 끝내는 게 목표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알라딘 페이퍼의 저작권 시비로 더 혼란스럽게 됐다. 알라딘에서는 내일까지 자기 글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요즘 쓰는 매체라고 해봐야 경향신문(주간경향)과 한겨레 정도인데, 나는 언젠가 자음과모음의 웹진 연재를 제외하고는 계약서를 써본 일이 없다. 원고료를 받는다고 해서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그런 서평들을 모아 서평집을 내는 것 자체가 '위법'이란 얘기가 된다).

 

 

나도 두어 번 경험이 있지만 저작권의 온전한 양도는 특별한 경우이며 계약서에 명시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내가 쓴 글에 대해선 내가 처분권을 갖는다. 똑같은 글을 서로 다른 매체에 싣는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일이 표절이라거나 위법이라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그런 걸 문제삼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절필할 생각이다.  

 

이번에 알라딘에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는 연합뉴스의 경우 아마도 알라딘에서는 내가 제일 많이 기사를 옮겨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짐작엔 내가 '유력한' 당사자이다. 대개 주말에만 북리뷰가 실리는 다른 지면과 달리 연합뉴스에는 매일매일 신간 소식들이 올라온다. 나로선 그걸 참고하면서 관심도서의 리뷰를 옮겨놓곤 했다. 대개 책을 구매하기 전에 어떤 책인지 판단하기 위한 자료였다. 판단이야 혼자하면 되는 거지만, 그렇게 스크랩한 자료가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어 약간의 '가공'을 거쳐서 포스팅하곤 했다. 상품페이지에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서재와 즐겨찾는 서재 브리핑에만 노출되게 설정했음에도 그게 저작권법에 저촉된다면, 비공개로 돌리면 그만이다(알라딘에선 이미 그렇게 처리하고 있다).

 

나는 즐겨찾기에서 '연합뉴스'도 이미 삭제했다. 책이 나왔다는 정보를 취득한 정도인데, 그 정도는 약간 더 손품을 팔아 신간 검색을 하면 알 수 있다. 책소개는 출판사 소개를 참고하면 되고. 기사들의 경우 나는 '저작'이라기보다는 '정보'라고 생각해왔다(칼럼은 조금 다른 문제다. 칼럼은 문제의식의 공유 차원이다). '정보 공유'라고 생각했던 게 '저작권 침해'라고 하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그들의 재산과 권리를 열심히 지키라고 할 밖에.

 

 

 

마음을 좀 정돈하기 위한 방책으로 페이퍼를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다. 내가 그냥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카테고리가 '로쟈의 컬렉션'인데, 지난달 러시아에 주문했던 책 몇 권을 어제 받았기 때문에 소재가 없지도 않다. 그 몇 권 가운데는 라캉의 '세미나' 20권 <앙코르>와 지젝의 책 두 권도 포함돼 있다. 하나는 <반인권론>이란 팸플릿이고(<뉴레프트리뷰>에 실렸던 글로 계간 <창작과비평>에 번역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론인 <우스꽝스런 숭고의 예술>(2000)이다(지젝의 린치론은 <향락의 전이>에도 들어 있다).

 

 

 

특이한 건 분량인데, 영어본은 48쪽밖에 안 되지만, 러시아어본은 문고본 판형이긴 하지만 166쪽이나 된다는 점. 영어본은 워낙 분량이 적어서 대학 도서관에 신청했을 때도 분량 미달로 신청이 취소됐었다. 한동안은 꽤나 읽고 싶어서 안달했던 책인데, 그렇다고 48쪽짜리를 23,730원(알라딘 가격)을 주고 구입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래저래 보기 어려운 책이다. 한편, 러시아어판은 작년에 나온 때문인지 말미에 <아바타>론도 붙어 있다. '<아바타>: 정치적 올바름 이데올로기의 전략'이란 제목이다.

 

 

 

연휴엔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아바타>까지 질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12.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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