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1941-1996)의 사망 10주년이 된다. 그의 이름은 'Krzysztof Kieslowski'로 표기되는데, 몇 가지 이형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키에슬로프스키)'라고 읽어주는 게 일반화된 듯하다. 여하튼 그 이름은 타르코프스키란 이름과 함께 나를 숙연하게 만드는 이름이다. 지난 90년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동시대 감독으로서 그는 언제나 영감과 경탄의 원천이었다. 그보다 10년 전에 죽은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가 어떻게 시의 깊이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주었다면(내년이면 사망 20주년이군!), 키에슬롭스키는 영화가 어떻게 철학적 사유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시사해주었다. 물론 겸손했던 그 자신은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문학에 비해서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로 내가 제일 처음 본 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이었던 듯하다(원제는 '베로니크의 두 가지 삶'). 기억에는 허리우드극장에서였던 듯한데, 연거푸 두 번을 보았고 이후에도 개봉관에서 한번 더 본 영화. 이후에 비디오로도 보고(몇년 전에 교보문고 지하도에서 구입한 중고 비디오는 유감스럽게도 정품이 아니라 복사품이어서 화질이 떨어진다. 2,000원짜리도 안 될 걸 8,000원이나 주고 샀었다! 환불하려고 벼르다가 끝내 교보쪽으로 다시 갈 일이 없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영화 자체도 매혹적이었지만, 주연을 맡았던 이렌느 야곱(1966- )의 신비한 매력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 물론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음악도 귓가를 오래 맴돈다(나는 영화속 가상의 작곡가인 '반덴 부덴마이어'의 음반을 사러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베로니카의 이중 생활베로니카의 이중 생활레드

이렌느 야곱의 모습은 이후에 '삼색' 시리즈의 <레드>(1994)에서도 다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영화 관람 후에 얻는 포스터를 상당히 오랫동안 벽에 붙여놓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삼색' 시리즈의 시나리오 영역본과 키에슬롭스키의 대담집 등을 구하게 되었고, 며칠 전에는 그에 관한 새로운 연구서들이 나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중 안네트 인스도르프(Annette Insdorf)의 연구서 <두 가지 삶, 두 번의 기회(Double Lives, Second Chances)>(1999)는 막바로 구할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건 이렌느 야곱(Irene Jacob)이 짤막한 서문을 붙이고 있는 것. 책 중간에 저자가 키에슬롭스키와 함께 찍은 사진들도 들어가 있는 걸로 보아 이렌느 야곱과도 친분이 있었던 듯싶다. 키에슬로프스키의 한 인터뷰를 에피그라프로 하고 있는 이 서문을 옮겨보면 이렇다(아래는 책 표지. 저자는 콜럼비아대학 영화학과 교수이며 <영화와 홀로코스트> 등의 저작을 더 갖고 있다): 

세상은 휘황한 불빛들과 바쁜 걸음걸이, 코카콜라, 새로운 차... 이런 건만은 아닙니다. 또다른 진실이 있습니다... 내세에서요? 맞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것일 수도 혹은 나쁜 것일 수도 있겠죠. 나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 다른 게 있을 겁니다.”(<텔레라마>지와 인터뷰에서 키에슬롭스키)

-크쥐시토프가 건네준 대본을 매번 다 읽고 나면 나는 항상 수수께끼들에 대면하곤 했다. 왜 그녀는 이 나무를 만지는 거지? 이 구두끈에서 그녀는 무얼 찾는 거야? 그녀는 왜 ‘마법 구슬’의 굴절된 빛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보는 걸까?(<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주인공은 투명한 플라스틱 공 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것은 바닥에 튕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빛을 분산시킨다.)   

-현장에서 내가 크쥐시토프에게 그 장면(scene)에 대한 아이디어가 뭐냐고 물어볼 때면 그는 대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너한테 듣고 싶은 건데. 그게 나에겐 더 흥미로울 거 같아.” 그래서 내가 장황한 설명을 할라치면 그는 이렇게 가로막았다. “오호, 이렌코, 그건 너무 복잡해. 좀더 간단하게 말해주지 않을래요?”

-그는 현장에서 어떤 장면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걸 꺼려했다. 대신에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로 계속 발견하고자 했다. 이미 정해져있거나 틀지어져 있는 게 아닌 뭔가 새로운 해석을 말이다. 

 

-좋은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들은 열려 있다. 그래서 다양한 층위에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자기 안의 ‘마법구슬’을 사용하여 우리의 해석과 재해석이라는 굴절된 빛을 통해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경우에만이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궁금해하곤 한다. “왜 그녀는 그 나무를 만진 걸까?”... 그저 그 질문을 열어놓을 뿐이다.


-안네트 인스도르프는 이 멋진 연구서에서 크지시토프 키에슬롭스키 전작(全作)에 대한 통찰력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매 작품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넓혀놓으면서. 나는 그의 영화들과 인터뷰들을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다시 방문해보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주 멋진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안네트는 우리가 그 나무들을 만져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루이 말의 <굿바이 칠드런>(1987)에 피아노 선생으로 처음 출연했었던 이렌느 야곱이 <베르니카의 이중생활>에 캐스팅된 것은 우연이었다. 키에슬롭스키의 증언에 따르면, 애초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앤디 맥도웰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케줄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고, 나중에 <블루>의 주연을 맡게 되는 줄리엣 비노쉬 역시 <퐁네프의 연인들> 촬영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그때 눈에 띈 것이 이렌느 야곱이며, 그녀는 이 영화로 칸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후에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1995)와 <오셀로>(1997) 등의 영화에 출연한 이렌느 야곱을 더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최고작은 아무래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으로 남게 될 듯싶다. 키에슬롭스키가 세상을 뜬 이상 말이다.

 

 

 

 

<레드> 이후에 키에슬롭스키는 감독직을 그만두었지만, 와병 중에도 <신곡> 3부작에 대한 각본 작업을 진행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도 키에슬롭스키판 <십계>(<데칼로그>)에 이어서 영화사에 남을 만한 유산이 되었을 텐데, 키에슬롭스키판 <신곡>을 끝내 만나볼 수 없게 된 것은 안타깝다. 원래 TV용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데칼로그>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과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두 편이 극장 상영판으로 따로 제작되기도 했다(두 버전은 런닝타임이 다르며 결말도 약간 상이하다). 

김용규 선생의 <데칼로그>(바다출판사, 2002)가 이 시리즈에 대한 유일한 참고문헌이다. 철학자/신학자로서 저자가 <데칼로그>의 핵심적인 전언들을 짚어내는 데 있어서 영화비평가들보다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책은 입증해준다. 저자는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실천, 2004)도 내고 있는데, 이러한 저작들은 한편으론 한국 영화학계의 태만을 돌이켜보게 한다(하긴 한국영화사를 정리하는 데만도 일손이 모자랄 테니).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 2004)는 영화학에서의 '이론'과 '포스트-이론' 사이에 지젝이 개입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책인데, 그가 키에슬롭스키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흥미롭다. 읽기에 만만찮은 책이지만, 읽을 만한 번역이며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    

 Kieslowski on KieslowskiThe Films of Krzysztof Kieslowski: The Liminal Image

키에슬롭스키에 대한 기본적인 문헌은 <키에슬롭스키가 말하는 키에슬롭스키(Kieslowski on Kieslowski)>(1995)이며, 가장 최근에 나온 연구서는 Joseph G. Kickasola의 <키에슬롭스키의 영화세계(The Films of Krzysztof Kieslowski: The Liminal Image)>(2004). 나는 이 책이 물 건너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0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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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5-11-2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제가......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가장 매혹적이었고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좋아하는...영화) 중 몇손가락 안에 꼽힐겁니다. (1위 2위 3위라고 순위를 정할 수는 없지만....)

삼색 시리즈 중에서도 레드를 단연 좋아했죠.

이렌느 야곱 역시.....너무너무 좋아요...

이 두 영화 말고...또 이렌느야곱이 주연한 키에슬롭스키의 단편 영화를 한 편 보았는데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대학시절...정말 좋아하던 배우와 감독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로쟈님의 글...
싼타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맘으로 기다리겠습니다!

blowup 2005-11-23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세 가지 색-레드>의 이렌느 야콥이로군요. 어여어여. 글 올려주세요.

로쟈 2005-11-23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키에슬롭스키 연구서 하나를 복사했는데, 이렌느 야곱이 짤막한 서문을 썼더군요. 제가 좋아했던 감독과 배우이기도 해서, 그걸 옮겨놓으려고 합니다. 대단한 글은 아니랍니다.^^

파란여우 2005-11-2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훈늉한 영화이죠
참고로 제 영세명이 뭐게요?^^

이네파벨 2005-11-23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베로니카??? ^^

mannerist 2005-11-2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망자2'를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눈 헉- 뜨고, 내내 통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쿨럭;;;;

검둥개 2005-11-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전 이 영화를 어제 케이블에서 잠깐 봤어요. 십 년만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렌느 야곱이 키에슬로브스키에 대해 쓴 글이 있다구요? 무척 궁금합니다. ^^ 이렌느 야곱은 <오델로>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했죠.

이네파벨 2005-11-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삽입된 곡들이 너무 맘에 들어서..사운드트랙 앨범을 꽤 힘들게 찾아다니다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멜로디가 머리속에 떠오르네요. 배경으로 깔리던 곡들...베로니크가 노래한 합창곡....)

음...앤디 맥도웰이나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베로니카는 상상하고싶지도 않네요.

배우의 이미지는 맡은 배역으로 각인되는 것이긴 하지만...
앤디 맥도웰은 신비스럽지도 순수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너무나 미국 냄새가 풍기잖아요...(세번의 결혼식...에 나온 그 이미지가 딱!)
줄리엣 비노쉬도 나름 개성있고 신비(?)스럽기는 하지만 그 개성과 신비감을 지나치게 돌출시키고 강요하는 타입이라 별로....(거칠게 말해 오버스럽다고 할까요..)

......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벌써 죽은지 10년이 되었군요...(사실 죽은지도 몰랐지만..)
아름다운 우주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버렸군요....

검둥개님, 케이블에서 이 영화를 해주었단 말이죠? 놓치다니....너무나 안타깝네요...지금 찾아보니 DVD 타이틀도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것 같아요...TV에서 이걸 보셨다니 그저 부러울 뿐...ㅠ.ㅠ

2007-02-28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서들의 영역판에 새로이 서문들을 붙이고 있는데, 이 서문들에서 자신의 핵심적인 주장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기 때문에 입문자들에게는 더없이 요긴하다. 국내에 출간되고 있는 들뢰즈 번역서들이 영역판에서 중역을 하는 대신에 불어원전을 옮겨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편으로 이 영역판 서문들이 소개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영역판 서문을 부록으로 옮겨놓고 있는 <베르그송주의>(문학과지성사, 1996), 그리고 불어판을 옮기고 있는 <니체와 철학>(민음사, 1998/2001)과는 달리 영역판을 옮긴 <니체, 철학의 주사위>(인간사랑, 1993) 등이다.

 


 

 

 

 

 

 

<니체와 철학>(1962) 영역판(1983) 서문은 역자인 '휴 톰린슨(Hugh Tomlinson)에게‘라는 헌사를 달고 있는데, 우리말로 옮겨진 첫문장은 이렇다: “어떤 책이 번역된다는 것은 항상 흥미로운 일이다.”(11쪽) 이에 대한 원문은 “It is always exciting for a French book to be translated into English."이다. 즉, ”어떤 불어 책이 영어로 번역된다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라는 것.


우리말 번역대로, 이 흥분은 ’번역 일반‘의 것일 수도 있지만, ’불어에서 영어로‘라는 특정한 번역에 한정된 것일 수도 있다. 들뢰즈가 다른 언어의 번역본들에도 매번 서문을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영어와 영미문학/철학이 갖는 의미가 좀 각별하다는 점을 여기서는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경험론자로서 당대의 이질적인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를 나는 ’영국 철학자‘로 분류하고픈 유혹을 자주 느낀다).  


그에게서 왜 영어와 영국이 문제되는가? “니체가 가장 많이 오해되어 온 것은 아마 영국에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프랑스 합리주의와 독일 변증법에 맞서서 투쟁한 주요 주제들은 결코 영국식 사유들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이론적으로 사용하기에 별다른 불편함이 없는 경험주의와 실용주의를 소유했었다. 그것은 니체를 통한 우회가 그들에게는 별로 큰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의 ‘양식’에 어긋나는 니체의 바로 그와 같은 특별한 경험주의와 실용주의를 통한 우회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역본에는 생략돼 있지만(Tomlinson suggests), 이러한 지적은 영역자 톰린슨의 견해를 들뢰즈가 수용한 것이다.


즉, 합리주의와 변증법에 감염돼 있지 않은 영국인들에게 ‘니체 철학’이라는 처방(우회로), 혹은 '백신'은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면역돼 있는 상태였으며, 니체의 ‘망치로 하는 철학’ 대신에 이미 경험주의(empiricism)와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영국식 망치를 잘도 쓰고 있었던 것. 해서, 영국에서 니체는 (철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소설가들, 시인들, 그리고 극작가들에게나 겨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철학적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수용됐다. 


여기서 상기해둘 것은 들뢰즈의 철학이 독특하게도 ‘장소’에 대해 질문하는 ‘지리철학(geophilosophy)’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를 기원으로 하는 서구 형이상학과 철학을 동일시한다면, 그의 철학은 반철학(anti-philosophy)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기원, 다른 계보, 다른 종족의 철학을 기획했었다(작년에 나온 들뢰즈 가이드북 하나는 'Deleuze and Geophilosophy'란 제목을 갖고 있다).

 


 

 

 

 

 

아무튼 니체 철학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그가 처음에 전제하고자 하는 것은 니체 철학이 영국인들에게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며 그것은 일면 필연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그는 비로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왜 위대한가? 철학의 이론과 실천 둘 다를 뒤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유자(thinker)를 날고 있는 화살에 비유한다. 그것은 또다른 사유자가 그 이외에 다른 곳에 그것을 쏠 수 있기 위하여 그 떨어진 곳을 찾는 그러한 화살이다. 그에 따른다면, 철학자는 영원하지도 역사적이지도 않으며 ‘반시대적(untimely)’, 언제나 반시대적인 것이다.”(12쪽) 그래서, 이 반시대성은 니체 철학의 표지이다.  

 


 

 

 

 

 

 

그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니체는 (철학사에서) 어떤 선배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단지 오래전의 전-소크라테스학파(Pre-Socratics)와, 그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단 한 사람의 선배인 스피노자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니체 철학의 계보는 단촐하다. 사실 소크라테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잘 알려진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삶을 ‘질병’으로 간주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러한 ‘병적인 철학’에 맞서서 니체는 삶과 철학에 건강을 다시 되돌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 ‘건강’의 문제는 들뢰즈에게서도 핵심적이다. 소크라테스의 금언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면, 니체-들뢰즈의 금언은 “너 자신이 되라!”이다.

 


 

 

 

 

 

 

그렇다면 누가 불건강한, 병약한 자들인가? 주제를 파악한 자들이다. 그리하여, 삶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삶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긍정하는 대신에) 부정하며 진정한 삶을 내세의 삶으로 유예시킨다. 말하자면, 감히 살려고 하지 않는다.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가령 체홉의 <벚꽃동산>에서 늙은 하인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 “인생이 다 지나갔군. 산 것 같지도 않게!..” 왜 그런가?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긍정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노예로서 타성과 관습에 의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해서 자신의 삶을 어떠한 술어로도 고정/한정시킬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표어는 "삶은 다른 곳에 있다!(Life is elsewhere!)"이다.


반면에 건강한 자들이란 주제 파악 못하는 자들이다. 삶에 대한 넘치는 식욕으로 잠못 이루는 자들이다.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구호는 "삶은 지금/여기에 있다!(Life is here/now!)"이다. 그들은 언제나 앙콜(Encore!)을 외친다. "좋아, 한번 더!" 하지만, 이러한 긍정은 '이대로!'라고 건배하는 '부유한 노예'의 나르시시즘적 동일시와는 다른 것이다.

 

이 ‘너 자신이 되는 것(To become what one is)’에 대한 주판치치의 창의적인 주해에 따르면, ‘자신이 존재하는 바가 되는’ 순간은 합일의 순간이 아니라 순수한 분열의 순간이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아는 순간’은 주체화로 진입하는 순간이자 합일의 순간이고, 니체의 ‘너 자신이 되는 순간’은 주체로 퇴거하는 순간이자 분열의 순간이다('주체화'와 '주체'의 차이는 토이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 2005) 참조. 한편, 이 ‘분열적 주체’는 막바로 들뢰즈의 ‘안티-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이 분열의 표현들 중 하나는 퇴락 또는 부정의 원칙과 시초 또는 긍정의 원칙 사이의 구분이다.”(<정오의 그림자>, 43쪽) 그리고 이 분열에 대한 ‘개념적 인물들’이 그리스도(십자가에 못박힌 자)와 디오니소스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디오니소스란 그 분열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 “디오니소스는 십자가에 못박힌 자 뒤에,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서 오는 게 아니다. 디오니소스는 단순히 새로운 다른 가치들의 등가물이 아니다. 디오니소스는 낡은 것의 몰락 이후에 오는 새로운 시대의 시초, 신기원의 아침이 아니다. 디오니소스는 한낮으로서의 시초이며, ‘하나가 둘로 변하는(one turns to two)' 순간이며 다시 말해서 새로운 그 무엇으로서의 바로 그 '둘이 됨(becoming two)' 또는 분열의 순간이다."(43쪽)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책세상판, 21쪽) 내가 좋아하는 번역본은 아니지만, 당장 옆에 있는 거라서 인용한다(내게 친숙한 것은 최승자 역의 청하판이다. 나는 5종의 국역본을 갖고 있다).

독어의 'Untergang'은 이행과 몰락의 뜻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안다. 내가 읽은 서론에서 주판치치가 들고 있는 사례는 아니지만, 디오니소스란 따로 하나가 둘이 되면서 이러한 과정(이행)과 몰락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 그러한 순간의 이름이 아닐까도 싶다. 그런 것들은 새로이 니체 전집도 완간된 김에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나는 불어본과 함께 영어본, 러시아어본, 2종의 국역본을 갖고 있다)과 주판치치의 <정오의 그림자>를 마저 읽어나가면서 확인해볼 작정이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여기까지가 영역본 <니체와 철학>에 들뢰즈가 붙인 서문의 첫 페이지 '브리핑'이다. 원문보다 길어지는 것도 브리핑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점점 쌓여가는 머리속의 글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이 글의 초안은 어제 자정 넘어 (아주 드문 일이지만) 집에서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몇 시간 걸려 한 페이지를 소화하는 걸 보면, 위대하기는커녕 내 위장이 얼마나 작은지 알겠다(떠들어대는 것들을 조지기 위해서는 깍두기들이라도 동원해야 할 모양이다). 언제쯤이나 주제 파악을 하게 될는지!..

05. 11. 23.

P.S. 그러니까 들뢰즈의 이 서문의 '본론'에 대한 브리핑은 또 미뤄지는 셈이 됐다(덕분에 애초의 제목과는 달리 니체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게 돼버렸다!) 그런 식으로 미뤄지는 만큼 수명도 연장되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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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5-11-2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 자신이 돼라"에서 '되다'는 피동형이 아닌가요. 그래서 문맥과 상충하는 어미인 듯합니다. '하다'가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하다형으로 하자면 문장을 변형해야겠지만요.
퍼가겠습니다.

로쟈 2008-11-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다'는 어떻게 결합되는 것인지요? 문맥상 '하다(do)'와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

포월 2005-12-2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의 식욕(?)에 까무라칠 지경입니다. @_@ 몇년 사이에 들뢰즈의 글 모음집이 프랑스에서 두 권으로 나왔는데, 그 중 첫번째 권이 영역되었고 둘째권은 잘 모르겠습니다. 뭐 ... 판권계약해서 한국어번역도 진행중일텐데, 프랑스어판 둘째권은 들뢰즈가 쓴 영역판 서문이 모조리 모아져있더군요.
 

수능을 하루 앞두고 날이 풀렸다. 날씨도 수험생들을 배려하다니 기특하다. 어제 아는 집의 자제도 고3이어서 우리 가족이 '합격기원' 선물 배달을 갔었다(어디에 합격하나?). 중학교때 본 아이는 어느새 나보다도 키가 더 커 있었다. 그렇듯 자라나는 게 '도덕'이라고 믿는 나로선 아이의 '도덕성'이 또한 기특했다. 물론 성적은 도덕순이 아니므로 내일 애써 분전해야 하리라. 그의 건투를 빈다.

 

 

 

 

잠깐의 외출 뒤에 집에 돌아와 내가 잡은 책은 다시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이다. 거기서도 벤야민을 다루고 있는 "토성의 영향 아래". 이미 한번 읽은 걸 찬찬히 다시 읽고 있다. 손택의 벤야민론을 정리하는 건 지난번에 폴 굿맨과 롤랑 바르트 얘기를 정리하면서 미뤄둔 일인지라 마음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마저 다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쉬엄쉬엄 진도를 빼기로 한다.

손택의 벤야민론은, 사진에 관한 책도 낸바 있는 저자답게, 벤야민 사진 몇 장에 대한 얘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갖고 있는 Picador판의 원서 "Under the Sign of Saturn"(2002)에도 그렇고, 우리 번역서에도 이 사진들을 싣고 있지 않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따다가 대략 설명과 맞추어본다.

첫번째 사진은 손택이 본 가장 오래된 사진인데, "1927년, 그가 서른 다설 살때의 사진이다." 이어지는 묘사는 이렇다: "넓은 이마 위에 짙은 색 곱슬머리, 두툼한 아랫입술까지 덮은 콧수염. 젊고,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 모습이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 재킷 속의 어깨가 바로 귀 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고 나머지 손은, 둘째, 셋째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입가를 가리고 있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내리깐 시선, 근시안의 부드럽고 몽상가 같은 시선은 사진의 왼쪽 아랫부분으로 더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65쪽)

그리고 두번째 사진. "193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은, 이마는 거의 벗겨지지 않았음에도 젊음이나 미모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얼굴이 커졌고 상체는 육중하고 건장해 보인다. 숱 많은 콧수염과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은 통통한 손이 입가를 덮었다. 시선은 불투명하다. 전보다 더 내면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열심히 듣는 사람은 보지 않는다." 벤야민을 카프카에 대한 글에 이렇게 썼다). 등뒤에는 책이 꽂혀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38년 여름의 사진"으로 "1933년부터 덴마크에 망명하여 살고 있는 브레히트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브레히트의 집앞에 서 있는 벤야민은 46세의 노인으로 흰 셔츠와 타이, 양복바지에 회중시계를 달고 있다. 느슨하고 비만한 몸집으로 카메라를 도전적으로 응시하고 있다."(66쪽)

네번째 사진은 "1937년의 또 다른 사진"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벤야민의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남자가 벤야민 뒤쪽에 좀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다. 벤야민은 오른쪽 전경에 위치하는데 아마도 10여 년 동안 집필 중인 보들레르와 19세기 파리에 대한 책을 위한 메모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왼손으로 책을 펼쳐 잡고 있는 책을 보고 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진의 오른쪽 아랫부분을 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어서 손택이 인용하고 있는 숄렘의 증언은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 2002)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한데,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 게르숌 숄렘은 1913년 벤야민을 처음 보았을 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시오니스트 청년 단체와 스물 한 살의 벤야민이 회장을 맡고 있는 자유 독일 학생 협회의 유태인 회원들의 조인트 모임이었는데, 벤야민은 <청중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천장 구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즉흥 연설을 했다. 격정적으로 열변을 토했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바로 글로 활자화해도 될 그런 연설이었다.>"(66쪽) 

이제 본론이다. 먼저 제목 '토성의 영향 아래'에 대한 해명. "프랑스인들은 벤야민을 '슬픈 사람(un triste)'이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 벤야민의 모습은 '심오한 슬픔(a profound sadness)'이 그의 특징인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벤야민은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현대 심리학에서 붙이는 명칭을 경멸하여 전통적인 점성술적 개념을 끌어온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점성술에 관한 책들이 국내에 몇 권 나와 있지만, 그런 것까지 참조할 형편은 못된다. 아마도 서양 점성술에서 토성(Saturn)은 우울증적 기질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기야, 과거엔 토성이 태양계의 가장 마지막, 외곽의 행성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간주되었을 법하다(명왕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이들은 어떻게 되나?). 그래서 요일에서도 맨마지막에 자리하고('즐거운 토요일'의 이미지는 어쩌면 그런 우울증을 상쇄하기 위한 마스크일는지도 모르겠다). '토성의 영향 아래'라고 번역돼 있지만, 우리식으론 '토성의 기운 아래' 혹은 '토성의 기를 받아'라고 새기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하겠다.

"벤야민의 주된 작업, 1928년에 출간된 독일 바로크 연극에 관한 책과 완성되지 못한 <파리, 19세기의 수도>는 이 책이 우울증 이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67쪽) 역자는 이런 대목들에서 복수형을 대개 단수형으로 옮기고 있는데, 한국어답긴 해도 의미의 모호성을 유발한다('이 책이'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손택이 벤야민의 주된 작업(major projects)으로 들고 있는 것은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던 <독일 비극의 기원>(1928)과 '파리, 19세기의 수도'를 다룬 미완의 주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알다시피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지난번에 절반이 출간됐고, 나머지 절반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안다. <독일 비극의 기원>은 번역이 진행중인 걸로 알지만, 언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일어로는 <독일 비애극의 근원>으로 옮겨져 있다. 'Traurspiel'(비극)은 문자 그대로 '비애극(sorrow-play)', '애도극'이란 뜻이다.

벤야민 비평의 두 가지 키워드는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우울증)이다. 따라서 우울증적 기질에 대한 손택의 강조는 당연하며 정당하다.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그의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해서, 비평가로서 그가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에서 그가 본 것이 '우울함'이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면서도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다못해 벤야민은 괴테에게서도 '토성적 기질'을 발견한다.

 

 

 

 

벤야민의 괴테론은 <친화력>에 관한 에세이가 유명한데, 종종 번역서들에서는 <선택적 친화성> 등으로 (잘못)옮겨지고 <우울한 열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영어의 'Elective Affinities'의 번역이긴 하지만, (이전에 자주 언급한 대로) 고유명사의 번역은 주의를 요하며 기존의 관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에 우리의 우울증적 벤야민은 그가 읽어내는 모든 걸 블루로 채색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세상을 그 혼란상 속으로 끌어당기는 고독'을 묘사하고, 카프카도 파울 클레처럼 '본질적으로 외로웠다'고 설명하며, 로버트 발저의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를 인용한다." 가히, 구제 불능이라 하겠다. 손택에 따르면, "삶을 이용해서 작품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용해서 삶을 해석할 수는 있다."(One cannot use the life to interpret the work. But one can use the work to interpret the life.) 바로 벤야민의 경우가 그렇다...

05. 11. 22.

P.S. 다른 볼일들 때문에 일단은 여기에서 끊는다. 필요 때문에 도서관에서 가서 사르트르에 관한 자료들을 좀 뒤적거려야 한다. 어젯밤에도 사르트르를 좀 뒤적이다가 고유명사 표기에 관해서 좀 어리둥절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사르트르의 희곡 'Huis clos'(1945)에 대해서도 <유폐의 방>, <닫힌 방>, <닫힌 문>, <출구는 없다>, <출구 없는 사회> 등등으로 표기돼 있었다(영역은 'No Exit'). <유폐의 방>과 <출구 없는 사회>가 같은 작품을 지칭하는 거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과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다. 

그러다 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사르트르의 장편 <자유의 길>의 1권은 'L'age de raison'이고 '철들 무렵' 혹은 '철들 나이' 등으로 번역돼 있다. 한데, 래빈 여사의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동녁, 1993, <방송강의 철학사>로 다시 나왔다)에서는 영역본 제목('The age of reason' )을 옮기느라 거창하게도 '이성의 시대'라고 번역해놓았다. 이해할 만한 오역이지만, 피할 수 있는 오역이란 것도 분명하다(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확인해볼 수는 있는 노릇이다). 참고로, 래빈 연사의 강의 철학사는 권장할 만한 책이다.  

 

 

 

 

P.S. 주말에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를 DVD로 대여해 봤는데(이 작품의 진리는 간명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쇼'라는 것, 나머지 드라마는 그걸 떠받치기 위한 구색 맞추기일 텐데 내겐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네번째 에피소드인가의 제목이 '전설(傳設)'로 돼 있었다. '전설(傳說)'이 아니라. 이건 또 무슨 장진식인가, 하며 보았지만, '전설(傳設)'과 관련된 내용은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오타였던 것(타이틀 목차에는 '전설(傳說)'로 돼 있었다). 이런 해프닝들이 '옥의 티'로 즐거움을 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나는 어수룩한 '쇼'를 좋아하지 않는다(보여주는 것 없는 국내판 '쇼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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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베호벤 감독
에로틱과 피의 감독이죠. 요즘은 뭘 한대요?

로쟈 2005-11-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까지 소식이 오는 건 아니지만 저보다 바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계속 영화들을 찍고 있다니까...
 

 

 

 

 

 

 

옛날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철학에 대하여>(동문선, 1997)를 (부분)정리해놓은 게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 요컨대 개인적인 작업노트이다. '철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주제로 한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은 개인적으로 알튀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익한 대담이라고 생각한다. 1993년인가 <이론>지에 번역/소개되었던 자크 데리다와의 대담(대담자는 마이클 스프린커)과 함께(이상하게도 이 대담은 원문의 절반 정도만이 번역되었다). '묘한' 사제간이었던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에도 핵심적인 문헌이다.

 

1부. 철학과 마르크스주의 -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

1장-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 데모크리토스의 노선

 

-“마르크스의 발견의 핵심이 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수학적 철학이나 물리학적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곤란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그는 자기비판을 통해 <인식론적 단절>이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경향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19)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 내가 1948년 이래 당원으로 있던 프랑스 공산당에 개입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내겐 선택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에 정치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내게 남아 있던 개입의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순수한 이론, 즉 철학을 통한 개입이 그것입니다.(27) 나는 <자본>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될 만한 것을 탐구하는 데 전념했습니다.(30) 당은 이제는 나를 추방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었던 나의 개입이 마르크스에 의거하고 있었고, 나는 하나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마르크스 해석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불가침의 聖父인 사상가>가 되어 당 내부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데리다가 지적하고 있는, 알튀세르에게서의 당의 문제: "그에게 있어서 할 수 없었던 것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당을 떠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의 투쟁이 당 내부에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반면 저는 당원이 아니었고 그래서 저는 당 밖에 있는 알튀세르를 또한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있었고 저는 아니었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지요? 그것은 무시될 수 없습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유물론,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적합한 유물론은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의 노선에 서 있는 우발적 유물론입니다.(33) 우리는 마르크스를 위하여 <상상적> 철학(레이몽 아롱)을 만들어 냈습니다. 즉, 마르크스의 텍스트들에 문자대로 엄격하게 매달린다면 그의 저작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철학 말입니다.(36) 어떤 것이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철학, 철학사에 속하는 하나의 철학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이용했던 개념적 발견들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일 것입니다.(37) 그가 탐구한 것은 <비철학>, 그 이론적 헤게모니 기능이 철학의 새로운 존재 형태들에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소멸할 <비철학>입니다.(38) 이처럼, <자본>이라는 과학적-비판적-정치적 저작을 씀으로써 그는 자신이 결코 쓰지 않은 철학을 실천한 것입니다... 현재 과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을 가공해 내는 것입니다.(39)

 

-이 유물론[우발적 유물론]은 주체(신이든 프롤레타리아트이든)의 유물론이 아니라, 지정할 수 있는 목적이 업이 자기발전의 질서를 지배하는 (주체없는) 과정의 유물론입니다.(40) 의 철학, 의 철학은 기원 등등에 대한 모든 고전적인 질문들을 척결합니다. 이 철학은 우리가 그 속에 <던져져> 있는 세계의, 그리고 세계의 의미의, 일종의 선험적 우연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이렇게 세계는 우리에게 하나의 <증여>입니다.(42)

 

-여기서 내 의도는 철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유물론적 전통 하나가 존재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마키아벨리-홉스-루소-마르크스-하이데거의 전통입니다... 그것은 통상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것으로 돌려지던 유물론, 즉 합리주의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 즉 합리주의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 다시 말해 관념론의 위장된 형태인 저 유물론을 포함하여 유물론으로 인정받던 유물론들에까지 대립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우성의 유물론, 요컨대 우발성의 유물론입니다.(43) 모든 형태에 대해 무가 우선하며, 현존에 대해 부재가 우선합니다.(44)

 

*데리다가 대담에서 지적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중요성: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알튀세르에게 있어서 하이데거는 금세기의 회피할 수 없는 유일한(the)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유일한 위대한 적수이자 또한 동시에 일종의 매우 중요한 동맹자 또는 잠재적인 후원자로서 말입니다(알튀세르의 전저작은 이러한 징후에 따라 읽혀져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것을 <세계는 일어나는 것 전체이다>(<세계는 우리에게 떨어져내리는 것 전체이다>)라고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훌륭한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세계에는 예고 없이 <우리에게 떨어져 내리는> 사례들․상황들․사물들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들, 즉 서로 전적으로 구별되는 개별적 개체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테제가 바로 명목론의 기본 테제입니다... 나는 명목론이 유물론의 대기실이었을 뿐 아니라 유물론 그 자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49)

 

 

 

 

 

 

 

 

-세계는 전적으로 개별적이고 유일고유한 사물들고 구성되어 있고, 사물들은 제각기 고유한 명칭고 속성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여기> 있는 것, 이것은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뿐이지 명명할 수는 없습니다. 말은 이미 추상이기 때문입니다. 말에 대한 몸짓의 우위, 기호에 대한 물질적 흔적의 우위가 뜻하는 바를 말을 사용하지 앟고서 말해야, 즉 가리켜야 합니다.(50)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유일고유하고 우발적이며 예견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의 역사의 이론에도, 정치적 실천의 이론에도 접근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역사의 이론, 현재 속의 정치적 실천의 이론에 대해 유일하게 사고한 사람은 마키아벨리입니다.(51)


2장-철학-이데올로기-정치

-내 생각에 철학이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으로서 성립한 것은 수학이라는 최초의 과학이 성립한 시기입니다... 철학은 과학에서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어떤 것, 즉 철학에 불가결한 합리적 추상화의 모델을 끌어왔습니다... 요컨대 순수한 합리적 담론, 그 모델이 과학들 속에 있는 합리적 담론이 미리 존재하지 않고서는 철학이 등장할 수 없었습니다.(54)

 

-모든 철학은 자신의 대립물이라는 유령을 안고 있습니다. 관념론은 유물론이라는 유령을, 유물론은 관념론이라는 유령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의 목적 중의 하나는 이론적 전투를 개시하는 것입니다... 

 

05. 11. 21.

 

P.S. 데리다의 대담에 대한 정리, 그리고 데리다의 알튀세르 비판의 요점 등은 따로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그 자리는 공간이지만 시간의 좌표를 갖고 있다. 기약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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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천식 때문에 잠이 깨어 보니 2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고(알레르기성 천식이 나의 오랜 지병이다), 습관처럼 TV를 켰다. 보통 YTN의 뉴스를 소리없이 (자막만으로) 보거나 하는데, 일어난 김에 SBS에서 예고돼 있던 영화 <클린>의 마무리 장면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의 영화 <클린>은 작년 칸느영화제에서 장만옥(장만위, 매기정, 메이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작품(나는 수상식장에서 그녀가 호명되는 모습을 작년 모스크바에서 TV뉴스 시간에 볼 수 있었다).

 

 

원래 0시 50분부터인가 예정돼 있던 영화를 컨디션도 안 좋은지라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었는데, 마침 영화가 끝나는 시각인 3시 이전에 깨 잠을 설치는 김에 마지막 장면을 봐두기로 했다. 그건 문학평론도 겸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강유정이 동아일보의 프로그램 소개란에서 강추해놓았기 때문. 장만옥의, 장만옥을 위한 영화라고. 그녀의 전남편 아샤야스에 의한.  

 

"잘나갔던 한때 이후, 곧 재기의 날이 오리라 허영 같은 자존심을 부리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에밀리.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약물 과용으로 죽은 남편, 그리고 자신과 헤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된 아들. 약물 소지 혐의로 실형을 언도받고 아이마저 시부모에게 뺏겨 버린 에밀리에게 일상은 고통이다.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에밀리는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프랑스 런던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그녀의 유랑기는 장만위의 유창한 3개 국어 실력과 더불어 묘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멀리 방랑하는 만큼 그녀의 삶은 신산하고 애처롭다. 시아버지 역할을 맡은 닉 놀테의 우려하는 듯 고즈넉한 눈빛 연기 역시 일품이다. 아들을 위해 다 타버린 재와 같은 삶에서 희망을 찾는 여자 에밀리.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삶의 상처를 지닌 자들에게 아마 <클린>은 속 깊은 상담자와 같은 위안을 줄 법한 영화이다."(★★★★★)

 

나는 영화의 끝에서 닉 놀테와 장만옥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장만옥이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을 보았다. 비록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긴 하나 내가 감정이입할 여지가 적은 영화여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 빼고는 볼륨도 제로로 해놓고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장만옥을 매개로 해서 몇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작년 봄과 늦가을에 쓴 모스크바통신들도 새삼 들춰가면서. 먼저 작년 칸느영화제의 수상식장으로 잠시 돌아가본다.   

 

 

 

 

 

  

 

 

 

-지난 토요일에 제57회 칸느영화제가 폐막됐다. 나는 토요일밤 이곳의 심야뉴스를 통해서, 마이클 무어가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수상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TV뉴스를 들을 때는 일단 화면에 비치는 걸 토대로 들리는 단어들을 재구성해보는 것인데,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의 수상에 대한 장황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두 번째 상(심사위원상)을 받은 감독과 영화에 대해서는 단 한 장면도 할애되지 않았고,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화면에 장만옥(메이 첸)의 모습이 잡히길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짐작해본 정도가 뉴스를 통해서 내가 받은 인상의 전부였다(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만옥이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장만옥만 카메라에 잡았기 때문이다. 메이 첸이 장만옥의 이명(異名)이란 걸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번주 월요일자 신문을 보면서이다).

 

-일요일 저녁에 사업을 하는 친구와 몇 주만에 만나서 같이 산책을 하고 맥주를 마셨다. 산책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그건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가장 흔하게 쓰는 회화표현이 같이 차 마실래요?같이 산책할래요?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도심에 나무와 숲, 공원이 많기 때문에 산책을 즐길 만한 여건도 된다. 우리처럼 매연을 마시면서 산책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대로에서 몇 걸음만 옆길로 새면, 바로 숲속이고 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품이다. 물론 비가 오는 날 산책하는 건(영화제목대로, 우중산책!) 권할 만하지 않지만.

 

-비가 흩뿌리지 않아도 잔뜩 흐린 날씨였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가까이에 있는 작은 호수(어느 정도 크기의 못이면 호수로 쳐주는지 모르겠지만)를 한 바퀴 돌아서 도로변을 걷다가 숲길로 빠졌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산책 코스라고 하는데, 저녁에 혼자 돌아다닐 때는 골프채를 들고 간다고(혹 다섯 명이 시비를 걸어와도 문제없다고 한다!). 호수를 한 바퀴 돈 건 가끔 그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북한 외교관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다. 북한대사관 건물은 바로 호수 건너편에 있었는데,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외교관들이 바쁠 일은 없을 것이기에) 북녘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다른 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크레믈린 광장에서도 가끔 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번은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하더라고. 덧붙여, 이곳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근래에 차를 새 걸로 다 바꿨다고 한다.

 

-숲길을 20분쯤 더 걸어가니까 바로 엠게우(모스크바대학) 정문 앞 광장과 연결되었다. 알고보니, 이전에 한 유학생이 한번 가보라던 산책로를 거꾸로 걸어온 셈이었다. 바로 앞이 참새언덕. 사전을 보면, 참새언덕은 엠게우가 위치하고 있는 레닌언덕의 옛 지명(地名)이다. 그렇다면 그 지명이 레닌언덕으로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은 셈인데, 마치 러시아 혁명미완의 기획으로 남은 것과 상관적인,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레닌은 끝내 이 언덕에서 참새들을 다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건 일종의 타협인데, 대로(大路)레닌이 차지하고 전망은 참새가 차지하는 식. 우편물의 주소엔 레닌언덕이라고 쓰지만, 전철역 이름은 또 참새언덕이다. 해서, 혁명은 혁명이고, 참새는 참새이다(유구한 참새들의 일상이여!).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참새언덕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고, 그런 만큼 가장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맑은 날이면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야외 레스토랑에서 러시아산 생맥주 두 잔과 러시아식 고치구이인 샤슬릭을 안주로 먹었다. 나중에 계산하는 걸 보니, 샤슬릭 한 접시에 250루블, 즉 만원이었다. 사업하는 친구도 굉장히 비싸다면서, 가격을 한번 더 확인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망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칸느영화제 소식을 아느냐고 물으니까(친구는 낮에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던 길이었다), <올드보이>가 심사위원상을 받아서 한국은 난리란 얘기를 했다(왜 아니겠는가?). 타란티노가 좋은 일 한번 한 셈인데, 사실 (타란티노의 취향을 고려한) <올드보이>의 수상가능성은 (한국에서야 더 잘 알겠지만) 이미 외국 언론쪽에서도 점쳐온 것이었다. <이즈베스찌야>의 영화제 취재기자이자 영화담당 기자인 마리야 쿱쉬노바에 의하면, 영화제 중간에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밀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버라이어티>지가 보도했고, 쿱시노바 역시 <올드보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고 예견했었다.

 

-그밖에 영화계쪽은 잘 모르는 친구가 전해준 소식은 일본의 14세 배우가 최연소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게 전부였다(나중에 신문을 보고 안 이름은 이유라 야기라인데, 러시아식 표기라 우리와는 다를 수 있다). 홍콩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느냐고 물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아마 장만옥을 모르든가, 메이 첸을 모르든가), 그건 그럴 만했다. 알고 보니까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걸로 수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장만옥은 이전에도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마베프> 같은. 어쨌든 홍콩영화의 디바 한 명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축하할 일이다(문득 든 생각이지만, 장만옥은 관금붕의 <완령옥>으로도 어디서 주연상을 받았는데, 그게 국내영화제였는지 국제영화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이 최초 수상이라면,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Irma Vep Demonlover (Unrated Director's Cut)  

<이마베프>(1996)는 <클린> 이전에 국내에 유일하게 비디오로 소개됐던 영화인데, 아샤야스가 찍은 영화라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영화는 장만옥이 주연을 맡았었는데, 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후 결혼에까지 골인하지만 3년 후에 다시 헤어진다고. 즉, <클린>(2004)는 헤어진 전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뒤늦게) 찍은 영화이다. 그 사이에 아샤야스가 내놓은 영화가 <데몬러버>(2002)인데, 나는 작년 겨울인가 모스크바에서 TV로 이 영화를 보았다. '산업스파이에 관한 사이버스릴러'인데, 씨네21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데몬러버>는 일본 성인 아니메의 세계배급권을 협상하는 프랑스 다국적 기업의 여성 간부가 거대 인터넷 기업의 사주를 받아 스파이활동을 하며 야심을 키우다가 온라인 SM클럽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이야기"인데, "관객과 평론가들은 <데몬러버>의 형식적 '자폭'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영화가 포르노적 이미지를 비판하는 것인지 탐닉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김혜리 기자)

 

 

 

 

  

  

 

 

나 또한 내가 유일하게 본 아사야스의 영화를 불쾌하게(더불어 정신없게) 보았기에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다. 해서, 가스파르 노에나 프랑수아 오종, 아샤야스 등이 프랑스 영화의 '장래'라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재치나 파격만으로 영화의 장래를 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하튼 장만옥에 대한 생각은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꼽아보는 순서로 이어졌는데,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주윤발과 공연한 <로즈>(1984)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유금세월>(1988) 같은 게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다(모두 극장에서 봤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기억되는데, 글래머라는 것 말고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다 장만옥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순전히 왕가위 <아비정전>(1990) 덕분이다. 아주 오래 전 대학가에서 하숙할 때, 가끔 비디오가게에서 아예 비디오와 함께 테이프 5개를 빌려다가 밤새 보곤 했는데(보다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어느 날 빌린 5개의 테이프 중 하나가 <아비정전>이었고, 나는 이 영화를 그 자리에서 연거푸 봤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봤고, 지금은 테이프를 아예 가지고 있다(그때 이후로 물론 왕가위의 모든 영화이다!).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와 관금붕의 <완령옥>(1991)은 그 이후에 본 걸로 기억된다.

 

 

장만옥의 베스트로 많은 이들이 꼽을 만한 영화는 역시나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이겠지만, 개인적으론 홍콩영화의 또다른 디바 임청하와 공동으로 주연한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임청하에게 장만옥만큼 좋은 영화운이 따르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이 그것이다(그런 영화로 서극의 <신용문객잔>도 있다. 두 여우 주연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 이 영화에는 물론 장국영이 주연으로 나오며(<아비정전> 이후의 해후인가?) 다른 조연들도 모두 홍콩영화 최강의 배우들이다. 그렇게 1990년대 전반기가 (주로 왕가위의 영화들에서) 장만옥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내가 경탄하는 이미지와 연기의 장만옥은 그때 그 시절의 장만옥이다.

 

언젠가 나는 <동사서독>이 개봉하던 날 혼자 을지로 3가의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그 길로 종로로 가 명보아트홀에서 연이어 같은 영화를 또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겨울이었던 것 같은 그날 저녁 을지로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혼자였지만 적어도 그런 날만큼은 덜 행복하지 않았다. 이후에 이 영화를 나는 비디오로도 소장하게 됐다. 하지만, 집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이 영화는 집안에서 보는 영화로 적절하지 않다. '집밖'에서 봐야한다). 한번 사그러진 시간의 재(Ashes of Time)는 다시 쓸어담을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일상일 뿐.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에밀리처럼.

 

 

 

05. 11. 21.

 

P.S. <동사서독>에 나오는 장만옥의 가장 아름다운/처연한 대사: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나는 혼자였어요..."

 

P.S.2. 장만옥 대사의 풀버전은 이렇다: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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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11-2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만옥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
로쟈님, 천식 정말 조심하셔야 하는데.
집안에 약간의 내력이 있어서 잘 아는데,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그게 사실은 사람 잡는 병이예요.
그런 주제에도 저는 잘도 담배를 피워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건강 조심하세요.

로쟈 2005-11-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나와 있는데, 주말에 약이 떨어져서 하루 고생했던 것뿐입니다(그러니 염려 놓으시길). 그리고, 금연하세요!..

하이드 2005-11-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린' 보며, 장만옥이 정말 부럽더군요. 불어와 중국어와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예전에는 좀 식상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전 임청하팬이었습니다.^^) 클린에서의 모습을 보니, 아시아배우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배우가 아닌가 싶더군요. 클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찡한 영화였어요.

로쟈 2005-11-2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유일하게'?!(비교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데뷔 20년쯤 되는 장만옥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이로 42살이니까. 마돈나보다 6살이 적은. 그리고 임청하보다는 10살이 적은!..

이리스 2005-1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로 캔맥주 마시며 이 글을 보는 지금, 아.. 간절히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ㅠ.ㅜ

로쟈 2005-11-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문턱에도 캔맥주를 즐기시나 보군요. 좀 춥지 않으세요?^^

이리스 2005-11-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집은 더운편이라서욤. ^^

하이드 2005-11-2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아시아계 배우중에서 사실, 40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아시아 배우 장만옥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임청하.. 가 52! 살이라구요. (그녀의 마지막 영화를 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