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철 교수의 노작 <서양 금서의 문화사>(길, 2006)가 출간됐다. 지난주에 구내서점에서 만져본 책은 묵직하고 듬직했다.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 1990)에서 시작된 학적 여정을 결산하고 있는 책으로 보였다. 그가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길, 2003)까기 결들이게 되면, '프랑스 혁명과 책이란 주제에 관한 한 최강의 복식조를 이루겠다. 당장에 구입할 여력도 시간도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요기나 해두도록 한다. 세 개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7. 29) 프랑스혁명 불지핀 힘 ‘금서’

-최근 들어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서적들이 활발하게 번역, 저술되고 있다.<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읽는다는 것의 역사>(카발로/샤르티에),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카사뉴-브루케), <근대의 책읽기>(천정환) 등이 지난 2∼3년 사이에 소개되었다.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 전자책(e-book) 등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책의 종말이 성급히 선언되는 마당에 국내출판계에 불어오는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역사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사시민강좌’에서 작년에 ‘책의 문화사’를 특집주제로 다룬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위 목록에 한 권의 책이 추가되었다. 지난 20여년간 18세기 프랑스의 금서연구에 한 우물을 파온 주명철(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서양금서의 문화사>가 그것이다. 그는 1990년에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바스티유의 금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여 당시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학계에서 책의 역사를 외롭게 개척했다. 절판된 <바스티유의 금서>의 대중적인 개정판을 내겠다는 의도로 착수한 작업이 632쪽의 새 책에 가까운 두꺼운 종합개정판으로 결실을 맺었다(*갖고 있는 <바스티유의 금서>도 아직 안 읽었는데...).

-앞 책을 보완하여 각각 머리글과 맺음말 성격에 해당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사회와 문화’와 ‘앙시앵 레짐 문화와 금서’라는 소제목의 두 주제를 새로 덧붙인 결과이다. 또한 60여장의 흑백·컬러판 초상화, 풍속화, 정치적 스케치 등으로 고급스럽게 책을 꾸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저자가 오랫동안 프랑스 주요 고문서보관소에서 눈을 혹사시키고 엉덩이를 고생시키면서 잉태시킨 ‘오리지널’ 연구 성과물이다. “모두 나 자신이 원사료를 직접 보고 썼기 때문”에 부끄럼이 없다는 그의 학문적인 자부심이 부러울 뿐이다(*사실 이런 책은 불어나 영어로 번역되어야 학계에 더 도움이 될 텐데) .

-이 책은 양적 팽창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책의 역사와 관련해 주 교수가 이룩한 질적 향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국내외 역사학계에서 역사서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등장한 신문화사, 일상생활사 등의 방법론을 금서연구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금서의 종류와 작가별 분류 등에 대한 통계학적이며 사회경제사적인 분석에 머물지 않고, 금서의 유통과 소비를 통해서 보통사람들의 세계관과 ‘집단적인 정신자세(망탈리테)’가 어떻게 형성·변화되었는지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금서읽기와 혁명의 문화적 기원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데까지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앙시앵 레짐 시대의 프랑스 보통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밀수입과 서적풍물상인)와 장르(포르노그래피와 정치중상비방문 등)를 통해 은밀히 읽은 금서는 체제비판적인 “다른 문화를 준비하는 온실”이며 “의식의 저장소”로서 궁극적으로는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1789년 사람들의 무기고”(381쪽) 역할을 수행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치문화사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경청할 만하다(*여담이지만, 영화 <음란서생>은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다룰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주 교수는 금서의 역사를 과거 사람들이 공유했던 ‘의사소통의 얼개’를 엿보는 렌즈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금서는 미풍양속을 해치고, 기존질서를 야유하며, 신성한 정치적 합법성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체포, 감금, 소각되지만, 그것이 창작·전파·소비·전유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실행했던 일상생활사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금서의 문화사는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 속을 살았던 과거 사람들이 교환했던 낯선 의사소통의 매트릭스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인쇄문화와 책의 죽음이 공공연히 선전되는 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가 낡은 책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메일, 블로그, 전자카페 등 진보된 정보기술의 혜택을 향유하는 나는 과연 18세기 사람들보다 더 잘, 더 효과적으로 타인과 대화하며 소통하고 있는가?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이런 질문을 독자들이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육영수 중앙대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06. 07. 29) 禁書로 프랑스혁명 다시 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한 바보의 의미 없는 행위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포레스트 검프조차도 역사학을 조금만 배웠다면 틀렸음을 알 수 있는 얘기다. 역사는 단순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정치·문화의 수많은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에게 작용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역사를 보기 위해선 수십개의 필터가 끼워진 렌즈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프랑스 혁명사를 이해하는 한 코드는 ‘모순을 타파하려는 계몽사상에 물든 부르주아 계층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는 이 같은 시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지만, 반계몽주의자들도 계몽주의자와 공존하던 시대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비공시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방법론이다.

-책에서 강조되는 건 프랑스 혁명과 ‘금서(禁書)’의 관계다. 20세기의 연구 성과인 정치적, 경제적 설명에서 탈피해 문화적 요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서가 프랑스 혁명의 직접 요인이었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연구 성과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을 가질 뿐이다.

-앙시앵 레짐 말기 금서의 세계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테브노 드 모랑드(1741∼1806)였다. 싸움, 노름, 도둑질, 사기와 수차례 탈옥을 일삼던 그는 1769년 영국으로 도망쳐 혁명 이후인 1791년 프랑스로 돌아올 때까지 프랑스 정부의 주요 인물을 공격하는 ‘중상비방문’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이용해 고관대작들의 추문을 주워담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녔다.

-‘프랄랭 공작은 손톱을 물어뜯다가 공수병에 걸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목을 매거나, 칼이나 총으로 자살한다’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이 근친상간을 범하는 일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그들이 누이들 대신 여염집 부인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

-이처럼 모랑드는 루이 15세와 그 주위 귀족들, 프랑스 상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거침없이 퍼뜨렸다. 디드로의 ‘백과사전’, 볼테르의 ‘캉디드’ 등은 지식인에게 계몽주의 세계관을 전파했지만, 파리 국립도서관 사료보관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무명의 금서들은 민중의 울분을 야기했다.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고문서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하며 직접 참고했다. 사실 금서로 프랑스 혁명기를 읽어낸다는 발상은 저자가 이미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다. <서양 금서의 문화사>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시각은 보여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프랑스 혁명을 읽어내려는 작고 소중한 노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백승찬 기자)

세계일보(06. 07. 29) 금서가 프랑스 혁명 불을 질렀다

-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 된 셈이다.

-디드로,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해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신앙과 진리는 물론 신까지도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렸으며, 신적 초월성이나 신비감을 자격정지시켰다.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는 영국의 그것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다. 점진적 개선이 아닌 전면적 자유·평등·박애를 위한 혁명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마침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끝내 왕정을 무너뜨리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 근대사의 2대 근원인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혁명 주체들은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을 제도화하는 등 오늘날 우리가 만끽하는 민주주의 이념의 씨앗을 심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들의 혁명’이라는 한계로 충분한 자유와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고, 부의 균등분배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전작인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1990)를 완전 개작한 ‘서양 금서의 문화사’는 계몽주의가 발흥하던 ‘앙시앵 레짐(구제도)’ 시대의 프랑스를 무대로 금서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특정한 내용의 출판물 간행을 제한하는 검열과 이를 반영한 금서는 가깝게는 언론의 자유와 연결되고, 나아가서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금서들은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이념이 분출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책은 인쇄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 도서출판법과 검열제도의 자세한 면면, 그리고 이를 위반한 다양한 사례들을 살핀다. 구체적인 금서와 작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가운데, 저자는 글쓰기·읽기·손으로 쓴 글·책을 포함한 인쇄물 등이 당시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앙시앵 레짐의 성격과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일상생활을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계몽주의에 대한 장을 따로 마련하는 등 넓은 맥락에서 금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매년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고문서 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해오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원사료를 통해 프랑스 민중들이 왜 ‘금서’를 생산해 내 읽고, 잡혀가고, 못된(?) 사상에 물들어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앙시앵 레짐은 왕권과 교회, 귀족 계층에 대한 풍문과 중상비방문 등이 ‘책’을 통해 민중에게 퍼져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출판업자들에게 ‘금서’라는 조치로 책을 생산·유통·보급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온갖 추문과 교회의 부정 폭로, 귀족층에 대한 혐오 등 당시의 프랑스는 극한의 양극화가 첨예하게 두드러진 사회였다. 혁명 여론은 그런 와중에 형성되었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민중은 저명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무명인들이 치를 떨며 쓴 수많은 비방문과 금서들이 당시 민중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다. 대부분이 서구학자 연구서의 번역물 일색뿐인 서양사나 서양문화사 틈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이다.(조정진 기자)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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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의 소설 <생사불명 야샤르>(푸른숲, 2006)이 출간됐다.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그간에 동화 두 권만 번역됐었다고 하니까 내가 특별히 과문했던 건 아니겠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터키의 이 저명한 '유머작가'는 100권 이상의 책을 쓴 걸로 돼 있다. 터키의 '국민작가'라고는 하지만,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번역하려고 한 탓에 이슬람 과격단체의 타겟이 되었고, 지난 93년엔 이들이 그가 묵고 있던 호텔에 방화함으로써 (작가는 목숨을 건졌지만) 37명의 투숙객이 희생되기도 했었다고. 그의 사후엔 유언에 따라 아무런 장례예식도 치러지지 않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묻혔다고 한다. 여러 수식어가 필요 없이 그는 한 사람의 '진정한 작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에 관한 두 개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6. 07. 29) 내가 죽었다고?호적이 사람잡네…‘

 

-“아버지이이이… 제가 죽었대요. 죽었대요.” 열두 살에 날벼락을 맞았다. 호적엔 ‘사망’으로 나온단다. 그것도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것으로. 야샤르의 인생은 그때부터 꼬여 버렸다.

 

 

 



 

 

 

 

-소설가 아지즈 네신(1915∼1995)의 이름은 낯설게 들린다. 국내에는 아동 도서 두 권만 나와 있어 동화작가로만 인식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구라’가 여간 아니다. 알고 보니 ‘터키의 국민 작가’란다. 터키에선 “완전히 아이즈 네신의 소설이군”이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실화가 바탕이 됐다.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비판한 작품을 발표해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했던 작가가 감방 동료에게서 들은 사연이다. 무대는 감방. 야샤르 야샤마즈라는 사내가 새로 들어왔다. 터키어로 야샤르는 ‘살다’, 야샤마즈는 ‘죽다’라는 뜻이다. 황당한 이름에 동료 죄수들은 폭소를 터뜨리는데, 정작 야샤르의 삶의 비극은 이름에 압축돼 있다. 그에게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

-책은 ‘생사불명 야샤르’가 감방 동료들에게 21개의 경험담을 밤마다 하나씩 풀어놓는 형식이다. 이야기꾼 야사르가 들려주는 얘기는 주민등록증 없이 살아가면서 겪는 황당무계한 사건들이다. 첫날엔 처음으로 동사무소 호적과에 갔던 열두 살의 어느 날. 부모는 1911년 결혼했는데 아들 야샤르는 1915년에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니, 말이 안 된다고 따져 봐도 소용이 없다. “호적 대장에 그렇게 써 있는데 난들 어쩌겠소?” 그렇게 말해 놓곤 공무원은 나 몰라라 한다.

-다음 날 에피소드는 결혼을 앞두고 군대에 끌려간 날. 죽었다던 야샤르가 난데없이 병역기피자로 몰린다. 주민등록증은 나중에 발급해 줄 테니 입대부터 하라는 것이다. 또 그 다음 날 이야기. 제대하고 돌아와서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돈이 들어올 턱이 없다.

-포복절도할 ‘구라’를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관료주의의 지독한 횡포다.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정부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하는 고무줄 원칙. 소설 속 야샤르의 분통 터지는 외침은 우습고도 기막히다. “공공기관이 하는 일이 뭐요? 학교에 입학하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고, 군대에 끌고 갈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더니, 또 유산을 받으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고, 세금을 거두어 갈 때는 다시 또 ‘넌 살아 있어’라고 하는, 도대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를 해대는 공공기관이라는 곳은 뭘 하는 곳이냐고!”(*이런 게 어디 남의 나라 일만이랴?)

-야샤르뿐 아니다. 자수하러 갔다가 복잡한 절차 때문에 포기하는 스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아들로 호적에 올라왔는데 고치지 못하는 노인처럼 비슷하게 고생한 사람들이 감방엔 적지 않다. 감방뿐일까. 터키뿐일까. 작가의 풍부한 입담과 풍자적인 문체에 배를 잡다가도 읽고 나면 씁쓸해지는 마음, 어느 나라 독자든 마찬가지일 듯하다.(김지영 기자)

 

 

한국일보(06. 07. 29) 웃기지만 웃지 못할 통제 국가의 현실풍자

 

-“풍자는 세계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말한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1915~1995). ‘제이넵의 비밀편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등의 동화로,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그의 장편소설 ‘생사불명 야샤르’(푸른숲)가 출간됐다.

-그는 통쾌한 작가다. 그의 글은 늘 불의와 거짓을 향해 시퍼렇게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권위와 권력을 조롱하고, 소수와 약자를, 또 그들의 저항을 흔들림 없이 옹호한다. 그리고 그는 유쾌한 작가다. 문학의 험난한 지향을 그는 웃음의 동력으로 이끌고 간다. 적당한 과장과 넉넉한 재치, 그리고 정곡을 파고드는 냉철한 지성, 그의 글에서는 냉소마저도 따듯하다. 소수와 약자를 향한 사랑이 있어서다. 하지만 그의 문학을, 달리 말해 웃음과 사랑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삶과 그의 조국 터키의 현실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그는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다. 번역자인 이난아씨의 소갯말을 빌자면 그는 작품을 발표하기 무섭게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의 죄목으로 수갑을 찼고, 약 250번 가량의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생활을 제외하고 5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했다. 계엄령 하에서 신문 잡지에 칼럼을 쓸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스스로 신문을 발행하고 출판사를 만들기도 했다(*역자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들을 모두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터기문학 전문번역자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입을 추진중인 그의 조국 터키는 지금도 국가모독죄 규정(형법 301조)을 두고 있는 드문 국가다. 정부와 사법부, 군부, 보안조직 등에 대한 모욕행위를 하면 처벌 받고, 터키 국민이 국외에서 이를 행했을 때는 가중처벌 된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오르한 파묵이 지난해 스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족 학살사건을 성토했다가 국가모독혐의로 기소된 사례(국제사회의 거센 비난 여론에 밀려 연초에 공소가 기각됐다)가 있었고, 최근에도 터키에 사는 영국인 화가가 터키 총리를 풍자한 그림을 그려 피소 위기에 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네신의 풍자는 문학 역사의 모든 빛나는 풍자들이 자라난 바로 그 자리, 곧 삼엄한 권력과 참혹한 현실 위에서 나고 자란 저항의 웃음이다(*오르한 파묵과 함께 네신은 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할 이름이겠다).

 


 

 

 


 

 

 

‘생사불명 야샤르’는 동사무소 직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호적에 전사자로 기록된 ‘야샤르’의 이야기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고, 군대에도 못 가고, 뒤늦게 입대는 하지만 제대를 못하고, 사랑도 잃고, 부친의 유산마저 상속 받지 못하고…, 급기야 공무원에게 대들다가 정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남자. 소설은 ‘야샤르’가 감방 ‘형님들’에게 자신이 갇히게 된 연유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주민등록증 없이 살면서 겪은, 우습지만 웃지 못하고 울자니 또 너무 우스운 ‘파란만장 인생역정 스토리’. “그날 가장 큰 실수는 (…)충고를 잊은 거였죠. 욕을 하고 싶을 때는 공공기관의 이름을 바로 대지 말고 ‘세상’으로 바꿔서 욕을 하라고. (…)어쨌든 이렇게 하면 형법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고.”(486쪽)

-재갈 물린 감옥 같은 현실과, 그 현실로부터 격리된 존재들이 나누는 교감의 아이러니. 네신은 소설 결말부에 또 하나의 반전을 묻어두고 독자들을 야릇하게 웃긴다. 그 웃음은 물론 아주 복잡한 감정이 실린 웃음이다(*19세기 러시아 작가 고골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최윤필기자)

 

06.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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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9 21:10   좋아요 0 | URL
아, 빨리 보고 싶어요. 책 올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넘 기대되요^^

로쟈 2006-07-29 21:21   좋아요 0 | URL
저도 물만두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다.^^
 

다소 특이한 제목의 책 <유명짜한 스타와 예술가는 왜 서로를 탐하는가>(현실문화연구, 2006)가 예술분야의 신간으로 나왔다. 저자 존 워커나 이 책에 대해서 아는바 없지만, 관련 리뷰들이 눈길을 끌길래 옮겨놓는다. 관심이 맞으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문화일보(06. 07. 28) 스타와 예술가는 ‘상생의 동지’

-원제는 ‘아트 앤드 설레브리티(Art and Celebrity·예술과 명성)’. 요즘 유행에 따라 제목을 자극적으로 ‘가공’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성을 얻으려 한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가지로 나눴다. 먹고 입고 자는 본능, 그 다음에 안전에 대한 욕구, 세번째가 존경받는 집단에 속하는 욕구, 네번째가 거기서 존경받는 것이다. 마지막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한 자아실현, 동양적으로 말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매슬로의 주저인 <존재의 심리학>은 두어 종의 번역본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이름은 심리학 개론 시간에 처음 접했었다).

 

 

 



-이 욕망의 단계는 보통 하나를 거쳐 다음 단계에 이르기 때문에 ‘욕망의 사다리’라고도 불린다. 통상 30%에 달하는 사람들이 본능적 욕구충족에 매달리며 ‘남 탓’을 주로 하고, 60%에 달하는 보통 사람들은 욕망의 사다리에 세번째까지 올라 ‘나도 한때 꿈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10% 정도에 달하는 사람이 4단계 ‘존경’의 지점에 올라 부와 명성을 자랑한다. 마지막 단 계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나 적다.

-명성은 세계 경제의 주요 통화다. 뉴스에서 최고의 가치이고, 자선사업의 주된 추진력이다. 그것은 아이디어와 정보, 즐거움을 받는 유력한 수단이다. 지금 세계에서 명성의 서명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명성’의 대명사인 대중예술 스타와 미술가의 관계를 풍부한 사례를 들며 해부했다.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어떻게 보면 천격 자본주의의 결과인 이런 ‘명성’들이 어떻게 예술과 ‘악어와 악어 새’의 공생관계를 이루는지 파헤친 시각이 자못 신랄하다. 물론 이런 공생은 미술계에만 있지 않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전 반에 확산돼 있다.



 

 

 

-스타와 예술가는 부단한 노력과 타고난 재능으로 명성을 추구하고 획득한다. 명성은 이들이 살아가는 기반이다. 스타와 예술가 는 자신의 명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지적 관계다.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친구이고, 모델이고, 고객이다. 마돈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수집하며 팝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선전했다. 칼로도 마찬가지다.



-마돈나가 수집하는 그림이라 더욱 유명해졌고, 비싸졌다. 미국 조각가 토머스 숌버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영화 ‘록키 ’를 청동조각으로 만들어 유명해졌고, 메릴린 먼로는 앤디 워홀을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져 먼로 신화를 강화하고, 또 그것을 만든 작가들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줬다. 스탤론을 비롯, 영화배우 데니스 호퍼 등은 대단한 예술품 수집가다.

-명성의 장점은 대단하다. 우선 확실한 보장은 없지만 후세 사람들에 의해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비평가들과 화랑으로부터 아첨, 칭찬과 찬미를 듣는다. 딜러, 수집가, 큐레이터 등 소비자의 수요가 높아진다. 위임, 사업과 상업적인 선전의 기회, 서훈 및 수상의 기회가 많아지며 티셔츠, 넥타이, 복제품 등 관련 문화상품의 판매액이 높아진다. 언론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의뢰가 많아 진다. 음식점과 거리에서 일반사람들이 알아보며 사교적 초대와 국가원수 등 VIP들과 어울릴 기회가 생긴다. 잘 입고, 잘 먹고, 큰 집에서 안정적이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명성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이런 예술은 대체로 아마추어적이고 모험성이 없다. 스타일 면에서 자연주의적이거나 사진과 같은 사실주의 경향을 띠며 미적인 질에서 수준이 낮다. 키치이거나 키치를 모방한다. 언론의 관심을 탐하는 경향이 있고, 대개 가치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는다. 보통 사후에 관심이 크게 떨어진다.

-명사들끼리 어울리며 자신의 뿌리와 보통사람들과의 접촉을 잃게 된다.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왜곡된 자아가 기형적으로 커져 극도로 이기적이고, 거만하게 된다. 자기비판능력을 상실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형편없을 때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이 되기도 한다. 마약과 알코올 에 빠져 자살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마지막 명성’이기도 하다(*'명성의 마지막'이기도 하겠다).(김승현 기자)

 한국일보(06. 07. 29) 스타와 예술은 연애 중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 워즈>가 버전업 돼 온 것은 제목 덕도 크다. ‘행성’들의 싸움으로도, ‘영웅’들의 격돌로도 읽힐 수 있는 중의법. 스타 또는 영웅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들을 매혹시켜 왔다. 이 시대, 그 존재는 포스트모더니즘 논리와 가상 현실 등 기술력에 힘입어 더욱 막강한 권력이 돼 인간의 의식과 실제 생활을 좌우하고 있다(*사진은 1965년 육체파 여배우 라켈 웰치와 함께 '그녀의 추상' 앞에 자리한 살바도르 달리 - 337쪽).

-이 책은 상품과 작품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자본주의적 현상에 대한 탐구서다. 스타는 예술을 탐닉하고, 예술은 기꺼이 스타를 위해 복무하는 현실을 파헤친다. 어느 것이 닭이고, 또 달걀인가.

-영국의 미술 비평가인 저자는 자신의 명성을 확대 재생산해 낸다는 목표를 두고 본다면 둘은 윈-윈의 관계라고 규정한다. 마돈나, 실베스타 스탤론, 론 우드(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등 팝스타들이 작품의 모티브로서 등장하는 미술품에서 그들은 미술 작품의 객체다. 그와 반대로 배우 안소니 퀸, 가수 데이비드 보위나 폴 매카트니 등은 직접 작품을 창작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큰 흐름속에서 스타와 예술은 함께 안주하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팝아트에게 스타들의 이미지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만나 진지한 원군을 만난다. 모방이 깊어져 원본, 즉 현실을 앞질러 흉내내게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가 되기도 한다. 오사마 빈 라덴도 일단 그 회로에 들어가면 단단히 망가져야 한다. 세계사는 위인들의 역사가 아니다. 여기서는 역사적 영웅들 역시 단단히 망칠 각오를 해야 한다(*지면기사와는 문장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한 사람, 마오도 레닌도 난도질당하는 그 곳에서도 체 게바라만은 영원한 연인이다. 앤디 워홀, 오노 요코, 장 바스키아 등 현재 미술계의 스타들은 누구인지, 각각 상술한 것도 체 게바라의 비범함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20세기초의 좌파 혁명에서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성공했더라면 인간적 사회주의가 탄생했을 것이라며 잃어버린 역사를 돌이켜 보게도 한다.

-말미에 저자는 이 시대 예술가들에게 숙제 하나를 던진다. 2001년 세계를 뒤흔든 9ㆍ11 테러는 미술적으로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9.11 이후의 예술'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는 것). 돈과 명성, 언론의 관심을 끌고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주고 이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욕심에서 예술 스타들을 만든 미술은 진정한 미학적 특성과 지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충고는 지금 한국 미술계가 새겨 들어야 할 충고이기도 하다.



-‘예술과 명성’(Art And Celebrity)이라는 점잖은 원제에 ‘짜하다’(소문이 왁자하다, 잘 알다)라는 뜻의 시쳇말을 얹어 원저의 하중을 덜고 한국 독자들에게 다가서려 한 편집진의 노력이 전편에 펼쳐져 있다. 예를 들어 ‘마돈나와 침대에서’(*어떤 작품인지?), ‘셰어 게바라’(팝스타 셰어와 체 게바라의 얼굴을 합성한 작품)등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70여점의 관련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는 분명 이 책이 주는 과외의 소득이다.(장병욱 기자)

06. 07.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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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2006-07-3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이 작품이 아니라 알렉 케시시안 감독의 'In bed with madonna'라는 다큐멘터리의 포스터에 저 사진이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이란 제목으로 개봉되고 출시된걸로 기억합니다. 기사대로라면 장병욱 기자가 착각했군요..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마돈나와 침대에서'라는(영화의 포스터사진이라면 모를까)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없을것 같은데요. 책의 부록으로 dvd를 딸려 준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ㅋ

로쟈 2006-08-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제가 책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그런데(<진실 혹은 대담>을 저는 극장에서 봤었습니다), 'In bed with madonna'라는 작품이 따로 있는 것 같지 않더라구요...
 

2003년 3월에 씌어진 걸로 돼 있는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1)'에서 나는 이렇게 적어놓은 적이 있다.

"하여간에 이 자서전(*아시모프의 자서전)이 절판된 것은 좀 아쉽다. 그렇게 절판된 자서전들 가운데 또 기억나는 것은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옷을 입은 원숭이>(샘터사)이다.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됐지만(원제는 '동물들과의 나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석희씨의 번역이고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모리스의 책들이 대부분 출간된 거에 견주면, 이미 번역돼 있는 그의 자서전이 '묵혀'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묵혀 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제목은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 2006)로 바뀌었고, 출판사도 한얼미디어로 옮겨갔지만, 역자는 그대로이다(역자는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1991)도 옮긴 바 있다). '데스몬드' '데즈몬드' '데즈먼드' 등은 다 같은 사람 '모리스'의 이름이다.

아직 언론에 아무런 책소개 떠 있지 않아서 알라딘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털없는 원숭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자전적 에세이"이고, "유년기에 동물과 동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과정, 스승인 콘라트 로렌츠와 니코 틴베르헨과의 만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던 경험, 런던동물원 포유류관장 시절에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경쾌한 문체로 담았다."

로렌츠와 틴버겐 같은 그의 스승들은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옥스포드대 출신인 모리스는 니코 틴버겐의 직속 제자이다(모리스는 창가시고기를 연구했다). 근데, <동물의 사회행동>의 저자 '니코 틴버겐Nikolaas Tinbergen'의 표기가 '니코 틴베르헨'으로 바뀐 모양이다. 출생지가 네덜란드라서인가? 전공자들도 다들 관례적으로 '니코 틴버겐'이라고 쓰고 있는지라 내게도 '틴버겐'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게다가 내가 알기로 그는 반평생 이상을 영국 대학의 교수로 살았다). 같은 성의 이름으론 네덜란드인 얀 틴베르헨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군...  

소개를 마저 옮기면,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지은이가 어떻게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킨 저술가로 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학문을 하는 지은이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더 진지해질 수 없다면, 즐기기나 하자" "내속에 있는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아직도 서로 싸우며 번갈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 동물학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재미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그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나도 느끼는 바인데, 굳이 자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자서전에는 기억에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 콩고 이야기도 나오는데, 작년 뉴스기사에는 이런 것도 있다(같은 종류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세계일보(05. 06. 21)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 2600만원에 팔렸다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이 20일(현지시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2만5620달러(약 2600만원)에 팔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국 경매회사 본엄스는 ‘콩고’라는 침팬지가 1957년 그린 추상화 3점을 경매에 부친 결과 하워드 훙이라는 미국인이 낙찰가 외에 웃돈을 얹어 2만6352달러에 샀다고 밝혔다. 추상화들의 예상 낙찰가는 1000∼1500달러 정도였다.

-본엄스의 현대미술 담당자는 “우리는 이 그림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단지 (특이함이라는) 즐거움을 위해 경매장에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침팬지의 작품이 팔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매에는 앤디 워홀과 르누아르의 작품도 선보였지만,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의 인기에 가려 팔리지 않았다.

-콩고는 1954년 영국 동물원에서 태어나 2∼4살 무렵에 약 400점의 데생과 유화를 남긴 뒤 1964년 결핵으로 죽었다. 이 침팬지는 연필과 붓을 받아들 때 다른 침팬지들과 달리 재빨리 사용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붓과 연필 잡기를 거부해 ‘마구잡이로 그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콩고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 1957년 콩고의 그림들을 모아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 그는 “침팬지들이 인간 예술의 몇몇 요소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건 이 자서전을 참조하시길...

06. 07. 28.

P.S. 보다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임종업 기자이다.

한겨레(06. 08. 04) 기어이 한마리의 동물이 되고 만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1928~ )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접촉> <맨워칭> <바디워칭> 등이 번역 소개돼 비교적 낯익다. 이번에 나온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는 지은이가 쉰한 살 때인 1979년 출간한 것으로 지은이의 관심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아간 시점까지의 역정이다. 일종의 학문적 성장기다.

-할아버지 유품인 놋쇠 현미경과 <위장과 내장의 비교해부학 입문>이란 책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매혹된 그는 집, 정원, 차고를 수집한 야생동물로 채웠다. 그는 “토끼굴로 내려간 앨리스처럼 현미경의 대롱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그 세계에 매료됐다. 그를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이는 기숙학교의 ‘버터컵’이라고 불렀던 동물학 선생님. ‘올챙이적에 배운 것은 두꺼비가 되어서도 기억될까’라는 호기심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탐구열로 바뀌었다. 버터컵 선생님은 동물학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칠 뿐, 스스로 질문을 하는데 숙달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두번째 스승인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 틴베르헨(1907~1988)을 만난 것은 버밍엄 의대 특별강연 때. 그는 “한 시간 강연이 준 감동에서 빠져나왔을 때 과학도로서의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종교적 개종도 그보다 더 적극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모리스는 옥스퍼드에서 틴베르헨을 지도교수로 가시고기의 동성애적 성향을 밝히는 박사논문을 썼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징집된 그는 부적응자로 부대를 전전하던 끝에 제대병한테 직업교육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이때 훗날 결혼하게 된 소녀 래모나를 만난다. 그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끝이 없어 뱀까지 좋아해 모리스와 천생연분 반려가 되었다. 모리스는 래모나가 진학한 옥스퍼드로 가기 위해 코피 터지게 공부해 버밍엄대학을 최우등 졸업한다.

-세번째 스승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 1951년 강연을 듣고 모리스는 “그는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신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훌륭한 에스키모개를 뒤섞어놓은 인물처럼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육포를 주며 낯을 익힌 갈까마귀한테 성기를 물린 로렌츠의 경험을 ‘예비동작’이라는 동물행동학 용어를 쓰며 자세히 소개한다. 틴베르헨이 그를 동물학자로 세례를 주었다면 로렌츠는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모리스는 그후 런던동물원의 영화 텔레비전 책임자가 되어 그라나다텔레비전의 ‘동물원 시간’을 진행했다. 이때 최근의 동물학적 발견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예컨대 코브라의 춤은 피리 소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리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등. 그후 런던동물원의 포유류관장이 된 그는 인간화한 동물로 가득찬 그곳을 야생에 근접한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또 야생동물의 약탈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동물 결혼상담소를 운영했다. 죽어서 동물원 호랑이가 된다는 아내의 유언을 믿고 찾아와 마누라 내놓으라고 호통치던 영감님, 나중에 <야성의 엘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이 에덤슨이 자료와 사진을 들고와 책을 내고 싶다고 하던 일 등 일화를 소개한다.

-길들여진 침팬지 ‘콩고’한테 한개의 장을 할애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텔레비전을 누빈 콩고는 합성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팬레터를 받는 등 인기를 끌었다. 콩고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썼다. “나는 의사소통을 할 줄 모르고 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폐증 아이의 아버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하고 싶어서 애가 탔다.”

잠간동안의 백수시절 아내와 함께 본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림 속의 들소가 몸은 미세한 명암과 균형이 뛰어난 반면 다리가 뻣뻣한 것이 의아했다. 그는 살아있는 들소를 그려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다는 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죽은 동물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그럴 듯하다.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 동물이 되었다. 나는 그 동물처럼 생각하려고 애썼으며 그 동물처럼 느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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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2006-07-28 11:09   좋아요 0 | URL
얀 틴베르헨과는 한 형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형제가 노벨상을 탄 영광을...^^;;

로쟈 2006-07-28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문의 영광이네요.^^
 

사진작가 김중만의  '청춘시절'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에 맞추어 사진집도 출간됐다. 'Sexually Innocent'(미메시스, 2006). 22살이면 순진한 나이인지 순진해 보이는 나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찍은 사진 들이라고 한다. 테마는 대략 에로티시즘이고.

 

 

 

 

연예인 사진이 아니면 내가 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언젠가 아프리카의 야생을 카메라에 담던 모습이다(그래서 내게는 '김중만=아프리카'이다). 이후에 언론에서도 자주 얼굴이 비쳐 '유명세'를 짐작하게 했지만, 이번 사진전은 그런 유명세와 무관한 시절의 '고독한' 작업이었을 법하다. 작가도 그런 때가 그리웠던 것일까? 전시회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파이낸셜뉴스(06. 07. 26) 사진작가 김중만의 ‘청춘 시절’을 훔쳐볼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경기도 양평 사진갤러리 와(瓦·WA)에서 8월17일까지 전시되는 ‘Sexually Innocent 김중만:1975’전은 22살 청년의 김중만이 젊음의 방랑 고뇌와 함께 자유와 사랑을 담은 작업들이다. 작가로서 출발점이 되는 김중만의 초기작업이다.

-당시 김중만은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영화를 전공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김중만의 에로티시즘을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여성과 자연풍경을 찍은 흑백사진 50점이 전시된다. 김중만은 75년 프랑스 니스의 아뜰리에 장피에르 소아르디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전에 참여해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뉴시스(06. 07. 18) 경기도 양평 사진 갤러리 瓦 WA에서 초대 기획된 ‘Sexually Innocent Kim, Jung-Man: 1975’ 전은 1975년 당시 22살 청년 김중만의 젊음의 방랑, 고뇌와 함께 자유와 사랑을 담은 작업들이다.



-김중만은 프랑스 니스 국립 응용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업들은 김중만의 에로티시즘(Eroticism)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로서 여성과 자연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 50여점이 전시된다. 습작 시기를 거쳐 작가로서의 출발점이 되는 김중만 초기의 작업이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성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여성과 자연 풍경을 담은 은유적 기법의 사진들은 직접적 성 행위보다 오히려 더욱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은 심층적 심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한 여성을 통해 생명의 환희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가장 김중만다운 작업으로 그의 순수한 성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exually Innocent Kim, Jung-Man: 1975’ 사진전은 7월15일부터 8월 16일까지 진행된다.

06.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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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6-07-2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여성과 자연 풍경을 담은 은유적 기법의 사진들은 직접적 성 행위보다 오히려 더욱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제가 눈이 어두워서인지, 순진하지 않아서인지 전혀 에로틱한 감정이 들지 않는군요.^.^

로쟈 2006-07-2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사진들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좀 다른 게 있지 않을까요?^^

작것 2006-12-1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계..를 말하고 싶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