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는 다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3명의 소설가와 2명의 시인, 혹은 3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다. <쿠오바디스>의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남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첫 수상자였다(1905년). 그렇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전세계적 베스트센러였던 <쿠오바디스>를 제외하면 단편 ‘등대기지‘ 정도다(폴란드 문학선에 수록).

폴란드의 망명자로 오랜 객지생활을 하던 스카빈스키 노인은 미국령 파나마 항구도시 에스핀월의 외로운 섬 등대지기로 일하게 된다. 적임자로 일하던 그에게 어느날 월급의 절반을 기부하던 ‘폴란드 이민자협회‘에서 뜻밖에도 폴란드 책(미츠키에비츠의 <판 타데우시>)을 보내오고 노인은 시집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휩싸인다. 너무나 벅찼던 나머지 하룻밤 등대의 불을 켜는 것조차 잊고만다. 노인은 즉시 해고돼 다시금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게 단편의 결말이다. 시엔키에비츠 문학의 낭만성과 민족주의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동시대 작가로 냉철한 사실주의 문학을 대변하는 볼레스와프 프루스와 대비된다).

지금 노인의 외로운 바위섬에서는 무언가 엄숙하고 장엄한 일이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 예사롭지 않은 평화와 고요의 순간이었다.
애스핀월의 시계가 오후 다섯시를 알리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도 찬란히 빛나는 창공을 가리지는 못했다. 단지 몇마리의 갈매기만이 푸른하늘에서 유유히 날갯짓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넘실대는 파도가 거대한 정적 속에서 해변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 바다도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애스핀월의 하얀 집들과 그 뒤로 늘어선 울창한 야자수들이 멀리서 미소짓고 있었다. 갑자기 정적을 뚫고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마치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시집을 읽어내려갔다.

리투아니아, 나의 조국이여! 잘 있었느냐?
너를 잃었을 때 비로소 너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니.
오늘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보며 노래하는 것은,
너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니.

노인은 목이 메어 더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글자가 그의 눈앞에서일렁이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렸고, 격정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져서 그의 목소리를 자꾸만 짓눌렀다...... 노인은 잠시그대로 있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평정을 찾으려 애쓰며 다시 시를읽어나갔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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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크라쿠프로 돌아오는 길에 해는 저물어서 쉼보르스카가 묻혀 있는 묘지에 들어설 때는 이미 한밤중과 다름 없었다(오후 5시를 갓 넘긴 시각이었음에도. 묘지는 오후 6시까지 개방이었다). 어제 이미 찾아왔던 분들이(˝두 번은 있다˝) 안내를 맡아서 시인의 무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아주 멀리서 온 독자들이 시인과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한겨울의 무덤 속에서도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묘지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20분쯤의 거리. 나는 크라쿠프에서 마지막 미션으로 어제 봐두었던 서점을 다시 찾아갔다.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서점 엠픽(empik)은 1610년에 문을 열었다는 곳으로 역사가 자그만치 400년이 훨씬 넘는다. 크라쿠프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가운데 하나(내부와 외관은 새단장한 모습이어서 역사적 무게감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지역주민 쉼보르스카가 자주 찾았을 서점이다(자주 들렀다는 카페도 근방이었다).

서점 안쪽에 쉼보르스카 코너가 있어서 책과 사진 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한국어판 <끝과 시작>도 보여서 반가웠다. 폴란드문학 외에 당연히 세계문학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고 한국 작가의 책으론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그리고 <흰>의 폴란드어판이 눈에 띄었다. 첫날 바르샤바 공항에서 구입하지 못한 <흰>을 크라쿠프에서의 기념품으로 구입했다(하드카바이고 가격은 2만원가랑. 커피값도 책값도 결코 우리보다 싸지 않았다).

그렇게 크라쿠프의 모든 일정이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과거 폴란드의 수도였던(수도는 17세기초 바르샤바로 옮겨진다) 역사도시이고,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주교로 봉직혔던 도시, 그리고 시인 쉼보르스카의 도시. 크라쿠프여, 안녕! 아침을 먹으면 떠날 도시에 미리 인사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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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학기행 7일차였다. 9박11일의 일정이 어느덧 종반을 향하고 있다. 오늘 날이 밝으면 시엔키에비치문학관을 찾을 예정이고 이후 곧바로 마지막 목적지 바르샤바로 이동하게 된다(점심은 바르샤바에서). 바르샤바에서 마지막 이틀을 보내면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항공편을 맞추느라여느 때의 8박10일보다 하루 늘어났다).

아우슈비츠행을 앞두고 있다고 앞선 페이퍼에서 적었는데 어제는 폴란드 최대 관광지 두곳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 그리고 아우슈비츠(폴란드명은 오시비엥침). 소금광산은 9시 오픈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 영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았다(거의 2시간이 소요됐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광산이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내부시설도 잘돼 있어서 놀랐다. 지하130미터까지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올때는 6인승 정도 되는 엘리베이터(라기보다는 딱 승강기)를 이용했다.

광산 투어를 마치고 부근 호텔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일행은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사실 많은 영화와 자료에서 봤던 곳이라 수용소 정문을 들어설 때는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는 느낌조차 들었다(최근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그렇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의 분리와 집결, 이송과 ‘해결‘에 이르는 전과정이 수용소 막사별로 주제를 달리해 전시되고 있었다. 그나마 아우슈비츠는 비르케나우를 포함해 전쟁 막바지에 세워진 수용소들보다는 시설이 나은 편이라고 했지만 인류 최악의 집단범죄의 현장이라는 아우슈비츠의 오명을 떼어낼 수는 없었다.

한 막사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책들이 책장에 진열돼 있었는데 프리모 레비나 장 아메리, 엘리 위젤, 임레 케르테스, 타데우셔 보로프스키 등 눈에 익은 이름도 있었지만 낯선 이름들도 많았다. 홀로코스트 문학 내지 아우슈비츠 문학에 대해선 몇차례 강의하기도 했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에 베를린에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한데 이어서 이번에 테레진과 아우슈비츠 두 곳을 찾았으니 매듭을 지어도 좋겠다(소련의 강제수용소까지 찾아갈 일은 없을 듯하므로).

전시된 사진 가운데 1943년 테레지엔슈타트(테레진)에서 유대인들의 모습에 눈길이 머물렀는데 그해 10월 오틀라 카프카가 돌보던 아이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프라하의 카프카 무덤에서 이번문학기행은 ‘테레진에서 아우슈비츠로‘라는 오틀라의 동선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도 했는데 비로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관광버스는 많이 와 있었지만 실제 수용소 투어는 여유있게 진행되었고 마지막 가스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예정보다 빨리 종료되었다. 원래 공식 일정에는 포함해 있지 않았지만 쉼보르스카의 묘지 방문을 많은 분들이 원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부터가 저녁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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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쉬 보로프스키(타데우슈 보롭스키)(1922-1951)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유대인이었고 아우슈비츠 수감생활을 겪었다(1943-45년). 우리에겐 단편과 단편집이 소개됐는데 먼저 소개된 단편(단편집에도 수록)이 폴란드문학선의 표제작, ‘신사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다. 아우슈비츠 방문을 앞두고 다시 펼쳐보았다.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흘러가는 강물처럼 앞으로 앞으로 떠밀려나가는 인파들 사이로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 소녀는 기차에서 자갈밭으로 가볍게 뛰어내리더니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부드러운 금발이 어깨 위로물결치며 쏟아져내리자, 그것을 재빨리 뒤로 넘긴다. 무의식적인 몸짓으로 블라우스의 매무새를 고치고는 치맛자락을 아래로 잡아당겨 편다. 잠시 후 그녀는 인파로부터 시선을 돌려, 마치 누군가를 찾기라도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는 새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여보세요. 말해주세요. 저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나는 그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 내 앞에 한 소녀가 있다. 매력적인 금발과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바티스트 천(얇은 고급 마직옮긴이)으로 만든 블라우스를 입은 한 소녀가 눈망울에 똑똑하고성숙한 빛을 담고서 내 앞에 서 있다. 여기,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가스실이다. 더럽고 구역질나는 집단적인 죽음이‘다. 또 한쪽에는 수용소가 있다. 빡빡 깎인 머리, 솜을 넣어 누빈 두꺼운 소련제 바지, 불결하고 축축한 여자들의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 동물적인 굶주림, 비인간적인 노동, 그리고 결국에는 바로 그 가스실, 훨씬 더 끔찍하고, 훨씬 더 무서운 죽음...... 한번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끝이다. 유골이 되어서도 수용소의 철조망을 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갈 순 없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저걸 차고 왔을까? 어차피 빼앗길 텐데!‘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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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 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앞선 페이퍼에서 날씨에 대해 적지 않았는데 폴란드 남부에 속하지만 체코보다는 위도가 높아서인지 확실히 기온 차이가 있었다. 새벽시간인 현재 크라쿠프의 기온 영하14도(체감은 영하18도). 어제는 영하13도였고 낮에는 영하7도까지 올라가긴 했어도 체감은 영하10도 이하였다. 이번주에 한국도 한파가 찾아온다고 하니까 여기만 춥다고 할 순 없겠지만 여하튼 겨울이고 겨울여행이다(2017년 겨울의 러시아문학기행이 떠오른다. 아침에 영하20도는 기본이었던).

추운 날씨에 해는 짧아서 자유시간의 선택지는 한두가지만 가능했는데, 쉼보르스카가 자주 다녔다는 카페와 무덤(2012년 사망. 10주기였던 지난 2022년은 폴란드정부가 정한 쉼보르스카의 해였다)을 선택한 분들도 계셨고 나는 다른 분들과 차르토리스키미술관을 선택했다. 이번 문학기행 일정에는 작가박물관 방문만 포함돼 있고 미술관은 빠져 있는데 크라쿠프가 자랑하는 국립미술관이라고 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입장료는 싸지 않았다. 화요일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건 사후에 알게 됐다). 다빈치의 또다른 모나리자라는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늦게 입장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는 다빈치의 그림만 보는 걸로 생각하고 방문했다(프랑스문학기행 때 모나리자를 본 것과 짝을 맞추는 의미도 있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다빈치의 그림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모나리자와 마찬가지로 신비로운 느낌,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를 느끼게 해주었다.

미술관을 나와서는 나 혼자 오전에도 지나간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는데 ‘쉼보르스카방‘이 따로 있다는 서점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놓았지만 위치는 확인했고 크라쿠프를 떠나기 전에 재시도해볼 생각이다.

날이 밝으면 오늘은 인근의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게 된다. 어제가 쉼보르스카의 날이었다면, 오늘은 아우슈비츠의 날이다. ‘아우슈비츠의 날이 밝았다‘는 표현이 가능한가? 날이 밝기 전에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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