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밤참 라면을 먹으면 글을 친다(이미지들은 이전에 미리 올려놨지만). 여하튼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번에 다룰 새로 나온 책들의 컨셉은 '세계 여행'이다. 이 여행은 공간적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이기도 한데,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이고, 1969년이다. 이때의 일본은 전후 최대 문제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나라이다.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새물결, 2006)가 증언해주고 있는.

 

 

 

 

1969년이면 작년에 개봉됐던 이상일 감독의 영화 <69 식스티나인>의 시간적 배경과 동일한 해이다. 그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1960년대 말 일본의 자민당뿐만 아니라 공산당까지도 기득권 세력으로 비판하면서 ‘미·일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대학 도쿄대 해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투쟁한 극좌파 학생운동조직인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가 마침내는 동경대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던 해이다(해서, 프랑스 파리의 1968년에 대응하는 것이 일본 동경의 1969년이다).

그런 전공투가 극우파 지식인 작가의 거두 미시마 유키오와 1969년 5월 13일에 동경대학 교양학부 900번 교실에서 만나 2시간 30분 동안 격론을 벌였고, 그 녹취된 내용을 1999년 토론 30주년 맞아 장년이 된 전공투 참여자들이 벌인 후일담 토론 내용과 같이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이 이번에 국역본이 나온 책이라 한다. 극우와 극좌의 만남이었지만 토론의 분위기는 '의외로'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지난주 대부분의 언론 리뷰들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늘어놓을 필요가 없겠다. 다만, 리뷰들 가운데 가장 유익했던 문화일보의 리뷰를 부분적으로 옮겨오면 이렇다.

-단순한 우파와 좌파가 아닌,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극 우파 미시마와 극좌파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은 당시 왜 만나 얼 굴을 마주대하고 토론을 벌였을까. 역사의 전설로 남은 69년 대 화와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99년 이제 초로(初老)의 나이가 돼 다시 자리를 함께 한 전공투 출신 인사들이 당시 토론을 반추 하고 평가한 내용을 담은 책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추진된 일본 근대화는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 준다.

-2시간30분 가량 진행된 미시마와 전공투의 격론을 보면, “정말 근대를 둘러싼 중후하고 약동감 넘치는 활기찬 토의였다”는 30 년 뒤 전공투쪽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다. 토론장 입구에 자신을 고릴라 모습으로 캐리커처한 그림을 보고 웃었다는 미시마나 “약간의 비아냥과 예의의 표시로 교복을 입고 마중나갔는데, 폴로 티셔츠를 입은 러프한 모습으로 미시마가 나타났을 때 ‘아차 한방 먹었구나’ 생각했다”는 69년 집회를 기획한 기무라 오사 무(木村修)의 회고 등은 당시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렇다면, 미시마와 도쿄대 전공투의 만남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쪽은 자민당과 공산당이라는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대변해온 ‘전후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현대사를 철저하게 전복시키려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공통 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에게 당시 좌파와 우파는 뿌리 부터 잘못된 근대의 쌍둥이 질병에 다름 아니었다. 미시마가 전공투 와의 토론을 끝내며 “제군들의 열정만은 믿는다”고 말했던 이 유이기도하다. 폭력과 시간의 연속성, 전공투, 정치와 문학의 관계, 천황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미시마는 천황이란 이름으로 상징되는 일본 민중의 저변에 있는 것, 일본민족이 오랜 시간 지속시켜 온 멘탤러티에서 해결책을 찾은 반면, 전공투는 혁명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창출로 근대를 초극하려 한 점이 달랐지만 말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종래 리버럴로 분류됐던 지식인들이 이념적 성향에 따라 좌파와 우파로 분화되거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좌우의 입장을 극한으로 밀고가 일본을 근본에 서 사유하려 했던 미시마와 전공투의 토론과 30년 뒤 평가를 담은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뉴라이트다 뉴레프트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사이비’ 좌파와 우파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우파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작년봄에 '커밍아웃의 윤리'를 쓰면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소리만 요란한 좌파나 소위 '할복'하지 않는 우파를 신뢰하지 않는다.) 

사실 작년은 미시마의 탄생 80주기가 되는 해였고, 나는 그걸 대비하여 재작년에 러시아어로 된 두툼한 미시마 선집(사진)을 구해 왔었다(러시아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여러 판본으로 번역/소개돼 있다). 하지만, 그걸 읽을 만한 여유가 여태 없었는데(앞으로도 없을까봐 걱정된다), 이 <미시마 유키오 대 전공투>는 그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켜주는바, 미시마 '입문서'로서도 제격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러시아본의 표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는 상당한 근육질의 몸매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혹독한 훈련의 결과였다. 알폰소 링기스의 <낯선 육체>(새움, 2006)의 서문에서 미시마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대목: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고대 일본의 무예들과 현대의 생리학적 기술들이 그에게 허락한 극한의 훈련과 고통에 그의 육체를 복종시킨 바 있다. 그는 그런 훈련과정에서 그의 육체가 가장 강렬하게 관능화되는 것을 체험한다. 그는 고대 일본의 서사시적이고 영웅적인 윤리를 부활시키고 그것을 그의 육체와 언어를 이용하여 미래 속으로 던져넣기 위해 현대 생리학과 심리학적 기술들을 철저히 연구했다."

 

 

 

 

"그의 실험적인 육체 편력을 육체의 능력을을 키우기 위한 무제한적인 투자가 주도하는 '육체의 전투'를 우리에게 폭로하고, 근육들이 고양하는 상상력에서 해방된, 그리고 근육들을 규약하는 타자들과 결합한 권력이 부양하는 상상력에서 해방된 '권력의 긴장'을 우리에게 폭로한다. 그는 인간의 영광의 정점은 세속적인 수단들이나 목적들과는 거리가 먼, 시커먼 죽음의 빛 앞에서도 위력을 잃지 않는 찬란한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15쪽)

인용문에서 '찬란한 권력의 상징'은 'a figure of radiant power'를 옮긴 것인데, '인간의 영광의 정점'을 받는 술어로서는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는 이 대목에서 'power'는 '권력'의 아니라 (육체의)'힘'을 가리키며, 'a figure of radiant power'는 '광채나는 근육질 몸매'란 뜻이 아닐까 한다(그것이 미시마가 보기엔 인간의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 미시마가 자신을 근육질 '몸짱'으로 만든 이유가 달리 있을 수 있을까? 그런 미시마는 1970년 일본 자위대 본부를 점거한 채 자위대의 총 궐기와 일본의 재무장을 호소하면서 전통무사식으로 할복자살한다.  

 

 

 

 

두번째 책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가스통 르루의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작가들, 2006). 때는 1904년, 장소는 우리의 제물포 앞바다. 그리고 두 주연은 러시아와 일본의 수병들이다. 저자는 1904년 '르 마탱' 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는데, "그 해 4월 1일 밤 그는 러시아 수병들로부터 한 전투 이야기를 취재했다. 그 전투는 바로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두 열강이 벌인 최초의 제국주의 전쟁, 즉 러일전쟁의 서막을 연 제물포해전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특유의 문학적 필치로 기사화하여 신문에 연재하고, 이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는 게 책의 출간배경이다.

우리로서는 예기치 않은 역사적 사건에 관한 예기치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개를 좀더 옮겨오자면, "100여년 전의 문헌을 발견하여 번역한 이 책은 제물포해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사료 중 하나이자 유럽인의 (편향된) 시각에서 재현한 전쟁 기록이기도 하다. '제물포의 영웅들'을 만나게 된 과정, 그들과의 인터뷰, 제물포 해전 이후까지 이어지는 전쟁의 묘사와 지은이가 만난 러시아 수병들과의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교차하는 구성을 띠고 있으며, 외교문서와 여러 관련 자료로 제물포해전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러시아가 패배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반일친러의 시각에서 러시아 병사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지은이의 묘사,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임에도 한국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구성, 전쟁의 잔인한 참상에 대한 문학적이고 생생한 묘사 등으로 한국인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200쪽 남짓이니까 비교적 가벼운 분량인데, 사실 '제물포 해전은 이듬해 벌어지는 '러일전쟁'(쓰시마 해전)의 서막일 테니까 이 책 또한 그 서론쯤으로 읽힐 수 있겠다. 그럼, 본론은? 러시아쪽에서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띄는데, <러일전쟁사>(건대출판부, 2004)와 콘스탄틴 플레샤코프의 <짜르의 마지막 함대>(중심, 2003)가 그것이다. 후자는 출간당시 언론의 관심을 끈 책이지만 곧 잊혀진 듯하다.

저자는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협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쓰시마 해전'을 인류 역사상 세계 5대 해전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이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발틱함대의 길고도 험난한 항해와 순식간의 처참한 패배를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고. 물론 이 전쟁에서 일본은 승리하여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하고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반면에 러시아는 혁명의 불길에 휩쓸려 제국의 지위까지 위태로워지는 지경에 이른다(러시아제국은 크림전쟁(1853-56)에서의 패전 이후 이 또 하나의 이 치욕적인 패배를 겪으며 점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쪽 시각에 대해서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명문각, 1992)을 참고할 수 있다고 한다. 

 

 

 

 

세번째 책은 대서양을 건너와서 미국의 1920년대 풍경을 다루고 있는 F. L. 알렌의 <원더풀 아메리카>(앨피, 2006)이다. 책 자체가 '고전'인데,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좋았던 옛날;에 대한 기록"으로서 "1931년 출간된 이래, 수정과 증보를 거치면서 당대의 모순과 역동성에 대한 세밀화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고전적 저서"라고. 원제가 'Only Yesterday'인 국역본의 부제는 '미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대에 대한 비공식 기록'이다.  

소개를 부분적으로 옮겨오자면, 책은 "1918년 11월 11일 1차대전의 종결부터, '쿨리지Coolidge(후버Hoover) 호황'을 극적으로 붕괴시킨 1929년 11월 13일 주식시장 대폭락까지 11년간의 역사를 아우르며 무한한 낭만과 가능성이 살아 숨쉬던 미국의 청년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정숙한 여성과 신여성의 치마 길이 차이, 알 카포네(사진)가 들고 다닌 명함 문구 등 사소한 사건들로부터 당시 대중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를 읽어내고, 적색공포―스캔들에 대한 열광―매너와 도덕의 혁명―부자의 꿈―지식인의 반란―부동산 투기 열풍―대활황 주식시장―주식시장 대붕괴로 이어지는 한 시대의 거대한 그림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1920년대의 매력'을 생생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것. 국역본에는 원서에 없는 사진들이 1,000점 포함되어 이해를 돕는다고 한다. <제국의 부활>이나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 혹은 마이클 무어의 미국('더티 아메리카')과는 좀 다른 시대, 다른 모습의 미국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 무어가 되돌려달라고 하는 미국이 '원더풀 아메리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류하자면, 시대사이면서 문화사에 속하는 책인데, 같은 1920년대 초반 조선의 문화의 유행을 다루고 있는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 2003)를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도 있겠다. 한편, 러시아의 1920년대는 혁명 이후 신경제정책(NEP) 시기에서 스탈린 시대로 이행해가는 과도기였다. '원더풀 아메리카' 못지 않게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사의 거리가 될 텐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에 관한 책들은 소개돼 있지 않다. 톰슨의 <20세기 러시아 현대사>(사회평론, 2004)에서 그 뼈대 정도를 간추릴 수 있을 따름이다.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의 현장증언과 함께.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이 관통한 시대이기도 했던 1920년대...

 

 

 

 

네번째 책은 지중해로 넘어간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5인의 공저인 <지중해의 역사>(한길사, 2006)이 그것인데, 포괄적인 통사 형식의 지중해사는 처음 소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소개를 옮겨오면, "지중해를 둘러싼 장대한 문명의 변화상을 담아낸 역사서"로서, "프랑스, 이탈리아[구 로마제국], 그리스 등의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 오스만투르크를 비롯한 이슬람 세력과 아랍 국가 등 수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쳐온 역사가 방대한 분량으로 펼쳐진다. 충실한 구성으로 프랑스의 지중해 관련 수업과 강의에서 교재로 자주 선택되는 책이다." 즉, 지중해사 '교과서'라고 보면 되겠다.

지중해 문명과 관련한 국내서로는 국내 저자 13인이 힘을 모은 책,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한길사, 2005)가 있다. 김진경 교수의 <지중해 문명산책>(지식산업사, 1994/2001)과 진원숙 교수의 <지중해 문화사 이야기>(노벨미디어, 2003)도 관련서이고,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사랑의 풍경>(한길사, 2003)도 부제가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 가지 러브스토리'인 만큼 이 분야의 책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그렇게 꼽자면, 사제지간인 그르니에-카뮈의 지중해도 빠뜨릴 수 없겠는데,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한길사, 2003; 청하, 1990)은 그 기본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카뮈 전공자인 김화영 교수의 산문집 <행복의 충격>(책세상, 2001)도 <지중해, 내 푸른 영혼>(민음사)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듯하고, 그게 카뮈의 <결혼. 여름>과 함께 '지중해'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결정지은 듯하다. 거기에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1991)릉 얹으면 지중해에 대한 나의 '추억'은 거의 완성된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언제나 한 여름의 그 바다!..

 

 

 

 

<지중해의 역사>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책으로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구운몽, 2006)도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빈)에서 얻어진 지적·예술적·문화적 성취들을 탐구한 저작으로, 198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원제는 'Fin-de Siecle Vienna: Politics and Culture'이다.  

소개를 더 옮겨보면, "지은이는 '포스트니체 문화(post-nietzschean culture)', 즉 니체 이후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모델로 비엔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문학, 도시계획, 조형예술 등 각 분야에서 비엔나의 문화현상과 대표적인 인물들의 활동상을 역사가와 문화분석가의 입장에서 깊이 접근해 들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쓰여진 총 7개의 장은 각각의 개별적인 연구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가령, "압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비엔나 공간에서 일어나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표현한 건축가들, 자유주의의 몰락 속에서 발생한 표현주의 문화 등을 분석"하면서, "또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 아르놀트 쇤베르크(음악), 쿠스타프 클림트(회화) 등 '아버지에 대한 저항'을 기본 코드로 빈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지성인들을 다뤘다."

비엔나 건축에 대해서는 임석재 교수의 <추상과 감흥>(문예마당, 1995)이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는 두말한 건덕지도 없고, 쇤베르크 관련서로는 '아도르노와 쇤베르크'를 주제로 한 노명우의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문학과지성사, 2002)가 읽을 거리이다. 이 참에 새로 나온 클림트 화집도 구해보실 수 있겠다. 이 모두가 동시대 비엔나의 소산이라고 하니까 쟁쟁하기 그지 없다. 다만 거기에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빈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사상과 삶을 조명한 책", 스티븐 툴민의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이제이북스, 2005)를 더 얹으면 금상첨화겠다.  

 

 

 

 

당신이 비엔나까지 둘러봤다면, 이제 모국행을 서두를 때이다. 고종석의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 2006)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책은 "2005년 3월부터 1년간, '시인공화국의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묶"은 것으로 그 대부분을 읽은 터이지만, 책으로 묶어서 읽는 맛은 또 다르다. "우리 신문학 백년사에서 제 방 하나를 너끈히 가질 만한" 시인 50명의 시집을 한권씩 소개하는데, 이만한 연재가 우리 언론사에서 자주 있었던 것인가를 묻고 싶다. 내가 금요일은 뺀 평일에 한국일보를 주로 보는 것은 순전히 고종석 때문이라는 걸 굳이 고백해야 할까? 아마도 내년 이맘때쯤에는 고종석 버전의 <말들의 풍경>도 출간될 것인바, 그런 일만으로도 나이먹는 일의 허망함이 절반은 상쇄된다고 말하고 싶다(나머지 절반의 허망함은 각자가 누리도록 하자).

거기에 덧붙여, 김윤식 교수의 새 평론집 <작가론의 새 영역>(강, 2006)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그밖에 책에 관한 책들, 곧 <읽는다는 것의 역사>(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마티, 2006), 그리고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2004)의 저자 최종규의 <헌 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은 도대체 책이 무엇인관데, 란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 책들이겠다. 그런 질문들에 미처 답하지 못하더라도 <조선 최고의 명저들>(휴머니스트, 2006)는 놓치지 말아야겠다. "<조선왕조실록>, <열하일기>, <난중일기> 등 조선시대를 대표할만한 14개의 명저들을 소개"하면서, "기행문과 일기, 보고서, 문집 등 국보급 기록에서 당시 민중 사이에서 즐겨 읽힌 베스트셀러까지, 각 문헌의 주요 내용과 그에 얽힌 역사적 배경, 당대인들의 사상과 문화적 깊이를 살핀다"고 하니까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06. 04. 05 - 06.

P.S. 부록으로 클림트의 (가장 잘 알려진) 그림 '키스'를 이 자리에 옮겨놓는다. 책읽기에 지친 영혼들께서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용맹정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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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8 00:25   좋아요 0 | URL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다라는 말에 다소 의외였었는데 이 책을 보니까 그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다치바나가 말한 것은 '상대적' 바보였던 것이지요. 동경대 전공투의 말이 다소 매끄럽진 않지만 서양 철학, 특히 현상학을 섭렵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말들이였습니다. 일본 대학생이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68혁명에 동참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런 지적 기반이 있지 않았나 새삼 생각했습니다.

로쟈 2006-10-28 00:50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구입도 못한 책인데요(^^;)...
 

집에 인터넷이 개통된 지 일주일만에 '주간 서재의 달인'의 되어 어제 5,000원의 적립금을 받았다. 31등을 목표로 한 '서재질'이긴 했지만 대번에 20위권 안으로 진입하게 되어 좀 머쓱했다(더불어 느낀 건 약간의 우쭐함과 함께 '배신감'이었다. 남들은 이런 '허접한' 일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친 때문). 어제 거기에 대한 감상을 '알라디너의 길'이란 제목의 페이퍼로 썼는데, 등록하기를 누르는 순간 먹통이 되더니 날아가버렸다. 나의 '뼈저린 반성'과 함께(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를 패러디한 반성문이 어제 쓴 글의 골자였다). 여하튼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쓴다. 내용이 그대로 보전될 리는 물론 없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책 이야기들을 좀 내뱉음으로써 나대로는 '청결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자는 게 페어퍼들을 올리는 기본 취지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유난스러워 보일 만도 하고('이 사람'을 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젠 적립금 '수혜자'까지 돼 버렸으니 발뺌도 못하게 됐다. 지난주부터 집에서 야심한 시각에도 서재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된 탓에 얻게 된 장점은 '진행중'인 글을 거의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그건 내심으로 내가 가장 부듯하게 생각하는 것이다(물론 예전에 '진행중'이라고 미뤄놓은 글들이 채무처럼 아직도 꽤 남아있지만).

 

하지만, 이런 시간투자는 다른 일들(특히 생계!)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당연 든다. 한데, 문제는 나날이 늘어나는 '수거물'들이다. 거의 처치 곤란한 수준이다. 떠오르는 단상들과 참견들을 긁어모으면 매달 책 한권 분량은 적어내려갈 듯하다. 하니, 취지야 그럴 듯하다고 쳐도 방도는 좀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다시 읽는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들 넣어주는 바람뿐

 

 

나는 이런 식의 과장된 수사나 자기 비하에 공감하는 바가 거의 없다. 거기에 모든 게 걸려 있지 않다면, 그냥 후회의 포즈에 불과하기 때문에. '폐허'를 간직하고 있다지만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조직위의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보여준 공로로 얼마전 문화훈장까지 수상한 황지우 시인은 올해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입생들 맞으면서 그가 '공인'으로서 건넨 축사의 일부는 이렇다고:

 

“바람둥이 제우스가 앙앙대는 부인 헤라와 부부 싸움을 하다가, 패기 시작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가정 폭력의 원조였다.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대드니까, 제우스는 아들을 발로 차버렸다. 하늘 끝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가 됐지만, 그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다. 무릇 예술가란 어딘가 눈에 띄는 결함이나 결핍이 있다. 예술가는 견딜 수 없는 결핍 속에서 위대한 무엇을 해낸다. 여러분도 자신의 결함을 자신의 특징으로 ‘잇빠이’ 키워라.”(강조는 나의 것) 

 

 

 

 

 

 

 

 

  

여기서 총장님 말씀에 끼어든 '잇빠이'가 시인의 표징이자 자존심이다. 더불어 처신에 대한 그의 자기 정당화이다. 또한 더불어, 이 예술가론은 막바로 그의 시론이기도 하다는 걸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뼈아픈 후회'는 그 자신의 사소한 '결함'을 '잇빠이' 뽑아낸 게 아닐까? 연이어 공직을 맡게 된 시인의 소감은 이렇다: “인생 ×됐다. 몽골 초원에서 양떼를 키우며 살고 싶었는데, 또 덫에 걸려 시간을 차압당했다. 지금 몽골의 내 양떼들이 눈을 맞으며 흩어져 있을 텐데….” 그 양떼들이 아마도 시인/총장 황지우가 또 '잇빠이' 키우고 있는 자신의 내밀한(공공연한) 판타지일 것이다. 게눈 속의 연꽃처럼. 아래는 시인/총장 황지우.

 

  

여하튼 그의 '뼈아픈 후회'를 본받아 '뼈저린 반성'을 산문적으로 해보자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책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책들, 어딘가 몇 군데는 찢기고 해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책들의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책탐에까지 끼어들어오지는 못했다(오, 숱한 구박이여!).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아빠는 자기 생각만 해!")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이어지는 운문.

 

책에 묻혀 아무도 사랑해 볼 틈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저린 반성은 바로 그거다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철없는 욕심에

내가 자청한 책사기는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잔소리 없이는 들어오지 않는 나의 서재

다만 죽은 저자들의 머리맡에 가라앉는 책먼지뿐.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알라디너의 길이옵니까?!

 

06. 04. 04.

 

P.S. 얼마간 예상했던 것이긴 한데, 오늘(04. 05)로써 서재를 즐겨찾는 분이 600명에 이르렀다. 300명을 넘어선 지 대략 9개월만이다. 과거에도 혼자서 자주 써오던 '독서일기'였지만, 본의 아니게(나는 알라딘의 '고객'이었을 뿐이었다!) '나의 서재'라는 블로그를 갖게 된 이후에는 다른 이들의 이목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즐겨찾는 분들의 1/3 가량은 '로쟈'에 대한 이런저런 '비호감' 때문에 서재를 찾는 '적들'이 아닌가 싶고, 반대로 1/3 정도는 소극적으로라도 로쟈를 지지/응원해주시는 '우군'들이 아닌가 싶다. 어느 경우이든, 그리고 언제든 나는 배울 준비가 돼 있다(나의 '수다'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다). 즐겨 찾으시는 만큼 즐겨 꼬집어주시고 가르쳐주시길 기대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알라디너 모두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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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4-0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아가버린 것'은 허망합니다. '날아가버린 것'은 더이상 로쟈님의 것이 아니니 넘 미련두지 마셔요....^^;

twoshot 2006-04-0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5천원...5천만원도 아니고 5천원 아니겠습니까. 요새는 시집도 6천원이니까 별 도움은 안되겠군요. 그냥 사막을 건널때 낙타에게 물 한모금 먹이면 되겠네요...그리고 낙타를 잡아먹어야 하는건가...쿨럭..

2006-04-04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4-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흔한 일인데요, 뭐.
marcus님/ 낙타들은 당연히 먹어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면!
**님/ 제딴엔 가벼운 수다들이 '무게중심'을 잡는다시니까 제가 무게 좀 잡겠습니다. 한데, 지금 타고 계신 건 뭔가요?^^

마늘빵 2006-04-0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천원 받을 만한 자격 충분해요. 저 방금 로쟈님한테 땡스투 두 개 눌렀어요. 잘했죠?

로쟈 2006-04-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잘 하셨습니다.^^

로드무비 2006-04-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밑줄 쫘악.^^


연우주 2006-05-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늦은 댓글이지만 글 너무 좋은데요? 황지우 시집 검색하다 찾았습니다. 와우! 패러디 글도 너무 좋습니다.

2006-06-17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6-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력이 안됩니다.^^
 

 

 

 

 

낮에 강의중에 러시아식 꼬치구이인 '샤슬릭' 얘기가 잠깐 나왔다. 불현듯 샤슬릭 고기맛이 그리워지기도 해서, 하지만 당장 얻어먹을 방도가 없기도 해서, 그와 관련한 글과 이미지로 그리움을 달래기로 한다. 조재익 기자의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의 한 절은 '늘씬한 미녀 베료자'란 제목을 달고 있는바, 일부 내용을 옮겨놓으면서 몇 마디 덧붙인다(나머지 책들의 이미지는 관련서라는 명목으로 '그냥' 옮겨놓았으며, 베료자나 샤슬릭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저자는 서두에서 베료자(자작나무)에를 노래한 시들 몇 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빠져 있지만 아마도 가장 최신 버전은 러시아의 '국민밴드' '류베'의 음반 중에서 국내에 유일하게 출시된 걸로 보이는 <다바이 자...>(아울로스, 2003)의 머릿곡 '자작나무'일 듯하다(<한국인이 좋아하는 러시아 로망스 베스트2>에도 들어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즐겨듣는 러시아 음악이 이 류베의 노래들인데(몇몇 노래들은 질리도록 듣는다), 멤버들의 모습은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앞의 '깍두기'가 리드 보컬인 니콜라이 라스토르구예프이다. 

"러시아의 자작나무는 왜 그토록 바스락거리는지?"란 가사로 시작하는 서정적인 노래이다(http://www.youtube.com/watch?v=qd4y0dtXOyw). "여성의 이름 같은 이 베료자가 바로 러시아 여성을 상징하는 나무다. 여성 가운데서도 젊은 아가씨 또는 처녀의 상징이다. 굽지 않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 늘씬한 몸메가 러시아 여성 몸매와 같고, 하얀 몸통은 러시아 여성의 뽀얀 살색, 살결과 같다는 것이다. 거기에 버드나무처럼 치렁치렁한 베료자 가지는 또 러시아 여성의 긴 머릿결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여성들은 베료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랑스러워 한다."(70쪽) 책에는 여름날의 아름다운 베료자 나무숲 사진이 실려 있는데(71쪽), 나는 겨울숲의 이미지를 아래에 옮겨놓겠다.

베료자와 관련한 러시아 전통과 축제에 관한 내용들이 책에는 더 포함돼 있는데, 아주 크게 잘 자란 베료자는 신목(神木)으로 받들어지기도 했다는 것 정도만 언급해둔다. 마음은 젯밥에 더 가 있기 때문에. 다만, 베료자 가지와 잎을 엮어서('베닉'이라 한다) 러시아식 사우나에서는 등이나 배, 다리를 두드려 마사지 효과를 내는 데 사용했다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미할코프의 영화 <위선의 태양>에서의 '사우나 장면'을 상기해보시라) . 아래 사진에서처럼 사우나에서 '베닉'으로 서로 쳐주기도 한다. "나뭇잎 향이 그윽하고 좋아서 사우나실의 땀 냄새를 제거하는 데도 그만"이라고.

그리고, 또 베료쟈의 중요한 용도는 샤슬릭을 굽는 데 숲으로 쓰는 것이다. "가장 러시아적인 음식인 샤슬릭은 쉽게 말하면 꼬치구이다. 양고기나 돼지고기를 성양갑 크기로 썬 다음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운 것이다." 샤슬릭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신선한 고기이겠지만, "그 다음은 숯불이 중요하다. 샤슬릭을 굽는 데 가장 좋은 숯 재료는 포도나무 줄기이다. 다음은 아카시아 나무, 산딸나무, 너도밤나무, 그리고 오크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베료쟈 나무다. 가장 흔하게 숲에서 구할 수 있는데다가 그 향이 은은해 샤슬릭 맛을 최골 만들어준다."(76쪽) 그럼, 이제 맛은 못 봐도 구경이나 좀 해보도록 한다.

샤슬릭은 야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구워먹는 것이 제 격이지만(<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의 소풍 장면에서처럼) 러시아 음식점이나 주점의 주요 메뉴이기도 하며, 주문할 경우 대략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그걸 러시아산 맥주 '발티카'('발찌까')와 함께 먹어주시면 되겠다. 특히 여름날에!..

끝으로, 샤슬릭 에티켓을 덧붙인다: "샤슬릭 요리를 할 때 러시아에서는 고기를 양념에 재고 숯을 준비하고, 고기를 굽고 식탁에 차리는 것까지 모두가 남성 몫이다. 여성들은 그저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샤슬릭을 바라보며 군침만 삼키다가 다 구워진 샤슬릭을 먹기만 하면 된다. 이 샤슬릭을 만드는 남성들이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다. '고기를 구울 땐 여성을 대하듯 하라.' 절대 서두르지 말 것,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샤슬릭을 구우라는 것이다. 여성을 대하듯 쉼없이 고기에 관심을 보일 것이며 주의를 기울이고 인내할지어다. 비록 숯불 매운 연기에 코가 맵고 눈이 매울지라도 샤슬릭 고기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것이다."(76쪽) 세상에 인내 없이 되는 일이란 없는 법이다...

06.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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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4-0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합정역 근처의 '러시아 문화의 집' 2층 루슬란에서 샤슬릭을 먹었습니다. 그게 러시아에서 먹는 제대로 된 샤슬릭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좀 퍽퍽하던데요.

로쟈 2006-04-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샤슬릭이 맞습니다. 한데, 우리의 갈비도 그렇지만 문제는 '러시아'가 아니라 (신선한)'고기'겠지요. 맛은 제 입맛에도 우리 갈비가 더 좋습니다. 그저 가끔은 별미가 그리운 법이지요.^^
 

 

 

 

 

'4월은 잔인한 달'이란 구절은 물론 T. S.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1922) 서두에 나오는 것이면서, 이제는 4월이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시구이다. 흔히 프란츠 카프카 문학의 위업을 말하면서, 그가 26개의 알파벳 중에서 'K'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작가라 평하기도 하는데(그건 셰익스피어도 하지 못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엘리엇은 자신의 이 명구절 때문에 일년 12달 중에서 4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쩐지 4월에는 그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 특히나 시 애호가나 시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이에 견줄 만한 노래로는 딥퍼플의 'April'과 사이먼&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 정도가 떠오른다).

가령, 정은숙 시인의 한 칼럼도 이런 식이다: "내게 봄은 엘리엇과 함께 온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이 시인의 절규가 생각난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는 이 시인의 ‘황무지’ 일절은 내게 봄이라는 계절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열(身熱)처럼 그렇게 봄은 다가오는 것이다." 굳이 신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도 봄은, 특히 4월은 엘리엇과 함께 온다(몇년 전부터는 장국영(1956-2003)과 함께 온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아졌겠지만, 이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읽기/쓰기에 관한 빽빽한 일정들이 달력에 표시돼 있는 4월의 '잔인함'을 확인하노라면 새삼 엘리엇의 시구는 아직도 생생한 '현실'이다. 

"응, 요즘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고 있구나." 그리고는 처음 서두의 몇 줄을 읊어댄다. 그런 식으로 과거에는 청소년 드라마에서도 종종 대사로 나오기도 했던 대목을 여기에 옮겨본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내가 읽은 번역은 황동규 시인/교수의 번역이지만, 현재 엘리엇 관련서들은 모스크바에서 구한 영-러 대역본 선집을 제외하곤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라 인터넷에 떠도는 걸 가져온 인용 번역은 출처를 알 수 없다. 하여간에, 이 자리에서의 요는 'APRIL is the cruelest month'라고 한번 읊조리듯 읽어주는 것이다(엘리엇의 낭송도 인터넷에는 떠다닌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직역하자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사실 이건 너무 잔인한 표현인데, 1-12월이 모두 잔인하지만 그 중에서도 4월이 가장 잔인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로선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게 아니라 그냥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푸념을 좀 늘어놓은 다음에 좀 기다렸다가 '5월은 푸르구나!'로 넘어가는 게 낫겠다.      

 

 

 

 

요즘은 그런 거 같지 않지만, 예전엔 시인이라면 <황무지> 정도의 '난해시'는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했다. 작고한 구상 시인의 <현대시창작입문>(현대문학, 1989)에서도 시인의 기본 교양으로서 황무지 읽기와 해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이채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상식이 돼 있지만, 여하튼 <황무지>를 읽기 위해서는 엘리엇이 많은 영감을 얻어왔다다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정도는 미리 읽거나 같이 읽어줘야 한다(엘리엇 왈: "나의 <황무지>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시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성배 찾기와 어부왕 전설 등에 관한 유용한 연구를 담고 있는 제시 웨스턴의 <제식에서 로망스로>(문학과지성사, 1988)도 교양 필독서이다. <황무지> 정도를 읽고 토론하는 정도는 '교양' 범주에 속한다고(주석본 읽기를 포함해서) 거기에 동의할 만한 독자들은 갈수록 줄어들 듯하다(<황무지>가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학부 2학년 때 비교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T.S.엘리엇과 한국문학'이란 주제의 팀발표를 맡은 인연도 있고 해서 엘리엇에 관한 자료들은 국내의 연구서들을 포함하여 나름대로 갖고 있지만 영문학도도 아닌 데다가 현재 자료들을 열람할 만한 여건도 아니어서 더 아는 체하는 대신에 여기서는 신정현 교수(서울대 영문과)의 '고전해제'(동아일보, 2005. 06. 02)를 옮겨오도록 한다. 다만 강조는 나의 것이다.   

T.S. Eliot

 

 

 

 

 

 

-1922년에 발표된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20세기 현대 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잃은 서구인의 자화상이다. 20세기의 기술혁명을 바탕으로 치러진 1차 세계대전은 양측 군인 사상자만 3500만 명에 이르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얼마나 더 참혹하고 처절했던가? 작가는 시를 통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를 자신의 머리 위에 쓴 사람들의 죽은 영혼을 해부하고 있다. 누구일까? 그리고 무엇일까? 북러시아의 들쥐처럼 집단자살의 충동에 시달리며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문명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은? 인간에게 내린 신의 축복, 문명을 생명이 깃들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든 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20세기 최대의 시인 엘리엇은 섬뜩한 이미지와 푸가풍의 반복적이고 다음성적인 리듬으로 끊임없이 이 물음을 곱씹고 있다.  

-황무지란 원래 생명이 서식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지만, 이 시에서 황무지는 생명이 깃들 수 없는 문명을 뜻한다. 그렇다면 20세기 문명은 왜 생명을 잉태할 수도, 생명을 길러 낼 수도 없게 되었나? <세티리콘>에서 따온 이 시의 서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열쇠다. 늙어 쪼그라들어 작은 병 속에 갇혀 추녀 끝에 매달려 살게 된 무녀 시빌에게 한 아이가 묻는다. “시빌, 너 무얼 원하니?” 시빌이 대답한다. “나는 죽고 싶어!”  

-아폴로 신은 무녀 시빌을 총애해 어느 날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빌은 먼지 한 줌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먼지알만큼 많은 삶을 내게 주십시오.” 그녀는 젊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먼지알만큼 많은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무한히 오래 살고 싶었을 뿐, 젊음을 재창조하며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시빌의 모습과, 그저 많은 문명의 이기는 원하지만 그곳에서 행복과 희열을 얻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현대 서구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20세기를 넘어서면서 맞닥뜨린 문명의 막다른 골목에서 엘리엇은 서구인의 삶에 서린 ‘무한한 늙음’과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 버린 깊은 절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한 것은 그 절망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함이었다. 시빌의 절망에는 아직 희망은 있다. 그녀는 죽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재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절망에는 희망이 없다. 그 황폐한 정신을 가지고 죽음을 피해 다닐 뿐, 재생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황무지에 등장하는 겨울에 따스함을 쫓아 남쪽으로 가는 유한계급의 사람, 종교적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 문명의 값진 유산을 허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류계층 속물,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성(性)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는 방탕한 여인, 상업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장사치, 구원의 기사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거리의 여인 등 수많은 인물은 모두 황폐한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않는,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은 생명이 깃들 수 없는 황폐한 문명에 붙여진 것임과 동시에 젊음의 재창조가 없는 영겁의 삶에도 두려움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황폐한 정신에 붙여진 것이다.

덧붙여서, 역시나 동아일보(1996. 04. 28)에 게재됐던 엘리엇 관련기사를 옮겨온다(필자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의 전기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서 유익하다.

-미국 미네소타대는 지난 56년 4월 30일 한 시인의 강연회를 위해 대학 전용 축구장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이날 모인 청중은 1만 5천여명에 달했다. 강연회의 주인공은 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시인 T.S 엘리엇(1888∼1965). 그는 이날을회상하며 "거대한 투우장으로 들어가는 투우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강연 모습은 서구문학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문인들에게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한 사람만을 고르라면 바로 엘리엇이 선택될가능성이 가장 높다. 금세기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그의 시 <황무지> 때문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


-5부 4백 33행으로 이뤄진 <황무지>는 딱 떨어지게 해석되는 시가 아니다. 1차대전 후의 '시대적 환멸과 허무사상'을 노래한 시라고 하는가 하면 '현대문명의 불모성'을 노래한 시라고 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불교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엘리엇 자신은 이같은 해석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쓴 시'에 불과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다면성을 갖춘 <황무지>는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지난 22년 출판된 후 새로운 시의 대명사로 통해왔다. 다양한 인용과 다채로운어법등을 통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기법의 시세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대학 창립자이자 목사였으며 엘리엇은 엄격한 가풍 속에 방종과 쾌락을 멀리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로 자라났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철학에 빠져들어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된다. 그는 1908년부터 런던에서 머물렀는데 미모의 무용수 비비언 헤이우드를 만나 결혼했지만그녀의 정신질환으로 결혼생활은 불행하기만 했다. 그는 1917년부터 9년간 로이드 은행 행원으로 일하면서 격무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큰 비약을 했다. 1920년 최초의 비평선집 <신성한 숲>을 펴내 비평가로서 위치를 확립했다. 여기서 그는 시란 시인의 개성을 떠난 독자적인 생명체라는 '개성 배제의 시론'과 시인의 감성은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돼야 한다는 '객관적 상관물' 이론을 펼쳤는데 이는 이후 구미비평계를 휩쓴 '신비평'의 기초가 됐다.

 

-엘리엇은 출판편집인으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그는 문예지 <크라이테리언>의 편집책임자로서 로렌스, 조이스, 헉슬리 등의 글을 실었으며 대형출판사 '페이버'사의 편집이사로서 역량있는 신인들을 발굴했다. 한편 그는 극작가로도 활약해 <성당의 살인>, <가족의 재회> 등의 시극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엇 문학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였다. 그는 8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 43년 장시 <네 사중주>를 출간했다. 영문학계에서는 엘리엇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것은 <황무지>이지만 그를 대표하는 걸작은 <네 사중주>로 보고 있다. 초기 시의 난해성을 극복하고 통일된 구조와 안정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원숙한 작품이라는 것. 엘리엇에게 노벨문학상수상을 안겨준 것도 <네 사중주>였다.

 

 

-노벨상 수상 이후 그는 잇따르는 상훈(賞勳)속에 비서였던 39세 연하의 발레리 플레처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06. 04. 02.

P.S. 엘리엇에게 4월맞이 '눈도장'을 찍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각자의 '잔인한 4월'과 맞닥뜨려야 할 시간이다. 그 시간이 '시간의 재(Ashes of Time)'가 될 때까지 <동사서독>(1994)의 구양봉(장국영)처럼, 머리 풀어헤치고(혹은 새로 밀고서) 떠날지어다. 이크, 적들은 벌써 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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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무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03 00:46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루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시와 함께 관련논문을 10편쯤 읽고서 작성한 것이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이해의 가닥을 나대로 잡을 수 있었다. 제목엔 '깊이 읽기'란 말이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깊이 읽기'를 위한 심호흡이자 워밍업 정도이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물론 더
 
 
산손 2006-06-0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티리콘 ㅋㅋ 왜 모든 걸 영어식으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것도 간단히 찾아보면 되는 데 ;; 여담으로 원래 <사티리콘 Satyricon>에서 인용한 어구 대신에 엘리엇이 붙이려고 했던 건 콘라드 소설 속 화자가 커츠 죽는 걸 이야기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마지막 부분이 horror! horror!) 에즈라 파운드 씨가 딴지 걸어서 바꿨다고 하네요. 이미 알고 계신지도 ;; 저기 사진에 있는 'annotated'에 나와 있습니다.

로쟈 2006-06-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자들의 '티내기'죠. 그 정점은 <옥스포드 영문학사>일 겁니다. 'horror, horror...'는 <어둠의 속>을 원작으로 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브란도(커츠)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합니다.
 

 

 

 

 

"대개 프로이트의 범성욕주의(pansexualism)라고 말해지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하든 간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항상 그것에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의미의 궁극적인 지평은 성행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진짜 눈물의 공포>, 304쪽)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서 지젝이 (각주에서) 도입하고 있는 것은 한술 더 떠서 그러한 범성욕주의적 관점으로 근대철학사를 재기술하는 것이다: "성관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궁극적인 준거점으로 받아들이면 근대철학사 전체를 그런 용어들로 다시 쓰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지젝의 각주16)은 국역본 319-320쪽, 원서 204-5쪽에 나온다). 

이럴 경우 만우절 행사를 겸하여 지젝의 '진지한' 농담을 옮겨놓고 잠시 음미하고픈 유혹을 나는 느끼게 된다. 번역은 필요할 경우 약간씩 수정하기로 한다(국역본에서 점잖게 '성교'라고 옮겨진 'fuck'를 나는 비속어에 걸맞게 '빠구리'라고 옮기려다가 체면을 생각해 참아두었다. 읽으시는 분들이 알아서 요령껏 읽으시길 바란다).

  

-데카르트: "나는 성교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강렬한 성행위 속에서만 내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한다는 말씀이며, 이것을 라캉식으로 탈중심화하면,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성교하며, 내가 성교하는 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될 것이다. 즉, 성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것이 성교한다'는 것.

-스피노자: 성교로서의 절대자(coitus sive natura) 안에서 우리는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 간의 구별에 따라, 능동적으로 성교하는 삽입과 성교를 당하고 있는 대상을 구별해야만 한다. 세상에는 성교를 하는 자와 성교를 당하는 자가 있다.

-의 경험론적 회의: 우리는 하나의 관계로서 성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오직 그 움직임들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대상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회의주의적 위기에 대한 칸트의 대답: "성교의 가능조건이란 동시에 성교 대상의 가능조건이다." 

-피히테는 이러한 칸트의 혁명을 급진화한다: 성교는 스스로를 성교하는 자와 성교를 당하는 대상으로 나누는 자기-정립적인 무조건적 행위이다. 그 대상, 즉 성교를 당하는 자를 정립시키는 것은 바로 성교하기 그 자체이다.

-헤겔: 성교를 단지 실체(우리를 압도하는 실체론적인 충동)로서만이 아니라 주체(정신적 의미의 맥락에 포함돼 있는 반성행위)로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 관념론의 자위행위적 철학하기에 맞서 우리는 진짜 성교행위로 회귀해야만 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쓴 것처럼, 진짜 실제 삶이 철학에 대해 갖는 관계는 진짜 성교가 자위행위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니체: 의지란 그 가장 근본에 있어서 성교에의 의지(Will to Fuck)로, 그것은 '나는 좀더 원한다'라는, 즉 영원히 계속되는 성교라는 영원회귀에서 정점에 달한다.

-하이데거: 기술의 본질이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성교의 본질은 단순히 존재적 행위로서의 성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성교의 본질은 본질 그 자체의 성교이다.' 즉, 우리의 존재이해를 성교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만이 아니다. 본질 그 자체가 이미 교접하고 있다.(*'fuck'에는 망가뜨리다란 뜻도 있으며 국역본은 그렇게 옮겼다.)

-끝으로, 본질 자체가 어떻게 이미 교접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라캉의 "성관계 같은 것은 없다"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진부한 이해에 반대하여, 프로이트적인 혁명은 바로 그와는 정반대의 제스처에 놓여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전체 우주를 '성화'하여 우주의 기본구조를 남성적인 원리와 여성적 원리, 곧 음과 양간의 긴장으로 보고, 그러한 긴장이 심지어 다른 더 높은 수준(빛과 어둠, 하늘과 땅)에서 반복되기 때문에 현실 자체가 이러한 두 원리의 우주적 성교의 결과로 등장한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전-근대적인 이데올로기적 세계에서이기 때문이다"(304쪽)

-"프로이트가 이룩한 것은 바로 세계의 근본적인 탈성화(desexualization)이다. 정신분석학은 세계의 근대적인 '탈주술화'로부터 궁극적인 결론을 끌어내는데, 그 결론이란 이 세계는 의미없고 우연적인 다수(the universe as a meaningless, contingent multitude)라는 관념을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다른 일상적인 일들을 하고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가이다."

-"'성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개념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는 동안, 즉 우리가 성행위에 참여하는 동안 어떤 환상적 보충을 필요로 하며 다른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야(환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305쪽) 다르게 말하면, 두 사람이 성교할 때 각자의 환상적 보충물까지 거기에 끼여들기 때문에 언제나 넷(적어도 셋)이 성교하는 게 된다. 그게 '성관계는 없다'의 의미이다! 

만약에 그런 환상적 보충물이 결여된다면, 차이밍량의 <흔들리는 구름>에서와 같은 '삭막한' 성교, 곧 'fucking as the real'이 될 것이다. 영화를 곧 보기는 해야 할 텐데...

06.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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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0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