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이 글은 2003년 4월초에 씌어졌다) 나온 책들 혹은 눈에 띈 책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나 그린비에서 나온 고전 리라이팅 시리즈이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권용선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3권이 1차분으로 먼저 나왔는데, 기획으로서는 책세상의 우리시대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먼저 산 책은 <니체의 위험한 책>이다. 아마도 정서적인 친화성 때문일 텐데, 이 책은 니체 입문서로서 아주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니체에 대한 저자의 사랑 혹은 우정이 아주 잘 전달된다. 요컨대 저자는 도체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라도 누구든지 니체에 '감전'될 만하다. 책의 말미에는 '니체를 알고 싶을 때 도움이 되는 책들'이란 제목으로 니체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유익하다. 여러 책들 가운데, 저자가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오이겐 핑크의 <니이체 철학>(형설출판사, 1984)(저자는 <니이체의 철학>이라고 오기하고 있지만)과 네하마스의 <니체-문학으로서의 삶>(책세상, 1994)이다.

 

 

 

 



 

 

 

네하마스의 책은 나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지만(특히 영원회귀에 대한 해석), 하기락 선생이 옮긴 오이겐 핑크의 책은 몇년 전 한창 찾을 때 구하지 못했던 책이다. 최근에 도서관 장서들을 검색해 보니까 일부 도서관들에 책이 소장돼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저자가 최고의 책으로 꼽는 것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민음사, 1998, 이 책은 인간사랑에서도 <니체, 철학의 주사위>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이다. 고미숙과 권용선의 책은 여유를 두고 읽을 작정이다(*나중에 사두긴 했지만, 아직은 탐독하지 않았다).

 

 

 

 

 

 

 

 

 

'러시아 형식주의'를 유럽(프랑스)에 최초로 소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불가리아 출신의 문학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산문의 시학>(예림기획)이 번역돼 나왔다(*토도로프에 관해서는 이전에 다룬 바 있다). 토도로프를 아는 이라면, 그거 번역이 있지 않어? 란 생각이 들텐데, 맞다. 지난 92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산문의 시학>이라고 번역돼 나왔고,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두 번역본의 차이점은 전자가 불어 원본의 번역이고, 후자는 영역본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영역본에는 조나단 컬러가 쓴 서문이 들어가 있고, 불어본에는 영역본에 빠져 있는 '형식주의가 남긴 방법론상의 유산'이 1장으로 들어가 있다(그래서 더 두껍다). 참고로, 이 <산문의 시학>에는 아주 난해한 20세기 러시아 시인 흘레브니코프에 대한 글도 한편 실려 있다.

 

 

번역은 새로 나온 예림기획본이 더 낫다. 문예출판사본은 연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인데(역자는 신동욱 교수로 돼 있다), '시제'를 '시대'로 '인칭'을 '인물'로 번역하는 식이다. 멀찍이 두고 읽는다면 눈에 띄지 않겠지만, 정독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책. 그렇다고 해서 예림기획본이 맘에 드는 것도 아니다. 흔히 narrative의 의미를 갖는 불어의 'recit'를 역자는 생경하게도 '술화'라고 옮겼다. 술화는 페터 지마 번역자들이 'discourse'를 옮기던 말이다. 어쨌든 울며 겨자먹기로 사두긴 했다.

 

 

 



 

 

 

 

두어권이 나오다 만 '토도로프 선집'을 비롯하여 토도로프의 책은 국내에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고, 10년쯤 전에는 방한하기도 했지만, 나의 견식으론 그에 관한 단행본 연구서가 국내는 물론 구미에서도 나오지 않은 듯하다. 다소 과소평가되는 듯한 기분인데, 60년대 문학적 구조주의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만을 먼저 지적해 두기로 한다. 특히 언어학적 전회 이후 언어학과 문학과의 관계를 질문하는 데 있어서 그에 대한 참조는 필수적이다. 참고로, 이 주제에 대한 국내 저작으론 고대 김인환 교수의 <언어학과 문학>(고대출판부, 1999)이 있다.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분량은 아니지만 호기심은 북돋아준다.

야콥슨의 실어증론을 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 적용시켜본 문홍술의 <한국모더니즘소설>(청동거울)도 출간됐다(오늘 서점에서 눈에 띄길래 샀다). 특별히 저자를 신뢰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문학 단행본 연구서를 즐겨 사보는 편도 아니지만, 방법론에 관심이 가서 구입한 것. 역시나 야콥슨의 방법론을 원용한 한국시 연구서로는 권혁웅의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깊은샘, 2001)이 있다.

 

 

 

 



 

 

 

독일철학자 프레게의 <산수의 기초>(아카넷)가 번역돼 나왔다. 프레게는 후설과 비교되는 수리/논리 철학자로서 흔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분석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며 언어학(의미론)에서도 곧잘 언급되는 인물이다. 프레게에 대해서는 안토니 케니의 <프레게>(서광사, 2002)가 출간돼 있고, 박이문의 <현상학과 분석철학>(일조각, 1990)이 참고할 만하다(아주 쉬운 입문서이다). 참고로, 철학자 김재권 교수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이 아닌) 프레게를 꼽은 바 있다.

 

 

 

 

 


 

 

 

 

번역된 고전 몇 권. 부조리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민음사)가 번역돼 나왔다. 표제작과 <수업><의자> 3편이 묶여서 나왔는데, 흔히 그의 反연극 3부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다(물론 기존 번역들이 있긴 하다).

 

 

 

 

 

 

 

 

 

그리고 괴테의 <색채론>(민음사)이 괴테 전집의 일환으로 번역돼 나왔다. 일종의 과학론인 이 책은 괴테의 책으로는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고 한다.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단편 4개가 <유리 학사>(문학과지성사)란 제목으로 묶여서 출간됐다. <모범소설집>이란 그의 단편집에 실린 12편 가운데 4편을 고른 것이라고 하는데, 그 전편이 번역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바로 그달에 <세르반테스 모범소설>이 두 권짜리로 출간됐다).

막간에, 베르테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최근 문학동네에서 나온 <독일문학의 장면들>이란 책에선 '젊은 베르테르'를 '젊은 베르터'로 표기하고 있다. 나는 원래의 독어 발음이 '베르터'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같은 번역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말의 '베르테르'에는 '베르터'가 갖고 있지 않은 문화(사)적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를 읽노라!"). '베르터'란 이름은 실연으로 상심하기엔 너무 사무적인 이름이다(마치 무슨 하인의 이름같다).

 

 

 

 



 

 

 

쿤데라와 조금 관련있는 책으로 외대 체코어과 김규진 교수의 <체코현대문학론>(월인)이 출간됐다. 쿤데라와 보후밀 흐라발 등 20세기 체코 문학의 거장들에 대한 리뷰성 글들이 실려 있다. 좀 다른 책이지만, <한국신소설선집>(서울대출판부)도 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10권짜리로 기획돼 있고, 이번에 두 권이 나왔다(*계속 나오고 있다).

 



 

 

 

 

 

 

끝으로 읽을 만한 교양과학서.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신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궁리)를 읽어볼 만하다. 부제는 '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남자와 여자'이다. 최교수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윌슨부터 사사한 정통 사회생물학자이고, 곤충과 거미류의 짝짓기에 대한 연구서를 영미의 권위있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바도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2001),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 2001) 등의 칼럼집들이 다소 짧은 글들을 모아놓아 아쉬웠는데, 이번에 좀 긴 글들이 실려 있어서 반갑다.

 



지젝 관련 소식으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지젝이 4권으로 편집한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작년말에 Routledge에서 나왔다(바로 도서관에 주문했었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는 건 그때 얘기고 오래전에 이미 복사했다). 부제는 Critical Evaluations in Cultural Theory이고, 4권짜리인데, 1600여쪽에다 책값은 100만원 상당. 지젝만을 다룬 최초의 단행본 연구서 'Zizek: A Critical Introduction'도 이번 4월에 출간 예정이다(*물론 이미 출간되었고 나는 복사본을 갖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국역본이 근간예정이라고 한다, 는 아니고, 근간예정인 책은 아래의 이안 파커의 책이다. 제목은 둘이 거의 같다. 현재까지 지젝 연구서는 3-4종이 더 출간되었다.) 

 

 

2003.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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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05-13 13:57   좋아요 0 | URL
'Zizek: A Critical Introduction'란 아이언 파커Ian parker의 책을 말하는 것인가요?
슬로베니아,계몽주의(헤겔), 정신분석학(라깡), 정치(맑스)로 엮여있던 책의 개요가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로웠는데요. b에서 근간된다는 것을 책날개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벌써 3년이나 지난건가요-.,-?

로쟈 2006-05-13 14:5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잘못 말씀드렸네요. 거의 같은 제목이지만 도서출판b에서 근간예정인 책은 사라 케이의 것이 아니라 이안 파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