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에서 중앙대대학원신문의 새연재 '구양봉의 橫書竪說(횡서수설)'을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9324). 자주 언급한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2008)에 대한 리뷰이다. 이전에 옮겨놓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맞서라'(http://blog.aladin.co.kr/mramor/1972805) 등과 겹쳐 읽으면 유익하겠다.

중앙대대학원신문(247호) 미학은 어떻게 정치와 조우하는가?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2000)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자크 랑시에르의 책이다. 비록 원문이 74쪽 밖에 안 되는 소품이지만 <감성의 분할>은 <불화: 정치와 철학>(1995)과 더불어 독창적인 사상가로서의 랑시에르가 지닌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다행히도 국역본 <감성의 분할>은 국역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증오스러운 번역에 비한다면 훨씬 읽을 만하다. 물론 과도한 직역 탓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건 문체에 대한 ‘감성’의 차이일 수도 있으니 일단 넘어가자.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자 주요 개념인 ‘Le partage du sensible’를 ‘감성의 분할’이라고 옮긴 건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옮긴이의 해명(미주 1번)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le) sensible’은 ‘감성’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으로 옮겨지는 게 좋을 듯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le) sensible'은 그리스어 'to aisthêton', 즉 감각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의 대상을 지칭한다. 이에 반해 감성은 흔히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하기 때문에(가령 “저 사람은 감성이 예민해”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라) 원래의 뉘앙스가 거의 살아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랑시에르의 정치(la politique) 대 치안(la police) 개념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게 우리가 말하는 정치는 ‘치안’에 가깝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치안이란 곤봉을 든 경찰력으로 상징되는 어떤 구체적인 억압의 구조이기 이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즉, 감각적인 것)을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는 상징적 구성원리이다.

그래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는 치안이 특정한 분할선에 의거해 감각적인 것을 배분하고 나눠놓은 질서를 다시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려는 행위이다. 이와 관련해 ‘(le) partage’의 역어로 ‘분할’을 선택한 것은 틀린 건 아니더라도 불충분하다. 나라면 ‘나눔’이라는 역어를 선택할 텐데, 왜냐하면 그래야만 랑시에르의 원래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몫’과 ‘공유’의 의미를 느슨하게라도 포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1998)에서 ‘(le) partage’를 법(nomos)의 어원인 그리스어 ‘nemein’과 관련지어 설명한 바 있다. ‘nemein’은 무엇보다 ‘토지’의 분할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갈 토지의 구획을 확정해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공동체, 모든 제국의 역사의 시초”(칼 슈미트, <대지의 노모스>)이며, 그렇기 때문에 법의 어원이 된 것이다.

이런 토지의 분할은 무작위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적 사유(혹은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응당 그 토지를 소유할 자격이 있는 민족, 계급, 사람들의 등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할당된다. 특정 토지를 어떤 누군가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그의 자격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몫’인 셈이다. 가령 야훼가 유대민족에게 선사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다른 민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동일한 자격과 몫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에 대항해 서로의 자격과 몫을 ‘공유’한다. 적어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기 때문에 분할은 ‘배제’의 근거인 동시에 ‘참여’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토지 분할의 논리가 정치적 장으로 옮겨가면 그것은 특정 지위를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가령 어떤 누군가가 지배자의 지위를 자신의 몫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이런 자격(연장자, 강자, 현자 등이 타인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을 세분화한 바 있는데, 랑시에르는 이를 정치의 ‘아르케’(근본원리)라고 부른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정치는 이런 아르케를 뒤흔들고, 더 나아가서는 아르케 자체의 해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랑시에르에게 있어서 미학과 정치는 이렇게 조우한다. ‘자기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각자의 몫을 주장할 때, 즉 기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뒤흔들어 더 많은 몫을 더 많이 공유하려고 할 때 비로소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 “정치의 미학화”나 “미학의 정치화” 같은 말은 동어반복이다. 왜냐하면 정치·치안이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것인 이상, 그것 자체가 이미 미학이기 때문이다.

단, 이때의 미학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학이 아니라 그 어원에 충실한 미학이다. 즉, ‘감각적인 것’ 혹은 ‘감각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to aisthêton'에 바탕을 둔 그 미학(‘감각학’으로서의 미학) 말이다. 이렇듯 랑시에르가 포착한 상동성으로 인해 가능해진 미학과 정치의 조우를 음미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08.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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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강의에서 종종 다루게 되는데, 유감스러운 건 대다수 번역본들이 절판 혹은 품절된 상태라는 점. 조속히 다시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본들과 음반, 영화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랄프 파인즈 주연의 영화 <오네긴>의 마지막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Z7aaBCekTX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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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말에 선정/발표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http://www.kpec.or.kr/)의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 며칠 당겨서 발표됐다. 강제성은 전혀 없는 목록이고 그냥 일람해보는 걸로도 충분하다. 애꿎게도 나는 그걸 핑계로 몇 마디씩 보태적는 걸 월말마다 반복하고 있지만(지옥 같은 3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4월이라고 해서 '비전'이 보이는 건 아닌지라 '4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는 손길이 경쾌하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론 '연옥에서의 책읽기' 정도라고 이름붙여둔다). 이것도 벌인가?.. 

 

 

 


1. 문학

소설가 신경숙씨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박범신의 <촐라체>(푸른숲, 2008)이다. 타이틀은 알고 있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몰랐는데(나는 '-체'의 일종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촐라체는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남서쪽 17㎞에 위치하고 있는 6,440미터의 봉우리다. 난벽이고 거벽이다." 그리고 소설은 "현실에서 좌초한 이복형제가 촐라체 북벽을 등반하며 겪는 이야기로 짜여져 있다"고. 더 구체적으론 "지난 시절 최소한의 장비로 당연히 셀파의 도움 없이 단 둘이 촐라체를 등반했다가 하산 길에 한명이 추락했으나 로프를 끊지 않고 끝내 추락자를 구해내서 생환하는 것으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최강식, 박정헌의 이야기가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생략하지만, 알다시피 네이버에 연재됐던 작품이라 웬만한 문학독자라면 나보다 자세히 알고 있을 듯하다.

사실 내가 아는 박범신은 <풀잎처럼 눕다> 시절의 박범신이니 어느적 박범신인가 싶다. 업데이트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범신이 만난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2007)도 같이 챙겨보면서. 더불어 꼽는 건 비슷한 연배의 작가 김원우의 신작 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강, 2008)이다. 최근에 산문집 <산책자의 눈길>(강, 2008)과 같이 출간됐는데(관련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2005770 참조), 동시대 두 중견작가의 '근황'에 대해서 보고서를 써볼 수도 있겠다.

 

 

 

 

2. 역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선정한 추천도서는 <진인각, 최후의 20년>(사계절, 2008)이다. 이 선정은 전혀 놀랍지 않다. 나부터도 신간으로 소개한 바 있고(http://blog.aladin.co.kr/mramor/1921742 참조). 아직 책은 구입하지 못했지만 중국 최고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이 겪은 문화혁명 기간의 시련이 핵심이야기가 아닐까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추천사에 따르면 "국민당 대신 공산당을 선택했던, 아니 대만이란 섬 대신 대륙을 선택했던 한 역사학자의 선택이 전체주의 체제에 의해 어떻게 배신당하는지, 그리고 그런 체제 아래서도 인간은 왜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전기이다."

역사책은 아니지만 중국 관련서 몇 권을 더 보태고 싶다. 작가 한샤오궁의 <열렬한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8)와 이미 '베스트 저자'군에 속하게 된 이중텐의 <이중텐, 중국인을 말하다>(은행나무, 2008)가 최근에 나온 관련서들이고(한샤오궁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984746 참조), 역사서로 분류되는 <중국 근대의 풍경>(그린비, 2008)도 방대한 분량의 노작이다. 특히 이 책은 국내 연구자들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사도 바울>(새물결, 2008)이다. 이미 여러 차례 다룬 데다가 '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도 꼽아두었었기 때문에 군말은 필요 없겠다. 간단하게만 옮기면 "알랭 바디우의 저작들은 요즘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도 바울에 관한 이 책은 가장 넓은 독자층을 거느리는 작품이다. 저자가 다루는 바울은 사도나 성자로서의 바울이 아니다. 저작의 목적은 기독교적 신앙의 찬양이나 옹호에 있지 않다. 여기서 바울은 어떤 미증유의 진리가 출현하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고 그 사건 속에서 예감된 진리에 충실히 복종하고 희생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주체로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바울과의 만남을 바디우는 제안한다. 나로선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와 같이 겹쳐 읽으면 좋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한다.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으론 좀 '끔찍한' 책이 올라왔다.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아고라, 2008). 저자의 책으론 <네 멋대로 써라>(삼인, 2005)부터 <웰컴 투 머신>(한겨레출판, 2006), <약탈자들>(실천문학사, 2007)까지 여러 권의 책이 출간돼 있는데, 소개에 따르면 "사회변혁운동가, 아나키스트, 환경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앞장서는 저자 데릭 젠슨은 글쓰기 선생도 자처하며 많은 책을 낸다. 주로 현대사회와 그 가치에 의문을 갖는 글이 중심을 이룬다. 충격적인 사례를 소개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섬뜩하게 느끼도록 한다. 대단히 충격적이다. 그가 품는 학문과 관심 영역이 매우 다양해서인지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논증을 한다."

이 책을 추천한 김광웅 교수는 "우리가 일궈온 문명의 희생자들이 너무 많은데,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그의 명제이다"라고 정리한다. 알라딘의 소개가 간명한데, "노암 촘스키, 반다나 시바, 아룬다티 로이, 하워드 진과 함께 급진적인 사회 변혁 운동가로 주목받고 있으며, 당대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사상가 중 한 명인 데릭 젠슨이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증오와 위선적인 문화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고찰한 책." 딱 그만큼으로 읽으면 되겠다.

 

 

 

 

5. 경제/경영
 
정운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론 처노의 <금융 권력의 이동>(플래닛, 2008)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금융제국 J.P. 모건'으로 잘 알려진 금융관계 저술가 론 처노(Ron Chernow)가 썼다. 원래의 제목은 '은행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Banker)'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은행업의 종언이라고나 할까." 사실 '은행업의 종언'에 대해서 내가 특별히 애도할 건 없지만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도 소장도서인지라 뒤적여볼 수는 있겠다. 무얼 알아낼 수 있을까? 

"로스차일드, 모건, 베어링, 워버그 등 전설적인 금융명가(名家)들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 눈부시게 번성했다가 어느새 광채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왜 금융계의 영원한 주역으로 남지 못하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위세를 잃게 되었을까."의 해답을 알아낼 수 있다. 20세기 정치사를 가로지르는 정치와 경제의 권력이동을 다룬다고 하니까 재미로도 자기몫은 하겠다. 더구나 "짧아서 지루하지 않고 과거의 책들에 비해 이해하기도 쉬워서 좋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겠고. 물론 금융권력의 이동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해서 나의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건 아닐 터이지만.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전혀 예기치 않게도 빌 클린턴의 <기빙(Giving)>(물푸레, 2007)이다. 추천자 자신이 미리 예상되는 '우려'들을 차단하고 있다. "대필 가능성이 농후한 유명 정치인이자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성 추문의 당사자라는 저자의 편력, 엎치락뒤치락하는 대선주자 힐러리의 홍보물로 곡해될 수 있는 소지, 게다가 미국의 봉사활동 사례들을 편중적으로 열거한 자국 중심적 내용 등 부정적 요소들을 첩첩이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눔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간명한 메시지는 그 모든 결함들을 한방에 제압한다.(...) ‘Taking’을 넘어선 ‘Giving’이 새로운 시대적 코드임을 주지시키는 이 책은 경쟁과 점유가 아닌 소통과 공생의 새로운 생활윤리를 예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찾아보니 국역본의 부제는 '우리 각자의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좋은 말인 만큼 여러 말 할 건 없고(말은 말일 뿐이니까) 그가 그런 삶을 실천해왔는가만 살펴보면 되겠다. 그래서 <기빙>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아예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물푸레, 2004)와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웅진지식하우스, 2003/2007)까지 챙겨볼 필요가 있겠다(이 자서전들의 인세는 어디로 가는 건지 확인해보면서).


 



 

7.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하고 있는 과학분야의 책은 <21세기를 달군 후끈후끈 달 탐사 여행>(파라주니어, 2008)이다. '달 탐사'란 타이틀에서 짐작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4월 8일.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우주로 향한 온 국민의 꿈을 실현시키는 날이다. 러시아 소유즈 로켓에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 아쉬움이 남지만 올해 말 전남 고흥에 나로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우리가 만든 발사체에 우리가 만든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우주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싶은 심정이다."가 추천의 배경이다. 때문에 "인류가 진행한 달 탐사 프로젝트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라는 것.

그런 관심에서라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청어람미디어, 2002)도 빼놓을 수 없겠다.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비행사들의 내밀한 체험,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정신적인 충격"을 테마로 하고 있는 책이니까. 또 마크 트라의 <우주 여행>(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은 보다 실전적이어서 "힘들고 고된 우주인 훈련센터에서의 훈련 과정부터 무사히 우주를 향해 떠나는 모습, 우주에서의 생활과 이들이 해야 할 일들, 우주에서 바라본 풍경 등을 생생하게 담은 컬러 사진을 함께 보여주어 간접적으로나마 우주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아예 토머스 존스 등의 <NASA, 우주개발의 비밀>(아라크네, 2003) 같은 책을 손에 들 수도 있겠는데, 정작 우리가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러시아의 가가린우주센터에 관한 책은 거명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러시아당국의 보안정책에 위배될지 모른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존 하비의 <블랙패션의 문화사>(심산, 2008)이다. 제목 그대로 블랙 패션의 문화사이면서 "패션 일반이 드러내는 옷의 코드와 의미에 대한 상상력도 자극하는" 책이란 평이다. "블랙은 본디 밤의 색이었고, 죽음과 비통의 색이었으며, 수도사와 수녀의 색이었는데, 그것이 지위와 전문성, 권위와 권력, 더 나아가 우아함과 경건함, 섹시함의 패션으로 자리하기까지 그 이면에는 무수한 정치, 사회, 문화, 심리적 변수들이 작용했다. <패션의 체계>라는 책을 쓴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 했듯이 패션이야말로 ‘널리 퍼지지만 사라져버리는 의미’를 가진 무엇이다. 언젠가 있다가 사라져버린 검은 옷의 비밀들을 캐보는 재미를 맛보자."라는 것이 추천자의 제안이다(바르트의 <패션의 체계>는 <모드의 체계>로 번역돼 있다).  

덕분에 찾아본 것이지만 패션사에 관한 책이 많이 소개된 편은 아니다. 앤더슨 블랙 외, <세계패션사1,2>(자작아카데미, 1997)가 처음 소개된 책인 듯하고 이후에 <세계패션사>(간디서원, 2005), 제임스 레버의 <서양 패션의 역사>(시공사, 2005) 등이 더 소개되었다. 작년에 나온 필리프 페로의 <부르주아 사회와 패션>(현실문화연구, 2007)은 19세기 복식사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도판을 제공해주는 책으로 문학 전공자들도 챙겨둘 만하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윌리엄 랑게비쉐의 <사하라 사막 횡단기>(크림슨, 2008)이다. "사막, 그것도 사하라 사막이다."로 다 설명되는 책이겠다. 사막 횡단 경험이 없기에 사막이라고 하니 나로선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정도가 떠오른다(오늘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찾아보니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김영사, 2005)이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황금나침반, 2006) 등이 관련서이다. 이젠 사막 횡단도 '교양'이로군!..

 

 

 

 

10. 평전

최근에 나온 주목할 만한 평전 두 권은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민음사, 2008)과 정준호의 <스트라빈스키>(을유문화사, 2008)다. 네루다의 책은 물론 재작년에 나온 애덤 펜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생각의나무, 2005)와 같이 읽으면 더 좋겠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엔 그의 <자서전>(1998)도 더 소개되면 좋겠다(영어권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전기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있다)...

08. 03. 26.

 

 

 

 

P.S. 4월의 고전은 단테의 <신곡>이다. 개인적으론 독서강좌의 강의를 맡은 탓에 이마미치 교수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를 비롯해서 4종의 원전 번역본을 모두 갖고 있다(4종이면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체면치레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기타 관련서들까지 포함하면 열댓 권은 되는 듯하다. 그래봐야 30년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그 수준을 알아볼 급수는 된다(바둑 급수는 낮아도 프로기사들의 기보는 읽을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곡>의 해설자라기보다는 '길잡이' 정도가 내 역할이지 않나 싶다. 강의가 마무리되면 관련문헌들의 간략한 해제 정도는 적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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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촐라체가 -체의 일종인줄 알았는데요. 로쟈님의 이 페이퍼를 읽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그렇게 알고 있을 뻔 했네요.

로쟈 2008-03-28 00:09   좋아요 0 | URL
^^

열매 2008-03-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근대의 풍경>은 방대하긴 하지만 '노작'일런지는 직접 보고 확인해야 될 듯 싶습니다. 2004년에 출간된 <일본근대의 풍경>과 일련의 시리즈물로 기획된 듯 한데, 그 책은 사진이나 캐리캐처 한장에 당시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식의 교양서정도의 수준이였습니다. 32천원이나 주고 사서 한번 읽고 중고서적으로 팔았습니다. 이번 책은 여러 국내필진이 쓴 책이니 다를지 모르겠지만, '풍경'이라는 제목처럼 전문성과는 거리가 있을듯하네요.

로쟈 2008-03-28 00:1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분량으로 보아 '애쓴 책'은 되겠죠.^^ 저도 책은 직접 보지 못하고 소개글만 읽은 상태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관한 자료들을 읽다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트에서 바디우의 <사도 바울>(새물결, 2008)에 관한 리뷰기사를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9090). 필자는 출판기획자 이재원씨이고 그의 리뷰 연재를 즐겨 옮겨오던바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컬처뉴스(08. 03. 25) 사도 바울, '다시' 논쟁의 가운데 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그러나 이렇게 말한 맑스 역시 잊은 것이 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반복이 꼭 비극-소극 짝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그 예외적인 경우 중 하나가 사도 바울(10?~67?)과 철학자들의 조우이다. 이들 간의 첫 번째 조우는 대략 51년경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언덕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이때 사도 바울이 만난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등의 철학자들이었는데, 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 배꼽을 움켜잡은 채 파안대소하며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희극적이라고 할 만한 이 조우 이후 거의 20세기 뒤에 이뤄진 두 번째 조우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때 사도 바울이 만난 철학자들은 현대 유럽 철학자들이었는데, 이 조우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  )에 의해 촉발되어 지난 2005년 미국 뉴욕 주의 시러큐스 대학에서 제법 ‘진지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바디우인가? 바디우 이전에도 사도 바울을 언급한 철학자들은 부지기수이다(바디우 본인이 작성한 명단만 봐도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리오타르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왜 바디우만이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의 두 번째 조우를 실제로 현실화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디우의 바울은 ‘사도’ 바울이기 전에 ‘투사’ 바울이기 때문이다. ‘투사’ 바울의 형상을 찾는 것 역시 바디우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사상가=시인인 동시에 투사”로 그려진 바디우의 사도 바울은 새로운 투사였고, 이 새로운 투사로서의 바울이 갖는 동시대적인 의미는 동료 철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번에 국역되어 나온 바디우의 1997년 저서 『사도 바울: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원래 제목은 “성 바울: 보편성의 정초”이다)는 바로 이 두 번째 조우의 발단이자 초대장 같은 책이다. 이 초대에 응할지 안 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이 초대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사건의 사상가=시인인 동시에 투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보편성’의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이다. 흔히 보편성이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모든 사람/사물에 적용되는 어떤 성질/원칙이다. 그런데 바디우의 설명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정초한 보편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에게는 기존의 모든 차이와 분리를 무화시키는 무엇인가가 보편성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자와 후자의 보편성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실제 대상들에서 뭔가 공통적인 것을 ‘추출’해낸 것이라면(이런 보편성은 “……이지만 ……이다”의 논리를 따른다. 예컨대 “그들은 성별이 다르지만 인간이다”), 후자는 공통적인 것을 ‘창출’해냄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보편성은 “……이고 ……이다”의 논리를 따른다. 예컨대 “그들은 성별이 다르고 그리스도교인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적 주체’라는 새로운 주체를 창안함으로써 바로 이 새로운 보편성의 윤곽을 정초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 위해서 그/그녀가 반드시 어떤 특정한 귀속 조건(민족, 성별, 신분 등)을 미리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봤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갈라디아서」, 3:28)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이렇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는 묘한 ‘도약’이 있다. 통상의 보편성에서 실제 대상들의 차이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공통적인 것 안에서 통합된다. 가령 성별의 범주로 보면 그/그녀는 남성/여성이지만, 종(種)의 범주로 보면 인간인 것이다. 여기에서 그/그녀의 정체성이 지닌 차이(성별)는 좀 더 높은 차원에서의 공통적인 것(종)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그녀의 정체성은 연속적이다, 혹은 말 그대로 동일하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서는 이런 연속성(동일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범주는 그/그녀의 정체성이 지닌 차이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지 않다. 즉,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서 실제 대상들의 차이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공통적인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무화’된다. 그러므로 이때의 공통적인 것은 기존의 차이와 분리를 뛰어넘는(여기서 “뛰어넘는다”는 “극복한다”보다는 “초월한다”에 가깝다. 즉, 사도 바울의 보편성은 차이에 ‘무관심’하다) 제3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은 ‘창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가 창안되려면 그 이전의 주체에게서 미리 일종의 단절이 일어나야만 한다. 열정적으로 그리스도교 박해에 가담하던 바리새파 유대인 사울을 사도 바울로 뒤바꿔놓은 것과 같은 단절 말이다. 바디우는 이 단절을 ‘사건의 도래’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바로 이와 같은 단절이었다. 바디우가 그 안에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레닌에게는 1914년 8월에 발생한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 혹은 1917년 2월 혁명이 그런 사건이겠다(흥미롭게도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 시기를 레닌의 ‘철학적 계기’라고 부른 바 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에서의 사실이 아니다. 사건은 “한 시대의 열림,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관계들의 변화”, 즉 가능성의 열림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죽음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음”) 때문이다. ‘사도’(ἀπόστολος)란 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열린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사건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건은 단절이기에 “……이 아니라 ……임”의 논리를 갖는다. 바디우에 따르면 여기에서 “……이 아니라”는 폐쇄적인 특수성들을 해체하는 과정이고, “……임”은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에 주체들이 동역자(즉, 사도)로서 임해야 하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사건은 주체(화)와 하나의 구성적 짜임이 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먼저 사건이 있다. 그리고 이 이 사건을 사건으로서 볼 수 있는 주체(사도)가 있다. 이 주체는 이 사건을 사건이라고, 혹은 이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진리라고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보편성을 창안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바디우에게 있어 “사건의 사상가”가 “시인”인 동시에 “투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건의 사상가는 늘 새로운 보편성을 창안하기에 시인(시인의 어원이 그리스어 ‘만들다’[ποιέω]인 점을 염두에 둬라)이며, 그 보편성에 근거해 새로운 세계를 열기 때문에 투사이다.  

그리고 두 가지 공식이 있다. “……이 아니라 ……임”이라는 사건의 논리. “……이고 ……이다”라는 주체화의 논리. 이 두 가지 공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주체는 사건의 논리에 따라 이미 도래한 사건을 저지하려는(또는 보지 못하는) 힘을 해체하고, 주체화의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동료들을 사건에 충실한 주체로 만듦으로써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걷기 때문이다. 바디우에게 있어서 진리의 사건=주체화 과정(le processus de subjectivation)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건, 주체성, 보편성. 바로 이것이 바디우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 간의 두 번째 조우가 왜 첫 번째 조우 때와는 달리 희극적이지 않았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들이다(따라서 이 두 번째 조우에 “철학자들 한가운데의 성 바울: 주체성, 보편성, 그리고 사건”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 주체성, 보편성. 인류의 위대한 실험이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일체의 진리가 상대화되고, 인류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원칙이 의심받으면서 국가에 맞서는 정치가 정체성의 정치로 축소되어버린 오늘날, 우리가 혁명을 다시 사유하려 한다면 이 세 가지 키워드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키워드들의 의미를 몸소 보여준 ‘우리의 동시대인’인 사도 바울을 외면할 수 있을까? 바디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소 뒤처진 감이 있지만, 우리는 뛰어난 국역자의 도움으로 비로소 바디우가 내놓은 ‘미래를 위한 내기’에 동참할까 말까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이 내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참여하는 철학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르지오 아감벤이 있다. 아감벤은 “……이고 ……이다”라는 주체화의 논리를 “……이지만 ……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남겨진 시간: 로마서에 대한 주해』, 2000)의 논리로 다시 읽는데, 이는 사도 바울을 “보편성의 정초자”가 아니라 “급진적인 분리의 주창자”로 읽는 방법으로서 바디우의 주체화 논리와 첨예한 쟁점을 형성 중이다.

그리고 『까다로운 주체』(1999)에서 『꼭두각시와 난장이: 그리스도교의 도착적 핵심』(2003)[이 책의 국역본 제목은 『죽은 신을 위하여』이다)에 이르는 일련의 저서들을 발표한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 간의 두 번째 조우의 결과 역시 곧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며, 그리고 또……. 아무튼 우리에게는 더 많은 판단 자료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바디우의 말마따나 많은 사건들, 심지어 멀리 떨어진 사건들조차 여전히 우리가 그것들에 충실하기를 요구하고 있는데?(이재원_출판기획자)

08. 03. 25.

P.S. 리뷰에서 언급된 아감벤의 책 <남겨진 시간>에 대해서는 '아감벤과 사도 바울'(http://blog.aladin.co.kr/mramor/10102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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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관련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옮겨놓으려고 한 것이 며칠 미뤄졌다. 최근 첫 산문집과 함께 장편소설을 펴낸 작가 김원우씨와의 인터뷰기사, 그리고 문단의 '칙릿' 바람에 관한 동향기사이다. '젊은 여성'이 아닌지라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쪽은 물론 중년 작가의 '줏대'이다.

경향신문(08. 03. 19) 김원우 “중산층도 크게 보니 떠도는 난민의 삶이더라”

작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면 도시락을 싸들고 연구실로 향한다. 샐러리맨처럼 꼬박 12시간을 앉아 글을 쓴다. 안식년을 맞은 지난해에도 1년 내내 하루 10장 이상 글을 썼다. 효율과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첨단의 시대에, 그는 볼펜을 꾹꾹 눌러 400자 원고지에 글을 쓴다. 오후 6시가 되면 가방을 꾸려 연구실을 나와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사용할 줄 모르는 작가 김원우(61). 그러나 정치하고도 핍진한 언어로 가득 찬 그의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자리에 서 있다. 지난 수년간 궁구하듯 써내려간 장편소설과 산문집을 들고 그가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젊은 천사’ 이후 3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강)은 1990년대 이후 그의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난민의식’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지방 국립대 의대교수이자 외과의로 평생을 보낸 뒤 미수를 넘기고 세상을 뜬 삼팔따라지, 박성득의 생애를 복원해나가는 이야기다. 추모집을 준비하던 제자 여박사와 최원장은 박교수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부러 없애기라도 한 듯 그의 경력을 증빙하는 자료가 일절 남아있지 않고, 유족과 후학의 증언을 모아도 생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자 망연자실한다. 겨우 그러모은 정보로 망자의 실루엣을 그려보지만, 해방 전후와 6·25 동란 당시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자기 보신에 철두철미하고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칼 실력뿐이었으며, 매우 과묵했고 반찬은 장아찌와 고추장이 다였고 빨랫감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온갖 것을 아껴 썼으며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지극히 낮은 인물.

생애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는 이 독특한 인물은 동시에 ‘어떤 세대의 슬픈 초상’의 보편적 실체이기도 하다. 월남 2세인 최원장이 복원해낸 박성득의 면면은 마찬가지로 삼팔따라지였던 부모와 외삼촌 등 기억이 숭덩숭덩 잘려나간 그 세대 일반의 모습이었던 것. 박성득은 근대 이후 전쟁을 비롯한 갖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나 부박하게 세상을 떠돈 한국 내 ‘이산자’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난민의 삶이고, 부평초 같은 것 아닌가요? 객지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삶도 난민의식의 또 다른 행태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인생을 더 큰 눈으로 조명하게 됩디다. 그런 면에서 주제가 다른 쪽으로 전화되었다고나 할까. 10여 년 전에는 중산층 부르주아에 대한 자아비판, 자기투영 등을 다뤘지만 10년 전부터는 난민 쪽으로 기울었지요.”

박성득의 생애를 독자들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은 이중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다 각각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가 다르다. 독자에게 인내를 요하는 작가의 문장도 여전하다. 참을성 없는 젊은 독자라면 진저리내며 팽개칠 만큼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단어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한다. 과거부터 사전을 뒤적이는 취미를 갖고 있는 작가는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문장을 채웠다.

요즘 독자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의 문학이 너무 뒤틀려있고 왜곡돼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전세계적으로 문학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강렬한 자극을 주는 극단적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문학은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이 비록 시대와 불화하고 있을지라도 별로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단호한 말투는 어쩐지 그의 문장과 닮았다.

횡보 염상섭의 문체와 닮았다는 세간의 지적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횡보의 문체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횡보는 전통적인 서울 말씨를 발굴해내고 사전에 등재돼 있지만 사어화 돼가는 단어를 살려내 정확하게 썼는데, 그에 비해 나는 경상도 출신인 데다 횡보의 자연주의적 경향과는 차이가 나거든요. 만연체를 조립하는 데 성의를 다한다는 점은 비슷하겠지. 종결어미를 바꾸고 절대 똑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 등 문장 축조력에서는 많이 따르려 하다보니 영향을 받았다면 받았을 겝니다. 언어라는 게, 문장이라는 게, 결국 유동성과 세속성이거든요. 당대 세속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걸 안 받아들이면 생동감이 없어지니까 진부해지지. 이건 어떤 작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등단 30여 년 만에 처음 펴낸 산문집으로 이번에 함께 출간된 ‘산책자의 눈길’(강)은 염상섭의 문학 연구를 다룬 글을 꽤 묵직한 분량으로 싣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에서 그는 ‘문단의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처럼 문장론과 문학상, 문예지와 원고료 등 오늘날 한국 문단의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한다. 2부는 횡보 소설의 근대성과 함께 횡보를 중심으로 한국 소설의 성립 과정을 조명한 글들을 모았다. 3부는 각각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와 시인 김정환씨의 대담 형식으로 자신의 문학뿐 아니라 결혼제도와 정치의식 등 당대 문학의 화두를 함께 다뤘다.

“서문에도 썼지만 처음으로 내 전공인 소설이 아닌 것을 내게 됐어요. 오히려 책을 내서 세상을 더 흐트러뜨리는 일이 아닌가 했는데 막상 나온 책을 보니 나름대로 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 당분간 못 쓰지요. 하루 12시간 이상 집중력을 요하는 건데. 방학이나 돼야 쓸까?”(윤민용기자)

경향신문(08. 03. 11) 소설, 젊은 여성에 눈돌리다…‘칙릿’ 잇따라 공모 당선

문단에 칙릿(chick-lit) 바람이 거세다. 거액의 고료를 내걸고 출판사와 문예계간지들이 공모한 장편소설상을 칙릿풍의 장편소설이 휩쓸었다. 최근 출간된 서유미씨의 ‘쿨하게 한 걸음’(창비)과 이달 안에 출간될 우영창씨의 ‘하늘다리’, 백영옥씨의 ‘스타일’이 바로 화제의 소설들이다. '쿨하게 한 걸음’은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고, ‘하늘다리’는 계간 ‘문학의 문학’이 5000만원을 내걸고 공모한 제1회 장편소설 공모당선작이다. ‘스타일’은 세계일보가 1억원 고료를 내걸고 공모하는 ‘세계문학상’ 제4회 수상작이다.

이들 소설은 모두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의 일과 사랑, 삶을 그려가고 있다. ‘쿨하게 한 걸음’은 요즘 30대 여성의 관심과 고민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30대 초반의 직장인 연수는 구조조정에 인수설까지 나돌자 회사를 그만둔다. 소설은 자신의 길을 고민하면서 새로이 영화공부를 시작한 연수와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아버지, 갱년기를 맞은 엄마, 30대가 돼서야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촌, 직장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 등 주변인물과의 소통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민을 담담히 그려낸다.

'하늘다리’와 ‘스타일’은 좀더 감각적이고 트렌디하다. ‘하늘다리’는 31세의 증권사 대리 맹소해를 주인공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증권사의 일상과 재테크 세태, 동성애와 유부남과의 사랑 등 좀더 자극적인 소재를 등장시킨다.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여기자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스타일’은 유행에 민감하고 가벼움과 재미를 쫓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유명 배우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골몰하고, 까다로운 음식비평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탐색한다는 얼개에 일과 사랑,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 사내 권력관계, 명품과 음식이야기 등을 감각적인 문체로 엮었다.

작가 서유미씨와 백영옥씨가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자기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것과 달리 그간 시인으로 활동해온 우영창씨가 50대 남성작가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이처럼 장르문학의 일종인 칙릿이 ‘문학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좀더 공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고 있다. 칙릿이 대중성과 문학성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백영옥씨는 당선 인터뷰에서 칙릿을 옹호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번드르르한 트렌드가 아니라 현대 도시인들의 삶”이며 “칙릿이란 게 ‘된장녀’ 부류들만 나오는 가벼운 장르가 아니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도 당대 여성의 삶을 솔직하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우영창씨도 “사랑과 일, 이 두 가지는 도시의 미혼 여성에겐 현실의 굴레이자 삶의 추진력이기도 하다”며 “작금의 도시 직장 여성들의 삶은 칙릿 소설이 함부로 예단할 만큼 가볍지가 않고 그 내부엔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회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최근 문단의 이 같은 칙릿바람의 원인을 “자본에 의한 문학의 지배”로 요약했다. 외국 칙릿 소설이나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20~30대 여성들이 일정한 독서소비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겨냥해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있는 출판사, 언론사들이 고액의 상금을 내걸고 상을 만든 것도 아직까지는 소설 독자들이 있고, 문학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상업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심씨는 또 문학의 영향력 감소를 중요한 요인으로 들었다. 젊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를 잘 드러내주는 칙릿은 문학 내부에서 시작된 장르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새로운 장르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학이 다른 예술장르의 영향을 받아 생성되는 현대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이 계속 추구할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칙릿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에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를 결합한 신조어. 젊은 도시여성들의 일과 연애, 취향 등을 다루는 소설들을 일컫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미권 문학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으며, 국내에 본격 소개된 것은 소피 킨셀라의 소설 ‘쇼퍼홀릭’ 시리즈를 통해서다. 여기에 20~3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함께 인기를 얻으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칙릿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윤민용기자)

08.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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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2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다리]는 검색했는데 책이 안떠요. 혹시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인건가요?

다락방 2008-03-27 15:29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이달안에 '출간될' 이라고 써있었군요 --

로쟈 2008-03-28 00:11   좋아요 0 | URL
자문자답이시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자의 눈길 153쪽에 버나드 쇼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 김원우 씨의 말은 오류.카알라일의 영웅 숭배론에 나오는 말인데요.그리고 또 하나.토마스 만의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읽었다면서(물론 고교시절에 읽었다니 오래되어 그럴수도 있지만)토마스 만의 섹스 묘사가 너무 간접적이라고 했는데 제가 읽은 바로는 엄청나게 노골적입니다.주인공 크룰도 난봉군이요,여자등장인물 들도 유럽의 옹녀들입니다.재밌긴 재밌어요.호텔 종업원인 청년의 연애 난봉기라고나 할까요.군대 면제받으려고 용을 쓰면서 끝내 성공하는 과정은 압권입니다.

로쟈 2008-04-07 21:37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오류는 저자에게 전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