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와 친일청산의 방식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나대로는 다가오는 3.1절도 고려해서 고른 책이 박지향 교수의 <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 2010)다. '과거는 낯선 나라'란 말도 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윤치호의 내면과 우리시대의 많은 초상들이 겹쳐지는 걸 느꼈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후기에 덧붙여 놓았다.   

한겨레21(10. 03. 01)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 

<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 펴냄)는 서양사학자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가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주창하며 내놓은 저작이다. 기존의 친일청산 작업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민족주의 사관’이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에서 민족주의가 강한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이젠 졸업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시범적으로 시도한 것이 ‘윤치호 다시 보기’다. 일제 시기 대표적 지식인이자 사회지도자였지만 동시에 ‘친일파의 거두’였던 윤치호(1865-1945)의 사상과 내면을 그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영어 일기를 통해 재구성하고 재평가하고자 한다.   

윤치호는 어떤 인물이었나? 젊은 시절 오랜 유학생활과 교사생활을 거친 윤치호는 당시로선 매우 드문 국제적 배경에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사상으로 저자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기독교를 꼽는다. 적자생존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관점에서 윤치호는 이 세상이 잔혹한 투쟁의 장이라는 인식을 일생 동안 견지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3․1운동에도 반대했다. “이 세상은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쫓아내는 곳이다. 울고 짜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차라리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들을 본떠 전사적 정신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다. 그에게 어떤 민족이 약한 것은 그 민족의 죄이지 다른 민족의 탓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유와 정치적 독립은 만세운동으로 가능하지 않았고, 제 힘으로 싸워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회적 다윈주의와는 잘 맞지 않아 보이지만, 윤치호는 또한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전쟁을 진보와 이성을 향한 수단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문명 수준이 앞선 나라가 뒤진 나라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는 믿었고, 강한 인종이 약한 인종을 가르치면서 범한 일부 범죄는 ‘필요악’으로 용인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정신의 소유자였지만, 윤치호에게 그 백성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1천 명 가운데 채 한 명도 신문을 읽지 않는 무지한 대중이 ‘강건한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았다. 

윤치호는 약소국의 정치적 독립에는 첫째로 국민이 지성과 부와 공공정신을 갖추고, 둘째로 국제정치적으로 찾아오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독립보다는 실용적인 교육을 우선시했다. 저자의 평가대로, “그는 너무 엄격한 잣대로 사회발전과 대중의 수준을 평가하였다.” 결과적으론 동족에 대한 불신과 이민족 지배의 정당화로 나아가게 했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조선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마치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동화한 것처럼 조선도 당분간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었다. 그것이 현실주의자로서 그가 ‘저항’ 대신에 ‘협력’을 선택한 논리다.  

 

협력이란 ‘조국을 배반하고 적과 협조하는 것’을 뜻하지만, 저자는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의 탈신화화와 협력행위에 대한 재평가를 사례로 들어 저항과 협력의 관계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협력과 저항 모두 자립을 목표로 하지만 단지 그것을 성취하려는 수단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친일 민족주의자’라는 새로운 범주의 도입까지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혹 윤치호는 ‘친일 민족주의자’였던 것일까? 

“윤치호의 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일생 지녔던 인간적 고뇌에 동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저자는 에필로그에 적었다. 윤치호의 입장을 내재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 접근법의 한계에 대한 고백으로도 읽힌다.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것이 아닐까. 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그에게 호감과 지지를 내보이는 심리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10. 02. 24.  

P.S.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윤치호의 생각이었다. 먼저 민주주의에 대해서.   

윤치호는 기본적으로 서양 근대문명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윤치호가 영국과 미국에 실망했으면서도 여전히 영미식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은 해방 후 그가 쓴 서한에서도 드러난다. "듣자니 조선 사람들이 민주정부 출범에 관해 거론한다는 데 내겐 마치 6세 어린이가 자동차 운전이나 비행기 조종을 거론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영국과 미국 두 나라만이 세계에서 민주주의로 성공한 유일한 나라들입니다."(199-200쪽)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유교 사회와 공산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본 것인데(둘다 기생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점은 음미해볼 만한 게 아닌가 싶다.  

윤치호가 공산주의를 싫어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그가 공산주의를 싫어한 이유를 그의 보수적 성향에서 찾지만, 사실상 그 혐오감의 핵심은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유교사회의 윤리와 공산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한데 공산주의는 유쿄보다 더 나쁘다. "유교는 구걸하는 것을 용서할 만한 '약점'으로 만들지만,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은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에 볼셰비즘이 창궐하는 이유는 기생주의라는 습성 외에 일본 정책이 조선 사람에게서 먹고살 수단을 빼앗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치호는 대중이 사실상의 기아상태,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볼셰비즘은 뿌리뽑히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143쪽) 

'공산주의=기생주의'라는 주장이라면 크게 놀랍지 않은데, 놀라운 것은 그가 공산주의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상에서 아직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최고 수준의 협조적 문명"을 획득한 국민에게나 가능한 것인데 조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앵글로색슨인들조차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해방후에도 윤치호는 공산주의의 위험을 심각하게 경고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사발전 단계론에 대한 그의 점진주의적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몇몇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영국이 고도의 정치력과 노련한 지혜를 가지고 서서히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유도해 가고 있다 하더라도, 대한조선이 어떻게 진짜 사회주의의 ABCD도 모르면서 인민공화국체제를 경영할 수가 있겠습니까?"(143-4쪽) 

인용문은 모두 해방후에 윤치호가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영문으로 써서 보냈다는 서신 '한 노인의 명상록'에 들어 있으며, <좌옹 윤치호 서한집>(국산편찬위원회 편, 1995)이 출전이다. 절판된 책인데, 기회가 되면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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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2-2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시 정부에 대한 프랑스인의 묵인을 캐내는 것은 레지스탕스를 거국적으로 했다는 신화깨기의 핵심입니다.신화깨기를 자세히 살핀 게 <비시 신드롬>인데 우리가 이 문제를 차분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감정적인 인신공격성 욕설이 난무하겠지요.너 친일파 아니냐 너 빨갱이지...하는 식의.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있기도 하지만 박지향이나 이영훈의 문제제기도 정정당당히 평가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로쟈 2010-02-28 12:45   좋아요 0 | URL
윤치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근대사와 한국사회의 많은 대목이 이해될 수 있다고 보는데, 무조건 백안시하는 태도가 많더군요...

비로그인 2010-03-04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신채호 전집(전집이 있는지 모르겠네)을 읽어보고 싶어요..

청소년 용으로 나온 책중에 용이야가 나오는 책이 있는데 익숙치는 않았지만 꽤 재미있고 활달해지더라구요.. 제가 무협지를 좋아해서 그런지 어쩐지 엄청.. 배꼽이 아플정도로 웃었다는.. 거기다가 메세지도 만만치 않고..

로쟈 2010-03-05 00:41   좋아요 0 | URL
윤치호와 유길준에 대해 몇 권 읽어보려고 합니다. 나이들면서 왜 점점 읽을 책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 체력은 떨어지는데요.^^;

2010-03-05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5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건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어제 수유너머N에서 발표한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의 나머지 대목을 마저 옮겨놓는다. '코뮌적' 공간에서 '레닌주의'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한다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밤기차로 지방에 문상을 가야 했던 탓에(오늘 새벽차로 올라왔다) 뒷풀이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발표회는 여러모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아래의 글은 약간 조정한 걸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이다. 단, 오탈자를 바로잡고 'wholesome terror'의 번역을 수정했다.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는 제가 작년에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과 함께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지만, 소위 ‘지젝의 혁명론’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자극적인 책입니다(들뢰즈적 감응(affect)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과거로부터의 교훈’은 전체 3부 가운데 제2부에 해당하며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4장), 스탈린주의(5장), 포퓰리즘(6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기에, 저로선 책의 내용을 조금 더 편하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로베스피에르의 주장입니다.   

 

“평화로운 시기 인민정부의 동력이 덕(virtue)이라면, 혁명의 와중에 있는 인민정부의 동력은 덕과 동시에 폭력이다. 덕이 없는 폭력은 맹목적이며, 폭력 없는 덕은 무력하다. 폭력은 즉각적이고 엄중하며 불굴의 정의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덕의 분출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가장 절박한 필요에 조응하는 민주주의의 일반원칙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특별한 원칙이다.”(<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240쪽)
“평상시에 인민정부를 움직이는 동인이 미덕이라면, 혁명의 시기에 그 동인은 미덕과 공포 양쪽 모두입니다.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합니다. 공포는 신속하고 엄격하며 강직한 정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포는 미덕의 발현체이며, 구체적인 원칙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이 조국의 절박한 필요에 응답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로베스피에르: 덕치와 공포정치>, 13쪽, 231쪽)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It is less a special principle than a consequence of the general principle of democracy applied to our country's most pressing needs.”입니다. 요점은 ‘혁명적 폭력(terror)’ 혹은 ‘공포정치’가 특수한 원칙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일반원칙을 긴박한 상황적 요구에 적용한 결과라는 것이죠. 더불어, 로베스피에르에게서 혁명적 폭력은 정확히 전쟁과 대립하는 것이었다고 지젝은 지적합니다. 국가 간 전쟁은 보통 개별 국가 내부의 혁명적 투쟁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이죠(물론 이것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입니다). 실제로 루이 16세는 체포되기 며칠 전에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프랑스와 유럽 국간들 간의 대전을 일으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왕은 애국자연하면서 프랑스 군대를 이끌다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이고 그의 권력을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을 겁니다. 즉 ‘평화로운’ 루이 16세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유럽을 전쟁으로 내몰 준비가 돼 있는 군주였던 것이죠. 지젝은 자코뱅의 혁명적 폭력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적 법과 질서의 ‘초석적 범죄’라고 절반쯤 정당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것을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참고한 건 엥겔스의 말입니다.

최근 사회-민주주의적 실리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단어에 대해 건강한 폭력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있다. 좋다. 신사 양반들, 이 독재가 무엇과 같은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뮨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다.”(<잃어버린 대의>, 244쪽)

최근 들어 사회민주주의적 속물들이 다시 한 번 이 말을 듣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좋습니다,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럼 파리코뮌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독재였습니다.”(<덕치와 공포정치>, 16쪽)

첫 문장의 원문은 “Of late, the Social-Democratic philistine has once more been filled with wholesome terror at the words: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입니다. 요즘 들어 사민당의 속물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란 말에서 공포감을 느끼는데, '독재'라는 말의 어감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두려울 게 없다, 파리코뮌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독재였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지젝은 엥겔스의 말을 받아서 1892-94년의 혁명적 폭력 또한 프롤레타리아독재와 함께 ‘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신적 폭력=비인간적 폭력=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등가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죠. 거기서 ‘신적 폭력’이란 말의 해석은 정확히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대 로마의 격언을 따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중요하지만 오해된 대목이기도 해서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인민의 의지를 수행하는 도구로서 행위하고 있다’라는 도착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 승인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이뤄진(살인의 결정, 자기 자신의 삶을 상실할 위험을 무릅쓴) 결정. 대타자에 근거하거나 그것에 보호받지 않는 결정이다. 만약 그것이 삶의 유한성을 초월하지 않는다면, 즉 ‘불멸’이 아니라면 그 실행자에게 천사의 무고함으로 살인할 면허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적 폭력의 모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정의는 세우라’이다. ‘인민’(익명의 ‘몫 없는 자들’)이 테러를 강요하고 다른 몫 있는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정의를 통해서, 정의와 복수 사이의 구분 불가능한 지점을 통해서이다.”(<잃어버린 대의>, 246쪽)
“‘우리는 인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수단으로서 이 폭력을 사용한다’는 식의 왜곡된 의미가 아니라, 자주적 결정의 외로움에 대한 대담한 가정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결정은 거대한 타자가 떠맡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도덕 외적인 것이라고 해서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천사와 같은 무구한 마음으로 분별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아니다. 신성한 폭력의 모토는 ‘세상이 무너질지라도 정의를 세워라’이다. 이것은 정의와 복수를 구별할 수 없는 지점에 존재하는 정의를 말한다. 이 정의로움으로 ‘민중’(역할이 없는 상태에서 익명의 역할을 맡은 부분, 즉 비부분의 부분)은 공포를 부과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부분이 대가를 치르게끔 만든다. 그때라 바로 기나긴 억압과 착취와 고통의 역사에 대한 심판의 날이다.”(<덕치와 공포정치>, 17-18쪽)

첫 문장에서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 승인’ ‘자주적 결정의 외로움에 대한 대담한 가정’이라고 옮겨진 것은 “the heroic assumption of the solitude of a sovereign decision”입니다. 저는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인 수임(受任)’이란 뜻으로 이해합니다. ‘결정’과 ‘수임’의 주체는 동일합니다. “만약 그것이 삶의 유한성을 초월하지 않는다면, 즉 ‘불멸’이 아니라면 그 실행자에게 천사의 무고함으로 살인할 면허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착오에서 빚어진 오역인데, 원문은 “If it is extra-moral, it is not 'immoral,' it does not give the agent the license just to kill with some kind of angelic innocence.”입니다. “이 정의로움으로 ‘민중’(역할이 없는 상태에서 익명의 역할을 맡은 부분, 즉 비부분의 부분)은 공포를 부과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부분이 대가를 치르게끔 만든다.”도 부정확한 번역입니다(‘몫이 없는 자(part of no-part)’는 랑시에르가 즐겨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혁명적인 ‘신적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휴머니즘적 동정을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코뱅의 역사적 유산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지젝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혁명적 폭력의 (자주 탄식할 만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폭력의 이상 자체를 거부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오늘날의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여 그 현실화로부터 그것의 잠재적 내용을 부활시킬 방법이 있는가?” 지젝의 대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사건을 반복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은 (로베스피에르의) 휴머니즘적 폭력으로부터 반-휴머니즘적(오히려, 비인간적) 폭력으로 이행하는 것”이라는 게 지젝의 주장입니다.

물론 “자코뱅이 급진적 테러에 의존한 것은 경제 질서의 근본적 기초를 흔들어놓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인 행동화(acting out)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란 비판은 이미 제시한 바 있습니다. 사실 지젝이 보는 자코뱅의 위대함은 테러의 연출이 아니라 일상의 재조직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에 두어집니다. “여성의 자기-조직화에서부터 모든 늙은이가 평화와 존엄 속에서 말년을 보내는 공동체 가족까지, 불과 2-3년 사이에 응축된 열광적인 활동”을 지젝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10월 혁명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진정한 혁명의 순간은 1917-18년의 봉기도 아니고 이어진 내전 상황도 아닌, 1920년대 초반에 새로운 일상생활의 의례들을 창안하려고 했던 강력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는 주장합니다. “어떻게 혁명 이전의 결혼 의례나 장례 의례를 바꿀 것인가? 어떻게 공장과 집단 거주지에서 공산주의적 교류를 조직할 것인가?” 같은 문제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상을 재조직하기 위한 ‘구체적 테러(concrete terror)’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충분하지도 완결되지도 않았던 것이죠. 지젝이 여기서 도출하는 결론은 “민주주의적 절차보다 상위에 있는 이런 과잉의 평등-민주주의는 오직 자기 대립물로서 혁명적-민주주의의 테러의 형태로만 ‘제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마오의 모순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모순의 보편성이 내재하는 곳은 정확히 모순의 특수성 속에서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교조적 맑스주의자들’을 비판할 때 마오는 옳았습니다. 또 ‘변증법적 종합’을 ‘대립물간의 투쟁을 포괄하는 고차원적 통합’ 내지 대립물의 ‘화해’로 보는 통상적인 관점을 거부할 때 역시 옳았다고 지젝은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거부를 정식화하여 ‘대립물이 영원한 투쟁’에 대한 일반적인 우주론-존재론에 따라 일체의 종합이나 통합에 대해서 갈등과 분열의 선차성을 주장할 때 그는 틀렸다는 게 지젝의 주장입니다. 마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엥겔스는 세 가지 범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 범주들 중 두 가지는 믿지 않는다.(...) 부정의 부정이란 없다. 긍정, 부정, 긍정, 부정... 사물의 발전 속에서, 사건들의 연쇄 속의 모든 연관은 긍정인 동시에 부정이다. 노예제 사회는 원시사회를 부정한다. 하지만 봉건사회와 관련해서는 거꾸로 긍정을 구성했다. 봉건사회는 노예제 사회와 관련해서는 부정을 형성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긍정을 구성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봉건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을 형성했지만 사회주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긍정을 구성했다.”(<잃어버린 대의>, 284쪽; <마오쩌둥: 실천론․모순론>, 21쪽, 241-2쪽)

‘부정의 부정’에 대한 마오의 이러한 부정은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일까요? 지젝은 “혁명적 부정성을 진정으로 새로운 긍정적 질서로 이동시키는 시도의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봅니다. “모든 혁명의 일시적인 안정화는 결국 낡은 질서의 복권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그래서 혁명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부정이라는 ‘가짜 무한성’으로, 이것은 결국 거대한 문화혁명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지젝의 판단입니다. “문화혁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과 공간의 청소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성에 대한 무능의 지표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혁명이란 ‘혁명고 함께 하는 혁명’, 혁명과정에서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전제 자체를 혁명하는 혁명이지만 마오는 그 ‘부정의 부정’에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죠(<터미네이터2>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T-101)가 스스로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혁명적 시도의 문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극단적이지 못했다’는 데, 그리하여 혁명적 시도 자체를 문제 삼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 지젝의 핵심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혁명적 과정의 두 가지 계기는 무엇일까요? 프레드릭 제임슨을 따라서 지젝은 첫째,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 그리고 둘째 ‘새로운 삶의 창안’이라고 말합니다. 그 창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정신분석에 대한 참조를 통해서 지젝이 말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근본적인 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오래된 꿈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창안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꿈을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기만 하고 이런 꿈들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과거의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문화혁명의 실패는 바로 이런 점에서 실패했다고 그는 보는 것이죠. 물론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을 겨냥했지만, 그리고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 실행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새로운 일상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지젝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뒷담화도 들려줍니다. 문화혁명의 마지막 시기에, 마오 자신에 의해서 소요사태가 봉쇄되기 전에 ‘상하이 코뮌’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의 공식 슬로건에 따라 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국가의 소멸과 심지어는 당 자체의 소멸을 요구했고, 직접 코뮌적 사회를 조직하고자 시도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오는 군대를 동원하여 질서를 회복합니다. 인민에게 ‘반란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독려하고 부추긴 문화혁명의 온전한 결론 앞에서 그 자신이 후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마오가 충분히,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오늘날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폭발을 위한 공간을 연 것이라는 게 지젝의 평가입니다. 그리하여 마오의 사례에서 얻는 교훈은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베케트)입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스탈린의 공포정치도 보도록 합시다. 참으로 대단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는데, 1937-38년 2년 동안에 이루어진 결과만 보아도 이렇습니다.  

“다섯 명의 스탈린 정치국 동료들이 살해되었고, 139명의 중앙위원 중에서 98명이 살해되었다. 우크라이나 공화국 중앙위원 200명 중에서 오직 세 명이 살아남았고, 93명의 콤소몰 조직 중앙위원 중 72명이 죽었다. 1934년 제17차 대회에서 1,996명의 당 지도자들 중 1,108명이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 385명의 지방 당 비서 중 319명이, 2,750명의 지역 비서들 중 2,210명이 죽었다.” (<잃어버린 대의>, 376쪽) 

이 대숙청은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933년과 1935년에는 무력한 하급 당원들을 체로 숙청하기 위해서 모든 계층의 노멘클라투라를 동원합니다. 이때 지역 지도자들은 자기 조직을 강호하고 ‘불편한’ 사람들을 쫓아내는 데 숙정작업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1936년에는 모스크바의 노멘클라투라가 지역 엘리트를 숙청하기 위해 하급 당원들 편을 듭니다. 그리고 1937년에는 노멘클라투라에 대항하는 당 대중(party masses)을 동원합니다. 이로써 당 엘리트들을 초토화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1938년에는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권위를 강화함으로써 숙청 기간 동안 무너진 당내 질서의 회복을 꾀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에서 초자아적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원들 자신을 향해 가해진 이 폭력은 체제의 극단적 자기-모순을 증명한다. 즉, 그것은 체제의 기원에는 ‘진정한’ 혁명적 기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끝없는 숙청은 체제 자체의 기원적 흔적을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일종의 ‘억압된 것의 귀환’ 속에서 체제의 중핵에 있는 근본적인 부정성의 잔여물이기도 하다.”(<잃어버린 대의>, 379쪽)  

이런 이유에서 스탈린 시대는 노멘클라투라가 지배한 사회가 아니었으며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탈린체제는 효과적인 ‘관료조직’이 결여된 체제였습니다. 노멘클라투라가 사회적으로 안정화되는 것은 브레주네프 시기이며, 그때서야 비로소 ‘현실 사회주의’라는 것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체제가 자신의 공산주의적 전망을 포기하고 실용적인 권력 정치에 안주한다는 징표입니다.       

포퓰리즘에 대한 지젝의 시각도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포퓰리즘이 실천에서는 (가끔씩) 옳지만 이론에서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을 때로는 실용적 타협의 일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 개념 차원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지젝의 주장입니다. 2005년 유럽 헌법 제정안에 대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부결을 사례로 들면서 지젝은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의 교훈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은 오늘날 ‘계급투쟁’은 한물 간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로부터 좌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포퓰리즘적 인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증오를 외국인들에게 전치/신비화시키는 것에 대칭적으로 ‘아이 씻은 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듯이, 다문화주의적 개방성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은 은폐하고 그것을 포퓰리즘적 반-이민 인종주의와 대립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용에 대한 단순한 주장은 반-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가장 은혜로운 형식이다.”(<잃어버린 대의>, 402쪽)

두 번째 문장 이하의 원문은 “the lesson the Left should learn from it is that one should not commit the error symmetrical to that of the populist racist mystification/displacement of hatred onto foreigners, and to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 water," that is, to merely oppose populist anti-immigrant racism with multiculturalist openness, obliterating its displaced class content - benevolent as it wants to be, the simple insistence on tolerance is the most perfidious form of anti-proletarian class struggle...”입니다.   

여기서 ‘its displaced class content’를 ‘다문화주의적 개방성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이라고 옮겼는데, ‘populist anti-immigrant racism’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the most perfidious form of anti-proletarian class struggle”을 “반-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가장 은혜로운 형식”으로 옮긴 것은 착오로 보입니다. <레닌 재장전>에서 같은 문단을 다시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은 오늘날 ‘계급투쟁’이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사례다. 여기서 좌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포퓰리즘적 인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증오를 외국인들에게 전치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 즉 다문화적 개방을 명분으로 포퓰리즘적 반-이민 인종주의에 대해 그 전치된 계급적 내용을 간과하고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호의적 의도에서라 하더라도 단순히 다문화주의적 개방만을 고집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가장 기만적인 형식이다.”(<레닌 재장전>, 132쪽) 

포퓰리즘이 갖는 이러한 ‘계급적 내용’ 때문에 지젝은 거기에서 ‘네오-파시즘’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자유주의적 태도에 반대합니다. “새로운 포퓰리즘적 우파와 좌파가 공유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인식 말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점입니다.  

반면에 “다문화주의적 관용에서 가장 웃기는 점은 물론 계급 구별이 그 안에 기입되는 방식이다. 상층 계급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인들은 그런 다문화주의적 관용을 이용하여 하층 백인 노동자들의 ‘근본주의’를 꾸짖는데, 이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에 (정치 경제적인) 모욕까지 더하는 꼴이다.”(<지젝이 만난 레닌>, 278쪽)  

마지막 문장은 “adding (ideological) insult to (politico-economic) injury”를 옮긴 것으로 앞뒤가 전도돼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상류계급 사람이 다문화주의적 관용을 말하면서 하층 백인들의 ‘근본주의’(혹은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경제적) 상처에다가 (이데올로기적) 모욕까지 더하는, 말하자면 상처에다 소금까지 뿌리는 짓이라는 것이죠(우리 같으면 빈곤층의 부도덕과 무교양에 대한 비판에 해당할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훈은 분명하다고 지젝은 말합니다. “근본주의적 포퓰리즘이 좌파적 꿈의 부재한 공백을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퓰리즘은 제도화된 탈정치의 어두운 분신으로 출현하고 있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합니다. 지젝의 주장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포퓰리즘’은 정의상 부정적인 현상, 거절에 기반한 현상, 심지어는 무력함의 암묵적 승인이다. 우리 모두는 가로등 아래 흘린 열쇠를 찾는 한 남자에 대한 오래된 농담을 알고 있다. 어디서 잃어버렸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캄캄한 구석에서 잃어버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는 왜 여기 불빛 아래서 찾고 있는가? 왜냐하면 여기가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포퓰리즘에는 항상 이런 종류의 속임수가 있다. 이것이 포퓰리즘이 오늘날의 해방적 기획이 기입되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의 해방적 정치의 주된 임무는 - 그것의 생사를 건 임무는 - (포퓰리즘처럼) 제도화된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포퓰리즘의 유혹을 피할 수 있는 정치적 동원의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제안해야 한다.”(<레닌 재장전>, 152-3쪽)

10.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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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풍경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5 23:55 
    <레닌 재장전>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다 보니 지난 2월 수유너머N에서 가졌던 화요토론회 자리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토론회 장면을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려놓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참이어서 들어가봤다(http://nomadist.org/xe/galary/13552). 이런저런 근심으로 무거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는다. 발표문은 이미 두 개의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10.
 
 
빵가게재습격 2010-0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로쟈 2010-02-24 18:34   좋아요 0 | URL
고생이랄 건 없는데, 다른 일들이 밀려서 문제지요.^^;

2010-02-24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4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10-02-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도 생각보다 번역이 좋지 못한가 보군요. 역시 꼼꼼히 독해하려면 원서와 대조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글을 읽으면서 생각난점 몇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위에 문화혁명당시 소위 상하이코뮌에 대한 마오의 대처를 보면 마치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레닌의 대처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마오나 레닌은 혁명이 인민 스스로에 의해 급진화되어 당의 통제를 벋어나는 시점에서 일종의 반혁명?을 통해 당에 의한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젝의 말대로라면 마오나 혹은 스탈린의 문제점은 혁명을 오히려 충분히 급진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하고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레닌의 전략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좀 모순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관되게 급진적이려면 레닌이나 마오 혹은 스탈린등이 주장한 당 주도의 혁명이 아니라 인민의 코뮌적인 직접지배를 목표로하는 그런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레닌이나 스탈린 혹은 마오식의 당주도에 의한 혁명이 될 경우 위에서 예로든 스탈린의 노멘클라투라에 대한 숙청도 그리고 마오의 문화혁명도 결국은 스탈린이나 마오의 개인숭배나 독재를 위한 통치전술의 일환으로서의 폭력일 뿐이 라는 해석도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민주주의"를 위한 신적 폭력이라기 보다는요.

따라서 지젝이 간과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당주도에 의한 혁명이나 권력의 속성이 가진 치명적 문제점을 과소평가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고 또 그가 말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급진적인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레닌이나 마오적 혁명전략보다는 오히려 아나키스트적인 코뮌적 권력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요.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이와같은 실패를 반복하기 위해서 참조해야 될것은 비록 권력투쟁과정에서 일종의 권력의 공백상태를 허용하게 되어 실패하기 쉬운 혁명인 일종의 코뮌적(혹은 아나키즘적) 혁명전략이 오히려 더 필요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파리코뮌이 러시아혁명보다도 더 인민에 의해 주도된 혁명이라는 점에서는 시사점이 많은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로쟈 2010-02-28 14:49   좋아요 0 | URL
지젝의 주장은 레닌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지만 그가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레닌 이전'이나 '레닌 말고'가 아니고요. '아나키스트적인 코뮌적 권력'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레닌주의와의 거리는 분명해보입니다...

yoonta 2010-03-01 21:01   좋아요 0 | URL
코뮌적 권력이라는 건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당주도의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레닌이나 스탈린이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시작하자는 이야기도 여기에 마찬가지로 적용시킬수있는 것이지요. 레닌이나 스탈린 혹은 마오가 실패했던 방법들을 반복하지 않기위한 것이므로.

로쟈 2010-03-01 22:37   좋아요 0 | URL
그렇담 '소비에트'도 그런 '코뮌적 권력'이 아니었던가요?..

yoonta 2010-03-02 00:21   좋아요 0 | URL
어떠한 소비에트인가에 따라 다르지요. 10월혁명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장악된 소비에트냐 아니면 10월혁명의 추동력이 되었던 자발적 저항조직으로서의 소비에트냐. 10월혁명이후의 소비에트를 본래적 의미에서의 노동자나 인민의 평의회로 보기는 힘들죠. 어디까지나 볼키를 위한 조직이 되었으므로. 따라서 레닌이 4월테제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외쳤을때의 그 소비에트는 10월 이후에 볼셰비키주도로 운영되는 소비에트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러시아아나키스트들은 10월 혁명이후 볼셰비키로의 권력집중현상을 이런 시각으로 비판하였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로라는 표어는 아나키스트들에게 결코 전적으로 수용뢸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10월봉기 이전까지는 그래도 행동을 촉구하는 '진보적 '외침이었다고 그는 (그리고리 막시모프) 설명했다. 그 당시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진영에 몰려들었던 자위주의자들이나 기회주의자들과 달리 혁명세력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러나 10월의 일격이후 레닌과 그의 무리들은 혁명적 역할을 포기하고 대신 정치적 지배자가 되었으며 소비에트를 국가권력의 저장소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소비에트가 권력의 매개체로 남아있는 한 모든 아나키스트들은 그것에 항거할 의무가 있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러시아아나키스트 1917> 101~102쪽)

이처럼 문제는 어떠한 소비에트냐 즉 파리코뮌적 소비에트냐 볼키라는 국가권력을 위한 소비에트냐를 구분해야 하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

오늘 저녁에 수유너머N에서 발표하는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 발표문 가운데 일부를 옮겨놓는다. 혹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고, 나머지 부분은 발표 이후에 다시 정리해서 올려놓을 예정이다.  

 

“우리는 레닌을 반복하고 재장전해야만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성좌에서 똑같은 추동력을 되살려내야 한다. 레닌으로의 변증법적 회귀는 "좋았던 옛 혁명기"를 향수 속에서 재연하는 것도,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옛 프로그램을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귀환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 - 더 정확히는 1914년의 파국으로 진보주의라는 긴 시기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붕괴되고 난 뒤 - 이라는 조건 속에서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는 "레닌의" 제스처를 현재의 지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라는 개념을 자본주의의 오랜 평화로운 확장이 끝난 1914년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식이 생겨난 1990년 사이의 시간으로 정의한다. 레닌이 1914년에 한 것을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해야만 한다.”(<레닌 재장전>)

지젝이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레닌 재장전>에 수록된 글들은 대부분 2001년에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컨퍼런스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레닌의 복구”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그것이 영어본으로는 <Lenin Reloaded: Toward a Politics of Truth>(2007)로 묶여서 나왔습니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도 영어본 <Revolution at the Gates>(2002)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습니다. 9.11을 다룬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2001) 직후에 나온 것인데, 그의 다산성과 순발력에는 자주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1년엔 논문 한두 편 쓰는 게 버거운 한국 학계의 현실과는 대비됩니다. 물론 ‘괴물’과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요). 올해만 하더라도 알랭 바디우와의 공저 <현재의 철학(Philosophy in the Present)>이 출간됐고, <종말의 시대에 살아가기(Living in the End Times)>가 이번 봄에 나올 예정입니다(슬로베니아에서 출간한 책과 공저들까지 포함하면 대략 56번째 책입니다). 2001-2002년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지젝의 ‘레닌을 반복하기’론은 1991년 소비에트 몰락 이후 숙고되어 90년대 후반에는 이미 전체적인 윤곽이 잡힌 걸로 보입니다.   



<지젝이 만난 레닌>의 기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던가요? “우리가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레닌주의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인 사상의 자유는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273쪽)는 것입니다. 지젝이 보기에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합의’만 유지된다면 아무리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관용/용인된다는 것입니다(똘레랑스는 언제나 강자의 윤리/논리죠. 한때의 프랑스 같은). “네 마음대로 말하고 써라. 단 지배적인 정치적 합의에 실제로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방해하지만 마라. 비판적 논제로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아니, 제발 그렇게 해 달라. 지국 생태계의 파국에 대한 예상. 인권 침해. 성 차별, 동성애 혐오, 반페미니즘. 멀리 떨어진 나라들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에서 점점 늘어나는 폭력. 제1세계와 제3세계, 부유한 사람들과 빈곤한 사람들 사이의 간극. 디지털화가 우리 일상생활에 가하는 강력한 충격...” 등등.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성문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합의만 유지될 수 있다면 무얼 해도 괜찮다는 것이고, 그러한 ‘자유’에 실상은 어떤 ‘금지’가 기입돼 있다는 것이 요점입니다(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조차도 제한받고 있는 우리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지젝이 나열한 여러 주제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국가나 기업의 지원하에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죠. 지젝이 들고 있는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인도에서 맥도널드가 감자 칩을 동물성(소의 지방에서 나온) 기름에 튀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맥도널드는 바로 사실을 시인하고 인도에서 파는 모든 감자 칩은 식물성 기름으로만 튀긴다고 약속합니다. 신속한 조치에 만족한 힌두교도는 다시금 감자 칩을 우적우적 씹기 시작하고요... 힌두교도가 자신의 전통을 방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근대성의 논리에 기입/포섭돼 있는 것이죠. 지젝이 보기에 맥도널드의 힌두교도 ‘존중’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생색내기’입니다. 우리가 어인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하진 않지만 그들의 환상을 굳이 깨뜨리지 않으려고 무해한 습관들을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외부인이 어떤 마을에 가서 그곳 관습들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서투르게 시도하는 것만큼이나 (인종)차별적인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관용은 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불에 태워 죽이는 힌두교의 전통에 이르면 쉽게 ‘불관용’으로 바뀝니다. 즉 ‘타자’가 ‘진짜 타자’가 아닌 경우에만 ‘관용’은 유지되며, 이것은 언제나 타자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의 함정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모든 타자의 향락에 무관심한 ‘성자적’ 태도, 보편적 대의를 믿는 ‘근본주의자들’의 태도입니다. 또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서사의 권리’는 “오직 동성애 흑인 여자만이 동성애 흑인 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하고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귀결됩니다(“니들이 게맛을 알어?”). “이런 식으로 보편화할 수 없는 특수한 경험에 의지하는 것은 언제나 명백하게 보수적인 정치적 제스처”입니다(“구관이 명관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정치도 해본 놈이 한다” 등).  

반대로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입니다. “오늘날 재발명되어야 할 레닌의 유산은 ‘진리의 정치’다. 자유주의적 정치적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모두 진리의 정치를 배척한다. 물론 민주주의는 소피스트들의 통치다. 오직 의견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체주의’ 체제 역시 진리의 닮은꼴만을 강요한다. 독단적인 ‘교시’의 기능은 통치자의 실용적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하지만 근본적 좌파의 목표는 “원칙 없는 관용적 다원주의”와 정반대입니다.

이러한 근본주의는 위험한 ‘극단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요? 지젝은 ‘좌익 소아병’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상기시킵니다. 그가 보기에 정치적 극단주의(extremism) 혹은 과잉 근본주의(excessive radicalism)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치(displacement) 현상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반대이자 제한으로, “끝까지 가는 것”의 거부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코뱅이 급진적 테러에 의존한 것은 경제 질서의 근본적 기초를 흔들어놓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인 행동화(acting out)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의 이른바 ‘과잉’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또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의 현실적(경제적 등) 원인들을 흔들어놓는 것으로부터 후퇴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 지젝의 반문입니다. ‘순수 정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됩니다. 그것이 정치 투쟁이 경제 영역을 참조해야만 제대로 독해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핵심적 통찰(정치경제학!)을 간과한다는 것입니다(지젝은 알랭 바디우가 ‘경제주의’와 결별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을 <국가와 혁명>의 레닌보다 더 좋아하는 것도 ‘순수 정치’를 주장하는 입장의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젝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경제와 정치 사이의 시차(視差)에 대한 고려라고 봅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두 옆얼굴이냐 꽃병이냐’라는 시각적 패러독스와 유사하다는 것이죠. 즉, 정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는 고작 ‘재화의 공급’으로 격하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는 한갓 기술 관료주의의 영역으로 축소됩니다. 레닌의 위대한 점은 이 두 수준을 함께 사고할 수 있는 개념적 장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는 데 있으며 ‘레닌을 반복하라!’는 지젝의 요구는 거기서 비롯됩니다. 경제가 핵심이지만 그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거나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일면적 슬로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세계화(반지구화) 운동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실상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때에만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이 될 수 있습니다(거꾸로 1990년 공산주의의 붕괴에 이어진 정치적 민주화는 사적 소유에 대한 광적인 충동을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두 겹의 싸움을 해야 한다. 첫째는, 그래, 반자본주의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식(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반자본주의는 아무리 ‘급진적’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유산을 실제로 문제로 삼지 않고도 자본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오늘날의 핵심적인 유혹이다.”(485쪽) 가령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인사이더>처럼 무자비한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다룬 영화들이 ‘반자본주의’를 표면상 내세우더라도 “대기업의 음모를 무너뜨리는 정직한 미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는 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의 견고한 중핵(민주주의) 자체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지젝이 ‘진정한 마오주의자’라고 칭하는 알랭 바디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적은 제국이나 자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한편, 자본주의의 혁명적인 ‘탈영토화’ 효과는 마르크스도 매혹되었을 만큼 강력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무자비한 동력으로 인간 상호작용의 모든 안정된 전통적 형식을 무너뜨렸습니다(“모든 견고한 것은 녹아 허공으로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자체가 자본주의의 궁극적 장애라고 진단했지만, 한편으론 이 내재적 장애/적대는 그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는 그런 의미에서도 대단히 막강한 체제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진단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수세기 만에 국제 질서가 가장 극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출발점에 서 있다. 이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유럽 열강들이 처음으로 패권 질서를 형성했던 시절 이후에 가장 대대적인 변동이 될 수 있다. 이 변화는 불가항력적이다. 전염성도 강하다. 그것은 우리의 일, 은행계좌, 희망 그리고 건강까지,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으로 번질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소련의 몰락, 금융위기처럼 단발성 변동이나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눈사태다.(...)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이 세계가 더 안정적이거나 이해하기 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죠수아 쿠퍼 라모, <언싱커블 에이지>)

 

“정치적 자유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시장경제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을 지칭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주창한 컨설턴트 지식인의 주장입니다. 반자본주의를 주창하는 좌파들만 “혁명이 문 앞에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죠. 그보다 한 걸음 먼저 내달리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혁명, 혹은 혁명적 자본주의가 아닌가 합니다(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자신의 원리 자체가 끊임없는 자기 혁명인 질서를 혁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컨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이건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마누라와 자식도 바꾸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요? 지젝은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회상장면을 한 예로 듭니다.  



주인공 카이저 소제가 집에 돌아와 보니 라이벌 갱들이 자기 아내와 작은 딸의 이마에 권총을 대고 협박을 합니다. 소제는 즉각 자기 아내와 딸을 쏩니다. 그리고 그는 라이벌 갱단 한 놈 한 놈을 그들의 부모, 자식, 친구들까지 모두 찾아내 죽여 버리겠다고 선포합니다. “강요된 선택의 상황에서 카이저 소제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죽임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미치거나 불가능한 선택을 한다. 이런 행동(act)은 무력한 자기 공격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체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상황의 좌표를 바꾸는 행동이다.”(<잃어버린 대의>, 258-9쪽) 이제 그러한 행동의 역사로서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를 잠시 훑어보기로 하겠습니다... 

10.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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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24 13:01 
    어제 수유너머N에서 발표한 글을 마저 옮겨놓는다. '코뮌적' 공간에서 '레닌주의'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한,다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밤기차로 지방에 문상을 가야 했던 탓에(오늘 새벽차로 올라왔다) 뒷풀이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발표회는 여러모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아래의 글은 약간 조정한 걸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이다.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
  2.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풍경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5 23:55 
    <레닌 재장전>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다 보니 지난 2월 수유너머N에서 가졌던 화요토론회 자리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토론회 장면을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려놓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참이어서 들어가봤다(http://nomadist.org/xe/galary/13552). 이런저런 근심으로 무거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는다. 발표문은 이미 두 개의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10.
 
 
아포지 2010-02-2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표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로쟈 2010-02-24 18:43   좋아요 0 | URL
^^

비로그인 2010-02-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젝.. 카이저 소제를 그렇게 호명했군요..

수유너머.. 후끈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도 기대 됩니다.

로쟈 2010-02-24 18:43   좋아요 0 | URL
기대에 부응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카스피 2010-02-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주얼 서스펙트,반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영화지요.근데 유주얼 서스펙트2란 영화가 나와서 기대했다가 벙 쩌버린 일인이었죠ㅡ.ㅜ

로쟈 2010-02-24 18:43   좋아요 0 | URL
제목 사기였던 것 같은데요...
 

한국사회에서 생전에 '신화'가 된 지식인은 많지 않은데, '리영희'는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이다. 최근 그의 팔순을 기념하여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이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마침 공동필자들 가운데 두 사람의 대담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12권짜리 <리영희 저작집>(한길사, 2006)까지는 넘보지 못하더라도 이 참에 한두 권 정도는 챙겨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아직 읽지 못한 <대화>(한길사, 2005)가 일순위이다.

경향신문(10. 02. 22) 경쟁에 지치고, 공통문화 없는 ‘모래알 청년세대’  

고은 시인이 ‘1970년대 대학생의 아버지’라고 썼던 리영희. 군부독재 정권이 ‘대학생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해 탄압했던 그를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리영희는 지난해 12월 팔순을 맞았지만 대학생 혹은 청년이라는 단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리영희 선생 팔순을 기념해 최근 출간된 <리영희 프리즘>(사계절)은 리영희를 이 시대 청년을 위한 교양의 기초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고병권, 천정환, 김동춘, 이찬수, 오길영, 이대근, 안수찬, 은수미, 한윤형, 김현진 등 10명의 각 분야 ‘논객’이 리영희의 삶과 사상이 던진 생각거리를 각각 풀어냈다. 필자로 참여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41)와 20대 논객 한윤형씨(27)가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대학생으로 뭉뚱그려지는 이 시대 청년세대의 교양과 삶, 책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청년세대의 교양
천정환(천) = 리영희 선생은 저희 세대만 해도 영향을 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리영희 프리즘> 기획서를 처음 받았을 때 한윤형씨가 필자에 들어 있어 흥미롭기도 했고 어떻게 볼지 궁금했습니다.

한윤형(한) = 리영희가 지금 20대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군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제가 쓴 글도 그런 취지인데 그때 리영희에 해당했던 것이 지금의 20대에게는 왜 없는가, 어떤 조건이 바뀌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옳은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리영희 선생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세대에겐 꼭 리영희를 읽지 않더라도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었을 텐데, 지금 시대는 텍스트로서 그런 것은 없습니다.

천 = 저희 세대는 미리 짜여져 있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의식화됐는데 지금은 같이 읽기라든지 세미나가 존재하지 않고 의식의 편차도 세대 안에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옛날말로 지식인스러운 태도를 갖고자 할 때 어떤 경로로 인식을 넓혀가는지 궁금합니다.

한 = 저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케이스인데, 인터넷을 별로 안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여기에서도 패턴이 좀 나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보는 쪽은 박노자의 영향력이 큰 것 같고, 인터넷 많이 하는 친구들은 진중권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강준만은 90년대 후반 학번에게 좀 더 영향력을 미쳤던 것 같고요. 어디까지나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들 얘깁니다만.

천 =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대학생 내부의 격차가 그야말로 극심하잖아요? 세대로 규정 당했지만 하나로 묶일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같은 대학생이지만 고민하는 주제나 행동하는 양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일테면 어떤 여학생이 소개팅을 할 때 서열상 어떤 위치 이하 대학의 남학생과는 절대 안 만나겠다고 말하더군요.

한 =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날에 비해 대학생 집단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대학진학률이 86%에 달합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90년대 초반만 해도 농촌 출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만 해도 같은 수준의 텍스트를 읽고 섞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같은 학교, 같은 과라고 해도 계층이 다르면 서로 안 섞이고 사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수능을 비슷하게 쳐서 들어와도 그 안에서 이미 계층이 갈라지는 것이죠.

청년세대의 현실
천 = 결국 대학생들이 끝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원자화하는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 방식처럼 ‘100만 청년학도’라고 호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부분에서 공동체성 같은 것들을 회복하거나 대학생 공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20대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해 복무하는 전사로 동일시하거나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역시 등록금 문제입니다. 대학생들이 영어와 컴퓨터 등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죠. 이건 전체 사회의 문제이자 자기 자신의 문제이고 내 주머니에서 돈을 갈취해가는 문제인데 정치의식이 없더라도 같이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한 = 설문조사를 보면 운동이 필요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많은데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들 합니다. 원자화가 완료된 상태에서 문제의식은 느끼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부모가 돈을 투자해서 대학만 가면 취직이 된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삶의 문제가 곧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천 = 작은 단위의 실천 같은 것이 중요하겠죠. 예를 들어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여학생자취연대’ 같은게 있더군요. 자취하는 여학생들이 같은 문제에 처해 있으니 같이 대응하자라는 취지인 것 같았습니다.

한 = 20대가 운동을 해서 당장 정권을 바꾸고 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부터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20대 내부의 논쟁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대끼리 서로 누가 옳네 그르네 하며 싸우면 20대가 보게 되고 힘이 세지는 것 아닌가 합니다.

청년세대의 책읽기
천 = 주제를 책읽기로 돌려보죠. 대학생들이 책을 덜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물론 문화적 조건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많이 보니까요. 저희 세대에 책은 사회과학, 인문·교양서 이미지가 강한데 2000년대 들어 인문사회과학 시장이 굉장히 쪼그라들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독자가 재생산이 안된다는 것이고 그 핵심은 20대 독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자기계발로서의 교양이든 삶의 태도나 지향점으로서의 교양이든 교양을 다 포기했다거나 열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20대는 어릴 적부터 아이폰을 갖고 노는 초등학생하고는 다른 세대이므로 책읽기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바쁩니다. 경쟁하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거죠.

한 = 제가 아는 후배는 이공계를 다니는데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자기 주변에 전공서적 이외에 다른 책을 보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바쁘니까요. 전공 외에도 영어, 컴퓨터, 중국어를 시간표를 짜놓고 공부합니다.

천 = 처절한거죠. 학원 5~6개씩 다니는 강남 초등학생들도 불쌍하지만 20대들도 자기 책임을 이행하느라 엄청난 압박에 시달립니다. 구조적인 문제라 어디서부터 뚫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간 경쟁, 대학 내부의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대학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당분간 희망은 없다고 봅니다. 청년문화가 붕괴된다고들 하는데 청년이라는 말 자체가 20세기 들어서면서 처음 쓰인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청년문화가 아예 없는 시대, 청년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10. 02. 21.  

P.S. 대담의 초첨은 리영희보다는 리영희라는 프리즘으로 본 이 시대의 청년문화인 듯싶다. 천정환 교수와 같은 세대인 나도 대학에 들어왔을 때 이미 리영희란 이름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그때는 이미 '리영회 신화 비판'이 오히려 힘을 얻기도 했다.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연이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그러한 비판의 배경이 돼 주었다. 특히 문학비평가 이동하의 비판이 기억에 남는다(어지간한 문학평론집은 다 읽어보던 시절이었다). 리영희 선생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로부터 멀어지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균형을 잡자면 '신화 비판' 이전에 '신화'를 먼저 읽었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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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0-02-22 09:06   좋아요 0 | URL
제가 리영희 선생의 소위<전-논>을 읽던 87년 봄날이 생각납니다.

인문관 마당에는 목련이 잔뜩 피었다가 하염없이 지고
전두환이 호헌을 이야기하던 87년 봄.
나름 신산스러웠던 이십대가 시작되었던 그해 봄날.

물론 한 인간의 삶이 책 하나로 바뀌는건 아니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참 예전 이야기네요.



로쟈 2010-02-24 18:40   좋아요 0 | URL
어케 저랑 비슷한 연배시네요.^^

비로그인 2010-02-22 16:55   좋아요 0 | URL
요기 위에분도 저와 같은 느낌이셨나봐요. 2007년 리영희님의 '대화'를 읽고는 제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면서 눈이 떠지는 경험을 했더랬습니다. 젊은이의 사상의 은사이시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도 사상의 은사인 셈이지요. 찜만 해두고 주문 전인데...빨리 주문해야겠습니다.

로쟈 2010-02-24 18:41   좋아요 0 | URL
필자들의 무료강좌도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23 17:45   좋아요 0 | URL
<전환시대의 논리>< 우성과 이성>에 한해 말하자면 70년대엔 대학생 수가 얼마 없었고,80년대에는 금서였던 기간이 많았으며,이미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젊은이들이 그런 책을 안 읽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이 책들에는 외교나 군사에 관한 내용이 많은게 과연 대학에 막 들어온 신입생들이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좀 아리송합니다.신문에서도 외교나 군사 기사는 잘 안 보는데 말이죠.

로쟈 2010-02-24 18:42   좋아요 0 | URL
창비 영인본 외판원을 교정에서 자주 보던 시절이었죠...

페크pek0501 2010-02-24 11:09   좋아요 0 | URL
리영희님에 대한 비판이 한때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고를 확 엎었다는 사실로 그는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흔들어 놓았으니...소설가 박완서님도 그의 저작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전 그래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알게 되었죠. 또 유시민님의 <청춘의 독서>에서도 그 분을 사상의 은사라고 썼지요.

어쨌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 주고 사고의 영역을 넓혀 주시는 분은 소중합니다.

로쟈 2010-02-24 18:42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뒤에 리영희 '선생'이 붙지요.
 
후스-지셴린-정수일

작년에 세상을 떠난 중국의 석학 지셴린(계선림) 선생의 에세이집이 두 권 더 출간됐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인생>(멜론, 2010), <병상잡기>(뮤진트리, 2010)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우붕잡억>(미다스북스, 2004)이 품절상태라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다 지나간다>(추수밭, 2009)까지 세  권이다. 노(老)석학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관련서평을 찾아서 옮겨놓는다.   

시사IN(10. 02 18) 아흔여덟 어르신이 말하는 인생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이런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전형적인 에세이집이다. 그러나 저자 지셴린(季羨林)은 결코 전형적이지 않다. 2009년 아흔여덟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중국인의 스승으로 널리 존경받았다. ‘나라의 큰 어르신’이라고나 할까. 독일에서 인도학과 고대 언어학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베이징 대학 교수,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위원, 베이징 대학 부총장 등을 지내면서 많은 연구 업적을 쌓았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지셴린은 답한다.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는 인생에 대한 질문의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그의 대답은 확고하다. “인생에 정말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면 인간 사회가 앞으로 꾸준히 발전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행운과 불행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행운과 불행은 서로 통한다. 행운이 찾아왔을 때는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해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또 불행이 왔을 때는 행운이 찾아올 것을 생각해 지나치게 낙심하지 말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또한 장수의 비법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셴린은 오랜 기간 감금당한 상황에서 고대 산스크리트 서사시를 중국어로 번역했다. 이런 경험이 삶의 행·불행에 대한 달관과 평정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글의 내용 대부분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 ‘아무나’가 다른 사람이 아닌 지셴린이기에 그 울림이 크고 깊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바른 삶의 태도로 장수한 어르신들은 그 연륜 자체가 요즘 말로 강한 ‘포스’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런 포스를 지닌 어르신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고 보면, 평범한 이 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진짜 바보는 요즘 들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도 바보가 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 세심하게 가꾸어야 한다. 가정이 화목해질 수 있는 방법은 정직과 인내뿐이다.” “다른 이의 존경을 받고 싶다면 당신에게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저 자기 나이만 믿고 유세를 부리면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의 글과 생각은 간단명료하고 솔직담백하다. 알싸한 고추냉이 맛이 아니라 담백한 나물 맛이다. 지셴린은 첫머리에 글의 주제, 소재, 때로는 일종의 결론까지 명료하게 제시하고 시작한다. “천하에 바보가 있을까? 있다.”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인생을 추구한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뒤져보아도 100%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 “두보는 그의 유명한 ‘곡강시’에서 ‘예로부터 일흔까지 사는 것은 드무노니’라고 읊었다.” 질문으로 시작하거나 확신에 찬 단정으로, 때로는 고전 인용으로 글의 방향을 확실하게 다잡고 시작하는 셈이다. 울림이 큰 글을 쓰는 데 효과적인 방안이라 하겠다.(표정훈_출판 평론가)  

10. 02. 21.   

P.S. 아흔 여덟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까 장수한 학자로 떠오르는 이는 일본 동양학의 태두로 불리는 모로하시 데쓰지(1883-1982)이다. <공자 노자 석가>란 책을 백세가 되던 해에 펴냈다는 석학이다. 원래 설 연휴 같은 때 펴보면 좋을 책들인데, 며칠 늦어지는 바람에 '뒷북'처럼 돼 버렸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석학 드미트리 리하초프에 대해서도 몇 자 적으려다가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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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21 16:17   좋아요 0 | URL
로쟈 님.저 노학자 말마따나 나이를 내세워 유세 부리는 못난 어른만 아니라면 인생의 후배들에게 존경은 못받아도 최소한 욕은 안 얻어먹을 겁니다.그러기 위해서 저는 하루빨리 우리나라 학교에서 선후배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관행이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10-02-24 22:52   좋아요 0 | URL
존대법이 있는 한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10-02-24 22:47   좋아요 0 | URL
노자님 마지막 문장에 동의 1표를 보냅니다.
그나저나 로쟈님 자서전(?)을 기다리는 광팬 1인이 책이 언제 나오냐고 묻더군요.

로쟈 2010-02-24 22:53   좋아요 0 | URL
편집자도 굉장히 궁금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