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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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읽다>는 김영하판 <소설과 소설가>(오르한 파묵) 혹은 <소설은 왜 읽는가>(김현)로 읽을 수 있다. 마침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의 <마담 보바리>도 다음주에 개봉한다. 영화 관객들이 이 참에 소설로도 읽어봤으면 싶다. 나대로의 <마담 보바리> 읽기는 <아주 사적인 독서>에 수록돼 있다...

 

영화는 상영 도중에 일어나서 나가려면 눈치가 보이지만 책은 혼자 읽는 것이어서 잠깐 책장을 덮는다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 -82쪽

플로베르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소설을 쓰겠다고요. 중심부에는 그 무엇이라도 좋은 것입니다. 플로베르는 중심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99쪽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입니다. -103쪽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04쪽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크레페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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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주는 쓴소리 -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줄 독한 충고
이토 모토시게 지음, 전선영 옮김 / 갤리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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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에 자주 들르라는 충고는 평범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지난 30년 넘게 해온 일이다. 십수 년 전부터는 인터넷 서점으로 자주 들르는 곳이 바뀌었을 뿐, 거의 매일같이 책을 구입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알라딘 통계를 보니 지난 1년간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이 1440권이다. 작년보다 152권 증가한 수치다).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면 서점에 자주 들르는 일, 그거였다. 그게 나였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늘 행복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고등학생 시절, 나처럼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동네 서점은 중요한 장소였다. 꼭 특정한 책을 사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서점에 들러 책 제목을 훑거나, 선 채로 책을 읽었다. 서점에 자주 들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트렌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가끔은 우연한 만남처럼 무심코 집어 들었다 사는 책이 내 인생을 바꿀 한 권의 귀한 책이 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자주 사서 예전보다 서점에 갈 일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서점만큼 나에게 매력을 선사하는 공간은 없다. 그러니 약속 시간이 비거나 근처를 지날 때 여유가 있다면 꼭 서점에 들러 보라. 작은 행동 하나로 당신의 인생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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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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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페터 비에리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 소망, 감정, 기억 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달리 표현해본다면, 자기 결정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들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문학이 있습니다. 문학은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읽기와 쓰기가 자기 결정력을 습득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28쪽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이제 상상력의 반경이 보다 넓어진 것입니다. 이제 더 다양한 삶의 흐름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 인간관계의 다양한 종류를 알게 됩니다. -28쪽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합니다. 우리는 정신적 정체성의 성공과 실패, 발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결정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패하면 어떻게 해서 실패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지요.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오직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 안에서 여러 가지로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28쪽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무의식의 판타지라는 깊은 기저에서 온 것일 때라야만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큰 매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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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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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 일로 후회하고 수시로

후회한 일 한 가지는

부산 제3부두 파나마 선적 살물선

떠나는 그 배에 손을 흔들었던 일

 

약속을 하고도 떠나지 않았던 일

그때 떠났더라면 뱃놈으로 늙어갔을지도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섬 여자 얻어 어부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그단스끄 함부르크 조선소 불법체류 노동자가 되었을지도

잠자는 나를 반쯤 겁탈했던

삼등항해사 게이 녀석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항구를 그리며 떠도는 삼류 화가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시베리아 순록 몰이꾼이 되었을지도

볼리비아의 무장 게릴라가 되었을지도

안데스의 목동 가우초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이곳에 없는 나 때문에

이렇게 변두리에서 가슴 치는 일로 나이 먹진 않았을지도

 

내게 많던 나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므로

나는 내가 꾸는 꿈보다 더 가짜일지도 모르지

실현되지 못하고 떠나버린 내가 더 나다울지도 모르지

그런 내가 떠난 곳도 저 먼 변두리

 

세계의 모든 변두리에서 나는 나를 만져볼 수 있네

세계의 변두리를 떠돌고 있는 수많은 나를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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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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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마음산책, 2015)은 보르헤스 여든의 인터뷰집이다(그는 여든 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수전 손택의 말>(마음산책, 2015)에 이어서 나온 걸 보면 작가 인터뷰가 시리즈로 나오는 듯싶어 기대가 된다. 인터뷰집을 이곳저곳 읽다가 '딱 보르헤스!'다 싶은 곳이 있어서 밑줄긋기를 해놓는다. 원서는 보르헤스의 다른 인터뷰집, 강연집과 함께 바로 주문을 했다. 퇴원 이후 첫 책주문이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 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글을 쓰고, 그 글들을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충고와 달리 무모하게 출판하는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게 내 운명인걸요.

내 운명은 모든 것이, 모든 경험이, 아름다움을 빚어낼 목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실패했고,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것이 내 삶을 정당화할 유일한 행위니까요. 끊임없이 경험하고 행복하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는 수밖에요. 나는 늘 이러저런 일들에 어리둥절해하고, 그러고 나서는 그 경험으로부터 시를 지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 -15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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