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의 신작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기 위해서 며칠전에 그 전작인 <콜래트럴>(2004)를 보았다. '당신이 없는 사이에' 개봉/출시된 영화였는지라 이번에 그런 영화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히트> 계열의 영화들을 나는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도시의 공기'이다. 올 한국영화 <사생결단>이 포착하고자 했던 부산의 밤공기 같은 거 말이다. 공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마이클 만은 일가견이 있다(남성 캐릭터는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뒷북이긴 하지만, 톰 크루즈가 드물게도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콜래트럴>의 영화평을 두 편 옮겨놓는다.

 

 

 

 

 씨네21(04. 10. 12) 삭막한 도시의 밤에 찾아온 악몽

-택시를 하루 전세 내 밤새 도심을 돌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섞어 뿌린 듯한 회색빛 머리칼, 딱 달라붙는 고급 회색 슈트를 입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빈센트(톰 크루즈)다. 이런 손님이라면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제격일 것이다. 노스스프링에서 유니온까지는 7분, 베니스까지는 3분. LA 시내 구간구간의 소요시간을 빠삭하게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10시간 안에 도심 다섯 군데를 돌며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라면 이런 프로페셔널 운전사를 골라야 한다.

-택시가 LA 야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심도 깊은 카메라로 잡아낸 이국적인 대도시의 밤풍경을 보라. 부감으로 잡아낸 풍경 속엔 밤하늘에 흩뿌린 듯한 빌딩의 노란 불빛과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야자수가 어울려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재즈로 편곡한 바흐의 가 넘실댄다.

-'G선상의 아리아'가 끝나자마자, 택시 위로 쿵 하고 둔중한 소리가 나는 동시에 앞 유리창이 깨지고, 근심없어 보이던 도심의 풍경화에 핏방울이 튄다. “넓기만 하고 삭막해서 정을 붙일 수 없는 도시”라는 빈센트의 투덜거림이 어쩐지 불길했다. 1700만명의 다인종 인구가 북적대는 도시, LA 여러 빛깔의 피부와 여러 다양한 냄새가 들끓는 이 대도시의 야경은 기시감을 안긴다.

-마이클 만의 1995년작 <히트>는 지하철 장면에서 시작, LAX공항에서 끝났다. 그는 9년 만에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와 LAX공항에서 문을 열고 지하철에서 문을 닫는다. 대로를 막고 벌어지는 경찰과 갱의 도심전으로 후끈거리는 도심의 열기를 전했던 그는 이번엔 600명의 엑스트라들이 발디딜 틈 없이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에서 총격전을 펼친다. <히트>에서 정유소, 사막 같은 주차장, 컨테이너 기지, 격납고 등 황량하고 거친 LA 공간을 그릴 때 마이클 만은 도시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나게 한 알 파치노의 경찰서 내부와 로버트 드 니로의 짙은 푸른색 통유리집은 인물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마이클 만이 얼마나 날카로운 감식안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니던가.

-오후 6시에서 이튿날 새벽 4시까지, 기사와 승객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숨막히는 긴장이 마이클 만이 담아낸 전부지만, LA 아스팔트 위로 심장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발톱을 들고 달려들 듯한 야수의 숨소리가 들린다. “당신에게 그 사람이 도대체 뭘 잘못했소.” “오늘 처음 봤어.”

-<히트> <인사이더> <알리>에서 펼친 마이클 만의 세계는 완벽주의 남성이 낭만적으로 패배하는 세계다. 지더라도 무릎 꿇지 않으며, 일에 관한 한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들 사이의 긴장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첫 살인사건 뒤 택시운전사는 살인의 이유를 따지고(이렇게 대담할 수가), 살인자는 60억 인구 중 하나가 죽었을 뿐이며 르완다 종족 학살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 죽은 사람의 운명과 다를 게 무어냐며 태연하게 대꾸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비추는 카메라는 이야기에 팽팽한 장력을 더해준다. 마이클 만의 영화가 보여주는 진경은 한발도 비켜설 생각이 없는 두 남성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화해의 암시를 잡아낼 때다.

-성큼 40줄에 들어서 돌연 연쇄살인마로 나타난 톰 크루즈의 강렬한 인상은 1999년 <매그놀리아>에서 서슴없이 “Respect the Cock”이라며 남자들에게 여자낚는 법을 가르치는 섹스강사 프랭크 매키를 연상시킨다. <매그놀리아>에서처럼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 겨워 더 센 척하지만 <콜래트럴>엔 아예 과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솜씨, 한 호흡도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는 법도 없이 마무리하는 자세는 살인청부업을 기예의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여기에 살인을 합리화하는 달변의 철학, 살인 뒤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찾는 재즈바가 우리를 경악시킨다.

-아마 맥스는 <히트> 이후 등장한 마이클 만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편한 인상을 주는 사내일 것이다. 고된 노동이 그를 힘들게 할 때마다 선바이저(햇볕을 가리는 차양)에 끼워넣은 몰디브 사진을 보거나 벤츠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엄마에겐 태연히 리무진 회사 사장이라고 속이는 이 사내에게 뭐 대단한 게 있을 수 있을까. 빈센트는 난처한 수수께끼로 목을 조여오는 악마다. 그가 맥스에게 던지는 제안은 살인을 돕거나 아니면 죽거나다. 맥스는 어떻게 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또 빈센트는 어떻게 맥스를 협박해 자신의 임무를 완성할 것인가. 관객은 빈센트의 손아귀에 잡혀 끌려다닌다.

-<콜래트럴>은 마이클 만의 대중적인 감각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600명의 한국인 엑스트라를 하루 12시간 동안 붙들고 찍은 나이트클럽 총격전의 생동감, 긴장과 이완이 꼼꼼하게 계산된 드라마에서 숙련된 장인의 기량이 배어나온다. 선명하게 잡은 도심의 야경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히트>와 <인사이더>가 유장하게 풀어낸 대형 벽화라면 <콜래트럴>은 꽉 짜인 소품이다. 모자란 듯한 품을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이 매끄럽게 메운다. 기운 자국 하나없는 장인의 솜씨임은 분명하지만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 묵직한 존재감은 없다.(이종도 기자)

씨네21(04. 10. 26) 무력한 남성들에게 권함

-빈센트라는 이름의 이 킬러는 좀 이상하다. 하룻밤에 다섯 건의 청부살인을 해치우는 프로이며, 더구나 누더기를 걸쳐도 귀티를 숨길 수 없는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킬러라면 누구보다 빛나는 액션영웅이라야 마땅한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그의 능숙한 솜씨를 거의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실수하거나 자신의 일을 불운한 택시 기사 맥스에게 떠맡긴다. 대신 말이 좀 많다. 영화 속의 킬러치고 그만한 다변가는 드물 것이다.

-<콜래트럴>은 좀 이상한 액션영화다. 숨가빠야 할 액션장면은 종종 생략되거나 지체되며, 대화는 오래 지속된다. 미모의 여검사와 택시 기사 맥스의 첫 대화는 스릴러의 도입부로는 지나치게 길다. 빈센트가 뜬금없이 맥스의 어머니의 문병을 가서 주고받는 말들도 청부살인과 무관하다. 무엇보다 빈센트는 택시 안에서 맥스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건 대화만은 아니다. <콜래트럴>은 야경의 스릴러다. LA의 밤을 밑그림으로 빚어낸 그 야경은 액션보다 오래 지속되며 눈부시게 푸르다. 카메라가 빌딩 숲 사이를 배회하거나 밤거리를 질주하거나 하늘로 날아오를 때, 스크린에 펼쳐지는 블루 톤의 파노라마는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과 몸을 섞으며 우울을 감염시킨다.

-<콜래트럴>의 주인공은 멋진 킬러가 아니라 푸른 어둠이다. 빈센트는 그 어둠에 속한 악몽이다. 어둠이 내릴 때 찾아와서 어둠과 함께 시신이 되어 사라져간다. 밤새 몇 사람이 죽었고 곧 해가 뜰 것이다. 빈센트는 맥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르완다에선 하루에 3만 명이 죽어. 내가 여기서 몇 사람을 죽인들 당신이 왜 새삼스럽게 호들갑이야.” 해가 뜨면 세상은 어제처럼 돌아가고, 빈센트의 방문은 악몽으로 기억되겠지만, 그 악몽이 쉽게 지워지진 않을 것이다.

-<콜래트럴>의 감독은 마이클 만이다. 그는 <히트>에서 그랬듯이 액션 스릴러의 얼개로 이야기를 짜놓고 그 주변에서 서성인다. 서성이며 풍경과 정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명예율을 잃어가는 수컷의 속울음 같은 무겁고 처연한 풍경과 정서다. 마이클 만은 장르의 세계에서 작업하면서도 플롯의 독재를 거부하는 드문 감독이다. 그의 장르영화는 그래서 대개 남성 캐릭터 드라마로 나아간다.

-마이클 만은 또한 지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그는 수컷의 명예율을 원시적 공격성과 가부장적 권위로 오인하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은 휴머니즘의 구호가 소음이 된 세상에서 자신의 육신을 지키는 것마저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전작 <알리>의 무하마드 알리조차 그랬다.

-육신의 보존에 실패하건 가까스로 성공하건 그의 영화는 그 불안의 심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거둔 최종적 성공은 힘겨운 자기 방어일 뿐이었다. <콜래트럴>의 킬러가 백인 남성의 우상 톰 크루즈이며 결국 그를 막아서는 택시 기사가 흑인이라는 건 정치적 올바름의 얄팍한 기술이 아니다. 장쾌한 액션을 원한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그러나 무력한 수컷으로서의 삶이 모멸스럽다면 이 영화와 함께 하룻밤을 맞기를 권한다. 다음날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남자의 시신을 싣고 어둠 속으로 어둠과 함께 사라져가는 열차는 아무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콜래트럴>은 그런 영화다.(허문영)

06.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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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8-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콜래트럴 정말 좋아해요. 이게 그 후속작이란 말이죠. 필히 봐야겠군요!!

로쟈 2006-08-1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이란 뜻은 아니구요, 히트-콜래트럴 계보를 잇는 영화라고 합니다...

nada 2006-08-1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애미 바이스랑 괴물이랑 놓고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괴물을 봤어요. 지금까진 만사마라 자부하고 살아왔지만.. 마이애미 바이스가 로맨스 위주라는 리뷰에 흔들렸죠. 근데 로쟈님 페이퍼 보니까 후회되어요..

로쟈 2006-08-1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네에 <마이애미 바이스>가 아직 안 들어와서(이번주부터 합니다) <괴물>을 봤는데요.^^ 마이클 만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또 아주 싫어하더군요. 꽃양배추님의 취향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전문 인터뷰어란 직업이 생겨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명함에 '인터뷰어'라고 돼 있을까?) 인터뷰집이 책으로 출간된 건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대담집'이 아닌 '인터뷰집'이란 타이틀을 건 책들 말이다. 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이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아야 하는 이가 지승호씨일 것이다. 비록 그의 책들을 두루 읽어보지 않았지만 주변의 소문이 그러하다.

 

 

 

 

그가 처음 낸 책은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인물과사상사, 2002)인데, 이후로 그는 (단독 단행본만 따져서) 거의 매년 두 권 꼴로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들, 예술가들과의 인터뷰집을 내왔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인물과사상사, 2003)의 출간 때부터이지만, '전문 인터뷰어'란 말이 아직은 생소하던 때였다. 나는 그 책을 미처 다 읽기 전에 이듬해 러시아로 떠났었고, 되돌아와서는 구내서점에서 2,000원에 할인판매하길래 '이런 좋은 책이!' 하며 또 사들었다(물론 10분도 되지 않아서 이전에 사둔 걸 기억해냈지만).

 

 

 

 

'당신이 없는 사이에' 그는 <우리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시와사회, 2003)와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 2004)를 출간했다. 아마도 인터뷰의 노하우를 터특한 때문인지 이듬해에는 <유시민을 만나다>(북라인, 2005)와 그의 '베스트'라는 <7인 7색>(북라인, 2005)을 연거푸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에 낸 것이 한국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영화감독 7인과의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수다, 2006)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지승호의 책이면서 동시에 한국영화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인터뷰집들과는 구별될 수도 있다.

 

 

 

 

한국영화감독과의 단행본 인터뷰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정성일이 기획한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연구, 2003)과 몇 꼭지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는 자료집 성격의 감독론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행복한책읽기, 2003) 정도이다(품절중인 이 책을 오늘 동네 CGV에 <괴물>을 보러갔다가 백화점 구내서점에서 구입했다). 거기에 내가 읽은 책을 보태자면 이효인의 <한국의 영화감독 13인>(열린책들, 1994)와 김정룡의 <우리 영화의 미학>(문학과지성사, 1997) 정도가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다룬 책들이다. 사실 내가 <감독, 열정을 말하다>를 손에 든다면 지승호의 인터뷰집이라서가 아니라 그러한 독서의 맥락에서이다.

책이 나온 건 몇 주 된 거로 아는데, 의외로 본격적인 리뷰들이 언론에 실리지 않았다. 지난주에 나온 두 개의 리뷰가 너무 소략해서 데일리서프의 저자 인터뷰까지 옮겨놓기로 한다.  

동아일보(06. 08. 12) 인생 흥행을 말하는 감독들

-“난 김기덕이 부러운데….” 영화 <괴물>로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사로 부러움을 사는 봉 감독이 흥행 실패로 한국을 떠나려 하는 김기덕 감독이 부럽다고 한다. 이유는? 김기덕은 자본의 눈치 안 보고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오늘 <괴물>을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인데, 사실 한국영화에서 '한강'을 본격적으로 다룬 건 김기덕의 데뷔작 <악어>(1996)가 처음 아니었나? 나는 <괴물>에 대한 독해는 그런 연장선상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성일의 <괴물>론을 곧 읽어봐야겠다).

-여기 우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7인의 솔직한 이야기가 있다.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한국 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유명한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철학에 대해 ‘까놓고’ 말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사회담론적인 얘기부터 연봉 200만 원으로 공사판 막노동까지 해야 했던 에피소드까지 영화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는 종횡무진 달려간다.

스포츠서울(06. 08. 11)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

-<괴물>의 봉준호,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짝패>의 류승완. 영화팬들에게 영화 자체나, 영화속 스타 못지않게 궁금증의 대상이 되는 인기 감독들을 조금 더 촘촘히 만날 수 있는 인터뷰집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난 신(scene)인류라는 소제목이 붙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수다). 지면이나 매체의 지향성 등에 따라 신문에서 보기 힘든 감독의 가치관이나 영화관 등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만날 수 있는게 이 책의 매력이다.

-지승호가 만난 7인은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을 비롯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간 큰 가족>의 조명남, <두사부일체1>의 윤제균 감독 등이다. 카페에서 감독의 집에서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는 ‘7인7색’등에서 보여준 인터뷰어의 치밀함을 바탕으로 밀도높게 이뤄졌다. 인터뷰어는 최근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대해, 만들었거나 만드는 중인, 혹은 만들 작품에 대해, 감독 데뷔전 영화광을 거쳐 연출부이던 시절에 대해, 제작사나 투자자 그리고 스태프와의 관계 등에 대해 끈질기게 파고들었고 인터뷰에 응한 감독들은 때로 격렬하게, 때로 열정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며 진솔하게 답했다. FTA와 관련된 묵직한 대화가 있다면 감독들간의 친분이나 배우들과의 얘기 등 가벼워서 더 귀가 솔깃한 ‘수다’도 실렸다.

-책 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 감독은 <괴물> 제작중 시간을 냈던 봉준호. “인간이 모이면 사회이고, 국가이고, 그것을 종적으로 놓으면 역사가 될 텐데,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은 거죠. 저한테는 그게 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대목에서는 <괴물> <살인의 추억> 등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봉준호 영화의 바탕이 느껴진다(*봉준호는 상업영화의 틀내에서 어떻게 가장 노골적인 반미영화가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영화운동'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한다).

-“살면서 아름다운 것을 보며 좋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것을 하나 남겨두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김지운 감독이나 “제 목표는 꾸준하게 다른 데 많이 휘둘리지 않고 솔직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장준환 감독의 소박한 바람에서(*<괴물>보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지구를 지켜라>는 왜 흥행에 참패했을까?) 한국 영화에 대한 희망이 새삼 읽히기도 한다.(성정은 기자)

데일리서프(06. 07. 31) 지승호 “노빠라면 한미FTA-스크린쿼터 반대해야한다”

-인터뷰 전문기자를 인터뷰한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인터뷰가 잡힌 후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부담은 커져갔다. ‘오히려 내가 인터뷰를 당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예전에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터뷰할 때 예외없이 노트북을 이용해 상대방의 말을 곧바로 받아쳤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노트북 없이 녹음기를 사용해봤다. 다행히 지 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한 시간 반 동안 하나를 질문하면 열을 대답해주는 세심함으로 기자의 근심을 덜어줬다.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등 7명의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라는 자신의 9번째 저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뷰집을 갓 출간한 그를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만났다.

-책은 잘 팔리나. 새 책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주 안 나가는 편은 아닌데 아직 이쪽 분야에서 책 내서 먹고 살기는 힘들다.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에서 음악이 많이 죽은 것에 비해 한국영화가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은 젊은 감독을 통해 한국영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한국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독 한 명 한 명이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또 그걸 읽고 나면 한국영화가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새 책이 영화감독, 문화에 대한 얘기이지만 사람들이 책을 덮었을 때 철학책같이 느껴지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지 씨는 이어 인터뷰를 책으로 내는 것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풍토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문학이란 게 사람에 대한 학문이니까 동시대 사람의 얘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것만큼 인문학적인 게 어디 있나. 그런데 대부분의 무언가 있는 사람들은 고상하게 서양의 옛날 이론이나 마르크스, 칸트 이런 것들을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핑크플로이드, 서태지도 시간의 지나면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고 여겨지지 않겠나(*그 전에 '인문학'이나 '고전'이란 말이 없어지지 않을까?). 사회과학도 한 사람 한 사람 모여서 사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사회학 영역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런 것을 폄하하는 풍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화가 난다”

-어느새 ‘인터뷰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익숙해져버린 지 씨이지만 그에게 인터뷰란 여전히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한 번은 인터뷰 전날 새벽까지 140개가 넘는 질문을 만들어놓고도 ‘이 사람이 날 바보로 보지 않을까’라고 고민하며 한 개의 질문도 던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진 적 있다고 그는 고백했다.

-따라서 그의 인터뷰 스타일은 스스로 말하듯 우직하다. 사전에 이루어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일본의 어떤 작가는 인터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쓴 모든 책을 다 읽고 관련 분야의 책을 50권 정도 읽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고 말한 지 씨는 이번에 7명의 감독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도 한 감독 당 일주일 이상의 준비시간을 보냈다.

“일단 이분들(감독)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기존에 (영화를) 두세 번 본 것도 있고 DVD를 따로 구해서 감독의 코멘트도 보고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체크했다. 내가 만난 감독님들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집요하게 준비해온 인터뷰어는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 스타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변신을 요구하기도 한다. 따로 기사로 가공하지 않고 문답 형식으로 풀어내는 그의 인터뷰가 너무 길다는 것. 이에 대해 지 씨는 “그것도(인터뷰를 가공하는 것) 필요하다면 다른 식의 텍스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터뷰이의 얘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대답했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그런 글에 조금은 거부감이 든다고 밝힌 지 씨는 사람들이 가장 읽기 편한 형태로 인터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내 인터뷰를 칭찬해주는 분들은 마치 옆에서 (인터뷰를) 듣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하고 눈높이가 비슷하기도 하고 대중들이 편하고 좋게 들을 수 있도록 말을 글로 옮기는 연습도 많이 했다. 글을 잘 써서 멋지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인터뷰이를 특별히 미화하거나 띄우려는 노력 없이 글을 읽고 나서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하고 느껴진다면 괜찮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좀 잘해왔지 않나 싶다”(웃음)

-일찍이 정치웹진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 코너를 운영하기도 했던 지 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온라인 글쓰기에 조금 뜸해진 이유를 물었다. “정치 쪽에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바뀔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조금 더 긴 전망을 가지고 모색해봐야 할 것 같다”고 지 씨는 말하는 동시에 조금은 아픈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웹진인 서프라이즈에서 한 때 활동했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조건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부 누리꾼들에 의해 맘고생이 심하다는 것.

“나는 어딜 가나 내 얘기를 해왔다. 서프라이즈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 갔다고 해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댓글 달리는 거 보면 상처가 된다. 책을 사달라고 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게 굉장히 정직한 지식노동자로서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책 내서 사달라고 얘기하는 게 왜 잘못됐나”

-지 씨는 이어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문희준도 32만개 댓글에는 강자가 아니다. 정신병원에 다닐 뻔 했다고 하지 않나. 내가 게시판에 글을 쓰니까 자신들의 어떤 부당한 얘기를 듣더라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소통을 안 하게 된다. 댓글을 안 읽거나 무시하게 된다. 소통이 끊어지고 그 다음에는 그런 것에도 상처받지 않는 사이보그들만 글을 쓰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글을 쓰는 다른 사이트에 로그인을 통해서만 댓글을 달게 했더니 아무도 욕을 하지 않더라고 지 씨는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씁쓸하기도 하고······ 자기 이름 걸고 얘기도 못하는 분들이 왜 그렇게 뒤에서는 야비하게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그는 “내가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정직하게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분들 때문에 너무 질렸다. 그런 것에 내가 상처받고 소모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년말 황우석 사태로 시끄러웠던 서프라이즈에 대해 지 씨는 “지금 와서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우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그는 황우석 박사를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이른바 과격했던 ‘황빠’라고 규정했다.

“PD수첩이 역풍 맞아서 폐지될 수 있는 상황까지 갔는데 끝까지 숨통을 조여오니까 반론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얼마 전 진중권 씨 감금사태에서도 보듯이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은 우리가 잘못됐다’라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너희는 매국노이고 우리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너희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다보니 더 소수화 될 수밖에 없고 중립적인 위치를 취한 사람에게는 비판적이 됐다”

-최근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모두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해서도 지 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국내 유명 영화감독을 7명이나 인터뷰한 그가 스크린쿼터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할는지 모른다.

스크린쿼터는 매우 바보같은 짓이다. 우리가 얻을 것은 막연한데 잃은 것은 확실하지 않나. 멕시코의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기 전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영화를 만든 나라다. 한국은 80~90편임에 비해 멕시코는 150편 이상이었다. 그런데 멕시코가 작년에 만든 영화는 12편이다. 예전에 영화 쥬라기공원 하나가 내는 수익이 현대차 총수출액보다 많다느니 하는 얘기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상품을 다른 공산품 팔겠다고 반토막 내려한다. 그것 굉장히 미련한 짓이다”

-지 씨는 이어 “이라크 파병 때 노 대통령은 오히려 더 반대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르는데 주위 사람들은 노 대통령을 엄호한다는 이유로 찬성을 해버렸다. 지지자들이 노 대통령을 더 어려운 쪽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라고 말하며 이번 한·미 FTA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 지지자라면 더 반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인 씨 말대로 FTA가 체결되고 나면 다음 정권에서 노 대통령이 청문회에 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FTA를 통해 만에 하나 손익분기 플러스가 되고 정권이 넘어가지 않더라도 양극화 등 일부 문제점은 생길 것이고 그러면 그 문제는 전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처럼 (노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면 훗날 청문회 상황도 가능하다고 본다. 진짜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새는 (노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지 씨는 ‘인터뷰 전문기자’라는 호칭에 대해 “내가 스스로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들이, 출판사에서 책을 팔려고 홍보를 위해 붙인 이름이다. 민망하지만 책을 팔아야 하니까 홍보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고······ 나는 별로 타이틀에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얼추 150~200명 정도를 인터뷰 해왔다는 그는 자신의 인터뷰 철학을 “어떤 사람은 지승호가 인터뷰 하면 목욕탕 벌거벗고 얘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라고 말하더라”라는 말로 대신 설명했다. 일부 기자들은 특종 욕심 때문에 긴 얘기 중 특별히 하나만 따서 본질을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은 인터뷰이가 오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지 씨는 말했다. 그는 “지승호는 최소한 그런 것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 그걸로 신용을 얻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은 아직 청소년기도 못 온 것 같다. 유아기는 벗어난 것 같고 소년기 정도가 아닐까” 굳이 산술적으로 얘기하자면 인터뷰집 100권 정도는 내고 싶고 그것으로 나중에 사람들에게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이번 새 책에 인터뷰를 넣고 싶었던 감독들이 몇 분 더 있었다. 또 지금까지 매년 지식인들을 통해 그 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왔는데 그런 성격의 책도 올해 내고 싶다”며 남은 2006년 후반기의 포부를 밝혔다(*후반기에 나올 책도 기대해보기로 하자).(백만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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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는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1931-1994)의 영화전집 출간 소식을 몇달 전에 한 영화잡지에서 읽은 듯한데, 교수신문에 이에 관한 동향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옮겨온다. 필자는 양창렬 특파원이며, 내용에 맞는 제목은 '기 드보르의 영화전집 DVD 세트와 저작집 발간의 의미'이다. 보통은 '의의'에 대해서 적게 마련이지만 필자는 그 '아포리아'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제목은 그냥 평범하게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라고 달아놓는다(상황주의는 신좌파 아나키즘의 일종이다). 

교수신문(06. 07. 23) "하나의 유령이 문화를 배회하고 있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이." 이것은 68년 1월의 ‘마가진 리테레르’, "상황주의자" 특집호에서 장-피에르 조르쥬가 했던 말이다. 기 드보르의 ‘영화 전집’ DVD 세트와 ‘저작집Œuvres’이 잇따라 발간됨에 따라, 대중들 사이에 40년 전의 아방가르드 유령들이 또 다시 출몰하고 있다. ‘영화 전집’은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이 기 드보르가 연출한 여섯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복원하고(*아싸야스는 한때 아내이기도 했던 장만옥을 주연으로 영화 <이마베프>와 <클린> 등을 찍은 엘리트 비평가 출신의 감독이다), 서한집에서 영화 관련 구절들을 발췌한 책자를 끼워 넣음으로써 전집으로서의 구색을 갖추었다.

‘저작집’은 기 드보르에 대한 연구서를 출판한 바 있는 뱅상 카우프만의 책임 하에 간행되었으며, 1천9백 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연대기 순으로 정렬된 기 드보르의 저작, 발표문, 기사, 편지, 사진 등이 담겨 있다. 이 두 도구 덕분에 기 드보르 및 상황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는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싸야스와 카우프만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이 작업들은 기 드보르의 전략의 아포리아를 제기한다(*물론 한국은 이러한 아포리아와 다소 무관하다. 기 드보르의 저작으론 <스펙타클의 사회>(현실문화연구, 1996)이 전부이기에. 이 책의 영역은 http://library.nothingness.org/articles/SI/en/pub_contents/4 참조. 국역본의 글 두 꼭지는 말미에 옮겨놓았다).

-오늘날 DVD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비 매체다. 상품이자 소유물이며, '사적 사용'에 제한된 자본주의 교환 법칙 및 소유권 이데올로기까지 고스란히 체화하고 있는 DVD(혹은 비디오)라는 매체는 스펙터클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극장(홈씨어터)으로 대변되는, 스펙터클의 일상생활 장악에 대한 고민 없는 복원은 반쪽에 불과하다.

-기 드보르가 <사드를 위한 울부짖음>(1952)에서 시도했던 실험들―백색 화면 위를 표류하는 화면 바깥의 목소리(voix off)와 검은 화면의 침묵의 교체, 그리고 영화 시작 3분 뒤에 들려오는 "영화는 없고, 시네마는 죽었다. 더 이상 영화는 있을 수 없다. 원한다면 토론으로 넘어가자"라는 도발적 선언―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목소리'와 '이미지'의 분리는 미학적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바깥의 삶과 스펙터클의 대립을 표현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바깥의 목소리, 꺼진 목소리―이 둘은 모두 voix off이다―는 스펙터클과 외양에 의해 박탈된 '언어 소통 가능성'을 되찾기 위한 봉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영화 클럽'에서 그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쏟아졌던 관객들의 반발과 상영 중단 해프닝은 오히려 기 드보르의 反-영화,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도구로서의 영화가 성공을 거둔 사례다. 화면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키우고(voix on)―극장, 그리고 스펙터클 안에서는 떠들면 안 된다― 삶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상황을 구축"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씨릴 네이라가 지적하듯이, 드보르에게 영화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스펙터클의 작동에 참여하므로, 영화는 스펙터클의 전복의 도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DVD에 담긴 매끈한 영상들은 이제 하나의 영화 '텍스트'이자, 이미지-표상으로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1984년에 친구, 편집자, 영화 제작자였던 제라르 레보비시가 암살된 이후, 기 드보르는 자기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금지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만에 다시 개봉된, 소문만 무성했던 ‘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에 씨네필들은 열광했고, 그들은 그 서정주의적 이야기 속에서 '모던 영화(cinema moderne)'의 기운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 현상은 드보르의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미학을 발견하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예술로서의 삶이나 삶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종말과 폐지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드보르의 전망을 흐리게 만든다.

-동일한 현상이 ‘저작집’에서도 나타난다. 필립 솔레르스는 드보르에 대해 "읽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저자"라고 말했다. 드보르의 구문은 혼란스럽지도 않고, 특별히 새로운 단어들을 담고 있지도 않지만, 그의 논조 자체가 글 속에서 파괴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의 글 속에서 논리적인 '추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계에서 드보르를 연구 대상으로 '전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작집’은 드보르의 아포리즘들 사이의 공백을 메움으로써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반면, 독자들의 전용(detournement) 가능성을 줄인다.

 

 

 

 

-‘르 피가로’의 서평은 "‘저작집’이 드보르의 저작들을 하나의 '고전'으로 만든다"라면서, 이 상황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한 편으로, 이제 드보르가 학계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드보르는 이제 아카데미에 포획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이미 드보르가 죽기 전에 가장 '스펙터클한' 케이블 채널인 카날 플뤼스(Canal+)에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도록 허락하고, 가장 '부르주아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에 자신의 저작의 재간행을 맡긴 것에서 시작된다.

-장 보드리야르는 상황주의자들이 체계 바깥에 위치한 삶과 상황을 구축하려는 "관념적인 (그러나 이미 통속적인 것이 되어버린) 유토피아"를 추종한다고 비판하며 스펙터클 개념을 지양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말년의 기 드보르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은, 보드리야르의 평가와는 정반대로 드보르가 스펙터클 체계 내에서 그 체계 자체를 이용, 보다 정확히는 "전용"함으로써 그 체계를 해체하려 했음을 보여준다(*납득할 만한 행동이란 얘기인가? 한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실패가 예견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면, 적어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지 않을까? 나로선 보드리야르의 견해를 쉽게 기각하지 못하겠다).

-기 드보르의 마지막 내기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이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자본"은 (정치적) 급진성마저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전유"하고 소비해버렸다. ‘영화 전집’과 ‘저작집’을 보면서, 우리가 한번쯤 아니 여러 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전략적' 질문들이다. 체계 안에서 체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06. 07. 25.

P.S. 아래는 <스펙터클의 사회>의 글 두 꼭지이다(인터넷상에 떠 있는 걸 퍼온 글인데, 더러 눈에 띄는 오탈자들은 국역본과 대조하여 교정했다. 원문의 출처는 국역본 참조).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피터 마샬)

-상황주의자들은 다다, 초현실주의, 문자주의에 의해 영향받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및 지식인들의 소규모 모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시와 음악을 융합시키고 도시경관을 변형시키고자 했던 무자주의 인터네셔널은 1957년 잡지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을 창간했던 집단의 직접적인 선구자였다. 처음에 그들은 주로 "예술의 폐지"에 관심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들 이전의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처럼 분리된 활동으로서의 예술과 문화라는 범주를 대체하여 그것들을 일상적 삶의 부분들로 변형시키고 싶어했다.

-문자주의자들처럼 그들은 노동에 반대하고 완전한 여흥을 옹호했다(*사진이 문자주의 작품). 자본주의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창조성은 엉뚱한 곳에 소모되고 억압받으며 사회는 배우들과 구경군들, 생산자들과 소비자들로 분할된다. 그리하여 상황주의자들은 다른 종류의 혁명을 원했다. 그들은 일단의 사람들이 아니라 상상력이 권력을 장악하기를 원했고 모든 이들이 시와 예술을 창작하기를 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선언했다. 노동과 권태따위는 지옥으로나 가라! 

-처음에 그 운동은 주로 예술가들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아스거 욘(*사진)은 가장 저명한 이였다. 1962년 이래, 상황주의자들은 점파 그들의 비판을 문화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측면에 적용했다. 기 드보르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다. 그는 문자주의 인터네셔널에 참여해 왔었고 <사드를 위해 절규함>을 포함한 몇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었다. 상황주의자들은 해방 저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 고취되어 특히 1차 인터네셔널 시기동안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재발견했으며 스페인 아나키스트들, 크론슈타트, 마크노주의자들Makhnovists(역주 : 마크노주의자는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였던 네스터 마크노의 지도 하에 1차 대전의 종전을 전후로 해 활동했던 우크라이나의 혁명 반란군을 말한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맞는 표기이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소련을 자본주의적 관료제로 묘사했으며 노동자평의회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이지만은 않았으며 특히 일상적 삶의 소외에 대한 앙리 르페브르의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혁명운동이 임금 노동자들의 대다수를 포함할 "확장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비록 추종자나 지도부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이견을 갖는 소수를 추방하는 것에 의해 차이를 다루었던 엘리트주의적 전위집단으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전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1967년이 끝나갈 부렵, 기 드보르와 라울 바네이겜은 각각 <스펙타클의 사회>와 <일상적 삶의 혁명>에서 상황주의 이론의 가장 정교한 해설을 제시했는데, 그것들은 1968년 학생반란 동안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원저자주: <아나키 매거진>은 매 호 바게이넴의 책 각 장들을 실어왔다. 가장 최근호에는 16장 「시간의 매혹」이 실려있다. - 퍼온이 주; 언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책에서 소개한 웹문서 출처는 워낙 오래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파리의 담벼락에 휘갈겨졌던 가장 유명한 구호들 중 다수가 그들의 테제로부터 나왔는데, 이를테면, "열정을 해방하라" "노동하지 말라" "죽은 시간 없이 살라" 등등이 그것이들이다.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구성운들은 영구 모임에서 결성된 회의체인 소르본느 점거 위원회에서 낭테르 대학의 성난 젊은이들과 공동작업했다. 1968년 5월 17일, 그 위원회는 소련 공산당에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와들와들 떨며 기다려라 관료들 노동자 평의회의 국제적 힘이 곧 너희들을 쓸어낼 것이다 인류는 최후의 자본가의 창자로 최후의 관료의 목을 매달때까지 행복치 못할 것이다 트로츠키와 레닌에 대항한 크론슈타트 수병들과 마크노주의자들의 투쟁 만세 1956년 평의회주의자들의 부다페스트 봉기 만세 국가를 타도하라." 스트라스부르, 낭트 그리고 보르도에서의 성난 젊은이들의 집단들 또한 상황주의자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캠퍼스에 '혼돈을 조직' 하는 것을 시도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결코 12명을 넘지 않았다.

-자신들의 분석을 통해 상황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관계들을 상거래 관계들로 바꾸어 버렸으며, 그리하여 삶이 "스펙타클"로 환원되었다고 주장했다. 스펙타클은 그들의 이론의 핵심적 개념이다. 여러 면에서 그들은 마르크스의 초기저작에 개진되어있는 소외관을 개정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과 자신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시회되어 자신이 소원한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노동자는 자신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는 독립적인 힘을 생산한다. 이 생산의 성공, 그것의 풍요는 생산자에게 박탈의 풍요로 되돌아온다. 그의 세계의 모든 시간과 공간의 그의 소외된 생산물의 축적과 함께 그에게 소원한 것이 된다..."

-점증하는 분업과 전문화는 노동을 무의미한 고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게이넴은 "컨베이어 벨트에서라면 창조성의 희화화를 기대하는 것 마저도 무익한 일이다" 라고 평한다. 그들이 마르크스게엑 덧붙인 것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소비를 증대시킬 사이비 욕구들을 창출한다는 인식이다. 의식이 생산의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그것이 소비의 지점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자 사회, "스펙타클적" 상품 소비의 사회이다. 오랫동안 생산자로서 극심한 경멸을 받아왔지만 이제 노동자는 소비자로서 후한 대접을 받으며 유혹당한다.

-동시에 현대 과학기술이 자연적 소외(자연을 상대로 한 생존을 위한 투쟁)를 끝장내기는 했지만 주인들과 노예들의 위계라는 형태를 취한 사회적 소외는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능동적인 주체들이 아니라 수동적인 객체들인 양 취급된다. 존재를 소유로 퇴행시킨 후 더 나아가 스펙타클 사회는 소유를 한갓된 외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로부터 결과하는 것은 경제적 부와 문화적 빈곤 간의 존재하는 것과 가능한 것간의 소름끼치는 대조이다. 바게이넴은 "누가 기아로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권태로 죽을 위험을 수반하는 세계를 원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상황주의자들의 탈출구는 먼 시간 저편의 혁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상적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었다. 세계에 대한 지각을 변형시키는 것과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동일한 일이다. 사람들은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권력관계를 병화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사회를 변형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들을 습관적인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으로부터 떠밀어 내기 위해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것을 뒤흔들어 놓을 상황들을 구성하고자 했다(독창적인 시도는 아니지만 화각제 복용에서 선禪 등에 이르기까지).

-화석화된 삶을 대신해서 그들은 행위들과 우연한 만남의 흐름인 표류와 사건들과 이미지들을 재배치하는 전용을 추구했다. 그들은 제조되는 스펙타클과 상품경제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반달리즘, 자의적 파업과 사보타주를 지지했다. 그러한 거부의 몸짓은 창조성의 징표들로 고려되었다.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역할은 대중들에게 그들이 이미 함축적으로 하고 있던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어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혁명과정 내에서 촉매로 작용하고자 했다. 일단 혁명이 도상에 오르면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소멸할 것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대신 상황주의자들은 화폐, 상품생산, 임금노동, 계급, 사적 소유, 그리고 국가가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사이비 욕구들은 진정한 욕망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이윤의 경제는 퇘락의 경제가 될 것이다. 노동과 적대 간의 분업과 적대는 극복될 것이다. 그것은 지도받고 희생하고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특징지어지는, 자유로운 유희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사회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모든 개인이 적극적이고도 의식적으로 삶의 모든 계기들의 재건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이 상황주의자들이라고 자칭한 것은 바로 모든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고 그들 자신의 캐락을 획득할 수 있는 삶의 상황들을 구성해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미래사회의 기본적 단위들에 관한 한 그들은 노동자평의회를 권고했는데, 그것들은 "기업과 이웃공동체에서의 최고 풀뿌리 회의체"를 의미했다.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코뮨과 마찬가지로, 그 평의회는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를 실천할 것이며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핵심적인 결정사항을 의결하고 집행할 것이다. 대의원들은 위임을 받은 것이며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다. 그 평의회들은 그리하여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국제적으로 연합할 것이다.

-국가와 모든 종류의 소외 공동체들의 구체적 초극을 요구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전망한다는 점에서 상황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에 근접해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구조들과 관료제를 공격하면서 바쿠닌에 준거했을 뿐 아니라 드보르 자신은 "1936년 무정부주의는 사실 하나의 사회혁명,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적 권력의 모델을 지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주의자들은 배타적 집단으로서의 엘리트주의와 이론과 실천의 정합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라는 양 면에서 전통적 무정부주의와 다르다. 협소하게 프롤레타리아트를 유일한 혁명 계급으로 강조하는가운데 그들은 다른 사회집단들, 특히 학생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간과했다. 그들은 도한 그들이 3월 22일 운동을 이들과 같은 주의주의자들이 아님을 주장했으며 노동자들에게 또 하나의 제한적 이데올로기로 부과되었던 한에서 무정부주의의 이데올로기도 거부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황주의자들은 전후 프랑스에서의 일시적인 경제호황을 자본주의 사회들에서의 영구적인 경향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했다. 경제적 풍요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이제 무모하리만큼 낙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 산업사회들에서는 과소생산뿐 아니라 과소소비 또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지역들, 특히 남반구에서는 사회적 소외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자연적 소외마저도 아직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황주의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 창조성에 대한 열망, 일상적 삶의 직접적 변형에 대한 강조를 통해 무정부주의 이론을 풍부화했다. 비록 상황주의 인터네셔널 집단은 1972년 전술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논쟁 끝에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관념은 무정부주의 및 페미니즘 서클들에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으며 때때로 거의 잠재의식적이다 싶을 정도로 펑크 록의 내용 및 스타일의 많은 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한 상황주의자의 죽음(죠슈아 글렌)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이자 선동적인 지식인 기 드보르가 지난 1994년 11월 30일 62세의 나이로 권총자살했다. 마침 그가 드디어  - 그에게는 당황스럽게도 - 유명인사의 대열에 오르고 있을 때 쯤이었다. 1968년 파리에서의 학생봉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단적인 예술가들과 좌익 작가들의 범유럽적 연합체인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창립자이자 아마도 가장 널리 읽혀진 논쟁가였기 때뭉에 그는 오랫동안 집중적인 검토의 대상이었다(*아래는 만년의 드보르 부부).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었던 많은 다른 예술가들, 활동가들, 혹은 지식인들이 그랬을 법한 것과는 달리 드보르는 매채의 조명을 회피했고 1968년 이후의 자신의 생애를 그림자 속에서 보냈다. 왜 그랬을까? 이는 그의 가장 저명한 에세이 선집인 <스펙타클의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서 그는 매체와 유명인사 숭배가 우리 모두를 최면상태와 수동적인 상태로 가둬 두라는 기존 질서의 명령을 실행하는 도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드보르는 그 도구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링구아 프랑카> 1995년 3/4월호는 자신이 "스펙타클" - 우리의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우리를 우리 노동의 과실들, 동료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 자신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광고, 매체 이벤트, 오락, 그리고 의사소통 기술의 무한정한 분출 - 이라고 칭한 것에관한 드보르의 이론들 대부분이 술집 단골들, 범죄자들, 그리고 그 상당수가 어느땐가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감금된 적이 있는 유토피아적인 음모가들 등의 그늘진 이들의 세계 속에서 안출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범죄자들 및 광인들과 함께 사는 것을 택하면서 드보르는 필사적으로 매개되지 않는 현실을 추구했던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현대적인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직접 삶에 속해있는 모든 것이 표상으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삶"이 잡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은 한 개비의 담배이며, "현실세계는 MTV 위에 펼쳐지는 끔찍하도록 매혹적인 무차별적인 다큐멘터리가 될 정도로 현실 자체는 스펙타클에 의해 전도되고 말았다.

-매개 그 자체가 - 단순히 쇼비지니스나 TV가 아니라 - 드보르가 진정으로 문제삼은 것이었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존재는 항상 도처에서 수동적인 소비를 고무하도록, 따라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직접적인 경험, 정서, 그리고 관계를 박탈하도록 디자인된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다. 우리는 스펙타클이 입 안에 넣어준 낱말들로 말하고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동작으로 제스츄어를 취한다. 한때 우리는 삶을 살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시청한다.

-드보르가 <스펙타클 사회에 대한 논평들>(Verso, 1990)에서 썼듯이 매체를, 가끔 과도하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때문에 어떤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 - 혹은 최소한 중립적인 - 공공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드보르에게 있어 매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전자메일과 인터넷을 예견하면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드보르는 "이 사회의 모든 행정업무와 인간들간의 모든 접촉이 이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힘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이는 이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국가로부터 우리 모두에게로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이다. 드보르에 따르면, 스펙타클은 대화를 허용치 않을뿐더러, 바로 대화의 대립물이다. 그것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대한 담화이다.

-<아나키 : 무장한 욕망을 위한 저널> 1994-95년 가을/겨울호의 사망 기사에 따르면, 드보르는 자서전 <찬사>(Verso, 1991)에 자신의 비명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 생애 내내 나는 파란만장한 시대, 극단적인 사회적 분열, 그리고 거대한 파괴만을 보았다. 아무런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성적이라거나 예술적이라고 통했던 서클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다." 

Beneath the Underground - Click Image to Close

-밥 블랙의 저서 <언더그라운드 밑에서>(Feral House, 1994)를 보면 드보르는 1961년 런던 현대 예술 연구소의 상황주의 전시회에서 "상황주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우리는 그따위 좆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라"라고 응답하고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나가버렸다고 한다. 자신들의 저작이 상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황주의자들은 사포로 책을 재본했고(이렇게 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같이 꽂혀 있는 다른 책들이 손상된다) 외화작품들은 자로 재서 판매했는데, 이후 이런 시도는 광범위하게 모방되었다. 물론 이것들이나 그들의 그 밖의 전략들 중 어떤 것도 오래도록 유효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들 중 많은 것은  - 켄넵이 편집한 <상황주의 인터네셔널 선집>(1981)에 잘 나와있는 것처럼 - 매체에 대항하기 위해 매체를 활용하는 매혹적인 시도들이다.

-개입과 비판의 지점으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따위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상황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예증이라도 하듯 상황주의자들은 1966년 스프라스부르 대학에서 프랑스 학생 엽합에 침투했고 그것의 기금을 2년 후의 사건에 한 몫을 했다고 믿어지는 풍자적인 소책자인 <학생의 삶의 빈곤에 대하여>를 인쇄하고 배부하는데 지출했다. 1968년의 봉기는 세계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실로,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한 논평들>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스펙타클로 하여금 새로운 방어기술을 습득하게 했을 분이다(재니스 조플린의 반물질주의적 노래 '메르세데스 벤츠'가 메르세데스사의 광고에 이용되는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1968년 5월은 상황주의자들이 세간의 이목을 받게 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그들은 바로 자신의 그 점증하는 인기에 1972년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을 해체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드보르는 그후 죽 은거를 해 왔는데, 1984년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제라르 르보비치가 살해된 후에는 자신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드보르가 무엇보다도 유명해지지 않길 바랬다면, 그는 도대체 왜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던 것일까? 확시리 매혹하거나 쾌락을 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검은색 화면에, 흐릿하고 되풀이되는 사운드 트랙의 드보르의 첫 영화 <사드를 위해 절규함>(1952)을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혹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쫒아내는 데 목적을 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면을 넘길수록 불투명성이 증대되는 <스펙타클의 사회>를 읽으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드보르의 작품이 항상 극도로 반스펙타클적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 말미에서 썼던 것처럼, 현대 통신기술에 의해 통일된 세계에서 우리는 추방자가 될 수 없다. 1990년대 초, 그는 자신의 책들의 재출판을 허용했고(이 책들은 - 슬프게도!  - 대성공을 거두었다.), 1994년에는, <아나키 : 무장한 욕망를 위한 저널>에 따르면, 심지어 그의 삶과 시대에 관한 기록영화에 참여하는 것까지 동의했다. 스펙타클은 마침내 그를 손아귀에 넣은 것일까?

-<린구아 프랑카>는, "자신의 작품이 이미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드보르를 자살로 내몰았으리라고 추정하며,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드보르는 자신이 그토록 정밀하게 기술한 세계 혹은 자신의 이론들이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식자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스펙타클의 사회의 증대하는 권력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참애낼 수 없었던, 한 명의 회한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그럴 듯 할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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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7-2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에 대해서는 저도 소시쩍?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죠..^^ 특히 그들의 일상적 삶을 혁명화하는 방식의 참신함과 아나키즘과의 만남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지금 다시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에 대한 글을 읽어봐도 그들의 주장에는 아직도 유효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통찰들이 대단히 급진적이면서도 너무 앞서나간 탓에 몇몇 소수의 전복적인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전유되었다는 문제점을 노출하긴 했지만요. 근데 사실 그게 문제점인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본주의사회내에서 얼마나 일상의 차원에서 전복적일수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어보니 인용문에 로쟈님의 코멘트는 별로 없으신 것 같은데.. 님은 문자주의나 상황주의식의 변혁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로쟈 2006-07-2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메트로 맑스주의>에서 기 드보르 장을 읽고 있습니다. 다른 일들이 많아서 진득하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물론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고 번뜩이는 통찰력에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한데, 기본적으론 일종의 '예술운동'이 아닌가라는 것이죠. 새로운 예술운동을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전화시켜보려고 했던. 하지만, 모든 아방가르드들의 운명과 전철을 되밟게 되는(펑크 록으로의 귀결!). 소위 '들뢰즈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데, 정치적 전위주의, 혹은 정치적 엘리트주의에 대해 저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멋있는 것과 믿을 만한 것은 좀 다른 것이죠...

yoonta 2006-07-2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적으론 예술운동이었죠..^^ 예술을 일상화하기 혹은 삶을 예술화하기..본문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었던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예술작품?에 대해 그의 추종자(혹은 배신자?)들이 열광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드보르의 노선에 역행하는 현상..이런 현상은 모든 사람들이 드보르만큼 통찰력과 감수성이 뛰어날수 없다는 어쩔수없는 현실에서 오는 결과죠. 그렇지만 그들의 실천들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포획되어버린 일상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포획이 매체나 매개 혹은 대리등을 통한 방식이라는 것을 밝혔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계속 그들의 이야기를 참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특히 예술과 일상의 삶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요. 단 그것이 정치운동에서의 전위주의나 엘리트주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한에서요. ^^
 

개봉예정작인 영화 <괴물>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예고편 기사와 리뷰들이 나와 있다. 따로 모아두고 아직 읽지는 않고 있는데, 이번주 ('씨네21'이 아니라) '한겨레21'에서도 관련기사를 싣고 있기에 못 이기는 척 하나만 읽어보기로 한다. 제목은 '한강의 괴물, 한국의 자본주의!'인데, 말하자면, '괴물'을 한국자본주의의 메타포로 읽고 싶다는 것. 필자인 신윤동욱 기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생존해온 우리네 가족에게 바치는 영화 <괴물>, 그 다리의 기형성과 흉측하게 벌어진 입은 천민자본주의를 은유하는가?"(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한겨레21(06. 07. 13) 한국에서 가족은 혈연 공동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다. 한국에서 개인에게 닥치는 위기는 공권력의 보호, 사회적 안전망을 통하기보다는 사적인 안전망을 통해 관리되거나 극복돼왔다. 예컨대 ‘한국은 어떻게 IMF 경제위기를 극복했는가’라는 분석에서 ‘가족의 부조가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을 메웠다’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 강두는 현서의 손을 잡고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괴물>은 그렇게 ‘한심한’ 강두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영웅이 한 명의 슈퍼 히어로나 지역의 시민들이 아니라 소시민 가족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변에 출현한 괴물에게 아이를 빼앗긴 일가족의 분투를 담고 있다.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송강호)에게 딸 현서(고아성)는 보물 같은 존재다. 어느 날 한강변에 출현한 괴물에게 현서가 잡혀가자 아빠 강두, 할아버지 희봉(변희봉), 삼촌 남일(박해일), 고모 남주(배두나)는 현서를 찾아나선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 대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물과 맞서 싸운 박강두네 가족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처절하고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우리의 가족들…. 사실 이 영화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바치는 영화다”라고 썼다. 감독의 헌사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해설로 들린다.

괴수영화의 공식을 거스르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첫 번째 은유를 꼽자면 한강이 아닐까. 한국의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은유된다. 집단적인 성공을 뜻하는 한강의 기적을 뒤집어 개인의 역사에 대입하면 ‘한강의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맞서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생존해왔다. 가족은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었고 ‘한 배를 탄 운명’이었지만, 가족은 또한 한강에 뜬 조각배 같은 불안한 운명 공동체였다. 급변하는 사회의 파고가 소시민 가정을 덮치듯, 한강의 괴물은 매점집의 아이를 빼앗아간다.

-한국 현대사가 그러했듯, 위기에 처한 가족은 공권력에 구조를 요청하지만 공권력은 가족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지로 몰아넣는다. <괴물>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현서에게 전화가 오지만 경찰은 현서의 생존을 믿지 않는다. 바이러스 감염자이자 정신질환자로 감금된 강두는 “내 말 좀 끊지 마. 내 말도 말인데”라고 항변하지만, 공허한 반향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제 강두 가족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러해왔듯이, 가족만의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한강의 괴물은 한국 자본주의를 은유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듯, 괴물의 탄생 배후에도 미국 아니 미군이 있다. <괴물>은 2000년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맥팔렌드 사건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하면서 시작한다. 2002년 미군이 뿌린 불행의 씨앗은 2006년 한강변에 등장한 괴물이 인명을 살상하는 참사로 이어진다. 미군이 만든 괴물은 미국이 배후인 한국의 자본주의와 공통점을 지녔다.

-괴물은 한국의 자본처럼 너무 크지도 완벽하게 유능하지도 않다. 한강의 경사 면에서 미끄러져 구르는 괴물을 보고 있지만, 마치 좌충우돌하는 한국 자본주의를 보는 듯하다. 또 제대로 자라지 못한 다리의 기형성과 다섯 갈래로 흉측하게 벌어진 입의 탐욕은 천민 자본주의의 기형성이나 폭력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괴물>은 괴수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초반부에 괴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할리우드 괴수영화의 공식을 거스른다. 괴물의 때이른 등장은 괴물의 정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의 고투가 영화의 중심이라는 선언이다. 한국적 괴수영화인 <괴물>에는 보통의 괴수영화처럼 도시 전체를 짓밟는 거대한 괴물도 없다.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위대한 영웅도 없다.


△ 봉준호 감독(맨 왼쪽)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영화를 19년 전에 떠올리고 3년 동안 만들어왔다. 언론 시사회에서 인사하는 <괴물>의 배우와 제작진들. 

-영웅 대신 가족이 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백수인 삼촌 남일은 현서를 찾아낼 단서를 찾아낸다. 집중력이 좋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양궁 선수인 고모 남주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틈만 나면 조는 답답한 인간인 강두도 순박한 부성애로 딸을 찾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강두네 가족은 개개인으로는 무능력하거나 결점투성이 인간이지만, 그들이 힘을 합치면 가까스로 영웅의 능력에 다가간다. 한국의 가족들은 그렇게 가까스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남성의 화염병, 여성의 활…

-<괴물>의 인물도 한국적이다. 세상에 대한 불평은 많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은 부족한 ‘고급 백수’인 남일은 한국 사회운동이 낳은 어떤 인간형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 양궁 선수인 고모 남주는 야무진 한국 여성상을 대표한다. 남성은 화염병을 던지고, 여성은 활을 쏜다. 공간적 연관성이 전혀 없지만, 이어놓고 보면 한국의 현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엮이기도 한다. 또 이동전화 선진국답게 이동전화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때때로 너무 ‘노골적’으로 읽힌다. 비유가 직접적인 만큼 인물의 행동이 예측 가능해 미스터리의 매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도 진폭이 적어서 대중영화로서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봉준호 감독은 콘크리트의 감독으로 불릴 만하다. <괴물>의 카메라에 잡힌 한강 다리와 하수구의 콘크리트는 도시의 삭막한 내면을 드러낸다. <살인의 추억>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던 터널의 이미지는 <괴물>에서 한강의 하수구로 이어진다. <괴물>에서 하수구는 어둠으로 빨려들어 가는 미로의 이미지를 통해 저마다의 미궁을 헤쳐온 한국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물론 <괴물>에는 봉준호식 유머도 심심찮게 심어져 있고, 한두 마디 금언도 들어 있다. 강두의 아버지 희봉의 한마디, “새끼 잃은 부모 속냄새를 맡아본 적 있어?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는 기억될 만한 명대사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슬픔을 못 이겨 몸부림치는 장면을 부감으로 잡아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보이게 하는 카메라의 유머도 빛난다. 변희봉, 송강호, 배두나의 연기가 기대대로 빼어나다면, 박해일의 연기는 기대보다 훌륭하다. 박해일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철없는 남자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현서 역을 맡은 10대 배우 고아성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하반기 한국 영화 최대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괴물>은 7월27일 개봉한다.

06. 07. 18.

P.S. '필름2.0'의 기사 하나도 스크랩 해놓는다. 타이틀은 "봉준호의 압도적 세계: <괴물>이 권력을 보는 시선"이며 필자는 이형석 기자(해럴드경제)이다. 영화를 보고 읽어봐야겠다...

필름2.0(06. 07. 18) <괴물>의 핵심은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다. <괴물>이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 혹은 자위에 대한 어떤 믿음을 드러낸다고 볼 때 이 영화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언술은 민족주의적 반미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 의미로 확장된다.

-그의 첫 단편 제목을 빌자면, 봉준호의 영화는 '지리멸렬'한 것들의 성스러움과 성스러운 것들의 지리멸렬함을 증명하는 데 바쳐진다. 영화적 흥분 또한 그 역설에서 발생한다. 성의(聖衣) 혹은 법복으로 위장했던 존재들이 실상은 하잘 것 없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음이 폭로되는 순간 관객은 웃거나 분노하거나 속시원해한다. 반대로 열등하고 우스꽝스러웠던 것들이 숭고한 의도와 행위를 보여줄 때 관객은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감동받는다. 이것은 봉준호의 영화가 매우 사려 깊고 지적인 성찰을 담은 빼어난 정치, 사회적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왜 놀라운 정서적 파괴력을 갖는 상업 영화인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괴물>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박강두의 모습은 모자라기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가 괴물에 잡혀간 딸이 살아 있다고 하소연하고 국가가 이를 외면할 때 관객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모자란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실상은 진실과 진심이고, 과잉된 권력체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거짓과 왜곡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낱낱이 확인한 관객의 가슴엔 웃음 대신 안타까움과 답답증, 분노가 들어선다. 딸을 구하기 위한 강두와 그의 일가족들은 괴물과 악전고투를 벌여갈수록 단련되고 유능해지며 숭고해진다. 박강두의 아버지와 동생 남일, 누이동생 남주, 딸 현서 등은 대체로 희극적으로 등장했다 비장하게 퇴장한다. 반면 군병력 출동으로 거창하게 등장한 국가권력은 갈수록 시시해지고 무력해지며 우스워진다. 첫 단편 때부터 보여준 봉준호 영화의 역설은 규모가 거대해진 세 번째 장편영화에 와서 한층 명징하고 풍부하다.

-그러므로 <살인의 추억>에 이어 이 작품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것은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다. 용산 주한미군기지에서 무단 배출한 포름알데히드에 의해 한강에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생겼다는 것이나 괴생물체로 인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미국이 개입한다는 등의 설정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듯 보인다. 자칫 이 영화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반미적인 텍스트로 오독할 여지다. 특히 먼저 개봉하는 강우석 감독의 매우 국수주의적이며 반일선동적인 <한반도>와 나란히 놓고 ‘반일’과 ‘반미’라는 먹기 편한 사냥감을 포획하려는 일부 언론과 평단의 의지를 비껴가기 어려운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自求) 혹은 자위(自衛)에 대한 어떤 믿음을 드러낸다고 볼 때 이 영화에 내포된 권력에 대한 비판적 언술은 ‘민족주의적 반미’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권력의 속성 중 하나는 ‘과시’다. 괴생물체가 출현해 한바탕 난리법석을 겪은 뒤 거대한 군병력이 한강변에 배치될 때 권력은 힘과 규모를 과시한다. 주한미군이 ‘(괴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본국의 승인 없이는 알릴 수 없다’고 발언할 때나 ‘휴대전화 번호추적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공무집행자가 말할 때 권력이 노리는 것은 ‘당신들의 배후엔 당신들이 알 수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 모종의 복잡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를 암시하는, 즉 ‘과시의 진술’이다. 행정절차 혹은 경영기술, 과학기술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물신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관료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권력은 늘 앎의 대상을 규정하면서부터 비로소 권력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미군은 괴생물체에 침묵하는 대신 ‘괴바이러스’를 언급함으로써 앎의 대상을 정의한다. 다시 인용하자면 ‘본국의 승인 없이는 알릴 수 없다’는 말은 앎의 대상과 함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권력은 대상을 창조 혹은 정의하고 분류하고 체계화하지만 문제는 앎의 대상은 괄호 쳐지고 출현은 끊임없이 지연되며 분류된 항들은 모두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그곳은 비어 있기 때문에 권력은 권력일 수 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화학공장’을 향한 폭격과 같고, ‘없는 괴바이러스’의 치료 같은 것이다(물론 ‘없는 괴바이러스’라는 설정은 미국의 이라크전을 연상시킨다).

-끊임없이 유발되는 공포는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잘 지적됐듯 권력이 스스로를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상적 테크닉이다. 박강두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영어로 이야기하는(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 앞에서 처방전을 마구 흘려 쓴 필기체 영어로 쓴다든가 굳이 영어로 된 의학전문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권위를 연상시킨다) 주한미군 스탭에게서 ‘노 바이러스’라는 말을 캐치해내고 서슴없이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 통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신화된 지식과 전문성이라는 관료제의 은밀한 권위는 순식간에 조롱당하고, 권력이 정의하고 분류시킨 항목들이 실상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2000년 맥팔랜드 사건과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의 일종인 에이전트 오렌지(영화에서는 괴바이러스 치료제인 ‘에이전트 옐로우’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라크전에 대한 명백한 참고와 인용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민족자주의 시각에서 반미적 텍스트로 읽을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미국을 빌어 권력에 대한 보편적 비판을 수행하고 풍자하는 텍스트에 가깝다.

-결국 권력은 가공의 적을 만들어 내거나 잘못된 타깃을 향함으로써 늘 오작동 하지만 오작동 그 자체가 개인과 대중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방식일 텐데, 그렇게 본다면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한 한강 투신자살자의 유언(“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국가) 권력을 향한 조소처럼 들린다. 반면 좀 과장하자면 얼빠지게 보였던 박강두 일가족은 오히려 직관적인 영리함을 가진 듯 보인다. 이는 마치 슬라보예 지젝의 논의에서 상징계의 빈 구멍 속으로 실재계가 침입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가로질러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봉준호의 세계에서의 역설과 대비가, <괴물>에서 한편으로는 ‘싸는 것’과 ‘먹(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송강호)이 무심결에 내뱉었던 "밥은 먹고 다니냐"가 화두라도 된 것처럼 이 영화에는 ‘먹(이)는 행위’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권력 혹은 시스템이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것으로부터 후반에 에이전트 옐로우를 살포하는 것까지 싸는 것, 곧 배설의 악순환 고리로 이뤄져 있다면, 박강두와 딸이 그 어디쯤 놓인 개인들의 고리는 먹(이)는 것, 곧 보호(양육, care)자가 되는 동시에 피보호자가 되는 선순환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말로 반복하자면 이 영화는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 혹은 자위에 대한 낙관적 믿음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의 시선은 초반부에 서슴없이 모습을 드러낸 괴물에 일단 꽂히지만 오히려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삼촌-고모를 거쳐 아버지로 끝맺는 개인들의 개별적 전쟁들과 먹(이)는 고리로 형성된 가족 모두의 분투야말로 이 영화의 드라마가 가진 압도적 감동과 힘의 근원일 것이다. 끝으로 수평적인 움직임이 주는 활력과 수직의 비극성을 교차시켜 한강에 숨을 불어넣은 카메라 워크의 탁월함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봉준호는 스필버그적 세계 안에서 비스필버그적인, 굉장한 세계를 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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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영화 <수퍼맨 리턴즈>를 떠올리시지 못한 분들이라면 낭패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비디오로나 보게 될 듯하지만, 최근에 개봉된 이 영화에 대한 사전인지 차원에서 리뷰 하나를 옮겨놓는다. '오동진의 동시상영관'에서 가져온 것인데, 예전엔 YTN의 '씨네24'에서도 곧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영화평론가 그 사람이다(강우석 감독에 대한 책도 냈다). 가장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의 핵심을 잘 짚어준다. <수퍼맨 리턴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문화일보(06. 07. 04) 돌아온 수퍼맨을 다룬 영화 <수퍼맨 리턴즈>는 양가적이고 중의적인 영화다. 양가적이고 중의적이라면 어디 <수퍼맨 리턴즈>뿐이겠는가.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여름철에 집중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죄다 중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들이다.

-<수퍼맨 리턴즈>야말로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세계의 각종 현안을 미국인(물론 크립톤 행성 출신이긴 하지만, 미국인 농부에 의해 길러진) 영웅이 혼자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식의 강박증을 갖고 있는 모습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퍼맨이란 초현실적 캐릭터가 처한 여러 상황을 통해 미국의 현재를 성찰해내려는 태도가 읽히기도 한다. <수퍼맨 리턴즈>는 그렇게, 후자의 의미로 더 읽힐 수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팍스 아메리카나’의 이데올로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이번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는 거기서 몇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지금의 미국사람들이 혹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진정한 수퍼맨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그린다. 예컨대 이런 얘기를 통해서다. 극중에서 수퍼맨의 연인인 로이스(케이트 보스워스)는 5년간 말없이 자신 곁을 떠나 있었던 수퍼맨 때문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녀는 ‘왜 우리는 더 이상 수퍼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란 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데다 수퍼맨 따위는 싹 잊은 척하고 편집국장의 조카인 리처드(제임스 마스덴)와 오랜 동거 끝에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시 펜을 들어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녀의 새 기사는‘우리에게 수퍼맨이 필요한 이유’다.

-애인 로이스가 왔다갔다 한 것처럼 우리들 역시 수퍼맨에 대한 애증이 왔다갔다 했다. ‘수퍼맨 시리즈’가 처음 시작됐던 1978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수퍼맨을 원했다. 영웅을 원했다. 자신들을 이끌 진정한 지도자를 원했다. 베트남전의 후유증과 만성적인 경기불황으로 극도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너무나 지긋지긋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레이건 시대가 개막되고,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라는 대증요법에 따라 일시적인 대 호황국면이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그토록 갈망했던 영웅을 저버렸다. 영화속 로이스가 ‘더 이상 수퍼맨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사람들 역시 수퍼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라졌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극단적 양극화로 고통받고 있다. 로이스가 그랬듯이 사람들 역시 ‘수퍼맨이 다시 필요해진 것’이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수퍼맨이 맨 처음 해결하는 사건은 여주인공 로이스 등 기자단을 태운 비행기가 양 날개를 잃은 채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한가운데로 추락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사실 수퍼맨의 영원한 경쟁자인 렉스 루터가 조장한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비행기 사고로 대규모 사상자가 날 뻔했던 그 같은 상황은 단박에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따라서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또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곧바로 상징해낸다. 미국은 9·11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퍼맨 리턴즈’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많이 보면 미국문화병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단선적인 생각이다. 편협한 생각이다. 영화는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수퍼맨 리턴즈’같은 영화야말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문화뿐 아니라 지금의 미국사회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수퍼맨에게 자꾸 마음이 끌리는 건 그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기도록 할 만큼 끌리는 건 아니다. 근데, 크립톤성에도 성형외과가 있나?)

06.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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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7-1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동진의 '우왕좌왕'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슈퍼맨 리턴즈]에 대한 묘사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이 영화는 엑스맨의 마그니토(2차 세계대전의 폴란드수용소에서 살아남은)가 슈퍼맨(메시아)으로 변신한 얘기에 가깝습니다. 너무 우아하게 나오니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거죠. 크립톤행성의 출신자/유태인/게이가 우아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면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하며 바라보면 좋을 것을...

로쟈 2006-07-1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cus님의 우아한 리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님,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