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의 신작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기 위해서 며칠전에 그 전작인 <콜래트럴>(2004)를 보았다. '당신이 없는 사이에' 개봉/출시된 영화였는지라 이번에 그런 영화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히트> 계열의 영화들을 나는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도시의 공기'이다. 올 한국영화 <사생결단>이 포착하고자 했던 부산의 밤공기 같은 거 말이다. 공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마이클 만은 일가견이 있다(남성 캐릭터는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뒷북이긴 하지만, 톰 크루즈가 드물게도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콜래트럴>의 영화평을 두 편 옮겨놓는다.

 

 

 

 

 씨네21(04. 10. 12) 삭막한 도시의 밤에 찾아온 악몽

-택시를 하루 전세 내 밤새 도심을 돌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섞어 뿌린 듯한 회색빛 머리칼, 딱 달라붙는 고급 회색 슈트를 입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빈센트(톰 크루즈)다. 이런 손님이라면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제격일 것이다. 노스스프링에서 유니온까지는 7분, 베니스까지는 3분. LA 시내 구간구간의 소요시간을 빠삭하게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10시간 안에 도심 다섯 군데를 돌며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라면 이런 프로페셔널 운전사를 골라야 한다.

-택시가 LA 야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심도 깊은 카메라로 잡아낸 이국적인 대도시의 밤풍경을 보라. 부감으로 잡아낸 풍경 속엔 밤하늘에 흩뿌린 듯한 빌딩의 노란 불빛과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야자수가 어울려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재즈로 편곡한 바흐의 가 넘실댄다.

-'G선상의 아리아'가 끝나자마자, 택시 위로 쿵 하고 둔중한 소리가 나는 동시에 앞 유리창이 깨지고, 근심없어 보이던 도심의 풍경화에 핏방울이 튄다. “넓기만 하고 삭막해서 정을 붙일 수 없는 도시”라는 빈센트의 투덜거림이 어쩐지 불길했다. 1700만명의 다인종 인구가 북적대는 도시, LA 여러 빛깔의 피부와 여러 다양한 냄새가 들끓는 이 대도시의 야경은 기시감을 안긴다.

-마이클 만의 1995년작 <히트>는 지하철 장면에서 시작, LAX공항에서 끝났다. 그는 9년 만에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와 LAX공항에서 문을 열고 지하철에서 문을 닫는다. 대로를 막고 벌어지는 경찰과 갱의 도심전으로 후끈거리는 도심의 열기를 전했던 그는 이번엔 600명의 엑스트라들이 발디딜 틈 없이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에서 총격전을 펼친다. <히트>에서 정유소, 사막 같은 주차장, 컨테이너 기지, 격납고 등 황량하고 거친 LA 공간을 그릴 때 마이클 만은 도시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나게 한 알 파치노의 경찰서 내부와 로버트 드 니로의 짙은 푸른색 통유리집은 인물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마이클 만이 얼마나 날카로운 감식안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니던가.

-오후 6시에서 이튿날 새벽 4시까지, 기사와 승객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숨막히는 긴장이 마이클 만이 담아낸 전부지만, LA 아스팔트 위로 심장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발톱을 들고 달려들 듯한 야수의 숨소리가 들린다. “당신에게 그 사람이 도대체 뭘 잘못했소.” “오늘 처음 봤어.”

-<히트> <인사이더> <알리>에서 펼친 마이클 만의 세계는 완벽주의 남성이 낭만적으로 패배하는 세계다. 지더라도 무릎 꿇지 않으며, 일에 관한 한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들 사이의 긴장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첫 살인사건 뒤 택시운전사는 살인의 이유를 따지고(이렇게 대담할 수가), 살인자는 60억 인구 중 하나가 죽었을 뿐이며 르완다 종족 학살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 죽은 사람의 운명과 다를 게 무어냐며 태연하게 대꾸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비추는 카메라는 이야기에 팽팽한 장력을 더해준다. 마이클 만의 영화가 보여주는 진경은 한발도 비켜설 생각이 없는 두 남성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화해의 암시를 잡아낼 때다.

-성큼 40줄에 들어서 돌연 연쇄살인마로 나타난 톰 크루즈의 강렬한 인상은 1999년 <매그놀리아>에서 서슴없이 “Respect the Cock”이라며 남자들에게 여자낚는 법을 가르치는 섹스강사 프랭크 매키를 연상시킨다. <매그놀리아>에서처럼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 겨워 더 센 척하지만 <콜래트럴>엔 아예 과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솜씨, 한 호흡도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는 법도 없이 마무리하는 자세는 살인청부업을 기예의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여기에 살인을 합리화하는 달변의 철학, 살인 뒤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찾는 재즈바가 우리를 경악시킨다.

-아마 맥스는 <히트> 이후 등장한 마이클 만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편한 인상을 주는 사내일 것이다. 고된 노동이 그를 힘들게 할 때마다 선바이저(햇볕을 가리는 차양)에 끼워넣은 몰디브 사진을 보거나 벤츠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엄마에겐 태연히 리무진 회사 사장이라고 속이는 이 사내에게 뭐 대단한 게 있을 수 있을까. 빈센트는 난처한 수수께끼로 목을 조여오는 악마다. 그가 맥스에게 던지는 제안은 살인을 돕거나 아니면 죽거나다. 맥스는 어떻게 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또 빈센트는 어떻게 맥스를 협박해 자신의 임무를 완성할 것인가. 관객은 빈센트의 손아귀에 잡혀 끌려다닌다.

-<콜래트럴>은 마이클 만의 대중적인 감각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600명의 한국인 엑스트라를 하루 12시간 동안 붙들고 찍은 나이트클럽 총격전의 생동감, 긴장과 이완이 꼼꼼하게 계산된 드라마에서 숙련된 장인의 기량이 배어나온다. 선명하게 잡은 도심의 야경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히트>와 <인사이더>가 유장하게 풀어낸 대형 벽화라면 <콜래트럴>은 꽉 짜인 소품이다. 모자란 듯한 품을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이 매끄럽게 메운다. 기운 자국 하나없는 장인의 솜씨임은 분명하지만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 묵직한 존재감은 없다.(이종도 기자)

씨네21(04. 10. 26) 무력한 남성들에게 권함

-빈센트라는 이름의 이 킬러는 좀 이상하다. 하룻밤에 다섯 건의 청부살인을 해치우는 프로이며, 더구나 누더기를 걸쳐도 귀티를 숨길 수 없는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킬러라면 누구보다 빛나는 액션영웅이라야 마땅한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그의 능숙한 솜씨를 거의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실수하거나 자신의 일을 불운한 택시 기사 맥스에게 떠맡긴다. 대신 말이 좀 많다. 영화 속의 킬러치고 그만한 다변가는 드물 것이다.

-<콜래트럴>은 좀 이상한 액션영화다. 숨가빠야 할 액션장면은 종종 생략되거나 지체되며, 대화는 오래 지속된다. 미모의 여검사와 택시 기사 맥스의 첫 대화는 스릴러의 도입부로는 지나치게 길다. 빈센트가 뜬금없이 맥스의 어머니의 문병을 가서 주고받는 말들도 청부살인과 무관하다. 무엇보다 빈센트는 택시 안에서 맥스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건 대화만은 아니다. <콜래트럴>은 야경의 스릴러다. LA의 밤을 밑그림으로 빚어낸 그 야경은 액션보다 오래 지속되며 눈부시게 푸르다. 카메라가 빌딩 숲 사이를 배회하거나 밤거리를 질주하거나 하늘로 날아오를 때, 스크린에 펼쳐지는 블루 톤의 파노라마는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과 몸을 섞으며 우울을 감염시킨다.

-<콜래트럴>의 주인공은 멋진 킬러가 아니라 푸른 어둠이다. 빈센트는 그 어둠에 속한 악몽이다. 어둠이 내릴 때 찾아와서 어둠과 함께 시신이 되어 사라져간다. 밤새 몇 사람이 죽었고 곧 해가 뜰 것이다. 빈센트는 맥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르완다에선 하루에 3만 명이 죽어. 내가 여기서 몇 사람을 죽인들 당신이 왜 새삼스럽게 호들갑이야.” 해가 뜨면 세상은 어제처럼 돌아가고, 빈센트의 방문은 악몽으로 기억되겠지만, 그 악몽이 쉽게 지워지진 않을 것이다.

-<콜래트럴>의 감독은 마이클 만이다. 그는 <히트>에서 그랬듯이 액션 스릴러의 얼개로 이야기를 짜놓고 그 주변에서 서성인다. 서성이며 풍경과 정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명예율을 잃어가는 수컷의 속울음 같은 무겁고 처연한 풍경과 정서다. 마이클 만은 장르의 세계에서 작업하면서도 플롯의 독재를 거부하는 드문 감독이다. 그의 장르영화는 그래서 대개 남성 캐릭터 드라마로 나아간다.

-마이클 만은 또한 지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그는 수컷의 명예율을 원시적 공격성과 가부장적 권위로 오인하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은 휴머니즘의 구호가 소음이 된 세상에서 자신의 육신을 지키는 것마저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전작 <알리>의 무하마드 알리조차 그랬다.

-육신의 보존에 실패하건 가까스로 성공하건 그의 영화는 그 불안의 심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거둔 최종적 성공은 힘겨운 자기 방어일 뿐이었다. <콜래트럴>의 킬러가 백인 남성의 우상 톰 크루즈이며 결국 그를 막아서는 택시 기사가 흑인이라는 건 정치적 올바름의 얄팍한 기술이 아니다. 장쾌한 액션을 원한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그러나 무력한 수컷으로서의 삶이 모멸스럽다면 이 영화와 함께 하룻밤을 맞기를 권한다. 다음날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남자의 시신을 싣고 어둠 속으로 어둠과 함께 사라져가는 열차는 아무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콜래트럴>은 그런 영화다.(허문영)

06.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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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8-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콜래트럴 정말 좋아해요. 이게 그 후속작이란 말이죠. 필히 봐야겠군요!!

로쟈 2006-08-1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이란 뜻은 아니구요, 히트-콜래트럴 계보를 잇는 영화라고 합니다...

nada 2006-08-1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애미 바이스랑 괴물이랑 놓고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괴물을 봤어요. 지금까진 만사마라 자부하고 살아왔지만.. 마이애미 바이스가 로맨스 위주라는 리뷰에 흔들렸죠. 근데 로쟈님 페이퍼 보니까 후회되어요..

로쟈 2006-08-1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네에 <마이애미 바이스>가 아직 안 들어와서(이번주부터 합니다) <괴물>을 봤는데요.^^ 마이클 만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또 아주 싫어하더군요. 꽃양배추님의 취향에 맞추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