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넷의 신작 <투게더>(현암사, 2013)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협력'이란 주제를 다룬다면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세넷은 협력이란 무엇인지 정의한 다음에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약화돼 왔으며 또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를 탐색한다. 리뷰에서는 '약해진 협력'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는데, 아무래도 책의 풍부한 내용을 짧은 리뷰로는 다 카바하기 어렵다. 박식한 사회학자의 우아한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중앙일보(13. 03. 16) 현대사회는 어떻게 사람을 갈라놓았나


책 주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라면 예사롭게 넘길 수 있겠지만 저자가 리처드 세넷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필독 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사회학자다.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의 리즈대에 오래 몸담았다. 반면 세넷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도 널리 읽히는 미국 사회학자로, 뉴욕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한다.

두 학자는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근대’라는 공통 화두를 붙들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글쓰기로도 평판이 높다. 바우만이 ‘액체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면, 노동 및 도시화 연구 권위자인 세넷의 최근 화두는 ‘호모 파베르’, 곧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다. 다른 표현으론 ‘구체적 실천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존재’다.

 

 


국내에도 소개된 『장인』이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첫 권이라면 『투게더』는 그 두 번째 책이다. 세넷은 도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세 번째 책을 마저 집필할 예정이다. 이 3부작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가. 세넷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명시한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과 능력이다. ‘협력’의 문제를 다룬 『투게더』에서도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과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느 사회학 저작에서는 보기 드문 주제이고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뿐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세넷 스타일은 눈에 띈다. 그는 런던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손자 얘기로 말문을 연다. 손자의 친구 녀석이 학교 방송에서 “엿 먹어, 엿이나 실컷 처먹어, 왜냐하면 네가 진짜 싫으니까, 너네 패거리 전부가 진짜 싫거든!”이란 가사의 노래를 틀어서 학교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수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은 ‘엿 먹어’란 가사를 통해서 종교·인종·계급적 차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실제로 런던은 그런 혐오와 갈등이 주기적으로 폭력과 폭동으로 치닫는 도시다. 런던보다 사정이 나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비슷한 사람들만으로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넷의 강조대로 도시는 시민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숙고하고 상대할 것을 요구한다. 협력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협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세넷은 물질적·제도적·문화적 이유 때문에 현대인이 협력의 기술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단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어 다수가 보유한 자산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1%, 혹은 0.1%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중간층 출신인 학생이 자기 부모들만큼 수입을 올릴 확률은 40%에 불과하지만 상위 5%의 학생들은 그 확률이 90% 이상이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내고 이 거리는 협력과 사회적 연대를 어렵게 한다.

제도적으로는 현대의 조직 구조가 협력을 금지한다.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장기근속’이라는 말은 이미 듣기 어려워졌다. 2000년에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는 평생 12번에서 15번 가량 직장을 옮기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단기적 노동시간은 또 사회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고 정보를 다른 개인이나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 ‘사일로 효과’를 강화한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열의나 헌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거나 문화적 획일화에 편승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그들과 협력하려는 욕망은 힘을 잃는다.

그렇게 약화된 협력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세넷은 유럽 문화사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협력 방식을 끌어와 재조명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인의 사례다. 중국은 ‘공격적인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강력한 사회적 단결 코드도 갖고 있다. 바로 관계나 연줄을 뜻하는 ‘꽌시(關係)’다. 이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결속이 어떻게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한국 이민자들이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주로 정착하여 가게를 연 그들은 자기끼리는 잘 협력했지만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객을 상대할 때는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1992년 LA폭동 때 많은 한국인 상점이 파괴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친선이 구축되지는 않았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와 편견을 뒤로 제쳐놓고 서로 침묵하기로 했다. 서로가 못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 사회적 예절로서의 침묵 또한 사회적 협력의 중요한 바탕이다.

지역·인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다민족이라는 단어가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시대, 이른바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어떻게 보다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필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13. 03.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 시사IN(287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 2013)를 골랐는데, 저자의 다른 책으론 <도시형 수렵채집생활>(쿠폰북, 2011)이 번역돼 있다.

 

 

 

시사IN(13. 03. 16) 돈 없으면 죽는 나라는 필요 없어

 

이런 질문은 품은 아이가 있었다. “사람은 왜 돈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는가. 그 말은 진실인가.” 그는 이것도 궁금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노숙자가 없어야 하는데, 노숙자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그들은 왜 심지어 작은 오두막을 지을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가.” 너무 천진한 질문이다 싶으면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는 책이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다. 어릴 적 품었던 이런 질문들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아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간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직함이 다양하다. 건축가이자 작가이이면서 화가이고, 뮤지션에다 만담가이며 게다가 신정부의 총리다. 총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는데,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뒤에 정부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자 그는 아예 자신의 정부를 세운다. 도쿄의 대기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국회의원 가족이 해외로 대피하는 마당인데도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고, 사카구치는 그런 정부라면 이미 정부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그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구마모토에 직접 ‘신정부’를 수립하고 제로센터라는 청사를 개설해 후쿠시마 피난민을 위한 무료 피난처로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벌인다. 비록 내란죄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해 신정부활동을 ‘예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행위도 ‘예술’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사실 철학자 하이데거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불렀으니 억지는 아니다.


사회운동과 예술적 실천을 동시에 밀고나가고 있는 저자의 성장담과 생각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방법론이다. 그는 사회를 바꾸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라 사회를 넓히는 것도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방식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방식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발상의 전환이다. 가령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에게 영감을 던져준 것은 어느 노숙자의 집이다. 0.5편 정도의 작은 천막집이었지만 주인은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공원이 거실과 화장실, 수돗가를 겸한 곳이고 도서관이 책장이고 슈퍼마켓이 냉장고인 만큼 집은 침실로 족하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이 노숙자에겐 도시 전체가 자기 집이었다.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면 그렇게 새로운 공간과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이 열린다. ‘사적 공공성’의 탄생이라고 할까. 저자는 사유(私有)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유의 개념을 우리가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시 생각하는 일에서도 노숙자들은 좋은 참고가 된다.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인지라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대책을 짜내야 한다. 안정된 시스템 바깥에 있기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다.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생활권을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사회적‧예술적 실험 역시 그러한 태도의 산물이다. 따지고 보면 과격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인용한 일본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돈을 벌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국가 정책은 따라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헌법에만 명시해놓고 실질적으론 보장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따로 ‘독립국가’를 만드는 수밖에. 우리는 형편이 다른지 궁금하다.

 

13. 03.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달 책&(416호)에 실은 주제별 도서 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협동조합'으로 골랐다(지면에 소개된 책에 몇 권 더 얹었다). 관련서들이 많이 나와서 고른 것인데, 작년이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다는 건 책을 펼쳐보고서야 알았다. 주변에서 성공사례도 많이 나오면 좋겠다. 책과 관련한 협동조합은 어떤 게 가능할까...

 

  

 

책&(13년 3월호) 사람 더하기 사람! 협동조합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다. 그에 부응하여 국내에서도 작년 12월 1일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금융‧보험업을 제외하면 5인 이상의 구성원으로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란 말을 주변에서 부쩍 자주 듣게 되는 배경인데, 협동조합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점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것일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궁금한 자가 책을 펼치는 법이다. 이달에는 협동조합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둘러보기로 한다. 


김기섭의 <깨어나라! 협동조합>(들녘, 2012)이 출발점으로 적당해 보이는 책이다. “21세기는 바야흐로 협동조합의 시대”라는 시대인식 하에 저자는 오늘날 협동조합이 왜 주목받고 있으며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지 안내한다. 이 협동조합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도 두레와 계 같은 전통이 있었듯이 사회적 협동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다. 협동조합의 역사를 살필 때는 영국의 로치데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맨체스터 인근의 작은 마을인 로치데일에서 1844년 세계 최초로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조합’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당시 산업혁명의 절정기였던 영국에서는 소규모 작업장 대신에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생산력이 급속도로 발달했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하루 평균 17시간씩 일하고, 아이들과 여성은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19시간을 일해야 했다.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멸시했고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로치데일의 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구책으로 만들어졌다. 1인당 1파운드씩의 출자금을 걷어서 조합의 점포 문을 열었지만 처음엔 너무 형편없어서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신뢰와 노력 덕분에 설립 10년 후에는 조합이 50배로 늘어났고 출자금도 400배로 불어났다. 그 이전에도 협동조합은 많이 있었지만 로치데일만큼 성공을 거둔 곳은 없었다. 로치데일 모델의 성공 비결을 저자는 “노동자들이 생산과 분배와 교육의 영역에서 스스로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공하는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사례가 있으니 협동조합의 정의에 대한 이해도 보다 용이하겠다. ICA(국제협동조합연맹)은 이렇게 정의한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이다.” 저자는 이 정의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 존엄한 인간의 상호자조에 대한 신뢰, 그리고 상호자조에 의해 형성되는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에 그 철학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의 역사와 정의, 그리고 철학에 대해 일별했다면 바로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현직 언론인 3인이 쓴 <협동조합, 참 좋다>(푸른지식, 2012)가 가장 유익한 현장 안내서다. 이탈리아와 덴마크, 뉴질랜드 등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나라들의 협동조합 현장을 직접 찾아서 그들의 경험담과 성공비결을 전해 듣고, 한국의 협동조합 현주소를 점검해본 다음, 협동조합의 대가들과 가진 인터뷰도 보탰다. 게다가 협동조합기본법의 내용과 의미도 부록으로 실었으니 협동조합 가이드북으로는 최적이다. 저자들은 비영리기업임에도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를 조합원의 충성심과 공동 행동, 그리고 원가 경영에서 나온다고 짚었다.

 

 


흔히 세계 협동조합의 메카로 이탈리아의 볼로냐, 스페인의 몬드라곤 등을 꼽는데, 한국에도 내세울 만한 곳이 있을까. 저자들은 한국의 협동조합 메카로 강원도 원주를 지목한다. 원주에서는 2003년에 원주협동조합협의회가 조직됐고 2009년에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이 네트워크에 소속된 회원이 무려 3만 5천여 명으로 원주 인구의 11퍼센트에 이른다. 협동조합원이 되면 먹을거리를 사고 아플 때 치료받고 필요한 돈을 빌리는 일을 모두 이 네트워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아직 그 규모가 지역 총생산의 0.36퍼센트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의 꿈은 원주를 언젠가는 한국의 몬드라곤으로 만드는 것이다. 스페인 바스크의 소도시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복합체는 스페인에서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협동조합의 성패는 조합원들의 열의와 실천에 달려 있는 만큼 협동조합 운영 지침과 실무에 관한 책들도 나와 있다. 에드가 파넬의 <협동조합, 그 아름다운 구상>(그물코, 2012)은 협동조합과 관계된 일을 일생 동안 해온 저자가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동조합 운영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김용한, 하재은의 <새로운 대안경제, 협동조합 시대>(지식공감, 2012)는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관한 실무를 담고 있는, 말 그대로 ‘실무서’다. 학술적인 성격의 책으로는 존스턴 버챌의 <사람중심 비즈니스, 협동조합>(한울, 2012)이 있는데, 성공회대 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대학 교재용 책으로, 협동조합을 ‘조합원소유 비즈니스’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13. 03.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시안의 '3인 1책 전격수다'를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308163736§ion=03 참조). 이달에 고른 책은 교사들의 현장 체험담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교육공동체벗, 2013)이다. 월간 <오늘의 교육>에 실렸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프레시안(13. 03. 08) 교실에서 '죽어가는' 교사들…"우리는 개가 아니다!"

 

(...)

 

이현우 : 제가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를 고른 이유는 이번 주가 개학이고 개강이고 해서인데요. 교육이 한국에서 워낙 중요한 이슈다 보니까 현장 교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의미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학교의 배반'인 만큼, 현재 교육 현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으로 보고 있죠. 만일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발언하지 않는 대부분 교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조하는 현실이라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 아이가 중학교 입학한다며 신나게 등교했는데, 뭔가 매치가 안 되는 겁니다. 매번 학년이 올라가고 새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며 아이들이 기대를 품는 바에 달리, 이 책에서는 정작 선생님들이 교육 현실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지극히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토로됩니다. 이쯤 되면 대체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이권우 : 이 책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겪는 잔혹사에 대한 증언록이죠. '우리는 이렇게 당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자율성이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학교 사회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교사들이 제도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왜 교사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는 건지, 또 근본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그 교육이 진정한 교육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김용언 :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관련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잖아요. 학생이거나 교사거나 학부모거나 학생이었거나. 이 책에서는 교사들이 주로 승진과 얽혀있는 학교 내부 시스템과 몇 년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 때문에 가르치는 일 자체에 혼동을 겪게 되는 내외적 조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책 전반적으로 학교 내적 문제에 더 치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침묵의 암묵적인 카르텔이 형성된 상황에서 거기 대해 발화한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일 순 있겠지만요. 그래도 교사 입장이 아닌 사람이 봤을 때에는 외적 시스템 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더 궁금하긴 했거든요. 정의진 교사의 글 '끊임없이 '달리다' : 집중이수제가 휩쓸고 간 지난 학기 수업 풍경'이 그런 의미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교육과정이 얼마나 자주 개정되었는지 이제는 교사들도 헷갈린다. 교육과정 개정 횟수만 보면 가히 '교육혁명'의 시대다. 작년은 그 절정을 보여 주는 한 해였다. 중3(현 고1)은 2007 교육과정, 중2(현 중3)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중1(현 중2)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각각 따로 적용받았던 것이다(이 부분은 읽다가 숨 한번 쉬어 줘야 한다).

 

이권우 : 우스갯소리로, 전 이 책을 보면서 댓글 단 국정원 직원이 생각났습니다.(웃음) 뛰어난 실력으로 국정원에 취직했는데, 위에서 요구한 건 인터넷상의 여론을 현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특정 댓글을 달라는 거였죠. 교사들이 겪는 고충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사가 되는 건 굉장히 치열하고 어렵지요. 아예 교사 T.O가 나지 않아 시험 준비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채용됐는데, 소속 기관이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특정 역할에서 갈등이 빚어집니다. 이런 뒷얘기도 있어요. 국정원 직원은 퇴근하면 댓글을 안 달았다면서요.(웃음) 분명 공무 수행이 맞았던 겁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6시 이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또 다른 할 일들을 맞닥뜨립니다. 교사는 조직 구성원으로서 지시 사항을 따라야 하지만 동시에 그걸 넘어서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이현우 : 김용언 기자는 학교 내부 사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좀 아쉬웠다고 했는데, 전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은 학교 내 행정 업무와 승진 시스템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죠. 사실 교사는 한국에서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게 초등학교 교장입니다.(웃음) 승진을 지향하는 교사들로서는 지금 잘 버티면 나중에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의 저자들이 토로하는 바,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의 갭이 굉장히 크다는 거지요.

 

 

승진을 위해, 나는 교장의 개였다

이권우 : 얼마 전에도 장학사 선발시험 문제가 유출된 사건이 터졌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이 책에 담긴 교사들의 잔혹사가 객관적 사실이라는 거죠. 전 이 책을 통해 진정한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승진 체제, 교사의 정치적 자율성,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교사 문제입니다.

 

장학사, 교감 혹은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교사 업무보다 잡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지요. 일제의 유산이라고 해야 할 텐데, 한국에선 짧은 기간 내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사범대를 만들었고, 그 사범대가 아무래도 국립대학 중심이기 때문에 각 지역 거점 대학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라인'이 형성되었고 부조리한 문제가 비합리적으로 해결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먼저 승진을 위해 교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행하는 잡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지요. 사실 학교 행정 업무는 행정 직원이 맡아줘야 하는데 그런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교사에게 전적으로 떠맡긴다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지요.

 

김용언 : 강아지똥 교사의 글 '내가 겪은 몹쓸 일, 방과후학교'를 읽으면 정말 실감나더라고요.

 

이현우 :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네이스)가 2011년 도입되면서 업무량이 폭증했다고 하죠.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의 글 '슬픈 사람, 안혜영'에 보면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신임 교사 안혜영 씨가 출근 첫날부터 맡은 업무가 바로 학적이었지요.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그 네이스 시스템 앞에서 신임 교사 안혜영 씨도 엄청난 좌절을 느꼈을 테고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한 달 만에 자살하고 맙니다.

업무 때문에 수업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다. 수업 준비도 제대로 못 한 채 아이들 얼굴을 만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이 정도의 고통으로 자살까지 감행했다면 다른 교사들이나 교육 행정 담당자도 모두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 있을 텐데, 왜 해결이 안 되고 있는지 수수께끼입니다.

 

이권우 : 일종의 세대 착취 문제 아닐까요. 지금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은 여태껏 자기들이 해왔으니까 마땅히 너희들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거기서 비민주적 권위의식이 발동하고요. 또 새로운 행정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 채 교사에게 맡겨버리면 돈이 적게 든다는 편의성도 있을 테고, 이런 방식으로 젊은 교사 길들이기 목적도 있어 보입니다.

 

이현우 : 저도 그 점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승진 관련해서 교사 평점을 매기는 부분에 있어 교장이 전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책 속에서 어떤 교감 선생님은 '난 교장의 개였다'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지요. 과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권우 : 승진 점수를 받기 위해 일정 기간 벽지 초등학교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보노라면 그쪽 초등학교 교장이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사립학교는 승진 문제에 있어 과연 어떨지 능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죠. 교육을 잘하는 선생님들이 승진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 승진하기 위해 교육 업무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승진과 교육이 서로 갈등을 일으켜요.

 

이현우 : 승진을 위해 교육청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린다는 얘기도 나오잖아요. 이민아 교사의 글 '다시 쓰는 행복 인생, 3막 1장'을 보면 "학교를 퇴근함과 동시에 다시 교육청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면서 "교육청 행사 추진에서부터 장학 자료 만들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교육청 일을 참 많이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권우 : 아주 솔직한 대목을 하나 볼까요. 가르치지 않기 위해 승진하려는 교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지 않고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지, 좋은 학교 진학만을 따지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얼마나 거친지 잘 압니다. 그 상황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차라리 편하게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로 승진하려는 욕구를 갖는다는 건 실질적으로 이해 가능합니다. 문제는 승진 체제에 있어요. 교육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선생님이 승진하는 게 아니라 승진 자체를 위해 잡무를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아까 언급하신 이민아 교사의 경우 승진 체제에 정신없이 편승하다가 결국 그 안에 휩쓸리기를 거부한 분인데요. 이 대목을 한번 보지요.

 

출근하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떤 날은 수업 시간에 모니터 옆에 교과서를 펴 놓고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겐 대충 설명으로 시간을 때워 버리기도 했다. 차라리 교사가 아니라 회사원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적어도 교실에서 아이들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현우 : 대학에선 총장을 퇴직하고도 평교수로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잖아요? 하지만 초·중·고등학교에선 교장이 마지막 보직이고, 거기서 정년퇴직합니다. 교사는 평교사로 퇴직하느냐 교장으로 퇴직하느냐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승진을 위해 굉장히 많은 '관리'를 해야 하죠. 아이들에게 충실하기보다 상급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러 과도한 업무를 견뎌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전근대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슴 아픈 딜레마도 있죠. 아이들이 나이든 교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보직보다는 교사로서의 업무에 더 큰 만족감과 사명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텐데, 평생 성실하게 교직을 수행해온 이분들이 교단에서 실패한 자, 낙오한 자 대접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평교사-실패한 자, 교장-성공한 자로 나뉘는 교단 문화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교사들의 절망이 상당 부분 해소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13. 03.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 주간경향(101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의 단연 화제작인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 2013)를 읽고 적었다. 저자의 고백에 따르면 앞으로 더 자주 글쟁이 유시민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생각해보니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과 함께 읽는 러시아 이야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청춘의 독서>, <국가란 무엇인가> 등이 그간에 읽은 책이다.

 

 

주간경향(13. 03. 12)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글쟁이 유시민의 고백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유시민을 성원해주셨던 시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지난 2월 20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유시민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인생론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가 출간됐다. 그의 은퇴가 적어도 책을 준비하는 기간만큼은 숙고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담백하게 말하는 책을 그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게 된 ‘은퇴 이유서’로도 읽을 수 있는 이유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라고 단서를 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프롤로그 제목을 따자면 ‘나답게 살기’다. 자신의 생업이 ‘지식소매상’이라고 말하는 유시민은 정치인 시절에도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대한민국 개조론>,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등이다. 독서편력을 다룬 <청춘의 독서> 정도가 예외일까, 모두 정치인 저자다운 주제의 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런 이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순전히 ‘글쓰는 사람’으로서 썼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가 “쉰다섯 살 먹은 중년 남자”이면서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쓴 인생론이다


인생론이라면 의당 성공한 인생의 조건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유시민은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며 사랑과 연대가 그 나머지 절반이라고 말한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가 그의 구호다. 일과 사랑에 대한 언급은 유별나지 않지만 놀이와 연대에 대한 강조는 눈에 띈다. “나는 노는 게 좋다. 일도 좋지만 노는 건 더 좋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일중독으로 유명한 박원순 시장 같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봐야 대단한 놀이꾼은 아니고 낚시와 당구를 즐기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보다 놀이가 좋다는 건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결정권’이 행사되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논다면 놀이가 아니라 일일 테니까.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지 않았고,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오직 남을 위해 산 건 아니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은 훌륭한 삶이 아니라는 관념에 눌려서 살아왔다는 게 자기 분석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로 징집됐던 유시민에게 정치는 운동의 연장이었다.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는 것이다.


정치가 연대의 한 방법이었지만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면 그가 이제라도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정치인 유시민보다 글쟁이 유시민을 더 반겼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렇다고 연대의 가치가 포기되는 건 아니다. 그는 글을 써서 자기 생각과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행위가 기쁘고 즐겁다고 말한다.  


아이러니가 없는 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영등포구치소에서 쓴 ‘항소 이유서’로 문명을 떨치게 된 그가 스파르타식 글쓰기 훈련을 한 곳이 학생운동을 하다 체포돼 자술서를 쓰던 경찰청 특수수사대 감옥이었고, 글 쓰는 재능을 발견한 게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서였다니 말이다. 아무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글쟁이 유시민이 기대하는 건 독자가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 그런 쓸모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럴 때 글쓰기는 단순한 생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출간되자마자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으로 보아 일단 그의 기대는 충족되는 듯 보인다.

 

13. 03.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