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287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 2013)를 골랐는데, 저자의 다른 책으론 <도시형 수렵채집생활>(쿠폰북, 2011)이 번역돼 있다.

 

 

 

시사IN(13. 03. 16) 돈 없으면 죽는 나라는 필요 없어

 

이런 질문은 품은 아이가 있었다. “사람은 왜 돈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는가. 그 말은 진실인가.” 그는 이것도 궁금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노숙자가 없어야 하는데, 노숙자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그들은 왜 심지어 작은 오두막을 지을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가.” 너무 천진한 질문이다 싶으면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는 책이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다. 어릴 적 품었던 이런 질문들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아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간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직함이 다양하다. 건축가이자 작가이이면서 화가이고, 뮤지션에다 만담가이며 게다가 신정부의 총리다. 총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는데,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뒤에 정부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자 그는 아예 자신의 정부를 세운다. 도쿄의 대기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국회의원 가족이 해외로 대피하는 마당인데도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고, 사카구치는 그런 정부라면 이미 정부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그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구마모토에 직접 ‘신정부’를 수립하고 제로센터라는 청사를 개설해 후쿠시마 피난민을 위한 무료 피난처로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벌인다. 비록 내란죄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해 신정부활동을 ‘예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행위도 ‘예술’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사실 철학자 하이데거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불렀으니 억지는 아니다.


사회운동과 예술적 실천을 동시에 밀고나가고 있는 저자의 성장담과 생각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방법론이다. 그는 사회를 바꾸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라 사회를 넓히는 것도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방식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방식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발상의 전환이다. 가령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에게 영감을 던져준 것은 어느 노숙자의 집이다. 0.5편 정도의 작은 천막집이었지만 주인은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공원이 거실과 화장실, 수돗가를 겸한 곳이고 도서관이 책장이고 슈퍼마켓이 냉장고인 만큼 집은 침실로 족하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이 노숙자에겐 도시 전체가 자기 집이었다.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면 그렇게 새로운 공간과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이 열린다. ‘사적 공공성’의 탄생이라고 할까. 저자는 사유(私有)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유의 개념을 우리가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시 생각하는 일에서도 노숙자들은 좋은 참고가 된다.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인지라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대책을 짜내야 한다. 안정된 시스템 바깥에 있기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다.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생활권을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사회적‧예술적 실험 역시 그러한 태도의 산물이다. 따지고 보면 과격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인용한 일본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돈을 벌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국가 정책은 따라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헌법에만 명시해놓고 실질적으론 보장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따로 ‘독립국가’를 만드는 수밖에. 우리는 형편이 다른지 궁금하다.

 

13.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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