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인성? 기사를 읽고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최근 연작소설 <이채영은 잘있다!>(삼우반, 2010)를 펴내기 불과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네 권의 소설집만을 남겨놓게 됐는데, 비단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서울이란 도시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세계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동(洞)자류' 소설이라 부른다고).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0. 12. 25) 그저 ‘무명’으로 소설집 4권을 남겨둔채 가다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자욱한 안개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소설을 탈고한 뒤 새벽 햇살과 다툼하던 물방울 입자들을 톡톡 터뜨리며 소설처럼, 시처럼 사라져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 갸우뚱하며 그저 무명 소설가라고 일컬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시대 문체 미학을 간직한 소중한 작가’라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상찬을 내렸다.  



소설가 박인성이다. 최근 출간된 연작소설 ‘이채영은 잘있다’(삼우반 펴냄)가 나오기 며칠 전인 지난 6일 새벽 교통사고로 숨졌다. 평단도, 작단도,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죽음이었다. 1956년 9월 태어났으니 54년을 ‘자연인 박대성’으로 살았고, 1977년 21세 젊은 나이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으니 33년을 ‘소설가 박인성’으로 살았다. ‘호텔 티베트’, ‘사랑은 안개보다 깊다’ 등 네 권의 소설집만을 남긴 과작(寡作)의 작가였다. 1986년 첫 소설집 ‘파장금엔 안개’는 김윤식 서울대 교수로부터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의 안개를 더욱 밀도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77년 월간 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유고작이 된 ‘이채영’은 서울 곳곳을 무대로 한 연작소설이다. 가회동이 나오고 상수동, 신사동, 신설동, 홍은동, 흑석동이 잇따라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2010년 한국 사회의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종교인, 술집 주인, 건달, 화가, 문인 등 수많은 인물들을 아울러 풍자하고 은유하며 경쾌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그동안 단편소설과 단편에 걸맞은 문장만을 고집하며 삶의 비의(秘意)를 찾아 헤매왔던 박인성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꾀한 셈이다.

정치·기업·법조인 등 풍자
특히 표제작 ‘이채영…흑석동’을 비롯해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신설동’ 등에서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나 하듯 자신 삶의 자전적 내용을 담았다. 전북 김제에서 서울로 올라와 신설동 천변에서 지내던, 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문청으로 살아왔던 날들, 등단 이후 광고 카피라이터와 작가의 삶을 겸했던 시절까지를 그리 길지 않은 단편 속에 분명한 기록으로 남겼다.

문학평론가인 정현기 세종대 교수는 “월북작가 박태원의 ‘천변풍경’이 그려낸 1930년대 도시 서울의 낭낭한 풍경이 2010년대 박인성에 이르면 더욱 구체적인 꼴을 띠고 이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읽게 한다.”고 언급했다.

소설을 펴낸 삼우반의 김용범 편집주간은 “장편소설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이채영’의 속편 격인 또 다른 서울 연작소설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기만 하다.”고 애석해 했다.

●‘천변풍경’ 더욱 구체화한 듯
못다받은 애도는 더 이상 이승의 몫이 아니다. 또 다른 세상에서 문학에 파묻혀 마음껏 소설 쓰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이승의 것보다 훨씬 유쾌하고 즐거운, 또 다른 삶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박록삼기자) 

10. 12. 25.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12-25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안타까운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네요...
물만두님도 그렇고...
과문한 탓에 두 분 다 평소 글로 접하지 못했는데
해가 가기 전에 마음도 가라앉힐 겸 다문다문 읽어봐야겠네요...
게으르기 그지없는 제겐 로쟈님 서재가 세상과 통하는 창이 되는군요.
부끄럽지만... 이왕 빚진 김에 계속 빚지고 살겠습니다^^

로쟈 2010-12-25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손가락품이나 좀 파는 정도인 걸요. '로쟈-은행'이란 표현도 있던데, 가진 것 없이 대출해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반딧불이 2010-12-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고나니까 보이는 것이 세상에는 허다하군요.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올 한해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새해에도 또 염치없이 도움 받겠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새해 맞으시기 빕니다.

로쟈 2010-12-25 20:42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반딧불이님도 새해엔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영초 2010-12-2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너무 아쉽습니다. 열심히 소설 쓰는 몇 안되는 소설가중의 하나였는데...물론 작품 수준도 굉장히 높고..

로쟈 2010-12-27 23:39   좋아요 0 | URL
아, 독자가 없진 않았네요!

雨香 2010-12-2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 박인성! 혹시나 했는데 (20년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파장금엔 안개'의 그 저자였네요. 허망하게 가시다니 안타깝네요.

로쟈 2010-12-30 07:54   좋아요 0 | URL
숨은 독자들이 없지 않았네요...

포스트잇 2010-12-3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인성작가,광고 카피라이터라서 그런지 제목들이 다들 한 필~하네요.때이른 사고가 안타깝고요...,늦게나마 읽어보려합니다.모르고 지나쳤을 책과 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어서 더 없이 다행입니다.올 한해도 이러한 다행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