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김태권이 길찾기 출판사를 통해 『십자군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 때 이 책은 가히 교양만화의 혁명이라 할만 했다. 일찍이 이원복이 이룩한 교양만화의 전범『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을 담지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색을 덧붙여 굉장히 지적인 하나의 저작물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 정도 주류로 왜곡된 관점이었을지언정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평면적이지 않게끔 풍부하게 그려냈다는 것이고 『십자군 이야기』는 이 장점을 훌륭히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먼나라 이웃나라』의 단점인 편향된 주류적 시선을 극복하여 역사 속에서 희생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정치적인 사건들을 빗대 풍자하는 용감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장점들을 가진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교양” 만화라 할만 했다. 그러나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해 너무 일찍 이 책은 절판되어버렸다. 이 책이 절판되게 된 경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 책이 담지하고 있는 담론이 희생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에 중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피해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간 굉장히 뛰어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 몇몇 만화, 책들이 중심 담론이 마이너, 루저들의 목소리(물론 이 문제만은 아니겠으나)인 까닭에 소리 소문 없이 묻혀 지는 광경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책들은 다시 재간되지 못했고 마니아들의 입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책들이 되었다. 『십자군 이야기』도 그러한 테크트리를 탈 운명이었다. 그러나, 몇 년여의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 이 책은 비아북을 통해 『김태원의 십자군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간되었다. 2003년 당시 유효했던 풍자들은 많은 부분 지금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삭제, 수정되었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3권이 처음 출간되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왈가왈부 많은 말들이 있을 법하고 지금 이 사이트에서도 그러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음을 본다. 개인적으로는 3권이 학습만화 풍으로 그림체가 변하고 세심하고 풍부한 관련 서적들을 중심으로 한 해석들이 축소된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작가나 출판사의 문제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약을 하자면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한계이자 한국 출판계 전체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길찾기에서 나온 『십자군 이야기』는 사실 기적과도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을 산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오롯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책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의 서적들과 균형 잡힌 해석을 선보이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했음을 나는 추측해본다. 또한 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던 연재물이었음에도 연재공간인 프레시안은 작가에게 확실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고, 작가는 작품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못했다. 길찾기 또한 거대 출판사가 아니었기에 단지 책을 출간해 주었을 뿐, 지속적으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어려웠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으나 작품을 위해서는 물심양면으로 작가를 지원하는 일본의 만화 제작 시스템 속에서 저자가 활동할 수 있었다면 양상은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단순한 패착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정이 가해졌을 지언정 1, 2권은 이전 길찾기 판이 가지고 있었던 미덕들을 많이 놓치지 않았고, 당대성을 구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가장 아쉬운 3권조차 균형 잡힌 시선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생각에 아마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시간과 세월이 또 한 움큼 지나면 다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그때까지 김태권이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면 말이지만! 좋아하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지원하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쓸모 있고 유효한 방법은 바로 그의 책을 사주는 것이다. 사라, 두 권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