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
이미 예고돼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내주 개봉된다 한다. 지난달에 서거 100주년을 맞은 이 거장의 삶을 한번쯤 음미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덤으로 아내 소피야 역을 맡은 헬렌 미렌의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한겨레(10. 12. 07) 성자로 박제된 ‘소년’의 마지막 1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명저를 남긴 19세기 러시아의 문호. 젊어서 자기 집 농노를 해방시켰으며 말년에 종교에 심취해 금욕과 청빈 공동체를 꾸렸던 인물. 20세기 초 한국의 문학청년들을 매료시키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사진)은 재산의 사회환원에 반대하는 아내 소피야의 극성을 피해 남부 러시아로 이동하다가 11월20일 아스타포보 역에서 객사하기까지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따라간다. 톨스토이는 살아 있는 성자가 아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었으며 소피야 역시 세간에 알려진 대로의 악처가 아니었다는 게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의 저본은 전기작가 제이 파리니의 소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 소설은 지은이가 나폴리의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일기장의 주인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비서 발렌틴 불가코프. 그는 톨스토이와 마지막 1년을 함께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톨스토이와 그 주변인물의 모습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영화가 신화를 깨는 것은 그런 연유다.
노년의 톨스토이는 후광으로 존재할 뿐. 낮에는 성자로 추앙을 받지만 저녁에는 43년을 해로한 아내 소피야와 침대에서 수탉울음 소리를 내며 장난하는 늙은 소년이다. 막내딸 사샤, 수제자 블라디미르, 주치의 마코비츠키 등 톨스토이의 낮을 관장하는 톨스토이주의자들은 알려진바 ‘성자’로 그를 박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재산과 저작권 일체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의 유서에 서명을 받아내려 한다. 이를 안 소피야는 노발대발한다. 영화는 이 무렵 개인비서로 기용된 톨스토이 숭배자 발렌틴의 시각을 따라가면서 진실에 접근한다. 수제자 블라디미르는 발렌틴에게 소피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하라고 하지만, 발렌틴은 소피야가 말처럼 위험인물이 아니라 톨스토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곳 공동체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마샤를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을 떼어놓는 톨스토이주의자들의 차가움을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
“죽어가고 있나요? 이미 죽었나요?” 마지막 정거장에 개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이 끈질기게 묻는 질문이다. ‘살아 있는 성자 영면하다’라는 기사를 써놓고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 뚜껑이 닫히기 전까지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하지만, 뚜껑이 덮이고 나서 진실은커녕 왜곡이 시작된다.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소피야를 남편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처에서 남편을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으로 탈바꿈시킨 헬렌 미렌의 연기가 압권.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으며, 로마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5일 개봉.(임종업 선임기자)
10. 12. 06.
P.S. 제이 파리니의 소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고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앤드류 노먼 윌슨의 전기 <톨스토이>(책세상, 2010)가 서거 100주년의 의미를 좀 채워준다. 올해는 체호프(1860-1904)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한데, 한권으로 묶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이 김규종 교수의 번역으로 최근 출간됐다. '빈손'으로 한해를 보낼 뻔했는데, 역시 다행스럽다. 아래 사진은 생전에 두 사람이 함께 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