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몇 시간 전이지만 엊저녁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필요 때문에라도 읽은 책이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2009)이다. 톨스토이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결혼 이후의 삶, 특히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 만년의 톨스토이의 삶과 '콩가루 집안' 얘기를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어서 유익하다. 예전에 읽은 얀코 라브린의 <톨스토이>나 기타 전기에서 미처 읽지 못한 대목들(혹은 잊어먹은 대목들)도 있다. 내친 김에 톨스토이와 관련한 참고문헌 몇 가지를 챙겨놓으려는 생각에서 페이퍼를 적어둔다. 그 전에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에 대한 서평기사를 하나 더 읽어둔다. 그의 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고로, 현재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자세한 평전은 쉬클롭스키의 <레프 톨스토이>(나남, 2009)이다.  

 

한겨레21(09. 11. 13) 오욕의 굴레와 싸운 톨스토이의 고행   

“그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다.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90권이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다.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이렇게 모순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갔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소설가요, 설득력 있는 우화와 특유의 도덕론으로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그도 평생 오욕의 굴레에서 고통스러워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서 ‘돈’이란 열쇳말로 거장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흥미롭게 분석해낸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신작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펴냄)는 이런 그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저작을 중구난방 훑어보는 대신, 지은이는 톨스토이가 삶의 전화점에 섰던 마흔아홉 살에 내놓은 <안나 카레니나>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는 “쉰 살 이전의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라면, 쉰 살 이후의 톨스토이는 위대한 교사”라고 썼다. 작품의 줄거리는 “고위층 사모님이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연하의 남성과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안나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서 꼭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죽어야 할까?’ 지은이는 “소설을 찬찬히 읽다 보면 작가가 여주인공을 죽인 것이 꼭 불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50살에 ‘위대한 작가’에서 ‘위대한 교사’로
“톨스토이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상류층의 모든 것을, 예컨대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과 생활태도, 사랑과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심지어 예술관과 먹는 음식까지 비판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소설인 셈이다.”  

실제 이 작품 집필을 마친 이후 톨스토이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참되게 살기로 결심한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앞선 삶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참회록>을 써 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잘 사는 법’에 대해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설파해댔다. “톨스토이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란 평가가 절묘하다.

‘성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톨스토이의 ‘고행’은 그칠 줄 몰랐다. 16살 차이가 나는 톨스토이와 그의 부인 소피야 베르스는 1862년 결혼한 이래, 반세기 만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끝없이 부부싸움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소피야를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에 버금가는 ‘악처’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피야는 결혼 직후부터 27년 동안 무려 16차례 임신을 했고,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수유로 보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준 훌륭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악다구니긴 했지만, ‘콩가루 집안’의 책임을 그에게만 들씌우는 건 부당해 보인다.  

80대 대문호의 가출과 마지막 유언
1910년 10월28일 새벽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했고, 20여 일 만에 그는 러시아 서부의 한적한 간이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에서 생을 마쳤다. 행려 같은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가 ‘80대 대문호의 가출’이란 희대의 사건을,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순간에도 관사 밖은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소피야는 주변의 방해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단다. 기막힌 삶이다.  

“진리를… 나는… 사랑한다.” 톨스토이가 숨지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가 실제 ‘진리’를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는 분명 그렇게 믿었을 터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정인환 기자) 

10. 02. 16.  

P.S. 내가 챙겨두려고 하는 건 참고문헌에 실린 '톨스토이 관련서적' 몇 가지다. 일단 저자가 챙겨놓은 한국어본은 라브린의 <톨스토이>(한길사, 1997)와 딸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딸이 본 톨스토이><서당, 1988), 그리고 파이지스의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다. 거기에 영역본으로 제시됐지만 메레지코프스키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금문, 1996)도 한국어본으로 추가할 수 있다.   

기타 여러 권의 참고문헌이 소개돼 있지만, 나의 관심은 만년의 가족사와 관련된 것이다. 가령, 참고문헌에는 빠져 있지만, 톨스토이의 만년을 다룬 소설로 제이 파리니의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궁리, 2004) 같은 것. 이 작품은 작년에 영화화되어 얼마전에 미국에서 개봉된 걸로 돼 있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bTh-vQho7UU 참조). 흠, 헬렌 미렌이 아내 소피야 역을 맡고 있군.    

 

짐작에 영화에서도 핵심은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일 듯싶은데, "좀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증오, 소피야와 레오 톨스토이 부분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96쪽)라고 추천되는 책이 있다. 윌리엄 쉬러의 <사랑과 증오>(2007)다.  

2007년에 나온 책이니'고전'이란 얘기는 가장 자세히 다룬 책이란 뜻이겠다(400쪽 분량). 거기에 보태 소피야의 일기도 영역본이 나와 있다.  

 

저자가 주로 참고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전기는 A. N.  윌슨의 <톨스토이>(노튼판 2001)이며, 소피야의 전기로는 앤 에드워즈의 <소냐: 톨스토이 백작부인의 삶>(1981)도 참고문헌 목록에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톨스토이 연구서는 랑쿠르-라페리에르의 <카우치에 누운 톨스토이(=톨스토이 정신분석)>(2007)와 (저자의 참고문헌에는 빠져 있지만) 구스타프슨의 평전 <레프 톨스토이>(1989)이다. 두 책 모두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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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12 09:04 
    일간지 리뷰기사를 보다가 모르고 지나갈 뻔한 책을 하나 발견했다. 톨스토이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소설로 옮긴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궁리, 2004)의 저자 제이 파리니의 또 다른 전기소설이 출간된 것인데, 이번엔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솔출판사, 2010). 벤야민의 전기는 몇 권 출간돼 있지만 '전기소설'이라고 하니까 또 감이 다르다. 벤야민의 독자라면 놓치기 아
  2.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06 23:10 
    이미 예고돼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내주 개봉된다 한다. 지난달에 서거 100주년을 맞은 이 거장의 삶을 한번쯤 음미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덤으로 아내 소피야 역을 맡은 헬렌 미렌의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한겨레(10. 12. 07) 성자로 박제된 ‘소년’의 마지막 1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l
 
 
sophie 2010-02-1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뒤져보니 <톨스토이의 비밀일기>가 나오네요. 인디북에서 나온 건데 읽으면서 별로 재미는 못 봤지요.

로쟈 2010-02-16 10:45   좋아요 0 | URL
일기 분량도 사실 너무 방대해서 전공자도 읽을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논문을 쓴다면 모르지만요.^^;

돈키호테 2010-02-17 07:42   좋아요 0 | URL
전에 일기을 읽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국내 전시회였죠('04.12.10-'05.3.27). 다시 읽어 보렵니다.

L.SHIN 2010-02-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싶네요.

돈키호테 2010-02-17 00:2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보고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0-02-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족이지만 귀족을 미워했다는 톨스토이. 자신의 삶에 사회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모순 투성이일 수밖에 없겠죠. '삶과 사회'와의 마찰 때문에 좋은 글을 뽑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작가의 저항정신입니다. 마찰과 저항이 있어야 좀더 바람직한 세상에 대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한 작가의 고뇌가 만든 그의 저작을 통해 우리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훌륭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10-02-17 23:23   좋아요 0 | URL
인류를 위해 공헌하자면 가족들의 희생이 따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