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면 9월이고 개강이다. 대학강의는 이번 학기에 줄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부담과 분주함이 교차한다(기대나 반가움은 옛말이다). 그래봐야 손과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어제 우편물 때문에 옛집에 들렀다가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어느 연구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하이데거 번역자와 연구자로 내게도 이름이 익숙한 신상희 박사가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한눈 팔지 않고 번역/연구에만 매진한 성실한 학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겨우 이 정도인가 다시 한번 탄식하게 된다. 더불어 지난주에 읽은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떠올렸다. 대학강사에게도 총장선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무리한 주장인가? 그것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통념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학사회에 미래는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걸겠다...
경향신문(10. 08. 25) [김상봉칼럼] 대학강사에게 총장선출권을
나는 해직교수였다. 그때가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바로 다음 해 봄이었는데, 나라 경제가 온통 위기 상황이었을 때 직장을 잃었으니 가진 것 없는 살림에 염려가 없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도서출판 한길사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김언호 사장이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김 선생, 책 열 권만 쓰면 먹고 사는 거야 걱정 안 해도 되잖아.” 책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몹시 고마워 그 후 나는 7년 동안 혼자 이름으로만 다섯 권의 철학책을 썼다. 당시 처음 시작해서 열심히 활동했던 ‘학벌없는사회’ 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두세 권은 더 썼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5년 전 전남대로부터 부름을 받아 다시 교수가 되었다. 이제 원 없이 연구하고 책을 쓸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웬걸 지나고 보니 5년 동안 혼자 이름으로 쓴 책이 두 권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한두 해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환경이 바뀌고 할 일도 많아졌으니 그럴 만하다고 위로했으나 이즈음에 와서는 다시 해직이라도 당해야 온전히 학자의 삶을 살 수 있으려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적어도 내 경우만 두고 보자면 교수 시절보다 강사 시절의 내가 훨씬 더 훌륭한 학자였다. 모든 교수가 강사보다 열등한 학자라고 일반화시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강사라고 해서 교수들보다 열등한 학자라고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방학중 홀로강의 막는 것은 모욕
아무리 교수채용과정을 공정하게 운영한다 하더라도 누가 교수가 되고 누가 강사로 남느냐는 많은 경우 실력보다 운이 좌우한다. 어차피 사람을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닌 데다가, 강사의 전공분야와 학과가 필요로 하는 전공분야가 일치하지 않아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 보면 나이가 맞지 않아 유능한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강사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한국 대학에 만연한 학벌 및 성차별과 연고에 따른 교수채용의 불공정성을 고려한다면 교수가 강사보다 학문적으로 더 훌륭해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수들이 자기가 남들보다 훌륭해서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 때문에 대학이 강사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예를 들면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는 강사들이 방학 중에 계절학기 강의를 맡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교수가 같이 강의를 한다면 강사도 계절학기 강의를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강사들이 홀로 강의를 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하다고 믿지 않는다면 이런 모욕적인 제도를 만들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잘난 체하는 소수가 아니라 성실한 대중의 열정을 통해 유지되듯,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학문의 길을 걷는 수많은 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들이야말로 대학과 학문의 참된 토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학문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바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해묵은 강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예산 문제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된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그렇지만 이 문제를 돈 문제로 환원시키는 한 우리는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돈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이다. 대학에 아무리 많은 돈이 넘쳐난다 하더라도 대학 총장들이 지금처럼 사람보다 건물과 시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강사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이 바뀌겠는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강사들에게 총장선출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총장 선거가 두세 번만 지나면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강사들의 처우는 저절로 개선될 것이다.
처우개선, 돈보다 마음의 문제
많은 대학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총장을 선출할 때 교수나 직원 그리고 학생대표까지 투표에 참여하는데 대학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이 배제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합리한 일이다. 강사들에게 총장선출권을 주기 위해 특별히 예산이 들 일도 없으니 돈 때문에 안된다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도리어 강사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하게 되면 총장직선의 부작용도 완화될 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더 늦기 전에 권위를 내려놓고 상생의 지혜를 찾을 때다.(김상봉| 전남대교수·철학)
교수신문(10. 08. 23) 비좁은 학문현실 좌절하다 별이 된 철학자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홀로 몇 시간이고 앉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어요.”
밤하늘을 응시하던 한 철학 연구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것은 밤하늘의 별빛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의 깊은 사색 저편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오랫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국내 대표적인 하이데거 연구자인 신상희 건국대 연구교수(철학)가 만 50세의 이른 나이로 지난 달 4일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1992년 하이데거 수제자인 폰 헤르만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신 교수는 귀국 이후에도 하이데거 연구에 몰두해 왔다. 『하이데거의 언어사상』(1998), 『시간과 존재의 빛』(2000), 『하이데거와 신』(2007)등의 저서와 『동일성과 차이』(2000), 『사유의 사태로』(문동규 공역, 2008), 『숲길』(2008) 등 하이데거 번역서를 발간해 하이데거 연구에 가장 정통한 학자로 손꼽혀 왔다.
신 교수의 실질적 은사이자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전문가인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하이데거 저작이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던 시절 신 교수의 번역은 국내 하이데거 전공자들의 입문서 였다”고 그의 작업을 평가했다. 그러나 학계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은 학자로서 신 교수에게 닥친 가장 큰 불행이었다. 1993년 이후 시간강사를 전전하며 수차례 대학의 전임교수 채용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종 면접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수차례였다.
“한번은 단독으로 최종면접에 오른 적이 있어요. 혼자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학교는 결국 아무도 임용하지 않았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듭 임용이 좌절됐어도 신 교수는 좀처럼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강의를 해왔던 한국외대의 강의가 2007년 이후 끊기며 그나마 있던 시간강사 자리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모교인 건국대 명저번역 사업에 학술연구교수로 참여하며 학교와의 끈을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
신 교수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인 지난 6월 말, 함께 하이데거 번역 작업을 진행하던 문동규 순천대 연구교수(철학)를 찾아갔다. 문 교수와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던 대화 역시 더 이상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학자로서의 불투명한 삶이었다. 문 교수는 “더 이상 전임교수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죠. 더 이상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숨에 그저 힘을 잃지 말자는 위로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학계에 대한 신 교수의 회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되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신 교수와 번역 작업을 함께 해 온 한 출판편집자는 “지난 3월 학계를 떠나려고 하니까 책을 빨리 냈으면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신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철학계의 한숨이 깊다. 그를 좌절시킨 ‘철학자의 고단한 삶’은 비단 한 학자의 비극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자리 잡지 못한 다수의 철학 연구자들은 여전히 최저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학자로서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중·후반 학부제가 도입된 이후 철학과의 폐과 현상은 가속화됐다. 2009년 기준 최근 10년 간 8개 대학에서 철학과가 폐과됐으며, 전국 177개 4년제 대학 가운데 철학과가 남아있는 대학은 55곳에 불과하다. 이기상 교수는 “학자로서 최소한의 생활, 연구 여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학문 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는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모순이 비단 철학만의 현실이 아닌 이상 우리 학계의 ‘학문적 타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의 철학은 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평생 외골수로 하이데거만을 파고들었던 신 교수. 발 딛었던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지금 그는 평화로운 사색에 잠겨있을까. 이제 내년 나남과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는 하이데거의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언어로의 도상에서』, 『회상』 등 세 권의 유작 번역서를 통해서만 그를 느낄 수 있게 됐다.(우주영 기자)
10. 0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