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 잠시 다녀오면서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프리모 레비가 생각났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다가 며칠 전 그의 자서전 <주기율표>(돌베개, 2007)를 비로소 펴본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란 문장으로 첫장 '아르곤'은 시작한다. 나는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이 비범한 전기를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차마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해서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며칠 전에 산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 2009). 재일 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강연록인데, 마지막 4부는 ''솔직한 비관주의자' 서경식과 나눈 대화'로 전에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전문이다. 이 기사는 작년 2월말에 '한국판 시라케 시대'(http://blog.aladin.co.kr/mramor/1938368)라고 옮겨놓은 적이 있다. 이번주 언론리뷰에 빠진 것이 좀 아쉬운데, 배본이 늦었던 듯하다. 소개기사가 없어서 작년말 '자서전 읽기'의 마지막 꼭지로 실렸던 연재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대한 것이다(서경식과 프리모 레비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949436 참조).  

경향신문(08. 12. 27)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는 니스와 인연이 깊다. 자서전 <주기율표>(돌베개)에서 그 인연이 무엇이었는고 톺아보기에 앞서, 레비가 니스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알아보자. 사전적 의미에서 니스는 불안정한 물질이란다. 이 물질은 사용하는 어느 순간 액체에서 고체가 되어야 한다. 고체로 변화하는 순간이나 장소가 적절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창고에 있는 동안 고체가 되면 폐기처분해야 한다. 너무 일찍 반응이 나타나면 안되는 것이다. 거꾸로 쓰고 났는데 굳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이는 웃음거리가 된다. 너무 늦어도 안된다. 니스가 하는 일이란 무엇인고 하면, 결국은 치밀하고 단단한 망을 만드는 것이다. 

니스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마치 화학으로 말하는 인생론 같다. 살아가는 것은 연금술과 비슷하다. 둘 다 비루한 것을 빛나는 그 무엇으로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변화라는 열쇳말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정적 변화가 적시적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런 안타까운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칼바람을 맞으며 버티려면 우리를 감싸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갑옷은 관두고라도 삼베옷이라도 누군가 입혀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원망과 한이 쌓이는 것은 헐벗은 채로 살아왔다 여기기 때문이리라. 곱씹어 볼수록 니스의 특징과 우리네 삶은 닮아 보인다. 



잠시 옆길로 샜다. 본론으로 돌아오자.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유대인 화학자다. 대학 재학 중 파시스트들이 만든 인종법으로 고난의 삶이 예고된다.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음에도 주변의 배려로 잘 버텨나갔다. 하지만 파시즘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저항의 길을 택했고, 그 결과 아우슈비츠로 갔다. 믿기지 않는 운과 복이 따랐다. 그 무간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말이다. 어찌 평상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까웠다. 시를 썼다. 그야말로 “피가 묻어나는 시”였으리라. 그것이 쌓여 한 권 분량이 되어가자 평온을 느꼈다.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자리를 얻었는데, 그곳이 니스 공장이었다.

온 나라가 전쟁 후유증을 앓는데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남는 시간에 글을 쓰면서 버텼다. 그러다 일이 떨어졌다. 버려진 니스 덩어리가 잔뜩 있는데, 원래로 돌리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반은 화학자로, 반은 수사관으로” 일에 매달렸다. 젊은날, 그에게 화학은 구름이었다. 앞날을 가리는 걸림돌의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경의 상징을 통해 무궁한 가능성을 뜻한다. “마치 시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 같은 것이니, “그 구름 속에서 내 율법이, 내 내부와 내 주변, 세계의 질서가 나타나주길 기다렸다.”(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그는 과학에서 궁극적인 것을 얻으리라 기대했다. 거기에 “최고의 진리에 도달하는 새로운 열쇠”가 있으리라 믿었다. 처음에는 열쇠를 찾으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열쇠를 만들기로 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문을 열 거야”라고 마음먹었다. 아, 과학에 미친 어린 시절에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모든 것이 “저마다 그 신비를 밝혀달라고 졸라”대고 있었으니.

그는 이 시기에 비로소 절대 사라지지 않을 듯했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게를 달고 나누고 측정하고 어떤 실험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온 힘을 다하는” 화학자의 길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침내 기쁨과 활력을 안고 삶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글쓰기가 그의 해방감을 더해주었다. 가혹했던 기억의 짐이 이제 희망과 기쁨의 씨앗이 되었다.

레비의 삶이 문제적인 것은 그가 훗날 자살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서 돌아온 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끊었다. 경악과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는 그 죽음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왜 죽었을까?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도 니스와 관련 있다.

생환한 지 22년이 되는 해였다. 역시 니스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니스에 쓰는 수지 원료를 수입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니스를 공급한 업체는 독일의 대기업이었다. 정중하게 항의 편지를 썼지만 상대방은 뻔한 답변만 해왔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독일 쪽 책임자가 L 뮐러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으나, 속단할 수는 없었다. 뮐러라는 이름은 남산에서 돌팔매질 하면 김씨나 이씨 집 마당에 떨어지는 격이다. 독일에서는 흔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철자를 달리 쓰는 습관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실험실에서 만났던.

레비는 그와 세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작업에 대한 질문만 했고, 두 번째에는 수염이 왜 기냐고 물었다고 한다. 면도기도 없고 손수건도 없는 데다, 월요일마다 떼거리로 수염을 깎는다고 대답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쪽지를 건네주었다. 목요일에도 면도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가죽 신발도 한 켤레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느냐?” 기가 막힌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인류사회에서 벌어질 수 없는 방법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살육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언제든지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던져서는 안될 질문이었다.

물품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면서 레비는 뮐러에게 자신의 저서를 보내주고 옛일을 기억하는지 묻는 편지를 띄웠다. 드디어 답신이 왔다. 자신이 그때 만났던 사람이 맞다며 레비가 살아남아 기쁘다고 했다. 이제 답장을 써야 한다. 예상할 수 있듯 레비는 당혹스러워한다. 특히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고 회고한다. 당장 “아우슈비츠는 왜? 판비츠(레비를 실험실에서 일하게 한 독일인)는 왜? 어린아이들은 왜 가스실로 가야 했는지”라고 묻고 싶었다. 편지가 오고가며 그의 고뇌는 더 깊어진다. 뮐러는 아우슈비츠의 사건들을 전 인류의 탓이라 했다. 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레비를 뽑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공장이 유대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운영되었고, 포로들에게 동정심을 품지 말라는 명령은 위장이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은 아우슈비츠에 머무는 동안 “유대인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그 어떤 활동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레비에게서 “유대정신을 극복하여 자신의 적을 사랑하는 기독교 신자의 계율을 잘 지키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노라고 했다.

편지 어느 곳에도 진실한 반성과 참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없다. 개인이 막아낼 수 없는 체제의 폭력이었다고 발뺌할 따름이다. 가해 집단의 일원으로 돌팔매를 맞을 각오보다는 피해자의 용서를 서둘러 요구하는 꼴이다. 역사의 범죄 앞에서 어느 사람도 손을 씻으며 죄 없다 할 수 없는 법이다. 이미 레비의 절망은 여기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편지의 초고내용을 다음처럼 썼다. 그러나 이 편지는 끝내 부쳐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로 찾아오겠다는 뮐러 박사가 급사해서였다.

“적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아마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그들이 후회의 표시를 보이는 경우에만, 그러니까 그들이 적으로 남아 있기를 포기한 경우에만 가능했다. 반대의 경우, 여전히 적으로 남아 있고, 남에게 고통을 가하려는 고집스러운 의지를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용서해서는 안되었다.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나누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은 그를 심판하는 것이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주기율표>는 최고의 자서전이라 평할 만큼 빼어난 책이다. 담고 있는 주제의식도 대단한데다 문장도 뛰어나다. 더욱이 삶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지 않고 주기율표를 원용해 글을 써나간 방식도 독특하다. 주기율표 순서대로 원소를 나열하고, 이것이 환기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네그리 자서전 <귀환>은 알파벳 순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의 구성도 상당히 특이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가치를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두 가지 의문이 바로 이 책의 또 다른 의미를 돋을새김해준다고 보는 것이다. 

그 하나는 우리가 과연 <주기율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양도서로서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이 책에 담긴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대한 절실한 이해에 과연 우리가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정주의 삶은 유목의 애환을 속 깊이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점에서 국내에 레비를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서경식을 주목한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삶만이, 형제가 독재의 희생양이 되었던 경험이 있는 자만이 레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는 바로 이 두 층위로 레비를 읽고 있다.

또 하나는 자꾸 레비와 리차드 파인만을 비교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 다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적 전통에서 자유로웠다. 어릴 적부터 관찰과 실험을 즐겼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둘 다 많다. 나중에 친구하고 작은 회사를 꾸린 점도 비슷하다. 도전정신이 충만한 데다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도 그 둘이 맞이했던 운명은 달랐다. 유럽에서 살았던 한 사람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기 직전 살아 돌아왔다. 이후 과학자보다 문필가로 명성을 떨쳤다.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며 과학계의 상징이 된다. 다시, 니스를 떠올린다. 한쪽의 반응은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쪽은 제때 제대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우리가 운명의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역사는 가혹하기도 하고 축복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고삐 풀린 망아지일까? 개인의 삶이 역사적 가치를 띠게끔 살았던 사람들은 그래서는 아니된다고 말하는 듯싶다. 결코 역사가 개인의 삶을 짓밟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자기의 삶을 걸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 자서전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싶다. 운명이라는 가혹한 발톱에 상처를 입고도 마침내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성취가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로 확대되는 이야기이니까. 삶은 모방이다. 그들의 삶을 뒤쫓고자 열망할 적에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이제, 훗날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본다.(이권우 도서평론가)    

무참한 유대인 학살의 와중에 그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업무상 서신왕래를 하게 된 아우슈비츠의 학살자는 뉘우치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거대한 역사와 전 인류의 탓으로 넘겼다. 진실한 반성과 참회 따위는 없었다. 적이길 포기하지 않는 적을 용서하는 것은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그는 과학보다 더 어려운 문제 앞에 절망했다. 삶이 던지는 수많은 모순과 불합리의 첨단에 서 있던 그가 끝없이 이루어내고, 성취하다 마침내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궤적에서 우리는 그 고민의 일말이라도 읽어내고 우리 삶을 위한 지표를 깨달아야 한다. 

09. 02. 01.  

P.S. 페이퍼의 제목은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의 6장 제목에서 가져왔다. 루쉰의 산문<희망>(1925)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서 루쉰은 헝가리 독립운동 투사이자 시인이었던 페퇴피 산도르(1823-1849)의 시 '희망가'를 인용한다. "희망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매춘부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아양을 떨면서 모든 것을 바친다./ 그대의 귀중한 보배,/ 그대의 청춘을 다 바쳤을 때/ 그는 그대를 저버리노라" 그리고 루쉰이 덧붙인 코멘트. "절망이란 희망처럼 허망한 것이어라!"  

  

루쉰의 사례에서 서경식은 '희망'이란 번역어에 대한 루쉰식의 주체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안 그러면 다수자가 그러듯이 "그래도 희망이 있는데..."라는 식으로 "해석을 당하며" 넘어가버린다는 것. "'안 그렇다. 희망은 우리에게는 없다. 희망은 우리에게는 허망이다.' 하고 저항하고 충돌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수자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할 수 있고, 어떤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나 요즘, 어두운 경제 전망을 놓고 수시로 떠벌여대는 "위기가 기회다" "내년에는 국민에게 희망의 싹 보여줘야"라는 식의 수사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일단 경제만 살려달라'는 여론은 또 뭔가?). 그런 '허무 개그'에 대항하여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신들의) 기회가 우리에겐 더 큰 위기이다." "당신의 희망은 우리에겐 더 큰 허망이요, 절망이다."라고. 우리에게 희망이란 매춘부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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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2-01 20:46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 로쟈님 덕분에 처음 알게 됐군요.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인용하신 기사를 읽으니 문득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떠오르는 군요. 사실 이건 우리 현대사에서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문제이기도 한 것 같군요...

로쟈 2009-02-01 21:46   좋아요 0 | URL
레비의 책들은 재작년 겨울에 소개됐습니다. 생각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나 보네요...

푸른바다 2009-02-01 22:11   좋아요 0 | URL
빅토르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는 아주 옛날부터 소개됐는데, 레비의 책들은 소개가 많이 늦었군요. 이탈리아어라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드는군요. <이것이 인간이다>는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레비가 스스로 '존재하기를 멈춘 것'은 인간에 대한 절망 때문일까요..? 인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랭클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로쟈 2009-02-01 22:53   좋아요 0 | URL
저로선 레비의 자살이 보다 '인간적'으로 여겨집니다. 긍정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듯해요...

virtuepeak 2009-02-01 20:41   좋아요 0 | URL
레비가 뮐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면서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가 떠올랐습니다.

"성실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평한 도리 역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좋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나쁜 사람을 보호해주기까지 한다. 나쁜 사람이 득세하여 좋은 사람을 학대할 때에는, 설사 공평한 도리를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나쁜 사람은 결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부르짖음은 단지 부르짖음으로 그치고 좋은 사람은 여전히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어쩌다가 좋은 사람이 조금씩 일어서게 되면, 나쁜 사람은 본래 물에 빠져야 마땅한 것인데도, 성실한 공리론자들은 '보족하지 말라'느니, '너그럽게 용서하라'느니,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느니 하며 떠들어댄다. 이번에는 실효가 나타나서 헛부르짖음으로 그치지 않게 된다. 착한 사람은 그 말을 옳다 여기고, 그리하여 나쁜 사람은 구제 받는다. 그러나 구제 받은 뒤에 그는, 틀림없이 이득이 보았다고 생각하지, 회개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희망이 사라진 곳이 곧 지옥이라 했다는데, 매춘부가 없는 곳은 지옥인가 하는 말장난 같은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 서경식의 루쉰 해석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인지요?

로쟈 2009-02-01 21:44   좋아요 0 | URL
아뇨, 바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6장입니다. '매춘부가 없는 곳이 곧 지옥'이라는 건, 희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요.^^

비연 2009-02-01 22:36   좋아요 0 | URL
'주기율표'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이것이 인간이다' 등을 읽으면서 쁘리모 레비 뿐 아니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인생에 대해서 한동안 찾아보곤 했었죠.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무심하게 자살한 그의 최후가 내내 마음에 걸렸구요..

로쟈 2009-02-01 22:52   좋아요 0 | URL
또 다른 증언자였던 장 아메리의 <자살론>도 올해 번역돼 나옵니다. 아시겠지만 서경석 선생의 책에 두 사람 얘기가 나오죠. 아메리 또한 자살했구요...

비로그인 2009-02-02 00:50   좋아요 0 | URL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프리모 레비가 생각"나셨다니 藏書家이자 학자다운 감수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

레비가 자살한 원인과 시점... 프랭클과 대비해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겠군요...

로쟈 2009-02-02 22:13   좋아요 0 | URL
장 아메리와도 비교해보아야 하구요...

모래한알 2009-02-02 07:54   좋아요 0 | URL
'이것이 인간인가'를 작년에 감명깊게 읽었는데, 기억해보니 로쟈님의 소개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값싼 희망과는 무관하게....

로쟈 2009-02-02 22:13   좋아요 0 | URL
네, 절망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02 15:27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가 자살한 직접적인 원인은 독일에서 요아힘 페스트와 에른스트 놀테가 개시한 나치 상대화 작업인 것 같습니다.시기가 겹치거든요.독일 우익의 대대적인 기억선점 공작이니까요.그때문에 인간에 대해 절망한 게 아니었을까요?

로쟈 2009-02-02 22:15   좋아요 0 | URL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망의 한 원인은 되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