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부쩍 많이 출간된 '글쓰기' 책들에 대한 인상을 적고 있는데, 아이템 자체는 내가 고른 것이 아니다. 어렵게 작성하진 않았지만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몇 가지 해프닝이 생기는 바람에 마감을 겨우겨우 맞추었다. 글쓰기 책을 몇 권 훑어보아도 글쓰기 자체는 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한 글이기도 하다...

한겨레21(08. 12. 15)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글쓰기를 권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글쓰기’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그 글쓰기의 주체를 ‘누구나’로 전제한다는 점이 새롭다. 예전의 ‘작문론’이나 시․소설 작법 등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이다. 바야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써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 새로운 시대적 조건을 만들어낸 것은 인터넷이다. 온라인상의 블로그, 미니홈피, 카페와 클럽, 그리고 토론광장 등 글쓰기의 공간은 차고 넘친다. 그에 따라 글쓰기에 대한 유혹 또한 전면적이며 전방위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전방위 글쓰기>(바다출판사 펴냄)의 착안점이 그렇다. 인터넷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무너뜨렸다는 것. “따라서 21세기의 글쓰기는 특정한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된 사람들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났다.” 비록 글쓰기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 하더라도 그 욕구의 현실화는 멀티미디어 시대, 미디어믹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된 시대,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쓸 수 있을까다. 글쓰기가 타자와의 소통이고 유희라면, 더 잘 소통하고 더 잘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는가.

<전방위 글쓰기>는 이미 다방면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전방위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저자의 노하우를 담고 있다. 글쓰기의 필수 교양 세 가지로 철학적 사고와 경제 상식,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점을 드는 것을 ‘저자만의 노하우’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대중문학에서 영화, TV, 만화, 음악, 시사비평까지 다루면서 친절하게 요령을 짚어주는 것은 저자만의 강점이다. 그러한 요령과 비법을 습득한 뒤에 자기만의 ‘색다른 정보’를 가미한다면 “누구나 비평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살려 얼마든지 특정 분야의 비평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책은 그러한 비평적 글쓰기의 매뉴얼이다.

물론 전방위 문화비평가가 다 짚어준다고 해서 누구나 저절로 그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강제’는 필요하다. 이를테면 반드시 일주일에 원고 2-3매라도 꾸준하게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보면 인터넷 시대라고 하여 특별한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닌 듯싶다. 그의 결론 또한 우리 귀에 익은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그리고 꾸준하게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정도다.”

뭔가 자기만의 주제에 대해서 꾸준히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책을 쓰면 된다. 어떻게? 오병곤과 홍승완이 지은 <내 인생의 첫 책쓰기>(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제목 그대로 ‘첫 책쓰기’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이다. 저자들이 직장인으로서 실제로 자신의 첫 책을 쓰는 데 성공한 경험을 풀어놓고 있어서 그 노하우는 자못 구체적이다. 책을 출판하기 위한 ‘좋은 출판사를 고르는 3가지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첫 책을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출판 거절을 경험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란 구절은 이 책이 얼마나 ‘실전적’인가를 말해준다.   

저자들이 ‘첫 책쓰기’에 도전해보도록 권유하는 독자층은 직장생활 10년차 직장인들이다. “대략 3년에 한 번 꼴로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의 3분의 1을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게” 되기에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요즘 직장인들의 10년 공력이면 책 한 권은 너끈하다는 판단이다. “자기만의 노하우나 전문성을 담은 책을 쓰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격려한다. 하지만 이런 대목을 읽게 되면 책 쓰기가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도 여겨진다. “전문가 1.0 시대가 학위나 자격증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면 전문가 2.0 시대에는 책쓰기에 의해 판별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책을 써야 한다.”

비록 웹2.0 시대, 전문가 2.0 시대라고는 하지만 글쓰기의 목표가 비평가나 전문가 되기일 수만은 없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한겨레출판 펴냄)는 보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글쓰기의 ‘치유의 힘’을 편안하게 풀어나간다. 기본 전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글쓰기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점. 곧 나를 표현하기, 거리두기, 직면하기, 명료화하기, 나누기, 사랑하기, 떠나보내기, 수용하기가 모두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글쓰기의 노하우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 그래서 저자는 몸으로 쓰고, 심장으로 쓰라고 권한다.

가령 15살에 가출하여 ‘양아치 오빠들’을 만나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다 18세에 귀가한 한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털어놓는다. “집에 들어갔다. 큰오빠한테 좆나게 맞고 작은오빠한테도 좆나게 맞았다. 하루종일 맞았나보나. 맞다가 오빠들한테 그랬다. 씨발 죽었어. 다시는 집에 안 들어와. 씨발, 하고 나는 다시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나는 오빠들이 나를 때려서 정말 미웠다.” 고상한 어휘를 구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처지와 가출의 배경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를 어떤 식으로든 글로 표현해내는 것, 그것이 치유하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 치유하는 글쓰기의 목표는 우리가 조금 덜 불행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글쓰기에 소질이 좀 있다면, 그리고 열정도 갖추고 있다면 보다 ‘본격적인’ 경지로 나아갈 수도 있겠다. 이른바 ‘글을 쓰는 삶’의 경지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애니 딜러드의 <창조적 글쓰기>(공존 펴냄)는 그런 삶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리고 있다. 그녀는 창조적인 글을 쓰는 삶을 ‘가장 자유로운 상태의 삶’으로 규정한다. 물론 자신의 포부에 호응하는 글을 쓰는 것은 전문적인 글쟁이들에게도 언제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헨리 소로의 말대로 젊은 시절엔 궁전이나 사원을 지을 재료들을 모으지만 중년이 되면 나무 헛간 정도를 짓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그것이 그의 평생의 작업이며 그의 보람이다. 글쓰기는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구제하며 고양시킨다.

08.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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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12-0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그런데 일주일에 원고 2-3매가 왜 이렇게 안 되냐 이거죠. 어휴어휴. 저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책 중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제일 좋았어요. 소개해주신 요즘 책 중에선 [전방위 글쓰기]가 궁금해요. (근데 이런 책 읽을 시간에 사실 한 장이라도 더 쓰는 게 좋은 거 아냐? 하는 생각이 할 수 없이 드네요. 킁.)

로쟈 2008-12-09 08:28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생각으론 일주일에 2-3매가 아니라 하루에 2-3매가 되어야 할 듯싶은데요.^^;

파란여우 2008-12-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능도 열정도 시시한 사람은 당췌 뭘 해 먹으라는 말에요.

로쟈 2008-12-09 14:20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에겐 염소들도 있잖아욧!^^;

Arch 2008-12-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니 전 서재 닫아야할 것만 같고^^

로쟈 2008-12-09 14:04   좋아요 0 | URL
흠, 다들 '본격적인 글쓰기'를 노리시는 건가요?..

nada 2008-12-0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애니 딜러드. 영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많이 그러든데 번역되어 나왔군요. 근데 163쪽밖에 안 되는데 가격은 왜 다른 책들하고 같은 수준인 거예요. 군시렁군시렁.

로쟈 2008-12-09 14:05   좋아요 0 | URL
앗, 양배추님. 왜 이렇게 뜸하신 거예요. 궁시렁궁시렁...

토란잎 2008-12-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꾸준히 쓰는 일...... 글쓰기의 왕도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텐데....
아이궁,
이 게으름이여!

로쟈 2008-12-11 21:06   좋아요 0 | URL
이틀에 이틀치씩 쓰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