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인터넷 번역비판과 관련한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61). 나 자신도 관련돼 있고 지난주에는 기자의 간단한 이메일 설문에 답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기자는 지난번 한국일보 기사에 힌트를 얻은 듯하다(http://blog.aladin.co.kr/mramor/2144892). 인터넷 번역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는 일에 이 블로그도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사실 주변에서는 무슨 '뻘짓'이냐는 시선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교수신문(08. 06. 30) '장미밭에서 춤추기’를 더 긴장케 하는 블로거의 힘

인터넷이 번역 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분량, 형식, 시기 등의 제한이 없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서점 블로그는 오역 제기의 근원지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파리8대학 명예교수인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의 오역 비판은 명예 훼손 고소 사건으로까지 번진 케이스다. 도저히 읽지 못할 번역이라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한결같은 비판이었고, 이 책의 번역자 백승대씨가 알라딘 서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쟈’, ‘FTA반대balmas’, ‘람혼’ 등을 고소한 것. 이들 중 ‘로쟈’, ‘FTA반대balmas’는 ‘이유없음’으로 현재 고소가 기각된 상태이고 ‘람혼’은 그 이후 다시금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 서론 전체에 대한 장문의 번역 정밀 독해를 올렸다. 지금 이 책은 전량 회수돼 판매 중지에 들어간 상태다.  



오역 정밀 지적해 번역서 전량 회수
백씨가 공개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2001~2002년 교보증권에 근무했으며 200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주식투자에 대해 연구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워낙 논쟁할 상대들이 아니라서 응대를 하지 않았다. 번역 문제라기보다 그들이 나를 음해하려 했기 때문”에 고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불거지자 인간사랑 출판사 편집부 홍성례씨는 “비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긴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며 “번역자와 합의가 되면, 새로 번역자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앞선 사례처럼 거센 반발도 있지만, 대부분은 역자나 출판사측이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중론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1·2』(한길사, 2007)에 대한 번역 비판을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7호)에 기고하고, 분량 상 지적하지 못한 오역들을 인터넷에 올린 블로거 ‘바다라네’는 출판사나 역자에게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Gesellschaft’를 ‘공동체’로 옮긴 것은 최악의 번역어 선택이었고 그 외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번역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문장 오역도 2권 후반부에 이르면 거의 한 단락에 하나 이상씩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 박여성 제주대 교수(독일학과)는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부분이 일부 있었지만, 번역 용어상의 차이 부분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더불어 한길사 편집부 배경진씨는 “이후 역자와 상의해 잘못된 부분은 고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의 장점인 상호 소통력이 번역 논쟁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지난달 말께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는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한길사, 2008)의 번역 몇 구절을 놓고 ‘노이에자이트’, ‘qualia’, ‘제레카폴’, ‘규’, ‘carboni68’ 등의 블로거들이 댓글을 통해 논쟁에 참여했다. 50여개가 넘는 댓글이 이어지다 ‘qualia’가 세 가지 쟁점을 간추려 아서 단토 교수에게 메일로 질문을 보내 답신을 받아냄으로써 논쟁은 마무리 됐다. 그 결과, 역자가 ‘하찮은 대상들’로 번역한 ‘these unedifying objects’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대상들’로, ‘가장 가당치 않은 곳(the least likely places)’의 ‘places’도 역자가 선택한 ‘전시장’이 아니라 ‘qualia’가 지적한 것처럼 ‘전시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것으로 판정났다. 



흔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상의 오역 제기로 인해 번역서가 재출간 돼 ‘책 리콜’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새뮤얼 이녹 스텀프, 제임스 피저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열린책들, 2004)는 지난해 11월말께 ‘히드라’라는 블로거에 의해 오자, 오역이 900여 군데 넘게 지적당했다. 예전 종로서적에서 출판된 것(2판)을 다시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재출간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고 한 7판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였다. 얼마 전 개역된 이 책은 그간 출간된 1쇄~9쇄까지의 책들을 대상으로 지난 23일부터 교환에 들어갔다. 열린책들측은 “많은 독자들이 읽어 주셨던 만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이번 책 리콜은 출판사로서 당연한 조처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교환방법을 알려면,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http://www.openbooks.co.kr)를 참고하면 된다.
 
번역비평에 관한 인식 개선돼야

그간 인터넷을 통해 번역 비평을 해온 누리꾼들은 번역 질 향상을 위해 인터넷의 장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필요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번역 문제를 다루는 전문 매체를 인터넷상에 운영해 서평을 겸하면서 번역 문제를 검토하거나 저작권이 없는 고전들의 경우 공동 번역과 비평을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 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줬다. ‘바다라네’는 “출판사로서는 모험이겠지만, 오역 지적이 이루어지고 역자와 직접 논쟁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인터넷상에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를 통한 ‘오역 공개 접수처/논쟁장’에 미치지 못하지만 자신의 역서에 대한 정오표를 인터넷 상에 스스로 공개한 번역자들도 있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등을 번역한 ‘FTA반대balmas’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 등을 번역한 강유원씨가 그들이다. 

물론, 인터넷이 ‘오역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전에 번역 출판·비평에 대한 인식 전환과 토대 구축이 시급하다. ‘로쟈’는 “역자, 편집자, 독자가 서로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저마다의 몫과 역할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인문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나아져야겠고, 번역비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FTA반대balmas’는 “번역물의 향상을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총서’ 체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학계의 유능한 학자들이 전공과 관련된 ‘총서’를 맡아서 운영하면 번역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신이 번역한 ‘역자 후기’만을 모은 두 번째 책을 지난달 펴낸 번역가 김석희씨는 번역 작업을 고통과 쾌락이 공존하는 ‘장미밭에서 춤추기’라고 표현 한 바 있다. 번역자가 장미 가시에 많이 찔릴수록 그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은 장미 향기를 보다 진하게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한 번역 비판과 논쟁에도 장미의 가시와 향기가 공존하고 있다.(김창한 객원기자)

08. 07. 01.

P.S. 기사에서 언급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 번역비판은 최근 출간된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갈무리, 2008)의 역자이자 루만 전공자인 정성훈씨의 것이다. 루만의 대저를 읽을 계획이 있는 독자라면, 미리 이 '입문서'부터 읽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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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7-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산적인 '뻘짓'을 하고 계신 ^^ 로쟈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된 발마스님과 다른 분들도. 돈도 안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의미있는 일을 하고 계신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

로쟈 2008-07-01 17:06   좋아요 0 | URL
뻘짓을 하더라도 '생산적'이려고 애는 쓰고 있습니다.^^;

주니다 2008-07-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도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교환해야겠습니다.『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원서도 복사해놨는데, 읽을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네요. 로쟈님의 여름방학은 언제나처럼 바쁘시겠죠?^^

로쟈 2008-07-01 17:05   좋아요 0 | URL
단토의 책 자체가 후기 저작들보다 읽기 까다롭더군요. 사실 오늘부터야 방학이긴 한데(계절학기가 있지만) 밀린 일들이 '쓰나미' 수준으로 덮쳐오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할 텐데...

노이에자이트 2008-07-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 단토 논쟁에서 저는 별로 댓글 분량도 많지 않았는데 첫번째로 참여했다고 이런 기사에 나오는군요.

로쟈 2008-07-02 00:13   좋아요 0 | URL
^^

람혼 2008-07-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기사로군요.^^

로쟈 2008-07-02 00:49   좋아요 0 | URL
람혼님이 더 반갑습니다.^^

열매 2008-07-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신문같은데서 이런 이슈를 상세히 다루어줘야 하는데 이제라도 공론화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학술계의 다양한 첨예한 이슈들이 학술계 내에서의 자정작용으로 걸러져야 하는데 그런 필터링의 기능을 할 곳도 마땅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해야할 곳이 딴짓만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답답합니다.
<철학과 현실>이라는 철학자들이 내는 잡지를 보면 무슨 보수우파들의 집산지같습니다.
한국 기성의 철학과 교수들의 현실 파악이 얼마나 나이브하고 우파적이며 기성권력에 굴종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학술적 기능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철학'을 잡든 '현실'을 잡든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한번씩 도서관가면 훑어봅니다. 볼 때마다 실망하구요.

로쟈 2008-07-02 01:11   좋아요 0 | URL
저도 안본 지 오래됐는데, 점점 얇아지고 있더군요...

Kitty 2008-07-02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 <- 눈을 믿을 수가 없네요. 이게 정말 번역자가 한 말인가요? 대담하다고 해야할지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운(?) 분이네요. 출판사는 또 뭐랍니까...

로쟈 2008-07-02 19:18   좋아요 0 | URL
좀 어이없는 경우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까지 가다니...무서워요.

아열대 2008-07-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밥벌이가 바빠서 확인을 못한 사이 기사까지 나갔군요. ;;
그나저나 기사는 'places'를 전시장이 아니라 전시물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네요. 저는 아직까지도 전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
단토의 답장을 보아도 - once we set the object at an aesthetic distance, i.e., once we cannot use it, then we might begin to see that the object is beautiful. The urinal that Duchamp tried to exhibit in 1917 might have been set at an aesthetic distance by virtue of its placement in an exhibition space, like a gallery-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어디를 보아 'places'를 전시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요령부득이로군요. 단토의 설명은 변기라는 오브제가 뒤샹에 의해 전시장에 놓였기 때문에 오직 '사용'의 관점이 담길 뿐인 일상의 눈으로는 발견하지 못할 미적 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로쟈 2008-07-19 11:02   좋아요 0 | URL
덕분에 다시 읽어보니 모호함이 다 가시는 건 아니군요...

김상호 2008-07-1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와 정말 대단하네요 @.@

로쟈 2008-07-19 11:03   좋아요 0 | URL
'올해의 번역자' 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