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신간코너에 '지식을 만드는 지식'(이게 책 이름이 아니라 출판사 이름이다)에서 만드는 '고전 천줄 총서'가 출간돼 있는 걸 봤다(메가톤급 프로젝트인데 사실 이게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궁금했었다). 내가 알기에는 교보문고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출간 소식을 접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개인적으론 맡은 꼭지들도 있어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멀쩡하게' 품위있게 나와서 다행스럽다. 사실 완역본이 아니라 발췌역으로 책을 낸다는 것에 의문을 갖기도 했는데 3600종이 넘는 책을 '완역본'으로 읽는다는 게 가능하지 않은 이상(전공 분야의 책들 몇 권 읽으면 한 해가 지나가는 게 현실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란 생각도 든다(시집들의 경우엔 '발췌역'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들이 많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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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08. 01. 21) 세계 ‘명품 고전’ 3600권 알토란 부분만 번역
고전 출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우선 작업범위가 방대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완역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만 골라 번역한 뒤 일정한 분량으로 묶는 발췌번역이라는 점이다. 권수로 무려 3600권. 지난 세월 100년 이상 세계 27개 언어권(당연히 조선도 포함된다)에서 읽혀온 고전들 가운데 앞으로도 100년 이상 읽힐 책 3600종을 골라 올해 600권을 시작으로 매년 1000권씩 20011년까지 4년간 순차적으로 출간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기획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철학, 역사, 문학 등의 인문학 만큼이나 자연과학, 예술, 기술공학 등에도 비중을 두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대학 학과와 학회 등을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전문가 720여명이 50여개 주제별로 나뉘어 1~5년에 걸쳐 번역작업을 해왔다. 따라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극소수 예외를 빼고는 우리 출판계 고질인 중역의 폐해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 1차분 30권이 지난 15일(앞으로도 매달 15일에 일정한 종수를 묶어 한꺼번에 출간할 예정)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베니스의 상인> <필원잡기>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미망인들>(므로제크), <쭈옌 끼에우>(응우옌 주), <지옥의 기계>(장 콕토)처럼 국내 처음으로 편역되는 것들이 많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상대성 이론을 묶은 <상대성 이론>도 국내 최초 편역이다.
‘지만지 고전 천줄’ 시리즈. 출판사 ‘지식을 만드는 지식(대표 박영률)’이 1천 줄 정도의 분량으로 발췌번역해 묶은 세계고전 기획작품들이다. 46판형으로 1천 줄의 분량이면 쪽수로는 160쪽 정도. “누구나 만원 한 장으로 책을 사서 틈틈이 읽어도 일주일이면 고전 한 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발췌번역인 만큼 원전의 주요부분을 골라 번역하되 원전 문장 자체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말하자면 필요한 부분만큼 뽑아내서 번역하되 문장 자체를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요약하는 따위로 변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문장이나 문단 끝에는 원전의 쪽수를 명기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뽑아냈는지 원전과 비교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160쪽 정도에 내용 모두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원전 자체가 짧은 경우에는 완역을 한다. 발췌로 비는 구석은 꼼꼼한 역자 주석과 해설, 지은이 소개로 채운다. 문학작품은 줄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역자 설명이 따로 붙는다.
“먼저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국내 최초 출간 책들을 찾아내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출간된 것들 중에서도 대중이 많이 찾지 않아 절판된 것을 다시 살려내고자 했다. 또 출간됐으나 분량이 너무 많아 일반독자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꼭 필요한 것들을 골랐다.”
박 대표는 이를 ‘세계 고전’이 아니라 ‘지구촌 고전’이라 부르면서, “지금은 서구 몇몇 열강이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가 나름의 문화를 자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여서 “수천년 동안 전해내려온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민 신화가 미국 건국사보다 못할 것 없는 시대”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이 시리즈가 식민지배 등의 역사적 굴곡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뿌리박지 못한 우리 인문학이 ‘현실학’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아울러 희망했다.(한승동 선임기자)
08. 0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