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제목에 '-에서 -까지'형이 있다. 내용과 무관하게 그런 타이틀의 책은 좀처럼 손에 들지 않는다. 이것도 취향이라면 취향이니까 무슨 이유(논리)가 있는 건 아니다. 순전히 그런 취향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들춰보지 않은 책에(취향에 덧붙여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별로 주목하지 못한 점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서양철학사 개론서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열린책들, 2004)가 있다(물론 이 취향 때문에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같은 양서들까지 '피해'를 보기도 한다). 다행스럽다고 한 것은 이 두툼한(789쪽) 고가(27000원)의 입문서가 오역의 범벅이라고 하기 때문이다(http://blog.aladin.co.kr/extraneus/1598429, http://blog.aladin.co.kr/ironpen/1719353 참조).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한국 출판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개념없는 번역과 무성의한 편집의 '합작'이 두드러진 성과를 낳은 경우라 할 만한데, 재미있는 건 이 책이 지난 2004년 10월 출간과 함께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점('이달의 읽을 수 없는 책'이 아니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들어가 선정의 변을 읽어봤다.

다른 역사책과 마찬가지로 서양철학사에도 하나의 뚜렷한 사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관은 보편적인 설득력을 지닐 때 비로소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책이 다른 철학사와 구별되는 점은 서양철학의 생성과 발전, 진행을 명료하고 간략하게 다루었으면서도 그 전개의 방식에 있어서 매우 독자적인 입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것은 발생의 동기와 전개의 필연적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과거의 흐름을 쉽게 이해시킬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여러 주요학파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지만 어느 입장에 편중하지 않고 비판적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철학적 문제와 부딪히도록 유도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최근의 사조를 철학사적 맥락에서 다룬 것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보통 이달의 책 선정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목록이 작성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 책을 (무책임하게) 추천한 선정위원은(필시 철학교수이겠다) 번역서를 들춰보지도 않았겠다. 덕분에 전국의 도서관에서 애꿎은 독자들이 '서양철학사'의 장벽 앞에서 걸음을 돌리며 좌절하지 않았을까. '철, 계', 철학은 유혹적이지만 한편으로 경계해 마땅하다. 더구나 오역서들이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라면. '화제의 책'을 다룬 기사와 함께, '역자의 서재' 탐방기사까지 참고해본다. 많은 저역서를 갖고 있는 역자의 '학문' 자체에 회의를 갖게 하는 이런 번역서를 왜 굳이/버젓이 출간하는 것인지 미스터리하다(하긴 가장 최근에 나온 <해체주의와 그 이후>의 경우에도 별반 신뢰할 수 없다는 평을 나는 쓴 바 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585043 참조).

 

강원일보(04. 10. 16) [화재의책]'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철학의 역사는 관념의 모험이다. 위대한 철학자는 위대한 관념을 창조하고 그 관념이 인간을 지배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만든다. 철학의 역사는 관념의 싸움터이다. 여러 관념이 등장해 치열한 지적 경쟁을 벌리다가 승리한 관념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 관념도 새로운 관념의 도전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우리 인간의 삶과 역사의 방향을 선도하고 있는 이성 정의 평등 인권 자유와 같은 거대한 관념도 철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우리는 철학사를 공부함으로써 이러한 관념 모험에 쉽게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땅한 철학사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 서양철학이 소개 된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말로 된 좋은 철학사는 흔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열린책들)가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2600년에 이른다. 이 책은 기원전 624년에서 546년까지 활동한 철학의 원조인 탈레스에서 시작, 아직도 살아있는 미국의 철학자 로티, 대륙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 철학 교수였던 새무얼 스텀프가 1966년에 출간한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를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 제임스 피저가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몇 장을 보완해 최근 새롭게 내놓은 것을 강원대 이광래(철학과)교수가 번역, 출간했다.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의 우리말 번역본이 절판돼 아쉽던 차에 새로운 모습으로 번역돼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서양 철학을 이해하는데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www.kpec.or.kr)가 선정한 10월의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양 철학사를 공부함으로써 서양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 인간 지식의 본성, 우주에 본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왔고, 철학자들의 생각이 서양 문화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물 중심의 서양철학사이다. 인물 중심의 서양철학사는 문제중심의 서양 철학사와 비교해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철학자 개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로크 칸트 헤겔 밀 마르크스 니체 현대 철학자인 후설과 하이데거, 로티가 전개한 지적 향연을 누릴 수 있다.

이광래교수는 이 책을 번역, 출간하며 “이 책은 20세기 철학과 그 후 현재 논의중인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다룸으로써 시간이 생명일 수 있는 철학사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고 철학사를 현재 논의의 장으로까지 끌어들였다”고 적고 있다.(張奇永기자)

강원일보(05. 01. 31) [서재탐방]강원대 철학과 이광래교수

1980년대 세계 지식인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식인 세계에서도 사상적 화두는 프랑스 철학이었다. 프랑스 철학을 선도적으로 한국에 소개하고 연구해 온 강원대 철학과 이광래 교수(60)의 학문적 관심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변하고 있다. 그는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열정적으로 연구하면서 저서와 번역서를 여러권 출간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그의 지적 관심은 프랑스 철학에서 동·서비교철학 특히 한·중·일의 동아시아 철학으로 이동했다.

요즘 그는 `습합사(習合史)로 본 일본사상사 연구'에 학문적 열정을 집중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지적 생산의 세계에서 모험적인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그의 연구실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오는 5월말 출간 예정인 `습합사로 본 일본 사상사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일본사상과 문화의 특성을 한마디로 외래문화·사상과의 습합문화(習合文化), 습합사상(習合思想)으로 요약한다. “습합이란 외국문화와 사상을 자기 고유의 사상과 융합시켜 제3의 것을 창조적으로 생성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일본 사상의 핵심은 자신의 사상과 한국, 중국 사상과의 습합의 결과이기 때문에, 습합의 관점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본 사상의 유형·방법·내용을 정리하면, 일본 사상의 전모가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 철학 전문가에서 동아시아 사상의 교류와 발전으로 학문적 관심과 연구를 전환한 것은 21세기에 대한 그의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장차 도래할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인에 의한 동아시아사상 연구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습합사로 본 일본사상사 연구'의 선행 연구 결과 이미 `우리사상 100년'(2002년), `한국의 서양사상 수용사'(2003년)를 출간했다. 2004년 대한민국 학술원은 `한국의 서양사상 수용사'를 우수도서로 선정했으며 미국 중국 일본에서 이 책이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1981년 이후 매년 저서 또는 역서를 1권 이상 출간해 왔다. 저서가 13권, 역서가 18권에 달한다. 1989년에 출간된 `미셀 푸코'와 1986년에 번역 출간된 `말과 사물'은 프랑스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했다. 2004년 출간한 서양철학사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는 정기간행물위원회가 선정한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2003년부터 강원대 중앙도서관장을 맡아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4개국의 7개 대학이 참가한 `동아시아 대학도서관 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오는 3월이 되면 강원대의 지적 보고인 중앙도서관이 100만 도서를 소장하게 된다. 그는 외국대학과의 자매결연에도 힘써왔다. 오는 5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대학 개교35주년 기념식에서는 지난 1988년 강원대와 자매결연 이후 대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철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잊지 않는다. “철학은 생각의 디자인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 인생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고 세계가 보입니다. 미국 월가를 움직이는 CEO의 70% 이상이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張奇永기자)

07. 11. 24.

P.S. '철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 대한 마지막 대목의 충고는 인상적이다. “철학은 생각의 디자인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 인생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고 세계가 보입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오역의 디자인'이 아니며 이런 철학사를 읽으며 볼 수 있는 세계란 암담한 세계일 따름이다. "미국 월가를 움직이는 CEO의 70% 이상이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읽은 책이 이런 오역서가 아님도 분명하다.

기사중 "이 책은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 철학 교수였던 새무얼 스텀프가 1966년에 출간한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를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 제임스 피저가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몇 장을 보완해 최근 새롭게 내놓은 것을 강원대 이광래(철학과)교수가 번역, 출간했다.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의 우리말 번역본이 절판돼 아쉽던 차에 새로운 모습으로 번역돼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서양 철학을 이해하는데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란 대목에 대해 두 가지 '주석'을 덧붙인다(강조한 대목은 어이없다. '학, 계', 공부깨나 한다는 이들도 믿지 말지어다!).

먼저, 새무얼 스텀프의 책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Socrates to Sartre: a history of philosophy)>는 이광래 교수의 번역으로 <서양철학사>(종로서적, 1983)라고 소개되었다. 기자가 절판돼 아쉽다고 한 번역본이다. 제자인 제임스 피저가 몇 장을 추가해서 내놓은 개정판이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Socrates to Sartre and beyond : a history of philosophy)>이고, 이 책은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의 7판이다. 그렇다면, 스텀프의 책은 국내에서 20년간 읽혀왔다는 것인데, 2004년에 나온 개정판이 그런 수준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건 놀랍고 기이한 일이다(철학사 교재로도 사용되었다니까 더더욱).

실상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란 제목을 가진 철학사 입문서는 하나가 더 있다. T. Z. 래빈 여사의 방송강의를 책으로 묶은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동녘, 1993)가 그것인데, 스텀프의 책처럼 통사는 아니고 플라톤, 데카르트, 흄, 헤겔, 마르크스, 사르트르 등 6명의 철학자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에서 -까지'란 타이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런 타이틀이 한때 유행이긴 했다) 구입해서 읽어봤을 만큼 잘 씌어지고 잘 읽히는 책이었다(나는 페이퍼백 원서도 구입했다). 이 책은 <방송강의철학사>(현대지성사, 1997)라고 다른 번역본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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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11-2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큰맘 먹고 사서 사전처럼 이용하고 있는 책인데요-_-

로쟈 2007-11-24 22:15   좋아요 0 | URL
돈이 아까울 만한 책입니다.--;

루루 2007-11-2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무슨"위원회"가 양서로 선정한 책은 저 같은 독자는 그냥 무턱대고 좋은 책인가보다 하고 믿는 편이지요..그런데 이런 사례를 보니깐 왠지 허탈하네요. 책을 쓰고 번역하고 하는 학자들이 과연 그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오바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요..) 그러고보면, 고등학생들에게 가다머와 하버마스, 푸코를 필독이라고 추천하면서 들이미는 대학들도 한숨을 나오게 하기는 마찬가지네요.

로쟈 2007-11-25 00:08   좋아요 0 | URL
가다머와 하버마스, 푸코는 교수들도 안 읽는 책입니다(해당 전공자가 아니라면). <계몽의 변증법> 같은 책이 논술문제에서 언급될 때마다 저는 놀랍니다. 출제자는 읽은 것인가, 하고...

마늘빵 2007-11-25 00:3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하버마스, 푸코, 가다머 저는 대학 학부에서 거의 못들어봤습니다. 하버마스는 아렌트와 연관해서 살짝 언급하는 정도였고, 푸코는 성의 역사만 훑어 읽어봤고. 가다머는 대학원 와서 교수님 전공이 그쪽이라해서 이름만 알고 있습니다. -_- 교수들도 자기 전공과 관련해서나 읽지 안 읽을 겁니다. 푸코는 많이 대중화되서 좀 다르겠지만.

마늘빵 2007-11-2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스텀프의 서양철학사가 대학 학부 시절 발제지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었지요. 선배들도 교수님도 그 책을 참고하라고 하셨었어요. 객관적이라고. 반면 기독교 학교였던지라 그랬는지 러셀의 철학사를 참고하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대표적 철학사 책은 다 소장하고 있는데 - 다 읽은건 아니고 - 스텀프 것만 없어요. 한번 철학사 책들을 몽땅 구입할 때 그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모습이 바뀌었군요. 저 밑에 말은 참 인상적입니다.

로쟈 2007-11-25 00:06   좋아요 0 | URL
그 정도로 지명도 있는 책인지는 몰랐는데요(예전 종로서적판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개정판의 번역이 더 나빠졌을리는 없을 텐데, 다들 읽을 만은 했다는 건가요? 흠...

마늘빵 2007-11-25 00:45   좋아요 0 | URL
네 종로서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검색해봤더니 맞네요. 최명관 선생님 번역한거. :)

스텀프의 책과 코플스톤의 철학사가 많이 도움이 됐었죠. 번역상의 문제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보면 보일지 모르겠는데 학부 시절엔 그런거 하나도 안보이고 따라가기 급급하니까요.

살청님은 어떤 점에서 러셀의 철학사가 안좋다고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안좋다는 이야기는 꽤 들었는데 왜 안좋은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제가 러셀의 철학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필요할 때만 발췌해서 읽어본게 다 인지라 전체적으로 판단하긴 어렵고.

로쟈 2007-11-25 00:58   좋아요 0 | URL
서지에 혼동이 있는 거 같습니다. 종로서적판은 도서관 검색에서 모두 이광래 역으로 나오는데요. 최명관 등의 <서양철학사>는 렘프레히트의 것(을유문화사)을 말하는 게 아닌가요.(알라딘에는 세 사람 공역의 <서양철학사>가 스텀프와 렘프레히트 공저로 떠서 더 헷갈리는군요)...

마늘빵 2007-11-25 09:43   좋아요 0 | URL
아 이런. 램브레이트가 있었죠. -_- 헷갈리는군요. 램브레이트 것이 최명관 선생님 번역 맞는거 같습니다. 근데 스텀프의 번역본이 애초 문제가 많았는데 왜 그 책을 보라고 했었던건지 의문이... 아마도 교수님은 원서를 염두에 두고 그리 말씀하신게 아닌건가 생각됩니다. -_-

yoonta 2007-11-2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런건 있습니다. 철학책은 원래..영어로 봐야 더 잘 이해된다는. 한글로는 애매하고 불분명했던 구절이 영어나 원어로 보았을 때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있더라구요. 제가 한국어를 못해서 그런건지..어쨋든 그렇더군요. 특히 어려운 철학책일수록..

로쟈 2007-11-25 00:59   좋아요 0 | URL
분명 그런 대목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서..>의 경우엔 오타와 단순 오역이 다수 포함돼 있어서 그냥 그 자체로 무성의한 번역이란 인상을 주네요...

yoonta 2007-11-25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주에선가 문제의 책으로 공부한것도 책의 오역을 찾는게 목적이라기보다는 영어로 철학사를 공부하려는것이 주 목적이었겠죠. 그러다가보니 오역들이 보였던것일게고..한문장이해하는데도 한참 걸리는 철학책은(저같은 경우 특히 데리다^^;;) 필히 원어와 대조해서 봐야할겁니다. 데리다의 <입장들>을 얼마전 영어로 대조해서 다시 읽어봤는데..그제야 조금 감이 잡히더군요. 오역들도 조금 눈에 띄는것 같고..

로쟈 2007-11-25 01:08   좋아요 0 | URL
<입장들>도 재번역되어야 할 책이죠(영어본도 개정판이 나왔고). 저도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에 대한 자세한 읽기를 올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yoonta 2007-11-2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책으로 읽어내기도 힘든 표현을 데리다는 대담으로 즉 말로서 그자리에서 줄줄 쏟아 낸다는 건데..저런 내공은 어떻게 길러지는것인지..대략 난감-_- 데리다 자신도 그랬다더군요. 자신의 독자는 전세계적으로 대략 1000여명쯤이지 않을까..라는 말을 했다는데..뭐 그리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7-11-25 01:21   좋아요 0 | URL
상대적인 건 같은데요, <이론 이후 삶>을 읽어봐도 질문자들의 말이 데리다보다 더 어렵습니다. 제 경우엔 데리다보다 안 읽히는 철학자들이 너무 많은지라.^^;

yoonta 2007-11-25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이후의 삶>의 대담자들도 그렇군요..(털석;;) 이게 다 데리다나 들뢰즈같은 분들이 조장해 놓은 분위기라는..에혀..하긴 지젝도 한페이지 읽기도 힘들죠. 저로서는.

로쟈 2007-11-25 01:35   좋아요 0 | URL
개인차겠지만, 제 경우엔 들뢰즈가 데리다나 지젝보다 두 배는 읽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헤겔이나 라캉보다는 읽기 편한 게 아닐까요?^^

yoonta 2007-11-25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상기시키지 마세요. 로쟈님..ㅜ.ㅜ

로쟈 2007-11-25 09:18   좋아요 0 | URL
괴로운 기억이?^^;

자꾸때리다 2007-11-2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읽을 수 없는 책'이 아니라!

ㅋㅋ

그냥 차라리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달의 읽을 수 없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ㅋㅋㅋ

(그게 더 힘든 것?)

로쟈 2007-11-25 22:02   좋아요 0 | URL
더 의미있겠지만 고양의 목에 방울달기 같습니다...

살라흐앗딘 2007-11-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휠쉬베르거의 책을 주로 읽다가 약간 버거워서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산게 스텀프의 책인데(둘 다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이런 기사를 보니 좀 심란하군요;; 원문 볼 능력은 안되고 ㅎㅎ 변명의 여지도 없다,라..-_-;;

로쟈 2007-11-25 22:04   좋아요 0 | URL
(본문에 링크해놓은) 오역을 지적하는 리뷰들을 검토해보신 다음에 판단하시길...

히드라 2007-11-2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에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오역/오자' 정오표를 보내고, 새로이 재번역을 할 것과 개정 후 공개적인 리콜을 요구하였습니다. 출판사측 이소영 인문 분야 팀장이 답변하길, "거래 서점에서 그 책들을 전량 수거해서 폐기하고, 새로이 개정판을 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리콜 부분에서는 명확히 언급을 하지 않았구요.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로쟈님, 좋은 글로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로쟈 2007-11-27 13:41   좋아요 0 | URL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서 다행입니다. 이런 선례가 쌓이면 좀더 다듬어진 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수고야 열심히 읽고 지적해주신 분들이 하신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