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스 중독이후 계속되는 장염으로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몸무게가 자그마치 3kg나 빠질 정도로 고생한 장염은 거의 10여일이나 지나고서야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지만, 의사 말로는 아직도 완전히 나은것이 아니니 당분간은 계속 약을 복용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워크샵이라고 해서 제가 아프기에 할 수 없다고 버틸수 없는 일도 겹쳤기에 3박의 워크샵을 주관하는 입장에서 정말 앞뒤 가리지 못하고 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일이라는것이 대부분 그러하듯 막상 워크샵이 시작되고 나서는 의외로 절차에 따라 진행이 되니 어려울것이 없는 편이지만 문제는 준비과정일 것입니다. 장염과의 전쟁...그리고 워크샵 준비로 늦은 시간까지 팜플릿이다, 책자다 등등을 만들고 그나마 예산을 절감한답시고 일일히 손으로 제본까지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백여권이나 되는 50여페이지의 팜플릿을 일일히 손으로 3 모퉁이를 잘라주는 작업까지...하여간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큰것이라는것을 이번 워크샵 준비과정을 통해서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쇠를 먹어도 소화를 시키던 위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장이 나고, 아픔은 없지만 세상에 급하다 급하다 해도 장염으로 인한 급함보다 더 급한것이 있을까요? 위장이 아니라 아랫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아픔이 영 기분이 개운치 않더니만 지금은 그럭저럭 밥알이라도 입에 떠 넣을 수 있으니 조금은 속이 걱정이 되지만 먹는 재미로 사는 아둔한 삶에 입으로 먹거리를 집어 넣을 수 잇다는 것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고생을 했지만 여러분 모두 음식물 섭취에 한층 조심을 하셔야 되겠습니다.




 
2. 오늘은 수련님의 수업에서 특강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2시간의 강의라 길지도..또 짧다고도 할 수 없는 강의였지만 여러 학생들 앞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문화란 무엇인가로 시작을 해서 문화가 남긴 소산물인 문화재의 개념과 전통, 그리고 전통문화의 보존에 관한 내용으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늘 머릿속에 넣고 있던 내용들인지라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고도 잘 마무리가 되었던것같습니다. 처음에는 미술 전공인줄 알았는데 교양과목에서의 전통미술이라는 이야기를 학교에 도착하기 직전에야 전화로 통보받고는 강의 내용에 대하여 머릿속에서 다소 수정을 하였었습니다. 미술 전공이라면 고분벽화를 비롯한 불교미술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했었는데 수강자들이 전문성을 요하는 내용들이 아니기에 일반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강의의 내용이 중요하든 아니든 일단 강의를 수락한 이상은 제게는 마무리 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지라 강의를 끝내니 오히려 시원하면서도 섭섭했습니다만,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전공이 아닌 학부의 교양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하게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생들이나 학회에서의 강의나 발표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질문이나 답변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함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였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그렇다고 무성의 하거나 건성으로 강의를 마친것은 결코 아님을 밝혀 드립니다. 한편으로는 맨날 학문적인 테두리에서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하듯 해 오던 전문적인 학술발표에서 보다는 모르는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하나 하나 전개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전문가들 앞에서 강의하는 내용보다 훨씬 재미있음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강의는 무료였고...그 대신 싱싱한 활어회를 대접받았는데 그 조차도 제게는 부담스러웠지만 수련님의 성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저녁식사로 대신하였습니다.  이제 장염도 회복되는 단계이고 제게 부탁했던 일도 처리가 되었지만, 제 업무로 또 세미나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준비단계가 더 골치 아픈일인데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야 12월 중순에 있는 세미나를 잘 마무리 할것 같습니다. 100번째 리뷰를 올리기 위해 장염이라는 핑계로 뜨듯한 온돌 바닥에 배를 깔고는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사과드립니다. 그런데....이렇게 바쁘다..바쁘다...노래를 부르다가 어느날 갑짜기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겠습니다....하하하...




 정말....처음 걸려보는 장염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저는 조금 아둔해서인지 감기 기운이 있거나 뱃속이 이상하면 먹지 않고 증세를 관찰하는것이 아니라 "밥이 보약이다" 라는 옛 어른들 말씀을 새겨두고는 아무리 아파도 꾸역꾸역 밥을 집어 넣는데...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이렇다할 내과적 질병이 없었는데, 이번 장염도 역시 마찬가지로 "나오는것은 나와라...나는 기를 쓰고 집어 넣으련다..."는 마음으로 싸움질을 했는데 의학적으로 어느것이 맞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으면서 버텨도 몸무게가 3kg이나 빠졌는데 안먹고 버텼다면 더 빠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에구...그놈의 고집하고는....  여러분도 정말 몸 조심하세요.....특히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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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3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궁, 11월에 악재가 너무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내일이면 12월이니 이젠 죄다 형통할 겁니다. 아무렴요, 그렇구말구요. ^^

수수께끼 2004-12-0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12월에는 말씀처럼 악재가 모두 없어지고 내년에는 더욱 형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련님 초청강의는 잘 마쳤습니다. 차라리 안오신것이 더 나았다는점만 말씀드립니다^^~

수련 2004-12-0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두...오셔서 들었으면 정말 좋아했을 겁니다.

제가 녹음해 두었으니.....기회있으면...후후..

정말 좋은 강의였어요...

조선인 2004-12-0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정말 아쉬워요. 꼭 청강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이번 화요일은 월차휴가를 쓴 날이기도 했는데.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습니다. ㅎㅎㅎ

수수께끼 2004-12-0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무슨 말씀들을....다음기회는 절대 없답니다!!!

수련 2004-12-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수수께끼님이 절대로 다음엔 안해 주실것 같네요.
조선인님이 포기하셔야 할듯...

저두 포기 하고 있답니다. 내 자리가 위태로워서리~~~ㅋㅋ...
그리고 화욜이 아니라 월욜이였거든요~~
수수께끼님!
윗글은 글쓰기가 허락이 되서 썼는데...
제가 서재의 폼을 엉성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어 지우겠습니다.
양해해주세요

조선인 2004-12-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 수수께끼님 ㅠ.ㅠ
 

   며칠전 날이 제법 추워진다고 해서 보일러를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도시가스를 이용하는 보일러인지라 혹시 연소가 덜 된 가스가 있으면 창문으로 배출되라고 창문도 10cm정도 열고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바닥에 그냥 고꾸러지고 말았습니다. '어??  이상하다...머리가 왜 이렇게 빙빙 도는거지? 아고 출근시간 늦을라 어서 준비를 해야지' ... 출근이 우선이길래 정신이 없었지만 양치하고 머리를 감는동안 어지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까지야 기껏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운전하는 동안도 영 어지럽기만 한것이 운전을 제대로 하는건지...차선이 구부러진것인지...늘 다니던 길이건만 눈 앞에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은 입체영화를 감상하는것 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사무실에 도착을 하고 주차를 시키고 제 사무실로 들어가는데...이게 또...몸이 부붕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감긴가?" 그런데 감기하고는 증상이 많이 달랐고 머리가 빙빙 돌면서 어지럽고 편두통 비슷한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제 사무실 바로 옆이 병원입니다. 겨우 군의관에게 가서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니 "까스 중독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입원실로 끌고가더니만 자리에 눕히고는 링거를 주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리에 눕기 전 까지는 그나마 의식이 있었던것 같은데 눕고나서 잠시후부터는 몽롱한 상태로 접어들어 결국은 난생 처음 링거를 맞으면서 점심도 걸르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약도 두 알을 먹고는 결국은 몇 시간을 입원실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퇴근시간 이전까지도 제 정신이 아니어서 눈 앞이 계속 빙빙 도는 느낌과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유추해보건데, 보일러를 가동하고 창문을 열어둔것이 화근이었던것 같습니다. 연소후 불완전 연소된 가스의 배출을 위해 열어둔 창문이 낮은 기압으로 인하여 연소되고 밖으로 나간 연소가스가 거꾸로 집안으로 유입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연탄을 피울때는 연탄가스 중독인데 이제는 연탄이 없는대신 일산화탄소 중독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저 혼자만의 사고가 아니라 자주 발생하는 사고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순간온수기를 이용하여 목욕을 하다가도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제가 튼튼한 몸을 가졌길래 망정이지 자칫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한참 헤맬뻔 했습니다. 그런데 가스 중독의 여파인지 튼튼했던 위장에 장애가 일어나서 수시로 들락거리는 일이 발생을 했고, 집사람이 소식을 듣고는 홍삼액과 구기자차 등등 속에 좋다는것을 몇 가지 준비해서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속도 제법 편안해진것 같은데 아직은 정상 컨디션이 아닌것 같습니다.

  요즘의 가구 형태는 집단주거형태인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그리고 단독 주택등으로 나눌수 있는데 중앙난방식을 이용하는 아파트 이외에는 대부분 가스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냥 스위치만 넣으면 불길이 타 오르니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의외로 바깥으로 연소가스를 배출하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고 연소통도 바깥으로 나간 부분이 30cm이하이기에 저기압일 경우에는 역류하는 경우가 발생할것 같습니다. 무관심하게 넘기고 지나갈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현상에 대비하여 창문은 항상 반대편의 창문을 열어야 할것 같습니다. 저야 그나마 겨우 회생을 했지만 다른 분들도 가스를 이용하신다면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가스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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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11-20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일날 뻔 하였습니다. 항상 조심, 주의해야겠네요. 그래도 그만한 것이 다행입니다.

가을산 2004-11-2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네요!

몸 조심하세요.

그나저나, 왜 100번째 리뷰는 안올리시는거죠?

호랑녀 2004-11-2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런 일도 있군요. 몰랐어요. 아, 그렇군요.

정말 그만 하셔서 다행이십니다.

. 2004-11-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와 봤는데 그런 일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조심하세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네요.


조선인 2004-11-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구, 그랬던 거군요. 정말 큰일날뻔 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창문을 열면 오히려 가스중독사고가 날 수도 있는 거군요.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앞으론 컨디션 안 좋으면 운전하지 마세요.

가스중독 이야기도 무서웠지만, 운전하시던 도중에 졸도하셨으면 어쩌나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수수께끼 2004-11-2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놀래키게 하는 글을 올린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제는 많이 회복도 되었고 속도 점점 좋아지는것 같습니다. 조선인님의 말씀처럼 함부로 운전해서는 안되겠지만, 일단은 출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을 했기에 다행스럽게 출근은 잘 했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하구요...리뷰 바로 올릴께요...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래글은 조선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남북간의 경협에 견주어 쥐꼬리만한 예산만 배정된 고구려 유적에 대한 처지는 말로만 고구려찾기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것입니다.

"한반도 고구려유적 곰팡이 필 지경"
문화재청·유네스코 '고구려 고분보존' 학술회
북 고분 습기많아 대책 시급… 아차산 유적, 헬기장에 훼손


▲ 표면이 벗겨지고 그을음이 생기는 등 훼손을 겪은 평남 수산리 고분벽화. 남북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들의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COMOS 코리아제공
남·북한 고구려 유적들이 관리 소홀로 훼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수천억원을 들여 집안(集安)·영안(寧安) 등지의 고구려·발해 유적을 정비하며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중국 고구려사’를 선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고구려 역사를 이어받았다는 우리는 한반도 내의 고구려 유적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옛 고구려 수도였던 ‘역사 도시’로서의 평양 전체를 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들은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을 방문, 평양 동명왕릉과 평남 대동군 덕흥리 고분 등을 조사한 무니르 부시나키(Mounir Bouchenaki) 유네스코(UNESCO) 문화담당 사무차장보는 25일 “북한의 고구려 고분들에 습기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부시나키 사무차장보는 이날 문화재청과 유네스코 공동주최로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고구려 고분의 보존과 관리’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도색 보존 전문가 로돌포 룬스포르드(Rodolfo Lujan Lunsford)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는 “강서군 약수리 고분의 경우 주변에 인공 저수지를 만든 뒤부터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고분 안의 습도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사 결과 오히려 빗물이 더 큰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습도가 너무 많아 벽에 곰팡이가 생길 지경”이라고 말했다. 습도 전문가인 산드로 마사(Sandro Massa)씨는 “북한에서 고분 보존을 위해 사용했던 실리콘과 콘크리트가 오히려 훼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부시나키 사무차장보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 (한국의) 경제적·기술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문화재청의 국정감사 요구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은 ▲서울 홍련봉·구의동·용마산 보루 등 11건 ▲경기 아차산 보루, 연천 호로고루, 파주 칠중성 등 32건 ▲강원 춘천시 방동리 고분 등 4건 등 모두 5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중 국가지정 문화재는 7건, 시·도 지정문화재는 13건에 불과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연천 호로고루성은 1994년 지표조사 이후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성벽을 쌓은 돌이 무너지고 있는 상태며, 서울 아차산 일대 20개소가 분포하는 고구려 유적은 헬기장·체육시설 등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다. 또 올해 신라 문화권의 유적 정비 예산이 243억7100만원이었던 데 비해 고구려·고려 문화권의 정비사업 예산은 49억5700만원에 불과해 “아무리 남아있는 고구려와 고려 유적이 적다고 해도 예산 배정이 너무나 편중돼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57건의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방치 상태나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이유는 발굴이나 기타 공사등의 경로로 인하여 우연히 발견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구려사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이에 대한 연구나 문헌자료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고구려 유적은 다 파헤쳐봐야만 알 수 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고구려연구회가 급조하다시피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의 서길수 교수 중심의 고구려연구회는 상당한 자료를 축적한 상태이기에 진정 고구려가 한바도의 국가임을 내세우려면 공동연구나 문헌정보의 발굴등 실질적인 고구려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만 체계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들이밀자 마치 큰 것을 빼앗긴것 처럼 호들갑을 떨더니만 중국 외교부 국장급의 방한에서 지켜지지도 않을 구두 약속을 믿고는 다시 사그라들어버렸으니....언론에서 보도를 안해서 그렇지 중국은 지금도 동북공정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그것은 통일 한국 이후의 중국의 국내정세를 예측하고 시작한 커다란 규모의 사업이기에 중국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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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어느 사찰에 있던 고려불화가 도난을 당했고, 그 도난 물품은 우리 나라에서 도난 물품의 거래를 추진하다 덜미가 잡혀서 무속인과 몇 명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난된 물건중 고려불화가 대구의 어느 암자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며 원 소유자였던 일본의 사찰에서는 강력하게 반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절취했던 무속인은 절취 동기가 애국심이라는 엉뚱한 이유를 내세웠으며 일본의 사찰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 이 고려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구지역 모 암자의 주지는 처음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애국심에 의한 절취라는 범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다소간의 문재가 있는데...그렇다면 진정 애국심으로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절취해 온 물건은 당연히 문화재청이나 관련기관에 신고를 해야함에도 암거래로 판매를 하려다 구속이 된것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남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가져간것은 분명 범죄행위에 해당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라 할것입니다.

  고려불화는 우리 나라보다 일본에 더 많이 있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의 약탈과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수탈...그리고 그 외에는 비공식 루트를 통한 일본으로의 유출에 의한 결과라고 보여지는데 그만큼 고려 불화는 불화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점이겠습니다. 원래 일본의 효고(兵庫)현의 카쿠린지(鶴林寺)에 보관되어 있던 아미타삼존도는 1477년 일본으로 건너갔으며(이 시기는 임진왜란 이전으로 약탈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카쿠린지는 589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순교한 한반도의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절이라는 것입니다.

  카쿠린지 주지는 대리인을 통해 "목숨을 걸고" 아미타 삼존상을 찾아오라는 특명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선대로부터 가보처럼 물려받아 내려온 물건을 자기대에서 잃어버린것은 불명예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되찾아 가는 조건으로 우리 나라의 법률상 현재 보관중인 암자가 선의의 취득에 의한것이라면 취득 당시의 금액을 주고라도 찾아가겠다는 것이니 결국은 원래의 임자임에도 금전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되찾아 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저도 신문에 난 사진을 통해서 보았지만 훔쳐온 '아미타삼존도'는 우리 나라에 있던 그림이라면 국가지정문화재로 충분히 등록 될 훌륭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훔쳐온 이 그림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 그림의 비중으로보아 돌려주기에는 무척 아까운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에서는 모르는척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만  매년 20여건씩 1000여건의 도난 사고가 발생을 했지만 정작 되찾은 문화재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도난당한 문화재는 몰래 해외로 빠져나가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기도 하는것입니다. 정부에서는 국제 공항마다 문화재감정관을 파견하여 반출 문화재에 대한 감정을 통해 우리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출국자의 짐을 일일히 확인하지 않는다면 밝힐수 없는 일이며 겨우 제보에 의하여 반출 직전에 수거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몇 년전 중국의 고구려 고분에 있는 벽화가 송두리째 없어져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 당국에서는 절도범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지만, 도난 사실이 밝혀질 때쯤 그 벽화는 우리 나라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사실 알음알음으로 알아본 바로는 벽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것은 거의 기정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외에서 이런 저런 사유로 우리 나라에 반입되는 문화재에 대해서는 소관부서인 문화재청이나 문화관광부쪽에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이는 국가 차원에서의 문제로 비화 될 소지가 다분하고 또 훔쳐왔건 아니건 그 문화재가 국내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팔이 안으로 굽듯 묵인해 주는 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번 아미타삼존도에 관해서도 문화재청에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몇 안되는 고려불화가 우리 나라에 남은 고려 불화인것을 감안하면 훔쳐온 불화 1점이 주는 문화재적 가치는 엄청나기 때문인데 훔쳐왔든 어쨋든 물건은 국내에 있으니 언젠가는 공개가 되리라는 판단이 앞서서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소더비에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가 경매에 붙여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외국인을 중계인으로 국내의 모 재벌이 사들인것으로 알고 있으나 명목상으로는 외국인이 낙찰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결국은 한동안 떠들썩했던 소더비 경매의 '수월관음도'도 원래는 우리 나라에 있던것이 몰래 국외로 반출되어 거래가 된것이니 그만큼 문화재의 국외 반출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아미타삼존도'의 처리는 어떻게 될까요? 보관중이라는 대구의 사찰에서는 막말로 오리발입니다. 어디 숨겨두고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검찰에서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서라도 삳삳이 뒤져서 찾아내겠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경찰이나 검찰 모두가 바쁠것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글쎄요...이런것이 애국인지는 모르겠지만 훔쳐온 물건을 제대로 찾아주지 않는다는것은 그 물건이 아무리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것이고 귀한 것이라고 해도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할것입니다.

 이 문화재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을 하게 되면 절대 우리 나라 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 21조에는 수출등 해외 반출에 대한 금지조항을 두어 국가에서 실시하는 반출 이외의 대부분의 경우는 해외 반출이 어렵게 되어 있으며 더군다나 판매를 목적으로 해외로 반출하는 것은 엄하게 다스리니 이 훔쳐온 '아미타삼존도'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을 해 버리면 일본의 카쿠린지측에서 수억만금을 주고 되산다해도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문화재청에서 이 물건을 절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을 하지 않을것이라는 점 입니다. 우선지정을 한다는 것은 오리발 내미는 대구의 암자와는 달리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국제간의 분쟁이 야기될 수 있다는점입니다.  우리 나라는 1972년에 제정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가입을 했기에 이 협약 제 5조의에 명시된 사항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아마도 문화재청에서는 '아미타삼존도'가 국내에 들어와 있고 언젠가는 공개가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며 다만 이 일로 인하여  문화재청으로 불똥이 튀는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간에 있어서의 절취라는 범법행위로 인한 문화재의 절도 행위는 매우 민감한 사안인것 같습니다. 돌려주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개입하자니 불똥이 튈까 두렵고.....그 고충은 이해하겠지만 남의 나라에 있는 물건을 훔쳐오는 일이 결코 정당화 되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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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11-1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식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고 쉬쉬하며 보관하다가 혹시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수수께끼 2004-11-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귀한것일수록 더 꽁꽁~ 숨겨둔답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숨겨두고 있으면서 가끔 꺼내보고 즐거워 하는것이 보존과학상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특히 그림등은 둘둘 말아서 보관을 해야 하는데 한번 폈다 감아두는것 자체가 바로 문화재의 훼손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문제겠죠?
 

  화폐가치를 갖는 물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물물교환이건 다른 형태건 서로 주고 받는 유통과정에서 사용되던 화폐는 지금의 형태와는 달랐고 다양한 재료로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며 제 몫을 다했었습니다. 동전이라는 화폐는 실은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한나라 이전인 하, 상, 주 나라 시대에 벌써 이런 교환가치를 갖는 동전이 있었다니 실로 동전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던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는 청동이건 황동이건 동(銅)이 들어갔기에 동전이라는 말로 통용이 됩니다만 이는 근래의 일이고 그 이전에는 철전(鐵錢), 패전(貝錢)이라고 불러야 할만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었습니다.

  제가 동전을 모으기 시작한것은 꽤 오래 된것 같습니다. 동전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가치는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동전 모으기의 시발은 대학 때 부산에 여행갔을 때 한 커피숍에 진열되어 있던 동전을 보고나서 부터입니다. 커피숍의 입구를 제외한 벽마다 유리로 된 장식장을 만들고 그 속에 우리 나라의 옛 동전(옆전이라고 하지요)을 진열을 해 둔것을 보고나서 저도 동전을 모으되 세계 각국의 동전을 모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기회가 닿으면 동전을 수집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우취상이나 동전전문 판매상을 이용한것은 아닙니다. 직접 그 나라를 방문한다거나 또는 외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는 모았는데, 세계 어느나라를 가던 항상 동전은 필수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귀국시에 다 쓰지못한 동전이 주머니 속에는 항상 남아있기 마련이고...여기에 제가 부탁을 했으니 종류별로 몇 개씩은 더 가지고 오게되니 이런 부탁은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에게는 별로 힘든 부탁도 아니기에 부담없이 가져다 주고 이렇게 저렇게 모은 각국의 동전은 그럭저럭 그 양이 제법 됩니다. (실은 부탁을 하면서 종류당 5개 정도를 부탁하니 경우에 따라서는 제법 많은 양이되니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멕시코에 갔을 때, 멕시코의 동전을 바꾸느라 10달러를 내고 환전을 하니 1달러당 1000페소가 넘는 관계로 동전의 양이 어린 학생들 신발주머니 서너개나 될 정도로 많아서 낑낑거려야만 했던 일과 유로의 가치가 높아 동전을 모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싼 댓가를 치뤄야 하는 일...그리고 미국의 25센트 동전에 미국의 50개주의 상징물을 다 넣는 바람에 그 숫자대로 다 모아야 했던 일과 유럽연합의 화폐로 사용되는 유로의  동전마다 회원국의 특징적인 그림을 다 넣는 바람에 그 종류를 모으는데도 수월치 않은 금액이 소요되었던 일들은 동전모으기의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그런데 동전의 크기도 무척 다양해서 어떤것은 두께가 2MM 정도나 되는 큰 동전이 있는가 하면 미국의 경우에는 2불짜리 동전의 희소성으로 인해 찾는데 한참을 걸려서 손에 넣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번에 베트남에 다녀오는 사람이 있어 부탁을 했더니만 베트남에서는 동전을 사용하지 않아 예전에 사용하던 동전을 모은것을 따로 구입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Dong'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하는 베트남에서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물가가 워낙 고가(베트남 돈으로)라서 미쳐 잔돈까지 명시하는 물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쨋든 1802년 부터 사용하던 베트남의 동전은 책처럼 만들어진 돈전첩에 잘 정리가 되어 들어 있는데 초기에는 "明命通寶'라는 엽전을 사용하다가 1885년 부터는 새로운 동전을 사용하였고, 1935년부터 1940년의 6년 동안은 다시 예전의 엽전을 사용한 특이한 경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동전을 모으다보면 싫어도 그 동전을 들여다봐야 하고 그러다보면 동전에 담긴 그 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연방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담긴 동전들은 그 크기도 작고 매우 섬세함을 알 수 있는데 뒷면에 담긴 그림은 주로 그 나라의 특징적인것을 담고 있기에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아진 동전을 이제는 어떻게 잘 전시를 할것인지를 궁리케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두꺼운 도화지에 동전을 놓고 동그랗게 오려내고 그 위에 빨간 비로도를 붙여서 미리 뚫어놓은 구멍속에 동전을 쏙 집어 넣는데 이것을 국가별로 한장씩 만든다면 물론 수십개가 되겠지만 그것을 액자속에 넣어 볼 수 있도록 하고 추가로 구하는 국가들의 동전을 계속해서 액자로 만들어 걸어둔다면 그렇게 보기 싫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동전 모아둔것만 멋있으면 무엇하겠어요? 집이라도 으리으리하여 골동품이라도 몇 개 놓여있는 가운데 동전이 더 빛내주면 좋으련만....하여간....그런날을 꿈꾸며 계속 동전을 모으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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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11-1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발리에 갔더니, 말레이시아 화폐 단위로 100루피아 미만은 거스름 돈을 작은 사탕으로 대충 집어 주더군요. ^^



그리고, 미국에서는 각 주마다 25센트짜리의 뒷면 그림이 다르답니다.

표준 도안도 물론 있구요, 각 주마다 다른 도안도 같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50개 주의 것을 다 모으는 것을 재미로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참! 리뷰 이제 2개 남았네요! ^^

수련 2004-11-1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연히 마루에서 굴러다니는 말레시아 동전이 하나있길레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고구려 벽화고분 묘실단청문양과 똑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더군요. 동전의 앞 뒷면의 문양을 살펴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전문양 하나에서 고대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를 느낄수 있었죠. 동전속의 문양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