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프리츠 랑 감독 -비합리의 합리화-
메트로폴리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선 독일의 나치즘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독일 나치즘에 대한 논의에는 통상 두 가지의 대립되는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 나치즘은 독일의 경제/사회운동의 결과로써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현상이라는 견해가 있고, 둘째로 정치적/사회적 요인을 배제한 채 심리학에 의해서만 설명하려는 견해가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를 두고, 심리적 요인 역시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경제 정치적인 문제도 그것이 실현되는 심리적인 기반이 있어야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 언술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현상과 심리적 요인은 어느 하나가 개별적으로 독립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나치즘의 심리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독일사회의 계층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당시의 독일은 군주정치의 권위의 붕괴, 패전, 인플레이션 등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내적인 피로와 체념의 상태에 젖어 있었다. 시대적 대세에 대한 반응은 계층별로 달랐는데 노동자계층은 군주정치의 붕괴로 인해 과거보다 한층 나아진 -계층 내에서의 한계는 존재하나- 노동여건을 쟁취하였지만 구 중산계급은 사정이 그와 같지 않았다. 그들은 노력해서 축재한 재산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그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 무력함을 느꼈다. 중산층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과거보다 악화된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과, 군주제의 몰락으로 인한 권위의 상실과 더불어 패전으로 안정감 있는 사회적 지위를 상실했다. 불안감이 엄습한 그들은 새로운 권위에 일치감을 느끼고 싶어 했고, 적극적으로 나치즘에 동조하는 세력이 되었다.
근대유럽 부르주아의 기본정신은 기독교 사상에 있다. 청교도적인 윤리와 근검절약 정신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주요한 동력인 만큼, 기독교의 권위는 그들 계층이 심리적인 허약함을 감추고 기댈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안락한 권위였다. 그러나 세기말 기독교 정신의 붕괴에 이어 군주제의 붕괴 -이는 가부장적 권위의 붕괴를 뜻하기도 한다-와 사회적 정치적 권위의 붕괴는 부르주아지에게 정신적인 공황을 가져다 주었다. 프롬이 설명하기를, 개인이 극심한 무력감과 고독감에 빠질 때 절대적인 권위에 기대고 복종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가 생겨나는데, 시의 적절하게 히틀러가 등장하여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적 권위/ 가부장적 권위/정치적 권위는 나치즘의 권위로 대체되고 구원의 메시아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히틀러이다. 메시아=히틀러=자본주의라는 등식, 영화에서 이를 의미하는 상징은 곳곳에 심어져 있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인 마리아와 프레더슨의 사무실인 바벨탑은 직접적이고, 자본가의 아들인 프레더가 공장 노동자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설정은 간접적인 상징이다.
영화라는 장르는 대중암시라는 전체 최면의 목적으로 이용하기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다. 모종의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되는 프로파간다 영화들은 관객의 의지를 박탈하고 주관을 상실하게 하여 권력 유지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집단적인 암시는 비합리를 합리화 시키는 마술적인 힘을 가지는데, 이런 점을 히틀러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선전의 본질적인 요소란 연설자의 탁월한 힘에 의해 청중의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히틀러를 비롯하여 소련에서 많은 선전영화들이 제작되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자기 생각인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견해인지조차 모르게 판단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궁극의 목표인 선전영화라고 해서 예술적인 질과 분리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선전영화 아닌 선전영화 -결과적으로 선전영화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인 메트로폴리스에서 연극 무대를 상기시키는 세트의 구성, 그로테스크한 분장, 삽입된 음악은 1920년대라는 제작연대를 무색케 했으니 말이다. 정치/사회적인 요소가 사회 구성원의 심리적인 기반 위에서 움직이고, 그 심리적인 요소가 다시 예술에 반영되어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순환논리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그러한 점은 영화를 감상하고 생각하는데 있어서 즐거움을 주는 요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