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4일 조선일보에는 "서울온 北 고구려불상은 가짜"라는 제목으로 A21면에 제법 크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작은 제목으로는 '장충식 교수"南 불상 베끼다 틀린 명문 새겨"'였는데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4월 9일부터 제기동의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리고 있는 '2004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에서 전시중인 고구려 불상에 대하여 그 진위를 논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느 전시회에 전시중인 작품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전시회가 개최될 때마다 가끔은 이런 문제가 대두되어 전시 주최측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가지를 예로 든다면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지하철의 모습'이라는 유화작품이 사진 작품을 보고 그대로 베꼈다고 해서 대상을 취소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심사위원회의를 했지만, 어차피 화가는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이며, 그림에서의 예술적 창의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로 삼을 수 없다고 해서 그대로 놔둔 적이 있었고(물론, 저는 사진도 보고 회화도 보았지만 표현 방식의 차이일뿐 완전히 똑같은 작품이라고 봐야될 정도였으며 제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대상 자격을 박탈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류화가 천경자의 작품을 두고 본인이 가짜라고 주장하여 한동안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가 결국은 작가가 우리 나라 땅에서 사는것이 싫다고 조국을 버리고 해외로 나간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문화재 분야에서는 김정희의 글씨와 겸재 정선의 그림에 대해 모 전문가가 시중에 나도는 것들은 모두가 위작이거나 가짜라고 해서 온통 바글바글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거나 경매장 등에 나오는 작품에 대하여 가짜 운운하는것은 자칫 전시 관계자와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함은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는 확실한 문헌근거나 입증할 방도를 마련치 않는다면 오히려 역공속에서 헤어나기 힘든 지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기에 상당히 조심을 해야 할것입니다. K박물관의 C실장이 자신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겸재 그림에 딴지를 걸었다가 무척이나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진위를 구별하는 명확한 방법이 없는 한은 차분히 그 진위를 다져보는 학문적인 전개절차를 거쳐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것입니다. 고구려 불상이 가짜라고 지적한 장충식 교수는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나름대로 불상과 석조물에는 정평이 있으신 분으로 문화재위원이며 개인적으로는 제 은사의 한분이시기도 합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할 때...깜짝 놀랐습니다. 함부로 그런 논리를 전개하실분이 아니신데 단정적으로 가짜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가짜다 아니다..라는 논란의 대상이 된 전시품은 북한에서 가져왔다는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인데 이 전시품이 우리 나라의 국보 제 72호인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을 그대로 본 뜬 뒤, 국보 제 119호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그대로 음각한 짬뽕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기사의 옆에는 우리 나라 국보와 전시중인 북한의 문화재를 나란히 싣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세히 살펴보면 많이 다른것을 알 수 있는데 주최측에서는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졌다는 의문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유물 자체가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여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 맞다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짜라고 주장하는 측은 이 유물이 1960년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시 유물이 가짜라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별황자총통"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가짜로 밝혀지고 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킨 주동인물인 해군 대령이 구속이 되고 이를 만들어 준 기술자(?)들이 구속되기도 했었고, 이로 인하여 당시 지정을 위한 심의에 참석했던 문화재위원들은 그 명성에 완전히 X칠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만큼 문화재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에 의심을 가게 만든것은 물론이고 국보로 지정 당시 시중에 가짜라는 말이 떠돌았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했던 문화재청도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유물이 가짜다 아니다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을 해야 할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몇 차례에 걸쳐 관련되는 사진과 관련 학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진실은 무엇인가에 접근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학술적으로의 전개는 다소 무거울것 같아 가능하면 알기 쉽도록 풀어가며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如       村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심이 2004-06-1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흥미진진합니다. 유물의 진위는 정말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제대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쩌면 일반인들에게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그래도 관심을 갖는 방법으로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이번문제에 대한 얘기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런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게 창피하군요..

비로그인 2004-06-1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심님...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관심을 갖지 않으셨기에 모르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랍니다.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십니다. 다만, 지금부터는 우리 것이기에....그리고 남이 우리의 것을 지켜주고 관심을 써 주지 않기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보자는 의미를 가져야 하겠으며 두심님과 같이 관심을 가져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아마도 우리 문화재에 더 많은 애정과 연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메시지 2004-06-1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서재에 놀러오면 우리 문화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흥미가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나가도록 노력해야겠죠.

비로그인 2004-06-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란 조금씩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려도 되겠죠? 잘못 이해하실 수 있는 부분과 예민한 부분이 많아 저도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를 인용한다고는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것입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물음표(?)를 가지고 접근을 하며, 관련 문헌자료를 찾고, 또 선배 학자들이 이룩한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고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름다운 부부

남편이 미울 때마다 아내는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를 할 때에는
큰 못을 쾅쾅 소리나게 때려 박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때리고 욕을 할 때에도
못은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불렀습니다.

"보세요, 여기 못이 박혀 있는 것을...
이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하나씩 박았던 못입니다."

나무에는 크고 작은 못이 수 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나무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 후 부터 남편은 변했습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불렀습니다.

"여보! 이제는 끝났어요.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아직도 멀었소, 못은 없어졌지만 못자국은 남아 있지 않소?"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 안고서
고마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

비단 부부 사이에서 뿐만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안다면 그 결과는 의외로 따뜻하게 나타 날 것입니다. 비록 작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인것 같습니다.

                            <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자 마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을 했읍니다. 바로 제가 살던 동네에 여자 중,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 "달걀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 화장실에 간다거나 밤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다 마치고 나오면 뒷 쪽에서 "어딜가??~~~~" 하면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다가오는데 일단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소복입은 여자가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온 몸의 털이 삐쭉 서는것은 그 여자의 얼굴이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민둥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달걀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무슨무슨 "괴담"정도 될것 같은데 예전에야 지금처럼 가로등이 밝거나 전깃불을 훤하게 켜 둘 형편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늦게 나다니는 일도 드물었지만, "달걀 귀신"소문 이후로는 해가 지고나면 말 그대로 골목길에는 쥐새끼 한마리 다니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퍼져 나가니 밤에 화장실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조차도 화장실에 가는것을 꺼려해서 아예 날이 어두워 지기 전에 볼일을 다 봐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소문이 빠르게 번져나갈즈음 정말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화장실은 지금같은 양변기나 좌변기가 아니라 그냥 나무를 엮어 만든 '푸세식'인데 그 화장실에서 학생의 시체가 발견 된것입니다. 갓 입학한 학생이라 아마 발을 헛 딛고는 빠졌다가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변을 당한 모양인데 "달걀 귀신"의 소문과 맞물려 이제는 정말로 "달걀 귀신"이 사람을 해치는 일을 했다고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 나갔습니다. 저도 한 걸음에 학교에 가 보았는데 화장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쌓고 무슨 볼거리라도 있는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체는 벌써 경찰이 병원으로 이송해 갔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또 다른 무엇이 나올까? 라는 기대감으로 어둑 어둑 해가 질 때 까지 죽치고 앉아서 소문을 부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귀동냥 하다보니 정말 "달걀 귀신"은 대단했습니다. 어떤 남자는 비가 오는 날 밤 골목을 가다가 달걀 귀신을 만나서 정신없이 우산으로 귀신을 내리쳤는데 분명히 몸을 때렸음에도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거짓말임에도 당시에는 가슴이 콩당거리며 "달걀 귀신"의 무서움에 두려워 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달걀 귀신"이 둔갑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겨울 어느 날  낯 모르는 청년 두 명이 동네에 나타나 꼬마들을 다 모아 놓고는 동네 어디 어디를 돌아서 가장 빨라 오는 사람에게는 상금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말 돈을 줄까? 라는 생각에 반신반의 했었지만 일단은 "요이~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열심히 달려 1등을 하였고 저는 상금으로 10환을 받았던 것입니다. 몇 등 까지 등위를 정해서는 그 아이들에게도 상금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더니 이 젊은 사람이 하는 말..."옷을 많이 입으면 달리기를 잘 할 수 없으니 모두 옷을 벗고 달리면 잘 달릴꺼야"라고 하면서 웃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 달리면 돈도 받을 수 있겠다...가만히 생각해보니 달릴 때 춥다고 입었던 옷이 사실은 달리는데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옷을 다 벗어 놓으니 그것도 제법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요이~ 땅!!" 출발 신호와 함께 동네의 지정된 지점을 향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당연히 또 1등으로 도착을 했는데.....어랍쇼??  젊은 두 사람과 우리가 벗어둔 웃도리는 온데간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참을 찾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 사태를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사기에 당한것이었지요....순진한 아이들의 옷을 상금을 준다고 꼬드겨서는 웃옷을 가지고는 냅다 뺑소니를 친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멍청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제법 야단도 맞았지만 저희 아이들은 모두 "달걀 귀신"이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는 우리 옷을 가져 간것이라고 했습니다. "달걀 귀신"에 대한 공포가 커지다보니 밥 상에 올라온 달걀 조차도 입에 넣기가 두려운 지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동네 시장에 불이났습니다. 아주 큰 불로 시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는데 구경을 가느라고 같이 놀던 동생에게는 집으로 가라 하고는 시장통으로 뛰어 갔습니다. 시장 언저리의 약간 높은 축대위에 올라가 시장이 불길에 담겨서 화마가 낼름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열기가 강하던지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얼굴에 화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럭저럭 불길도 잡히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막상 집에 도착을 하니 동생은 어디 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라했기에 당연히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형을 따라 시장통에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제 동생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셨습니다. 톻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하루 종일을 동생을 찾아 시내를 헤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동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는 "달걀 귀신"이 잡아갔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신없이 동생을 찾아 다니시던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근 한 달 가까이 지난 어느날 동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 제 동생을 잃었더라면 저도 한창 이산가족 찾기에 메달렸을지도 모릅니다.

 "달걀 귀신" 이야기는 그 후로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납량특집'이나 '전설따라 삼천리'에서도 "달걀 귀신"은 단골 이야기꺼리 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달걀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또 "달걀 귀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까지도 "달걀 귀신"은 냄새나는 화장실이 주거 공간이었던지 화장실 이야기때 마다 "달걀 귀신"이야기가 떠돌고는 하였지만 더 이상 소문이 확대된다거나 피해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 재학중 학교의 종합화 계획으로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교련 수업을 마친 학생 하나가 학교 윗 쪽에 있는 작은 댐의 물에 뛰어 들다 심장마비로 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달걀 귀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학생이 교수회관에서 달걀 하나를 몰래 훔쳐 먹었는데 "달걀 귀신"이 노해서 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음대 쪽에 있는 '자하연' 이라는 연못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둔 여학생이 투신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을 했는데 이 사건에서는 "달걀 귀신" 이야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달걀 귀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후 입니다. 군에서는 귀신도 다양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아무래도 초병이라는 임무는 혼자, 또는 둘이 근무에 임하다보니 조금은 무섭고 또는 그런 초병을 놀리기 위해 여러 귀신 이야기가 나도는 것인데 실제 귀신에게 죽음을 당한 초병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길거리를 지나다가 머릿속에서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달걀 귀신" 이야기를 듣게 된것입니다. 어느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며 하는 말이 "너...말 안들으면 달걀 귀신이 잡아 간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울던 울음을 뚝!! 멈추고 말더군요...아마도 그 어머니는 "달걀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성숙해 온 분이셨고, 아이에게는 "달걀 귀신"에 대한 무서움을 자주 이야기 해주었기에 "달걀 귀신"이 잡아는 이야기를 듣고는 간울음을 멈춘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달걀 귀신".....그 이야기는 이제는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로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달걀 귀신"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애교있는 귀신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신이나 도깨비나 다소의 성격은 달라도 얼굴에서 피를 흘린다던가, 또는 무지막지한 얼굴로 보는 순간부터 공포를 느끼는 그런 귀신이 아니라 밋밋한 얼굴에 우리 스스로가 달걀 귀신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 그런 멋이 '달걀 귀신"이야기에 담겨 있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달걀 귀신"이야기도 듣기 힘든 옛 날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 如       村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4-06-1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망태할범이랑 곰쥐이야기를 들으며 컸습니다. 얼마전 자꾸 하수도 공사하는 쪽에 가보겠다고 하는 시조카에서 거기 곰쥐 있다고 겁주니까 시댁 식구들이 다 멀뚱멀뚱 곰쥐가 뭐냐고 하데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나봐요.

물만두 2004-06-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순경 온다 소리를 젤 무서워 했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습니다. 혹 전생에 범죄자???

비로그인 2004-06-1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어른들의 아이들 겁주는 방법이며 나름대로 어떤 무서운 대상을 설정해서 어른들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망태할멈, 마귀할멈, 달걀귀신, 곰쥐(그런데 곰쥐가 어떻게 생긴 쥐죠?), 귀신 등등의 힘을 빌어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뜨거운 것이나 지저분한것을 만지려고 하면 "에~뜨" "지~지" 라고 하면서 제지하였던 것과 독 같은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6-1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려서 외삼촌 방 천장의 비가 새서 곰팡이 핀 구석을 삼촌이 '도깨비가 들락거리는 구멍'이라고 하는 것을 진짜 믿었어요. --;;
삼촌이 '도깨비가 내 친구야'라고 하는 말에 삼촌을 존경하기까지...

2004-06-17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이 말라 우물 판다"

  조선인님의 서재 내용물중 마이페이퍼라는 상자의 겉이름 입니다. 처음 서재를 방문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 한 가지!!!

   저는 목이 마르면 냉장고를 열어 마실것을 찾는데....

   조선인님은 목이 마른데 왜 우물을 파는걸까?

   거...참.....

   정말...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네요.....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4-06-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해요. 잉잉잉~
뭔가 궁금하고 알고 싶을 때, 호기심과 지적 허영으로 목마를 때,
웹상의 우물을 파는 거라고 봐주세요. ㅎㅎㅎ

비로그인 2004-06-1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오정 임돠~~

가을산 2004-06-1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갈수록 수수께끼님의 유머가 드러나네요. ^^
 
한국조각사 논저해제
김리나 외 지음 / 시공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해제(解題)란 관련 문헌을 모아 둔 것이다. 이 책은 1890년부터 1999년 말까지의 한국 조각사 관계의 문헌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조각이 포함된 개설서, 단행본, 보고서, 도록, 논문, 그리고 일본어로 발간된 책이나 구미언어(영어 등)로 발간 된 조각관련 서적은 모두 다 담고 있는 책인데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김리나 교수외 5명의 시대와 언어의 분담에 의한 노력으로 편집이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나라 조각에 관한 궁금함을 찾고자 하는 사람드레게는 더 없이 좋은 목록표의 구실을 한다 하겠다. 거기에 각각의 내용을 요점식으로 정리하여 실제로 필요한 자료의 제목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사실, 도서관에 가더라도 제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필요한 자료를 찾는데 상당한 노력을 해야하며, 설령 도서를 찾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찾고자 하는 내용이 그 속에 담겨 있는지는 대강이라도 훑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책은 자료를 위하여 찾는 수고를 덜어주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요점 정리는 도서에 담긴 내용이 찾고자 하는 자료인지 아닌지를 알게 해 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것 같아, 목차도 함께 담고 있어 세세한 분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자료가 어디에 담겨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데, 목차는 대목차와 중목차까지를 담아 웬만한 내용은 어디에 담겨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따라서 한국미술사에 관심이 있거나 조각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관련 서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잘 편집되었구나 하는것은 단행본이건 연구 논문이건, 보고서이건 조각과 관련된 글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다면 모두 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공동편집을 맡은 편집진의 세심하고 차분한 자료 수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모든 자료를 찬찬히 점검하여 이 책이 출간되었지만 그래도 빠뜨리고 넘어간 관련 문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증보판은 이런 누락되었던 부분에 대한 보강과 더불어 표지도 사전식으로 하드케이스로 제작을 한다면 사전처럼 오래 오래 활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몇 마디를 덧붙인다면, 명반을 소개할 때 자켓 사진을 넣는다던가 또는 알라딘등 인터넷 판매상품시 상품 사진을 넣듯 이 책도 관련 도서나 간행물 만이라도 표지 사진을 포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국내에 발표된 문헌을 비롯하여 구미, 일본의 문헌자료는 담고 있으나 중국에서 발표된 우리 나라의 조각에 관한 문헌자료도 빠른 시일내에 포함되기를 바란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오랜 시간을 고생하며 만들어 낸 역작으로 이 책의 책임편집자인 김리나 교수를 비롯한 다섯 분의 편집위원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