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자 마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을 했읍니다. 바로 제가 살던 동네에 여자 중,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 "달걀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 화장실에 간다거나 밤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다 마치고 나오면 뒷 쪽에서 "어딜가??~~~~" 하면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다가오는데 일단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소복입은 여자가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온 몸의 털이 삐쭉 서는것은 그 여자의 얼굴이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민둥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달걀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무슨무슨 "괴담"정도 될것 같은데 예전에야 지금처럼 가로등이 밝거나 전깃불을 훤하게 켜 둘 형편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늦게 나다니는 일도 드물었지만, "달걀 귀신"소문 이후로는 해가 지고나면 말 그대로 골목길에는 쥐새끼 한마리 다니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퍼져 나가니 밤에 화장실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조차도 화장실에 가는것을 꺼려해서 아예 날이 어두워 지기 전에 볼일을 다 봐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소문이 빠르게 번져나갈즈음 정말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화장실은 지금같은 양변기나 좌변기가 아니라 그냥 나무를 엮어 만든 '푸세식'인데 그 화장실에서 학생의 시체가 발견 된것입니다. 갓 입학한 학생이라 아마 발을 헛 딛고는 빠졌다가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변을 당한 모양인데 "달걀 귀신"의 소문과 맞물려 이제는 정말로 "달걀 귀신"이 사람을 해치는 일을 했다고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 나갔습니다. 저도 한 걸음에 학교에 가 보았는데 화장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쌓고 무슨 볼거리라도 있는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체는 벌써 경찰이 병원으로 이송해 갔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또 다른 무엇이 나올까? 라는 기대감으로 어둑 어둑 해가 질 때 까지 죽치고 앉아서 소문을 부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귀동냥 하다보니 정말 "달걀 귀신"은 대단했습니다. 어떤 남자는 비가 오는 날 밤 골목을 가다가 달걀 귀신을 만나서 정신없이 우산으로 귀신을 내리쳤는데 분명히 몸을 때렸음에도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거짓말임에도 당시에는 가슴이 콩당거리며 "달걀 귀신"의 무서움에 두려워 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달걀 귀신"이 둔갑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겨울 어느 날  낯 모르는 청년 두 명이 동네에 나타나 꼬마들을 다 모아 놓고는 동네 어디 어디를 돌아서 가장 빨라 오는 사람에게는 상금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말 돈을 줄까? 라는 생각에 반신반의 했었지만 일단은 "요이~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열심히 달려 1등을 하였고 저는 상금으로 10환을 받았던 것입니다. 몇 등 까지 등위를 정해서는 그 아이들에게도 상금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더니 이 젊은 사람이 하는 말..."옷을 많이 입으면 달리기를 잘 할 수 없으니 모두 옷을 벗고 달리면 잘 달릴꺼야"라고 하면서 웃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 달리면 돈도 받을 수 있겠다...가만히 생각해보니 달릴 때 춥다고 입었던 옷이 사실은 달리는데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옷을 다 벗어 놓으니 그것도 제법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요이~ 땅!!" 출발 신호와 함께 동네의 지정된 지점을 향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당연히 또 1등으로 도착을 했는데.....어랍쇼??  젊은 두 사람과 우리가 벗어둔 웃도리는 온데간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참을 찾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 사태를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사기에 당한것이었지요....순진한 아이들의 옷을 상금을 준다고 꼬드겨서는 웃옷을 가지고는 냅다 뺑소니를 친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멍청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제법 야단도 맞았지만 저희 아이들은 모두 "달걀 귀신"이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는 우리 옷을 가져 간것이라고 했습니다. "달걀 귀신"에 대한 공포가 커지다보니 밥 상에 올라온 달걀 조차도 입에 넣기가 두려운 지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동네 시장에 불이났습니다. 아주 큰 불로 시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는데 구경을 가느라고 같이 놀던 동생에게는 집으로 가라 하고는 시장통으로 뛰어 갔습니다. 시장 언저리의 약간 높은 축대위에 올라가 시장이 불길에 담겨서 화마가 낼름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열기가 강하던지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얼굴에 화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럭저럭 불길도 잡히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막상 집에 도착을 하니 동생은 어디 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라했기에 당연히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형을 따라 시장통에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제 동생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셨습니다. 톻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하루 종일을 동생을 찾아 시내를 헤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동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는 "달걀 귀신"이 잡아갔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신없이 동생을 찾아 다니시던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근 한 달 가까이 지난 어느날 동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 제 동생을 잃었더라면 저도 한창 이산가족 찾기에 메달렸을지도 모릅니다.

 "달걀 귀신" 이야기는 그 후로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납량특집'이나 '전설따라 삼천리'에서도 "달걀 귀신"은 단골 이야기꺼리 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달걀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또 "달걀 귀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까지도 "달걀 귀신"은 냄새나는 화장실이 주거 공간이었던지 화장실 이야기때 마다 "달걀 귀신"이야기가 떠돌고는 하였지만 더 이상 소문이 확대된다거나 피해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 재학중 학교의 종합화 계획으로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교련 수업을 마친 학생 하나가 학교 윗 쪽에 있는 작은 댐의 물에 뛰어 들다 심장마비로 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달걀 귀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학생이 교수회관에서 달걀 하나를 몰래 훔쳐 먹었는데 "달걀 귀신"이 노해서 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음대 쪽에 있는 '자하연' 이라는 연못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둔 여학생이 투신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을 했는데 이 사건에서는 "달걀 귀신" 이야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달걀 귀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후 입니다. 군에서는 귀신도 다양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아무래도 초병이라는 임무는 혼자, 또는 둘이 근무에 임하다보니 조금은 무섭고 또는 그런 초병을 놀리기 위해 여러 귀신 이야기가 나도는 것인데 실제 귀신에게 죽음을 당한 초병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길거리를 지나다가 머릿속에서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달걀 귀신" 이야기를 듣게 된것입니다. 어느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며 하는 말이 "너...말 안들으면 달걀 귀신이 잡아 간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울던 울음을 뚝!! 멈추고 말더군요...아마도 그 어머니는 "달걀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성숙해 온 분이셨고, 아이에게는 "달걀 귀신"에 대한 무서움을 자주 이야기 해주었기에 "달걀 귀신"이 잡아는 이야기를 듣고는 간울음을 멈춘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달걀 귀신".....그 이야기는 이제는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로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달걀 귀신"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애교있는 귀신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신이나 도깨비나 다소의 성격은 달라도 얼굴에서 피를 흘린다던가, 또는 무지막지한 얼굴로 보는 순간부터 공포를 느끼는 그런 귀신이 아니라 밋밋한 얼굴에 우리 스스로가 달걀 귀신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 그런 멋이 '달걀 귀신"이야기에 담겨 있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달걀 귀신"이야기도 듣기 힘든 옛 날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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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1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망태할범이랑 곰쥐이야기를 들으며 컸습니다. 얼마전 자꾸 하수도 공사하는 쪽에 가보겠다고 하는 시조카에서 거기 곰쥐 있다고 겁주니까 시댁 식구들이 다 멀뚱멀뚱 곰쥐가 뭐냐고 하데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나봐요.

물만두 2004-06-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순경 온다 소리를 젤 무서워 했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습니다. 혹 전생에 범죄자???

비로그인 2004-06-1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어른들의 아이들 겁주는 방법이며 나름대로 어떤 무서운 대상을 설정해서 어른들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망태할멈, 마귀할멈, 달걀귀신, 곰쥐(그런데 곰쥐가 어떻게 생긴 쥐죠?), 귀신 등등의 힘을 빌어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뜨거운 것이나 지저분한것을 만지려고 하면 "에~뜨" "지~지" 라고 하면서 제지하였던 것과 독 같은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6-1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려서 외삼촌 방 천장의 비가 새서 곰팡이 핀 구석을 삼촌이 '도깨비가 들락거리는 구멍'이라고 하는 것을 진짜 믿었어요. --;;
삼촌이 '도깨비가 내 친구야'라고 하는 말에 삼촌을 존경하기까지...

2004-06-17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