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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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어도, 꽤 매니아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중에는
(당연하지만)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 작가들이 있기 마련인데, 기시유스케가 그렇다.
무섭다, 재밌다, 호평이 자자했던 <검은집>에서도 별 무시무시한 포스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고,
두번째 읽은 <유리망치>역시 마찬가지이다.
보험사기극을 벌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범과 한판승부를 겨루었던 <검은 집>은 공포소설같은 느낌이 강한데 비해,
<유리망치>는 밀실살인을 파해치는 매우 꼼꼼한 추리물인데도 불구하고,
꼭 몇군데씩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할만한 책은 아니었다.

완벽한 방범이 이루어지는 12층 사장실에서 사장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복도에 CCTV가 주시하고 있고, 방과 유일하게 이어져있는 방은 전무의 방인데,
살인이 이루어졌을법한 시간, 전무는 점심식사후 달콤한 낮잠에 빠져있었다.
일을 더이상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회사측에서는 전무가 잠든 후에 몽유병이라던지 하는 수면장애가 있는 것으로 몰아가 살인죄를 뒤집어 씌우려 하고,(이 부분도 살짝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평사원도 아니고 회사 최고 권력인 사장이 죽었는데 이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려하다니. 가능한가. 일본에서는 개인보다 단체를 우선시하는게 일반적이라 한다면 할말 없지만.) 얼떨결에 희생량이 될 지경에 놓인 전무를 변호하기 위해 나선 변호사 준코와
이 책의 탐정이라 볼수 있는 무시무시하게 똑똑하고 꼼꼼한 방범전문가 에노모토가 나서
사건을 수사한다.

책은 1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준코와 에노모토가 살인 트릭을 연구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2부에서는 범인이 등장해 그가 이런 살인을 저지를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범행동기, 범행수법이 공개된다.
첫번째에는 "어떻게", 두번째에는 "누가"와 "왜"
-범인을 잡기전에 트릭 연구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범인과 동기는 후에 밝혀진다.
우연과 필연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하는 트릭이라, 현실상 가능할 성 싶지는 않지만, 거기에 딴지 걸고 싶은 생각은 없고-
다만, 아무리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극한에 몰린 범인이라 해도 번쩍이는 뭔가(?)를 본 순간
그걸 가져야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이르는 심리묘사가 부족했던지 심정적으로 납득이 가지는 않으며,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 똑똑할지 몰라도) 전문지식에 가까운 지식들을 차곡차곡 모아
연결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저 역시 그다지 공감할수 없다.
(얼떨결에 스포일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조심조심...)

 
기시 유스케의 소설들에는 언제나 전문지식에 가까운 정보량이 쏟아지는데,
소설을 쓰기 전, 조사를 꼼꼼히 하는 점은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소설안에 녹아들면 살짝 지루해 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어색하게 껴들어간 느낌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다만, 왠지 모르게 기시 유스케의 소설에서는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기계적인 느낌을 많이 받아서인지
캐릭터에서도, 사건 자체에서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 개인 취향때문일 것이다.
사랑도 증오도, 인간 사이의 정도, 끈적한 느낌이 부족하다. 사람들은 마네킹이나 컴퓨터같다.
그래서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재밌게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차가운 복도같은 느낌만 들뿐이어서 별 감응은 오지 않는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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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30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검은집> 읽고 <유리망치> 읽을때까지만해도 별로였어요. <천사의 속삭임>하고, <푸른 불꽃> 읽고 정말 좋아졌답니다. 분명 어떤 종류의 어설픔이 있긴 한데, 뒤의 두 작품은 그걸 상쇄하는 무언가를 제가 찾을 수 있었거든요.

Apple 2007-08-30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그럼 다른 작품도 더읽어봐야겠네요!+_+

쥬베이 2007-09-03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은 별로였어요^^ 푸른불꽃은 사놓고 안읽고 있다는 ㅋㅋ

Apple 2007-09-0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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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잡지에서 이종호씨의 인터뷰를 보게되었는데,
"공포소설이라고 해서 꼭 무섭지는 않아도 되는것같다"는 문구를 읽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나?)
모순 아닌가. 공포소설이지만, 반드시 무서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맞아,맞아"라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다지 겁이 없는 나로써는, 어떤 이야기가 들이닥치든 두려움을 느끼기란 힘들다.
그 이야기의 본래의 취지대로 무섭지 않다면, 그렇다면 나는 왜 공포소설을 읽는가.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는 걸까.
내게 있어서, 공포소설은 아주 무섭거나, 기분 나쁠 정도로 잔혹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기괴한 이미지들속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
식겁하게 만드는 귀신이 대거 출몰하거나, 살인마가 나타나 사람을 토막내도,
거기에 인간의 감정이나 사연이 담기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을까.
이미지로써의 공포가 아니라, 내용으로써 완성된 공포소설을 읽고싶었다.
삐뚤어진 인간의 심리나,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섬뜩한 현실의 광기 살인, 악몽에는 더 집중하게 되는 악취미.
나는 그런 악몽을 확인하기 위해 공포소설을 들여다본다.
 
올여름 다시 돌아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두번째 방문은 그 음흉한 이름답게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일상의 공포들을 다룬다.
겨우 9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1편과 2편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편이 자극성에 초점을 맞춘 엔터테인먼트로써의 공포였다면,
이번 편은 전체적으로 좀더 수준있는 공포소설을 지향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방문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대표적으로 <레드 크리스마스>같은 단편이 그 변화의 핵심이 되는데,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포'란 단지 이미지적인 공포가 아닌, 누구나 겪는 일상의 모순에 대한 짜증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공포감, 또는 좌절감으로 표현되어있다.
전편보다 단절이나 좌절감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띄이고,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공감하기 쉬워서
1편보다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종일의 <벽>은 어느 순간 운이 확 트이기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운이 좋아 좀더 싼 가격에 아파트를 얻게된 부부, 아파트가 생기고 나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예상치도 못한 데에서 돈이 들어오며, 아이까지 생기는데...
시도때도 없이 윗층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음들과 싸가지 콤보 100단을 연달아 날려주시는 되먹지 못한 윗층 이웃들.
작은 것에서 비롯된 일상의 짜증에 얼마나 많은 것이 깨어질수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단편이다.
<몸>에서, 한국공포단편선까지-점점 자기 페이스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종일 작가의 변화가 눈에 띈다.
 
장은호의 <캠코더>는 전형적인 병원 괴담이야기같은 단편이다.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소년과 아이가 한시도 놓지 않는 캠코더.
캠코더에 찍힌 병자들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소년도 죽는다.
평소 병원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던 소년을 유일하게 아껴주던 의사 주인공이
이 괴이한 캠코더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는 이야기이다.
괴담으로써는 재밌을지 모르지만, 이야기가 전형적이고 단순해서 아쉬운 단편이다.
 
최민호의 <길 위의 여자>는 헐리우드 공포영화를 보고있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단편이다.
숲에서 차가 고장난데다가 핸드폰 밧데리도 나가버리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한 남자가
도로에서 차를 얻어타게 된다.
한밤에 선글라스를 낀 이상한 여자, 도로에서 내장이 터져죽은 너구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차에 실는 여자의 이상한 행동에 주인공은 신경질적인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데...
끔찍하고 음울한 악몽같은 이야기이다. 역시 히치하이킹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김미리의 <드림머신>에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꿈을 꿀수 있는 드림머신이 등장한다.
딱봐도 용도는 느껴지지 않는가. 연인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은 기계이다.
평소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과 항상 아름다운 꿈만 꾸는 여자친구, 두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실망을 많이 한 단편이었는데,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너무 소품적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체 역시 작품이 어설퍼보이는데 한몫했다.
 
김준영의 <통증>은 계속 아픈 남자가 등장한다.
그가 아픈 이유는 몸에서 자꾸 이상한 것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이나 되어서 이가 자라나서 온 입안이 찢어지질 않나, 얼굴에서 알수 없는 살들이 자라나고,
손톱 옆에서 또 손톱이 자라나질 않나- 병원에서도 손들어버린 이 알수없는 통증들.
이 끔찍한 통증의 이야기는 어느 날부터 실종되어버린 아내의 수사와 교차되며
그의 통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이다.
<통증>은 담담한 문체가 무척 인상적인 매력적인 단편이었다. 다소 건조하게 통증을 호소하는데도 어찌나 그 끔찍한 통증이 잘 전달되던지, 읽으면서 나도 어딘가 아픈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후반부가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의 글솜씨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단점을 상쇄했다.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는 사회모순을 다루고 있는 멋진 단편이다.
영구임대주택과 초호화 아파트가 나란히 서있는 동네. 오냐오냐 키운 부잣집 아이들은 악마나 다름없다.
길잃은 개이든, 어렵게 살아가는 독거노인이든, 장애인부모를 둔 가난한 아이든 가리지 않는다.
길거리 깡통을 보듯 인간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장난삼아 비비탄총을 갈기며,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라고 믿는 부모의 끔찍할 정도의 과보호 역시 악마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 이런 부모들을 너무나 잘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분노하면서 이 단편을 읽게되는 것이다.
부조리한 일상의 짜증과 불의를 보고도 참을수 밖에 없는 비참할 정도로 나약한 자기보호본능,
이 단편을 읽으면서 왠지 눈물이 나는 건 나뿐만일까.
 
신진오의 <압박>은 말그대로 폐소공포를 자극하는 단편이다.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전신마비환자는 밤만 되면 쇠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에 시달리게 되고,
어느날 부터인가 집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전편에서 <상자>를 실었던 신진오는 여전히 상자에 갖힌듯한 네모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깔끔한 문체도 좋고 주인공의 간병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어딘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단편이었으나,
후반부 박력이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재밌는 단편이다.
 
황희의 <벽 곰팡이>는 <레드크리스마스>와 함께 전편에서는 다루지 않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불법체류를 하게된 한 가족- 어느날 부터인가 아이들이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원인은 벽을 시커멓게 잠식해버린 곰팡이 때문이었다.
집주인에게 호소를 해도 제대로 조취를 취해주지 않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이 단편은 미국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호소를 하고 있어서,
애초에 주시하던 곰팡이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순간 슬쩍 사라져버리고, 얘기 자체도 공포에서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우리나라 공포소설에서는 좀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무척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던 단편이다.
 
이종호의 <폭설>에는 폭설로 인해 산에 갖혀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신기루처럼 우뚝 서있는 기이한 산장에서 모인 사람들. 저마다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공포심에 시달리는데,
게다가 산장에는 시체가 있질 않나, 누군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나타나
공포심을 더더욱 자극한다.
오래전의 괴담에서 이어진 현실의 살육이야기는 참 익숙한 소재이지만, 작가가 워낙 능숙하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이런 소재가 낡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후반부의 의외의 이야기도 환상적이었고, 역시 전체적인 흐름의 완성도에서는 <폭설>이 최고이다.
 

개인적으로는 <통증> <레드크리스마스> <길위의 여자> <벽곰팡이> <폭설>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미 말했듯이, 전편보다 단편의 전체적인 수준이나 글 완성도가 향상되어서 나는 두번째 방문쪽이 마음에 든다.
전작과는 다른 시도들이 꽤 많이 보이고, 사람마다 이 시도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적어도 안이하게 멈춰져 비슷한 이야기만 양산하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좋은 모습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발간되기를 바라며, 두번째 방문이 첫번째 방문과는 다른 맛이 있듯이,
세번째 방문은 또 다른 묘미를 갖춘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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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증명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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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증명>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모리무라 세이치.
요즘 인기있는 소설가들처럼 감각적인 면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청산유수 거침없이 이어지는 전개들이 마음에 든다.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청춘의 증명까지, 모리무라 세이치의 세가지 증명시리즈가 있는데,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이 사뭇 달랐듯이, <청춘의 증명>은 또 어떻게 다를지 모르겠다.
(왠지 제목만 봐서는 청춘 학원물일것같다는 은근한 기대가....♥)


일본의 어느 산골 마을, 한적하다기보다는 스산할 정도로 남루한 삶을 근근히 이어나가는 이 마을에서
도시 사람들은 자연의 낭만을 느낀다.
일찌기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은 아이들과 노인들 뿐,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그나마 농작물마저 병들어 시들어가는 이 마을에서, 마을 사람 전원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누구인지도 모를 범인, 알수없는 이유로 살아남은 단한명의 아이는 충격으로 사건과 범인의 정체에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 대량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2년후, 보험회사직원인 아지사와는 이 아이를 입양해 키우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로 여행갔다가 살해당한 여자의 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연인이자, 기자인 여자와 아지사와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짐작되는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치정극, 또 그 배후에 깔려있는 오바가문의 비리까지 밝혀지면서,
아지사와의 숨겨둔 야성은 폭팔한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한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와 주인공임을 어필하는 아지사와의 정체가 무엇인지 독자는 거의 마지막까지 알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속내를 알수없는 정의감이라던가, 숨겨진 야성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된다.
독자와 아지사와만이 아는 비밀을 남겨둔 채 "이 세상은 원래 이래. 진실이란 소용없는거야."라고 말하는 듯
매우 안타깝고 허탈한 결론을 내리며 <야성의 증명>은 마무리 짓는다.
<인간의 증명>에서는 그것이 설사 인위적이라 느껴지더라도, 소설속 인간들의 관계성에 대한 해석이 참 재밌는 부분이었고, 전체적으로 울적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던데 비해, <야성의 증명>은 어딘지 날 것냄새가 날듯 비정하고 남성적이다.
느낌이 아주 다른 두 작품이었으니 관점도 달리해서 봐야 옳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증명>쪽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굳이 "결코 밝혀지지 않는 진실"로 마무리 짓는 것에 딴지 걸 생각은 없으나, (나는 이런 결론도 나름대로 좋아한다. 사실은 이 것이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밌는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후반부에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나타나 당황스럽고,
굳이 그런 직접적인 방법을 써서 인간의 야성을 증명해야하나...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내내 알수 없는 아지사와의 내면 묘사에서 야성을 좀더 부곽시켰더라면 좋았을텐데..)
죽어있는 듯한 여자주인공의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초반사건에 비해, 두번째 사건들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이 워낙 술술 잘 읽히기 때문에, 꽤 재밌게 봤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얼마전, 일본에서 살다온 친구는 일본 사람들은 속내를 알수 없어서 정이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헤어질 때 아쉽다고 해놓고, 다시는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
모든 일본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그런 면이 조금씩은 있는 것은 사실인가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짐작할 수 없음"의 아슬아슬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를 거두어 들이는 착한 사람인가 하면,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가,
때로는 옆에서 사람이 얻어터지고 있어도 내 일 아니라며 등돌려버리는 매몰찬 인간인 아지사와를 보면서
짐작할수 없는 마음이란 참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구나...싶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누구의 마음속에 깔려있는 남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비열한 부분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는 동서미스테리 북스.
촌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극적인 표지에다가, 엄청난 오타들,
거의 초벌 번역에서 마쳐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어색한 번역,
(적어도 '코'아니면 '꼬' 둘중에 하나만 통일해달라!)
표지 뒷면 책소개에서부터 중반부 스포일러는 다 까발려버리는 파렴치한 테러행위에도
동서미스테리북스는 재밌다.
최근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일본인기작가들의 신작 물량공세에 보기도 전에 질려버린 나같은 사람은
가끔씩 이런 예전 작가들의 흔적을 찾는 것도 나름 쏠쏠하게 즐거운 일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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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7-08-2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라고 생각되시면...제목에 스포있음이라고 표시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Apple 2007-08-23 15:22   좋아요 0 | URL
글쎄..이 정도도 스포일러 일까 싶어서 그냥 쓰지 않았는데...음..^^;

물만두 2007-08-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증명은 못찾았어요. 번역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731부대를 무대로 한 신인간의 증명은 있더군요.

Apple 2007-08-23 15:22   좋아요 0 | URL
헉...신인간의 증명이라..ㅇ.,ㅇ;;

jedai2000 2007-08-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증명 나왔어요. 전 못 봤는데, 남산도서관에서 실제로 보신 분이 있어요. 증명 시리즈 중에 가장 못하다고 평하시더군요^^

Apple 2007-08-23 15:23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흐흐..^^

jedai2000 2007-08-2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습니다만, 본문 중간에 표시를 하셨으니까 괜찮을 것 같네요 ^^

Apple 2007-08-23 23:00   좋아요 0 | URL
또 몰라서 앞부분에도 써보았습니다.흐흐..^^

카스피 2007-11-2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있어 말씀 드릴려구요.위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청춘의 증명은 출간되었어요.제가 소장하고 있는데 출판사명은 잘 생각이 나질 않네요(박스안에 있어서 확인불가^^;)
그리고 신인간의 증명은 731부대(악마의 포식)가 아니라 레몬살인이라는 이름으로 80년대 초반에 출판되었읍니다.참고하세용~~
 
빌리 밀리건 -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다니엘 키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황금부엉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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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심리학자들은 '신들린 사람'들을 지칭하여 해리성정체장애 얘기를 하곤한다.
나 홀로 생각해보건데, '신들린 사람'과 일명 '다중인격'이라 불뤼는 해리성정체장애자들과의 차이점은
그들에게 다중 인격 이상의 다른 능력-예언을 한다던가, 타인을 꿰뚫어본다던가 하는 능력의 유무라고 생각하는데,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들여다 보지 않는 이상, 그것이 정신의 문제인지, 외부적인 신들림이 존재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믿음의 차이이다.
신들린 사람들의 자신안에 귀신이 존재한다는 말을 믿거나, 또는 그것이 다중인격이라 믿는 것이나-
초자연적이던, 현실적이던, 그것의 진실여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은 믿음의 차이에 달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말을 얼마나 믿을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24개의 인격(자신은 그것을 '인격'이 아닌 '사람'으로 지칭해주기를 바라지만-)을 지닌 빌리 밀리건이
진짜 해리성정체장애로 고생하는 정신병자인지, 천재적인 연기력을 가진 사기꾼인지 확실히 알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로부터의 폭행이 존재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점 역시
당사자들이 아닌 이상 정확히 알수 없다.
사람의 말을 얼마나 믿을수 있는가, 내가 사람의 말을 얼마나 믿는 사람인가.
나는 과연, 빌리 밀리건의 말을 믿고 있는가. 단지 동정심으로 그를 믿어보려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사람들이 모두 손들어주는 진실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여러가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책을 보는 내내, 빌리 밀리건의 말에 집중을 할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할 거예요. 이 일은 점점 손쓸 수 없게 되어가고 있어요.
우리는 빌리가 학교 지붕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이후로 계속 그애가 살아있을수 있도록 해왔습니다."
(-p68)

 
시작은 어쩌면 평범했다.
놀아줄 사람이 없던 외로운 어린 아이가 상상속의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빌리에게는 크리스틴이라는 3살짜리 여자아이의 인격이 생겨난다.
크리스틴은 주로, 빌리의 시간을 빼앗아 갓난아기 동생을 예뻐해준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혼날 적에는 "숀"이라는 4살짜리 남자아이가 나타난다.
숀은 귀머거리에다가 집중력이 없는 꼬마아이로, 어른들에게 받은 충격으로부터 빌리를 보호해주는 역활을 한다.
엄마의 세번째 남자, 새아버지 챌머 밀리건이 나타난후, 빌리의 내면에는 점점 많은 인격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의붓아버지로부터 폭행, 고문 및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 빌리의 마음은 24개로 쪼개어지고, 기회만 생기면 자살을 시도하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빌리 자신은 잠들어버린다.

빌리 밀리건의 스물네개의 인격들은 방어기재로써의 저마다의 역활을 책임지고 있다.
이성적인 영국인 아서, 힘쎄고 다혈질이나 정의로운 유고슬라비아인 레이건, 유쾌하고 말솜씨가 뛰어난 앨런, 반항적인 타미, 겁많은 대니, 고통받는 아이 데이비드, 순종적인 아이들 크리스틴과 크리스토퍼 남매, 다정하지만, 늘 사랑을 갈구하는 레즈비언 에이들라나-
열개의 중심인격들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열개의 인격들이 불량자라 지칭하고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열네개의 인격들.
보통 사람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던가, "내가 낯설어지는" 현상같은 것과 다른 점은 기억상실이다.
스물 네개의 인격들은 모두 한사람안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인격이 저지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인격이 공과금을 내기 위해 돈을 구해놓고, 다른 인격이 그 돈으로 놀러다니고, 다시 다른 인격으로 돌아와 공과금이 없다고 화를 내는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각기 다른 특성과 출신, 억양, 성격을 가진 스물네개의 인격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게다가, 미국을 떠나 살아본적없는 빌리가 영국식 억양으로 말을 한다던가,
유고슬라비아어나, 아랍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 같은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어떤 인격은 IQ가 63인데비해, 어떤 인격은 IQ가 130이다.
동양에 왔으면 분명 신들린 사람이라 말해졌을 사람, 그가 빌리 밀리건이다.
때로는 정의감이 넘치고, 때로는 오만할 정도로 지적이고, 때로는 바보이며, 때로는 겁많고, 때로는 위협적이다.
빌리는 원한다면 누구라도 될수 있었다.
고통받고 무기력한  "빌리 밀리건" 자신만 아니라면.
 
빌리 밀리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스물네개의 인격 중 하나가 성폭행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문제가 될수 있는 성적인 접촉을 피해자는 인격들 사이의 약속을 어긴 사람은 레즈비언인 에이들라나였다.
빌리 밀리건은 다중인격 정신 장애로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신병원으로 호송되어 치료받기 시작했고, 세상은 빌리 밀리건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다중인격 성폭행범"이라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범죄자의 교활한 수법이라 탓했지만, 빌리를 치료한 의사나 그의 주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예술가적인 기질을 타고 났던 빌리는 주위의 보호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으나, 간혹 일으키곤했던 정신적인 문제 탓에 그의 정신적인 문제를 믿고,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좀더 규제가 심한 리마 주립병원으로 옮겨진다.
환자를 구속하고 멸시하며, 학대하는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치료를 통해 통합되어가던
빌리 밀리건의 스물네개의 인격은 다시 산산히 부숴지기 시작한다.

"가끔 전 생각해요. 정말 난 회복되고 싶은 것일까?
이 모든 고통,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일들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기 뇌 한 쪽 구석 뒤에 자기 자신을 묻고 잊어버려야 할까?" (p512)

 
 
자기자신이 희미한 나머지, 좀더 정체성강한 인격들로 자신을 묻어버리고 보호한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인격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점을 보면, 그의 해리성정체장애는 당연한 것이고,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는 그의 의붓아버지 챌머 밀리건의 주장이나,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통합 인격 "선생"의 등장이 늦었던 점을 보면, 빌리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 믿음의 문제이다. 어느 쪽의 말을 믿건,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저자 다니엘 키스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의견들을 책속에 실어넣었다.
다중인격으로 고생하고 있는 빌리는 물론이고, 그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했던 그의 가족들, 빌리 밀리건을 정신병자가 아닌, 범죄자로 도장찍고, 끝없이 그의 행적을 쫓으며 고발했던 언론과 정치가들.
그들의 의견들을 통해 우리는 또다시 믿음의 갈래길에 봉착하게 된다.
어느 쪽의 말을 믿을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렸지만,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위험해져가는 빌리 밀리건이 안타까운 것은 내가 빌리 밀리건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을 소설처럼 쓴 책이다.
따라서 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처럼 쓰여진 정신분석 보고서를 보고있는 느낌을 준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콜드블러드"같은 소설이라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신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될수 있었던 이 안타까운 사내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비가 내렸고, 마음속에 씁쓸한 우울함과 깊은 연민이 맴돌았다.
나는 빌리 밀리건을 믿는다.
외로운 그를 믿고, 꽃과 나비를 사랑하는 그를 믿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하는 그를 믿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그를 믿는다.
다분이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 해도-.


스물 세살, 빌리 밀리건은 성폭행범으로 기소된다.
그의 안에 존재하는 인격이었던 <레이건>은 공과금을 내기 위해
강도짓을 하기로 결정하고, 강도짓을 하는 도중에 위험한 인격인 <필립>으로 바뀌기도 하며, 애정이 필요한 레즈비언 <에이들라나>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성폭행의 주범은 <에이들라나>였다.
그녀는 피해자의 옆에 누워 "사랑받는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라고 부드럽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책을 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뉴스에서 전해들었더라면, 분명 나 역시 쇼한다고 비웃었을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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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소설은 <베테랑>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그가 한때 로이터 통신 특파원이었던 사실은 처음 알았고, 그래서 이런 류의 이야기에 정통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물론 <베테랑>은 이와 많이 다른 소설이었으니 알리가 없다.)
국내 정치도 알고싶어하지 않는 내가, 국제정치라던가, 전쟁, 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알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내가 이 소설을 다 읽는데는 뼈를 깍는 고통(쫌 오버)을 수반할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정보 부족으로 책을 읽으면서 초반 100페이지 가량은 엄청나게 헤매면서 읽었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놓치않게 하는 뭔가 있는 소설이다.
물론 다 읽고나서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이견은 없다.
이 책은 분명 대단히 잘 쓰여진 소설이다.
 
정말 절묘한 시기에 읽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의 피랍사건을 자주 떠올리게 될수 밖에 없었다.
최근 아프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뉴스를 전해 듣고,
솔직히 말해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게 가지 말라는데 왜 가!"하는 원망부터 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가지 말아야할 곳에 간 젊은이가 또 있다.
 
억만장자인 외할아버지를 두고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미국 젊은이 리키 콜렌소는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에 충격을 받고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종청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위험천만한 보스니아로 봉사를 떠나고, 실종이 된다.
엄청난 재력가인 외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동원해 손자를 찾아나서지만, 쉽게 찾을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6년후에 젊은이는 보스니아에서 다 썩어진 채 발견이 되고,
이에 분노한 그의 가족들은 그를 죽인 테러리스트 조란 질리치를 잡아 복수하고자 한다.

"어벤저 구함. 진지한 제의. 가격불문. 연락바람"
어느 날 구인구직란에 올라온 광고. 이에 고용된 암호명 "어벤저" 캘빈 덱스터.
베트남전에서 활약해 엄청난 훈장들을 받고 돌아와 변호사가 되었으나,
하나뿐인 딸을 라틴계 인신매매범들에게 잃고 그의 인생은 변한다.
딸의 죽음과 이혼을 겪으면서, 그에게는 변호사와 어벤저-두가지의 삶이 공존하게 된다.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이성적인 어벤저, 그는 이 사건에 뛰어 들어 행적 모호한 조란 질리치를 뒤쫓는다.
 
 
2차대전부터 베트남전, 보스니아 내전부터 중동의 테러리스트까지, 갖가지 전쟁이 등장하는 통에 정신 못차리고 읽었으나, "복수전"이라는 명목하에 무척이나 명료한 소설이다.
모든 주인공들의 행위에는 정확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고, 그들은 오차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놀라울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구별해나갈수 없을 정도로 리얼하다.
장황한 묘사나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 또한 대단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쫓는 자를 또 쫓는 자, 이 숨막히는 추격전, 완전한 악인도 선인도 없는 건조한 세상.
작가의 눈으로 본 세계 전쟁 지도를 보는것 같은 소설이었다.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또다른 테러리스트와 결탁하는 CIA의 모습은 우매한 나로써는 달리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라, 또다른 세상의 모순에 봉착한 것같은 혼란스러움마저 준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위해 조란질리치와 결탁한 CIA, 그리고 어벤저가 조란 질리치를 잡아 넘긴 날은
2001년 9월 10일. 어디서 많이 본 날짜 아닌가.
바로 다음 날, 세계 무역센터가 폭파당한다.
아아, 혼란스럽다.

개인적인 취향이 이런 소설과는 방향이 아주 다르고, 따라서 개인적인 정보의 부족으로 소설의 재미를 70%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더 알고 봤더라면, 이 소설은 정말 끝내주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앞으로도 정치나 전쟁에 관심가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 스파이의  대사를 삽입하고자 한다.
워낙 객관성을 유지하는 소설이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장인물의 의견을 굳이 작가의 의견이라 생각하게 되지는 않지만, 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이라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답답한 친구. 미국이 허약하다면 미움 받은 일도 없다네.
또 미국이 가난하다면 미움 받을 건더기도 없지. 미국이 1조 달러나 원조를 했는데도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1조 달러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는거라고.
미국에 대해 증오심을 품는 것은 미국이 그들의 나라를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증오심이 그들의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주기 때문이야.
인기를 추구하지 말게. 우월감을 갖거나 사랑을 받을수는 있지만, 그 둘을 모두 누릴 순 없어.
미국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10퍼센트의 진정한 반대, 나머지 90퍼센트는 질투란 말야.
두가지를 절대 잊지 말게. 자기 보호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은인에게 느끼는 혐오감보다 더 강렬한 혐오감은 없다는 것." (-p295)
 
프레더릭 포사이드, 당신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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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2007-08-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설마요. 포사이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0.0000001퍼센트의 인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들이 항상 주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겠죠. 그리고 애플님은 이쪽 방면이 취향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벤저를 아주 훌륭하게 이해하신 것 같군요. ^^

물만두 2007-08-0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사이드가 아닌 정치가나 다른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Apple 2007-08-0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니겠죠? 읽으면서 저부분에서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