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영화제 갈때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나.
아니나 다를까 16일 은혼보는 날에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고, 조금 늦는 바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은혼은 보지 못했다.ㅠ ㅠ (부천영화제 너무한다!!!ㅠ ㅠ 5분 늦었다고!!!!!!)
그러나 18일 일요일 관람은 고른 영화 두개가 다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랄라~♬
뭐 봤는지 자랑질 좀 해보자!
블랙필드
그리스 영화라면 자칫 착각할수도 있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같은 영화밖에 기억나지 않는데,(그나마 이 영화도 그리스 영화는 아니지만...) 그만큼 영화로는 생소한 나라가 그리스.
그리스 신화와 포카리 스웨트 광고로 더 잘 기억나는 나라가 그리스인데, 이런 감성을 가진 영화가 나올줄이야.
이번에 부천영화제에서 봤던 두편의 영화중에 단연 내 취향과 딱 들어맞는 영화였다.
예니체리라고 부르는 오스만투르크 친위대원 하나가 중상을 입은 채 깊은 산속의 수녀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칼에 찔려 목숨을 잃어가는 남자의 출연에 수녀원은 혼란에 빠지고, 묵언수행중인 수녀 안띠가 이 남자를 돌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안띠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남자라는 사실이다. 징용을 피해 수녀원으로 숨겨둔 소년이었던 안띠.
중상을 입은 남자가 수녀원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흔들린 것은 안띠였다.
얼핏 BL소재로 보일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무척 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템포속에 소재를 몽환적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꿈을 꾸는 듯한 청명한 색깔들, 나른한 카메라 워크, 몽환적인 아웃포커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경관- 이 영화의 매력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 또한 마음에 들었다.
징용을 피해 남성성을 거세받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채로 살아가는 소년이 한 남자의 출연으로 흔들리는 것이 비단 그를 향한 사랑이나 욕정 때문이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소년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랑을 포함한 "자유"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자를 통해 소년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과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그러고 나니 다시는 이전의 수녀원으로 돌아갈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아닌 채로 살아왔다는 것과 그래서 불행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수 있는 일.
배우들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고, 그림그려놓은 듯한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경박하지 않은 감정선도 다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고요함마저 몽환적이더라.
참으로 잘만들어진 아름다운 영화이고,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나기는 또 오랜만인 것 같으나, 왜인지 모르게 극장안의 꽤 많은 사람들이 잠이 들어버렸다...
영화가 너무 이른 시간에 했던 걸까..........하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이 살해당하는 영화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김복남이 살해하는 영화이다.
또 어떤 영화들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추리를 통해 전말을 밝혀내는 영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말을 알려주고 결과가 나오는 영화이다.
따라서 약간 단순하다. 영화의 이런 단순함은 때로는 무척 순박하지만, 무척 공격적일수 있다.
딱 그런 느낌으로 보면 되는 영화이다.
딱히 복잡하게 추리하면서 보지는 않아도 되지만, 이성적인 복잡함과는 상관없이 감정적으로 몹시 복잡해지는 영화이다.
되는 일 없이 꼬이기만 하는 일상을 보내던 해원이 고향 무도로 내려가면서 다섯가구밖에 살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악마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약간 촌스러운듯한 영화의 스타일에 마음 놓지 말것이다.
후반부에 꽤 고어한 씬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람은 미리 보지 말아야할 것을 권한다.
어쩌면 김복남이라는 이름마저 촌스러운 순박한 섬마을 여자가 어떻게 피갑칠한 악마가 되어가는지 지켜보는 게 이 영화에서 가장 고어한 부분이 아닐까도 싶지만....
영화의 내용이 무척 감정적인 만큼, 딱 감정적으로 바라보면 될만한 영화이다.
먼저 말했듯이 순박하면서도 무척 공격적인 영화이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 영화가 주는 재미를 다소 놓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영화에 재미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는 말이긴 하지만....)
한 마을에서 일어난 악마적인 행태에 관한 고발과 더불어 현대인의 무관심과 방관의 자세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는 영화이지만, 그러한 고찰같은 것보다는 단순히 감정에 기대서 보면 훨씬 더 영화를 재밌게 즐길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후반부가 좀 무리수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죽였다고 생각한 악마가 두둥~하면서 발목잡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마무리는 또 괜찮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피해자 역활로 더 많이 등장했던 서영희씨가 살인자의 역활을 맡았는데 그닥 위화감은 들지 않고 그간 쌓여온 연기 내공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살인자들을 많이 봐서 어떤 행동을 하면 공포스러워할지 잘 포착하게 된 것 같다"고 서영희씨 본인이 이야기 했다.)
내게 서영희씨는 어딘가 백치미 돋는 여배우중 하나인데, 이런 이미지 그대로의 역활로 살인자를 연기하니 그것 또한 색달랐고, 드디어 연기에 꽃을 피운듯 연기력 폭팔이더라.
좀 아쉬운 점들이 있긴 했지만, 마무리가 괜찮았고 이야기도 늘어지지 않아 괜찮았다.
이 영화는 8월에 개봉한다고 하니, 으스스한 고어물 한편 보고싶은 분들은 극장을 찾으시길 바란다.
폭력성도, 성적인 표현도 강도가 꽤 쎈편이니 이 점은 유념하시길.
아참,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고어한 씬들 말고도 감정적으로 불쾌한 씬들이 꽤 많은 편이라 영화를 보고 기분이 상큼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은 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
p.s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이 악랄할수 있을까?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는데, 뉴스에 뜬 베트남처녀 살인사건을 보면서 현실은 더 착잡하고 더럽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시원하게 복수라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