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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전에 교보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친구가 한참 늦어지길래 이 책을 집어들고 대충대충 읽어본다는 것이 3분의 1이나 읽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한참후에, 지금에서야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세...세일하길래....!!!!)
이런류의 범죄 심리학에 관련된 책은 참 많이 읽은 편이고, 추리소설도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에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꼼꼼하게 읽고 또 읽어보게 되는 건 왜일까.
인간 마음속에 존재하는 끝을 모르는 어둠을, 나는 그렇게도 알고 싶은 것일까.

이 책은 FBI 심리 분석관이자, 연쇄살인범 (Serial Killer)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로버트 K. 레슬러가 연쇄살인범들의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인터뷰 했던 내용을 근거로 만들어진 책이다. 작가가 당시에 처해 있던 상황, 연쇄 살인범들이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라던가, 이들의 끔찍한 범죄들, 이 범죄자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함으로써 얻어낸 살인자의 내적, 외적 프로필을 추측하는 기술- 프로파일링에 대한 이야기들을 상세히 바라볼 수 있는 책인데,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었음에도 이 책이 그중에 가장 잘 쓰여졌고 자극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읽으면서 작가 나름의 자기 자랑에 코웃음나긴 했지만,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고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니 자신과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남의 나라 얘기로만 느껴졌던 연쇄살인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자유롭지 않다.
책에 적혀있듯이, 작가 로버트 K. 레슬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70,80년대를 거치면서 눈에 띄게 연쇄살인이 늘어났다니, 연쇄살인이라는 것이 비단 어느 인종이나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연쇄살인범의 부류를 비조직적 살인자, 조직적 살인자로 나누는데, 비조직적 살인자는 이른바 정신병자로, 꽤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누군가에게 계시를 받았다는 둥의 허황된 환상을 실제로 여기는 편집형 정신분열증 환자를 뜻한다.  이들의 범죄에는 패턴이 없고, 잔인무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악의는 없다. 이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범죄가 무척 우발적이라 범행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노력따위 하지 않고(그럴만한 냉정한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차를 몰고 살인을 저지르러 나가는 경우도 극히 적으며, 자아가 분열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자아와 평범한 인간인 자아가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정신병적인 모습이 주위에서도 쉽게 탄로난다고 한다.
작가는 어느 시대에나 일정한 비율로 이런 비조직적 살인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늑대인간같은 설화속의 존재들이 옛시대에도 있었을 이런 정신병자들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하고 혼자 추측해보았다.
70-80년대를 지나면서 연쇄살인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조직적 살인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이코패스라는 존재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의 범죄에는 이성이 있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 아주 똑똑하고 교활한 살인자도 있다.
어디선가 읽기로는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고 하던데, 이들이 범죄로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기묘한 환상을 키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어린시절은 대체로 불우한 편인데, 꼭 경제적으로 불우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차가운 부모라던가 자식에게 화풀이하는 부모 역시 이 불우한 환경에 속한다.
이들의 범죄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키워온 삐뚤어진 환상을 토대로 하나씩 계획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조직적 범죄의 대부분이 성범죄로 이어지고, 애초에 있었던 기묘한 환상 자체가 삐뚤어진 성욕에 근거해 있단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끔찍하고 잔학한 성범죄들과 연쇄살인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게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미국의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기술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발전하게 되었나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얘기일까.
유아성폭행을 저지르고 만취한 상태라고하면 감형되는 나라. 살인자에게 고작 몇년 형 때려놓고 금새 다시 나와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만드는 나라. 과연 제대로된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
중간에 살인자도 죽어버려서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나라도 종신형 3번 연속으로 선고받기-같은 법은 왜 존재하지 않을까?
왜 범죄자들도 갱생될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 부풀어 있을까?(연쇄살인범들의 대부분은 아주 오랜시간 삐뚤어진 환상을 되풀이해와서 돌이킬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갱생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한다.)

무서운 게 살인범인지, 이 나라의 법인지 모를 나라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어떻게 내 아이를 낳아놓고 건강히 자라주기를 바랄수 있을까.
위혐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고, 사회 역시 피해자를 지켜줄수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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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참 이상한 나라이다.
운동하러 수영장에 갔더니, 사람들은 수영은 안하고 앉아서 다리만 물에 담그고 수다를 떨고 있고, 헬스클럽에 갔는데 아무도 격렬히 운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헬스클럽에 수건 한장 구비되어있지 않단다. 서류 하나 떼려는데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하나 더 떼어야하는 황당함, 은행가서 카드를 만들려는데, 비밀번호를 본인이 아닌 은행에서 정해주는 이 오만함,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려는데 서투른 프랑스어에 웨이터는 손님을 불쾌한 듯 귀찮은 듯 바라본다.
이런 나라가 프랑스.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입을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땀을 흘려 살을 뺀다는 개념이 없어, 비만은 다이어트 크림 하나로 다스릴수 있다고 믿는 게으른 나라. 손님이 왕이라는 우리나라말에는 전혀 걸맞지 않는 불손한 매너의 나라.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이런 행동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오만할만큼 자존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기자출신의 전형적인 뉴요커 애덤 고프닉이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파리에 대한 동경, 결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몇년동안 파리에 거주하게 된 이 남자의 이야기-사실 여행서적이 아닐까 하고 펼쳤지만, 의외로 여행서적이 아니라 파리에서 살아본 생활인으로써 바라보는 파리가 담겨 있어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흥미로웠다. (나는 여행 서적을 싫어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도 싫어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은, 생소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처럼 몇일을 살아보는 여행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쪽의 책이 내게는 더 맞지 않을까.)
 
저자는 프랑스에 대한 동경으로 날아갔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프랑스 역시 변한 지 오래되었다. 섹스의 나라라는 명성은 암스테르담에 빼앗겨 버렸고, 거리마다 맥도날드가 판을 친다. 미국식 음식이 들어옴에 따라 미국식 문화도 같이 딸려들어올수 밖에 없어서, 환상속의 예술의 도시였던 파리는 이미 그 환상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미국식 문화는 가져들어오면서도, 잘못된 점은 꼭 다 미국때문이라 욕하는 프랑스 사람들- 비겁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참 순진한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수다 떨기 좋아하고, 남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통성명을 하고나면 반드시 지나칠때마다 안부를 물어줘야하는 프랑스 사람들, 그 오만하고 게으르기 짝이없는 프랑스의 하나하나가 빠릿빠릿한 생활 패턴과 개인주의에 사로잡힌 뉴요커에게는 피곤하고 진땀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파리를 사랑할수 밖에 없는 이유, 아무리 미국식 문화가 판을 치고 있어도 파리가 여전히 파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래된 레스토랑 주인이 바뀌고 메뉴가 바뀌기 시작하자 단골 손님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추억의 레스토랑을 여전히 그자리에 놓아두려 노력하는, 참견 잘하는 사회에서 볼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정"에 가까운 행동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처리에 답답하고, 아는 척에 짜증이 나도, 개개인의 역사마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도시는 그래도 여전히 예술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까.

책을 쓴 저자는 뉴욕출신이고, 책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고, 또 읽는 독자인 나는 한국인이니,
이 뉴요커가 파리에서 이해할수 없었던 점들이 뉴욕의 시선에서 또 한국의 시선으로, 두번에 걸쳐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잘 이해가가지 않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저자의 소소한 일상들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이어져 큰 불만없이 보았다. (하지만 오타는 좀 신경써주길 바란다.)
유럽인들이 축구에 환장하는데 비해, 미국인들은 축구에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인들이나 우리나라의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어떻게 축구를 사랑하지 않을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책에 미국인들이 축구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역시, 미국인으로써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 월드컵을 바라보며 축구에 도무지 정을 붙일수 없던 저자가(득점기회를 노리려고 패널티 킥을 얻으려 반칙을 이끌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심지어는 비열하다고까지 생각한다.) 아이스하키와 농구를 보며 유럽인들이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된 부분이다. 나 역시 축구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첨부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축구는 보고 즐기자고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었다. 직접 공을 차며 경험하는데 의미가 있는 스포츠였다. 힘든 상황, 실패가 거의 확실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월드컵은 숙명의 축제인 듯 하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고 누구도 골을 넣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닮은 점이 있다. 0대 0은 삶의 득점표다. 여전히 운동장에서 에덴동산을 찾는 미국인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철학일 수 있다. 그러나 축구는 삶의 도피 수단으로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다.
뭔가 불공평하고 답답하다는 점에서 축구는 곧 삶이다.
우리는 부당한 이익을 구하고, 조그만 기쁨의 순간을 최종적인 승리인 양 좋아하며, 또 상대편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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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노트 - 범죄심리를 해석하는 새로운 눈
로이 해이즐우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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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에 미국 범죄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프로파일"이라는 다소 생소했던 단어가
아주 생소하지 만은 않게 되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옛날 추리소설부터 최근의 추리소설까지 주구장창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집단에서 그런 프로파일을 많이 접했었는데, (사실 그걸 프로파일이라 부르는지도 몰랐지만..) 이게 참 볼때마다 신기하다. 주어진 단서만을 가지고 범인이 몇 살정도의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이고, 그 사람의 취향이나 버릇, 심지어는 그 사람의 과거 행적까지도 추측하는 탐정들을 보면서, 이게 과연 소설이라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었다.

그러나 프로파일링은 사실상 존재한다.
물론 프로파일러들이 초능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증거가 모두 모여야 정확한 프로파일링이 가능하겠지만, 주어진 단서만으로도 한번도 보지 못한 흉학범들의 신상을 얼추 맞추는 것을 보면 소설속의 탐정들이 했던 추리들이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은 아닌가 보다.
이 책을 보려고 했던 이유는, 프로파일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또 어떤 근거로 범인을 추측해 나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프로파일러들이 굉장한 천재이거나, 굉장한 지식을 축척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책속의 프로파일러들은 천재도, 초능력자도, 굉장한 지식인들도 아니었다.
끝없는 관찰과 인내, 수많은 경험에서 축척된 통찰력이 프로파일링의 원동력이었다.
가끔씩 영화에서 보는 닳고 닳은 형사들이 용의자를 보고 범인이라 감을 잡는 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경험에서 축척된 프로파일링의 일종이었던 셈이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범죄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강간 사건들인데, 그런 범죄들의 동기가 대부분 성적인 만족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환상과 지배욕의 표출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니 이 편이 오히려 소름끼치는 일이다.
억압받은 사람일수록 지배욕에 대한 열망이 강해진다.
행동을 마음대로 할수 없는 부자유스러움은 마음속에서 지배욕이라는 환상을 키워나가고,
그 환상은 점점 커져 자신을 제어할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삐뚤어진 지배욕의 형성 과정이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치고도 멀쩡히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반화시켜 통계를 낼수 없음도 인간 정신의 신비로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속에 등장하는 '자기성애'자들의 이야기는 충격의 극치였다. 가학성을 가진 범죄자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마음속에 내재된 피학성의 환상을 자기 손으로 실현해 자살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게 되는 위험한 정신상태는 참 알수없는 부분이었달까.

프로파일러 출신인 작가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신기에 가까운 반짝이는 추리나 반전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기다리고 기다려서 끝내 단서를 모으로 모아 하나씩 사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말이 '어' 다르고 '아'다르다는데,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접한 여러가지 상식들을 사실이라고 미묘하게 조금씩 착각하고 있었던 점도 꽤 많아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게 되었던 계기도 되었다. (부끄럽지만,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프로파일링하는 법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FBI에서 근 30년간 프로파일링을 하면서 만났던 범인들과, 그들을 추적하는 이야기, 그리고 범죄 심리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고,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가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아서, 범죄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
 
단, 아쉬운 점은 책은 너무나 좋은데, 오타가 꽤 많아서 책을 읽으면서 출판사의 성의없음에 불쾌해졌다. (이상하게도, 유독 이런 종류의 책들에서는 오타가 많다. 왜일까?)
책을 내기 전에 교정을 봐야하는 건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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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의 기록
브라이언 마리너 지음, 정태원 옮김 / 이지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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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읽는 책이 하나같이 이러냐고, 또 한번 엄마에게 한마디 듣게 했던 "독살의 기록".
개인적으로 참고 자료삼아 읽어보려고 벼르고 있던 책이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주로 185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일어났던 독살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적절히 참고자료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범죄가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차마 셀수 없이 여러가지이듯이, 살인 처리방법도 여러가지이고, 살인에 악용되는 물품도 여러가지이다. 토막살인은 단지 시체를 절단하면서 희열을 얻는 변태적 욕망때문이기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시체 운반이 어려울때 선택하는 범죄자들의 수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독살 역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희열을 얻는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욕망 때문에 일어난다기 보다는, 독극물 살해를 밝혀내기 어려웠던 시절, 손쉽게 병으로 오인받을수 있었을 법한 증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리고 한 티스푼만으로도 쉽게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낼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사용된다. 때문에, 체력적으로 약한 사람에게도 가능한 살인방법이었던 것이다. 가령, 아주 몸집이 작은 여자라도 필요하다면, 손쉽게 이용했을.
그래서 옛 소설들에 그리도 독극물 살인사건이 많이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독살의 기록"은 여러가지 독극물의 설명과 함께 그것을 악용해 살인을 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는 책으로, 실상 독살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익한 책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유명한 독살가들은 대부분 잡혀들어가거나 사형을 당했고, 의학이 훨씬 많이 발전한 지금에 와서는 적합하지 않은 살인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로망때문인지, 독살은 항상 어쩐지 로맨틱한 살인으로 머릿속에 그려졌었는데, 책을 보며 독극물을 마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 그림에서처럼 파리하고 아름답게 침대위에서 죽어가는 죽음은 아마도 없을테니. 죽음은 그저 신체적 고통끝에 찾아오는 부패일 뿐인 것이다.
(특히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몸을 활처럼 구부리고 두어시간 동안 동공이 풀리고 입꼬리는 웃듯이 올라간 채 소리를 지르다 죽을수 밖에 없는 스트리크닌 독살은 그야말로 후덜덜이다.)
독살의 거의 모든 동기가 돈이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독살이 현대의 보험살인극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어느 세상에서나 존재한다고 돈이 사람의 목숨을 앞지를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냉혹하게 느껴졌다.

이 쪽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삼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전문적으로 파고든 책은 아니지만, 역사속의 독살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라고 얘기하면 너무 냉정해보이나.)
덧붙이자면, 꼼꼼한 구성은 괜찮은데, 책속에 간혹 보이는 오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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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
데릭 펠 지음, 최일성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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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버림받은 천재 예술가, 자신을 귀를 잘라낸 정신착란증 환자, 태양처럼 불타는 노란색-
이 말들은 생전에는 인정받지도 못하던 화가 빈센트 반고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어버렸다.
37년 평생 "붉은 포도밭" 한점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그림을 전혀 팔지 못했던 이 무명작가는 죽고나서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술가로써 작품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올수 없는 크나큰 영광이지만, 감히 누가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할까. 평생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여 남루한 인생을 이어나가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하는 그런 삶을 누가 살고 싶어할까.

<반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은 그가 대체된 아이로 태어나 37세에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위장을 쏠때까지의 짧고 아쉬운 인생 여정을 존경과 연민이 어린 어조로 풀어나가고 있는 책이다.
빈센트 반고흐가 태어나기 딱 1년전, 어머니가 유산한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채 빈센트는 대체된 아이로써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환상속의 죽은 아들은 신화처럼 존재하며 어머니를, 그리고 빈센트를 따라다니는 망령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해도, 환상속의 아이처럼 완벽할수 없는 것이 당연한 사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아이는 자라서도 사랑에 대해 집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했던 애정에 대한 결핍은 그로 하여금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들, 죽은 사람의 망령을 달고 살아가거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던 여자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열정적이다못해 광적으로 보이던 빈센트의 사랑들, 짝사랑을 하는 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결혼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착각, 사랑과 사랑이 주는 안정감을 도가 지나치게 맹신해 버리는 반고흐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광적으로, 참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나 역시 주위에 이런 사람이 내게 끊임없이 구애를 해오고 자신의 감정을 착각하다가 실연하려는 순간이면 자신의 자책하다못해 자해까지 저지르는 사람을 지긋지긋한 스토커 내지는 정신병자로 생각했을 듯 싶다.
어눌하고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던 반고흐는 생전, 주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그닥 좋지 못했고, 그의 넘치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담과 혐오를 주거나, 불쾌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실패작이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선심을 베풀었건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똑같이 인정받지 못하던 인상파 화가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빈센트 반고흐는 조금 더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물랑루즈의 난쟁이 화가 로트레크처럼 타고난 부가 있지도 않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고갱처럼 카리스마를 타고나지도 못해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편도 아니었다.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자였지만 타고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고갱과의 우정은 마치 빈센트의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짝사랑처럼 보인다. 반고흐는 고갱을 동경했다. 그의 그림도, 그라는 사람도.
자신과 닮아있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완성된 소울메이트를 보듯이.
고갱과 싸우고 돌아서서 칼로 그를 위협하고,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주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지만,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빈센트 역시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오랜 상처가 고갱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폭팔했던 것일까.
그 사건으로 그는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갖히게 된다.
 
빈센트에게는 헌신적인 동생이 있었다. 평생 가난하나마 예술가로써 살아갈수 있었던 건 동생 테오의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화상이었던 테오 반고흐는 형의 그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으로 평생 빈센트를 부양하게 된다. 화상으로써, 예술가인 빈센트를 인정하고 존경했던 동생 테오는 그가 살아 생전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그림이 전설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 역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빈센트의 그림에 매혹되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고흐에게 애정어린 편지와 관심을 보내주었다.
테오와 요한나. 세상에 보낸 사랑에 응답받지 못했던 빈센트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들이 아이가 아프자 빈센트에게 늘 보내주던 용돈을 보내주지 않겠다 통보하자, 빈센트는 크게 절망한다. 비록 곧바로 그들의 사과를 받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었을 것이다.
빈센트의 마지막 사랑, 그가 세들어 살고 있는 가셰의사의 딸과의 로맨스는 어쩌면 영원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질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과 빈센트의 사랑을 눈치 챈 가셰의사는 그 사랑에 반기를 든다.
세상 어느 부모가 정신병 경력이 있는 남자에게 딸을 맡길수가 있을까.
이 모든 거부된 사랑을 포기하고 빈센트는 결국 37세의 나이에 밀밭에서 자신을 총으로 쏘아버린다.
 
피흐르는 위장을 부여잡고 빈센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넘쳐서 언제나 거부당하기만 하는 그의 마음과 세상에 짐이 되기만 하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끊임없는 좌절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죽고나서야 평가받는 천재 예술가, 지금에 와서야 많은 사람들이 반고흐의 예술과 그의 인생을 사랑하지만, 과연 그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모두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반고흐의 일생을 통틀어 본인 자신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행복했던 시절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세상에게,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존재-이 얼마나 쓸쓸한 인생인지..
"멀쩡한 세상이 나를 미치게 한다." 반고흐는 이렇게 말했다지.
다르다는 것이 때로는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대부분은 이해받지 못하는 쓸쓸함을 자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다른 이 세상에서, 반고흐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감성과 재능이 아무리 부럽더라도 감히 반고흐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테오 부부에게 자신이 짐이 될까봐 두려웠다 편지를 보낸 반고흐의 위태위태한 마음은 기분을 뭐라 말할수 없이 슬프게 만들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빈센트 반고흐의 인생은 찬란한 태양빛이면서도, 쓸쓸한 밤빛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기분을 자아내나 보다. 반고흐에 대한 책은 예전에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책보다 주관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반고흐라는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던 책이었다.
지난 겨울, 반고흐전을 다녀와 반고흐에 관한 책을 보고 싶어서 샀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밤의 테라스에서 그 사람과 이야기 해보고싶구나. 그의 열정에 대해, 그의 버림받은 사랑에 대해.
어쩐지 손을 꼭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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