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증명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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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증명>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모리무라 세이치.
요즘 인기있는 소설가들처럼 감각적인 면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청산유수 거침없이 이어지는 전개들이 마음에 든다.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청춘의 증명까지, 모리무라 세이치의 세가지 증명시리즈가 있는데,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이 사뭇 달랐듯이, <청춘의 증명>은 또 어떻게 다를지 모르겠다.
(왠지 제목만 봐서는 청춘 학원물일것같다는 은근한 기대가....♥)


일본의 어느 산골 마을, 한적하다기보다는 스산할 정도로 남루한 삶을 근근히 이어나가는 이 마을에서
도시 사람들은 자연의 낭만을 느낀다.
일찌기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은 아이들과 노인들 뿐,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그나마 농작물마저 병들어 시들어가는 이 마을에서, 마을 사람 전원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누구인지도 모를 범인, 알수없는 이유로 살아남은 단한명의 아이는 충격으로 사건과 범인의 정체에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 대량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2년후, 보험회사직원인 아지사와는 이 아이를 입양해 키우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로 여행갔다가 살해당한 여자의 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연인이자, 기자인 여자와 아지사와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짐작되는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치정극, 또 그 배후에 깔려있는 오바가문의 비리까지 밝혀지면서,
아지사와의 숨겨둔 야성은 폭팔한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한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와 주인공임을 어필하는 아지사와의 정체가 무엇인지 독자는 거의 마지막까지 알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속내를 알수없는 정의감이라던가, 숨겨진 야성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된다.
독자와 아지사와만이 아는 비밀을 남겨둔 채 "이 세상은 원래 이래. 진실이란 소용없는거야."라고 말하는 듯
매우 안타깝고 허탈한 결론을 내리며 <야성의 증명>은 마무리 짓는다.
<인간의 증명>에서는 그것이 설사 인위적이라 느껴지더라도, 소설속 인간들의 관계성에 대한 해석이 참 재밌는 부분이었고, 전체적으로 울적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던데 비해, <야성의 증명>은 어딘지 날 것냄새가 날듯 비정하고 남성적이다.
느낌이 아주 다른 두 작품이었으니 관점도 달리해서 봐야 옳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증명>쪽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굳이 "결코 밝혀지지 않는 진실"로 마무리 짓는 것에 딴지 걸 생각은 없으나, (나는 이런 결론도 나름대로 좋아한다. 사실은 이 것이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밌는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후반부에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나타나 당황스럽고,
굳이 그런 직접적인 방법을 써서 인간의 야성을 증명해야하나...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내내 알수 없는 아지사와의 내면 묘사에서 야성을 좀더 부곽시켰더라면 좋았을텐데..)
죽어있는 듯한 여자주인공의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초반사건에 비해, 두번째 사건들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이 워낙 술술 잘 읽히기 때문에, 꽤 재밌게 봤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얼마전, 일본에서 살다온 친구는 일본 사람들은 속내를 알수 없어서 정이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헤어질 때 아쉽다고 해놓고, 다시는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
모든 일본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그런 면이 조금씩은 있는 것은 사실인가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짐작할 수 없음"의 아슬아슬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를 거두어 들이는 착한 사람인가 하면,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가,
때로는 옆에서 사람이 얻어터지고 있어도 내 일 아니라며 등돌려버리는 매몰찬 인간인 아지사와를 보면서
짐작할수 없는 마음이란 참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구나...싶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누구의 마음속에 깔려있는 남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비열한 부분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는 동서미스테리 북스.
촌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극적인 표지에다가, 엄청난 오타들,
거의 초벌 번역에서 마쳐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어색한 번역,
(적어도 '코'아니면 '꼬' 둘중에 하나만 통일해달라!)
표지 뒷면 책소개에서부터 중반부 스포일러는 다 까발려버리는 파렴치한 테러행위에도
동서미스테리북스는 재밌다.
최근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일본인기작가들의 신작 물량공세에 보기도 전에 질려버린 나같은 사람은
가끔씩 이런 예전 작가들의 흔적을 찾는 것도 나름 쏠쏠하게 즐거운 일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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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7-08-2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라고 생각되시면...제목에 스포있음이라고 표시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Apple 2007-08-23 15:22   좋아요 0 | URL
글쎄..이 정도도 스포일러 일까 싶어서 그냥 쓰지 않았는데...음..^^;

물만두 2007-08-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증명은 못찾았어요. 번역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731부대를 무대로 한 신인간의 증명은 있더군요.

Apple 2007-08-23 15:22   좋아요 0 | URL
헉...신인간의 증명이라..ㅇ.,ㅇ;;

jedai2000 2007-08-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증명 나왔어요. 전 못 봤는데, 남산도서관에서 실제로 보신 분이 있어요. 증명 시리즈 중에 가장 못하다고 평하시더군요^^

Apple 2007-08-23 15:23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흐흐..^^

jedai2000 2007-08-2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습니다만, 본문 중간에 표시를 하셨으니까 괜찮을 것 같네요 ^^

Apple 2007-08-23 23:00   좋아요 0 | URL
또 몰라서 앞부분에도 써보았습니다.흐흐..^^

카스피 2007-11-2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있어 말씀 드릴려구요.위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청춘의 증명은 출간되었어요.제가 소장하고 있는데 출판사명은 잘 생각이 나질 않네요(박스안에 있어서 확인불가^^;)
그리고 신인간의 증명은 731부대(악마의 포식)가 아니라 레몬살인이라는 이름으로 80년대 초반에 출판되었읍니다.참고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