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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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잡지에서 이종호씨의 인터뷰를 보게되었는데,
"공포소설이라고 해서 꼭 무섭지는 않아도 되는것같다"는 문구를 읽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나?)
모순 아닌가. 공포소설이지만, 반드시 무서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맞아,맞아"라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다지 겁이 없는 나로써는, 어떤 이야기가 들이닥치든 두려움을 느끼기란 힘들다.
그 이야기의 본래의 취지대로 무섭지 않다면, 그렇다면 나는 왜 공포소설을 읽는가.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는 걸까.
내게 있어서, 공포소설은 아주 무섭거나, 기분 나쁠 정도로 잔혹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기괴한 이미지들속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
식겁하게 만드는 귀신이 대거 출몰하거나, 살인마가 나타나 사람을 토막내도,
거기에 인간의 감정이나 사연이 담기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을까.
이미지로써의 공포가 아니라, 내용으로써 완성된 공포소설을 읽고싶었다.
삐뚤어진 인간의 심리나,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섬뜩한 현실의 광기 살인, 악몽에는 더 집중하게 되는 악취미.
나는 그런 악몽을 확인하기 위해 공포소설을 들여다본다.
 
올여름 다시 돌아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두번째 방문은 그 음흉한 이름답게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일상의 공포들을 다룬다.
겨우 9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1편과 2편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편이 자극성에 초점을 맞춘 엔터테인먼트로써의 공포였다면,
이번 편은 전체적으로 좀더 수준있는 공포소설을 지향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방문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대표적으로 <레드 크리스마스>같은 단편이 그 변화의 핵심이 되는데,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포'란 단지 이미지적인 공포가 아닌, 누구나 겪는 일상의 모순에 대한 짜증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공포감, 또는 좌절감으로 표현되어있다.
전편보다 단절이나 좌절감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띄이고,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공감하기 쉬워서
1편보다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종일의 <벽>은 어느 순간 운이 확 트이기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운이 좋아 좀더 싼 가격에 아파트를 얻게된 부부, 아파트가 생기고 나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예상치도 못한 데에서 돈이 들어오며, 아이까지 생기는데...
시도때도 없이 윗층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음들과 싸가지 콤보 100단을 연달아 날려주시는 되먹지 못한 윗층 이웃들.
작은 것에서 비롯된 일상의 짜증에 얼마나 많은 것이 깨어질수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단편이다.
<몸>에서, 한국공포단편선까지-점점 자기 페이스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종일 작가의 변화가 눈에 띈다.
 
장은호의 <캠코더>는 전형적인 병원 괴담이야기같은 단편이다.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소년과 아이가 한시도 놓지 않는 캠코더.
캠코더에 찍힌 병자들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소년도 죽는다.
평소 병원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던 소년을 유일하게 아껴주던 의사 주인공이
이 괴이한 캠코더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는 이야기이다.
괴담으로써는 재밌을지 모르지만, 이야기가 전형적이고 단순해서 아쉬운 단편이다.
 
최민호의 <길 위의 여자>는 헐리우드 공포영화를 보고있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단편이다.
숲에서 차가 고장난데다가 핸드폰 밧데리도 나가버리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한 남자가
도로에서 차를 얻어타게 된다.
한밤에 선글라스를 낀 이상한 여자, 도로에서 내장이 터져죽은 너구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차에 실는 여자의 이상한 행동에 주인공은 신경질적인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데...
끔찍하고 음울한 악몽같은 이야기이다. 역시 히치하이킹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김미리의 <드림머신>에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꿈을 꿀수 있는 드림머신이 등장한다.
딱봐도 용도는 느껴지지 않는가. 연인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은 기계이다.
평소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과 항상 아름다운 꿈만 꾸는 여자친구, 두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실망을 많이 한 단편이었는데,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너무 소품적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체 역시 작품이 어설퍼보이는데 한몫했다.
 
김준영의 <통증>은 계속 아픈 남자가 등장한다.
그가 아픈 이유는 몸에서 자꾸 이상한 것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이나 되어서 이가 자라나서 온 입안이 찢어지질 않나, 얼굴에서 알수 없는 살들이 자라나고,
손톱 옆에서 또 손톱이 자라나질 않나- 병원에서도 손들어버린 이 알수없는 통증들.
이 끔찍한 통증의 이야기는 어느 날부터 실종되어버린 아내의 수사와 교차되며
그의 통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이다.
<통증>은 담담한 문체가 무척 인상적인 매력적인 단편이었다. 다소 건조하게 통증을 호소하는데도 어찌나 그 끔찍한 통증이 잘 전달되던지, 읽으면서 나도 어딘가 아픈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후반부가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의 글솜씨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단점을 상쇄했다.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는 사회모순을 다루고 있는 멋진 단편이다.
영구임대주택과 초호화 아파트가 나란히 서있는 동네. 오냐오냐 키운 부잣집 아이들은 악마나 다름없다.
길잃은 개이든, 어렵게 살아가는 독거노인이든, 장애인부모를 둔 가난한 아이든 가리지 않는다.
길거리 깡통을 보듯 인간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장난삼아 비비탄총을 갈기며,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라고 믿는 부모의 끔찍할 정도의 과보호 역시 악마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 이런 부모들을 너무나 잘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분노하면서 이 단편을 읽게되는 것이다.
부조리한 일상의 짜증과 불의를 보고도 참을수 밖에 없는 비참할 정도로 나약한 자기보호본능,
이 단편을 읽으면서 왠지 눈물이 나는 건 나뿐만일까.
 
신진오의 <압박>은 말그대로 폐소공포를 자극하는 단편이다.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전신마비환자는 밤만 되면 쇠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에 시달리게 되고,
어느날 부터인가 집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전편에서 <상자>를 실었던 신진오는 여전히 상자에 갖힌듯한 네모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깔끔한 문체도 좋고 주인공의 간병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어딘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단편이었으나,
후반부 박력이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재밌는 단편이다.
 
황희의 <벽 곰팡이>는 <레드크리스마스>와 함께 전편에서는 다루지 않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불법체류를 하게된 한 가족- 어느날 부터인가 아이들이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원인은 벽을 시커멓게 잠식해버린 곰팡이 때문이었다.
집주인에게 호소를 해도 제대로 조취를 취해주지 않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이 단편은 미국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호소를 하고 있어서,
애초에 주시하던 곰팡이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순간 슬쩍 사라져버리고, 얘기 자체도 공포에서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우리나라 공포소설에서는 좀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무척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던 단편이다.
 
이종호의 <폭설>에는 폭설로 인해 산에 갖혀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신기루처럼 우뚝 서있는 기이한 산장에서 모인 사람들. 저마다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공포심에 시달리는데,
게다가 산장에는 시체가 있질 않나, 누군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나타나
공포심을 더더욱 자극한다.
오래전의 괴담에서 이어진 현실의 살육이야기는 참 익숙한 소재이지만, 작가가 워낙 능숙하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이런 소재가 낡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후반부의 의외의 이야기도 환상적이었고, 역시 전체적인 흐름의 완성도에서는 <폭설>이 최고이다.
 

개인적으로는 <통증> <레드크리스마스> <길위의 여자> <벽곰팡이> <폭설>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미 말했듯이, 전편보다 단편의 전체적인 수준이나 글 완성도가 향상되어서 나는 두번째 방문쪽이 마음에 든다.
전작과는 다른 시도들이 꽤 많이 보이고, 사람마다 이 시도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적어도 안이하게 멈춰져 비슷한 이야기만 양산하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좋은 모습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발간되기를 바라며, 두번째 방문이 첫번째 방문과는 다른 맛이 있듯이,
세번째 방문은 또 다른 묘미를 갖춘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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