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身邊雜記 170119
- 수학과 진학
며칠 전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친구 아들이 옥스퍼드 대학 수학과 입학 허가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 학교에 진학 여부는 원서를 접수한 미국의 대학 입학 허가라는 변수가 있지만, 친구의 생각에는 이 학교 입학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친구 아들을 아이 초등학생 시절에 몇 번 봤고, 이후로 보지 못했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 시절에 아이의 관심이 정치 외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말 쯤에 아이가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내 친구는 내게 자문을 구했다. 인문계에 대한 공부를 하던 아이가 대학 입학 2년 전에 수학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물었다. 수학에 필요한 자질, 기본 바탕이 되는 능력과 아이의 열정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수학을 전공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빠인 친구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2년 전 서울대 수학과에서 입학한 (또 다른 친구의 아들) 아이와 함께 수학을 전공하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수학과 진학을 격려했던 두 아이 모두 그 길을 택했다. ‘그래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래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나 싶다. 내 경우를 보면 내 학력고사 성적으로는 수학과에 입학할 수가 없었다. 그 해는 대학 입시 요강이 변할 때라 하향 안전 지원으로 대학교 입학 학력고사 커트라인이 매우 낮았다. 유행하는 말로 폭망한 커트라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트라인 거의 떨어지지 않은 자연계-이과 계열 5개 학과 중의 하나가 수학과다. (이 글에 대해서는 학력고사 입시 제도에 대한 직간접 경험이 있어야 공감할 듯.)
다른 예로 바꿔보자. 어느 아이가 가수가 너무 되고 싶어 한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인기 있을 확률이 낮다. 그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유명 가수가 될 그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다면, 직업적인 가수가 되라고 격려하는 것이 옳을까?
뱀발 ;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과는 자연-이공 대학에 속해있지 않고 인문-문리 대학에 속해 있다.